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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는 엄청 애매하네."

키메라들 여럿이 덤비면 꼼짝없이 당할 것 같은 수준이었다.

전혀 보스 몬스터 같지가 않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지. 던전 의 몬스터들이 보스 몬스터 수준에 비해 높은...

던전의 주인이 연금술사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키메라 수준은 높은데 막상 본인 의 힘이 그리 뛰어나진 않았다.

'능력치나 특성 스킬들을 보면 지금 당장 크게 도움 될 거 같지는 않은데.'

불완전한이라는 사족이 붙긴 했지만, 데스 나이트다운 능력치는

아니었다.

검술과 관련된 스킬이나 특성도 없었고.

그러나 성장형이라는게 중요했다.

플레이어와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파라네트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성장형 소환수의 좋은 점은... 단순히 성장하는 것만이 아니지.'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소환수를 지속하는 시간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무한정 데리고 다닐 수 있다는 소리였다.

유준은 파라네트를 한번 소환해 보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라이프 베슬에 손을 얹고 '소환'을 생각하면 된다.

유준이 손을 움직였다.

낡은 여관방에 순백의 섬광이 번 쩍 했다.

즈즛!

섬광의 여파가 사라지고, 방에는 익숙한 녀석이 나타났다.

앙상한 팔과 다리뼈를 가지고 체 격도 작았다.

낡지만 고풍스러운 망토를 등에 달고 있는 해골 기사.

바로 파라네트였다.

"뭐, 뭐야? 여긴 어디지?"

파라네트는 소환되자마자 어리숙 한 모습을 보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나 기억나?"

유준의 말에 파라네트가 몸을 흠 칫 떨었다.

녀석의 시선이유준을 향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잘 생각해 봐."

그때였다.

파라네트가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소환수와 주인의 관계로 재정립 되는 과정이었다.

한참을 진동하던 파라네트의 몸 이 이내 잠잠해졌다.

"내가 소환수가 되다니...

파라네트가 울상을 지었다.

해골이라서 실제로 그런 표정인 지는 모르겠지만, 유준은 그렇게 느꼈다.

한참 말이 없던 파라네트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전의 무례는 죄송했습니다."

다짜고짜 사과를 해 왔다.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례?"

"실험실에서 주인님을 깔보는 듯 한 말을 했습니다."

"아, 무지몽매 뭐니 한 거?"

"...예."

"괜찮아."

어차피 그때는 적이었다.

유준도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날 왜 그렇게 무서워한 거야? 내가 딱히 뭘 하지는 않았잖아."

그의 말에 파라네트가 잠깐 망설 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겁이 많습니다."

"겁이 많다고?"

"불멸의 기사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 두렵습니다. 거기다 주인님은 제 키메라들을 전부 처리 하고 오셨잖습니까? 그래서 더욱 싸울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래서 허세를 부린 거야?"

"...예."

유준이 헛웃음을 홀렸다.

이런 보스 몬스터도 있구나.

'언데드, 그것도 데스 나이트가 겁이 많다니...

전투용으로밖에 쓸 일이 없는데스 나이트가 전투에 참전하지 못한다?

그것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없었다.

뻘쭘하게서 있는 파라네트를 바 라보던 유준의 눈이 어느 순간 빛 났다.

'잠깐... 분명 소환수를 성장시 켜 주는 아이템이 나한테 있었을 텐데.'

유준은 인벤토리를 열고 아이템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인벤토리 공간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원하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1분 정도 흐르고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아이템을 꺼냈다.

[소환수 점핑 비약(이벤트)]

등급 : 無

옵션 : 소환수의 레벨을 100으로 상승시킵니다. 레벨 100 이하의 소환수에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의 축복]

등급 : 전설

옵션 : 언데드 계열 존재의 잠재 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소환수 점핑 비약'은 이벤트 기 간에 과금해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효과는 옵션에 나와 있듯 좋은 편이었다.

제일 귀찮은 소환수 초반 육성을 건너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겁이 많아도 레벨이 높으면 일 인분은 하겠지.'

그리고 '죽은 자의 축복'.

이건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매 우 귀한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자체가 전설 등급이라 극

히 드물기도 하고 효과가 뛰어난 것이 이유였다.

'죽은 자의 축복'은 펫이나 소환 수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다.

성장형 소환수인 파라네트에게 딱 적합한 아이템.

유준의 손에 들린 '죽은 자의 축 복'을 본 파라네트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 그건 뭡니까?"

"왜? 이것도 무서워? 이거 그냥 버프 아이템인데."

"불길한 생김새입니다. 해골 모 양... 마치 저주받은 아이템 같지

않습니까."

"인마. 너도 해골이야."

"아...?"

유준은 먼저 소환수 점핑 비약부 터 건넸다.

"먹어."

"먹어도 되는 겁니까?"

"안 되는 걸 주겠어? 내 소환수 한테?"

"아, 알겠습니다."

파라네트가 점핑 비약을 꿀꺽 삼 켰다.

[소환수 '파라네트'의 레벨이 100 이 되었습니다.]

파라네트는 변화를 바로 체감했다.

"오오...! 몸에서 힘이 샘솟고 있습니다!"

"잘됐네."

유준은 그다음 '죽은 자의 축복'을 파라네트의 두개골에 올린 뒤에 쓱쓱 문질렀다.

녀석의 머리가 밝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서, 설마 이건?"

파라네트가 음성을 높였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에게도...

파밧!

섬광이 한 번 더 터져 나왔다.

"나에게도 드디어 머리카락이!"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빛이 이내 사그라들었다.

[소환수 '파라네트'의 잠재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아... 평생의 꿈을 이뤘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파라네트의 헛소리를 들은 유준 이미간을 찌푸렸다.

"네?"

유준의 표정을 본 파라네트가 황급히 팔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만져 봤다.

" 휑하다...

아마도 자신이 죽은 자의 축복

으로 머리를 문질렀던 것이 파라네트가 착각하게 만든 이유인 듯 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놈은 키가 좀 더 커지고 어깨 골격이 옆으로 떡 벌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텅 빈 눈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또 머리에서는 광이 났다.

유준은 크게 변한 파라네트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소환수 : 파라네트(성장형)]

□ 레벨 : 100

□ 특성 : 생존 본능(S), 회피(A)

□ 스킬 : 독 포션 제조(B), 시체 폭발 (S)

□ 칭호 : 없음

□ 능력치

[근력 74] [민첩 92]

[체력 78] [마력 71]

[미분배 포인트 : 0 ]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죽은 자의 축복을 쓴 보람이 있군.'

이제야 언데드 몬스터답다.

파라네트의 능력치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특성이나 스킬들의 등급 도 높아졌다.

'그런데 시체 폭발이라.... 데스 나이트가 가질 만한 스킬은 아니긴 한데.'

나쁘지 않다.

아니 아주 좋았다.

등급의 스킬인 시체 폭발.

파라네트의 마력 수치도 높은 편이니 꽤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파라네트도 꽤 쓸 만해졌고. 이제 다음 충으로 올라가 볼까.'

유준은 탑을 오를 생각에 몸이 한껏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때 파라네트가 바닥을 보며 중얼거린다.

"내 머리...

"원래 없었잖아."

"기대했습니다."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지."

"그럴까요?"

"아니."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3화

13화

무한의 탑 5층.

이곳 5층에서는 매우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정체되어 있었다.

5층의 등반 시험 난이도.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5층의 석상 앞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뤘다.

"든든한 탱커 한 명 구합니다!"

"화력 확실한 불 마법사 한 명구해요."

"힐러 모집합니다."

크게 소리치며 파티원들을 구하는 플레이어들.

늦은 저녁임에도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그 플레이어들 틈 사이에 낀 유준이 회상에 젖었다.

그는 현재 3층과 4층을 빠르게 돌파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벌써 5층에 도달한 상태였다.

'신들의 전쟁 생각나네. 5층이 분 명 보스 레이드였지.'

100레벨 이하의 플레이어들이 잡 기 쉽지 않은 보스 몬스터.

'딱히 약점도 없어서 공략하기가 힘들긴 하지.'

유준이 주변을 둘러봤다.

'나도 파티를 맺어야 하긴 하는데.'

5층 시험에 등장하는 보스 몹은 확실히 혼자서 잡기가 힘들다.

아무리 유준이라고 해도 그러했다.

파라네트의 능력이 기대보다 훨 씬 뛰어나긴 했다.

하지만 그놈의 겁 많은 성격이 문제였다.

5층의 보스 몬스터를 보면 또 겁에 질릴 게 뻔했다.

'특히... 5층 보스는 덩치가 크니까.... 목숨을 건 도박을 할 필 요는 없지.'

파티에 드는게 가장 좋긴 하다.

등 뒤를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따로 없다는게 문제였다.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건데.'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전부 마법사나 힐러를 구하고 있을 뿐.

검 하나 달랑 든 전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탱커가 수요가 높긴 하지만, 유준은 전위에 서긴 해도 결코 탱커 가 아니었다.

'애초에 일면식도 없는 파티에서 탱커 역할을 맡을 수는 없지.'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앞, 뒤로 목숨을 위협받는 탱커 역할은 사양이었다.

'아. 잠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탱커 역할을 파라네트에게 시키 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는 언데드 인 데다가 100레벨 방어구까지 입 혀 주면... 그게 탱커잖아.'

결정을 내린 유준은 주변에서 소리치는 플레이어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밀지 맙시다!"

"그쪽이 먼저 밀었잖아요!"

"탱커 귀하게 모십니다! 오시면

귀족 대우해 드려요!"

"탱커 제발! 오세요! 템도 지원 합니다!"

유독 탱커를 모집하는 파티가 많았다.

탱커는 하고 싶어 하는 이가 없 으며 사망 위험이 큰 직군.

자연스레 탱커가 귀할 수밖에 없었다.

힐러나 마법사는 그에 비하면 양 반인 셈이었다.

'게임과는 다르네.'

그때는 탱커보다 힐러가 훨씬 귀

했었다.

'좋아.'

파라네트가 있으니 탱커는 이미 확보된 상황.

유준은 파티 두 곳을 물색했다.

둘 다 탱커를 모집하고 있는 파 티였는데, 각각 2명과 3명으로 이 루어져 있었다.

'파티 제한이 4명이니까 둘 다 상관없겠군.'

소환수는 파티 인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환수는 활용도가 뛰어

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준은 먼저 세 명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호리호리한 몸을 지닌 남자가 먼 저 입을 열었다.

"탱커?"

"비슷합니다."

"비슷하다뇨? 그게 무슨 뜻이죠?"

"직접 보세요."

유준이 파라네트를 소환했다.

그의 바로 앞에 마법진 하나가 생겨나더니 그 마법진에서 푸른 빛

이 뿜어져 나왔다.

그 후 마법진 위에 형체 하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흐릿한 형체는 이윽고 파라네트 의 모습이 되었다.

갑자기 나타난 언데드, 스켈레톤을 본 세 명의 플레이어가 화들짝 놀랐다.

" 언데드?"

"스켈레톤이라기엔 너무 덩치가 큰데?"

"그 스켈레톤은 뭐예요? 소환 수?"

단신의 여성이 물어 왔고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수 맞습니다."

"언데드가 소환수라고요?"

"왜요?"

"없는 건 아니지만... 언데드 소환수는 희귀한 존재니까 좀 신기 하네요."

유준이 방긋 웃었다.

"탱커 역할로 좋겠죠?"

"소환수 레벨이 어떻게 돼요?"

"70요."

그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 짓말했다.

실제로는 100이 넘는다.

"네? 70? 소환수 레벨이 그렇게 높다고요?"

유준의 말을 들은 여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다 멀뚱멀뚱 서 있는 파라네 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 레벨은 몇인데요?"

"63입니다."

레벨은 파티를 맺으면 숨길 수 없다.

소환수의 레벨을 거짓으로 말한 것과는 다르게 솔직히 말했다.

"...소환수가 레벨이 더 높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운 이 좋았죠."

황당해하는 플레이어들의 시선.

파티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민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뭘 고민해요? 소환수가 있으면

우리 전력이 다섯이 되는 거잖아요. 무조건 해야죠."

한 파티원이 재촉했다.

파티장은 그럼에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탱커 역할을 하기엔 체 격이 너무 왜소한데."

"걱정하지 마세요. 제 소환수는 언데드입니다. 웬만한 공격에도 끄 떡없고 고통도 느끼지 않아요."

"그래요? 흐음."

한참을 고민하던 파티장이 결국 승낙했다.

"같이 가죠. 안 될 거 같으면 바로 출구를 통해 도망치면 되니까."

"예."

파티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유준은 먼저 파티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 풀숲으로 이동했다.

"제가 탱커 역할을 하는 겁니까?"

그때 파라네트가 속삭이듯이 말 했다.

"응."

"표정이 왜 그래?"

"제가 몸을 대는 겁니까?"

파라네트가 다시 물었다.

"맞아."

"아시다시피 저는 겁이..."

"좋은 아이템 줄게. 너 레벨 높 잖아. 100레벨 장비 끼면 이런 저 층에서는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어."

"그, 그렇습니까!"

혹했는지 파라네트의 목소리가 커졌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100레벨 장 비들을 꺼냈다.

"너. 무슨 무기를 가장 잘다..."

"뭐?"

"잘 아시겠지만 검입니다."

"잘 다루진 않던데."

"...크흡. 그나마 가장 낫습니다."

"기다려."

그의 인벤토리에는 무기만 놓고 보면 검이 가장 많이 자리했다.

그가 검을 썼기 때문.

"100레벨 전설 등급 무기와 영웅 등급 방어구들.... 이 정도면 과 분할 정도로 준 거야."

유준이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템

들을 건네줬다.

파라네트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 며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실제로 한낱 소환수가 쓰기엔 과 분한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템들은 인벤 토리에 넘치도록 있었다.

전혀 아낄 필요가 없다.

'내가 100레벨이 되면 더 좋은 거 써야지.'

척! 척!

고레벨 장비를 모두 착용한 파라

네트는 흡사 죽음의 기사 못지않은 모습이 되었다.

"오오...! 이게 진정한 나!"

파라네트가 크게 기뻐했다.

유준은 파티원이 있는 곳으로 돌 아갔다.

"준비 끝났어요?"

파티장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 덕였다.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김현 수입니다. 일단은 파티장 역할을 맡고 있어요. 마법 스킬을 주로 사용합니다."

김현수는 호리호리한 몸을 가진 남자였다.

긴 로브를 착용하고 고목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로 보아 마법사인 듯했다.

"저는지수연이에요. 힐 스킬을 두 개 가지고 있어요."

지수연은 아까 유준에게 대화를 나눴던 단신의 여성이었다.

"박현우입니다. 무기는 활을 씁니다."

박현우는 매우 과묵한 사내였다.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그 말만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제야 유준이 입을 열었다.

"신유준입니다. 검을 사용합니다."

"응? 원거리 보조 아니었어요?"

"예? 아닙니다."

"그럼... 소환수도 있는데 검도 쓰시는 거예요?"

"예."

"대단하시네요."

신들의 전쟁은 따로 직업을 분류 할 수 없었다.

어떤 스킬, 아이템을 가지고 있 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

그렇기에 유준과 같은 경우도 드 문 건 아니었다.

지수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개가 끝났고 레벨도 서로 알 고 있으니 출발해 볼까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파티장 김현수가 5층 석상에 손을 얹었다.

파티원들의 몸이 하나둘씩 사라

졌다.

그리고 유준의 차례가 왔다.

파밧!

그가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전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5층의 배경은 아주 단조로웠다.

짙은 회색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넓은 공간.

빛 한 점 새어 들어오지 않는 곳 이지만, 천장에 달린 야광석 때문 인지 어둡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맞은편 한가운데.

5m는 훌쩍 넘어 보이는 엄청난

덩치의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트롤.

보통 게임이라면 트롤은 그저 흔 한 몬스터일지 모른다.

그러나 '신들의 전쟁'에서는 달랐다.

트롤은 저레벨 유저들에게 천재 지변이나, 재앙이나 다름없는 몬스터였다.

트롤의 특징은 여러 개 있다.

검으로 베든, 마법으로 신체 부 위를 날리든 순식간에 상처를 재생 한다.

그뿐만 아니다.

놈은 엄청난 완력과 순발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유일한 약점이 불에 취약하다는 것.

그러나 그것조차 재생력으로 금 방 회복해서 한 방에 끝낼 수 있는게 아니면 소용이 없었다.

'마무리는 불 마법으로 하는게 좋긴 하지만.'

그가 트롤을 유심히 살폈다.

'트롤이 게임에서의 패턴대로 움직일까?'

유준은 그게 궁금했다.

만약 전보다 더 날렵해지고 패턴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상대하기 가 더 까다로울 테니까.

"호오... 트롤이제 상대입니까. 나쁘지 않군요."

파라네트가 자신감에 찬 얼굴로 트롤에게 다가갔다.

너무 자신만만해진 게 아닌가 싶었지만, 겁을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파티원들은 의구심 가득한 얼굴 로 파라네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과연 탱커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아이템은 꽤 좋은 걸 낀 거 같은데?"

"어? 그러게. 유준 씨. 돈이 많으 신가 봐요?"

지수연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살 짝 끄덕였다.

"제 형이 좀 유명한 사람이 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요? 혹시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형의 정체가 알려

지는 건 아무래도...

"그럼 어쩔 수 없죠."

태연하게 거짓말로 대웅한 유준은 파라네트를 바라봤다.

그도 사실 궁금했다.

과연 파라네트가 트롤을 상대로 활약을 할 수 있을지.

그 결과는 곧 알 수 있으리라.

"마력은 최대한 아끼는게 좋겠습니다."

"네. 그러죠. 천천히 공략해 봐요."

좋은 판단이었다.

트롤을 상대로 단시간에 화력을 퍼부으면 제힘만 뻬는 꼴이었다.

유준 또한 그걸 알기에 초반 탐 색전은 파라네트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다.

콰앙!

트롤의 주먹이 바닥에 강하게 꽂 혔다.

굉음이 울려 퍼지며 지축이 흔들렸다.

엄청난 괴력이었다.

그러나 파라네트는 무사했다.

눈 깜짝할 새에 이뤄진 공격인데

도 불구하고 용케 트롤의 공격을 피했다.

'생존 본능과 회피 특성 덕분인가?'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콰앙! 쾅!

트롤의 공격이 여러번 더 바닥에 꽂혔다.

파라네트는 손쉽게 트롤의 연이은 공격을 회피했다.

트롤이 열이 받았는지 주먹을 휘 두르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콰앙! 쾅! 쾅!

"하하핫! 덩치만 크면 뭘 하나! 맞히질 못하는데!"

파라네트는 한술 더 떠서 트롤을 도발했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말에 담긴 뉘앙스라는게 있다.

대충 의미를 전달받은 트롤의 각 진 얼굴이 시뻘게졌다.

"크오오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4화

14화

김현수와 지수연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저게 가능해? 눈앞에서 날아오는 트롤 주먹을 피한다고?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그러게요. 능력치가 민첩에 특 화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게... 마치 트롤의 공격을 미리 읽는 듯한 느낌이이에요."

그 둘뿐만이 아니다.

유준도 파라네트의 날랜 움직임에 감탄했다.

'아이템을 준 보람이 있군.'

이 정도 활약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거기다 트롤의 공격에 맞아도 크게 충격받지는 않을 거야.'

100레벨 착용 제한이 걸린 영웅 등급 방어구들.

그건 장식이 아니다.

트롤의 공격도 거뜬히 받아 낼 수 있으리라.

'애초에 파라네트의 레벨이 트롤 보다 높기도 하고.'

녀석은 트롤의 공격을 제대로 읽 고 보면서 피하고 있었다.

심지어 트롤은 갈수록 지쳐 갔다.

반면, 파라네트는 언데드다.

장기전으로 가면 누가 더 유리한 지 눈에 훤히 보이는 상황.

문제는 파라네트도 트롤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트롤을 마무리하는 건 김현수를 비롯한 파티원들의 몫이었다.

'뭐, 잘 싸우네.'

괜스레 뿌듯해졌다.

그때 지수연이 입을 열었다.

"어쩔까요? 공격해요?"

"계속 지켜보죠. 트롤이 지치면 지칠수록 우리한텐 유리하니."

"음. 그게 좋겠네요."

트롤은 지능이 낮긴 하지만 아주 멍청하지는 않았다.

놈은 파라네트와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간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 리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래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멈 추고.

타깃을 돌렸다.

바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준 과 파티원들로.

트롤이 땅을 울리며 달려왔다.

"준비!"

불 마법을 사용하는 김현수가 먼 저 트롤이 돌격하는 진로에 붉은 장막, 파이어 월을 만들었다.

화르륵-!

뜨거운 불기둥이 높게 솟았다.

이미 불기둥 가까이 다가온 트롤은 피할 생각도없이 그대로 돌파 했다.

화악!

뜨거움을 느끼지 않는 걸까.

터프한 트롤은 무서운 기세로 뛰 어왔다.

"미, 미친!"

"이 정도는 예상했잖아요. 현우 씨. 트롤의 눈을 노려요."

김현수의 말에 박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트롤의 재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안구 쪽이었다.

트리플 샷.

연달아 세 개의 화살이 날아가는 스킬이었다.

정확히 같은 경로로 날아간 화살 세 개가 트롤의 오른쪽 눈에 꽂혔다.

콱!

"크아아악!"

눈에 상처가 난 건 참을 수 없었는지 트롤이 괴성을 내질렀다.

트롤이 잠시 괴로워하는 사이, 유준과 파티원들은 빠른 속도로 트 롤과 거리를 벌렸다.

김현수가 마법 캐스팅을 했다.

이번에 거대한 불 구슬이 트롤에게 날아갔다.

화르륵! 콰앙!

트롤의 얼굴에 화염 폭발이 일어 났다.

순식간에 트롤의 얼굴을 뒤덮은 화염.

김현수는 80레벨 불 마법사답게 마법의 화력이 막강했다.

그 와중에 파라네트가 트롤의 발 목 쪽을 검으로 연달아 공격했다.

트롤의 발목에서 붉은 피가 계속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귀찮게 굴자, 트롤이 크게 몸을 비틀었다.

팔과 다리가 전 방향으로 휘둘러 진다.

파라네트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

콰앙!

트를은 곧바로 일어서서 파티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기 시작 했다.

파티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대 응했다.

박현우의 화살이 다시 트롤의 눈을 노리고 날아갔다.

쐐애액-!

이번엔 한 개의 화살만 날아갔다.

트롤이 황급히 손바닥을 들어 화 살을 막아 냈다.

콰콰쾅!

봄버 샷.

닿는 즉시 폭발하는 폭발 스킬이었다.

'박현우였나? 좋은 스킬을 가지 고 있네.'

봄버 샷은 활을 쓰지 않는 유준으로서도 탐이 나는 스킬이었다.

박현우는 화살을 날리는 타이밍을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잘하면 랭커가 될 수도 있겠는데.'

폭발에 휘말린 트롤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봄버 샷은 그 정도로 강력한 스킬이었다.

마력 소모가 크다는 것이 단점이긴 했다.

"지금입니다! 화력 집중해 주세 요!"

김현수의 말에 파티원 모두가 스킬을 사용했다.

유준은 스킬이 따로 없어 트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트롤의 발목을 열심히 공략하고 있는 파라네트가 보였다.

유준은 거대한 덩치의 트롤을 보며 정신이 아연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더럽게 크네.'

바로 앞에서 마주하니 그 위압감 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생기거나 하 진 않았다.

등급 특성, 평정심 덕분이리라.

지금 깨달은 건데, 무한의 탑에 서 생존하기 위해선 이 평정심 특 성만 한 게 없었다.

'최후의 일격은 내가 날려야 한다.'

여기서 끝내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확실한 딜러가 필요한 건

데, 김현수와 박현우의 스킬로는 모자랄 것 같았다.

자신이라면 트롤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유준은 두어 번 정도 심호흡을 하고 트롤의 몸에 올라탔다.

두 번의 도약으로 트롤의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그가 검을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콰직!

유준의 검이 트롤의 두꺼운 피부를 쉽게 뚫고 들어갔다.

"크악...

트롤의 괴성이 뚝 끊겼다.

눈의 초점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트롤의 신형이 허물 어졌다.

쿠웅一!

무거운 트롤이 쓰러지자, 땅이 크게 한번 뒤흔들렸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트롤의 뼈 방패를 획득합니다.]

바닥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유준 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런 피해없이 트롤을 잡아냈다.

트롤의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약점인 정수리를 노렸기에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다.

'단순히 5층 시험인 것치고는 경 험치가 많아. 역시 보스 레이드가 레벨을 올리기엔 좋구나.'

성공적으로 5층 시험을 통과한 파티는 6층으로 워프했다.

"와... 유준 씨.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지수연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로 유준을 경이롭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체라됴?"

"보스를 혼자서 상대하는 소환수 도 그렇고... 트롤을 일격에 죽이 셨잖아요?"

"트롤이 이미 대미지를 크게 입은 상태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에이... 트롤 재생력은 잘 아

시면서. 저희 공격으로 입었던 상 처들은 거의 다 회복되어 가고 있었을걸요?"

맞는 말이다.

트롤이 몸을 비틀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유준이 올라탈 때만 해도 상처가 빠른 속도로 치유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나를 띄울 필요는 없지.'

힘을 숨길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떠벌릴 생각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다른 유저들에 비해 아이템이 좋을 뿐이었다.

자만하는 건 좋지 않았다.

"하여튼 놀랐어요. 사실 5층 시험은 트롤을 지치게 하는게 최대 관건인데... 그걸 소환수 혼자서 해냈으니까요."

"크흠."

옆에서 듣고 있던 파라네트가 손 가락으로 코를 훔쳤다.

쑥스러워서 하는 행동인 것 같았다.

"혹시 메신저 추가해도 될까요?"

"저도 부탁드립니다."

지수연뿐만 아니라 김현수까지 메신저 추가를 요청해 왔다.

'이게 그 무수한 악수의 요청인가.'

한때 인터넷 밈이었던 걸 실제로 겪자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거절할 필요는 없지.'

유준은 김현수와 지수연을 메신 저 목록에 추가했다.

그때였다.

그의 눈앞으로 홀로그램 창 하나 가 추가로 나타났다.

[박현우 플레이어가 메신저의 코 드 번호를 요청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박현우가 무표 정한 얼굴로 유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준은 피식 웃으며 박현우에게 도 코드 번호를 보내 줬다.

어느새 옆까지 다가온 지수연이 입을 열었다.

"혹시 같이 다니실래요? 파티 사 냥 같은 거 하면서요."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 거 같네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 그래요? 그럼 나중에 등 반 시험 볼 때 꼭 연락해 줘요."

"알겠습니다."

6층부터는 웬만하면 혼자 올라갈 생각이지만, 일단은 알았다고 했다.

파티원들은 휴식을 위해 거주 구역으로 돌아갔다.

'빠르게 올라가자.'

애초에 그렇게 힘을 쓰지도 않은 데다가 이런 하층에서 머뭇거릴 생각이 없었다.

10층에는 자신만 아는 히든 던전 이 하나 있다.

그 히든 던전은 웬만해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든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공략되지 않았기를 빌어야지.'

거기서 나오는 보상은 유준으로 서도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꽤 어려웠지.'

당시 150레벨이 넘었던 유준도 힘겹게 공략했던 던전이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만렙까지

키운 캐릭터의 인벤토리를 고스란 히 전해 받았다.

전과는 다를 것이다.

유준은 곧바로 석상에 손을 댔다.

그렇게 6층 시험이 시작되었다.

6층, 1층, 8층 시험까지.

유준은 한나절도 안 되어서 세 개의 시험을 통과해 9층에 도달했다.

혼자서.

이례적인 속도였다.

업적으로 인정받았는지 칭호 하 나를 보상으로 받았다.

[희귀 칭호 '숙련된 등반자'를 획득합니다.]

칭호의 효과는 이러했다.

-숙련된 등반자(희귀) : 시험 통 과로 받는 보상이 소폭 증가합니다.

" 역시."

이 또한 유준의 '무과금즐겜러'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칭호로 꽤 쓸 만했다.

'지금 내 레벨이 어떻게 되더라.'

[Player. 신유준]

□ 레벨 : 81

□ 특성 : 평정심(S)

□ 스킬 : 참격 (B)

□ 칭호 : 전설의 아이템 수집가 (전설) - 착용한 아이템의 효과 15% 증가 외 5개

□ 능력치

[근력 95(88+7)] [민첩 133(106+27)]

[체력 92(85+7)] [마력 22(15+7)]

[미분배 포인트 : 0 ]

81 레벨.

레벨이 많이 올랐다.

'통과 시험을 전부 혼자서 치르 니 경험치도 혼자 다 먹었지.'

그래서 가능하면 통과 시험은 혼 자서만 치를 생각이었다.

그리고 참격(B) 스킬.

이건 8층 시험을 통과하면서 보상으로 얻은 스킬 북에서 나왔다.

검을 휘두를 때의 위력이 대폭 증가하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마력 소모가 그리 크지도 않아서 매우 유용하다.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주인님. 왜 10층으로는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파라네트가 물었다.

유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9층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최대 로 뽑아 먹고 가야지."

그가 10층으로 가는 시험에 도전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9층에서 꼭 확인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9층.

그는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을 당시에 9층에서 고대 유적을 발견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유저들이 고 대 유적을 방문했다.

그러나,

'선행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면서 입장을 거부당했었지.'

유저들은 고대 유적이 이벤트성 던전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했었다.

서버가 종료되는 그날까지 고대 유적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일은 없었다.

숲 한복판에 있는 고대 유적의 용도.

분명 규모가 크고 뭔가가 있을 법한데.

아무도 그걸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만이 아는 정보가 뭐가 있을까.

바로 중급 튜토리얼이다.

이것에 대한 단서는 유일하게 지옥 난이도의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그밖에 몰랐다.

그래서 고대 유적이 중급 튜토리 얼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확인해 봐서 나쁠 건 없겠지.'

첫 튜토리얼에서 막대한 보상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중급 튜토리얼의 보상이 어느 정 도일지 감도 안 잡혔다.

유준은 숲을 가로질러 고대 유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5화

15화

고대 유적.

그곳에 다가가면 고대 유적에 입 장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몸 이 쭉 밀려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제력에 의 해.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기대를 안고 유적 안으로 진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아직 소득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진창호는 소문이 무성한 고대 유 적에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숨겨진 기관이 발동되면 유적에 들어갈 길이 생기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유적의 입장과 어떠 한 특수 아이템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러한 생각들로 주변 숲의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만 포기하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자, 우리."

그때 옆에서 단내를 풍기며 거칠 게 숨을 내뱉던 남자가 말했다.

유적에 같이 들어가기로 한 진창 호의 동료인 박석산이었다.

몇 번이나 들었던 동료의 말에 진창호가 피식 웃었다.

"저 유적.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잖아. 저기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은 과연 어느 정도일지... 넌 기대도 안 되냐?"

"기대? 기대야 하고 있지. 그런 데 말이야. 그것도 결국 유적에 입 장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거 아니 냐? 우리 벌써 9층에서 한 달을 넘

게 낭비했어. 다른 랭커들도 못한 걸 우리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해?"

"그런 마인드인 사람들이라서 전 부 실패한 거야. 난 달라."

진창호를 보는 박석산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인마. 네가 뭐 특별하냐? 넌 널 리고 널린 플레이어 그 이상 그 이 하도 아니야. 애초에 네가 특별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

"너 말 다 했냐?"

"그냥 포기하자. 부탁이다."

진창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주일만 더."

"미친놈."

"야, 잠깐."

진창호가 눈을 가늘게 뜨다가 몸을 나무 뒤로 숨겼다.

"왜 그래?"

"쉿! 조용히 해."

동료를 옆으로 끌어당긴 진창호 가 나무 옆으로 고개만 내밀었다.

"어? 플레이어잖아."

동료의 말에 진창호가 고개를 끄

덕였다.

"어차피 못 들어갈걸. 너 말고도 고대 유적에 미련을 가진 사람이 있긴 하구나."

"혹시 모르지. 고대 유적에 들어 갈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근데 장비가 꽤 좋아 보이는데? 어디 좋은 길드라도 들어간 건가?"

" 흐음..."

"엄청 유망주인 거 아니야?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우리만 위험해질 거 같은데."

박석산의 말에 진창호의 미소가 짙어졌다.

"표정을 봐."

" 뭐?"

"저 아무것도 모르고 고대 유적에 다가가는 얼굴 좀 보라고. 잔뜩 신나서 당장이라도 유적에 몸을 들이밀 것 같잖아."

"그게 뭐?"

"둘 중 하나겠지. 아무것도 모르 고 고대 유적에 접근하고 있는 거 든가, 아니면 확실한 정보를 얻고 고대 유적에 입장할 방법을 알고 있는 거든가."

"그런가?"

진창호의 말에 박석산은 반신반 의하는 표정이었다.

"뭐, 아닐 확률이 더 높겠지. 지 난 몇 년간 아무도 못 들어갔으니까."

둘의 시선이 정확히 고대 유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남자에게 향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이 한둘 있는게 아니다.

고대 유적에 대한 정보가 적거나 아무것도 모르던 이는 호기심에 한 번씩 다가가 보곤 했다.

박석산이 의구심이 깃든 얼굴로

앞을 보는 그때였다.

"응?"

"뭐, 뭐야?"

진창호와 박석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유적으로 쭉 걷던 남자.

그는 아무런 방해나 제지없이 고대 유적 입구에 그대로 들어갔으니까.

"어, 어떻게 된 거야?"

"달려!"

진창호가 다급하게 고대 유적으로 달려갔다.

바로 앞까지 온 진창호는 망설이 지 않고 고대 유적에 발을들이밀었다.

[선행 조건을 충족하지 않습니다. 고대 유적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왜 안 들어가?"

"막혔어."

"아까 들어간 놈은?"

"무슨 수를 쓴 거겠지."

"수상한 아이템 같은 건 안 들고 있던데?"

진창호가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놈이 나오는 걸 기다리자."

그 말의 의도는 뻔했다.

박석산도 한 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얼떨결에 유적 안까지 들어온 유준이 당황했다.

홀로그램 창이라도 하나 뜰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역시 튜토리얼 지옥 난이도 클 리어가 선행 조건이었나.'

이러면 자연스레 연결된다.

예전 일이 떠오른다.

'서버가 종료되기 한 달 전쯤이었나.'

홍대패플조솁과 둘이서 채팅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고대 유적과 튜토리얼 지옥 난이 도의 연관성에 관한 얘기였다.

'꽤 신빙성이 있었지.'

이 화두에 대해선 사실 조솁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튜토리얼 지옥 난이도를 그 누구 도 클리어하지 못했고, 고대 유적이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은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니냐고.

유준은 그때 홍대패플조솁의 말 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캐릭터를 몇 번 만들어서 지옥 난이도에 도전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홍대 패플조솁도 마찬가지였다.

컨트롤이 가장 좋았던 유저 '나 만고양이없어'에게도 한번 권해 봤다.

그러나 그조차도 지옥 난이도 2 구역을 넘지 못했다.

'홍대패플조솁 덕분에 고대 유적 도 들어가 보네.'

그에게는 나중에 될 수 있으면 보답을 하는게 맞으리라.

문제는 고대 유적이 이미 털린 상황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건데.

'지옥 난이도를 최초로 클리어했 다고 했지. 그럼 고대 유적도 아무 도 들어오지 못했을 확률이 높아.'

그가 주위를 쭉 둘러봤다.

유적 내부는 고개 조각품, 미술 품 그리고 재질을 알 수 없는 장식들로 꾸며져 있다.

척. 척.

그의 발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유준은 파라네트를 소환했다.

지이잉-!

짧은 소환 의식.

파라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점점 파라네트의 말투가 공손해 지고 있다.

자신이 받은은혜가 어느 정도인 지 체감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귀한 죽은 자의 축복을 줬으니, 뭐.'

유준을 바라보는 파라네트의 눈 이 매우 초롱초롱했다.

파라네트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제가 싸워야 할 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 없는데."

" 예?"

"조금만 기다려 봐."

명색이 고대 유적인데 그냥 보물 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리가 없다.

보물을 지키는 가디언이나 몬스터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는 붉은 카펫을 따라서 쭉 걸었다.

파라네트가 달각, 달각 소리를 내며 뒤따라왔다.

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유적 내부가 더 넓은 듯했다.

끝이 안 보였다.

"몬스터도 없고... 보물도 안 보이고."

"미로 마법진이라도 걸려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치고는 같은 길이 반복 되고 있진 않잖아."

"아...?"

"뭐 이상하다거나 특이한 거 발견하면 바로 말해."

"알겠습니다."

그 후로는 주변을 잘 살펴보며 걸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붉은 카펫이 끊어지는 곳에 도달했다.

유준의 발이 우뚝 멈췄다.

창을 들고 있는 석상.

양손 검을 들고 있는 석상.

지팡이를 들고 있는 석상.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석상.

거대한 철퇴를 들고 있는 석상.

총 다섯 개의 석상이 일렬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보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갑자기 덤벼들 거 같은데.'

전투 준비를 했다.

파라네트가 유준 앞으로 나섰다.

"저만 믿으시죠!"

5층 시험뿐만 아니라 6층, 7층, 8층 시험에서도 큰 활약을 한 파라네트가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유준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쿠그긍. 그긍.

거센 진동과 함께 유적이 흔들렸다.

어느 순간, 진동이 뚝 멈췄다.

그리고 석상이 깨어났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기계음 같은 소리가 석상에서 흘 러나왔다.

그런 소리가 다섯 곳에서 동시에

퍼져 나와 소름이 끼쳤다.

-침입자의 무력을 측정 중-

-중상(中上).

-침입자를 제거합니다.

석상들은 마치 로봇 같았다.

석상 다섯 기가 한 번에 유준을

향해 달려들었고.

파라네트가 그 앞을 막아섰다.

먼저 지팡이를 든 석상에게서 얼 음 마법이 날아왔다.

쩌저적! 쩌적!

파라네트가 검으로 거대한 고드 름을 위로 쳐 냈다.

그 후 즉시 철퇴를 든 석상이 거 세게 철퇴를 휘둘러 왔다.

후웅-!

파라네트가 가뿐히 피해 냈다.

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검 두 개가 동시에 파라네트를 노리고 날아왔다.

이번엔 파라네트가 쉽게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했다.

콰앙!

파라네트가 멀리 튕겨 나갔다.

유준이 앞으로 쇄도했다.

검을 든 석상이 무방비한 상태.

유준은 간결한 동작으로 석상의 목을 베어 냈다.

서걱!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검의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 석상 의 목 부위를 깔끔하게 절단할 수

있었다.

유준이 뒤로 물러났다.

쿠웅!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철퇴가 꽂혔다.

긴박한 전투 같지만, 실상은 전 혀 그렇지 않았다.

석상의 움직임이 그렇게 빠른 편 이 아니었다.

다만, 수가 여럿인 데다가 무기에 실린 힘이 강해서 위협적인 것이다.

"감히! 이 나를!"

파라네트가 뒤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침입자를 제거합니다.

"더, 덤벼!"

한번 당했기 때문인지 파라네트 의 어깨가 살짝 위축됐다.

그렇다고 녀석의 회피 실력이 어 디 가지는 않는다.

후웅! 후웅!

넷의 석상을 앞에 두고 파라네트는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파라네트가 자신감을 되찾았다.

"별것 아니군!"

유준은 파라네트의 뒤에서 빈틈 이 생긴 석상을 노렸다.

이번엔 지팡이를 든 석상이다.

빠르게 접근한 유준이 검을 휘둘 렀다.

석상이 지팡이를 앞으로 내뻗었다.

그 지팡이는 유준의 검에 의해 절단되었다.

검이 한 번 더 휘둘러졌다.

지팡이를 든 석상의 움직임이 멎었다.

레벨이 올랐다는 홀로그램 창이 눈앞을 가렸다.

'이제 남은 건 셋.'

마법사 역할을 하는 석상까지 처 리 했다.

스으윽! 서걱!

유준은 파라네트에게 한눈이 팔 린 석상들의 뒤를 노려 빠르게 전 투를 끝냈다.

쿠웅!

"후우... 주인님."

"왜?"

"저 어땠습니까?"

"잘했어."

"흐흠."

파라네트가 없었으면 석상을 상 대로 상당히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확실히 녀석이 있어서 전투가 수 월하게 풀렸다.

다만, 파라네트의 아쉬운 점은 검을 다루는 것이 약간 어색하다는 것 정도.

'계속 싸우다 보면 발전하겠지.'

자신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아이템 덕분에 잘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어찌 됐든 석상을 모두 쓰러뜨렸다.

레벨도 꽤 올랐다.

'벌써 90? 진짜 빠른데.'

웬만한 보스 몬스터 5마리를 잡 아야 오를 만한 경험치였다.

"주인님! 저기 길이 생겼어요!"

파라네트의 말에 고개를 돌려 확 인해 보니 벽으로 보였던 것이 사라졌다.

"역시 여기서 끝날 리가 없지."

애초에 중급 튜토리얼과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은 곳이다.

튜토리얼을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유준과 파라네트는 새롭게 생겨 난 길로 전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단 하나가 보였다.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신비한 제 단이었다.

벽에도 온통 무언가를 숭배하는 듯한 자세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음각되어 있었다.

쭉 둘러보던 파라네트가 입을 열었다.

"무척 수상한 곳이군요."

"그리고 그런 곳은 대개 보상이 크지."

신들의 전쟁을 5년 플레이했던 경험에 의하면 그러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진 콘텐츠를 깨면,

보통 보스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제단에 어느 정도 가까이 갔을 때였다.

[중급 튜토리얼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기다렸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 랐다.

유준의 입가 한쪽이 올라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6화

16화

당연히 중급 튜토리얼을 수락했다.

이걸 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그긍. 그긍.

중급 튜토리얼이 시작되는지 그 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공간 자체가 바뀌었다.

용암이 흐르는지대.

곳곳에서 불기둥이 솟아나고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늘도 새빨갛게 물들어 종말 직 전의 풍경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온몸이 타 버릴 듯 열기가 상당 하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후욱... 훅."

"응? 왜 그러고 계십니까?"

반면 언데드인 파라네트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언데드는 장점이 많았다.

[지금의 플레이어들이 있기 전. 태초의 플레이어가 있었습니다.]

난데없이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심지어 지금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생뚱맞은 내용이었다.

유준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메시 지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바다를 가르고, 땅을 뒤집으며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태초

의 플레이어는 모두의 숭배를 받았습니다.]

생소한 이야기다.

그는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을 5년간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도, 태초의 플레이어라는 단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뇌리에 각인시키려 애썼다.

[이종족들의 침략을 무사히 막아 낼 수 있었던 것도 태초의 플레이어의 공이 컸습니다. 그 후로 태초

의 플레이어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영웅이 아닌 신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 시작합니다.]

'신이라고?'

게임 이름이 신들의 전쟁인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인류의 적은 이종족들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악신의 추종자들.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그 집단의 힘은 인류의 힘으로 도 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태초의 플레이어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제 곧 본론이다.

유준이 눈을 똑바로 떴다.

[잠재력이 뛰어난 특별한 이들에게 플레이어 능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 능력들은 태초의 플레이어 가 가진 능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인류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글자가 흩어졌다가 다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결국, 인류는 이종족들과 힘을 합쳐 악신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었고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메시지는 그걸로 끝이 났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악신의 침공? 설마 이게 미래의 얘긴가? 아니지. 플레이어들이 지금 존재하는 걸 보면 방금 들은 내

용은 과거일 확률이 높아.'

이야기만 봐선단순히 신들의 전 쟁 게임 세계관이 아닌 듯했다.

이러한 얘기는 고인물인 그조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신들의 전쟁 세계관은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신들끼리 이권 다툼을 하느 라 땅이 나뉘었고, 대리인에 가까 운 플레이어들이 신들 대신 전투를 벌인다는 설정이었다.

'내가 알던 것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도 많았다.

특히 무한의 탑에 존재하는 콘텐 츠들.

이 고대 유적만 놓고 봐도 그러 했다.

'태초의 플레이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다른 플레이어들이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보는 자신만 알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왜 시스템이 뜬금없이 이런 역사를 나한테 설명한 거지?'

태초의 플레이어가 중급 튜토리

얼과 관련 있는 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는 그 순간이었다.

[1 구역에서 48시간 생존하십시오.]

2차 튜토리얼답게 그가 해야 할 일을 설정해 줬다.

'벌써 시작한 건가?'

중급 튜토리얼은 난이도 설정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난이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만 보더라도 쉽지는 않을 듯 보였다.

'하긴... 지옥 난이도를 클리어 해야만 올 수 있는 곳이니. 애초에 여기 난이도가 쉬울 리가 없지.'

그나저나 다짜고짜 생존하라니.

지금 당장 서 있기도 힘든 상황이다.

방금은 중요한 내용이라 집중해서 홀로그램 창을 읽었지만, 솔직 히 몸 상태가 영 아니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불기둥이 솟 아날지 모른다는 것도 크게 불안했다.

몸을 녹여 버릴 듯 뜨거운 열기에 이렇게 버티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유준이 만능 해결사,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게 어딘가 있을 텐데...

소모품은 비교적 가까운 편에 두 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냉각 플라스크.'

이 플라스크 안에 담긴 액체를 마시면 한동안 몸에 닿는 모든 열 기를 차단할 수 있다.

빙하지대나 용암지대에 갈 때마

다 심각한 페널티가 캐릭터에 적용 되기 때문에 항상 들고 다니는 소 모품이었다.

이와 반대되는 아이템으로는 '불 의 씨앗'이나 '불의 정수'가 있었다.

'레벨만 높았어도 그냥 장비 하 나만 착용하고 끝나는 건데.'

레벨이 낮은 게 죄다.

유준은 냉각 플라스크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담긴 액체를 꿀꺽 삼 켰다.

이틀간 생존하라고 했으니 전부 다 마셔 버렸다.

이 정도면 적어도 일주일은 효과가 갈 것이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파라네트가 물었다.

아까도 그랬지만, 녀석은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

"응. 지금은 괜찮아."

"다행이군요."

화아악!

그의 바로 옆에 불기둥이 생겨났다.

다행히 스치듯 지나갔다.

간담이 서늘했던 유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냉각 플라스크를 마셨다고 해도 불기둥을 맞고도 멀쩡하지는 않겠지.'

직접 닿는 불기둥에는 큰 효과가 없을 터.

그 말은 즉 불기둥을 피하면서 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이틀간 잠은 절대 못 자겠군.'

가뜩이나 꽤 오랜 시간 깨어 있는 상태인데.

다행인 건, 자신이 평범한 인간 이 아니라 플레이어라는 것이었다.

며칠 잠들지 못하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여기... 확실히 튜토리얼 지옥 난이도 그 이상인데?'

여기서 이틀을 살라니.

불기둥을 맞고도 멀쩡할 인간이 있을까.

아무리 플레이어라고 해도 저 뜨 거운 불기둥에 닿으면 그대로 온몸 이 녹아 버릴 것이다.

"주, 주인님!"

뒤따라오던 파라네트가 갑작스럽게 외쳤다.

"왜?"

"저 알아냈습니다."

"뭘?"

"저 화염이 어느 곳에서 나타나는지요."

"불기둥?"

"예예!"

"어디서 나타나는데?"

"진동입니다."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고.... 들어 보세요. 제가 방금 깨

달은 건데 불기둥이 솟는 곳은 하 나같이미세한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흐음."

일리 있는 말이다.

아무런 전조도없이 불기둥이 솟 아날 리가 없다.

문제는 사방에서 진동이 느껴져 서 그걸 구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인데.

"다음은 어디서 나타날 거 같은데?"

"저기요."

파라네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마자 불기둥이 화르륵 하며 솟구쳤다.

" 맞죠?"

파라네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유준은 파라네트를 다시 봤다.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냥 느껴지던데요?"

"그래?"

파라네트의 특성 때문인 걸까.

회피와 생존 본능 특성.

둘 다 확실히 등급이 무척 높았다.

단번에 몸을 불태워 녹일 정도로 뜨거운 불기둥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대단한데."

"크흠."

파라네트가 어깨를 들썩였다.

오랜만에 칭찬을 받아 기쁜 것이었다.

"그럼 불기둥이 나타날 곳을 네 가 계속 말해 줘야겠다."

"...계속요?"

"왜?"

"저도 휴식이 필요한데요."

"나도 못 쉬는데 네가 어떻게 쉬어? 그리고 너 쉴 필요도 없잖아? 언데드니까."

"아."

잠깐 멈칫했던 파라네트가 호탕 하게 말한다.

"그럼 뒤는 제게 맡기시고 얼른 주무세요."

"미쳤냐? 여기서 어떻게 자." 아무리 냉각 플라스크 아이템을

사용했다고 해도 용암지대에서 태 평하게 잠을 청할 간담은 없었다.

유준은 한나절 동안 결국 1구역을 돌아다니면서 지리를 파악했다.

'더럽게 넓네.'

그 결과 지리를 외우기 힘들 정 도로 용암지대가 광활하다는 걸 깨 달았다.

'1구역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말 라는 건가.'

어차피 다음 구역으로 갈 생각도 없었다.

주어진 목표를 완수해야만 중급 튜토리얼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테

니까.

그때.

"그르륵. 그륵."

불타는 나무인 줄 알았던 것이 격렬하게 움직이며 다가왔다.

'몬스터?'

선인장에 다리가 달린 것처럼 생 겼다.

크기도 상당한 편.

신들의 전쟁에서 본 적 없는 몬 스터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중급 튜토리얼에서만 존재하는 녀석일 것이다.

유준이 검을 꺼내 들었다.

파라네트도 전투태세를 취했다.

"이야압!"

먼저 파라네트가 움직였다.

무척 높은 곳까지 도약한 파라네 트가 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검을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쿠웅!

불타는 몬스터가 단번에 반으로 갈라졌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뒤에서 구경한 유준의 레벨이 하나 올랐다.

'오. 중급 튜토리얼은 레벨이 바로 오르는 건가?'

단 한 마리를 잡고 레벨이 올랐다.

레벨이 꽤 높았던 녀석임이 분 명했다.

그런데도 파라네트의 일격에 한 방에 죽다니.

장비를 맞춰 준 보람이 있다.

"이 정도는 가뿐하군요."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도 나온다는 건.'

더 빠르게 성장할 기회가 주어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시 빨리 100레벨을 달 성하고 싶었다.

'이 정도 경험치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기도 전에 100레벨 만들 수 있겠는데?'

유준은 그 후로도 전에 만났던 몬스터를 사냥하며 레벨을 올렸다.

다만, 몬스터를 발견하기가 힘 든 것이 불만이었다.

'뭐, 경험치라도 많이 주니 다행 이지.'

불기둥의 위치는 파라네트가 수 시로 알려 줬다.

녀석에게는 전투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불기둥의 위치만 잘 알려 달라고 일러두었다.

"오른쪽! 조심하십쇼!"

"오케이."

파라네트가 경고했고 유준이 급 히 왼쪽으로 몸을 던졌다.

이런 식으로 파라네트의 도움 덕분에 불기둥에 단 한 번도 적중 되지 않았다.

그렇게 레벨 93이 되었을 무렵.

'슬슬 지치는데.'

유준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손목에 찬 시계는 작동하고 있 지 않았다.

이런 열기 속에서 시계가 멀쩡 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파라네트만 유독 상태가 좋았다.

"근처에 있는 몬스터는 전부 다 잡은 거 같습니다. 더 찾아볼까요?"

"아니. 좀만 쉬자."

"음. 알겠습니다."

꽤 시간이 많이 지난 거 같은데.

아직 안 끝난 건가.

유준이미간을 찌푸렸다.

슬슬 고비였다.

'체력 포인트에 능력치를 투자 해야 하나?'

레벨 업을 하면서 쌓인 미분배 능력치가 36이나 된다.

유준이 상태창을 열려고 한 그때였다.

[48시간이 경과했습니다. 제1구역을 통과하셨습니다. 장소가 변 경됩니다.]

그토록 기대하던 메시지가 나타 났다.

지루하고 괴로웠던 48시간이었다.

그가 서 있는 공간이 바뀌었다.

"와아아아!"

"와악!"

"다 죽여!"

"인간 놈들의 피 냄새! 미쳐 버 리겠군!"

온갖 고함이 귓가를 강하게 때렸다.

갑작스레 워프된 유준은 무언가에 부딪혀 바닥을 뒹굴었다.

이상하게 몸에서 통증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뭐, 뭐야?'

유준은 당황하며 엎드린 채로 주위를 둘러봤다.

거대한 흑색 코끼리에 올라탄 마족들이 보였다.

'마족 맞지?'

외형만 놓고 보면 확실하다.

그들은 인간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갑자기 뭔 일이야, 이게?'

슬쩍 옆을 보니 파라네트도 유준을 따라 엎드리고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악신의 침공. 이곳은 실제로 있었던 악신 추종 세력의 침공을 참고해 만들어진 가상 전장입니다.]

[인간 그리고 이종족들과 힘을 합쳐 악신 추종자들을 물리치십시오.]

유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악신 추종자?'

목표 하나가 주어졌다.

메시지를 읽은 그의 미간이 좁 혀 졌다.

'갑자기 스케일이 이렇게 커진 다고?'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7화

17화

인간과 이종족들이 절규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전장 곳곳에 피가 낭자했다.

악신 추종자들도 피해가 상당했지만, 인간과 이종족들이 입은 피해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마신 추종자들을 물리치라고? 말이 되는 소린가?'

그러나 그가 튜토리얼을 진행하기 전에 봤던 내용에는 분명 인간

과 이종족들이 승리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 전쟁에서 인 간과 이종족이 이긴다는 건데.'

지금 상황을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주, 주인님. 응...? 장비가 ....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주인님.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급격하게 안색이 어두워졌다.

텅 빈 눈 부위가 평소보다 더 공 허해 보였다.

파라네트는 겁에 질린 기색이 역 력 했다.

아무래도 악신 추종자들의 기백에 크게 눌린 듯싶었다.

"일단 버텨야지. 눈먼 화살 날아 오는 것만 조심해. 생존이 우선이다."

"그건 자신 있습니다."

사실 파라네트는 소환수.

부활할 수 있다.

녀석은 죽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다시 소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이 걸리니 문제지만.

반면, 유준은 죽으면 그대로 끝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오히 려 자신이었다.

그 점을 인지한 그는 몸을 더 바 짝 엎드렸다.

여기서 계속 죽은 척하며 기다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이곳에서 등장하는 추종자들은 100레벨도 안 되는 플레이어가 상 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추종자 중에는에이션트 엘프도 있고 오크도 있고 인간도 있었다.

심지어 드워프와 유사한 장인들 의 종족 포리탐도 있었다.

한마디로 온갖 군상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적 구분은 확실해서 좋네.'

악신 추종자들은 모두 머리에 괴 상한 두건 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다.

현대인인 유준이 보기에 몹시 촌 스러운 디자인.

하지만 두건을 둘러쓴 추종자들은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인간과 이종족 연합은 마신 추종자들에게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파라네트. 달려."

"예? 예!"

지금 당장 전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생존이 우선이다.

유준은 등을 돌려 후미로 이동하 면서 상태창을 열었다.

'일단 미분배 능력치를 전부 분 배해 놓을...

상태창을 연 유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보여선 안 될 것이 보였다.

상태창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 - 태초의 플레이어]

□ 레벨 : 501

□ 특성 : 절대자(SSS), 마나의 주인(SSS)... 평정심(S)... 집중 (D)

□ 스킬 : 천지절단(SSS), 절대방 어(SSS), 파워 브레이크(SS), 오버 파워 (SS)... 메테오 (S)... 약초 채집 (F)

□ 칭호 : 태초의 플레이어(신화) - 모든 능력치 25% 증가 외 34개

□ 능력치

[근력 1,021(640+381)] [민첩 872(677十 195)]

[체력 890(629+261)] [마력 970(690+280)]

'태초의 플레이어?'

유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상태창이 완전히 바뀌었 다 싶었더니 어느새 태초의 플레이

어가 되어 있었다.

'이번만 적용되는 거겠지? 가상 전장이라고 했으니 그럴 확률이 높아.'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긴, 말이 안 됐지. 나 혼자 어 떻게 해볼 각이 도저히 안 나왔으니까.'

문제는....

'능력치는 높으면서 장비는 왜 이렇게 후져?'

태초의 플레이어가 끼고 있는 장 비가 너무나 질이 낮다는 것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안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영웅 등급 의 장비를 풀로 끼고 있었으니까.

그 흔한 전설 장비 하나 없었다.

'예전에는 높은 등급의 장비가 거의 없었던 건가?'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음... 그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태초의 플레이어의 몸을 빌려 전 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지.'

바로 아이템을 착용하는 일이다.

지금 태초의 플레이어 레벨은 501.

500레벨이 끝인 줄 알았던 유준으로서는 놀라운 일지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버 종료를 하지 않았으면 언 젠가 또 레벨 제한이 풀렸을 테니까.'

하여튼 그는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상태다.

'혹시 인벤토리도 바뀌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인벤토리를 열어 보니, 무과금즐 겜러의 인벤토리가 그대로 나타났다.

'500레벨 착용 제한이 걸린 신화 급 장비 아이템들.'

전설 등급과는 비교할 수없이 좋은 신화 등급을 풀 세트로 꺼냈다.

심지어 착용 제한 레벨이 500이 라서 공격력이 상식을 초월하는 수 준이었다.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장신구들

을 전부 착용했다.

짙은 흑색의 전신 갑옷과 깔끔하게 벼려진 검.

형형색색의 장신구들.

아이템을 전부 착용한 것만으로 그의 능력치는 수십 배 이상 증폭 했다.

'만렙 캐릭터의 육체... 어느 정도일까.'

유준은 부리나케 도망치고 있는 파라네트의 어깨를 잡아당겨 몸을 멈춰 세웠다.

"으엇?!"

파라네트가 그대로 뒤통수를 바닥에 찧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근데 넌 날 어떻게 알아봤냐?"

"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죠?"

"나 몸이 바뀌었잖아."

"그대로인데요?"

"...뭐?"

거울이 없으니 확인할 수가 없었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거울 비슷 한 재질의 장비를 꺼내 얼굴을 확 인했다.

'응? 나잖아.'

태초의 플레이어 상태창을 가지 고 있는데 얼굴과 몸이 그대로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이곳은 상식으로 판단 해선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장난 아니네. 이 육체.'

몸에서 힘이 넘쳐흘렀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지금이라면

'마왕'이 나타나도 이길 것 같았다.

'내가 마왕을 죽일 수 있는 날이 올까?'

인벤토리를 활용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어 보였다.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400레벨이 되기 전에 잡을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굳이 만렙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만큼 그가 가진 아이템들은 사 기적인 옵션을 지니고 있었다.

차랑!

유준은 상태창을 다시 열었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가진 스킬과 특성들을 쭉 살폈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스킬이다.

신들의 전쟁 세계관에서 두, 세 번째로 등급이 높은 스킬들.

아무래도 EX등급의 스킬은 태초 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에는 EX등급이 엄청 많았는데. 이거 보니까 괜히 아쉽네. 쩝.'

"왜 다시 앞으로 가십니까?"

파라네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

었다.

유준은 아무 말 하지 않고 파라네트를 끌고 갔다.

"자, 잠시만요! 거긴 진짜 사지잖 아요. 가면 죽는다고요!"

"괜찮아. 안 죽어. 내가 다 잡을 거니까."

"저, 저는 놓고 가셔도 되지 않을까요?"

언데드인 파라네트가 얼굴이 사 색이 되었다.

원래 뼈밖에 없어 사색 그 자체였지만, 지금은 유독 더 심했다.

겁에 질린 것이다.

"너 쩔해 주려고 그러는 거야."

"쩔요? 그게 뭐죠?"

"보면 알아. 지금 나는 세계관 최강자거든."

유준은 지금 태초의 플레이어 능력치를 빌리고 있는 상태.

한마디로 몬스터를 잡으면 그의 원래 상태창에는 변화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파라네트는 다르다.

녀석은 성장형 소환수.

유준이 무슨 몬스터를 사냥하는

가에 따라 폭발적인 레벨 업을 기 대할 수 있었다.

어느새 유준은 인간 진영의 맨 앞 선두에 도착했다.

모두의 시선이유준에게 꽂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지금 전장에서 너무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잘 제련된 고가의 금속으로 만들 어진 전신 갑옷.

검게 칠해져 있긴 해도 그 고귀 함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전신 갑옷뿐만이 아니다.

헬멧이나 신발, 건틀렛, 검까지. 장비에서 전부 광채가 흘렀다.

"누구야?"

"그분인가?"

"아니... 장비가 전혀 달라."

"적은 아닌 거 같은데."

유준의 등장에 인간과 이종족 연 합 진영에서 소란이 일었다.

악신 추종자들은 유준을 적으로 판단하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형형색색의 갖가지 마법들이유준을 향해서 쏘아졌다.

화르륵! 콰앙!

그러나 유준의 앞에 어느새 생겨 난 반투명한 막 앞에서 그러한 마법들이 깔끔하게 소멸했다.

SSS급 스킬 절대방어.

물리 공격이든, 마법 공격이든 일정 이상의 위력이 되지 못하면 절대방어는 절대 뚫리지 않았다.

그 위용을 목격한 모두가 놀랐다.

"뭐, 뭐야?"

"대마법진?"

"태초의 플레이어 전매특허 스킬

아닌가?"

악신 추종자들이 처음으로 당황 했다.

어느 순간 사라졌던 태초의 플레 이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이 놀라긴 아직 일렀다.

유준은 스킬의 위력을 증가시켜 주는 버프 스킬인 오버 파워(SS)를 쓴 다음, 곧바로 메테오(아를 사용 했다.

지이잉. 그그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땅이 급격하게 흔들린다.

붉게 변했던 하늘에 흑점 하나가 생겼다.

그 혹점의 크기는 빠른 속도로 커졌다.

마치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의 전 조 같은 느낌이었다.

화르륵! 구그긍.

운석 마법의 최고봉.

메테오 스킬이 발현되었다.

울퉁불퉁하고 거대한 운석이 악 신 추종 세력 진영 한가운데에 떨 어졌다.

콰콰콰쾅! 콰콰쾅!

운석이 떨어진 곳 부근은 완전 히 초토화가 되었다.

그곳 근처에서는 비명조차 들리 지 않았다.

운석의 영향 범위 안에 있던 모 두가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직접 보 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와우...

스킬을 사용한 장본인이 더 놀 랐다.

등급의 스킬치고는 규모가 꽤 크다.

원래 메테오는 이 정도 위력을 내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광경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유준의 마력 수치가 무척 높은 데다가 오버 파워로 메테오 스킬의 위력을 한껏 증폭시킨 상태였기 때문 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메테오 마법이었지? 그분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마법 스킬이야."

" 설마?"

"그분이 확실해!"

"인류의 영웅!"

"오오, 드디어 희망이 보인다!"

"진격하자! 지금이 기회다!"

연합 진영이 환호했다.

메테오 한 번에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파라네트도 감탄한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세계관 최강자의 싸움이다

연합 진영이 기세를 몰아서 악 신 추종자들을 덮쳤다.

'질 수 없지.'

유준이 검을 들고 적진 한가운 데로 뛰어들었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원하는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스스로 놀랐다.

'실제로 움직이니 괴리감이 장 난 아니네.'

마우스와 키보드로 컨트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움직일 때의 속도가 워낙 빨라

서 적응되지 않았다.

멀미가 날 지경.

유준은 좀비 코끼리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딱히 스킬도 안 쓴 기본 공격일 뿐인데 좀비 코끼리의 몸이 정확히 이등분되었다.

"오오오옷!"

레벨이 대폭 오른 파라네트가 크게 기뻐했다.

사실 메테오로 죽인 추종자들의 수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파라네트의 레벨이 쭉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파라네트 경험치 오르는 속도가 좀 더딘데.'

이것이 실제 상황이 아닌 가상 전장이기 때문이리라.

'아쉽네.'

만약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파라네트의 레벨은 벌써 300을 넘겼으리라.

그 정도로 많은 수의 추종자들을 죽였다.

"오오오! 레벨이 쭉쭉 오릅니

파라네트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한 것 같았다.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경험치가 쭉쭉 오르니 불만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었다.

유준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서걱! 스윽! 서걱!

더.

콰콰쾅! 콰쾅! 콰아앙!

마법 스킬도 남발했다.

더 많은 수의 추종자들을 죽여 야 파라네트를 성장시킬 수 있다.

파라네트의 성장은 곧 자신의 성장과도 같다.

결국, 파라네트는 유준의 소유였으니까.

유준이 한 발짝 앞으로 디딜 때 마다 주변에 있던 추종자들이 털 썩 쓰러졌다.

'이게 되는구나...

신세계였다.

게임 그래픽으로 본 것과는 비 교할 수도 없는 광경을 만들어 냈다.

유준이 신화급 장비를 풀로 착

용했기에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유준이 뛰어들면서 전쟁은 사실 상 끝이 났다.

결국 인간과 이종족 연합군은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서 악신 추종자들 대부분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유준은 착용했 던 아이템들을 재빠르게 벗고 인 벤토리에 넣었다.

'신화급 아이템을 여기 남기고 갈 수는 없지.'

기쁨이 담긴 숨을 몰아쉬는 유준의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두 번째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8화

18화

연합군의 환호성을 들으며 전쟁 의 승리를 만끽하던 유준은 장소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가 남았습니다.]

[태초의 플레이어와 싸워 이기세요. 0/1]

[잠시 레벨이 1로 조정됩니다.]

유준이 화들짝 놀랐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되는 마지막 단계?'

이제야 중급 튜토리얼의 진정한 보상을 알게 되었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되면 뭐가 좋은지는 몰라도 중급 튜토리얼의 보상인 만큼 기대가 많이 되었다.

그나저나 단번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레벨이 1로 조정된다는 것.

'잠깐. 레벨이 1이라면...

유준은 재빨리 상태창을 열어

능력치와 레벨을 확인했다.

실제로 레벨이 1이 되어 있었다.

그 전설급 칭호도 사라졌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1레벨 게임 캐릭터였다.

' 파라네트는?'

파라네트가 보이지 않는다.

소환이 불가능한 상태인지 소환 요청을 해도 웅답 신호가 없었다.

'이 상태로 태초의 플레이어를 이기라고?'

말도 안 되는 시련이다.

도대체 레벨 500이나 되는 태초 의 플레이어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 인가.

'잘 생각해 보자.'

통과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시련이라면 중급 튜토리얼이라는 이름이 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터.

유준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였다.

갈색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인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태초의 플레이어.'

중년인의 머리 위에는 그런 글자 가 둥둥 떠 있었다.

'응? 뭐야?'

태초의 플레이어는 초보자 전용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느껴지는 기세도 예상외 로 별것 없었다.

'태초의 플레이어도 레벨이 1로 된 건가?'

그럼 가능성이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다.

그때였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먼저 입을 열

었다.

"그대가 내 후계자가 될 자인가."

근엄하고 중후한 목소리.

그러나 초보자 복장을 착용하고 있는 것 때문인지 이상하게 폼이 안 났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후계자? 역시 중급 튜토리얼은 태초의 플레이어 후계자를 뽑는 곳 이었나요?"

"중급 튜토리얼이라니? 그게 뭐지?"

영문을 모르는 듯한 표정.

중급 튜토리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헛기침을 몇 번 한 태초의 플레 이어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날 쓰러뜨려야 한다. 그 럼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는 겁니까?"

유준의 말에 태초의 플레이어가 비웃었다.

"상관없다. 그대와 나의 레벨은

1로 동일하다. 하지만 나와 그대의 능력치는 현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내 능력치 총합은 100을 넘기는 수치. 솔직히 말해서 이번 시련은 그대가 절대 통과할 수 없을 거다."

" 예?"

태초의 플레이어는 그렇게 단정 지었다.

확실히 능력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하물며 총합 능력치가 100 가까 이 차이가 난다면?

아이와 어른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어쩌라고요?"

"날 이겨야지."

"못 이긴다면서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날 이겨 봐라."

중년인의 말에 유준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라는 건가.

억지도 정도가 있지.

1레벨 캐릭터로 태초의 플레이어 캐릭터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인가.

게다가능력치 총합이 100이 넘는다고 했다.

분명 전투 센스도 유준보다 좋을 것이 분명했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할 뻔했는데.

'아니지.'

마냥 답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 차이를 뒤집을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아이템이다.

유준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태초의 플레이어에게 대항할 유 일한 수단은 아이템밖에 없었다.

"먼저 덤벼라. 내가 한 수 양보 하지."

뒷짐을 진 태초의 플레이어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하지 않는 듯한 태도다.

유준도 발끈하지 않고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죠."

태초의 플레이어가 선의를 베풀 듯 선공을 내어 줬다.

시간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유준은 태초의 플레이어에게 달 려들기 전에 먼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낯이 익은 네 개의 아이템을 꺼냈다.

그 아이템의 정체는 다름 아닌 슈퍼 노비스 세트.

'이걸 다시 쓰는 날이 올 줄이야.'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을 공략할

때를 제외하곤 더는 쓸 일이 없으 리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또 재활용할 기회가 왔다.

유준은 슈퍼 노비스 세트를 전부 착용했다.

무기력했던 몸에 갑자기 힘이 넘 쳐흐르기 시작했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템? 그런 건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힘은 플레이어 본 연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야."

"그거 너무 구시대적인 생각이신데."

애초에 시스템의 힘을 빌려서 강해진 자가 할 말은 아니지.

"뭐라?"

태초의 플레이어가 황당해하는 그때 유준이 땅을 박찼다.

뜸 들일 것 없었다.

유준은 슈퍼 노비스 세트를 믿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건 태초의 플레이어였다.

그는 잠깐 당황스러운 표정을 내 보였다가 얼굴을 굳혔다.

"아이템에 의지해서는 결코 강해 질 수 없는 법! 내 진정한 강함을 보여 주겠다."

강경하게 말한 태초의 플레이어 의 검에 유준의 검이 닿았다.

서걱!

한 번의 절삭음과 함께 둘의 반 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무덤덤한 표정의 유준과는 달리 중년인, 즉 태초의 플레이어가 경 악했다.

검과 검끼리 아주 강하게 맞부딪

친 것도 아니다.

닿은 것만으로 자신의 검이 그대 로 절단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 결과에 태초의 플레이어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유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후웅!

그러나 능력치가 모자란 탓일까.

태초의 플레이어는 유준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그 후로 유준이 검을 더 뻗어 봤지만, 그의 공격이 적중하는 일은 없었다.

"흐, 흠. 꽤 좋은 무기를 쓰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정도로는 어 림없다. 격의 차이를 보여 주도록 하지."

태초의 플레이어가 금세 여유를 되찾더니 본인의 인벤토리에서 새 로운 검을 꺼냈다.

아까보다는 더 성능이 훨씬 좋은 검 같았다.

'저거 1레벨짜리 영웅 등급 검이 잖아. 아이템은 장식이라더니...

태초의 플레이어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저것이었다.

유준은 웃음을 참고 바로 앞까지들이닥친 태초의 플레이어를 상대 했다.

후웅! 흥! 캉! 카앙!

과연 괜히 영웅이라 불린 게 아닌지, 유준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문제는 태초의 플레이어가 휘두 르는 검이유준의 갑옷을 전혀 뚫 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준이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

었다.

'약간 충격이 있긴 하지만, 딱 그 정도야.'

태초의 플레이어의 힘을 파악한 유준은 좀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

급소를 노리는 공격을 무시하고 공격 일변도로 나선 것이다.

검이 수차례 유준의 갑옷을 두들 겼다.

그의 갑옷은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반면 방어를 포기한 유준은 서서 히 태초의 플레이어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어이없음을 넘어선 황당함.

한참을 밀리던 태초의 플레이어 가 이내 헛웃음을 홀렸다.

"과연....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군."

태초의 플레이어가 검을 휘둘러 적중시키면, 오히려 검의 날이 심 각하게 빠졌다.

장기전이든, 단기전이든 태초의 플레이어가 유준과 똑같은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유준은 말을 섞지 않고 쉬지 않 고 움직여 태초의 플레이어를 벽 구석까지 몰아붙였다.

순백색의 공간에 끝이 있었다.

유준의 검이 태초의 플레이어의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촤악!

분명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엄청 난 양의 혈액이 터져 나왔다.

"크흡!"

한번 기세를 탄 유준을 태초의 플레이어는 쉽사리 저지하지 못했다.

슈퍼 노비스 아이템의 세트 효과였다.

치명타의 위력이 증가하는 옵션 때문에 유준의 공격 한 번 한 번이 너무나 매서웠다.

" 허무하군...

"어차피 태초의 플레이어 능력을 물려주려고 했다면서요? 잘된 거 아닙니까? 왜 그리 죽상이죠?"

유준의 말에 태초의 플레이어가 코웃음쳤다.

"그래. 재능이 있는 놈한테 내 능력을 물려주고 싶었지. 하지만 너는 재능이 애매해. 내 눈엔 그저

아이템의 힘을 믿고 나대는 애송이 일 뿐이다."

아주 약간 남아 있던 맷돌, 아니 어이가 없어지게 하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태초의 플레이어는 도 대체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걸까.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을 재능만으로 통과할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

유준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템도 실력임."

" 뭐?"

"당신같이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유저... 아니 사람을 수도없이 봐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 떻게 됐을까요?"

"접었습니다. 핵과금 앞에선 그 누구든 평등했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 거짓된 힘에 취한 자는 죽...

후웅!

그때 유준이 검을 다시 뻗었다.

그리고 공격에 하필 치명타가 터졌다.

서걱!

태초의 플레이어가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있어 보이는 등장과는 달리 초라 한 최후였다.

"후욱... 후우."

힘을 몰아 쓴 유준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능력치 차이는 무시 못 하네."

태초의 플레이어가 조금만 더 좋은 성능의 아이템을 착용했더라면

그를 쓰러뜨리기가 쉽지는 않았으 리라.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슈퍼 노비스 세트를 공간 아깝 다고 버렸으면 어쩔 뻔했어.'

그 순간.

유준의 몸이 워프했다.

이상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는 고 대 유적 내부.

그가 튜토리얼을 진행하기 전에 있던 장소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홀로그램

창은 갑작스레 나타났다.

[태초의 플레이어를 쓰러뜨렸습니다!]

[불가능한 업적!]

[태초의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신화 칭호 '태초의 플레이어'를 획득합니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종족의 격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한 번에 주 루룩 쏟아진 홀로그램 창들.

유준은 홀로그램 창을 하나씩 확 인했다.

이번에도 불가능한 업적을 받았다.

'잠깐... 신화 칭호를 준다고?'

하긴, 태초의 플레이어 상태창을 봤을 때도 신화 칭호가 보이긴 했었다.

' 대박인데.'

이렇게 쉽게 신화급 칭호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태초의 플레이어를 쓰러뜨리는 것의 난이도가 절대 쉬운 건 아니 긴 했다.

슈퍼 노비스 세트가 없었으면 태 초의 플레이어를 상대할 엄두도 못 냈을 테니까.

'태초의 플레이어라....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번 볼까.'

무과금즐겜러도 갖지 못한 칭호.

유준이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태초의 플레이어. 신유준]

□ 레벨 : 102

□ 특성 : 평정심(S)

□ 스킬 : 참격 (B)

□ 칭호 : 태초의 플레이어(신화) - 모든 능력치 25% 증가 외 5개

□ 능력치

[근력 95(88+7)] [민첩 133(106+27)]

[체력 92(85+7)] [마력 22(15+7)]

[미분배 포인트 : 152]

-태초의 플레이어 : 레벨 업 시 미분배 포인트가 4씩 주어집니다. 또한, 태초의 플레이어가 됨으로써 미분배 포인트 80을 획득했습니다.

-태초의 플레이어는 착용 제한 레벨을 50까지 무시하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습니다.

유준이 입을 떡 벌렸다.

엄청났다.

'이런 특혜를 준다고?'

칭호 효과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초의 플레이어가 되었을 때의 능력치 보상은 전혀 예상 하지 못했다.

게임이었으면 밸런스 붕괴라고 유저들이 심하게 항의했으리라.

'레벨 업 할 때마다 미분배 포인트 4라.... 그렇다면 레벨 500이 됐을 때 나는 400을 추가로 더 얻

을 수 있는 건가?'

후반으로 갈수록 능력치 하나가 가지는 힘이 컸다.

이러한 특혜는 유준의 등 뒤에 날개를 달아 준 격이었다.

거기다 칭호 효과도 만만찮았다.

모든 능력치 25% 증가.

아무리 신화 등급 칭호라고 해도 과한 효과.

그가 봤던 모든 칭호들 중에 가 장 심플하면서 강력한 효과였다.

태초의 플레이어.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착용 제한을 무시하는 효과도 있다.

그 수치가 비록 50일지라도 유준에게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아니, 플레이어들 전부가 바라 마지않는 효과겠지.

흐뭇하게 웃고 있던 유준의 눈매 가 가늘어졌다.

'잠깐... 전설 아이템 박스를 또 받았잖아?'

이번에도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 하면서 전설 박스가 다시 보상으로

주어졌다.

유준의 입가가 더 깊게 올라갔다.

'그럼 나는 착용 제한을 150까지 무시할 수 있는 건가?'

그의 레벨이 102가 되었으니 250레벨의 아이템을 장비할 수 있다.

유준은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에서 당연히 레인보우 스티커를 선 택했다.

[레인보우 스티커 ]

등급 : 전설

옵션 : 원하는 아이템에 부착 시에는 착용 제한의 레벨 조건이 100 이 줄어듭니다.

문제는 신화 등급의 아이템에는 부착할 수 없다는 것인데.

'상관없지.'

250레벨 착용 제한 아이템에 신 화 등급이 붙은 건 없었다.

'이번에도 무기에 쓰는게 낫겠지.'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으니 아낌없이 무기에 투자하기로 했다.

유준이 주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상태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일단 적당한 무기를 찾아볼까.'

250레벨 착용 제한이 걸린 전설 등급 무기.

그걸 찾아야 한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9화

19화

무과금즐겜러 캐릭터의 인벤토리는 무척이나 방대했다.

원하는 무기 하나 찾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검색 기능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누구나 유준처럼 많은 아이템을 갖고 있는게 아니다.

5년간 온갖 희귀 아이템을 모으 며 과금을 했던 무과금즐겜러의 인

벤토리.

그 규모는 다른 유저들의 인벤토리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250레벨... 250...

유준이 매의 눈으로 아이템 정보를 일일이 살폈다.

5분 정도가 더 흘렀을까.

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유준의 눈이 빛났다.

'이게 있었지.'

[바쥬르의 마력검]

착용 제한 : Lv. 250 이상

등급 : 전설

공격력 : 4,290

옵션 : 모든 능력치 +7%. 마력 +40. 검에 실리는 마력이 200% 증폭해서 발현됩니다.

괜히 250레벨 제한이 걸린 아이템이 아니다.

공격력이 매우 높았다.

거기다 전설 등급 아이템답게 옵 션도 좋은 것들로만 붙어 있었다.

상태창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실제로 움직여 보면 바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였다.

바쥬르의 마력검.

보스 사냥으로 얻은 다른 전설 등급 아이템과 비교해도 월등한 성 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걸 100레벨인 내가 쓸 수 있다는 거지?'

유준은 레인보우 스티커를 바쥬 르의 마력검에 부착했다.

그 후 마력검을 손으로 쥐었다.

후웅! 흥!

허공에 몇 번 검을 휘둘러 봤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적당한 무게감.

날이 무척 예리하다.

막 화려한 검은 아니지만, 무척 실용적인 바쥬르의 역작.

유준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무기는 끝났고...

그리고 다음은 장신구와 방어구였다.

태초의 플레이어 특전으로 150레 벨 제한이 걸린 아이템까지 착용할 수 있는 상황.

30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전설 등급 방어구들을 전부 착용했다.

[광란의 풀 아머]

착용 제한 : Lv. 15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2,290

옵션 : 전투가 3분 이상 지속될 시, 착용자의 총 방어력이 30% 증가합니다.

[광란의 슈즈]

착용 제한 : Lv. 15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569

옵션 : 전투가 3분 이상 지속될 시, 착용자의 민첩이 8% 증가합니다.

[광란의 건틀렛]

착용 제한 : Lv. 15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790

옵션 : 전투가 3분 이상 지속될 시, 착용자의 공격력이 15% 증가 합니다.

[광란의 헬멧]

착용 제한 : Lv. 15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990

옵션 : 전투가 3분 이상 지속될 시, 착용자의 방어력이 10% 증가 합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헬멧.

상의와 하의가 이어진, 무척 두 꺼운 금속의 전신 갑옷.

활동하기에 편하며 높은 방어력 의 슈즈.

전십 갑옷 팔 부분에 접착할 수 있는 크고 단단한 건틀렛.

광란의 방어구 세트였다.

이 세트 아이템은 신들의 전쟁에 서 꽤 유명했다.

구하기도 쉽고, 성능도 매우 사 기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애용했었다.

문제는 이 방어구 아이템들이 캐

시로 구매할 수 있는 랜덤 뽑기 박 스에서만 나온다는 점이었다.

거기서 또 많은 유저가 이탈하기 도 했다.

'게임 운영만 잘했어도 유저가 훨씬 더 많았을 텐데.'

유준이 혀를 찼다.

어찌 됐든 광란의 방어구 세트는 신들의 전쟁에서 뛰어난 성능과는 맞지 않게 무척 흔한 아이템이었다.

그냥 돈만 조금 쓰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게임이 아닌 현 실.

광란의 방어구 세트를 구할 방법 이 딱히 없었다.

한마디로 이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건 자신밖에 없을 확률이 높다는 것.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 좋은 걸 나만 쓸 수 있다는 거지?'

이게 끝이 아니다.

150레벨 영웅 등급의 장신구들.

공격력이나 방어력 그리고 온갖 능력치를 올려 주는 효과였다.

그런 장신구를 여럿 끼니 상태

창에 큰 변화가 생겼다.

모든 준비를 마친 유준이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고대 유적에는 볼일이 없었다.

...고 생각했는데.

유준이 우뚝 멈춰 섰다.

'보물을 아직 못 찾았잖아. 명색 이 고대 유적인데 찾아보면 뭐가 좀 나오지 않을까?'

이왕 찾을 거면 두 명이 찾는게 좋겠지.

유준은 파라네트를 소환했다.

태초의 플레이어와 전투했던 공간과는 달리 이번엔 무사히 파라네 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잠 이 들어서."

"그거. 네 탓 아니야."

"네?"

"됐고. 보물이나 귀한 거 있어 보이면 나한테 바로 가져와."

"아! 알겠습니다."

파라네트가 팔다리를 휘저으며 걸어갔다.

어차피 유적은 길이 하나밖에 없

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서 천 천히 탐색하면 된다.

제일 수상한 건 벽에 음각된 이 상한 그림들이다.

'태초의 플레이어를 숭상하는 건가?'

그의 존재를 알고 보니 왠지 벽에 그려진 그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어딘가에 있을 보물을 탐색 하던 유준이 발걸음을 멈췄다.

바닥에는 아까 부쉈던 석상들의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유준이 그곳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건.…"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스스로 빛을 내는 푸른색 광석이었다.

'마력석이잖아?'

마력석.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이 마력 석은 엄청난 양의 마력이 압축되어 있다.

마력석은 정말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다.

그가 두 번이나 얻었던 전설 아이템 박스보다도 희귀할 정도니까 말 다 했다.

'이걸 지금 얻다니.'

마력석의 진가는 마력석을 흡수 했을 때 발휘된다.

마력석에 담긴 마력의 정수를 빨 아들이면, 캐릭터의 마력 수치가 영구적으로 증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

게임이 현실이 되었다고해서 아

이템 효과가 다르게 적용된 적이 없었다.

마력석을 흡수하면 마력이 증가 할 확률이 높았다.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증가시키는 소모용 아이템은 극히 드물다.

'마력석 하나에 마력이 40 정도 가 오르던가.'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13레벨을 올려야 얻을 수 있는 능력치.

그걸 마력석 하나 흡수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마력석이 얼마나 좋은 아이템인지 설명이 되었으리라.

문제는 마력석을 흡수하려면 과 금 아이템 '마력 흡착기'가 필요하 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준이 이런 기본적인 과 금 아이템을 가지지 않고 있을 리 가 없었다.

유준이 만능 인벤토리에서 마력 흡착기를 꺼냈다.

"주인님!"

그때 파라네트가 헐레벌떡 다가 왔다.

녀석의 손에는 놀랍게도 마력석 하나가 들려 있었다.

"왜?"

"이거 마력석 아닙니까?"

"마력석을 알아?"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이 탐낼 수 밖에 없는 물건이니까요."

"아. 너 연금술사였지?"

"예."

"줘 봐."

"예? 아... 알겠습니다."

뭔가 아쉬운 듯 마력석을 건네는 파라네트의 동작이 느릿했다.

유준은 팔을 뻗어 파라네트가 든

마력석을 뺏어 들었다.

".…"앗!"

이로써 마력석이 두 개가 되었다.

"이게 다야? 근처에 더 없었어?"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확실히 없습니다."

유준은 마력석을 바로 흡수하지 않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더 발견되는 마력석은 없었다.

'아쉽지만... 마력석 두 개가 어디냐.'

초반에 얻는 마력석 두 개의 가치는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함박웃음을 지은 유준이 마력 흡 착기로 마력석의 마력을 빨아들이 기 시작했다.

청량한 느낌의 마력이 흡착기를 통해 전해 들어왔다.

마력석에 깃든 마력은 순수한 마 력 그 자체였다.

그것이 몸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도 짜릿한 쾌락이 느껴졌다.

'이게 진짜 마력이구나.'

실제로 유준은 마력을 제대로 다 뤄 본 적이 없었다.

마력석으로부터 흘러들어 오는 막대한 마력.

모든 마력을 흡수하는데까지 걸 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력이 40 증가했습니다!]

간결한 메시지.

그러나 이것만큼 기분 좋은 메시 지가 따로 없었다.

'이러면 마력 능력치를 올릴 필

요가 없겠는데.'

안 그래도 나중에 마력석을 얻을 것을 대비하고 육체 능력치에만 투 자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마력석이 두 개나 생겼으니 능력치 분배 계획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유준은 남은 마력석도 뜸들이지 않고 흡수해 버렸다.

[마력이 40 증가했습니다!]

연달아 뜬 같은 내용의 알림 창.

보기만 해도 기분이 흡족해진다.

그 후로 유준은 고대 유적을 구 석구석 살피며 다른 아이템을 찾아 다녔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마력석이 다였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 긴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중급 튜토리얼을 클리어했다는 것.

그리고 그 튜토리얼 보상이 태초 의 플레이어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것이었다.

'다 끝났고... 이제 층을 오르는 일만 남은 건가.'

유준이 고대 유적을 나섰다.

진창호가 눈을 번득였다.

"나왔다!"

"그러네. 바로 덮치....어? 장 비가 많이 바뀐 거 같은데?"

"지금 그게 중요해? 서둘러!"

진창호와 그의 동료 박석산이 무기를 챙겨 몸을 일으키는 그때였다.

그들보다 더 빨리 움직인 자들이 있었다.

휙! 후웅! 휙!

고대 유적을 이제 막 빠져나온 남자를 향해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도저히 피할 구석이 안 보이는 기습적이며 치밀한 공격.

남자는 수십 개의 화살을 온몸

으로 맞이했다.

당연히 죽었겠거니 싶었는데, 그 뒤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카앙! 캉! 카카캉!

매섭게 날아가던 화살이 모조리 갑옷에 부딪혀 튕겨 나간 것이다.

어느 화살도 남자의 견고한 갑 옷을 뚫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마법 스킬까지 여럿 날아왔다.

화살 세례는 버텨 냈다고 쳐도 막강한 위력을 지닌 화염 마법을 맞고도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진창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화르륵! 콰앙! 쾅!

이번에는 큰 폭발이 일어나 주 변 일대를 강타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금방 흙먼지가 강하게 불어오던 바람에 흩어지고.

"자, 잠시만. 내가 잘못 본 거야?"

진창호가 기겁하며 내뱉은 말에 박석산이 고개를 저었다.

"멀쩡한데?"

"분명 실드도 안 펼쳤잖아?"

"그치?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서 있기만 했잖아?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지?"

"그렇대도."

"허...

그들이 그러는 사이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치열한 현장.

아니, 한쪽만 치열했다.

의문의 암습자들은 연이어 공격을 퍼부었지만,

화르륵! 쾅!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암습자들이 퍼부은 공격은 고대 유적을 나온 남자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애써 태연하게 맹공을 퍼붓던 암습자들이 그때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플레이어 맞아?"

"네임드나 보스 몬스터도 저 정 돈 아닐 텐데."

"어떻게 합니까?"

복면을 쓴 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그때,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이상한 아이템을 쓰고 있는게 틀림없다. 분명 유적에서 얻은 특 이한 아이템이겠지. 저게 무한정 지속되지는 않을 거다."

"계속 공격합니까?"

"장기전으로 간다. 마력을 적당 히 아끼면서 상대해."

" 예."

10명이 넘는 암습자들.

쪽수에서는 그들이 훨씬 앞서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화살을 날리려는

그때였다.

이번엔 가만히 서서 공격을 받아 내기만 했던 유준이 먼저 움직였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20화

20 화

고대 유적을 빠져나온 남자, 유준이 방긋 웃었다.

'이거 방어력 장난 아닌데?'

처음엔 갑자기 공격이 날아와 깜짝 놀랐지만, 그는 150레벨의 방어구를 풀 세트로 착용하고 있는 상태.

9층의 플레이어들이 하는 공격은 유준에게 있어 공격도 아니었다.

'방어력 실험은 끝났고... 이제

250레벨 전설 무기를 실험해 봐야지.'

복면 플레이어들은 자신을 죽일 각오로 먼저 덤벼들었다.

그렇다면 이쪽이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유준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땅을 박찼다.

그는 달리면서 역소환했었던 파라네트를 다시 소환했다.

"으... 으응? 아!"

갑작스레 소환된 파라네트가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잠시였다.

녀석은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유준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복면 플레이어들이 허둥지둥했다.

"막아! 마법사들을 지켜!"

"예!"

마법사들은 공격이나 방어, 보조 모두를 겸하는 무척 중요한 직군이었다.

유준도 그걸 알고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는데 복면 플레이어들이 눈치채고 마법사들을 보호했다.

'뭐, 상관없지.'

앞에서부터 천천히 처리한다.

장검을 들고 달려드는 플레이어 셋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스킬을 쓰려는지 검에 마력이 깃들었다.

그들이 동시에 검을 뻗어 왔다.

유준도 마주 검을 뻗었다.

서걱!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 지 않고 무언가가 잘리는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유준이 뻗은 검과 맞닿은 플레이

어들의 검이 하나같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미친!"

"...닿기만 했는데?"

"피, 피해!"

무기를 잃은 전사들의 최후는 뻔 했다.

능력치도 그들보다 훨씬 앞서 있던 유준은 한순간에 플레이어들의 목숨을 거뒀다.

'기분 더럽네.'

같은 인간 플레이어들을 죽이니 찝찝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세 명의 목숨이 자신의 행동 한 번으로 사라졌다.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평정심 특성 덕분에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내가 자비를 베푸는 건 아무 의 미가 없어.'

단호한 표정을 지은 유준은 다시 앞으로 달려갔다.

활을 들고 있던 플레이어 둘이유준을 향해 접근했다.

그와 동시에 빙 속성 마법이 날

아왔다.

화염 마법이 통하지 않으니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소용없었다.

화염 마법이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온전히 방어력 하나 때문 이었다.

월등히 높은 방어력은 모든 마법 공격에 끄떡없게 만들었다.

유준은 날카로운 고드름을 갑옷을 앞세워 그대로 받아 냈다.

"괴, 괴물! 어떻게 마법을...

"어떻게든 막아! 놈이 마법사한

테 도달하면 그땐 정말로 끝이다!"

유준에게 접근했던 플레이어의 가슴이 뻥 뚫렸다.

가까이 있던 플레이어가 뒷걸음 질 치며 물러났다.

"저, 저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

벌써 죽은 플레이어의 숫자가 넷.

남은 건 여섯뿐이었다.

유준을 상대하는 복면 플레이어 들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서걱! 푹!

쉴 새없이 움직여 플레이어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다.

어느새 근접전이 가능한 플레이어가 유준의 검에 의해 모두 목숨을 잃었다.

남은 건 궁수 스킬밖에 없는 플레이어 하나와 마법사 셋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저 장비들... 분명 고대 유적에서 전설 이상의 아이템들을 얻은 거야.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 적을 상대로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날 왜 공격했지?"

복면 플레이어들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

유준은 그 후로도 살아남은 몇몇 복면 플레이어들에게 끈질기게 정 체를 물었다.

그러나 소득은 없었다.

한숨을 내쉰 유준이 검을 휘둘렀

다.

서걱!

전투는 끝이 났다.

[태초의 플레이어는 죄를 지은 플레이어를 단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플레이어 살해로 인한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페널티? 아, 맞다. 100레벨부터는 카르마 수치가 쌓이지.'

무차별적인 피케이를 방지하기

위해 플레이어를 죽이면 페널티를 받게 된다.

그 페널티란 모든 능력치가 일정 퍼센트 감소하는 것인데, 많은 플레이어를 죽일수록 그 수치가 증폭 되었다.

게임에서만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현실에도 그대로 적 용되는 듯했다.

다행히 태초의 플레이어 능력 덕 분에 피케이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

'태초의 플레이어라서 아무런 페 널티를 받지 않는다고 했지. 정당 방위가 아니어도 적용되는 건가?'

만약, 다른 플레이어를 선제공격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라면 말도 안 되는 특권이긴 했다.

'그나저나 내 뒤를 쫓은 건가?'

복면을 쓴 플레이어들은 기다렸 다는 듯이 자신을 노려 왔다.

'뭐, 딱 봐도 날 노린 거지.'

유준은 복면 플레이어들이 남긴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담았다.

한편, 유준과 복면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모습을 근처에서 지켜보던

진창호와 박석산,

그들은 넋을 놓은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아, 아니...

둘의 시선이 맞부닥쳤다.

"원래 정체를 모르니... 저게 실력인지 아이템 덕인지를 모르겠네."

"실력도 있는 거겠지. 단순히 아이템만 좋다고해서 혼자 열을 잡을 수 있겠어? 움직이는 거 봤잖아."

"하긴... 몸을 쓰는게 꽤 익숙 해 보이던데. 플레이어를 죽이는데도 전혀 망설이지 않았고."

진창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위험했어. 우리보다 더 빨리 움직인 녀석들이 있어서 다행이지."

"생각해 보니 그러네. 와... 진짜 큰일 날 뻔했다. 먼저 공격하는게 우리었으면 죽은 건 우리였을 거 아니야."

"그렇지."

"그래서? 어쩔 거야?"

박석산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진창호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 고 유적의 비밀을 캐내려 했다.

그 결실을 맺기 직전까지 온 상황.

그가 쉽게 포기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 떼자."

"...뭐?"

박석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창호에게서 나올 만한 대답이 아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어떻게든 유적 의 정보를 알아내려 했을 텐데.

"방금 그놈은 규격 외의 존재야. 내가 뭘 해볼 수 없는...

진창호가 약한 소리를 했다.

박석산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 괜히 주제 맞지 않게 욕 심냈다가 송장 신세만 되는 거지."

박석산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진창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 * *

10층에 도전하기 전에 유준은 거 주 구역에 먼저 들렀다.

100레벨이 넘어가면서 거주 구역 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종족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100레벨 이상 거주 구역.

[무한의 탑 거주 구역(100레벨 이상)]

이곳에선 300레벨이 넘는 이들도 흔하게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거주 구역이라기보 단 또 하나의 대륙이라는 말이 맞았다.

대륙 주민들이 이종족과 함께 만들어 낸 터전.

그런 곳에 플레이어들이 등장했 다는 설정이다.

정보들을 구하며 알아본 결과, 실제로도 그러했고.

물론 대륙 주민 중에도 플레이어들이 꽤 있었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대륙의 인간 들에게도 플레이어 능력을 선사했 기 때문이다.

하여튼 본격적으로 이종족들과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나타나는 곳 이 이 100레벨 이상 거주 구역이었다.

사실상 지금까지는 저레벨존, 즉 튜토리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지.'

거주 구역이라고 안전한 게 아니다.

강도가 여관을 급습해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몬스터 들의습격으로 마을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유준은 '판테라' 도시를 이틀간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역시 신들의 전쟁에 있던 대륙 이 그대로 무한의 탑에 옮겨진 건가.'

어렴풋이 예상했었다.

100레벨 이하 거주 구역에서도 얻었던 정보를 취합하면 쉽게 예측 할 수 있었다.

'일단 무한의 탑을 클리어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네.'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가 강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 이란, 바로 레벨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좋은 아이템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유준은 레벨만 충당되면 언제든 강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레벨을 올리기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딜까.

'히든 던전.'

10층에 유준만이 위치를 알고 있는 히든 던전이 있다.

이미 누가 공략했을 수도 있지

만, 웬만해선 미공략 상태일 확률 이 높았다.

'일단 9층 시험부터.'

9층 시험은 우습게 볼 시험이 아니지만, 유준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스펙은 동 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을 월등하게 뛰어넘었다.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능력치는 레벨에 비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높았고 아이템은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스킬이나 특성이 없는 건 좀 아 쉽네.'

호화로운 아이템이나 칭호들에 비해 스킬이나 특성의 수가 많이 부족했다.

평정심 특성 하나밖에 없다.

참격도 좋은 스킬이지만, 그것만으로 전투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 렵다.

'나름 쓰기 마련이지만...

더 좋은 스킬들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장시간 숙성된 선단은 나중에 행운 아이템을 착용했을 때 사용하자.'

더.

더 빠른 속도로 강해져야 한다.

자신은 지금 다른 플레이어들보 다 5년이 뒤처져 있다.

그 간격을 메울 인벤토리가 있다 고 해도 지금 상황에 안주하며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척. 척.

9층의 통과 시험은 5층 때와 마찬가지로 보스 레이드였다.

다만,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혼 자서 보스 레이드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

하지만 유준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신들의 전쟁'에서 아이템이 차지 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저번 5층에서 보스를 상대해 본 바, 어렵지 않게 9층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유준은 곧바로 석상에 손을 얹고 통과 시험을 응시했다.

우우웅-. 우웅-!

워프가 되었다.

저번처럼 밀실 공간이 아닌 탁 트인 자연이 쭉 펼쳐졌다.

쏴아아아—!

9층 시험의 배경은 폭포가 떨어 지는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한쪽은 폭포가 떨어져 내리고 있 고 반대쪽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9층에서 레이드해야 할 보스 몬 스터는 다름 아닌 가짜 수룡이었다.

물론, 생긴 것만 수룡이지 물에

서식하는 거대 뱀이라고 보면 편했다.

용에는 비할 바가 결단코 아니지만, 이 거대 뱀은 무척 커서 플레 이어들이 죽이는데만 한 세월이 걸렸다.

5층의 보스 트롤과는 다른 느낌으로 끈질긴 보스 몬스터였다.

'여기 깨려면 보통 화염 속성 극 딜러들 셋 이상은 모아야 했지.'

이 거대 뱀은 웬만한 화력으로는 죽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거대 뱀이 단단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몸도 매우 날렵했으며 가끔 한 번씩 입에서 독액을 분출해서 플레 이어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도 했다.

트롤보다 더욱 까다롭고 죽이기 힘든 보스 몬스터.

그게 바로 9층의 가짜 수룡이었다.

"파라네트."

" 예?"

"앞에 서."

"...당연히 그래야죠."

파라네트는 언데드.

독에 맞아도 뼈가 부식될 뿐이지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그때였다.

"캬오오옥!"

유준을 발견한 거대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의 존재를 눈치챈 거대 뱀이 할 행동은 뻔했다.

먼저 움직인 건 유준이었다.

그는 한 발짝 앞에 서 있는 파라네트의 머리통을 밟고 높게 도약했다.

"억! 내 머리!"

해골바가지라 머리가 미끄러웠지만, 높은 민첩 능력치 덕분에 증심을 잃지 않았다.

순식간에 거대 뱀의 머리까지 올라온 유준은 중력에 의해 다시 추락하면서 뱀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서걱-!

한차례의 절삭음.

쿠웅! 철퍽!

머리가 잘린 가짜 수룡의 거체가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일격으로 플로네스크를 쓰러뜨 렸습니다.]

[전설 칭호 '극강의 공격력'을 획득합니다.]

[불가능한 업적!]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를 획득합니다.]

막 전투에 뛰어들려던 파라네트 의 동작이 멎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21화

21 화

일격.

한 번의 공격으로 9층 보스 몬스터인 플로네스크를 쓰러뜨렸다.

10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9층 시험을 클리어하는데 단 10초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유준은 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상이 좀 큰데?'

플로네스크가 원래 열댓 명이 모

여 레이드해야 하는 강력한 몬스터 긴 하다.

그런데 전설 아이템 박스까지 받을 줄은 몰랐다.

'이게 불가능한 업적까지인가?'

물론, 불가능한 업적 판정을 받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터.

가짜 수룡 플로네스크보다 유준의 레벨이 훨씬 낮은 데다가,

혼자서 시험에 도전한 것.

거기다 일격으로 쓰러뜨리기까지 한 것.

"받을 만하네."

별게 아닌 게 아니었다.

10층에 도착한 유준은 주변을 둘 러보는 것보다는 보상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다 아는 건 제쳐 두고, 칭호 효과부터 볼까.'

-극강의 공격력(전설) - 총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전설 등급의 칭호.

그 귀한 전설 아이템보다 더 얻 기 힘든 것이 전설 등급의 칭호였

다.

그리고 동급의 아이템보다 칭호 가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칭호에는 개수 제한이 없으니까.'

칭호만 계속 얻을 수 있다면 무한정 강해질 수 있는 셈이다.

'이 칭호를 또 얻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도 '극강의 공격력'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총 공격력이 10퍼센트나 증가하는 무지막지한 효과.

이런 귀한 칭호를 가짜 수룡을 잡고 얻을 줄은 몰랐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전설 아이템 박스는 아껴 두자. 지금 당장 무기를 업그레이드할 수는 없으니.'

확인할 건 다 끝났다.

이제 10층에 있는, 자신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는 히든 던전으로 향하면 되는 일이었다.

'쉴 필요는 없지.'

유준은 히든 던전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이제부터는 좀 조심해야만 했다.

'11층부터는 아래층으로도 이동 할 수 있었지.... 당장 최상위 랭 커가 날 죽이러 올 수도 있는 거야.'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최상위 랭커에게 노려진다면 상당 히 난처할 것이다.

지금 자신의 스펙으로 당장 최상 위 랭커를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유준은 자신을습격했던 복면 플레이어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많은 수로 몰려와습격했 던 것.

그의 위치를 알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걸 보면 지금도 자신의 행 적이 읽히고 있을 수도 있다.

무한의 탑에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는 건 무척 위험한 일이다.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간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몰랐다.

현재 유준의 상황이 그러했다.

'흔적을 지우자.'

숲 안으로 들어간 그는 적당한 나무 하나를 잡고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이럴 때 쓸 만한 아이템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준은 밝은 얼굴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무향무취의 사과]

등급 : 無

옵션 : 이 아이템을 섭취하면 30 분간 기척을 완전히 감출 수 있습니다. 먼저 공격을 가하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탐지 능력도 통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척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간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

집니다.

옵션 설명에 나와 있듯 흔적을 감쪽같이 속이는 아이템이다.

보통 누군가를 암살하거나, 보스 몬스터에게 선제공격을 먹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비싼 소모품 아이템.

이것도 당연히 과금 아이템이었다.

'이걸 사용하는 날이 오긴 하네.'

그는 이 아이템을 사 놓긴 했어 도 잘 사용하지는 않았다.

굳이 누군가를 암살할 필요가 없

기 때문이었다.

신들의 전쟁에서 그는 절대자이 며 최강자였다.

비록 신들의 전쟁에 유저가 적긴 했어도 과금을 꽤 한 유저들과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미리 사 두길 잘했군.'

이러한 소모 아이템들은 요긴하게 사용할 때가 오긴 한다.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무향무취 의 사과를 한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알싸하면서 달콤한 향이 코를 찔 렀다.

아주 맛있다고는 못 하겠지만, 먹을 만하다고 할 수는 있는 정도.

'됐겠지.'

이제부터 자신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30분 동안은.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

유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길은 알고 있다.

무사히 히든 던전을 찾아가기만 하면 될 뿐.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혹여나 길을 잃지는 않을까, 희 귀 등급의 나침반 아이템까지 꺼내 사용했다.

희귀 등급이라고해서 다른 나침 반과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성능은 매우 우수했다.

덕분에 유준은 무향무취의 사과 효과가 끝나기 전에 히든 던전으로 향하는 '광산'을 찾을 수 있었다.

'이야... 오랜만이네.'

감회가 새로웠다.

이 히든 던전에서 얼마나 고생했으며, 또 얼마나 좋은 보상을 얻었는지.

'그때와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좋겠는데.'

이곳 히든 던전의 보상을 알고 있는 유준은 괜히 보상이 달라지거 나 하지 않았으면 했다.

'무향무취의 사과'의 효과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준이 서둘러 광산에 진입하려는 그때였다.

광산 안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유준은 소리가 들려오는 광산 안으로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았다.

광산 안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 큼, 아름다운 존재들이 창이나 활 등의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바로 엘프였다.

'엘프? 엘프들이 왜 여기에 있지?'

그들의 아름다운 외형과는 대조 되게 분위기는 무척이나 험악했다.

"더러운 놈들."

"항상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만 하지."

"그러니 버려진 혈족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조심해. 다크 엘프 놈들은 귀가 예민해서 다들을 수도 있으니까."

"들으라지. 우리가 뭐 틀린 말 했나?"

대화를 엿들은 유준이 고개를 갸 웃했다.

'다크 엘프? 다크 엘프랑 엘프는 사이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알고 있는데.'

신들의 전쟁 세계관에서는 일단 그러했다.

'더 들어 보자.'

유준은 엘프들이 나누는 대화 소

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시토멘 광석은 지금 저쪽이 더 많이 가지고 있지?"

"응. 우리가 강탈당한 거까지 하 면 두 배 가까이 더 많을 거야."

"어쩌면 좋지? 놈들의 세력이 더 커지면... 감당할 수 없어."

"이런 식으로 주도권을 빼앗기면 숲을 관리하는 권한도 그쪽에서 다 가져가게 될 확률이 높아."

"그러니까 우리도 녀석들이랑 똑 같이 해야지."

금빛의 머리가 허리까지 닿는 엘 프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세주이. 그건 안 될 말이야. 우 린 고결하게 태어났고 그렇게 행동 해야 해. 다크 엘프와 똑같이 해선 똑같은 존재가 되는 거야."

"하, 하지만 적당한 선이라는게 있잖아. 놈들은 그걸 넘었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린 우리 의 방법을 쓰면 되는 거지 비열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어."

"일단은 여기를 계속 지키자는 거지?"

"그래."

엘프끼리 설전이 오가는 가운데.

몸을 숨기고 있던 유준은 급하게 광산을 빠져나왔다.

무향무취의 사과 효과가 끝나 가는 것이 이유였다.

후각이 예민한 엘프 종족은 인간 인 유준의 체취를 단번에 캐치할 확률이 높았다.

'그나저나 왜 엘프들이 광산에 있는 거지?'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하던 당시에는 광산 근처에 이종족이 거주했 던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히든 던전을 클리어하고자 마음 놓고 달려왔는데.

일이 꼬였다.

' 어쩌지?'

얘기를 들어 보니까 엘프 몇 있는게 다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하루 이틀 저렇게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적어도 엘프의 부락 정도는 근 처에 있을 거야. 최대한 충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엘프는 개인마다 레벨이나 무력 의 수준 차이가 커서 저들과 얽히 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충돌이 없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십이 넘는 숫자의 엘프들이 광 산에 추가로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엿 됐다.'

무향무취의 사과는 섭취한 사람 의 체취나 흔적, 기척들을 없애 줄 뿐이지 모습을 아예 안 보이게 해 주지는 않는다.

당장 저들의 눈을 피해서 히든 던전에 입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었다.

무엇보다 히든 던전이 공략되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는지도 미지수

였다.

유준이미간을 찡그렸다.

골치가 아팠다.

엘프와 사이가 나빠져서 좋을 게 없었다.

다크 엘프 또한 마찬가지고.

지구인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그 리 높지 않은 지금, 무한의 탑에서 이종족 연합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엘프랑 다크 엘프는 이종족 연 합에 소속되어 있으니 건드리지 않는게 좋은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 많은 수의 엘프들을 뚫고 광 산 깊은 곳에 있는 히든 던전에 들 어간다?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일단 던전이 남아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을 해야 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유준은 히든 던전의 유무를 알아 내기 위해서라면 무색무취의 사과 하나를 더 쓸 용의가 있었다.

자신의 성장과 관련된 일에는 아이템을 아낄 필요가 없다.

무향무취의 사과뿐만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

그걸 활용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 적합한 아이템을 찾는다.

'해답은 항상 인벤토리에 있었지.'

그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계속 둘러보는데 마땅한 게 보이지 않는다.

'소모성 아이템으로 뭐 없나.'

그렇게 한참을 인벤토리를 뒤지던 유준이 어느 순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찾았다!'

곧바로 정보를 확인했다.

[활력 가득한 모과]

등급 : 영웅

옵션 : 섭취 시, 3일간 자연 친화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자연 친화력.

엘프들이 다른 종족을 판단하거

나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였다.

심지어 같은 종족끼리도 자연 친화력이 높은가 아닌가로 급이 나눠질 정도.

활력 가득한 모과는 그 자연 친화력을 무지막지하게 늘려 준다.

'그리고 이것도 있었지.'

[세계수의 씨앗(VIP20)]

등급 : 전설

옵션 : 세계수를 심을 수 있습니다.

VIP 20단계를 달성한 유저에게 만 주어졌던 그 아이템이다.

현금으로 최소 삼천만 원을 쓴 이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VIP 넘버 20 아이템.

'뭐, 이건 지금 쓰긴 좀 아까운 아이템이긴 하지만...

어차피 그는 세계수의 씨앗을 6 개나 더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귀한 아이템이긴 해도 아예 구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게임에서의 얘기다.

무한의 탑이 현실이 된 지금은 세계수의 씨앗을 구할 방도가 따 로 없는 것으로 안다.

'좋아.'

준비는 끝났다.

자연 친화력이 높은 건 그렇다 쳐도.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협상을 제안하면 엘프들도 거칠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워프 스크롤을 써도 되고.'

워프 스크롤은 100레벨 거주

구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아주 편리한 소모 아이템이었다.

보험은 충분하다.

이제 엘프들 앞에 나서는 일만 남았다.

유준은 활력 가득한 모과를 섭 취하고 조심스럽게 광산에 다가갔다.

감각이 예민한 엘프들답게 그들은 유준의 존재를 곧바로 눈치챘다.

"이 냄새는...

"누구냐!"

"멈춰!"

엘프들이 날카롭게 외치자, 유준이 발걸음을 뚝 멈췄다.

"정체를 밝혀라!"

여성 엘프가 재차 호통을쳤다.

유준은 두 손을 번쩍 들며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엘프들의 잔뜩 굳은 표정은 풀 리지 않았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엘프들.

유준은 자연 친화력이 높은 상태임에도 엘프들의 적개심이 높은 걸 확인하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

었다.

"제가 지금 세계수의 씨앗을 가 지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22화

22 화

유준이 태연한 얼굴로 꺼낸 말.

그 말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침 묵이 맴돌았다.

"...세계수의 씨앗이라고?"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장난치는 거 아니야?"

엘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일 게 뻔한데도 엘프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떨굴 수가 없었다.

'세계수의 씨앗'은 엘프들에게 있 어 그만큼이나 귀하고 값진 보물인 것이다.

아니, 사실 돈으로 사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니 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만약 씨앗이 발아해 무사히 세계 수가 된다면.

세계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엘프들의 능력을 진화, 성장시킨다.

또한, 아이가 잘 태어나지 않는 엘프의 고질적인 문제 또한 해결되

었다.

거기다 세계수는 상징적인 존재.

정신적인 안정까지 챙길 수 있다.

그러니 세계수의 씨앗이 그들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물건인지 이 루 말할 수 없었다.

'화리풀' 부족의 엘프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은 여성 엘 프, 요드리가 앞으로 한 발짝 걸어 나갔다.

"방금 한 말. 사실인가요?"

"물론입니다."

유준이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두 손을 위로 번쩍 들고 있는 상태.

"저희가 그걸 어떻게 믿죠?"

"직접 보여 드리죠."

엘프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봤다.

생긴 거만 보면 보잘것없는 인간 이었다.

강력한 힘이 느껴지지도 않고 그들이 알 만큼 유명한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그런데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엘프뿐만 아니라 무한의 탑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종족이 바라 마지 않는 그 세계수의 씨앗을.

솔직히 믿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보여 주겠다는 건가요? 씨앗을 지금 가지고 있나요?"

"예. 인벤토리에요. 다른 곳에 있었다면 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흐음."

유준은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

엘프들은 서서히 저 인간이 진짜 로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 했다.

"바로지금 확인해 볼 수 있어요?"

"예. 대신 제가 원하는 건 간단 합니다. 평화롭게 대화를 하자는 거죠."

"그거야 어렵지 않아요. 우린 평 화를 사랑하니까요."

유준은 엘프 요드리의 뻔뻔한 말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엘프가 평화를 사랑한다고?

물론, 대외적인 이미지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건 엘프가 아주 오래전 부터 그런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이다.

'뭐 그래도 인간보다는 훨씬 낫 기야 하겠지만.'

하여튼 엘프는 손해와 이익을 철 저하게 따지는 종족이지, 마냥 착 한 종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좋은 거지.'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협상을

한다면 저쪽에서 갑자기 공격해 오는 일은 없을 거다.

"세계수의 씨앗을 꺼낼 겁니다. 쏘지 마세요."

유준의 말에 요드리가 고개를 끄 덕였다.

인벤토리가 열렸다.

그곳에서 아이템 하나가 빠져나 왔다.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크기의 씨앗.

씨앗치고는 무척 큰 크기였지만, 이것이 웬만한 고층 빌딩만 한 높 이의 나무로 자란다는 것을 생각하

면 절대 크다고 할 수 없었다.

손바닥 위에 그것을 올린 유준은 엘프들에게 천천히 씨앗을 보여 줬다.

시력이 좋은 엘프들답게 단번에 씨앗을 알아봤다.

"세계수의 씨앗...

" 진짜인가?"

"향기는 비슷한 거 같은데?"

그러나 엘프들은 금세 표정을 바 꾸었다.

"잠깐. 저게 진짜라는 보장이 없 잖아."

"생긴 것만 그럴싸할 수도 있어."

"인간을 믿다 큰코다친 동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눈앞에 보여 줘도 엘프들이 믿지 못할 만큼 세계수의 씨앗은 희귀했다.

요드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유준과 열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서 그녀가 눈을 감는다.

"세계수의 기운...이 느껴져요. 정말로 세계수의 씨앗이 맞아요!"

환희에 찬 얼굴을 한 요드리의

말에 엘프들이 단체로 당황했다.

"지, 진짜였다고?"

"요드리 님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우리도 세계수를 모실 수 있게 되는 거야?"

유준은 세계수의 씨앗을 다시 인 벤토리에 넣었다.

"아...

"저걸...

엘프들이 안타까운지 탄식을 했다.

"자, 전 앞서 한 제 말을 증명했

습니다. 이제 대화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당연히."

요드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보십쇼."

"세계수의 씨앗은 저희와 거래하기 위해서 가져온 건가요?"

"음...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곤란하군요. 세계수의 씨앗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물건은 저희의 수중에는 없어요."

"가치가 꼭 동등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혹 제가 마음에 드는 물 건이 있다면 가치가 다소 떨어지는 물건이더라도 교환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의 말에 요드리가 환하게 웃었다.

"정말인가요?"

"일단 저 활들부터 치워 주세요."

"알겠어요."

요드리는 뒤에 있던 엘프들을 바

라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엘프들은 아무런 말없이 무기를 거뒀다.

한번 씨앗을 보여 준 것치고는지나치게 유준을 신뢰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엘프는 본래 세계수의 씨앗을 알 아볼 수 있었다.

다른 엘프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 긴가민가했지만,

요드리는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서 세계수의 씨앗을 봤다.

그래서 유준을 의심하지 않았다.

"원하는게 뭐죠?"

"당장 원하는 것부터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광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저 광산을 말하는 건가요?"

"예."

뭐든 들어줄 것만 같았던 요드리 가 얼굴을 굳혔다.

시토멘 광석이 나와 시토멘 광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엘프 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당장 다크 엘프들과의 신경전도 그렇고 시토멘 광석은 무척 활용도 가 높은 광석이었다.

그 광석이 있는 광산에 처음 보는 외지인이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니 반응 뜨뜻미지근할 수밖에 없었다.

"광산에는 무슨 일로?"

"찾고 있는게 있습니다."

"혹시 광석...을 캐려는 건가요? 그거라면 몇 개 드릴 수 있어요."

"아뇨. 광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 그럼..."

유준은 아까 대화를 엿들으면서 엘프들이 시토멘 광석에 민감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히든 던전이 광산 안에 있다고 말하기도 좀 그러니 다른 용무를 만들어 내기로 했다.

"제 스승 되시는 분께서 저 광산 안에 제게 남긴 것이 있습니다."

"남긴 거라니요?"

"책입니다. 스승님의 유언과 기 술 전수를 위한 글들이 적혀 있는 책요."

"아... 그게 시토멘 광산에 있다는 건가요?"

"예. 원래 이곳은 인적이 없는 동굴이었습니다. 워낙 이 광산이 외진 곳에 있다 보니.... 그래서 스승님도 이곳에 유지를 남기실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네. 맞아요. 처음엔 우리도 시토 멘 광석이 쓸모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당신은 이 광산의 존재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나 보군

요."

유준이 대충 둘러댄 말에 요드리 가 감쪽같이 넘어갔다.

'보니까 이 광산에 온 지 얼마 안 됐나 본데.'

그렇다면 히든 던전이 아직 클리 어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희망이 생긴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한테는 제 스승님이 남기신 책이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이 광산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세계수의 씨앗을 드리겠습니다."

"저, 정말이죠?"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유준을 살 피던 요드리가 반색했다.

"물론입니다. 대신 저는 혼자 움직이고 있으니 안전을 보장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광산에서 무사히 나왔을 때 세계수 의 씨앗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 조건은 괜찮겠죠?"

"좋아요. 저희도 당신이 갑자기 돌변하지만 않는다면 해치지 않는 다고 약속할게요."

"예."

"아.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유준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 유준. 저는 요드리라고 해요."

요드리의 허락을 구한 유준은 곧 바로 광산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대신 엘프들 셋이 뒤에 따라붙었는데, 이건 유준이 도망쳤을 때를 대비한 거라서 그도 불만은 없었다.

'여차하면 처리하고 도망치면 되는 거니까.'

엘프들의 장비를 본 유준은 자신이 최소한 저 셋한테 지지는 않으 리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레벨도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아마 요드리를 포함한 엘프들이유준의 수준을 그리 높지 않게 평 가한 듯했다.

통찰력이 높은 엘프들은 플레이어의 레벨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레벨만 놓고 보면 나는 확실히 저렙이니까.'

그로선 다행인 일이었다.

광산 안은 매우 넓고 복잡하지만, 유준은 히든 던전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벅. 처벅.

동굴 안은습기가 매우 높았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 질척거리는 점액이 달라붙었다.

"저기. 세계수의 씨앗은 어쩌다 얻게 됐나요?"

갑자기 뒤에 있던 짧은 단발의 여성 엘프, 메이가 말을 걸어왔다.

유준은 아까 미리 생각해 둔 말을 내뱉었다.

"스승님이제게 선물로 주신 겁니다."

"네? 세계수의 씨앗을 선물로 받

았다고요? 그분은 도대체 뭘 하는 분이에요?"

"이름을 크게 날리신 분은 아닙니다. 눈에 띄는 걸 싫어하셔서요. 그래도 모험을 좋아하셨는지 이곳 저곳을 많이 돌아다니셨습니다. 저 도 그러다 스승님께은혜를 입었고요."

"유준은 다른 세계에서 온 플레 이어가 아니었던가요?"

"예. 그건 그런데스승님을 만난 건 1년 정도 전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엘프들은 유준을 의심하는 눈치

가 아니었다.

너무나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 놓은 탓이다.

활력 가득한 모과를 섭취해 자연 친화력이 대폭 높아진 탓일까.

엘프들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계속 질문을 해 왔다.

"인간은 이종족 연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가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건 아니라서.... 그냥 제 생각을 말 하자면 그런 거대한 집단이 있구 나... 하는 정도입니다."

"인간들은 엘프를 좋아한다는 건

요? 사실인가요?"

"그건 맞습니다. 아름다운 걸 싫 어하는 인간은 없죠."

그의 말에 여성 엘프 세 명이 까 르륵 웃었다.

"그럼 다크 엘프랑 엘프 중에 어 떤 종족이 더 호감이 가나요?"

메이가 난처한 질문을 해 왔다.

'답정너 질문을 여기서 해 버리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두유 노우 아무개를 남발하는 억척 스러운 기자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 으음...'

다크 엘프가 없는지금, 답은 정 해져 있었다.

"두말할 필요 있나요? 당연히 엘 프죠."

"역시 그렇죠?"

"예."

"유준은 뭔가 호감이 가네요. 다 른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인간은 욕심이 많아서 다른 종 족을 다 노예로 만들려는 속셈이 있다고 장로분들한테 들었거든요."

"그런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겠

죠. 아니, 많을 겁니다."

사실 노예를 만드는 것은 이종족 연합에서 크게 반대해서 플레이어들이 대놓고 노예를 사고팔지는 않았다.

다만, 암암리에 노예 거래가 이 뤄진다는 건 유준도 알고 있었다.

특히 아름다운 엘프나 다크 엘프들이 비싸게 거래된다는 것도.

굳이 그 말을 꺼낼 필요는 없겠지.

그때였다.

후웅! 척!

크기가 작은 단검 하나가 유준의 갑옷을 스쳐 지나가 동굴 벽에 꽂 혔다.

그나마 회피 동작을 했기에 스친 것이다.

단검은 그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 왔다.

유준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또 뭐야?'

엘프들은 당황하지 않고 단검이 날아온 곳에 활시위를 겨눴다.

"누구냐!"

메이가 호통치듯 외쳤고 의문의

습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피부에 얇은 소재의 검정색 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성별에 상관없이 전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다크 엘프가 나타난 것이다.

'다섯 명: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걸까.

광산 앞은 요드리를 포함한 수십 명의 엘프가 지키고 있었을 텐데.

"다크 엘프?"

"더러운 놈들! 무슨 속셈이야!"

엘프들이 외치자, 다크 엘프 한 명이 비소(非笑)를 지으며 말했다.

"세계수의 씨앗. 그걸 내놓아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지."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23화

23화

"어떻게... 그걸?"

엘프 메이가 당황했다.

세계수의 씨앗에 대한 정보가 벌써 다크 엘프들한테 퍼지다니?

그건 장로 요드리가 나서서 펼친 장막 결계로 인해 밖으로 새어 나 갈 수가 없는 정보였다.

더군다나 유준이 세계수의 씨앗에 관한 얘기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새 다크 엘프가 세계수 씨앗의 존재를 알아채고습격을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알 거 없다. 살고 싶다면 세계수의 씨앗을 내놓아라."

"뭐? 우리와 목숨을 걸고 싸우겠 다고? 정녕 끝을 보자는 건가?"

"우리도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원치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요 구에 계속해서 불응한다면 그 끝을 볼 수도 있겠지."

"...뒷감당할 자신 있어? 이종 족 연합에 소속된 종족 간에 분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걸 모르

지는 않을 텐데?"

"그러니 너희들이 협조적으로 나 와야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글쎄."

감정 섞인 대화를 몇 차례 나누 더니 다크 엘프가 무기를 위로 쳐 들었다.

"수는 우리가 앞선다. 거기 인간. 네가 생각하기에 올바른 선택을 해라."

엘프까지도 죽일 수 있다고 선언 한 그들이다.

인간인 유준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죽일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유준은 세계수의 씨앗을 더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다크 엘프들이 원하는게 뻔히 보였다.

'씨앗을 인벤토리에서 꺼내는 순 간,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세계수의 씨앗을 인벤토리에 두고 있으면 일단 다크 엘프가 유준을 당장 죽일 수는 없었다.

"시끄러워, 게리힐! 어떻게 그 정 보를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씨앗은 절대 넘겨줄 수 없어!"

유준이 무슨 대답을 할지 고민하는데 메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난 분명 경고했다."

다크 엘프 '게르힐'이 그렇게 말 하고 땅을 박찼다.

유준이 보기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

메이를 비롯한 엘프들은 게르힐 의 신형을 쫓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엘프 한 명의 앞에 도 달한 게르힐은 단검을 복부에 찔러 넣었다.

푸욱!

"아아악!"

배를 움켜쥐고 쓰러진 엘프의 등을 밟은 게르힐이 단검을 다른 엘 프에게 겨눴다.

엘프들은 뒷걸음질 치며 황급히 물러났다.

"정말 동족이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건가?"

게리힐이 크게 소리쳤다.

휘익! 휙!

남은 엘프 둘이 화살을 날렸지만, 게리힐이 단검을 두 번 휘두르 자 화살이 간단하게 튕겨 나갔다.

'이건 뭐 상대가 안 되는데?'

유준은 게리힐의 무력이 이곳에 있는 엘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 도로 뛰어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게리힐이라 불린 다크 엘프는 장 비도 제법 뛰어났다.

'레벨이 200은 될 거 같은데.'

지금 유준이 믿을 건 아이템.

그리고 능력치 정도가 있다.

태초의 플레이어 칭호의 능력치 25% 증폭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진짜 죽을 수도 있겠어.'

긴장했는지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유준은 전방을 주시하며 176이나 쌓인 미분배 능력치를 골고루 분배 했다.

'이제 어떻게든 3분을 버티면 된다.'

그는 전투가 발동되고 3분이 지 나면 공격력과 방어력이 퍼센트로 증가하는 광란의 방어구 아이템을 세트로 끼고 있다.

그 효과는 궁지에 몰린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리고 그의 갑옷에 단검이 스친 지 벌써 1분이 지났다.

'정확히 2분 좀 덜 남았겠네.'

단검이 스친 갑옷은 멀쩡했다.

다크 엘프가 던진 단검은 광란의 방어구가 가진 방어력을 뚫지 못한 것이다.

'할 만해.'

유준이 자신감을 가졌다.

그때 게리힐이 단검에 복부를 찔 렸던 엘프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 댔다.

"자, 10초 주겠다. 인간. 세계수

의 씨앗을 넘겨."

유준이 인상을 구겼다.

'왜 나한테 지랄이야?'

세계수의 씨앗을 가진 게 그였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엘프 둘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봤다.

"잠깐 기다려. 곧 꺼내 줄 테니까."

한숨을 내쉰 유준은 허공에 생긴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게리힐을 비롯한다크 엘프들이 매서운 눈으로 그런 그를 지켜봤다.

단검까지 빼 든 모습이 당장이라도 단검을 날릴 기세.

유준은 일단 세계수의 씨앗을 꺼 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세계수의 씨앗을 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다크 엘프들은 단번에 알아봤다.

"확실하군."

"인간이 가지고 있었군요."

"그 '녀석'한테 물건이 확실하다 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다크 엘프 한 명이 모습을 감췄다.

여기서 또 게리힐의 자신감이 드 러났다.

그래도 아직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다크 엘프 한 명을 다른 곳으로 보내다니.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인간. 그걸 바닥에 내려놔."

"내 목숨은 누가 보장해 주지?"

"약속은 지킨다."

"잘도 그러겠다."

"...의심하는 건가?"

"그럼 안 의심하냐? 딱 봐도 수 상한데."

여기서 엘프를 버리고 다크 엘프 편에 붙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과는 관계가 어긋났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엘 프들이 많은 입구로 가는게 지금으로선 최선이었다.

"비교적 멀쩡한 상태로 순순하게 나오는게 좋을 거다. 사지가 잘린 상태로 세계수의 씨앗을 뱉어 내는 건 너무 비참한 말로가 아닌가?"

게리힐이 살벌하게 협박해 왔다.

그렇다고 세계수의 씨앗을 그냥 내줄 수는 없었다.

"세계수의 씨앗으로 뭘 하려고?"

"인간인 네가 알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 아이템 주인은 난데 좀 알려 줘도 괜찮지 않나? 알려 준다고 덧나냐? 어디?"

"지나치게 여유롭군. 실력에 자 신이 있는 건가?"

게리힐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건 아닌데. 그냥 주긴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받은 것도 따로 없는데."

"좋아. 씨앗을 넘기면 등급이 높은 아이템 몇 개를 쥐여 주지. 그 럼 됐나?"

"아니. 그걸로는 좀 부족한데."

"...하. 지금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닐 텐데?"

"미안. 근데 씨앗은 못 주겠다."

갑작스러운 태도의 전환.

'시간이 됐다.'

그가 첫습격을 당한 지 3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끌 대로 끌었어.'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스컹크의 먹구름'을 꺼냈다.

[스컹크의 먹구름]

등급 : 영웅

옵션 : 연금술사 '비테르'가 제조 한 아이템. 플라스크를 깨뜨리는 순간, 많은 양의 연기가 뿜어져 나 옵니다. 연기는 흩어지지 않고 장 시간 지속됩니다.

그는 세계수의 씨앗을 인벤토리

에 넣은 후 재빨리 스컹크의 먹구 름을 바닥에 내던졌다.

차캉! 스아아아-.

유리병이 깨지고 짙은 연기가 사 방을 뒤덮었다.

아이템 효과는 상당했다.

근방 일대가 순식간에 연기로 가 득 찬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물건도 보기 힘 들 정도로 연기가 짙었다.

눈 뜨고 코 베일 상황이 된 게리 힐이 다급하게 유준을 향해 단검을 던진 후, 달려들었다.

유준은 게리힐의 투척 단검을 피 한 후 무향무취의 사과도 꺼내 한 입에 삼켰다.

연기에 몸이 완전히 가려진 지금, 기척과 냄새가 지워진다면.

게리힐이 자신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유준은 원래 서 있던 곳에서 멀 리 벗어났다.

"비열한 인간 놈'!"

누가 누구보고 비열하다는 건지.

감각이 예민한다크 엘프, 게리 힐은 자신의 뛰어난 감각을 맹신했다.

그래서 기척을 감쪽같이 감춘 유준을 눈앞에 두고도 유준이 멀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게리힐의 뒤로 간 유준이 검을 있는 힘껏 쭉 뻗었다.

검에 머리가 꿰뚫린 게리힐은 허 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역시 이종족을 죽여도 레벨이 오르는 건가.'

동족을 죽일 때만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는 신들의 전쟁 설정은 그대 로 유지되는 듯했다.

다크 엘프 한 명을 죽였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유준은 다크 엘프와 완전히 척을 질 생각을 했다.

그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무향무취의 사과 효과 덕분에 아

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때문에 다크 엘프들도 게리힐 과 다를 바없이유준의 접근을 알 아차리지 못했다.

망설이지 않고 다크 엘프들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푹! 서걱! 서걱!

동족이 당하는 소리에 반응하기 도 전에 다크 엘프 셋을 전부 처리 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요란한 등장과는 달리 다소 허무한 최후였다.

레벨이 낮은 유준을 너무 얕봤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게리힐이나 다크 엘프들이 방심할 만은 했다.

워낙 레벨 차이가 현저했으니.

다만, 이미 일어난 일이다.

다크 엘프들은 목숨을 잃었고 누 구를 탓할 수도 없게 되었다.

유준은 정신을 잃은 엘프에게 다 가가 중급 물약을 꺼내 상처 부위

에 뿌렸다.

질 좋은 물약은 넘치도록 있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 할 엘프들에게 물약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남은 두 명의 엘프들은 짙은 연 기 때문에 잔뜩 긴장한 채로 사방을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메 이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접니다."

"유, 유준? 살아 있었어요? 게리 힐은요?"

"전부 죽였습니다."

"...죽였다고요?"

메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 진짜요?"

"예. 계속 대화해 봤자, 말이 안 통할 거 같아서요. 그러면 안 됐나요?"

"아니요.... 먼저 죽이려 들었 던 것은 저쪽이니 잘하신 거예요. 하여튼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저기요! 세니아가 위험해요!"

그때 한 엘프가 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치료해 뒀습니다."

"...치료도요? 어떻게요?"

"물약으로요."

"물약을 갖고 계셨나요?"

"네. 운이 좋게도, 때마침."

"정말 고마워요! 저희가 뭐 해 드린 것도 없는데... 왠지 도움만 받는 거 같아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광산에 들어오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유준이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 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는 아니었다.

엘프들에게는 최대한 좋은 이미 지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 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종족 연합의 힘을 빌 릴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엘프들이 이종족 연합에서 가진 힘은 상당했다.

다만, 문제는 다크 엘프들과는 이제 척을 질 예정이라는 것 정도.

그들도 원래 나쁜 성정을 가진 종족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좀 이상할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뭔가 자신이 모르는 흑막이 있을 지도 모른다.

'괜히 재수없이 적만 만들었네.'

한 명이 이미 세계수의 씨앗에 대해 말을 전하러 간 상황.

유준의 생김새에 대해서 당연히 말했을 테니 다크 엘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긴 글렀다.

'어차피 안 죽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지만.'

유준은 기절했던 엘프가 정신을 차리자, 엘프들과 함께 연기가 없

는 곳으로 빠져나왔다.

"근데... 이 연기는 뭐예요? 유준이 한 건가요?"

메이가 물어 왔다.

"예."

"신기한 걸 많이 갖고 계시네요."

"스승님 덕분이죠. 유별난 분이 시라 별걸 다 모으셨거든요."

"진짜 그분의 정체가 궁금해요. 그 정도의 인물이 이름이 잘 안 알 려진 것도 신기하고."

"유명세를 얻는 걸 별로 안 좋아

하셨던 터라."

" 우와...

유준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없는 인물에 대해서 논하 니 기분이 뭔가 묘하다.

"어쩔까요? 다크 엘프들이 이런 식으로습격해 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듯한데."

"돌아가서 얼른 보고해야겠어요. 광산 입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게 낫겠죠."

"저는 스승님의 물건을 찾는게 우선이라.... 일단 여기서 헤어질 까요?"

"하지만...

엘프들이 망설였다.

그녀들은 유준을 잘 감시하고 따라붙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다크 엘프들 건도 무시할 수가 없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24화

24화

"곤란하네요...

메이가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통신구를 챙 겨을 걸 그랬어요."

"까먹은 겁니까?"

"아니요. 그게 워낙 귀하고 비싼 아이템이다 보니, 바로바로지급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저 혼자서 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입구 말고는

빠져나갈 길도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 알겠어요. 빨리 다녀올 게요."

"네."

웬만해서는 다시 안 왔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엘프들이 있는 곳에서 히든 던전에 들어갈 핑계를 만들어야 했는데 차라리 이렇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명은 남아도 되지 않을까요?"

메이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 예?"

유준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물었다.

"아니, 꼭 세 명이 같이 갈 필요 가 없잖아."

"메이. 그게 무슨 소리야?"

"널 혼자 남겨 두고 갈 수는 없어."

"나, 난 괜찮아. 어차피 유준과 같이 가라는게 요드리 님의 명령 이었고...

"그래도 괜찮겠어?"

엘프들이 염려하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다크 엘프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인간과 단둘이 내버려 둔다는게 마음이 걸리는 것이다.

자연 친화력이 높아지긴 했어도 유준은 인간이었다.

엘프들에게 완전한 신뢰를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메이의 표정은 단호했다.

"괜찮아. 빨리 갔다 와."

"...알았어."

"네 뜻이 그렇다면."

엘프들이 등을 돌리고 빠르게 뛰

어가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엘프와 둘이 남게 된 유준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 허락은 안 받는 건가?'

뭐, 애초에 감시 역할로 따라온 것이니 자신이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어차피 메이는 자신이 금방 제압 할 수 있는 상대였다.

' 잠깐...

유준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입구에 있는 엘프들이 이미 당 한 상태라면 어쩝니까?"

"그럴 리는 없어요. 요드리 님은 저희 부족에서도 능력이 뛰어나기 로는 수위를 다투시는 분이에요.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요 드리 님을 뚫고 갈 다크 엘프는 없 거든요. 심지어 동족들도 수십 명 이나 있고요."

"음. 그럼 다크 엘프들이 어떻게 우리 뒤를 쫓아왔는지가 문제인데."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유준은 광산의 입구가 하나가 아닌 걸 알고 있다.

다만, 거기는 매우 협소한 곳이 라 겨우 바람만 통할 뿐 사람 크기 의 무언가가 지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공간을 더 확장했나? 벽을 뚫었 다든가...

광석을 캐다 보니 그렇게 됐을 수도 있고 고의적으로 넓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만약 엘프들은 모르고 다크 엘프 들만이 아는 입구가 있다면.

그렇다면 다크 엘프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해가 된다.

"서두르죠. 놈들이 또 어디서 나

타날지 모르니."

"네."

먼저 보고를 위해 떠났던 다크 엘프로 인해 금방 추격자가 붙을 수도 있다.

여기서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유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타 종족들에 비해서 날렵한 엘프 인 메이가 뒤처질 정도로.

"유준! 너무 빨라요."

"금방 도착해요."

"길은 알고 가시는 거예요?"

"스승님께 대충 언질은 받아 뒀어요."

"네?"

언질 정도로 길을 안다고 하다 니.

메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을 때 유준이 말을 덧붙였다.

"장소적 특징들을 설명해 주셔서요."

사실은 직접 가 본 길이다.

그래서 이곳 지리는 잘 알고 있었다.

유준은 마지막 갈림길에서 오른

쪽 길을 선택했다.

지형이 완전히 뒤틀리지 않았다면 여기로 쭉 갔을 때 히든 던전이 나타나야 한다.

유준은 달리면서도 감각에 집중 했다.

앞과 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땅에서 울리는 진동, 바람이미세 하게 불어오는 것까지.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감각에 새로운 것들이 잡혔다.

기척을 극도로 숨긴, 매우 빠르 고은밀한 이들의 작은 숨소리.

유준은 다크 엘프들이 벌써 근처

까지 따라왔다는 걸 인지했다.

다크 엘프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건 앞쪽이 아닌 뒤쪽.

그는 메이를 앞으로 먼저 뛰어가 게 했다.

[신유준 플레이어가 파티 요청을 했습니다.]

메이는 갑작스레 나타난 메시지에 당황하지 않고 파티 요청을 수 락했다.

"이건 왜요?"

"작전이 있어서요. 그리고 다크 엘프들이 따라붙었습니다."

"네? 그렇다면 마르엘라랑 주티 엔은...

그녀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을 하다 말았다.

유준은 그녀의 걱정을 덜어 주는 말을 했다.

"멀쩡할 수도 있어요. 아마도 이 광산은 입구가 하나가 아닐 확률이 높거든요."

"입구가 하나가 아니라고요? 분 명 저희가 탐사했을 때는 그곳 한 곳뿐이었어요. 포털 같은 것도 따

로 없었고요. 게다가 매일 정기적으로 순찰까지해서 그럴 일은

"마법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어떤 특이한 아이템이라도 썼든가해서요."

무한의 탑에서는 뭐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럼 다크 엘프들과 또 싸워야 하는 건가요?"

"아뇨. 지금 싸웠다간 질 겁니다."

"네? 아까는게리힐도 쓰러뜨리 셨잖아요. 유준은 엄청 강한 거 아

니에요?"

"강한 거 아닙니다. 아까는 수를 부려서 좀 통했던 거였고 게리힐 같은 놈이 여러 명이면 저도 이긴 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럼 우리... 위험한 거 아닌가요?"

메이의 얼굴빛이 노래졌다.

"위험은 원래부터 있었죠. 그러 게 왜 따라오셨습니까."

유준이 핀잔을 주자 메이가 시무 룩해졌다.

"아무튼 먼저 가세요."

"유준은 어쩌고요?"

"시간을 끌 생각입니다."

"방법은 있어요?"

"방법이야 많죠."

유준이 자신에 찬 얼굴로 말하 자, 메이가 살짝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러다가 내심 놀랐다.

'오늘 처음 본 인간을 믿고 안심 하다니...'

원래 엘프와 인간은 사이가 좋다 고는 말할 수 없는 관계.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인간은 왠

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강해서겠지.'

단순하게 생각한 메이가 입을 열었다.

"조심해요."

"빨리 가요. 시간 없으니까."

메이가 전력으로 뛰어가는 걸 본 유준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어디 보자... 무향무취 사과 효과는 아직 안 끝났고...

다크 엘프의 추격은 이미 전부터 예상했던 바,

미리 생각해 둔 방법이 몇 있다.

그증가장 확실하며 효과적이고 다크 엘프들에게 엿 먹일 방법을 선택했다.

'나랑 척지면 어떻게 되는지 제 대로 알려 줘야지.'

큰 키와 늘씬한 몸과 적당히 잡 힌 근육.

그리고 눈매가 날카롭고 사나운 인상의 사내가 있었다.

카람탄 부족의 다크 엘프 고위 장로 '스텔른'이었다.

그는 빠르고은밀하게 달리면서 생각했다.

'세계수의 씨앗이 확실하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회수하는 일만 남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다크 엘프들의 기척이 자신의 기 감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스텔른은 다크 엘프들과 그리 멀

지 않은 곳에 있던 터라 갑자기 그 들의 기척이 없어진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다크 엘프 여섯 명을 대동 한 채로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섰다.

다크 엘프들의 시체를 발견했다.

세 명은 근처에서 죽어 있었고 카람탄 부족의 뛰어난 전사 게리힐 도 거리가 좀 있는 곳에 목숨을 잃 고 쓰러져 있었다.

스텔른을 비롯한다크 엘프들이 충격을 받고 얼굴을 굳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당했군."

" 예?"

"인간한테 말입니까?"

스텔른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게리힐은...

"그래. 게리힐은 강하지. 근데 그 게 다야. 결과가 이런데 뭘 부정하는 거냐?"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스텔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대로 출발한다. 변을 당한 전

우들의 시체는 나중에 돌아을 때 수습한다."

지금은 같은 부족원들의 죽음에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이 사달을 만든 장본인을 찾아야 했다.

그들이 땅을 박차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텔른이 다시 몸을 멈춰 세웠다.

다크 엘프들이 의아해하는 그때 스텔른이 나지막이 말했다.

"잠깐. 흔적... 인간의 흔적이 없다."

"다른 곳으로 샌 건가? 엘프 하 나의 기척만 느껴지고 있어. 그걸 쫓는 건 의미가 없지. 함정? 속임 수?"

스텔른이 턱에 손을 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정을 내렸다.

"쭉 간다."

"어느 방향으로요?"

"길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엘프를 쫓는다."

"하지만 인간이 세계수의 씨앗을.."

"인간은 종종 하찮은 꾀를 내곤 하지. 우리가 추격한다는 걸 알고 있다면 우릴 속이고자 무슨 방법을 썼을 거다. 보이는 것을 전부 믿지 마라."

스텔른의 명령에 다크 엘프들은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스텔른은 카람탄 부족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우물쭈물해서 괜 한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엘프의 기척을 쫓아가던 스텔른 과 다크 엘프들은 이내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찾던 인간 한 명이 우두 커니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스텔른은 의심부터 했다.

'함정인가?'

세계수의 씨앗을 지닌 인간의 레벨 측정은 진즉에 끝났다.

다른 뛰어난 장로가 펼친 고위 마법으로 파악한 인간의 레벨은 대략 100 이상 120 이하 정도.

그 레벨이라면 카람탄 부족에서는 딱 평균의 레벨이었다.

그런 인간이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니?

'방심할 수는 없지. 저놈은 게리 힐을 쓰러뜨렸으니.'

스텔른뿐만 아니라, 다른 다크 엘프들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유준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인간. 네놈이 우리 동족들을 죽였나?"

"응. 먼저 죽이려 하길래."

"우린 세계수의 씨앗만 받으면 되었다."

"난 주기 싫었고."

"곱게 죽이지 않겠다."

"세계수의 씨앗이 필요한 거 아니었어?"

"아이템을 얻는 방법이 하나뿐 인 건 아니지."

"뭐? 그게 무슨.... 설마."

"알고 있나?"

스텔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익숙한 모양새.

스크롤이었다.

정확히는 타깃 지정 아이템 스크롤.

[타깃 지정 아이템 스크롤]

등급 : 無

옵션 : 상대방을 죽이고 지정한 아이템 하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저 스크롤을 찢고 플레이어를 죽인다면 그 플레이어가 가진 아이템 중 하나를 가져올 수 있다.

타깃 지정 아이템 스크롤은 '신 들의 전쟁' 플레이 당시에 말이 많았던 아이템이었다.

유저가 어렵게 구한 아이템을 죽이고 그걸 뺏어 올 수 있는 아 이 템이었으니까.

대신 그만큼 구하기가 무척 어 려웠다.

그조차도 인벤토리에 90개 정 도밖에 없을 정도였다.

유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용케 그걸 구했네."

"이걸 아는 인간 플레이어는 거 의 없을 텐데. 신기하군.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행동도 잘 알고 있겠지?"

"어차피 타협할 생각도 없었잖 아?"

"네가 순순히 우리 요구에 따랐 다면 모를 일이지."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 해."

"...허. 말이 통하지 않는군."

세테른이 타깃 지정 아이템 스크롤을 찢었다.

[세테른 플레이어가 신유준 플레이어의 아이템 '세계수의 씨앗'을 타깃 아이템으로지정합니다.]

"이제 널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인벤토리만 믿고 설쳤던 거 같은 데 그것도 이제 끝이군."

세테른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유준도 따라 웃으며 말한다.

"오, 어떻게 알았어? 나 인벤토리만 믿고 있는 거."

그다음 유준의 행동에 세테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준이 밟고 있는 땅이 움푹 꺼 지며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한 것

이다.

세테른이 신속하게 이동해 확인 했다.

"구멍?"

새까맣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리 크지 않은 구멍이었다.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눈 인간의 모습 또한 찾을 수 없었다.

"귀찮게..."

세테른은 일말의 망설임도없이 그 구멍에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캉!

세테른의 몸이 알 수 없는 무언 가에 의해 멀리 튕겨 나갔다.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다크 엘프들이 당황해서 달려오는 그 순간에 세테른은 눈앞에 떠 오른 홀로그램 창을 보며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신유준' 파티가 던전 독점권 아이템을 사용해 독점한 던전입니

다. 이 던전에는 향후 일주일간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1화

25 화

[D급 히든 던전 '고룡이 잠든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유준이 방긋 웃었다.

히든 던전은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거기다 뒤따라온 다크 엘프들한테 빅 엿까지 선사했다.

'눈앞에서 놓쳤으니 열 엄청 받았겠지?'

심지어 상대는 그 귀한 타깃 지 정 아이템 스크롤까지 사용했다.

그 상태에서 자신을 놓쳐 버렸으니 그 분함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 으리라.

유준은 던전 독점권을 사랑스러 운 눈길로 바라봤다.

[던전 독점권]

등급 : 영웅

옵션 : 먼저 발견한 던전을 독점 할 수 있습니다. 효과는 일주일간 지속됩니다.

잘 안 쓰던 아이템이지만, 이번 엔 큰 도움이 됐다.

'그나저나 여길 다시 오네.'

감회가 새로웠다.

이곳 던전 클리어 보상이 어마어 마했다.

'만약 그때랑 같은 보상이 주어 진다면...

그때는 인벤토리를 활용할 필요 도없이 던전 밖에 있는 다크 엘프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으 리라.

'이곳 던전 하나만 보고 왔다. 제 발 보상이 같기를...

유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어둡지만, 앞이 아예 안 보일 정 도는 아니다.

온도도 딱 서늘한 정도로 낮아서 쾌적한 환경이다.

고룡이 잠든 동굴.

이 던전은 D급 난이도를 지닌 곳이었다.

히든 던전이라면 D급도 상당한 난이도였지만, 고룡이라는 무시무시 한 이름이 붙은 것치고는 난이도가

상당히 낮았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고룡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 쇠약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용.

혹은 드래곤.

하여튼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게 쉽다는 건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는 주어지는 보상에 비해 쉬운 편 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들어와 있던 메이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히, 히든 던전? 유준. 여기 히든 던전이에요?"

"그런가 보네요."

"알고 오신 거 아니었어요?"

"아니요. 뭐가 보이길래 그냥 도 박수를 던진 겁니다."

유준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메이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눈을 반짝였다.

"아, 그래도 우리 운이 진짜 좋 네요! 하필 도망친 곳이 히든 던전이라니!"

"그러게요."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우

리 둘이서 히든 던전에 들어온 거 면 더 큰일 아니에요? 던전 이름도 막 고룡이 잠들어 있다고 하고

메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를 본 유준이 너털웃음을 터 뜨렸다.

서로 안 지 얼마나 됐다고 꽤 친 해진 느낌이었다.

"뭐, 잘될 겁니다."

"너무 태평하신 거 아니에요? 밖에는 다크 엘프들이...

"어떻게든 되겠죠. 메이 말대로 우린 운이 좋잖아요."

"...이 사람 무서워."

유준은 이 던전을 이미 한번 클 리어한 전과가 있다.

심지어 그때는 캐릭터의 무력 수 준이 지금보다도 약할 때였다.

레벨만 높을 뿐, 아이템의 질이 나 능력치에서 지금과는 많은 차이 가 있었다.

그래서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 던전은 처음부터 세 갈래 길 이 나왔다.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왼쪽 길로

걸어갔다.

"자, 잠깐만요. 너무 무턱대고 걷는 거 아니에요?"

"가만히 있어도 해결되지는 않잖 아요. 뭐라도 해 봐야죠."

"그래도 좀 신중하게...

쫑알쫑알 잔소리하는 메이를 유준이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조용히 해 봐요.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면 없는 몬스터도 몰려들겠어요."

"아! 그러네요. 죄송해요."

유준은 아무 생각없이 왼쪽 길 로 온 것이 아니다.

'일단 몬스터들 잡고 레벨부터 올려야지.'

고룡은 최대한 나중에 잡는다.

나이가 들어 노쇠한 걸 떠나 죽 음 직전까지 갔다고 해도 명색이 용이다.

마냥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몬 스터는 아니었다.

왼쪽 길은 일반 몬스터들이 많이 나오는 길이었다.

그래서 여길 선택했다.

메이는 모르겠지만, 이제 대량의 몬스터가 등장할 것이다.

유준은 물약을 몇 개 꺼냈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함이 아니라 메이가 부상 입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수십 이상의 몬스터가 달려들면 메이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게 된다.

'뭐, 엘프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엘프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는 해도 메이를 지나치게 보 호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런 것들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안위였다.

그긍. 그긍.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땅에 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형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몬 스터들이 진격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뭔가가 와요!"

메이가 외치기도 전에 앞으로 뛰 쳐나갔던 유준이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푹!

끔찍한 외형의 괴물이 머리를 검에 꿰뚫리며 사망했다.

그 뒤를 따라 달리던 냄새나는 몬스터 '프렉탈'들이유준을 향해 덮쳐들었다.

유준은 황급하게 몸을 뒤로 내빼 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힘이 덜 실린 공격임에도 워낙 무기의 공격력이 막강하다 보니 괴물들의 몸이 두부 잘리듯 절단되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순식간에 여섯 마리를 처치할 때 쯤에 레벨이 하나 올랐다.

엄청 빠른 속도.

몬스터들의 레벨이유준보다 훨 씬 높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 고룡이 잠든 동굴에서 등장 하는 일반 몬스터들은 유준의 상대 가 되지 못했다.

서걱! 서걱!

유준과 메이는, 아니 정확히 말 하자면 유준 혼자서 빠르게 몬스터

를 학살하며 돌파해 나갔다.

'이렇게 쉽다고?'

유준이 스스로 감탄했다.

그조차도 그러했으니 뒤에서 지 켜보는 메이는 두말할 필요도없이 매번 매번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게 말이 돼?'

눈앞의 인간이 보이는 무위에 놀 라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 몬스터들의 공격이 닿 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손톱이 갑옷에 닿는다고 해도, 깨지거나 튕겨 나

가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반면 유준이 휘두르는 검을 받아 낼 몬스터는 없었다.

그러니 애초에 싸움이 성립하지 가 않는 것이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 며 사냥이었다.

'도대체 무슨 아이템을 꼈길 래...

단순히 아이템만 좋은 게 아니라 신체 능력도 레벨에 맞지 않게 무척 높았다.

얼떨결에 자신의 레벨도 하나 올

랐다.

한차례 전투가 끝나고 메이가 입을 열었다.

"유준... 뭐예요?"

" 뭐가요?"

"왜 이렇게 강한 거예요?"

"예? 무슨 질문이 그럽니까."

"분명 파티 창에서 나오는 레벨은 113인데.... 이상하잖아요."

"원래 레벨이 다가 아닙니다."

"그건 아는데 정도가 있죠."

저런 반응을 한두 번 볼 것도 아

니고 유준은 그냥 멋쩍게 웃어넘겼다.

"그나저나 제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서 괜히 미안하네요...

"괜찮습니다. 실전 감각도 키울 겸 혼자 싸우는게 저한테도 더 이 득이니까요."

유준은 1분도 채 쉬지 않고 다시 사냥을 나섰다.

왼쪽 길은 꽤 길게 있어서 거의 반나절 동안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돌파하고 나서야 그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쉽시다."

"왜요? 하나도 안 지치신 거 같은데."

"좀 지치긴 합니다. 거기다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가야 하잖아요."

쉬자고는 했지만, 유준은 금방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갈 길이 멀었다.

다시 던전 입구 근처, 즉 세 갈 래 길로 돌아온 유준은 가운데 길 앞에 섰다.

가운데 길은 함정 길이다.

몬스터도 나오지 않고 오로지 함 정만 발동하는 길.

한마디로 가선 안 되는 곳인데, 유준이 이곳을 가려는 이유는 간단 하다.

그곳에 아이템이 있기 때문이다.

메이가 그를 따라 가운데 길로 가려는데 유준이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접근을 제지했다.

"거기서 기다려요."

"네? 왜요?"

"앞에 함정이 엄청 많아요."

"그걸 어떻게 알죠?"

"감이죠. 높은 확률로 함정이 있을 겁니다. 괜히 둘이 들어가면서로 위험해지기만 하니까 저 혼자 가겠습니다."

"알겠어요."

유준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때,

쏴아악!

무언가를 밟거나, 어떤 장치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천장에서 가시 넝쿨이유준을 향해 쇄도해 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여러

차례 휘두르며 넝쿨을 조각조각 냈다.

'와, 기억이 나네 이게.'

플레이어가 되면서 육체가 초인 의 경지에 다다르고 그에 따라 기 억력이 무척 좋아진 탓일까.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 덕분에 그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활용하기 손쉬워졌다.

'애초에 신들의 전쟁을 했던 유저가 몇 안 되니...'

지금 플레이어들 최상위권에는 그가 아는 인물들도 몇 명 있을 터.

그들과의 조우가 벌써 기대가 되었다.

'그 전에 얼른 강해져야지.'

줄에 매달린 커다란 통나무 다섯 개가 사방에서 유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앞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세 개는 피하고 절묘한 궤적의 통나무 두 개는 검으로 베어 버렸다.

뛰어난 성능의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여 줘 서 너무 편했다.

모든 함정을 외우고 있는 것처럼

한발 앞서서 움직였다.

그렇게 그는 함정 길을 빠르게 돌파했다.

끝의 길에 도달한 유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있을 텐데...

함정이 나오는 구간은 끝났다.

그는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때 여기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아이템을 떠올렸다.

'그것 덕분에 과금 효율이 진짜 많이 높아졌었지.'

유준은 검집으로 이끼가 잔뜩 껴

있는 벽을 살짝 두드렸다.

스스슥.

잔뜩 녹슬어 있던 벽이 한 움큼 떨어져 나왔다.

돌이 조각조각 떨어지고 남은 공간에 황금색의 물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반지였다.

짙은 누런색, 그러면서도 광채를 잃지 않은 반지.

"오랜만에 보네."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이템 정보를 바로 확인했다.

[행운의 반지(전설)]

등급 : 전설

옵션 : 섭취하면 행운이 증가합니다.

옵션 내용은 별것 없다.

대충 섭취하면 행운이 증가한다는 내용.

아니, 반지를 먹으라는 것부터가 이상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행운이 증가한다는 내 용이다.

'이게 착용해서 옵션이 적용되는 거였으면 진작 차고 다녔을 텐데.'

장비 아이템이 아닌 게 좀 아쉽다.

대신 한번 쓰면 끝나는 소모 아이템이라서 착용 레벨 제한도 없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도 효과가 영구 지속이니까.'

유준은 반지를 깨끗이 닦고 한입에 삼켜 넣었다.

맛은 당연히 없었다.

금속을 입안에 넣은 것 같은 불쾌함.

그러나 곧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유준이미소를 지었다.

[행운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 메시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행운이 상승한다는 건 단순히 운 이 좋아졌구나 하고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막대한 보정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

지였다.

'그 효과를 체감해 본 장본인이 나니까.'

그리고 무언가를 얻게 하는 아이템을 사용할 때에도 행운 효과는 제대로 적용이 된다.

그리고,

'이걸 사용할 때가 온 건가.'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알약처럼 생긴 무언가를 꺼냈다.

[장시간 숙성된 선단]

등급 : 無

옵션 : 섭취할 시에 특성 하나를 추가로 얻습니다. 이때 얻는 특성은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에서 발견 한 히든 피스.

드디어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섭 취해 특성을 얻을 때가 된 것이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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