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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화 – 증명(2)

다음 날 티그리스를 비롯한 모든 검술 교관들은 연무장에 모였다.

준비물은 딱히 없었다. 그저 균형이 잘 잡힌 검과 연무장만 있으면 끝이었다.

베드리안은 균형 잡힌 검을 들고 티그리스 앞에 마주 섰다. 베드리안의 눈은

퀭 해 보였다.

'결국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어.'

베드리안의 고리는 4개로 티그리스와 동급이다. 하지만 어젯밤 거의 밤을 새

우며 티그리스의 심득을 모두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모두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2주차까지는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1주

차와 2주차를 강의하는 날이었으니 쪽팔릴 일은 없었다.

티그리스는 본 강의를 시작했다.

"내려치기의 이해와 파훼 강의를 맡은 검술 교관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다.

거두절미하고 수업을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다."

티그리스는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에 은은한 붉은색이 감도는 검.

얼마 전 황실의 2등 보고에서 받아왔다던 성물(星物) 샐러맨더의 검이었다.

티그리스가 검을 뽑은 채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검을 이용한 공격은 총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내려치기 올려치기 횡베기 사

선베기 찌르기. 세상의 모든 검식은 이 다섯 개의 범주 안에서 끝이 난다. 그

중 이번 학기에 제군들은 내려치기에 관해 배울 것이다."

티그리스는 베드리안을 보며 말했다.

"검을 내리쳐보게."

"···어떻게 말입니까?"

"부모님의 원수를 세로로 양단 낸다는 생각으로."

베드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뽑아 들었다.

'대충 내려치자.'

지금은 교관이 아니라 학생이다. 가까스로 고리 1개를 만든 학생처럼 어설프

게 하면 될 것이었다.

훙-!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티그리스도 만

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예상과 달리 고개를 저었다.

"다시."

"······?"

베드리안은 티그리스를 당황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다시?"

"제대로 내려치기를 해라. 대충할 생각이라면 이 강의를 나가도 좋다."

베드리안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신은 학생 신분이다. 고리가 4개인 교관이

아니라. 그런데 여기서 본심을 다하란 것인가?

"부모님의 원수를 상대로 그런 허접한 검술로 벨 것인가? 그런 검술론 썩은

나무토막도 잘라내지 못할 것이다. 살의와 진심을 담아서 내려쳐라."

베드리안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뚜둑-!

'그래 해보자 이거지?'

베드리안은 티그리스가 걸어온 시비를 받아들였다.

베드리안은 검을 들었다. 이번엔 살의를 담아서 검을 내리쳤다.

훙-!

묵직한 검풍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얼마나 강력했는지 연무장 끝에 있는 나

무들이 흔들릴 정도였다. 베드리안의 수준 높은 내려치기에 다른 교관들은 살

짝 놀란 듯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지금 이게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교관의 눈을 속일 생각하지 마라. 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베드리안은 열이 뻗쳤다.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에 넌 오른 엄지발가락에 힘을 풀었지. 그러면서 몸의 균형이 미세하

게 흐트러졌다."

"그건···!"

"실수라고 할 텐가?"

티그리스의 매서운 눈빛에 베드리안은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베드리안은 티

그리스를 시험할 생각으로 몸의 균형을 살짝 틀었다.

"마지막 기회다. 만약 이번에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퇴출하겠다."

베드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 미세한 차이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면

무슨 짓을 해도 다 알아차릴 것이 뻔했다.

'좋아. 해주지.'

베드리안은 이번엔 진심으로 나오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이 짓거리를 하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

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강의를 막을 거다.'

베드리안은 티그리스를 노려보며 검을 내질렀다. 묵직한 검풍이 아닌 살을 갈

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검풍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티그리스는 날카로운 검풍을 가벼운 횡 긋기 하나만으로 흩어냈다.

"나쁘지 않다."

베드리안은 머리로 피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나쁘지 않다고?'

이 내려치기는 단순한 내려치기가 아니었다. 베드리안이 20년간 검을 수련하

고 연구했던 모든 것이었다.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다만 양팔에 오러를 집어넣는 타이밍이 조금 아쉽다. 너무 성급했다."

티그리스는 검을 들었다.

"지금 이게 방금 네가 보여준 내려치기다."

훙-!

사방으로 날카로운 검풍이 퍼져나갔다. 날카로운 바람 하나가 베드리안의 손

목 보호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손목 보호구엔 희미한 흠집이 갔다.

'···미친.'

베드리안은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전 보여준 티그리스의 내려치기는 자신의 것

과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속도, 힘의 배분 그리고 오러를 근육에

집어넣는 타이밍까지 모두 똑같았다.

"내가 가르칠 4종류의 내려치기 중 묵직한 내려치기에 해당하는 검술이다. 오

러를 이용해 근육에 일부러 부하를 주어 검에 실린 힘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지.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 검술에 대해 한 가지 조언을 해주자면."

티그리스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디딤발인 왼발에 오러를 집어넣는 타이밍보다 양팔의 근육에 오러를 집어넣

는 타이밍을 미세하게 늦게 집어넣어라. 그렇게 하면···."

훼에에에엥!

티그리스의 검에서 발한 검풍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회오리치며 감겼다.

그리고 검신을 따라 미끄러지듯이 검끝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이고 모였

던 한줄기의 바람이 앞으로 쇄도했다.

날카로운 바람 한 줄기가 연무장을 가로질렀다. 바람은 연무장 끝에 있는 굵

은 나뭇가지를 베어냈다.

베드리안은 물론이고 모든 교관은 입을 떡 벌렸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검풍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베드리안은 어이가 없었다. 이 검술은 베드리안이 교관 생활을 하면서 독창적

으로 만든 검술이었다.

일명 폭풍매 검술.

검기 없이 오로지 검의 움직임만으로 날카로운 검풍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검

술이었다.

그러나 아직 미완성인 검술이었다.

검을 내지르면 검풍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하나로 어떻게든 모아보려고 연구했

지만 되지 않았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단번에 그 문제를 해결했다.

"어떻게 이 검술을···."

"좋은 검술이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더 연구를 한다면 황궁의 서고에 들

어가도 충분할 정도로 잠재가치가 높은 검술이다."

"아니 그러니까. 이 검술을 어떻게 배운···"

"배운 것이 아니다. 그냥 한번 보고 따라 한 것이지. 그리고 거기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은 것뿐이다."

"그러니까 검을 한 번 보면 그냥 따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베드리안은 진심으로 존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검식을 한 번 보고 따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티그리스는 다른 가문들의 검술을 보는 순간 완전히 카피할 수 있다

는 뜻이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너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중에 하나를

맞닥뜨린 것뿐이다."

오만한 말투로 느껴질 만했지만 베드리안을 포함한 모든 교관은 그것을 오만

이라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티그리스 자신조차도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티그리스는 오만하지 않았다. 오만이라 말하기엔 그의 재능은 천부

적이었기에. 그 누구도 티그리스를 향해 천재라고 말하지 못할 존재는 없었다.

티그리스는 모두 일어나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교관들을 보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냐고 물어보셨습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전 가능합니다."

티그리스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사람의 검술을 한 번 보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치면 될지도 모두 알 수 있습니다."

티그리스는 베드리안을 보며 말했다.

"그럼 다시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날 티그리스의 강의는 전 교관들에게 만점을 받았다.

* * *

네이션 학과장은 오늘 티그리스의 모의 강의 결과를 바스티얀 학교장님께 보

고드렸다.

바스티얀은 티그리스가 오늘 보여준 말도 안 되는 천재성을 듣곤 고개를 끄덕

였다.

"역시 그랬구먼."

"···알고 계셨습니까?"

바스티얀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 인재가 아니라면 내가 교관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리

고 티그리스가 천재라는 사실은 꽤 유명하지 않았나?"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 본 검술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니···."

베드리안이 새로운 검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모든 교관들이 알고 있었다.

몇몇 교관들에게 시연을 해주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조언을 구하기도 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그 조언은 '검풍을 하나로 모으게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검이 너무

느리다.' 등의 애매모호한 수준의 조언일 뿐이다.

검술을 그대로 따라 하려면 오러의 기동 순서와 검로, 힘의 배분 결정적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검술사의 감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티그리스는 그것을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이해하고 따라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티그리스는 제국 대학이 품을 인재가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제국 대학의 교관으로 썩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그럼 티그리스가 무엇을 하면 좋다고 생각하나?"

"저라면 황금 기사단에 들어갔을 겁니다. 황금 기사단에 들어가서 베르강 각

하에게 검을 지도받고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더욱 자신의 검술을 다듬었을 겁

니다. 티그리스는 기사들이라면 모두가 염원하던 9개의 고리를 완성할 수 있

을 겁니다."

바스티얀은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그것이 자네와 티그리스의 차일세. 나와 자네와의 차이기도 하지."

"···네?"

"자네도 알다시피 티그리스는 젊은 피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었네. 황금 기사단

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거지. 그런데도 왜 제국 대학을 선택했겠나?"

"···잘 모르겠습니다. 바스티얀 교장님께선 알고 계십니까?"

"나도 모르네."

네이션은 순간 벙쪘다.

"네···? 그게 무슨···."

"그러나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있네. 천재라면 아니지···. 7개의 고리나 7

개의 서클을 완성할 수 있는 자라면 남들이 다 정해진 길을 걸을 때 홀로 다

른 길을 걷네. 그들은 자신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 물

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바스티얀은 현자라고 불리기 전에 '가짜 소환 마법사'라고 불렸다.

바스티얀은 화염 마법과 아티팩트 제작으로 유명했지만, 식물이나 동물을 키

우거나 구경하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과 식물 연구에 더 시간을 할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7서클 대마법사가 되었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몬스터에 대

해 모르는 바가 없다고 하여 '현자'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럼 베르강은 어떻던가? 베르강은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

했다. 제국 대학을 다닐 당시에 출석수를 채우지 못해 유급을 무려 두 번이나

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다.

그러나 결국 베르강은 고리 7개를 완성시켰다.

범인들은 베르강과 바스티얀을 보면서 개탄한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소드 마스터가 되고 대마법사가 되는지.

노력은 자신들이 더 많이 했는데 왜 하늘은 저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인지.

그들은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르강과 바스티얀은 검

술과 마법 공부를 하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자신의 길을 잘 걷고 있는 걸세. 그러니 그의 걸음을 이해하려

들지 말게.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자신이 천재인 줄 아는 천재이니까."

"···그럼 앞으로 티그리스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티그리스는 본 강의를

제외하고 다른 강의의 보조 교관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8학점을 채

울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교관들은 모두 티그리스를 꺼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티그리스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

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교관들도 있었고, 티그리스의 재능이 부담스럽다며 보

조 교관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교관들도 있었다.

심지어 티그리스가 자신들이 연구하고 있는 검술을 베껴갈까 봐 걱정하는 교

관들도 있었다.

"흠···.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도록 하지. 다른 교관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데

티그리스를 강제로 보조 교관으로 삼을 수 없으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조심히 살펴 가게."

네이션이 나가고 바스티얀은 의자를 등에 기대고 앉았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건가."

티그리스는 3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었을 때 검기를 방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스티얀은 티그리스의 재능이 검술보단 오러 운용술에 더 치중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티그리스는 검술과 오러 운용술 두 개 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걸 숨겨 달라고 한 것일까?'

썩은 나뭇가지로 검기를 날려 바위를 베는 모습을 보여준 뒤, 침묵하기를 부

탁했다. 티그리스가 어마어마한 경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충 감만 잡고 있을 뿐 수학처럼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바스티얀은 자꾸 시선이 수정구로 향했다. 베르강에게 티그리스가 보여준 경

지에 대해 물어보면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침묵하

기로 맹세했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이거 참 궁금해 죽겠군···."

바스티얀의 탄식 어린 한숨이 메아리쳤다.

마법사에게 호기심을 참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25. 라칸

#025화 - 라칸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노란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할 무렵,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신입생 3천 명의 눈이 단상으로 향한다. 신입생들 대다수가 제국대학에 입학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개중 잿빛 머리칼의 사내는 작게 혼잣말을 했다.

"훗···. 역시 이세계가 최고야."

김유신, 아니 이제 그 이름은 버리기로 했으니 집어치우고···

라칸은 이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웹소설에서나 나오던 환생 트럭에 치였

을 땐 정말 아찔했지만 결국 3개월 만에 제국 대학에 가까스로 합격했다.

평민 출신에 전쟁고아 출신이라는 점이 좀 아쉽긴 했지만, '상태창'과 '포인

트 상점' 그리고 '시스템'이 있으니 금방 두각을 드러낼 것이다.

마치 웹소설의 주인공처럼!

<퀘스트 달성!>

제국 대학 입학식에 지각하지 않고 참석하기

50포인트 획득!

<현재 남은 포인트: 1,050포인트>

언제나 이 알림창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웠다. 한국에선 평범한 고등학생이

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세계에선 라칸이 주인공이었다. 이 포인트 상점과 상태창 그리고 시스템이

자신이 주인공이란 걸 증명했다.

'물론 포인트 모으는 건 쉽진 않았지.'

10km 달리기와 같은 일일 퀘스트를 깨는 것은 굉장히 귀찮고 힘들지만 노력만

한다면 깰 수 있었기에 보상은 그리 크지 않았고, 좀 포인트가 되는 이벤트들

은 난이도가 높거나 혼자 깰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라칸은 포기하지 않았다. 날치기범을 잡으라면 죽어라 뛰어서 잡았고,

이름 모를 귀족에게 손수건을 되돌려주라는 퀘스트가 뜨면 발품을 팔아서 되

찾아주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주인공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니까.

그렇게 뼈 빠지게 3개월 동안 고생해서 겨우 모은 포인트는 14,050포인트.

제국대학 입학시험 통과를 위해 10,000포인트는 고리를 하나 만드는 데 사용

하고, 1,000포인트짜리 <하급 제국 검술>을 배웠다.

나머지 3,000포인트는 최근 빅토리에 연쇄 실종사건의 해결을 위해 투자한 상

태였다.

이 지점에서 라칸은 사이다를 느꼈다. 다른 녀석들은 최소 5년 7년을 수련해

서 겨우 고리 하나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라칸은 불과 3개월 만에 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여기서 고리 하나를 더 추가하려면 30,000포인트나 더 필요하긴 하지만 아무

렴 어떤가. 확실한 것은 라칸은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었다.

그때, 라칸은 기묘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라칸은 누군가의 시선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기사는 아니었다.

단상 위에 한 교관이 자신을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 재수 없는 놈은. 지금 나 보는 건가?'

기생 오라비처럼 생긴 놈이었다. 그 녀석은 라칸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

는데, 제국 대학의 교관 정복을 입고 있었다.

사내는 라칸과 눈을 마주치자 시선을 돌렸다.

'···저 자식 뭐지? 네임드인가?'

겉모습만 봐도 평범하게 생기진 않았다. 다른 교관들보다 유난히 젊었고 다른

학생들도 모두 티그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으로 검술 학과의 교관이신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교관님이십니다."

라칸을 쳐다보던 사내는 앞으로 잠깐 나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뒤로 물러났다.

몇몇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진짜 티그리스가 검술 교관이 되었나 봐.

-토너먼트에서도 우승하고 4성 기사잖아. 우릴 가르칠 자격은 충분하긴 하지.

-그런데 진짜 천재긴 한가보다 19살에 고리를 4개나 만들다니.

'고리가 4개?'

이곳은 한국식 나이 계산법이 아니라 서양식을 따르고 있어서 생일을 넘겨야

나이를 쳐준다. 그러면 저 재수 없는 놈은 자신과 동갑인데 고리가 무려 4개

나 되는 놈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 나이로 따지면 티그리스가 3살 위긴 하지만···.

그런 세세한 것은 집어치우고 티그리스를 노려봤다.

'그렇군. 티그리스 저놈이 빌런이야.'

19살에 어떻게 고리를 4개나 만든단 말인가. 분명 악신 같은 존재와 계약을

맺은 게 분명했다.

저 녀석을 꺾고 이 황국에 암약한 나쁜 존재를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것

이 시나리오고 그것이 클리셰다.

우선 티그리스에 대한 주변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라칸은 귀를 열고 다른 사

람들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성격은 별로라는 소문이 돌던데···.

-능력 되고 얼굴 되는데 성격까지 좋으면 우리 같은 놈들은 어떻게 살라고.

분명 저 새끼 고추는 작을 거야. ···그래야만 해.

-야··· 우냐?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평판도 좋지 못한 모양이었다. 물론 남자들 사이에서

유독 더 안 좋은 것 같긴 한데 아무렴 어떤가. 녀석이 나쁜 놈이라는 것만 알

면 된다.

띠링!

그때 라칸의 귓가로 메시지가 떴다.

<돌발 퀘스트!>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에게 대련을 신청하고 옷깃을 베기.

보상: 10,000포인트

제한 시간: 6시간

'10,000포인트?!'

승리하라는 조건도 아니고 옷깃만 베어보라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지금 티그리스를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이 없으니 난이도

를 굉장히 낮춰 준 모양이었다.

'문제는 6시간 내로 대련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인데···.'

입학식이 끝나고 수강 신청 관련하여 교육이 있다고 들었다. 그때, 대련을 신

청하면 될 것 같았다.

"이것으로 입학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이후에 수강 신청 관련 교육 및 기숙

사 배정이 있을 예정이니, 신입생들은 각 교관과 선배들의 안내 아래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칸은 썩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포인트를 벌 시간이다.

* * *

검술학과 신입생들은 총 150명이었다.

그중 티그리스의 눈길을 끄는 인재는 총 둘이었다.

하나는 아이린이고 다른 하나는 라칸이었다.

아이린 데 벨프.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칼에 굳게 닫힌 입술, 신경이 항상 날카롭게 서 있는

듯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있었고, 검신이 그녀의 어깨까지 올라오는 묵빛 대

검을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들지도 못할 대검을 그녀는 붕대로 둘둘 둘러싸곤 크로스

백을 메는 것처럼 옆으로 매고 다녔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아이린의 모습에 꼴불견이라며 비웃었지만, 검을 맞대보

면 절대로 웃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린의 팔다리는 상대적으로 얇고 근육량이 적어 보이지만 그녀의 오러 보

유량은 남들보다 최소 세 배 이상 많았기 때문에 저 무지막지한 대검을 이쑤

시개 휘두르듯이 휘둘렀다.

다음은 라칸.

성은 없다.

그는 평민이고 낡고 추레한 검을 들고 다녔다.

허구한 날 다른 녀석들과 결투를 벌이고 학교에 낙서하거나 여학생들에게 고

백하고 다니는 가볍고 해괴한 녀석이었지만, 몇 달간 그를 지켜보지 않으면

갑작스레 성장해있었다.

하지만 검술엔 재능이 없었다.

오러 고리를 1개에서 3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노력이고 4개에서 6개까지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오러 운용술의 재능이다.

7개에서 8개까지가 심득의 경지, 머나먼 우주에서 보면 먼지만큼이나 작은 철

쪼가리에 불과한 검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마스터의 경지다.

그는 어떻게든 6개까지 고리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심득도 얻을 수 없었기에

7개의 고리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6개의 서클을 만드는 데

시간이 덜 걸린 것 같으니 마법엔 조금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라칸은 결국 7서클에 오르지 못했다.

그 무엇도 극에 닿지 못한 비운의 마검사였지만, 라칸은 괴상한 능력으로 티

그리스를 과거로 보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켜볼 가치는 차고도 넘쳤다.

한창 베드리안이 수강 신청하는 법을 알려주는 사이, 샤를로트가 조심히 다가

와 물었다.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샤를로트는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존댓말을 하기가 정말 죽어도 싫었다. 하

지만 티그리스는 교관, 샤를로트는 3학년 과대에 불과했다.

'어차피 2년이나 더 겪어야 할 일이잖아.'

샤를로트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요?"

'요'자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티그리스는 그냥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4시 50분이다."

"하."

샤를로트는 가소롭다는 듯이 재수 없게 웃었다.

"나는 3시 50분에 일어났는데. 그럼 몇 시에 주무셨나······요?"

"10시 반이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지?"

샤를로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쭉 폈다.

"전 11시 반에 잠들거든요. 그때까지 검을 수련하고요. 곧 따라잡힐지 모르겠

네요?"

"······."

할 말이 없었다. 샤를로트가 원래 이렇게 유치한 성격이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아예 없던 일은 아니군.'

샤를로트는 회귀 전에도 티그리스를 따라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물론 지

금보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이고 말투도 거칠었다.

그때의 험한 말을 들을 바엔 차라리 이렇게 유치한 게 나았다.

"목표는 높게 잡는 편이 좋긴 하지."

"당신이 높다고 생각해요? 하. 전혀 안 그렇거든요? 10년 후에는 당신이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정도로 높이 올라가 있을 거예요."

'10년이라···.'

10년 후에도 샤를로트와 티그리스가 살아있다면, 인류가 승리를 쟁취했을 것

이다.

"···정진하도록. 그래도 잠은 충분히 자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거 벌써 견제하시는 건가요?"

티그리스는 샤를로트의 다크 써클을 보며 말했다.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훈련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적어도 6시간 정도 자두는 편이 좋다."

"그러면서 나보다 일찍 일어날 거죠? 다 알고 있어요."

"······."

이 한심한 대화가 슬슬 질려갈 때쯤 모든 기초 교육이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교관 소개였다.

"입학식 때 소개 했었지만 다시 한번 교관진 소개를 진행하겠다. 검술 교관은

총 여섯 분이다. 우선 이번 년도에 새로 취임한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교관

님이다."

티그리스는 단상 위로 올라왔다. 티그리스가 단상 앞에 서자 학생들은 오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본래라면 자신들과 같은 기수로 들어왔어야 했지만 자신들은 학생, 티그리스

는 교관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다."

티그리스는 담백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뭔가 더 없나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티그리스는 그 말 만하고 내려왔다.

그때, 한 신입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교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티그리스는 단상을 내려오다가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손을 번쩍 든 신입

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라칸이었다.

라칸은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티그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귀족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평민 고아 출신이건만 녀석은 언제나 저렇게 당당하게

살아갔다.

"말해보게."

라칸은 일어나서 말했다.

"제 소원이 하나가 있는데 바로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교관님과 대련을 해

보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검을 맞대볼 수 있겠습니까?"

던져진 돌멩이에 호수가 물결을 치듯 신입생들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

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담긴 표정들이었지만 공통점으론 바로 호기심이었다.

정말로 티그리스가 강할까? 강하다면 얼마나 강할까? 우리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일까?

티그리스 또한 궁금했다.

제국대학에 갓 입학했을 당시 라칸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라칸이 제국 대학을 다닐 당시에 티그리스와 단 한 번도 대련을 해본 적이 없

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혹시 녀석에게서 검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티그리스는 라칸을 성장시킬 수 있다.

"자네의 이름이 뭐지?"

"라칸입니다!"

"좋다. 자네의 호승심을 높이 사지. 대련에 응해주겠다."

티그리스는 베드리안을 쳐다봤다. 베드리안은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며 한숨

을 작게 내쉬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늘 일정이 마치는 대로 대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칸은 자리에 앉았고 학생들은 모두 라칸을 흘금흘금 쳐다봤다.

라칸은 살면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학생들은 물론

이고 교관들도 심지어 선배들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라칸은 자신이 연예인 체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관심이 꽤 즐거웠다.

'아, 맞다. 일단 포인트를 투자하고···.'

라칸은 포인트 상점에 들어가 1,050포인트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둘러봤다.

그러나 1,000포인트로 살 수 있는 것 중에 쓸모 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럴 바엔 포인트로 능력치나 올리자.'

라칸은 작게 중얼거렸다.

"상태창."

□이름: 라칸

□체질: 오러 고리 1개

□스테이터스

[근력: 하(10/100)]

[체력: 하(28/100)]

[내구: 최하(3/100)]

[민첩: 하(2/100)]

[마력: 중하(3/100)]

□기술: Lv. 1 제국 제식 검술, Lv. 3 하급 탐색, Lv.1 하찮은 오러 운용술

라칸은 과감하게 마력에 모두 몰빵했다.

<마력이 성장하셨습니다.>

[마력: 중하(13/100)]

'어중간한 올라운더 보단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좋겠지.'

그때 옆에서 누군가 라칸의 팔뚝을 툭툭 쳤다.

"너 이름이 라칸이라고?"

금발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사내였다. 거기에 금목걸이까지 했다.

라칸은 그가 부잣집 사람이라는 것보단 이런 캐릭터의 성향을 먼저 떠올렸다.

'금태양···.'

라칸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렇게 대놓고 양아치처럼 생긴 녀석을 보

면 학창 시절이 떠올라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내가 쫄 필요 있나? 어차피 난 강해질 텐데?'

라칸은 움츠린 어깨를 피고 말했다.

"어. 맞아."

"난 테일러야. 평민 주제에 꽤 담이 큰 것 같은데?"

"난 그냥 평민이 아니라 기사가 될 몸이니까. 기사라면 이 정도 배짱은 있어

야 하지 않겠어?"

"호오~ 너 꽤 마음에 드는데?"

테일러는 재미있다는 듯이 클클 웃었다. 왠지 잘 나가는 녀석 옆에 있으니까

라칸은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너랑 같이 지내면 꽤 재미있을 것 같네."

그때, 교관진들 소개가 모두 끝났다. 자동으로 학생들과 교관들은 모두 라칸

과 티그리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라칸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막상 진짜 대련을 하려니 긴장이 되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와 싸워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나 이 세계로 왔을

때나.

양아치를 때려눕히라는 퀘스트가 와도 바로 그냥 무시했다. 아직은 저 떡대들

을 물리칠 수준이 아니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잘하고 오라고."

테일러가 등을 툭 쳤다.

어느새 자신은 티그리스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티그리스는 생각보다 덩치가 컸다.

위로도 길쭉하고 근육도 적당히 잘 발달해서 MMA 라이트에서 웰터급 선수를

보는 듯했다. 게다가 얼굴도 모델급으로 잘생기고 서 있는 자세도 범상치 않

았다.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진 기분이었다.

"검을 뽑아라."

티그리스의 말에 라칸은 살짝 떠는 손으로 검을 뽑았다. 무려 1실버나 주고

산 검이었다. 이 검을 사려고 한 달 동안 저녁을 못 먹었다.

"그 검밖에 없나?"

"···네. 그렇습니다."

"검이 형편없군."

라칸은 순간 욱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 법이라고 들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검을 사용해라."

티그리스는 자신이 매고 있던 샐러맨더의 검을 검집 채로 던졌다. 라칸은 순

간 당황해서 자신의 검을 던지듯이 놓고 샐러맨더의 검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뒤에 있던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샤를로트 네 검을 빌려다오."

"내가 왜···! 으···. 알았어요."

샤를로트는 버릇처럼 반항하려다가 티그리스의 진지한 눈빛을 보곤 검을 넘겼다.

"···이 나가면 알아서 해요."

"그럴 일 없다."

라칸은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검이 뽑히는 느낌이 마치 비단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검에 대해 잘 모르는

라칸도 굉장한 검이란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티그리스와 라칸은 서로 대치했다.

라칸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는 주인공이다. 나는 주인공이다. 나는 주인공이다. 티그리스는 빌런이고

나는 주인공이다.'

자기 최면에 가까울 정도로 생각했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화려한 하렘 아카데미 물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럼 시작하지."

"으아아아아!"

라칸은 티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상상 속에서는 마왕에게 달려드는 용사의 모습과 똑같았다.

라칸과 티그리스의 사이가 세 발자국 정도 가까워졌을 때, 라칸은 검을 올려

치려 했다.

그러나 티그리스의 검이 먼저 번뜩였다.

퍽!

라칸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기절했다.

작가의말

본래 오후 8시로 예정이 되어 있었지만 12시간정도 조금 더 일찍 올렸습니다!

참고로, 유입이 너무 적어서 이름을 좀 계속 바꿔보려고 합니다.

일단 생각나는 것은

천재는 아카데미를 생략한다.

천재는 2회차부터 시작이다.

오만한 천재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엑스트라는 주인공 대신 회귀했다.

이렇게 네 개가 있는데 어떤 것이 좋을까요...?

---

'문제는 6시간 내로 대련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인데···.'

중복 내용 삭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6. 아이린

#026화 - 아이린

라칸의 움직임은 정말로 형편이 없었다. 일곱 살짜리 갓난아이가 장난감 칼을

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무언가 숨겨진 수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럴 기미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라칸은 역시 검에 재능이 없었다.

그렇기에 티그리스는 라칸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냥 기절시켜버렸다.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박히는 검.

라칸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학생들의 시선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저렇게 한 번에 기절시키면 대련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그냥 깝치지 말라 이건가?

티그리스는 샤를로트에게 검을 되돌려주었다.

"···이럴 거면 왜 대련을 받아들인 거예요. 검을 한 번이라도 휘두르게 해줘

야 할 거 아녜요."

"무의미하다."

녀석이 검을 휘둘러봤자 다른 이들에게 놀림감이 될 것이 분명했다.

라칸은 티그리스의 마음속엔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영웅이다. 영웅이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전우였던 라칸의 명예를 살려주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샤를로트는 재수 없다는 듯이 티그리스를 쏘아봤다.

"하! 참나. 처음부터 검을 잘 다루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 뭔가를 기

대한 내가 잘못이지."

샤를로트는 신입생들을 보며 소리쳤다.

"거기 뭐해! 어서 양호실로 데려가. 양호실은 저 건물 안에 있어."

"아! 넵!"

몇몇 학생들이 기절한 라칸을 업고 의무실로 달려갔다.

그때, 몇몇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저도입니다!"

티그리스는 베드리안을 봤다. 베드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숙사 배정도 다 끝났고 티그리스 교관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베드리안을 비롯한 모든 교관들은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

무리 티그리스가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고 하나 녀석들의 마음에 작은 의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의심을 털어버릴 자리가 마침 마련되었으니 이 자리에서 모두 끝내버리는

편이 나았다.

"방금 손든 인원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도록."

숫자를 세어보니 17명이었다. 개중에 티그리스의 기억에 남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원 검을 뽑아라. 한 번에 상대해주지."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17명을 한 번에 상대한다는 것

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진지합니다! 교관님!"

"나를 진지하게 만들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춰라. 너희의 실력은 내

발끝에도 닿지 않는다."

"···아무리 교관님이라고 하시더라도 17명을 동시에 상대하진 못하실 겁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검을 뽑지 않아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줄 아는

능력도 기사로서 갖춰야 할 소양이다."

티그리스는 땅에 떨어진 샐러맨더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곤 조금 전 라칸이 들

고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잡철로 만들어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 쓰레기였다. 노르베르드 가문이 쓰는

수련검보다 못했다. 하지만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충분했다.

"나를 상대하고 싶은 자는 모두 검을 뽑아라. 이 이후로는 대련을 신청해도

받아주지 않겠다."

"젠장!"

대련을 신청했던 인원들은 모두 검을 뽑았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몇몇 학생들도 검을 뽑으며 들어왔다.

숫자를 세어보니 총 24명이었다. 그중 아이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린은

자신의 체중과 비슷할 정도로 무거운 대검을 티그리스를 향해 치켜들었다.

그 기세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차분했고 정제되어 있었으며 자세는 깔끔했다.

"그럼 시작하지."

티그리스는 천천히 학생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냥 산책하는 것처럼 녀석들에게 다가가자 몇몇 자존심이 강한 학생들은 티

그리스를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그들의 검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고 정교하지 못했으며 감정이 과도하게

개입해 힘이 너무 들어갔다.

티그리스는 몸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녀석들의 검을 모두 피해냈다.

티그리스의 오른손이 번뜩였다.

퍽! 퍽! 퍽!

검면이 녀석들의 관자놀이와 턱, 급소에 날아가 박혔다. 녀석들은 마치 실 끊

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다음."

"으아아아아!"

흥분한 학생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녀석들의 검을 맞아주

지 않았다. 검으로 막을 가치도 없는 검술이었다.

그저 티그리스는 피하고 가격했다.

'가르칠 것이 많아 보이는군.'

예상했던 대로 신입생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샤를로트, 아이린, 리니

아, 고든과 같은 천재들이 이 세상에 그리 많았다면, 인류는 로타와 아르펨에

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티그리스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어중간한 재능을 갖춘 이들을 쓸모있는 기

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어느새 23명이 모두 땅에 널브러졌다.

'한 명. 아이린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티그리스의 기감에 무언가가 걸렸다.

횡으로 날카롭게 들어오는 묵직한 무언가.

아이린의 대검이었다.

아이린의 대검은 수풀 속에 숨어있다가 발톱을 치켜세우고 달려드는 사자의

이빨처럼 무자비했다. 티그리스는 처음으로 방어했다.

쩌어엉-!

대검이 반탄력으로 뒤로 날아갔지만 라칸의 싸구려 검 또한 산산조각이 났다.

티그리스는 곧바로 검을 버리고 샐러맨더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이린의 후속 공격이 더 빨랐다.

쩡-!

티그리스는 칼집에서 완전히 빼지도 않은 채 아이린의 검을 막아냈다.

주변 사람들은 티그리스의 기교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아이린은 여전히

차분했다. 오히려 이 유리한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난격.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목숨을 빼앗을 듯이 살초를 흩뿌렸다. 하나하나가 묵직

했고 날카로웠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식은땀이 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3초 남짓한 시간에 무려 10회를 내지른 아이린의 난격에도 티그리스는 당황하

지 않고 모조리 막아냈다.

주변 사람들이 쑥덕이기 시작했다.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이 말은 티그리스와 아이린 둘 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저 커다란 대검으

로 난격을 하는 아이린이나 그것을 칼집에서 뽑지도 않은 채 완벽하게 막아낸

티그리스나 모두 괴물 같았다.

아이린은 입술을 씹었다.

티그리스의 무너진 자세가 돌아왔다. 자세가 돌아왔다는 뜻은 반격이 들어온

다는 뜻이었다.

티그리스의 검이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아이린의 허리를 양

단 낼 듯이 들어왔다.

아이린은 대검을 땅에 박아 막아냈다.

아이린의 판단은 옳았다.

그그그그긍-!

아이린의 대검이 마치 봄철 농부의 괭이처럼 땅을 헤집었다. 만약 검을 들어

서 막았다면 아이린은 하늘을 날았을 것이었다.

아이린의 어깨가 부서질 듯이 아팠다. 그러나 쉴 틈이 없었다.

아이린은 이어서 들어오는 공격에 대비했다.

이번엔 종베기였다.

아이린은 대검을 땅에 박은 채로 티그리스의 검을 비껴 막았다. 티그리스의

검이 대검의 검면을 타고 흘렀다.

기회였다.

아이린은 앞으로 몸이 쏠린 티그리스의 옆구리를 향해 발차기를 했다. 오러가

가득 담겨서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린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티그리스는 종베기를 할 때, 오른손 하나로 종베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티그리스의 왼팔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옆으로 날아오는 아이린의 다리를 왼팔로 올려 치자 아이린의 몸은 붕 떴다.

공중에 뜬 상태로 아이린은 다른 발로 머리를 노렸지만, 티그리스는 그런 얕

은 수에 당해주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뒷걸음질 치는 것만으로 피했다.

아이린은 땅에 내려와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검을 집어넣고 있

었다.

"대련은 여기까지 하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아이린의 입이 열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옆구리를 보거라."

아이린은 자신의 옆구리를 봤다. 그녀의 옷이 길게 잘려 나가 있었다.

"···언제."

아이린은 보지 못했지만 멀리서 봤던 샤를로트는 분명히 봤다.

티그리스가 뒤로 피하면서 검을 빠르게 내지르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은 보지도 못했을 쾌속이었다.

티그리스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의례적으로 물었다.

"이름이 뭐지?"

티그리스의 물음에 아이린은 답했다.

"···아이린입니다."

"아이린. 왜 대검을 사용하는지 말을 해줄 수 있나?"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말의 저의를 눈치챘다. 아이린의 신체 구조상 대검이 맞

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린은 대검을 고집하고 있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아이린의 지독한 역린이기에 학교장이 와서 물어봐도 답해줄 수 없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곤 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티그리스는 아이린이 왜 대검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겠다."

대신 티그리스는 품속에서 수표를 끊어서 주었다. 금액은 10실버였다.

"옷을 잘라서 미안하다. 받거라."

옷 하나를 망가뜨렸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아이린은 반사적으로

거절했다.

"괜찮습···"

"네 대검의 수리 비용이기도 하다."

아이린은 자신의 대검을 봤다. 대검 한가운데에 큼직하게 이가 나가 있었다.

"미들타운 234-1번지에 난장이의 대장간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이면 네 대검

을 말끔하게 수리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는 제가 알아서 수리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아이린. 귀족이면 귀족답게 예법을 따라라."

아이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높은 사람이 하사하는 돈을 세 차례나 거절하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다. 두

차례가 제일 적당하고 세 차례 권했을 때 받는 것이다."

티그리스는 왜 아이린이 금전을 받는 걸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몰락한 가문의 귀족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에게 동정받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그녀에게 동정이 아닌 귀족의 예법을 이야기했다. 받지 않

는다면 귀족의 예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싫었다.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눈을 봤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티그리스의 눈은 동정 어린 눈빛이 아닌 알 수 없는 감정

이 뒤섞인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 눈빛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이린은 공손히 티그리스의 수표를 받았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진하도록."

티그리스는 그 말을 뒤로 떠났다.

* * *

입학식 때 일어난 신입생 기강 다지기 사건(학생들은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

이후 3일이 지났다.

신입생들은 수강 신청 용지를 학과 사무실에 모두 제출했다.

티그리스도 학과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사무원에게 '내려치기의 이해와 파훼'

에 수강 신청한 사람들의 신상 명세를 받았다.

"이게 전부인가?"

"아직···! 남았습니다."

쿵-!

종이 박스 두 개가 티그리스 책상 위에 올려졌다.

총 353명.

검술학과 정원이 613명이니 거의 절반 이상이 티그리스의 강의를 신청한 것이

었다.

무려 4학점인데다가 티그리스가 진행하는 강의니 많이 신청을 할 것이라 생각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이 몰릴 줄은 티그리스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이 많은 사람들을 티그리스 혼자 가르칠 순 없었다. 단순히 칠판 위에

글을 쓰면서 가르치는 역사학 시간도 아니고 검술 강의니까.

티그리스는 정원을 30명 정도로 보고 있었다.

사무원은 땀을 훔치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이거 참 매우 많네요. 이걸 집무실까지 옮기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원래는 티그리스가 직접 가겠다고 했지만, 사무원 레미는 직접 옮겼다. 티그

리스와 말을 섞어보기 위함이었다.

"혹시 차나 음료수가···"

"이걸 학과 사무실에 붙여주겠나?"

티그리스는 신청자가 몰릴 것을 대비해 준비해둔 것이 있었다. 사무원은 불만

스러운 표정으로 티그리스가 건네준 종이를 읽었다.

"테스트···? 테스트로 사람을 뽑으시겠다는 건가요?"

"그렇네. 거기에 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으니 준비물을 지참해서 가져오라고

전해주게."

수강인원이 갑작스레 많이 몰릴 경우 교관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가르

칠 수 있었지만, 티그리스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뽑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만 가르칠 예정이었다.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다면, 그것이 설령 라칸이라고 할지라도 떨어뜨릴 예

정이었다.

"알겠습니다. 학과 사무실과 기숙사 정문에 붙이겠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시

간 되시면 차나 한잔···."

"이제 곧 퇴근 시간이라서. 다음에 마시지."

"···꼭 입니다! 꼭이요!"

사무원은 티그리스와 약속을 잡았다는 것이 그리 기쁜지 헤벌레 해졌다.

티그리스는 그런 사무원을 뒤로하고 퇴근했다.

그날 티그리스의 수강 신청 공고문이 붙었다.

<공고문>

내려치기의 이해와 파훼를 신청한 모든 학생들은 3월 1일 저녁 7시까지 레미

올라 연무장으로 집합할 것.

테스트를 통해 수강인원을 결정할 예정이니 빠짐없이 준비물을 지참해서 오길

바람.

준비물: 깨끗한 종이와 펜.

열심히 붙인 레미 사무원은 티그리스와 차 한잔할 생각에 기뻤지만, 그 이후

로 티그리스는 단 한 번도 레미를 부르지 않았다.

* * *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말대로 미들타운 234-1번지에 위치한 난장이의 대장간으

로 향했다.

보통 이런 대장간과 아티팩트 제작 시설은 퍼플 타운에 위치하는 것이 맞았지

만, 주 고객층들이 귀족이나 기사들과 같은 고위 계층이라 미들타운에 있었다.

땅-! 땅-!

대장간들이 몰려있는 곳이라 사방에서 망치질 소리가 났다. 아이린은 이런 대

장간 소리가 익숙했다. 아이린이 황도로 내려오고 나서 대장간에서 알바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린은 난장이의 대장간 앞에 섰다. 낡고 허름해 보였지만 가판대 위에 올

려져 있는 검과 방어구는 질이 굉장히 좋았다.

이 난장이의 대장간은 이 대장간 거리에서도 유명했는데, 이곳 주인이 자신

마음에 드는 사람의 검만 고쳐주거나 만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귀족이 돈을 한 보따리 싸가지고 와도 사내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면

아예 만들어주질 않았다.

아이린은 대장간 문을 열고 들어갔다. 후끈한 열기가 아이린의 뺨을 달아오르

게 했다.

"뉘쇼."

난장이의 대장간이라는 말 그대로 아주 작지만 단단하게 생긴 사내가 아이린

을 쳐다보지도 않고 담금질했다.

"검을 고치러 왔습니다."

사내는 아이린이 들고 있는 대검을 흘금 보더니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댁이 쓰는 물건이오?"

보통 아이린처럼 작은 체구의 여자가 대검을 들고 있으면 이상하다고 여길 법

하지만 사내는 단번에 아이린이 쓰는 대검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검 손잡이에 묻은 손때가 아이린의 작은 손과 일치했고, 거기에 아이린의 대

검에서 아이린의 오러의 향기가 짙게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주인이 도중에 바뀐 모양이군."

아이린은 흠칫했다. 사내는 아이린이 움찔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연이 있는 물건인가 보군. 좀 보지."

사내는 망치와 검을 내려놓고 아이린에게 다가왔다. 아이린도 작은 체구긴 하

지만 아이린보다 조금 더 작았다.

마치 전설 속 드워프 같았다.

사내는 검신을 둘러싼 하얀 붕대를 모두 벗겨냈다.

"검을 애지중지 잘 관리했군. 이런 대검을 아기 다루듯이 관리하기란 쉽지 않

을 텐데."

"고칠 수 있나요?"

"마침 흑철이 남은 게 있어서 메꾸는 것은 가능하겠군. 그런데···."

사내는 아이린을 쳐다봤다.

"왜 대검을 사용하는 거지?"

-왜 대검을 사용하는지 말을 해줄 수 있나?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말과 이 대장간 사내의 말이 겹쳐서 들렸다.

아이린은 입술을 씹었다.

분명 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흉터를 애써 만질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

고, 거석 같은 사내의 눈동자를 보니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린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눈빛이었다. 그건 복수심에 속이

썩어들어가는 자의 악귀 같은 눈빛이었다.

"전 벨프 가문의 후계자···. 아니 벨프 백작이 될 사람입니다."

벨프 백작 가문.

2년 전 '혈귀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진 가문의 혈통을 잇는 자.

아이린 드 벨프였다.

그녀는 아빠와 오빠를 죽인 혈귀를 죽이고, 무너진 가문을 이 검 한 자루로

다시 세울 생각이었다.

작가의말

어제 술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갑자기 조회수가 3~4배로 뛰고 선호작 수도 2.5배로 뛰었기 때문이죠.

정말로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참고로 제목을 바꾸는 것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유입자가 많이 는 이 시점에 이름을 바꾸면 들어오신 분들이 헷갈리

실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당분간 유입량을 지켜보면서 이름을 바꾸겠습니다.

그 대신 시간대를 바꿀 예정입니다.

매일 아침 8시에 글이 올라올 예정이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7. 테스트

#027화 – 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