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 감각에 걸리는 숫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지금 정기남이 상대에게 집중하기에 느끼지 못하는 빈틈.
그 빈틈을 파고드는 기척이 있었다.
"무슨 소리야? 잘못된 정보는 작전에 위협을 줘. 신중하게 말해."
바로 앞에서 우미호가 말했다.
혼란을 가져오지 말란 소리인데.
설명할 시간 따윈 없었다.
내 눈이 공항 안쪽을 훑었다.
잠깐 훑는 것만으로 확장된 감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차례로 정리했다.
"잠시만요."
PWAT 요원 중 하나가 목표물을 향해 말을 했다. 목표물이 멈춘다.
PWAT팀 셋이 그를 둘러싼다.
돌아다니는 이들 옆으로 사람의 장벽이 세워지고, 무장한 보안요원이 주변 사람을 물리며 말한다.
"긴급 상황입니다. 시민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합니다."
사람을 밀어낸다.
순식간에 중앙에 공터와 같은 공간이 생긴다.
공항 내부에 생긴 인간이 들어올 수 없는 공터.
그 공터를 빙 둘러싼 사람들 대다수가 호기심에 눈을 빛낸다.
본래라면 여기서 저 작자 하나 체포하면 모든 일은 끝난다.
형태변환자 하나에 PWAT팀 팀원 셋과 변신족 둘, 불멸자 셋이 현장에 나왔고.
그 외에 외부 상황실에도 각 팀장이 자리 잡고 있다.
대신 보안요원을 제외한 경찰 특공대팀은 없다.
도둑 하나 잡으려면 경찰 인력은 그보다 몇 배는 필요하다.
언제나 지키는 쪽이 불리한 법이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다.
상대를 특정할 특수종, 움직이는 센서이자 탐지견이 된 불멸자와 변신족이 있었고.
직접 싸울 초능 친구들도 있었다.
범죄자 하나 잡기에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하나라고 생각한 놈이 하나가 아니라면?
확장된 감각이 조여들며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야."
우미호가 내 팔을 잡았다.
"베타 셋, 타깃 제외 적으로 추정되는 기척 감지."
"무슨 짓이야."
미호가 다시 말했다.
분석팀 대리이자 현 작전 팀장님은 말했다.
작은 낌새도, 작은 불안함도 무시하지 말라고.
정기남의 예민함을 흉내 낸 거? 그래, 내가 틀릴 수도 있다.
그럼 어떠냐.
틀렸다면 반성문 몇 장 더 쓰지 뭐.
아직 우리 팀장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다.
반대로 내가 맞다면.
"현장 지원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황이 급변했다.
"많이도 오셨네."
형태변환자가 말했고.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기웃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이미는 시민을 밀어내던 보안요원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 요원의 손에는 기관단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가 아군을 향한다.
저 기관단총은 당연히 장전되어 있겠지? 조종간이 연발로 되어 있다는 거에 내 동정을 걸 수도 있다.
"...야?"
바로 옆에서 그걸 보던 다른 요원 하나가 눈을 깜빡이며 말하고.
드르르르륵!
시이발, 총구가 불을 뿜었다.
변신족 둘이 제일 빨랐다. 총구가 불을 뿜기 직전 놀라운 속도로 좌우로 내달렸다.
그대로 제 몸을 기둥과 바로 곁에 있던 부스에 숨겼다.
정기남이 앞으로 나섰다.
불멸의 육체는 저런 총탄 따위 우습게 받아 낸다.
몇 발은 탄이 기남의 몸을 뚫었다.
지지리도 운이 없는 초능 특수대원 하나는 어깨에 총알을 맞고 신음을 토했다.
다행히 기남 덕분에 나머지 초능 대원 둘은 총탄에 맞지 않았다.
멀다.
단숨에 달려가서 제압하긴 너무 멀었다.
거기에 그 한 놈도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시민 놈이, 요원이 만든 인의 장벽을 뛰어넘었다.
저건 뭐냐.
운동 신경이 남다르네.
초능 중 하나로 보였다.
빨랐다.
뛰어넘어서 내달리는 속도에 잔상이 남을 지경이었다.
놈이 달리며 주먹을 뻗고 남은 초능 대원 중 하나가 그걸 막았다.
그 대원의 피부 위로 반투명한 막이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꿍.
물속에서 폭음이 터진 것처럼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주먹과 무형의 막이 만나는 자리에서 공기의 파문이 물결처럼 퍼지며 주먹이 멈췄다.
무형의 장벽, 염동력자다.
"베타 하나, 전부 사이커."
정기남이 말했다.
사이커, 초능 특수종을 부르는 명칭이다.
그와 동시에 불길한 감각이 뒤통수를 찔렀다.
통신기를 켤 필요도 없이 고개만 뒤로 살짝 꺾어 말했다.
"옆."
우미호가 내 뒤로 바짝 따라붙다가 고개를 숙였다.
혼혈이라 피가 옅어졌다고는 해도 이쪽도 불멸이다.
자신을 향한 공격에는 반응하는 법이다. 바닥을 구른 미호가 공격을 피한 채로 땅을 쓸어 찼다.
그 공격에 발목을 얻어맞은 놈이 쿵 하고 넘어졌다가 곧바로 일어나는 게 보였다.
"같잖은 혼혈."
상대가 말하는 게 들렸다.
난 무시하고 달렸다.
그런데 이제 어쩐다. 다 일일이 쓰러뜨려?
지금 그게 가능한가? 적아를 구분하는 거야 할 수 있다지만, 총을 갈기자마자 사방으로 찢어지는 놈들이다.
총 몇 놈이냐, 뭘 쫓아야 하는 거지?
"베타 제로, 셋에게 통신, 좌측 게이트 8번 쫓는다. 목숨에 위협을 받지 않는 수위까지 전투 허용. 베타 하나는 피해 범위 보고. 베타 둘은 상황 인지 보고."
괜히 회삿밥 먹으면서 대리 단 게 아니다.
정기남, 이 쌉개나리 새끼는 무시했지만, 대리님은 능력자였다.
그는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았고 할 일을 나눴다.
"베타 제로, 현 상황부로 현장 진입."
통신 수신 완료.
명령은 내가 할 일을 정해 줬다.
내가 잡을 놈은 저기, 저놈으로 정했다.
막 게이트 8번을 빠져나가는 개자식.
아까 총을 갈기고 도망가는 놈이다. 달리며 옷을 벗어젖히고 던진다.
탄을 전부 쓴 총도 던져 버린다.
도주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장·단거리 육상 올림픽에 나갔다면 어지간한 메달은 쓸어왔을 이 유광익의 백만 불짜리 다리를 이길 정도는 아니란 거지.
광익이 다리는 얼마짜리?
백만 불짜리!
텅!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목표를 향해서 뛰며 앞을 막는 사람은 피했다.
"꺄아아아악!"
중간중간, 이 상황에 어울리는 비명이 들렸고.
"와아악! 테러다!"
패닉에 빠진 시민의 거짓 정보도 들었다.
그런 이 중 하나가 눈앞에 훅 확대됐다.
우아아아악이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너무 놀라 눈을 부릅뜬 채, 나만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다.
이대로라면 내 몸에 부딪혀 쓰러지는 볼링핀 중 하나가 될 거고.
어디 뼈마디 하나는 부러지겠다.
달리며 몸을 낮췄다가 땅을 박차 점프, 앞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톡 누르며 그대로 넘는다.
속도는 하나도 줄지 않은 채, 그대로 쏘아지는 몸이다.
짐을 가득 실은 카트가 앞을 막는다.
난 달리는 속도 그대로 카트를 잡아채 옆으로 밀었다.
끼기기긱!
카트가 밀리며 바닥에 까만 자국을 남겼다.
호흡을 조절하며 달리니 금세 목표가 가까워졌다.
놈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겁, 두려움, 놀람 따위의 감정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똥파리를 보는 귀찮은 눈빛은 참 예상 밖이다.
이 새끼가 눈빛이 개 같네.
넌 잡히면 시발 팀장이라고 생각하고 패준다.
난 내달렸고.
내 귀로 그제야 우리 개 짱 멋진 대리님의 명령에 순응한 두 개나리의 말이 들렸다.
"베타 하나, 왼팔 총상 두 곳, 오른쪽 허벅지 한 곳 총상, 전부 관통상입니다."
정기남이다.
일반인 코스프레, 그러니까 위장을 위해서 방검방탄복을 챙겨오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다.
"베타 제로, 베타 하나는 뒤로 빠져서 상황 주시, 새로운 적 출현과 습격 대비한다."
이건 대리님.
"베타 하나, 싸울 수 있습니다."
"베타 제로, 명령이다."
"베타 하나, 현 상황에서 제가 빠지면 위험합니다."
정기남, 이 새끼, 말 더럽게 안 듣네.
우미호가 중간에 통신을 날렸다.
"베타 둘, 습격 상황 발생, 함정은 아닙니다. 목표물을 빼돌리기 위한 급조된 상황으로 파악, 우선 목표는 형태변환자의 확보입니다. 파악된 습격자의 숫자는 일곱입니다."
"말 들어라. 신입."
마지막 대리님의 한마디는 통신기를 통해서 들린 게 아니었다.
육성이다.
쫓는 놈은 잡을 수 있다. 확신이 들었다. 속도를 가늠해 봤을 때 가능했다.
그래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슬쩍 뒤를 돌아봤다.
꽝!
아까 양쪽으로 갈라지며 튀었던 변신족 하나가 정장을 입은 채로 우미호를 공격한 놈의 옆구리를 미들킥으로 날리는 모습과.
막 전장에 도착한 대리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와. 시발.
상대는 일곱.
내가 쫓는 놈은 일단 일 벌이자마자 제일 먼저 튀었고.
나머지 몇 놈은 남았는데, 그놈들이 정기남과 나머지 초능 대원을 위협하는 중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 대리님이 난입했고.
우득!
기척 죽이기로 다가가 한 놈의 목을 꺾고 시작했다.
목이 꺾인 놈이 다리가 풀리고 거품을 물며 바닥에 허물어진다.
"시발 새끼가."
흥분한 적이 한 뼘은 너끈히 넘는 길이의 나이프를 꺼냈고.
그걸 본 대리는 가슴팍에 단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냈다.
글록 17, 불멸 대부분이 가장 사랑하는 권총.
탕.
한 방에 미간 관통이다.
자비도 없고 고민도 없다.
"제압한다."
대리가 말하고 상황을 점령했다.
그 뒤로 상황실에 있던 초능 팀장도 들어와 외쳤다.
"그 새끼 찾아!"
딱 여기까지 보고 다시 내 일에 집중했다.
내가 할 일은 이놈을 쫓는 거니까.
쫓던 새끼의 등판이 보였다.
참 넓네.
근데 저 새끼 옷도 벗고 총도 버렸는데 웬 숄더백을 들고 있냐.
미친 새끼의 속을 누가 알리.
그냥 조지면 될 것을.
"야, 같이 가자아."
난 적에게 조르며 달렸다.
그 등이 금세 잡힐 듯 다가왔다.
37. 그런데 말입니다.
'신입 셋이라.'
분석팀 대리, 강희모는 파일을 확인하고 말했다.
"셋 다 특이하네요."
오티 때 성적과는 별개로 정기남은 훌륭한 인재다.
순혈, 그것도 적통의 피를 이은 특별한 불멸이니까.
우미호라는 혼혈도 마찬가지다.
화림 전체를 통틀어도 이런 타입은 흔하지 않다.
'냉정하고 머리 좋고.'
나쁘지 않다.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유광익.'
혼혈, 외부 보안 3팀.
사장님이 찍은 올해의 사원.
근접 전투 능력 최소 B랭크 이상.
최근 1급 사원 김정아와 단둘이서 변형 블랙홀 웨이브를 막음.
특이사항, 성격이 매우 별남.
고작 수습 기간 중인데도 평가 코멘트가 많기도 하다.
사장님이 찍은 거야 이해한다. 남명진 사장이 좋아할 만한 건 다 가졌으니까.
혼혈치고는 뛰어난 전투 능력, 거기에 서글서글함이다.
사장은 회사 내에 퍼진 순혈과 혼혈의 차별, 인간과 불멸의 차별 따위를 없애는 게 목표다.
고로 중간에 윤활유를 해 줄 그런 인재를 찾고 있다.
"시작은 너랑 비슷하지?"
분석 팀장 김한이 말했다.
"네, 뭐."
강희모는 평소와 같이 수수하게 웃으며 답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좋고,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내는 것.
사장이 원하는 건 자신도 갖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친화력이다.
그래서 자신 역시 그 남명진 사장의 사원이 돼 보기도 했고.
옛날 일이었다.
강희모는 파일의 나머지를 훑었다.
수습인데도 B랭크 근접 전투 능력이라니, 이것도 대단하고.
특이사항, 외부 보안 3팀에서 잘 녹아든다는 게 그 성격이 평범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강희모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그 이중봉과 잘 지내다니.
매일 구타에 가까운 대련을 강요받는데도 반성문이라 쓰고 결투장이라 읽는 걸 매일 쓰고 있단다.
요새 회사 내에서 유광익의 결투장은 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고 그걸 주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재밌으니 지루한 일상에 활력소와 같았다.
강희모도 몇 번 찾아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는 같이 작전을 나가는 이들을 알아야 했다. 파일을 훑는 것도 그런 일 중 하나였다.
물론 술 한잔하며 친해지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파일로 읽은 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쓰일 것인가.
그게 중점이다. 그는 오가며 유광익을 관찰했고 팬더를 닮은 이동훈 대리에게 몇 가지 정보를 듣기도 했다.
"체력 좋고 머리는 좋은지 모르겠지만, 눈치는 있지. 근데 자세히 보면 은근히 불쾌하기도 하고, 가끔 사람을 동물 보듯이 보더라고 자식이."
...이동훈의 별명은 팬더,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하여간 힘 좋고 싸움 잘하고.
거기에 머리도 좋은 것 같다.
그가 보기에 유광익은 팀장에게 당할 걸 알면서도 덤빈다. 그러면서 그의 기술을 뺏어 익히는 거지.
팀장도 알면서도 당해 주는 것 같고.
사실 그 둘은 환상의 커플이 아닐까 싶다.
나머지 둘에 관한 내용도 머리에 박았다.
우미호, 불멸이 가져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진 신입.
무지막지한 재생력이나 순혈의 힘보다 강희모 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정신의 힘이다.
그러니까 냉정함.
정기남, 혈통의 힘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신성.
아마도 정기남은 고속 승진이 예약되어 있겠지.
'부럽다.'
올해 스물아홉,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을 바라는 직원은 그리 생각했다.
그렇게 작전 지역에 투입하기 전, 직접 만난 셋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달랐다.
유광익 이 새끼는 생각보다 능글맞고.
나머지 둘은 사회생활을 더럽게 못 했다.
'그래도 내가 한참 선배인데.'
그런 선배에게 밉보여 좋을 게 뭔가.
나중에 서로 관계가 역전된다고 해도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악의보다는 호의를 받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
강희모는 그렇게 했다. 적당히 티 나지 않고 특출나지 않게 살아서 분석팀의 대리가 됐고.
에이스는 아니지만, 그 에이스가 가장 믿는 남자가 됐다.
"베타 셋, 상대 하나인 거 맞습니까?"
상황실로 쓰는 버스 안이었다.
거기서 유광익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짜릿한 예감이 등골을 훑었다.
그동안 회사 생활하며 배운 게 있다면.
이상을 직감한 순간 주저하지 말라는 거다.
그게 잘못된 직감이라고 해도 무시할 순 없다.
상황이 급변하고 강희모는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무릎을 펴고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서 나가려는 순간이다.
"뭐 하는 겁니까?"
뒤에서 초능 팀장이 그를 붙들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됩니다.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도 화투장 던져서 불특대가 된 게 아니었다.
불멸특수대는 불멸 중에서도 체에 거르고 걸러 뽑은 인재란 거다.
그는 지금 필요한 최선의 일을 해야 했다.
초능 팀장은 그보다 몇 살은 많아 보였지만, 순간적인 판단 능력은 부족해 보였다.
아니, 이상 상황이 있어도 부하를 믿는 걸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는 믿고 기다리느니 직접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불멸자에게 튼튼한 몸보다 필요한 건 냉정한 판단력.
그건 우미호에게 있다.
현장 상황 보고는 우미호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피격 상황에 던져진 정기남은 상태 확인이 필요하다.
통신 송신을 하기 직전이다.
버스에서 나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의 눈과 감각의 범위 안에서 빠져나가는 놈 하나가 보였다.
누가 봐도 의심쩍다.
쫓을까? 아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건 목표물의 확보보다 상황의 안정이다.
'그렇다고 놓치긴 아쉽고.'
안으로 들어서며 강희모는 생각했다.
'블랙홀을 혼자 막고 최소 B랭크의 근접 격투 능력을 소유했으며 그 이중봉 팀장에게 버티는 친구.'
사회생활도 곧잘 한다.
차갑고 딱딱한 것보다야 능글맞은 게 낫지 않나.
하물며 혼혈이기에 전력 누수도 아니다.
강희모는 지금 순간에 필요한 것을 말했다.
"베타 제로, 셋에게 통신, 좌측 게이트 8번 쫓는다. 목숨에 위협을 받지 않는 수위까지 전투 허용. 베타 하나는 피해 범위 보고. 베타 둘은 상황 인지 보고."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그는 정기남을 무시하고 전투에 돌입했다.
주변 눈은 무시한다.
올드포스, 세계정부연합의 힘은 막강하다.
이 사고도 흔한 테러 단체의 위협으로 끝날 것이다.
한 놈 뒤로 기척을 숨긴 채 들어가 목을 꺾고.
칼을 뽑은 놈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 줬다.
정면에 버티던 놈이 반항하고 뿔뿔이 흩어지던 놈들도 덤볐다.
"이 개새끼들이."
아군 쪽, PWAT 대원 중 하나다.
입이 거친 염동력자가 무형의 압력으로 한 놈의 발목을 부러뜨렸다.
우미호를 노리는 놈은 변신족 둘이 달려들어 제압이다.
난리를 피운 것치고는 허무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 치고는.'
직감이 안 좋다. 뭔가 놓쳤다는 거다.
그제야 강희모는 깨달았다.
도망가야 할 놈 몇이 덤볐다.
왜? 시간 끌기다.
결국, 빠져나간 하나가 놈들의 주목표일지도 모른다. 그놈을 놓치게 하기 위한 것.
그리고 그걸 쫓는 건.
정기남이 피가 흐르는 부위를 손으로 누르는 걸 확인한 뒤, 고개를 돌리니.
훅하고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신입 사원 유광익이었다.
* * *
도망가는 놈이 지하 주차장으로 뛰었다.
"뭐야."
"악!"
달리는 놈은 막는 이들을 거침없이 밀쳤다.
놀란 사람들이 외침을 뒤로하고 내가 그 뒤를 쫓았다.
난 매너 있게 전부 피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돌입하는 놈의 뒤통수가 보이는 시점이다.
주차장 조명이 만든 어둠의 틈으로 숨어든 놈이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게 보였다.
"더 안 가?"
내가 물었다.
"너 이 새끼, 끈질기네."
얘기하다 보면 지원 올 건데, 이거 왜 이렇게 여유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가니.
"너 불멸이지?"
놈이 물었다.
정답이라고 상을 줘야 할까.
줘야 한다. 주먹이라는 상을 줘야지.
"정답."
"...확실하지?"
"얼굴 보면 모르냐?"
새끼가 내 얼굴을 몇 초쯤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애매한데."
이 개자식이 뭐라는 거야.
"맞다고, 새끼야 이 우월한 외모를 봐라."
그래서 애매한 거라고 놈이 중얼거렸다.
"맞아, 믿어. 우리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말한다. 나 불멸자다."
태어나서 할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난 그분의 명예를 존중했다.
확고하게 말해 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혼자서 쫓아와?"
"이 뒤로 오백 명의 지원군이 오고 있지."
"...또라이냐?"
불쾌하다. 그건 우리 팀장님에게는 어울릴 만한 호칭이다. 이 새끼야.
"아니다."
당당히 말하니.
"또라이 맞네."
"이 못생긴 새끼가."
"야, 너 혼자서 쫓은 거 실수라고는 생각 안 하냐?"
말이 끝난 순간, 놈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뭐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의 생일, 정확히는 열여덟 살 생일을 맞은 순간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던 손길이 기억난다.
거품을 물고 기침을 토하고 온몸에 털이 빠지고.
가혹한 고통이 몸을 잠식했다.
더럽게 아팠다.
변신족의 육체 변환은 그렇게 이뤄졌다.
"엄마, 나도 이제 문 크리스탈 파워 쓸 수 있는 거야?"
체모가 떨어져 지저분해진 방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고개만 살짝 들며 내가 물었었다.
"아니, 그건 좀. 보기 흉하잖니."
어머니는 그때도 위트를 잃지 않으셨다.
그렇게 난 변신족의 육체를 가졌고.
내 몸에 일어난 변화가 너무 신기해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고, 인터넷을 통해 조사도 했다.
근섬유의 변화.
그러니까 내 몸의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변한 거다.
그래서 더럽게 아팠다.
얼마나 아팠는지, 가끔 그때의 악몽을 꾸곤 했다.
그리고 지금.
우두두둑.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근육이 부푼다.
주먹이 커지고 이두, 삼두, 대흉근 따위가 두꺼워지고 굵어졌다.
두꺼워지고 커졌다. 변화의 중추는 그거였다.
"후우우우우."
놈이 긴 숨을 뱉었다. 한겨울도 아닌데 그 숨에 증기와 같은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새끼야, 난 완력 강화 초능종이다."
놈이 말했다.
완력 강화, 몸의 세포를 변화시켜 변신족에 버금가는 완력을 쓰는 초능종을 말함이다.
회사에서 다른 특수종에 관해 교육받을 때 본 적이 있었다.
그 초능의 변화가 불멸의 감각에 여실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게 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불멸은 안 죽는다고? 머리통을 으깨 주마."
흥분한 놈이 주차장 기둥에 손을 뻗더니 악력만으로 우득 하고 벽 일부를 떼어 낸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불멸은 완력이 약하다. 그런데 본인은 완력 강화 초능종이다.
고로, 불멸 하나가 자신을 쫓은 건 실수다. 두들겨 패겠다.
이런 생각이렷다.
꿈틀대는 근육 위로 굵어진 혈관이 보였다.
자, 보자, 지원군이 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 5분에 최대 10분.
쿵.
땅을 박찬 놈이 달려들었다. 달려들어 손을 휘두른다.
텔레폰 펀치였다. 제대로 뭘 배운 놈은 아니었다.
이거 참.
몸을 틀며 주먹을 피했다. 훙 하고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완력 강화, 곧 저 양손은 철퇴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뻗은 팔을 중간쯤에 낚아챘다.
팔꿈치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은 거다.
"킁!"
놈이 콧김을 뿜으며 힘을 썼다.
동시에 나도 힘을 썼다.
미안하다. 친구야.
내가 불멸자이긴 불멸자인데, 그 불멸 말고도 비밀이 있단다.
우득.
뼈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어, 이게 왜?"
"왜 네가 당기는 대로 안 당겨지냐고?"
왜겠냐?
놈의 근력은 대단했다. 그런다고 힘에서 내가 밀린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나도 마음 편히 힘 한 번 써 보자.
그동안 팀장에게 죽도록 당하면서도 힘을 제대로 쓸 순 없었거든.
내가 그 한이 맺힌 사람이야. 새끼야.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악력으로 팔을 쥐고 관절의 반대 방향으로 비틀고 당겼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놈이 버텼다.
그래, 힘 좋네.
근데 내가 무식하게 힘만 쓰는 사람으로 보이니?
팔을 놓자, 놈이 당기던 힘을 주체 못 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걸 보며 달려들어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놈이 무릎을 치켜세우며 내 명치를 노렸다.
난 그걸 손바닥으로 받아 냈다.
우리 팀장에게서 쏙쏙 훔쳐 배운 기술 나가신다.
무릎을 받아 내며 그 힘을 옆으로 밀어 흩어 낸다.
모든 힘을 운동 방향을 가진다.
그걸 비트는 것만으로 상대의 공격은 흘릴 수 있다.
힘의 방향이 자신의 생각한 것과 다른 곳으로 가면 균형을 잃는다.
내가 이거에 당한 게 몇 번인지.
놈의 무릎을 옆으로 쳐내자, 한 발로 중심을 잡은 놈이 기우뚱 기울었다.
난 품 안으로 더 바짝 쫓아가 왼발을 놈의 가랑이 사이로 넣었다.
근접 전투 중에서도 초근접 전투다.
팀장의 특기였고, 이젠 내 특기이기도 하다.
파고든 채로 왼발에 무게 중심을 옮기며 오른발을 뒤튼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아래에서 위로 왼 주먹을 올려쳤다.
발끝, 발목, 무릎, 허리 회전을 이용한 주먹이 놈의 턱에 작렬했다.
쩡!
크리스탈 잔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놈의 입에서 핏줄기가 치솟았다.
핏줄기 사이로 보이는, 허공에 쏘아진 예쁘고 빨간 덩어리는 놈의 치아겠지.
칫솔질 열심히 하며 살았구나.
이빨이 참 많이도 튀어나온다.
"끄어억."
한 방에 상황 정리다.
걸린 시간은 3분도 되지 않았다.
충격에 정신을 놓은 놈이 바닥에 쓰러졌다.
놈은 눈깔이 뒤집히며 흰자만 남아 있었다.
"후아."
동시에 나도 숨 한 번 토하며 바로 섰다.
이제 몇 분이면 지원이랍시고 PWAT팀과 그 인간 탐지견 변신족이 오겠지.
아직 몇 분의 시간이 남았다.
난 순수한 호기심에 물었다.
"그것보다 작게도 변신할 수 있어?"
내 물음의 끝은 놈이 들고 가던 숄더백.
나와 싸우겠다고 한쪽에 던져 둔 그 가방이었다.
곧 가방이 꿈틀거렸다.
38. 네, 신입 사원 유광익
숄더백은 말이 없었다.
난 터벅터벅 걸어가 그 앞에 섰다.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찾았다.
올바른 신입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담배도 안 태우는데 라이터를 갖고 다녔다.
선배와 선임이 원하면 언제든 불을 붙여 주기 위한,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소셜 스모킹 상황에 끼게 해 주는 고급 아이템이다.
"내가 배운 바로는."
딱! 딱!
말하며 엄지로 발화장치를 누르며 라이터의 기능을 확인했다.
터보 라이터라 쉬이이익 하고 파란 불꽃이 예쁘게 올라오는 게 보였다.
"형태변환자는 강철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어도 진짜 강철이 될 순 없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쪼그려 앉았다.
어쩐지 숄더백이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가방은 말이 없었다.
누가 보면 독백의 연기요, 좀 나쁘게 보면 정신 병원에서 탈출한 지 삼십 분도 안 되는 놈으로 보이겠지만.
난 확신했다.
상황을 살피고 확신을 가진 게 아니었다.
날카롭게 갈린 칼날 같은 직감과 육감이 말했을 뿐이다.
이 가방은 보통 가방이 아니라고.
그동안 교육을 통해 배운 이론이 내 직감을 뒷받침했다.
형태변환자는 외형을 바꾸는 초능력을 가졌다.
같은 능력을 갖췄다고 전부 같은 농도의 힘을 가졌을까?
불멸도 순혈과 혼혈을 나누고, 불멸과 변신의 혼혈인데도 성공적으로 혈통을 이은 나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끔찍한 일이지.
아버지, 어머니야 모르고 한 일이지만, 잘못했으면 아들이 이도 저도 아닌 괴물 새끼가 될 뻔했다.
하긴. 얼마나 애태우며 날 낳고 기르셨겠나.
어릴 때는 동생 갖고 싶다고 참 많이 떼를 썼는데.
동생은 절대로 낳지 않는다고 결심한 이유, 이제는 알겠다.
무엇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릇된 생각이나 태도를 보일 때 왜 어머니가 그리 쉽게 주먹을 드셨는지도 알겠다.
바르게 자라야 했으니까.
나사 하나 빠진 놈이 되면 안 되니까.
신통한 주먹이다. 난 덕분에 일찍 철이 들었다.
체벌은 아이를 기르는 데 필요한 요소이며 교육 현장에서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하여간 불멸도 능력에 따라 가진 힘이 다르다.
초능도 같다.
아니, 초능은 더 하다.
형태변환자 중에서도 특출난 능력을 지닌 자들.
사물로 변하는 초능 특수종.
형태변환자의 진화형, 형태변환 2단계, 사물 변환이다.
그래서 결론.
쉬이이익.
라이터를 슬쩍 가방에 갖다 댔다.
움찔.
가방이 움직였다.
"쉬이이익."
입으로 소리 내며 빈 라이터를 들이대는 순간.
"항복!"
숄더백이 말을 했다.
진즉에 이럴 것이지.
가방 중간에서 혀가 튀어나오고 치아가 보였다.
주둥이만 생겨서 말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했다.
이 새끼는 할리우드 공포 영화에 출연시키면 대박 날 것이다.
실제로 형태변환자 중 일부는 특수분장 대신 영화계에 종사한다.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말했다.
"라이터는 좀 치우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난 순순히 주머니에 라이터를 수납했다.
천 원짜리다. 아껴 써야지.
"뭘 물어도 기대하는 대답은 없을 거다. 그건 내 커리어가 무너지는 일이라고. 하지만 거래는 가능하지."
숄더백이 말을 이었다. 속사포 같은 랩이었다.
난 놈의 말을 무시하고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더 작게 변할 수도 있어?"
진짜 신기하단 말이지.
어떻게 사람이 겨우 요만한 크기로 변하냐고.
슬쩍 들어보니까 무게는 그대로다.
부피는 변하지만, 질량은 같다. 외피의 촉감은 바꾸지만, 라이터로 지지면 화상은 남는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외형만 바꾸는 거다.
신기해라.
"...뭐?"
"귀도 좀 꺼내, 잘 안 들리나 본데."
"야, 아니, 그게 아니라 뭐가 궁금하다고?"
"더 작아질 수 있냐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숄더백이 말했다.
"뭐 인마?"
사람이 부드럽게 나오니까 슈크림으로 보이나.
어떻게 한 번 캡사이신 맛을 보여 줘야 하나.
"못 해. 이게 한계다."
놈이 말했다.
"그래?"
그래도 신기하긴 하다.
"그럼, 사람으로 돌아와야지."
내가 말했다.
놈, 아니 년이 곧 묵묵히 자신이 가진 초능을 내보였다.
우드드득.
뼈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시작으로 그로테스크하며 신기한 변화가 내 눈앞에서 이뤄졌다.
가방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발이 나온다. 가방 겉면에서 눈깔이 툭 튀어나오더니 코가 생겼다.
쑤욱 하고 자란 머리카락이 가슴까지 내려왔고.
쭉 뻗은 하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만 좀 쳐다봐."
형태변환자가 말했다.
난 당당히 말했다.
"눈 돌린 틈에 튀게?"
"아까 너 달리는 거 봤거든. 난 빨리 못 달려."
"못 믿지."
볼록 솟은 가슴과 흰 다리와는 별개로 난 내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난 불특대이며 이 일에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눈을 부릅떴다.
"변태 새끼가."
형태변환자가 인신공격을 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놈의 겉옷을 벗기더니 대충 걸쳤다.
바지는 없었지만, 겉옷이 길어 얼추 가려지긴 했다.
브리핑 때 대리가 말했다.
이번 목표물은 우체부라고.
영어로는 포스트맨이라고도 부른다. 이 경우에는 포스트우먼이려나.
하여간 우체부, 이건 속어고.
풀어서 설명하면 이들은 자유 계약 용병이며.
정보나 중요한 문서를 나르는 일을 한다. 보통 형태변환자가 많이 종사하는 직종이라고 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현장에 있던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안, 우리 우체부 양의 눈꼬리가 밑으로 쳐졌다.
꽤 예쁘장한 얼굴이다.
그런데 궁둥이가 좀 작았다. 유심히 본 결과 외모가 내 이상형은 아니다.
이번에는 이상형이라도 문제다.
말이 자유 계약 용병이지, 이쪽은 반은 범죄자다.
그러니까 이렇게 잡으러 오는 거고.
"뭘 보는 거야."
의외로 우미호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녀가 날 보고 물었다.
"타깃."
담백하게 답하니, 그녀가 답했다.
"변태."
"내가 왜?"
우미호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타깃에게 다가가 수갑을 내밀었다.
초능력을 억제한다는 특수한 금속의 수갑이었다.
그걸 채우고.
곧 다른 이들도 모였다.
거기에는 분석팀 대리님도 있었다.
"베타 셋, 상황 보고합니다."
상황이 끝났으니, 상관에게 보고는 기본이다.
일어난 일을 간추려서 말했다.
PWAT 팀장이 쓰러진 남자를 살폈다.
"이자를 그쪽 팀원이 잡았다는 겁니까?"
말투가 딱딱했다.
굳이 숨길 일도 아니었다.
"네, 운이 좋아서."
말이 운이 좋아서지, 난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불멸이니 생채기가 생겼어도 재생했겠지만, 신색이 지쳐 보인다거나 괴로워 보인다거나 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는 거다.
힘든 척이라도 할까?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음."
PWAT 팀장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우미호가 쓰러진 작자의 얼굴을 살피고 제일 늦게 잘생긴 개나리가 도착했다.
"상황 종료다."
내가 친절하게 말해 줬다.
"이 몸이 했다."
이건 작게 읊조렸다.
"꺼져."
잘생긴 개나리의 한마디가 칭찬으로 들려서 콧노래를 들려줬다.
광익이가 랩을 한다. 호옹, 호옹, 호옹.
"미친 새끼가."
기남이 평소보다 한마디를 더 했다.
내 노력의 결과였다. 자식, 내 노래가 듣기 좋았구나.
전부터 느낀 건데 이 새끼는 이상하게 공적에 집착한다. 오티 때도 성적에 집착 쩔었다.
노력도 그만큼 하긴 했다. 진짜 피를 토하며 사는 놈이다.
그래서 더 놀리는 맛이 있지.
"아, 의도치 않게 제가 이런 일을 했네요."
뒤통수를 긁으며 괜히 분석팀 대리에게 가서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칭찬은 됐습니다."
마저 말을 이었다.
대리님은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또 눈치가 보통 빨라야지.
그래서 적당히 먼저 말해 준 거다.
"어, 잘했다."
대리가 답했다. 어쩐지 떨떠름한 것 같아 보니 그는 PWAT 팀장이 보는 곳을 보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쓰러뜨린 그놈을 주시하는 중이다.
싸움 더럽게 못 하던데.
일단 할 말은 마저 해야 했기에 입을 마저 털었다.
"전 한 명 찾아냈다고 신나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머저리가 아닙니다."
까드득.
정기남의 어금니 맞물리는 소리가 아름다운 시 한 구절로 들리는구나.
옳다구나, 좋다, 매우 좋다.
"가볍군요."
PWAT 팀장이 중얼거렸다.
"불특대 치고는 좀 가볍네."
"그러게."
남은 초능 대원 둘이 말을 주고받았다.
뭐가 좀 가볍다는 거냐? 정기남과 비교해서 가벼워 보인다고?
에이, 그건 아니지. 상황 끝났으면 긴장을 푸는 것도 일이다.
불멸은 감각을 끌어올릴수록 다시 본래의 텐션으로 내리기가 힘들거든.
적당한 농담, 풀어진 분위기, 안정된 장소가 필요했다.
난 그중에서 두 개의 조건을 먼저 시도했을 뿐이다.
"너 재밌다."
변신족은 오히려 날 보고 호감을 표시했다.
괜찮다. 그 호감 넣어 둬.
남자의 호감 따위.
"제가 좀 겸손한 편입니다."
적당히 말하니.
그제야 분석팀 대리가 날 보며 물었다.
"베타 셋, 네가 잡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나?"
"다 알고 보낸 거 아니었어?"
그 물음에 나 대신 형태변환자가 물었다.
몰랐는데.
아니, 그냥 적당히 힘 좋은 초능력자 아니었다.
"3급 수배범, 나두팔, 통칭 코뿔소."
분석팀 대리가 말했다.
아무리 철저하게 교육받았다고는 해도, 현시대에 날뛰는 모든 범죄자를 알 순 없다.
하물며 나두팔의 출현은 여기에 있는 누구도 예상 못 했다.
"맞습니다. 3급 수배범 나두팔. 현상금 붙은 범죄자죠."
PWAT 팀장이 재차 확인하듯 말했다.
어, 음? 이게 뭐냐.
"저 친구 좀 치는데, 꽤 하는군요. 불특대 대원님."
안경 쓴 변신족이 말했다.
"아, 네. 뭐."
진짜 대충 답했다. 3급 수배범이라고?
내가 배운 바대로라면 3급 수배범은 최소 테러 단체와 연관되어 있거나 살인 경험이 있는 놈이다.
또는 그에 준하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가령 기밀을 빼돌리는 해커 따위가 그런 수배범이 된다.
쓰러진 새끼는 아무리 봐도 해커로 보이진 않으니, 힘쓰는 종류의 일을 할 거고.
고로 살인과 폭력을 일삼는 전문 범죄자란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약하지 않았냐.
"혈투였겠지?"
"불멸이라 상처가 없는 거지."
남은 초능 대원 둘의 대화가 귓가에 들렸다.
아닌데.
한 방이었는데.
그걸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난 묵묵히 뒤로 빠졌고.
"칫."
정기남이 혀를 차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고.
쓰러진 놈을 보며 다른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나 좀 하나?
3급 수배범을 한 방에 보낸 남자, 유광익.
꽤 괜찮은 수식어가 아닌가.
하물며 여기에 현상 수배범을 잡았기에 세금을 떼고 돈도 들어온다.
이놈을 쫓은 건 우연이었다.
내가 이쪽에 가까웠고, 대리님이 시켰다. 그게 아니었다면 난 안쪽 상황에 난입했을 것이다.
그때 내 판단으로는 안쪽이 더 위험했으니까.
"잘됐네."
대리님이 날 보고 웃는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난 알았다. 우연이 겹치긴 했어도 의도가 뒤따른 일이라고.
그러니까 저 대리님은 날 이쪽으로 보낸 거다.
뭘 기준으로?
이전에 블랙홀을 막고 현재 이중봉 팀장과 매일 어울리는 시간.
그 모든 게 대리님에게는 날 파악하는 시간이었을 거다.
자연스레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분석팀 대리가 이곳 작전을 맡은 이유.
신입 셋을 컨트롤하는 능력.
그가 했던 사고의 과정.
모든 일에는 결과가 있다. 결과 이후 원인을 따지는 건 생각보다 쉽다.
난 이 일의 결과에 서 있었기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직급은 아무나 따는 게 아닌가 보다.
날 여기로 보낸 건 저 대리님이었다. 만약 이 도망가는 새끼가 주요 인물일 수도 있으니까 대인 격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신입을 보낸 거지.
"자, 그럼 정산 좀 하죠."
"정산?"
대리님이 말하자, PWAT 팀장이 되물었다.
"타깃은 저희가 잡았습니다. 계약 조건은 그게 아니었는데요? 무력적인 개입이 아니라 서포트였습니다. 아닙니까? 하물며 우리 쪽 대원은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나섰습니다."
강희모 대리님은 허술하게 웃으며 서글서글한 미소를 보이던 남자였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니 그도 불멸특수대 작전 책임자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이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란 거다.
"불멸이 맨몸으로 싸운 게 뭐 대수라고."
초능 팀장이 불만을 토했다.
대리는 픽 웃으며 답했다.
"이걸 그냥 날름하시면 안 되죠."
목표물, 타깃은 내가 잡았다.
곧 불멸특수대가 잡은 거다.
"...좋아요."
PWAT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진 싸움이다. 대신 그녀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대신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처음 볼 때부터 생각한 건데, 빨간 립스틱이 참 잘 어울리는 미녀다.
"저 친구 직급이 뭐죠?"
그 미녀가 날 향해 손가락을 보였다. 네일아트 대신 짧게 자른 손톱이 보였다.
되게 대단한 걸 물은 것 같지만, 별일 아니다.
비밀도 아니고.
대리님이 날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답하라는 거겠지.
"네, 신입 사원 유광익."
여기서 딱 한 가지 실수는 이름을 말했다는 것뿐이었다.
매일 회사에서 관등 성명을 대다가 생긴 버릇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으흠."
이미 다 들은 뒤였다.
빨간 립스틱 팀장도.
그 뒤에 선 변신족 둘도.
39. 갖고 싶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