14화. 정혼
진남후부 대부인은 여기저기 청운을 관찰했다. 피부가 희며 매끄럽고, 용모도 부드럽고 양지옥처럼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눈빛이 단정하고, 두 눈은 물처럼 맑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단지 마른 편이어서, 얼굴에 살이 조금 붙는다면 수도에서 그녀에 대적할만한 사람이 얼마 없을 듯했다.
그러나 조금 짧은 의상이 진남후부 대부인으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정도로 꾸몄으니, 이미 충분했다.
이런 그녀를 정국공부의 큰공자나 정원장군부로 시집을 보낸다면, 얼마나 총애를 받겠는가?
어제 목상서부 큰부인이 청운의 치맛자락을 유심히 보는 것에 노부인은 크게 화를 냈었다.
오늘 진남후부 대부인이 또 다시 청운의 치맛자락을 관찰하는 것을 보니, 노부인은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노부인이 청운을 노려보지 않고, 대부인을 노려보았다.
노부인이 추하를 보낸 것은 만에 하나의 실수조차 없게 하려 한 건데, 요즘 들어 청운에게 맞는 옷이 없다는 것이 실수가 되다니!
대부인은 앉아서 두 손을 꼭 쥐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 엄동설한이 스치는 듯했다.
청운은 어색하게 서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자신은 포장지에 싸여 선택을 기다리는 물건 같았다.
노부인은 청운이 진남후부 대부인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긴장했다.
진남후부 대부인이 청운을 칭찬하자, 그제야 노부인은 한시름 놓았다. 진남후부 대부인이 찻잔을 드는 모습을 보자, 노부인은 손을 저어 청운에게 난각(*暖閣:옛날, 난방 설비를 하여 몸을 녹일 수 있게 했던 큰 방에 딸린 작은 방)으로 건너가라 일렀다.
청운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녀는 선택받지 못한 듯했다.
그녀가 병풍 쪽으로 걸어갔을 때, 노부인이 웃으며 물었다.
“제 손녀가 겉모습은 그래도 괜찮은 아이인데, 대부인 마음에 드셨을지 모르겠네요?”
진남후부 대부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목련이 수놓인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러곤 입을 열어 화제를 돌렸다.
“백부와 강씨 집안은 사돈인데, 강 노태야와 아버님이 어린 시절 동창이라는 걸 알고 계시지요?”
노부인은 놀라 멍해졌다. 그녀는 진남후부 대부인이 청운을 언급한 것은 단순히 우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말로 청운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 일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남후부 대부인은 계속해서 웃으며 말했다.
“강 노태야는 문신이었고, 아버님은 무장이었어요. 두 분 다 조정에서 관리로 일하시고, 싸우기도 하셨나 봐요. 저는 젊은 시절 우정이라 벌써 잊힌 줄 알았는데, 당시 강 노태야와 아버님께서 구두로 결혼 약속을 하셨나 봐요. 어제 저녁 강 노태야께서 방문하셔서 아버님께 말을 전하니, 아버님께서 약속을 지키고자 이 혼사를 승낙하셨어요. 그런데 강 노태야께서 직접 외손녀를 며느리로 맞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진남후부 대부인은 천천히 웃으며 이어 말했다.
“외조부께서 외손녀의 혼사를 알아보시는 것은 정상이죠. 그래도 안정백부의 동의가 있어야 하니까요.”
* * *
청운은 매난죽국이 그려진 자단목 병풍 옆에 서서 더 듣고 싶었지만, 여종인 홍초가 난각으로 가야한다고 재촉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혼사를 결정할 때, 아랫사람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그래도 난각은 가까운 곳에 위치하니, 귀를 잘 기울이면 정당에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청운은 두세 걸음 걸어 난각에 도착했다. 난각에 막 발을 디디려는 찰나, 무의식적으로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시선들과 마주했다. 그들은 청운을 난도질 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청운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목청유 패거리가 난각에 있을 줄 꿈에도 상상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목청유는 분노어린 얼굴로 손에 들린 손수건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강씨 집안이 아직도 몰락하지 않았다니! 진남후부와 연을 맺어 불구덩이를 탈출하려 해? 말라비틀어진 낙타라도 말보다는 크다더니!”
청운은 화가 났다. 강씨 집안은 자신의 외가였다. 외손녀가 불구덩이로 밀쳐지는데, 당연히 혼신의 힘을 다해 구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수수방관해야 하나?
청운은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앉았다.
그제야 청운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목청설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좀 전에 불향원에서 봤던 옷과 달랐다. 마치 화려하게 치장한 듯했다.
청운은 왜 그녀들이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확실해졌다. 알고 보니 진남후부 대부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이었다.
청운은 그녀들이 모두 아름답게 치장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진남후부 대부인에게 선택받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러나 진남후부 대부인이 강씨 집안 때문에 온 것이라니. 그녀들이 자주 강씨 집안이 몰락했다고 비난했던 걸 생각하면, 선택을 염두 해둘 필요조차 없었다.
진남후부 대부인이 혼사 문제로 방문했단 얘기를 들었을 때, 그녀들의 눈이 번쩍 뜨였을 터였다.
목청지와 몇몇 사람들은 청운을 찢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주먹을 꽉 쥔 채,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강씨 집안 때문에 후부에서 백부로 좌천되었고 그 때문에 그녀들의 신분이 한 등급이나 낮아졌는데, 강씨 집안은 오로지 자신의 외손녀만 신경 쓰고, 그녀들은 상관도 하지 않았다!
진남후부는 수도에서 명망 높은 집안이고, 백부는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되는데, 진남후부 대부인께서 친히 혼사 문제로 방문하셨으니, 노부인이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무조건 기뻐할 것이었다!
목청유 패거리는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화를 내었다.
한편 한쪽에서 한 여종이 벽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들었는지 그녀들을 향해 손짓했다.
목쳥유는 원래 듣고 싶지 않았지만, 손짓하던 여종이 그녀의 여종인 춘향(春香)이었다.
목청유가 물건을 내던질 수 있을 정도로 화가 난 상태에서, 감히 춘향이 웃음을 지을 아이는 아니었다. 분명 다른 일이 생긴 것이었다.
목청유 패거리는 재빨리 건너가 엿듣기 시작했다.
정당에서 노부인은 답을 하지 않은 채, 진남후부 대부인에게 되물었다.
“누구와 혼사를 맺으려는지 모르겠는데요?”
진남후부 대부인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 점은 아버님께서도 말씀 안하셨어요. 강씨 집안은 몰락했고, 요즘 누가 몇 십 년 전 말로 한 약속을 성실히 지키겠어요? 강 노태야께서는 저희 집안에서 알아서 적당한 연령의 사내와 연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진남후부 초씨 집안은 백 년째 내려오는 명문가였다.
가족이 방대하고 자녀도 가득했지만, 혼기가 찬 사람은 고작 여덟 명이 있었다.
노부인은 조금 실망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남후부의 적출 큰공자가 어떻게 청운을 아내로 맞겠는가. 강씨 집안이 그 정도로 뻔뻔했다면, 그런 식으로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남후부 대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강 노태야께서 결정하셨지만, 노마님께서는 다른 의견 없으시죠?”
노부인은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있었다. 만약 초씨 집안에서 청운에게 족보에서도 다섯 다리나 건너는 방계 사람과 혼인을 시킨다면, 장차 백부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너무 호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진남후부 대부인이 어디 쉽게 혼사를 얘기하는 사람이던가? 그녀가 직접 왔는데,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만약 정말로 거절한다면, 진남후부와 악연을 맺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부인은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강 노태야를 믿기로 했고, 진남후부 대부인이 직접 백부를 방문한 것만 봐도 이미 체면이 충분히 서는 일이었다.
“그럼 이 혼사는 결정된 것으로 하시죠.”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진남후부 대부인도 따라 웃었다. 노부인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손 씨는 진남후부 대부인이 한시름 놓은 걸 보았다.
난각에서는 청운도 벽에 붙어 엿듣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의 혼사가 이렇게 결정되었지만,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녀가 누구에게 시집가는지 명확히 하지도 않고 시원하게 승낙해버리다니. 한 마디라도 더 물으면 어디가 덧나나 싶었다.
정당에서 진남후부 대부인은 차를 두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입가를 닦고는 뒤를 돌아 노란 치마를 입고 있던 여종에게 비단함을 건네받았다.
노부인은 그것이 진남후부에서 준비한 약혼의 증표라는 것을 알았다. 약혼의 증표를 받게 되면, 이 혼사는 정해지는 것이었다.
손 씨가 비단함을 건네받았다.
진남후부 대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단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관저에 볼 일이 있어서 저는 이만 일어날게요. 천문대에서 길일을 받으면 후부에서 납채를 보내겠습니다.”
노부인도 같이 일어나서 대부인에게 문 앞까지 바래다드리라 하였다.
대부인이 진남후부 대부인을 모시고 정당을 나가자, 손 씨가 비단함을 노부인에게 건네주었다.
목청유 패거리도 난각에서 나왔다.
비단함에는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옥패가 들어있었다. 다만 옥패에 새겨져 있는 글자가 노부인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북(北)?”
손 씨가 추측하며 말했다.
“아마 진남후부의 어떤 이의 이름인가 봅니다.”
노부인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만약 어떤 이의 것이라면, 방금 누군지 말하면 되지 않았느냐?”
청운의 혼사는 결정되었지만, 진남후부의 누구와 혼인하는지는 아직 몰랐다.
손 씨가 생각하더니 노부인의 귓가에 귓속말을 속삭였다.
노부인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손 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잘못 본 게 아니지?”
손 씨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노마님 곁을 지킨 세월이 몇 년인데요. 제가 잘못 본 적 있습니까?”
노부인은 손 씨를 믿고 있었다. 손 씨의 사람 보는 눈은 꽤 정확했다.
노부인의 시선은 다시 옥패를 향했고, 손 씨에게 명령했다.
“사람을 시켜 강 노태야께 여쭤보라 하고, 또 주 총관에게 사람을 시켜 진남후부에 이름에 북 자가 들어가는 이가 있는지 알아보라 해라.”
주 총관은 바깥뜰을 총괄하는 사람으로, 노부인의 심복이었다. 손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내려가 일을 처리했다.
반시진이 지나자, 주 총관이 안뜰로 들어오며 말했다.
“노마님, 알아보니 진남후부의 큰도련님 이름이 초북이라 합니다.”
주 총관의 말이 끝나자, 노부인의 안색이 굳었다.
목청유 패거리는 입을 가리고 숨죽여 웃었다. 좀 전의 시기 질투하던 마음은 진즉에 사라지고, 이제는 불쌍하고 우스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청운은 노부인을 바라보고 또 목청유 패거리를 바라보았지만,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진남후부 큰도련님이 왜, 무슨 문제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