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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혼담을 꺼내다



32화 혼담을 꺼내다

진강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난 영친 왕비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부인들에게 말했다.

“부인들도 보십시오. 진강이 형님을 도와 혼담을 넣었다고 하면 어떤 소문이 날 것 같습니까?”

부인들은 미소를 띠며 왕비의 말을 경청했다.

“너희들이 이리 급하게 온 것이 진호의 혼담 때문이었더냐?”

영친 왕비가 연석과 이목청, 그리고 사묵함 등을 보면서 물었다. 연석은 어색하게 기침을 하다가, 진강이 자신에게 눈길을 주자 즉시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저희들은 이 일의 증인을 서려고 온 것입니다. 노 아가씨는 확실히 큰 공자인 진호 형님에게 연심을 품고 있습니다. 왕비마마께선 서둘러 매파를 좌상부로 보내 혼담을 넣으십시오!”

연석의 말에 부인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친 왕비는 연석을 본 후, 다시 사묵함과 이목청을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어색한 표정을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노 아가씨가 정말 진호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이지? 너희들이 이렇게 한 달음에 달려와 혼담의 증인을 설 정도로 말이다.”

“그렇습니다!”

연석이 필사적으로 말했다. 사냥터에서 노 아가씨는 확실히 진강을 화나게 만들었다. 만약 이런 순간에 진강을 돕지 않는다면, 나중에 필시 한 소릴 듣게 될 것이다.

“노 아가씨는 정말 큰 공자에게 연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원래 이런 혼사는 부모님이 결정하셔야 하고, 아랫사람인 저희가 끼어들면 안 됩니다. 하지만……”

사묵함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진강의 혼사를 위해서라도 큰 공자의 혼사를 먼저 정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영친 왕비의 마음이 흔들렸다. 원래는 진강이 잠시 장난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묵함의 말을 들어 보니 서서히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 사냥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강이 노 아가씨를 싫어해서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형님과 맺어주려 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영친 왕비는 사실, 행동과 말이 야박하고 신랄한 좌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느 황자의 편에 서지도 않고, 오히려 4황자 진옥을 막북으로 쫓아냈다. 또한 좌상은 교활하고 심계가 깊어 상대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영친왕도 그를 싫어해, 줄곧 그를 소인이라 칭하곤 했다. 그러므로 영친왕은 분명 좌상부와 사돈을 맺고 싶어 하지 않을 터였다.

사실 영친왕부는 권세가 굳건하여 다른 가문과 연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좌상부와 결탁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그에 반해 좌상부는 외부에서 보면 그 입지가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좌상이 비록 지금은 조정에서 높은 자리에 있지만, 언제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문제는 언제나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영친왕은 비록 서출이긴 하나 장자인 진호를 총애하여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절대로 입지가 불안정한 좌상부와 사돈을 맺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무슨 생각 하세요. 이 일이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진강이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영친 왕비는 진강의 얼굴에 조급함이 떠오른 것을 보자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어렵게 형님의 혼사에 대해 말을 꺼냈는데, 내가 어찌 너의 부탁을 거절하겠느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연석 일행을 바라봤다.

“이 일의 증인이 되고자 너희들이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네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

“어머니께서 그러시다면, 빨리 좌상부에 매파를 보내십시오!”

“매파를 바로 보낼 순 없고, 여러 준비가 필요하단다. 또한 좌상은 조정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니, 당연히 매파를 바로 보낼 순 없겠지.”

영친 왕비가 진강을 보면서 말했다.

“무엇이 이렇게 복잡합니까!”

진강은 갑자기 묘수가 떠올랐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 큰형님에게 좌상부의 여식을 맺어주기로 결심하셨다면 매파를 보내는 것보다 어머니께서 직접 다녀오시는 것이 더 성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친 왕비가 그 말엔 동의할 수 없는지 인상을 썼다. 서출 장자를 위해 직접 찾아가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분명 어머니께 효도를 할 것입니다!”

진강이 부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여기 오신 부인들이 어머니와 꽃놀이를 즐기시고 계신 걸 보니, 전부 시간이 충분 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 날이 밝으니, 어머니는 부인들께 형님의 매파가 되어주시기를 부탁하시고 같이 좌상부로 가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그의 말에 부인들이 전부 깜짝 놀랐다. 순간 영친 왕비도 매우 놀랐지만, 곧 진강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녀가 여기 있는 부인들과 함께 좌상부의 부인을 찾아간다면, 좌상 부인은 아무리 원치 않는다고 하여도 그녀들의 체면을 생각해 바로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 영친왕은 황제 폐하와 일을 상의하기 위해 외출한 상태라, 추후에 이 일을 알고 화를 낸다 해도 영친 왕비를 어떻게 하진 못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좌상부와 영친왕부가 사돈을 맺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은 영친 왕비가 서출 장자를 서운하게 대하지 않고, 그를 위해 직접 나선다고 생각할 것이다. 생각을 마친 영친 왕비가 부인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나와 함께 좌상부에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인들은 왕비와 진강의 얼굴을 보면서 감히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이건 좋은 일인데, 부인들께서도 당연히 함께해 주실 겁니다.”

진강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네, 혼인은 경사이니, 왕비마마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사씨 장방의 민 부인이 대답했다. 어쨌든 말은 영친 왕비께서 하실 것이니 자신들은 그저 매파의 역할만 할 뿐이라 생각하여, 부인들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 * *

“그럼 함께 갑시다!”

영친 왕비가 몸을 일으키자 다른 부인들도 전부 일어났다. 그들은 영친왕부를 나와 마차를 타고, 좌상부를 향해 출발했다.

“정말 공자답네. 황자마마의 매파 행렬도 이렇게 성대하진 않을 것이야. 진호형님을 위해 정말 크게 일을 벌이는군.”

연석이 진강의 어깨를 두드리며 감탄의 말을 전했다.

“부인들이 나섰으니,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아무리 성대한 행렬도 형님의 출신을 바꾸진 못하네.”

진강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지.”

“모두 사냥 내기를 잊지는 않았겠지? 지금 집으로 돌아가 물건을 보내게. 구경거리를 더 보고자 한다면 좌상부까지 따라 가시던가.”

진강이 말하자 연석이 답했다.

“당연히 주지. 뭐가 급해서 우릴 쫓아내는 건가?”

“지금 그대들의 어머니께서 좌상부로 떠나셨을 때, 가죽을 가져 오는 것이 꾸중도 듣지 않고 더 좋은 일이 아니겠나?”

연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들 안 갈 건가?”

“가지! 오늘 일은 잠시 후면 각자 집으로 소식이 오겠지. 우리 어머니께선 분명 소식을 들으시곤, 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물어 보실 테지. 나도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어야겠군.”

정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목청과 송방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묵함은 진강이 지켜보고 있기에 오늘은 더 이상 누이동생과 말할 기회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영친 왕비가 누이동생을 마음에 들어 하고, 진강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그들이 전부 떠나자, 떠들썩했던 유람원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진강이 바닥에 있는 채찍을 발로 차더니, 온돌 위에 가서 누웠다. 그리고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도 와서 누워라.”

사방화는 그를 흘겨보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진강은 잠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눈을 감고 말했다.

“어머니의 처소에는 온돌이 깔려 있어서, 낙매거의 침상보다 훨씬 좋다. 오늘 사냥하며 차가운 바람을 씌었으니, 누워서 한기를 쫓아내거라.”

사방화는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일 년 365일 차가운 바람이 부는 무명산에서 8년을 살았다. 오늘 같은 바람은 별것도 아닌걸.’

이곳은 영친 왕비의 방이다. 진강은 왕비의 아들이니 마음대로 누울 수 있겠지만, 그녀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진강은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자,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니께서 항상 너를 착하다고 칭찬하고, 볼 때마다 네가 본분과 예의를 잘 지킨다고 하시는데, 나도 그에 동의한다.”

진강이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오늘 검을 던졌을 때, 동물뿐 아니라 사람도 죽일 수 있었지.”

사방화는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내 진강이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너는 검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이 온돌은 무서우냐? 누우면 좀 어때서 그러느냐?”

사방화는 몸을 돌리고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무서운 거냐?”

사방화는 오늘 그가 노설영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자신의 어머니와 부인들을 좌상부로 보내면서 까지 혼담을 꺼낸 것일 테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했음에도 아직 모자란 듯, 여태 잠재우지 못한 감정을 저에게까지 풀어내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비록 그의 시녀이긴 하나, 화풀이 대상이 될 필요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바닥에 있는 여우와 담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진강은 그녀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막지 않았다.

* * *

사방화는 밖으로 나와, 앞에서 황급히 걸어오는 진호를 만났다. 만약 그녀가 재빨리 몸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서로 부딪쳤을 것이다.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가 사방화를 바라봤다.

사방화는 침착하게 그의 얼굴을 보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진호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더니, 이제야 누군지 알아본 듯 날카로운 눈빛을 천천히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

“청음이로군! 네가 품에 안고 있는 것이 오늘 잡은 여우와 담비더냐?”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도 의몽이라는 이름의 시녀가 있다. 시간이 되면 내 거처로 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군. 그녀는 성격이 좋으니 아마 둘이 잘 지낼 것 같다.”

진호가 가슴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어 그녀에게 주었다.

“선물이다.”

사방화는 그의 손을 피했다. 딱 봐도 진귀하고 비싸 보이는 옥패였다. 자신에게 그런 귀한 옥패를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설령 옥패가 마음에 들었다 하더라도 감히 받을 수 없었다.

“왜 안 받는 것이냐?”

사방화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려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진호가 갑자기 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앞을 막아선 그가 사방화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진강이 알게 될까 봐 그런 것이냐? 그저 옥패일 뿐인데, 네가 말하지 않으면 진강도 모를 것이다.”

사방화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오늘 이 옥패를 받게 되면 내일은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내 선물이 싫은가?”

진호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사방화의 속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어서,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님이 주신 자향옥이다. 황금 오천 냥 정도 되는 아주 값비싼 물건이지.”

사방화는 인상을 쓰면서 다시 뒤로 물러났다.

“진강이 정말 그렇게 두려운가? 선물도 받지 못할 만큼?”

진호는 갑자기 미소를 거두며 선물을 받으라 종용했다. 그 때, 갑자기 진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은 제 시녀가 황금 오천 냥의 가치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진호가 깜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들었고, 사방화는 몸을 돌려 진강을 바라보았다. 진강은 여유 있는 모습으로 벽에 기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진호는 급히 안색을 바꾸며, 옥패를 품 안에 집어넣고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우야, 안목이 좋구나. 황금 오천 냥으로도 네 시녀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네. 내 거처에 있는 시녀라면 아마 보자마자 받았을 텐데.”

진강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앞으로 저의 청음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나중에 팔다리가 잘린 후엔 후회해도 늦습니다.”

진강은 몸을 바로 세우고 소매의 주름을 정리한 후, 입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