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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AND 147

제146화

올리비아가 양팔을 허리에 올리고는 새초롬하게 그를 흘겨보았다.

"우린 맹약자인데,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몸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계약도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요?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건…."

그렇게 한창 목소리를 높이다가 올리비아는 순간, 아, 하고 멈칫했다.

자신의 태도가 과했다는 걸 인지한 모양이다.

살짝 뺨이 붉어졌다.

"무, 물론, 제가 이러는 건 맹약자의 안위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지, 다른 의미는 없으니 착각하지는 마세요."

"그래, 그래."

"어, 얼른 들어가세요. 몸 회복에 좋은 보약 요리들을 준비해 놓으라고 했으니."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줘도 되는데."

"마, 말했잖아요. 당신은 제 맹약자일 뿐 아니라, 우리 법국의 은인이니 문제가 생기면 안 되어서 그러는 것일 뿐이에요."

크리스는 쿡쿡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호의를 잘 받도록 하지. 네 맹약자이자, 은인으로서 말이야."

등을 돌려 멀어지는 크리스를 보며 올리비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실 그녀도 최근 크리스티앙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일렁였다.

혹시 이게 연심인가 하는 고민도 했다.

크리스티앙은 마인이란 점을 제외하면 누가 봐도 매력적인 이였으니까.

이번 일로 많은 도움을 받은 터라 마음을 뺏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하지만 올리비아는 딱 잘라 그 가정을 부정했다.

'연심 같은 건 절대로 아니야.'

도리어, 이건.

"…오빠."

이상하게 올리비아는 저 마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오빠를 보고 있었다.

* * *

몸을 회복하면서 추가적인 일을 하였다.

정확히는 차기 법왕이 된 올리비아가 법국을 장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더 정확히 말해, 법국의 썩은 놈들을 도려내 버리는 데 손을 보탰다.

'이런 건 내 전문이니까.'

크리스의 머릿속에는 법국의 썩은 놈들이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미에크의 경우처럼 훗날 골드 크로스를 뒤엎을 정도로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이들도 많았다.

증거를 확보해 올리비아에게 넘겼다.

차후 올리비아는 이 증거들을 이용해 법국의 썩은 놈들을 잘라낼 거다.

살짝 염려는 되었지만, 잘 해낼 거라 믿었다.

'옛날의 힘없는 올리비아가 아니니까.'

단순한 후계였던 때와는 달랐다.

올리비아는 이제 법국의 최고 권력자인 법왕이 되었다.

또한, 최근 흑사병과 타천성의 강림을 막은 공으로 백성들의 영웅이 되어 막강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법국을 쇄신하는 데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으니, 법국 그리고 골드 크로스는 앞으로 변해갈 것이다.

크리스는 거기에 올리비아가 다른 골드 크로스의 강국에 휘말리지 않게 추가적인 도움을 주었다.

'약점이 있는 건 법국뿐이 아니니.'

각 국가의 치명적인 치부를 움켜쥐게 했다.

올리비아의 칼이 될 수 있을 거다.

올리비아도 도움만 받은 건 아니었다.

크리스에게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이건?"

"…열어보세요."

천을 풀어본 크리스는 놀란 얼굴을 했다.

성검(聖劍)이었다!

그루나데처럼 하자가 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법국의 비고에 보관되어 있던 거예요. '에른힐트'라고 해요."

"이런 걸 내주어도 되는 건가?"

"당연히 안 되죠. 하지만 법왕인 저밖에 열 수 없는 비고에 있던 거라 발각될 일은 없을 거예요. 어차피 오랫동안 안 쓰던 물건이기도 하고요."

최상급 성검은 아니었다.

그런 성검들은 법국 내에서도 중요한 상징물로 취급되니 반출할 수가 없다.

그래도 크리스에게 어마어마하게 도움이 될 물건이었다.

"고맙군. 잘 쓰겠다."

그것 말고도 올리비아는 또 하나의 선물을 주었다.

정확히는 크리스를 위한 선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다.

저주받은 왕자 '크리스'의 억울한 누명을 세상에 밝힌 거다.

어떤 거짓도 없이 진실을.

전 법왕 펜타겔 3세가 시스타냐 황녀와 크리스를 모함했고, 둘에게는 어떤 죄도 없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전 오라버니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싶어요."

'…의미 없는 일인데.' 아니다.

의미 없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전 삶 그를 괴롭혔던 누명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니까.

무엇보다 어머니의 명예도 회복하게 되었고.

"...."

저주받은 왕자의 진실이 밝혀진 반향은 생각보다 컸다.

카른 제국 황실에서 즉각 반응한 거다.

그의 어머니 시스타냐 황녀는 카른 제국 전대 황제의 가장 사랑받는 딸이었다. 현 황제의 가까운 누이이기도 했고.

황실의 계보에서 파문되었던 시스타냐 황녀는 곧바로 복권되었고, '크리스'도 카른 제국의 황실의 계보로 인정되었다.

이미 죽어 전혀 의미 없는 일이지만, '크리스' 또한 카른 제국의 황위 계승권자가 된 거다.

'이제 슬슬 떠날 때가 되었군.'

생각보다 회복이 더뎌 오래 체류하게 되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된 건 아니지만,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으니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갈 곳이 있었다.

늦은 밤, 크리스는 방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법국의 외진 묘지였다.

죄인들이 묻히는 곳.

그의 어머니가 묻혀 있는 곳이었다.

'인사는 해야겠지.'

어릴 때 헤어지긴 했지만, 크리스는 아무리 어릴 적 일이라도 기억을 잊지 않는다.

당시 어머니가 자신을 안아주던 걸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간에 구해온 아네모네를 묘지에 놓았다.

'다 끝났으니, 이제 편히 눈감기를.'

등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아네모네는 시스타냐 황녀께서 가장 사랑하던 꽃이지요."

"!!"

부드러운 음성.

크리스는 등줄기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전혀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어?'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경갑을 입은 호리호리한 체구의 여성이 서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

느껴지는 기운은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완벽히 기운을 갈무리해서일 뿐이다.

크리스는 저 여성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카른 제국 황실 친위대의 부단장 광검(光劍) 아스란이야.'

무려 7성의 기사였다!

카른 제국의 강자 중 한 명이 나타난 거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도 강력한 마나로 노화가 억제된 것일 뿐, 실제 나이는 훌쩍 더 많았다.

'왜 온 거지?'

긴장감이 피어올랐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노리고 온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아스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리 상대가 마인이라도 다짜고짜 적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썩어빠져 침몰하고 있는 연합에 몇 안 남은 등불과도 같은 존재.

"제가 누구인지 아시는 것 같군요. 암흑 마가의 공자께서 절 알아보시다니, 뜻밖이군요."

"카른 제국의 광검을 모른다면, 마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요."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는 이전 삶 때 아스란과 깊은 연이 있었다.

'멸망의 시대 때 내 충신이었으니까.'

충신.

어색한 표현이지만, 진짜였다.

크리스는 용사 일행과 합류하기 전, 한때 망해가기 직전의 '거대 세력'을 이끈 적이 있었다.

물론, 잠깐 맡은 거고, 정체도 숨기고 맡았다. 거대 세력의 대표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봤자, 암살 표적만 되니까.

'그래서 용사 일행은 내가 한때 거대 세력의 대표였다는 걸 몰랐지. 비밀로 했으니까.'

그때 그를 도와준 게 아스란이었다.

심지어 아스란은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었다.

크리스가 이끌던 거대 세력이 완전히 멸망할 때.

아스란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크리스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이전 삶 인연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크리스는 속마음을 숨겼다.

'어머니를 보러 왔나 보군. 어머니와 아스란은 각별한 관계라고 했으니까. 원래 어머니의 호위 기사였다고 했나?'

짐작이 맞는지 아스란은 크리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꽃 한 송이를 묘비에 바쳤다.

마찬가지로 아네모네였다.

잠시 묵념 후, 아스란은 뜻밖의 행동을 하였다.

크리스를 향해 고개를 숙인 거다.

"감사합니다."

"!!"

"공자께서 진실을 밝혔다고 들었습니다. 공자 덕분에 제게 가장 소중했던 분의 한을 풀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연합의 7성 기사가 마인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아스란의 기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만약 원하시는 게 있다면 가능한 선에서 무엇이든지 공자께 보은토록 하겠습니다."

"…진심입니까? 전 마인입니다."

"물론, 다른 이들이 보면 저를 비난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받은 은혜를 모른 척하는 게 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제 입장상 무리한 부탁은 들어주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길."

당황스러운 이야기.

하지만 이게 원래 아스란의 성격이었다.

어떤 편견 없이 상대를 올곧게 바라보는 빛의 검.

'그래서 지닌 실력에 비해 카른 제국 내에서 입지가 좋지 않지.'

크리스는 고민했다.

'어쨌든, 부탁이라. 무슨 부탁을 하지?'

그냥 넘기기에는 아쉬운 기회다.

'가장 좋은 건 내 조력자가 되게 하는 건데.'

지금은 아니지만.

훗날 카른 제국에서도 활약해야 할 때가 올 거다.

카른 제국은 연합에서 신성 제국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세력이니까.

'그렇다고, 다짜고짜 조력자가 되어달라고 이야기해 봤자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

크리스는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군. 그녀의 신뢰를 얻을 일을 하면 돼.'

협력 관계란 건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아스란이 그를 믿게 만들면 자연스레 그녀는 그의 조력자가 될 거다.

마침, 딱 적합한 일이 있었다.

"카른 제국으로 복귀하시면 황태자의 주위를 잘 살펴주십시오."

"!!"

아스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우리 암흑 마가의 첩보에 이상한 정보가 하나 들어와서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스란 경을 만난 김에 알려드리는 겁니다."

크리스는 짧게 덧붙였다.

"아무리 제가 마인이라도 빤히 일어날 참화를 모른 척하기도 그러니까요."

참화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곧 카른 제국에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다.

손을 쓸 방법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아스란의 손을 빌리면 좋으리라.

"...."

아스란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눈치.

크리스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했다.

"곤란한 부탁은 아니지 않습니까? 친위대로서 황태자의 주변을 살피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테니까요."

"…그렇긴 하지요."

"경께서는 그저 본인의 소임을 다할 뿐이고, 그러다가 '우연히'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걸 알게 된다면, 경의 의무에 따라 행동하면 될 뿐입니다."

아스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자께서는 다른 마인들과는 무언가 다른 것 같군요."

"...."

"어쨌든 알겠습니다. 공자의 말에 따라 보겠습니다."

됐다.

아스란의 능력을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는 건 막을 수 있을 거다.

겸사겸사 아스란의 신뢰도 살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전 이만."

아스란이 자신의 등 뒤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크리스는 돌아보지 않고 숙소로 돌아왔다.

'에구구, 죽겠다. 잠깐 왔다 갔다 한 건데 왜 이리 힘들어.'

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하긴. 성좌가 소멸하는 반작용을 몸으로 버틴 거니. 이거 이러다가 내상으로 몇 달 고생하는 것 아니야? 큰일인데.'

크리스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사실 고작 몇 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크리스에게 몇 달이면 수없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니까.

'무엇보다 암흑 마가로 돌아가면 당장 두 번째 시험이 시작될 텐데. 이런 몸 상태면 지장이 갈 거야.'

크리스는 두 번째 시험 내용을 떠올렸다.

가주 승계 시험은 오랜 전통의 시험인 만큼 내용이 정해져 있었다.

두 번째 시험은 내용의 성격상 첫 번째 시험보다는 훨씬 난도가 낮았다.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이가 두 번째 시험에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후계의 경우이고. 난 달라.'

보통 암흑 마가의 승계 시험에 도전하는 건 최소 6성 이상에 이르러서다.

반면, 크리스는 이제 고작 5성 남짓이다. 마인으로서 실제 성취만 따지면 4성 상(上)이다.

참고로, '아직도 고작 4성 상?'이라고 생각할 건 아니다. 회귀한 지 1년 반 남짓한 시간 만에 이룬 성취이니까.

걸음마 때부터 수련해 스무 살 전에 4성에 이르면 희대의 천재 소리를 듣는 걸 생각하면 크리스가 얼마나 빠르게 성취를 올렸는지 알 수 있다.

'어쨌든 역대 승계 시험을 쳤던 다른 후계들보다 내 수준이 훨씬 처져.'

따라서 역대 다른 후계들과 비교해 두 번째 시험의 체감 난도도 확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내 성취를 고려하면 첫 번째 시험보다 오히려 두 번째 시험의 난이도가 더 높을지도.'

그런 상황에서 몸 상태까지 안 좋으니 명백한 악재였다.

'돌아가면 최대한 빨리 몸부터 회복시켜야겠어.'

다행히 그에게는 의선 명가의 비전들이 있었다.

몇 개 영약을 만들어서 먹으면 회복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터였다.

'어떤 영약을 만드는 게 제일… 좋….'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안 좋은 컨디션 때문에 체력이 쉽게 바닥이 난 탓이다.

침묵이 내려앉았고, 고요한 달빛이 방을 비추고 있을 때였다.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스스스.

희미한 안개가 방에 깔리더니,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크리스는 감각이 지극히 예민해 아무리 피곤함에 곯아떨어져도 상대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건 상대가 기척을 숙이고 접근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인물은 딱히 기척을 숨기는 기색도 없는데 크리스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마침, 달빛이 구름 사이를 빠져나오더니 인영의 얼굴을 밝혔다.

놀라운 외모의 소녀였다.

아직 성인이 되기 직전, 앳됨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는데, 주변 공기마저 숨을 멎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하얀 피부, 고운 얼굴선에서 마치 하늘이 직접 예술품을 조각한 듯이 고아하고 고귀한 느낌이 흘렀다.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핏빛 머리칼과 보랏빛 눈동자는 고혹적이기 그지없었다.

살짝 벌려진 붉은 입술 안에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소녀의 정체가 뱀파이어인 것을 알려주었다.

보통의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이마에 새겨진 혈십자(血十字).

상위 뱀파이어인 진혈족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고 고귀한, 지배자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뱀파이어 프린세스.

혈검 마가의 대공녀 이드린느가 나타났다.

훗날 사혈의 마왕이라 불리게 될 이였다.

제147화

어째서 나타난 걸까?

이드린느는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크리스티앙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한 명의 인영이 추가로 방으로 들어왔다.

같은 뱀파이어 진혈족으로 이드린느를 모시는 수하 같았다.

"완전히 잠들어 있군요. 역시 아가씨의 권능은 대단합니다."

만약 다른 이였다면, 아무리 상대의 경지가 높아도 크리스가 이렇게 기척을 눈치채지 못하진 않았을 거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차기 뱀파이어 로드인 이드린느의 권능 때문.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직접 확인해야 했으니까."

이드린느가 입을 열었다.

고우면서도 차가운 음성이었다.

"크리스티앙 공자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인물인지, 아닌지."

뜻밖의 이야기였다.

크리스의 이전 삶을 떠나, 혈검 마가는 암흑 마가와 서로 적대 관계인데 도움이라니?

"우리 혈검 마가가 저주 사령이 주축이 되어 있는 아낙스 일파에 맞서려면, 암흑 마가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혈검 마가는 현재 위기에 몰려 있다.

오랜 적대 관계인 암흑 마가의 도움을 바랄 정도로.

하지만 암흑 마가가 혈검 마가를 도와주려고 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다만.

"혹시 모르지. 여기 크리스티앙 공자라면 조금은 다를지도. 다른 일반적인 마인과는 전혀 다른 것 같으니까."

혈검 마가의 대공녀인 이드린느가 머나먼 골드 크로스까지 온 것은 법국에서 일어난 사왕성의 음모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녀도 사왕성 소속이지만, 이번에 법국에서 일을 벌인 아낙스 일파와는 반대파였다.

그런데 막상 골드 크로스에 왔더니, 이미 모든 일이 해결된 상태였다.

바로 눈앞의 소년, 크리스티앙이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덕분에.

크리스티앙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해냈는지 소문을 들은 이드린느는 확신했다.

크리스티앙이 일반적인 마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란 것을.

"서로 감정이 안 좋아서 그렇지, 암흑 마가 입장에서도 우리 측과 동맹을 맺는 게 나쁠 건 없지 않나? 우리 혈검 마가가 무너지면, 그다음은 암흑 마가의 차례일 테니."

"…그렇기야 하지만요."

수하 여인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회의적인 눈치였다.

"아가씨께서 크리스티앙 공자와 혼약이라도 맺지 않는 이상 양 가문의 동맹은 불가능할걸요?"

"필요하면 하면 되지."

"…네?"

수하 여인이 화들짝 놀란 눈을 하였으나, 이드린느는 무표정하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가문을 위해 이미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았는데, 그깟 결혼이 문제겠나? 마도 명문가 사이에 정략결혼이 드문 일도 아니고."

"…그래도 그건 좀. 물론, 크리스티앙 공자면 아가씨의 배필로 부족함이야 없겠지만… 아가씨 나이를 인간 식으로 환산하면 서로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기도 하고."

수하 여인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참고로, 이드린느는 뱀파이어 진혈족으로서 갓 성인이 된 정도의 나이였다.

"뭐, 나도 진지하게 이야기한 건 아니다. 혼담 이야기를 꺼내도 크리스티앙 공자가 받아들일 리는 없겠지. 우린 적이니까."

만약, 암흑 마가와의 동맹을 이루고자 한다면.

일단 천천히 양 가문의 관계를 개선할 방법 먼저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크리스티앙 공자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조만간 죽을 것 같던데."

"…무슨 말인가?"

"크리스티앙 공자, 지금 승계 시험 중이잖아요? 암흑 마가의 전통상 다음 시험은 '암흑 마군'에 부임하는 것이겠지요?"

암흑 마군(魔軍).

암흑 마가가 자랑하는 정예 군단이었다.

암흑 마가가 지닌 힘의 결정체.

"그렇겠지. 근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

이드린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현재 크리스티앙 공자의 성취상 두 번째 시험을 합격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딱히 위험할 일은 없지 않겠는가?"

"우리 사왕성이 가만히 있으면 그렇겠죠. 암흑 마군이 적대하는 주적은 우리 사왕성이니까요."

"…그 말은?"

"아낙스 일파가 몇 개월 뒤 암흑 마군의 수뇌부에 손을 쓸 계획이란 이야기를 들었어요. 딱 크리스티앙 공자가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와 겹치죠."

이드린느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암흑 마군의 수뇌부도 만만치 않지 않은가? 사령관인 슈펜 후작은 7성 상의 마인이고. 아낙스 일파도 전면전을 생각하지 않는 한 무리한 수작을 부릴 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죠. 하지만 아낙스 일파가 어디와 거래하고 있는지 모르고 계신 건 아니죠?"

이드린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그들'이 개입한다고?"

"아마도. 높은 확률로."

"...."

소녀는 침음을 흘렸다.

''그들'은 천재지변과도 같은 존재들. 만약, 정말 '그들'이 개입하는 게 맞는다면 지금 크리스티앙 공자의 힘으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어.'

옆의 수하 여인이 염려스럽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막는 건 불가능할 거고, 일이 벌어지면 살아서 도망치기라도 해야 할 텐데, 지금 보니 몸 상태도 좋지 않네요. 몇 달 안에 회복이나 할 수 있을는지. 의선 명가의 최고 등급의 비약이라도 먹지 않는 한…."

이드린느는 크리스티앙의 몸 상태를 살폈다.

'내상이 심각해. 타천성의 강림을 막았다고 들었는데, 그 후유증인 건가?'

몇 달 정도 정양하면 낫겠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크리스티앙은 몸이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거다.

이드린느는 골똘히 고민하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나 묻겠네. 크리스티앙 공자는 우리의 은인이 맞지?"

"웬 은인이요?"

"이번에 골드 크로스에서 메르헨 놈이 벌이던 일을 막아주지 않았나? 크리스티앙 공자가 아니었다면, 아낙스 일파가 더 득세하게 되었을 거고, 우리는 더욱 곤경에 처했겠지."

"…뭐, 그렇게 따지면 은혜를 입은 건 맞지요. 그런데 갑자기 왜요? 혹시, 아가씨 설마?"

이드린느는 우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혈검 마가의 명예로운 핏줄로서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겠지."

"설마, 아가씨?"

이드린느가 크리스티앙에게 다가갔다.

여인의 눈이 커졌고, 이드린느는 손가락을 들어 크리스티앙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파앗.

크리스티앙에게서 탁한 핏빛 기운이 일어나더니 이드린느에게 향했다.

동시에.

"쿨럭."

이드린느가 기침을 하였다. 주륵 피가 흘러나왔다.

"아가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째서 자기희생의 권능을?!"

수하 여인이 하얀 얼굴로 질책했다.

뱀파이어 프린세스의 고유 권능이었다.

상대의 안 좋은 몸의 상태를 자신에게 그대로 전이시키는 것.

실제로 크리스티앙은 이전에 비해 훨씬 혈색이 좋아졌고, 이드린느의 얼굴은 새롭게 병이라도 얻은 듯 시체처럼 질려 있었다.

"말하지 않았나? 혈검 마가의 후예로서 은혜를 갚으려고 한 행동이네."

"무슨…."

수하 여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이드린느는 별반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괜찮네. 내 몸은 튼튼하니. 그나저나 이만 가지. 곧 권능의 효과가 사라질 것 같네."

"네, 네."

그렇게 둘은 나타났을 때만큼이나 홀연히 사라졌다.

* * *

떠나는 날이 되었다.

'…몸이 왜 이렇게 좋아졌지?'

크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밤 자고 일어난 이후 그를 괴롭히던 내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야. 누군가 손을 쓴 게 분명해. 누구지?'

크리스의 눈이 심각해졌다.

몸이 좋아진 건 다행이나, 누군가 다녀갔는데,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게 이상했다.

'아무리 경지가 높은 이가 다녀갔다고 해도, 내가 전혀 눈치를 못 챈 건 말이 되지 않아.'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한 인물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사혈의 마왕. 아니, 지금은 혈검 마가의 대공녀지. 차기 뱀파이어 로드인 그녀의 권능이면 내 감각을 피해서 이런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상대는 그를 회복시켜 주었다.

절대 아닐 거다.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 가실 건가요?"

"…그래. 그런데 뭘 이렇게 멀리 나온 거지?"

크리스는 올리비아를 보며 얼떨떨하게 말했다.

지금 크리스 일행이 있는 곳은 워프 게이트였다. 마도 제국의 국경 근처로 연결된.

올 때는 보안상 이유로 허락받지 못해 말을 타고 왔지만, 지금은 새롭게 법왕이 된 올리비아가 허가를 내렸다.

'근데, 얘는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여기 워프 게이트가 법국에서 마냥 가까운 거리는 아닌데.'

의아한 시선으로 올리비아에게 물었다.

마침, 주변에 둘만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 내게 따로 할 말이 있나?"

"...."

"뭐든 괜찮으니 말해보도록."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또 만날 수 있겠죠?"

"…고작 그런 걸 물어보려고 따라온 건가? 당연히 다시 보게 될 거다."

크리스는 새삼스럽다는 고개를 갸웃했다.

"더 할 말 없으면 그만 가보겠다. 잘 지내고 있도록."

사실, 크리스도 올리비아와 헤어지는 게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질질 끌어봤자 아쉬움만 커질 뿐이다.

'어차피 이게 마지막도 아니니.'

등을 돌리는데, 갑자기 가슴이 덜컥한 소리가 들렸다.

"…오빠."

"!!"

크리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분명히 그를 향해 '오빠'라고 했다.

'…어떻게?'

하지만 올리비아가 곧 힘없이 이렇게 말하는 게 들렸다.

"…죄송해요. 당신만 보면 이상하게 제 오라버니 생각이 나서. 불쾌했다면 사과할게요."

"…아니, 불쾌하지는 않았다."

크리스는 두근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고개를 저었다.

'본능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받은 건가. 피가 무섭긴 하군. 이전 삶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닮은 점이 전혀 없을 텐데.'

그걸 마지막으로 올리비아와는 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떠날 때가 되었다.

워프 게이트를 넘기 전, 고개를 돌리니 올리비아가 딱딱히 굳은 눈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크리스는 그 눈빛을 보고 있다가 문득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올리비아가 스스로 내 정체를 알아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인과율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정체를 발설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올리비아가 스스로 그의 정체를 알아낸다면?

생각을 더 이어가기 전에 시야가 변했다. 워프 게이트가 발동한 거다.

그리고.

"법왕 전하, 그만 돌아가시지요."

"기다려 주세요. 잠시 혼자 있고 싶으니, 기사들을 뒤로 물려주세요."

올리비아는 크리스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게도.

무엇보다.

- 크리스티앙 공자가 시스타냐 황녀님에 대해 알고 있더군요. 법왕 전하께서 알려주신 건가요?

카른 제국의 아스란 경이 자신을 찾아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크리스티앙이 시스타냐 황녀의 묘비를 찾아갔고, 시스타냐 황녀가 가장 좋아하던 꽃을 헌화했다고.

'하지만 난 알려준 적이 없어. 아니, 애초에 난 전 법왕비인 시스타냐 황녀가 아네모네를 좋아하는지도 몰랐는걸.'

크리스티앙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

아니, 애초에 시스타냐 황녀의 묘비에는 왜 찾아갔을까?

맞지 않는 퍼즐.

'…설마.'

순간, 떠오른 가정에 올리비아의 심장이 벼락에 관통된 듯 저릿해졌다.

일전, 빈츠 대공령에서 싸울 때 저 마인이 '크리스'의 모습을 환영으로 보여주었던 게 떠올랐다.

그녀의 무의식을 기반으로 했다기에는 지나치게 실제와 같았다.

특히 마지막 휘파람 소리는 정말 크리스와 같았다.

그녀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섣부른 추측으로 괜히 기대하기 무서웠다. 실망감에 무너져 내릴 거다.

하지만.

…정말 아닌가?

"아."

갑자기, 그녀의 눈동자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뒤늦게 손을 뻗었으나, 이미 크리스티앙은 워프 게이트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올리비아는 하염없이 크리스티앙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만 보았다.

* * *

크리스 일행은 워프 게이트를 통과했다.

국경 지대를 지나 드디어 마도 제국의 영역에 도착하니, 생각지도 않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 저건?"

알로스가 놀란 음성을 내었다.

수없이 도열한 마인들.

크리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하늘을 진동시키는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공자님께 충!!"

"공자님께서 해내신 무훈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면에, 떠나기 전 대화를 나누었던 부대장이 보였다.

크리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때? 그럭저럭 약속은 지킨 것 같은데. 자네가 기대한 만큼인가?"

떠나기 전, 크리스는 부대장과 약속했다.

놀랄 만한 소식을 가져오겠다고.

"겨우 그 정도가 아닙니다."

부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존경과 경의를 담아.

"여기 모인 이들을 보십시오. 누가 시켜서 모인 게 아니라, 모두 자발적으로 공자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모인 겁니다. 공자님께서 골드 크로스 놈들을 상대로 세운 공을 생각하면, 이런 환영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크리스티앙은 시선을 돌려 모여 있는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마인 군단답게 각양각색의 이들이 모여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티앙을 향한 존경과 경외.

원래도 일반 마인 중에는 크리스티앙을 지지하는 이가 많았다.

방계 핏줄로서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후계로 우뚝 섰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골드 크로스에서 불가능한 공까지 세우고 돌아왔으니, 더욱 많은 마인이 크리스티앙을 지지하게 된 거다.

'응해주는 게 좋겠지.'

크리스는 손을 들어 올렸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와아아아아!!!"

"크리스티앙 공자님 만세!!!"

그렇게 열렬한 함성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

아버지, 카자르 백작이었다.

카자르 백작이 굳건한 손으로 크리스티앙의 손을 마주 잡았다.

"수고했다."

짧은 인사.

하지만 그 안에 얼마나 짙은 걱정과 부정이 섞여 있는지 크리스는 잘 안다.

"감사합니다."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 크리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버지."

그렇게 말하자 이전 삶의 아버지 때문에 느꼈던 역겨움이 스르르 사라지는 듯했다.

옆에는 테른도 있었다.

테른은 시선을 삐딱하게 옆으로 하고 있었다.

"…형님."

"호칭."

"…존경하는 킹 엠페러 마제스티 형님."

"그래, 너는 왜 왔냐?"

"그, 그냥 아버지를 따라왔습니다! 딱히 형님이 걱정되어서 온 건 아닙니다!"

"…정말? 눈동자가 빨간 게, 창밖의 달을 보며 이 형을 걱정하면서 울기라도 한 모습인데?"

"그, 그럴 리가! 절대 아닙니다! 누, 누가 형님을 걱정하며 울었다고!"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지 말래? 네가 그러니 진짜 같잖아."

크리스는 얼떨떨하게 생각했다.

'나름대로 이 녀석도 귀여운 구석이 있단 말이야. 올리비아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지만.'

법왕을 만나고 왔더니 가족의 소중함을 깨친 느낌이다.

크리스는 앞으로는 동생을 조금 더 예뻐해 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대련 한판?"

"돼, 됐거든요?"

"왜? 너 이 형한테 맞는 거 좋아하잖아. 이 형이 특별히 널 위해 찐하게 두들겨 패주마."

"아, 진짜! 꺼지십시오!"

크리스는 쿡쿡 웃고는 테른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돌아왔다."

"...."

테른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삐죽 입술을 씰룩하더니 말했다.

"이번에 해내신 일… 조금… 아니, 꽤 많이 멋지셨습니다."

크리스는 피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

그래.

이번 골드 크로스 일은 크리스가 앞으로 해낼 일의 서막에 불과했다.

이제 곧 크리스가 있는 남방 마도국에는 파란이 일 거니까.

극독 마가와의 분쟁.

진녹(鎭綠)의 변.

파괴 마가의 참사.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청류의 마왕'의 멸렬(滅裂) 등등.

수없는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에 대공자 먼저 되어야지.'

크리스는 북쪽, 암흑 마가 본가가 자리한 곳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시험의 내용은 '암흑 마군(魔軍)'을 굴복시키는 것.

정확히는 암흑 마군의 사령관이자, 7성 상의 최고위 마인인 슈펜 후작을 굴복시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