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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드시 실어 주십시오."

밤을 새운 덕에 김초명은 눈이 빨겠다.

밤새도록 습격받은 곳을 돌아다녔다.

조폭 사무실, 대부업체, 불법 대포폰을 만드는 애들까지.

전부 깔끔하게 털렸다.

금고를 들고 나르고 현물도 가져갔다.

'강도질이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전에 있었던 익명의 제보가 없었다면, 그저 강도질 따위로 치부할 수 있었다.

김초명은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다.

그 와중에 인터뷰도 땄다.

우연히 현장에서 마주친 여자였다.

겁에 질린 여자에게 인터뷰 비용으로 돈을 쥐여 줬다. 그제야 술술 입을 열었다.

별 내용은 없다. 하지만 필요한 내용은 다 있었다.

사실 단 하나면 충분했다.

"가면을 썼어요. 호랑이 가면이요. 피도 튀었고, 3층에 가 보니까 사람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고.... 모자이크 처리는 해 주는 거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모자이크가 문제인가.

가면, 호랑이 가면을 썼단다.

그거면 충분하지.

일반인을 마주쳤음에도 어떤 위해도 없었다.

그들은 목표로 한 것들만 때렸다.

익명의 제보를 토대로 한 증거.

그 증거와 어젯밤과 새벽 내내 일어난 일을 토대로 쓴 기사.

그렇게 국장 앞에 섰다.

"증거 있으면 해 주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처음부터 대들었다.

이번에는 안 해 주면 퇴사하고 개인 기사라도 낼 셈이었다.

어떻게든 알려야 했다.

그렇게 으르렁거리자.

"누가 안 해 준대? 무슨 말도 하기 전부터 송곳니부터 들이대? 내가 뭐, 비리의 온상이냐? 이제까지 돈 먹고 기사 내리고 그런 사람이었냐? 내가?"

그런 의심도 많이 들었었다.

국장이 그리 깨끗한 인간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도 테러 단체라면 치를 떤다, 아주 개자식들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니까 실어. 뉴스 헤드라인 올리고 방송국 놈 중에서 먼저 온 놈한테만 중계권 준다고 하고. 뜯을 거 다 뜯고. 초명아, 너 알지."

"뭘요."

"우리 이거 하면, 그때부터는 우리도 목숨 내놓는 거다."

그래서 거절할 줄 알았는데 한단다.

김초명은 국장이 변심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지만, 지금은 묻고 싶지도 않았다.

급한 건 이쪽이다.

"저 기사 씁니다."

"써라, 김초명, 내가 허락한다. 야, 미리 말하는데, 쫄리면 퇴사하고 오늘 밤에 튀어라. 내일 아침부터 우리는 테러 단체를 밝힌 언론인이자, 그 개새끼들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몸이니까."

"...그게 다 진짜입니까?"

다른 기자 하나가 물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침투한 한국 사회'란 가제의 기사와 내용은 이미 회사 내에서 떠돌았다.

"넌 내가 호구로 보여? 프로메테우스 저격 기사를 쓰는데, 소설 써서 올릴 것 같아?"

물었던 기자가 입을 다물었다.

몇 명은 떠났고 나머지는 남았다.

"까짓거, 언론의 자유가 뭔지 보여 주자고요."

베테랑 기자 하나가 말했다.

"그래, 가 보자. 김초명, 빨리 써!"

국장이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만든 기사의 제목이었다.

[범국가적 테러 단체 프로메테우스, 한국에 뿌리내린 암세포]

제목은 저격이었고 내용은 신랄했다.

[프로메테우스, 그들은 한국의 밤을 장악했고 낮에도 손을 뻗었다. 그동안 마약으로 인한 피해, 일반 서민을 등쳐먹는 불법 대부업체 등, 이들이 손을 뻗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지경이었다.]

증거가 나왔고, 그 와중에 지난 밤 일어난 사건의 자초지종도 나왔다.

[호랑이 가면을 쓴 무리는 머니 & 세이브를 타격했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럼 그들은 강도였고 테러범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테러 단체에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 무리가 고용한 프리랜서라고 본 기자는 추측한다.

그 예로 그들은 일반인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으며, 하물며 머니 & 세이브 금고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다만 돈세탁을 전문으로 하는 테러 단체 요인이 3층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을 뿐이다.]

기자의 사견이 들어가긴 했지만, 워낙 충격적인 사건인지라, 나라가 들썩였다.

* * *

'내 조카지만.'

음흉하고 머리 잘 돌아가고 집요한 놈이다.

그저 힘만 믿고 날뛰면 불리해지는 건 광익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뒤엎었다.

'도와라.'

아버지가 그리 말했다.

그럴 작정이었다.

필요하다면 그룹의 힘을 쓸 생각도 있었다.

여력도 있었고, 그럴 영향력도 충분했다.

하지만 광익이 요구한 건 더 단순했다.

"삼촌, 언론사 하나만 압박해 주고 보호해 주세요."

"압박이랑 보호랑 다른 단어인 건 알지?"

"알죠."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프로메테우스를 찌르고 싶어 안달 난 기자가 소속된 신문사.

압력이야, 그룹의 힘까지도 필요 없다.

제 명함 한 장이면 충분했다.

단군 그룹 산하의 본부장 명함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여기 한국입니다. 프로메테우스고 프린세스 메이커고 간에, 그룹에서 지키겠다고 하면 지킵니다. 3년, 무상으로 경호팀 붙여 드리죠."

회유와 압박이다.

언론사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일에 정치를 제외할 순 없다.

이윤이 움직이는 일에 권력이 움직이고 권력이 움직이는 일에 이윤이 움직인다.

다만, 이번 일은 조금 달랐다.

이긍낙은 조카의 부탁을 받았을 뿐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물며 경호팀 운영 비용도 조카가 냈다.

"어머니가 삼촌한테 빚진 거 알면 저 죽어요."

아직 누이와 그룹 간의 갈등이 다 해소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저리 말한다.

참 속없어 보였는데, 속이 깊은 조카 놈이다.

그래서 돈도 받았다.

그러니 이 일은 정확히 의뢰를 받은 일이다.

언론사가 기사를 내기 전, 이미 3년 경호 업무 계약을 체결했다.

이윤과 정치, 권력과 별개로.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이 벌인 일로 세상이 들썩였다.

한국 뉴스뿐 아니라 전 세계 뉴스가 시끄러웠다.

깊게 뿌린 내린 프로메테우스를 몰아내자는 말이 뉴스 댓글에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론이다.

여론이 뭉치고 프로메테우스의 정체를 밝힌다면, 어젯밤에 일을 벌인 가면 무리에게는 면죄부가 생긴다.

프리랜서가 범죄자를 잡는 일도 묵인하는 판이다.

현상금 사냥꾼이란 놈들도 있다.

그럼 그 상대가 프로메테우스라면?

'내가 정부라도 봐줘야지.'

안 봐주면 어쩔 건데.

답이 없었다. 잘 만든 판이었다. 광익이 만들고 주무르고 조작한 판이기도 했다.

"누나, 조카 한번 기가 막히게 키우셨네요."

긍낙이 허공에 부스터 연기를 뿜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연초 형태 부스터 말고 다른 걸 개발해야 하나.

실내 금연이란 말에 부스터까지 못 피우게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아침부터 날이 더웠다.

푹푹 찌던 날이었는데, 일기 예보도 예측하지 못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시원한 장대비였다.

* * *

"이 기회에 털어 내시죠."

유연호의 말에 장관이 그를 바라봤다.

"다 못 털어 내면 역풍이다, 알지? 여기에 엮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돈과 권력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다.

프로메테우스가 한국에 어떻게 침투했겠나. 돈을 갖다 발랐다.

정치인에게 바르고 기업인에게 바르고, 필요하면 기부도 하고 지자체에도 쏟아부었다.

그렇게 기반을 마련했다.

"다 털어 내시죠."

유연호의 의지는 굳건했다.

아들이 프로메테우스와 싸운다. 아비 된 도리로서 응원은 못 할망정, 정치인이 엮였다고 말릴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할 생각도 없다.

"연호야, 유 팀장, 이거 진짜 쉬운 일 아니야. 무력으로만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힘으로 될 거였으면 저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습니다."

피닉스팀 데려가서 다 멱을 따 버렸지.

대충 누가 연관되고 엮였는지는 안다.

"혹시 저 몰래 돈 받았으면 미리 말하고요."

"...왜? 난 봐주게?"

"제가 봐줄 것 같습니까?"

국장은 만약 자신이 연관되었다고 말한다면 이 불멸자가 이 방을 곱게 나가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너 왜 이렇게 극단적이냐?"

"극단적인 게 아니라 옳은 일을 하자는 겁니다."

"끙."

국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진짜 하자니, 골이 아프다.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 라인까지 닿을 일이다.

그렇다고 누구는 봐주면서 누구는 털 수도 없는 일이고.

당장 기사가 터지자마자, 로비가 들어온다.

로비의 주제는 한결같았다.

돌려 말했지만, 상대 정치 세력을 압박하는 카드로 쓰자는 거다.

그러니까 자기편은 놔두고 상대편만 털자는 건데.

"야, 행안부에서 작정하고 움직인다고 이게 될 일이야? 안 된다니까."

"그래서 여기서 말씀드린다고 했잖습니까."

두 번 말하게 할래? 유연호가 표정으로 말했고.

장관은 어쩔 수 없음을 알았다.

전화기를 들고 검찰에 연락했다.

"...무력은 우리 쪽에서도 지원할 거고 30분 뒤에 시작합시다. 리스트는 보내 드릴게."

"미친 거요? 대한민국 정치를 아작 내겠다고?"

이게 터지면 뭐라고 불릴까.

프로메테우스 게이트?

블랙홀만으로 끔찍한데 또 게이트라니.

그래도 어쩌겠나.

안 하면 혼자 나가서 다 족칠지도 모를 인간이 유연호다.

들어줘야 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허락도 떨어졌다.

"그래요. 합시다. 이번에 안 하면 어쩌겠어요. 알고도 넘어가면 올드 포스 가입국으로서 얼굴도 못 들겠지요."

국가 원수의 말이다. 무게감이 달랐다. 물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말려 보려고 한 건데.

"저 공무원으로 남게 해 주시죠."

검찰 쪽의 잔소리를 듣는 와중에 유연호가 말했다.

"협박하지 마. 내가 네 부하냐?"

장관이 잠시 수화기를 내려놓고 성을 냈다.

그 뒤, 수화기를 다시든 장관은 목소리를 높였다.

"아, 몰라. 우린 할 거고 막을 거면 막든가. 피닉스팀 보낼 거니까."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장관님, 최고."

유연호가 엄지를 치켜세우고 나갔다.

열린 문으로 밖을 보니, 이미 팀이 대기 중이었다. 안 말리면 진짜 홀로 나설 셈이었을 거다.

"아이고, 저 꼴통. 아들은 저놈 안 닮았어야 할 텐데."

장관이 중얼거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런 면을 쏙 빼닮았으니.

어제 난리 친 가면의 주인이 광익인 걸 알면 더 기가 막혔을 노릇이었다.

183.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줘

게이트가 터졌다.

블랙홀이 아닌, 비리 게이트가.

일명 '프로메테우스 게이트'다.

난리도 아니었다.

하루가 멀게 정치인이 잡혀가고.

기업 총수도 잡혀가고.

아프다고 검찰 출두 거부하고.

오밤중에 잡혀가서 불법 구속이니, 불법 사찰이니, 하는 말이 오가고.

뭐, 나야 모른다.

나라가 깨끗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속 편하게 밥 먹고 훈련이나 했다.

당장 프로메테우스 애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걸 지켜보느라 신경을 곤두세울 뿐이지.

그나저나 우리 팬더 형, 진짜 일 기가 막히게 잘하네.

큰 그림은 내가 짰지만, 이 모든 걸 맞춰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게 우리 팬더 형 되시겠다.

중간에 필요한 정보도 알아서 뽑아내고.

뭐, 시발 팀장을 통해서 불특대 정보가 좀 넘어왔다고 들었다.

보너스로 시계 다섯 개쯤 사 주고 싶은 마음이다.

덕분에 머니 & 세이브는 하루 만에 폭망.

"우리 제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늘 내가 다 사 준다."

내가 칠 사고를 미리 말해 줬더니, 역으로 주식을 사서 상한가를 친 통나무 선생님도 기뻐했다.

"저 킹크랩이요."

기왕 먹는 거 비싼 거 먹도록 하자.

"좋아."

말만 앞서는 양반은 아니다. 금세 사 주겠지, 뭐.

그나저나 프로메테우스가 잠잠하다. 당장 악어가 입국하지는 않을지, 본래 목적이었던 또 다른 간부가 들어오진 않을지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다.

몰래 뒤통수치려나?

그런데 그러려고 해도 낌새는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훈련하고 밥 먹고.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건물을 돌아봤다.

다 커서 언제까지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겠나.

돈이 없으면 모를까.

이번에 금고 털고 골드바 털고 보석 털고.

하여간 또 부자가 됐다.

그거만 시가 20억이 넘는다.

휘황찬란한 건물까진 아닌데, 동네에 내가 머물 장소 하나쯤은 살 형편은 된다.

부동산을 찾아 돌아보다가 팬더 형 집에 가서 이 얘기를 꺼내니.

"건물을 사서 어디에 쓸 건데?"

"개조해서 훈련장 만들고 이것저것?"

"됐어. 내가 구할게, 복비 나 줘."

라고 팬더 형이 나섰다.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어요?"

"어, 있어."

농담 삼아 물었는데, 진짜 있다.

"다른 자격증도?"

"몇 개 더 따 두긴 했지. 요원 일 쪽 하다 보면 쓸 데가 많으니까."

"...형 진짜 머리 좋구나."

"에듀빌이 최고임. 공인중개사 합격도 에듀빌, 몰라?"

오랜만에 CM송을 들었다.

아버지가 처음 공무원 하라고 권했을 때, 머릿속에 떠다니는 노래였는데.

"요즘은 인강이 대세다."

팬더 형이 말했다.

인강이 대세인 건 옛날이고.

요즘은 홀강이 대세죠.

홀로그램 강의가 요새 그렇게 뜬다고 하던데.

AI 프로그램이랑 섞어서, 막 진짜 1:1 강의하는 것처럼 한다고 그런다.

"좋아요. 5층 정도면 충분해요. 상가 건물이 나을 것 같고, 1층 통째로 주차장 같은 거 만들고, 지하에 훈련 시설 넣어야 하니까, 그것도 고려해 주시면 좋고요."

"알아서 구할게, 와서 보고 선택해."

능력자다.

이 형 그때 감방에서 안 꺼내 왔으면 어쩔 뻔했나.

부르르.

폰이 울렸다. 사수였다. 전화를 받으니.

"낌새가 이상해."

목소리는 멀쩡하다. 아직 몸이 회복되려면 멀었을 텐데.

비약 인간은 일반인보다 회복이 더 빠르다. 그렇다고 해서 불멸자 만큼 빠르진 않으니.

회사 보험 처리하면 골이 아프다는 말에 병원비는 내가 부담했다.

"몸은 좀 어때요?"

안부부터 물었다. 일로 만난 사이이긴 한데, 그래도 그동안 든 정이 있다.

"장미가 입을 열었다."

안부 인사는 무시다.

사수는 할 말만 했다.

누가 얼음덩어리 아니랄까 봐, 사람 참 안 변해.

입원해서도 정보를 계속 받은 모양이다. 누가 전해 줬을까 생각하다가 고민할 거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겠나, 시발 팀장이지.

하여간 츤데레 양반.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할 건 다 해 준다. 이렇게 기밀도 쏙쏙 빼 준다.

"...아직 살아 있네요?"

불특대에 잡히고 이런저런 일로 쥐어 터져서 반폐인이 되지는 않을까 했더니.

아니면 감방에라도 처박혀 있거나 했을 텐데.

"정신 구속을 풀었어."

"네, 그래서요?"

"로즈가 말한 거점, 불특대가 급습했는데 남은 게 없어."

"음?"

이게 무슨 소리야?

"둘 중 하나라고 봐. 하나는 퇴각, 다른 하나는...."

"한 방을 노리고 힘을 모은다?"

"로즈는 아는 눈치였는데, 입을 여는 데 조건을 걸었어."

"뭔데요?"

"널 보고 싶대."

그게 전화를 한 이유였습니까?

"...날?"

"그래. 너."

"굳이?"

"이유는 나도 몰라."

"일단은 알겠습니다."

"불특대에서 공식적으로 요청이 갈 거야."

전화를 끊었다.

팬더 형한테 전화 내용을 말해 주니.

"자폭하려는 거 아니냐?"

라고 걱정 어린 말을 뱉었다.

"저, 혹시나 하는 건데."

진짜 나도 이런 말 하기 싫은데.

사실상 자폭은 불가능하니까.

블특대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자폭 장치를 품은 걸 놔둘 턱이 있나.

이미 전신 스캔하고 다 털었겠지.

그러니까 드는 생각이다.

최근에 내가 좀 여자한테 인기가 많아진 것 같아서 그런단 말이지.

PWAT 지혜 누나도 있고.

변신족이고 욕구에 충실하다지만, 피지컬 깡패 소진이도 있고.

혜민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로즈도 여자니까."

내 말에 팬더 형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제가 옴므파탈 같은 느낌이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아니요. 농담이었습니다."

그럴 턱이 있나.

나도 농담으로 하는 소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리지.

로즈 걔가 아무리 또라이라고 해도 이건 진짜 아니다.

부르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울렸다.

요한 형이다.

"광익아."

"응, 말해."

"나 아는 지인 아니고, 회사 대표해서 전화한 건데."

기다리던 전화였다.

심문을 위해 출두할 수 있냐는 거다.

난 물론 가야 했다.

여러 가지 이유다.

첫째는 프로메테우스의 동향을 읽는 일이었고.

둘째는 로즈의 심사가 궁금했으니까.

다만.

"얼마 줄 건데?"

"응?"

"회사 회계팀에 물어봐, 얼마 줄 거냐고. 아, 인사부에 내 몸값 알아본 다음 연락해 달라 해 주고."

"...와."

놀란 요한 형에게 내가 명언을 남겼다.

"형, 회사가 전쟁터 같지? 밖은 지옥이야. 나 프리랜서라고."

어디서 맨입으로.

"알았다. 야, 무섭네."

"요원 말고 요한이 형으로 놀러 와. 소고기 사 준다."

"그건 좋은데."

전화를 끊고 보니. 팬더 형이 날 보며 손뼉을 쳤다.

"그래, 젊을 때 한 푼 두 푼 모아야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리 둘은 의기투합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몸값 책정에 이틀이 걸렸다.

난 오랜만에 화림으로 향했다.

이전 첫 출근 때처럼 마을버스와 지하철 타고 가는 게 아니라.

내 스포츠카를 몰고 갔다.

부아아아앙.

멋들어진 배기음과 함께 주변 시선을 한 번에 받으며 건물 앞에 섰다.

이전 화림 습격 사건 이후, 아직 건물 재건이 안 끝나서 일시적으로 발렛파킹을 시행 중이라고 들었다.

건물 앞에서 내리자.

"유광익?"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유광익?"

"퇴사한 그 신입?"

"경이의 신입?"

"오, 저분이 그분입니까? 그 유광익?"

"근데 저 차는 뭐야?"

"와, 나 저거 알아. 한정판인데 십억 넘을걸?"

이게 바로 하차감이다. 승차감은 차를 탔을 때의 편안함, 하차감은 내렸을 때의 주목도.

주변에서 지저귀는 사람이 많다.

"오랜만입니다. 다들."

대충 아는 얼굴만 보면서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내데스크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인포메이션 누나다.

습격 사건 때 안 죽었고 이후로도 계속 자리를 지킨 듯했다.

"와, 광익 씨."

누나가 날 더 반겼다.

"오, 누나 아직도 일해요? 몸은 괜찮아요?"

"내 뒤에 딸린 군식구가 셋이야. 내가 일 안 하면 내 가족 다 굶어."

진짜 굶기야 하겠나.

다만, 그만큼 일이 고프다는 거겠지.

이 누나, 참 친절하고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재주가 있다.

이런 것도 초능이라면 초능이지.

얼굴도 웃는 상인데, 참 귀엽고 정감 가는 타입이다.

"올라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이전에야 홍채, 지문 따위로 날 인증했는데 지금은 다 안 될 테니.

"일단 신분 확인부터 해야 하니까, 잠깐만."

인포메이션 누나가 곧 사람을 불렀다.

보안 요원 둘이 왔는데, 아는 얼굴이다.

동기는 아니고 그 뒤에 들어온 후배님들이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한 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른 하나는 묵묵히 스피드건 같은 걸 나한테 겨눴다.

"초능 측정기입니다."

응, 알아. 보자마자 오라 따위가 느껴지는 걸 보니, 사이킥 기어의 일종이니, 판독기 같은 거다.

형태변환자를 대비하는 거겠지, 뭐.

"오라 수치 없습니다."

무뚝뚝한 후배가 말하고.

존경한다고 고개를 숙인 후배는 죄송하다며 이상한 부적을 쥐여 줬다.

"정신 조종 또는 해로운 주문을 판독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최미남한테 당한 게 크긴 컸다. 출입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아무 이상도 없었다.

"이상 없으십니다. 선배님."

"저 퇴사했어요. 선배 아닌데."

"아, 그렇죠. 그건 그런데."

"신입 놀리지 말아요. 광익 씨."

뒤에서 인포메이션 누나가 한마디 했다.

그걸 보고 나도 생긋 웃었다.

"선배 말고 그냥 이름 불러 줘요. 딱딱해서요."

말하고 승강기에 올랐다.

"네, 그럼 광익 님."

후배님이 참 예의가 바르네. 그 옆에 선 말 없는 후배님은 무뚝뚝하시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턱.

닫히려는 승강기 문을 무뚝뚝 후배님이 잡았다.

"음?"

고개를 갸웃하고 바라보자.

무뚝뚝한 후배님이 신중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읊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사인 한 장만."

무뚝뚝한 게 아니라 낯을 가리는 거였니?

"그럽시다."

해 줬다. 겉옷을 벗으며 안에 입은 흰 티에 해 달라기에, 유성 매직으로 해 줬다.

거, 사인 그게 뭐 얼마나 어렵다고.

그나저나 내 인기가 이렇게 폭발적이라니.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내렸다.

"흥, 놀고먹으니 때깔이 곱구나."

기남이가 날 기다렸다.

"...굳이 따라와서 넌 왜 그러냐."

옆에서 요한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굳이?"

내가 되물었다.

이 자식이 날 기다렸다고?

"웃기는 소리. 지나가는 길이다."

기남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치고. 어디로 가요?"

1층은 아직 정리가 미흡했지만, 그래도 이쪽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올드 포스, 세계 정부 연합이 인정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 한국의 중추 중 하나가 불특대고.

당연히 이런 제반 사항은 최우선으로 처리해 주....

"이거 왜 이래?"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니, 파티션 대신에 박스가 뭐냐? 알게 모르게 주변을 보니 빈티가 난다.

방음 소재 벽도 복구 안 됐고.

반파된 회의실 안을 휴게실로 쓰는 요원도 보였다.

슬쩍 탕비실로 눈을 돌리니.

[식음료 개인 지참]

이라고 쓰인 안내문이 보였다.

"이제 회사에서 과자 안 줘요?"

"야, 요즘 회사 어렵단다."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퇴사자."

요한 형이랑 얘기하는데 뒤에서 기남이 끼어들었다.

쟤는 오랜만에 만나서 헤드락을 당하고 싶나. 왜 졸졸 따라오면서 시비를 걸까.

"넌 지나는 길이 내 뒤꽁무니냐? 안 가? 안 바빠?"

"요새 회사 일도 없어, 노는 사람 많다."

내 말에 요한 형이 답했다.

기남이는 흥- 하고 콧방귀만 꼈다.

호남이 형은 안 보이고 툭툭 걷는데, 진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시발."

반가운 얼굴이 중얼거렸다.

시발 팀장이다.

거, 사람 참 안 변해.

"입에 걸레를 문 사람이 있네요. 저 기분 나빠서 일 못 하겠는데, 그냥 가도 돼요?"

마침 흰 머리 본부장도 보이길래 입을 좀 놀려봤다.

"야, 이중봉, 너 혀 놀릴 거면 사직서 날리고 해."

"...."

시발 팀장은 입을 놀리는 대신 날 향해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의문과 폭언이 담긴 눈빛에.

풉 하고 웃어 줬다.

"허허."

팀장이 입으로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 무서워서 이거 원."

그걸 보고 내가 중얼거렸다.

"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흰 머리 본부장이 말했고, 2팀 팀장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노는 손이 전부 시발 팀장을 붙들었다.

놔뒀으면 분명 덤볐다고 저 양반.

"환영 인사는 이만하면 됐고, 내려가지. 그리고 퇴사자지만 한때 몸담았던 곳인데, 예의는 조금 지켜 주면 좋겠다. 뒤에 둘은 그만 가 보고."

흰머리 본부장의 말이다.

나도 칠 장난은 다 쳤다.

"가시죠."

두말할 것도 없이 로즈 또라이를 만나러 갔다.

요한 형과 손 인사, 기남이한테도 손 인사.

물론 모양은 다른 인사다.

한 명은 손바닥으로 다른 한 명은 손가락으로 인사했다.

마지막으로 멀어지는 시발 팀장에게 윙크 한 번을 날렸다.

팀장이 입 모양으로 욕설을 뱉기에 고개를 홱 돌렸다.

안 보면 그만이다.

지하로 내려갔다.

감옥이 있는 곳이었다.

철창, 그 가운데 의자에 덩그러니 앉은 로즈 또라이가 보였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불쌍하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로즈가 날 바라본다.

"열어."

본부장의 말에 요원 하나가 나서서 문을 열었다.

"안전은 보장한다."

본부장이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죄인 앞에 섰다.

로즈 또라이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줘."

...아, 진짜 이러기야?

184. 프로메테우스 아웃

로즈 또라이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흐리멍덩한 눈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빌어먹을 자백제. 개 미친 불특대 놈들, 약을 적당히 써야 할 거 아니야."

"너 방금 본심 말했어."

"시끄러워, 그런 거 아니니까."

"아니라고? 자백제가 본래 그 본심을 말하게 하는 역할이거든."

미안하다. 그런데 받아 주진 못하겠다.

이놈의 인기란.

세상에 나 같은 남자를 태어나게 한 죄로 신도 벌을 받아야 한다.

세상 모든 남자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할 마성의 남자, 유광익을 태어나게 한 죄를 묻겠습니다. 신이여, 왜 그랬습니까?

"미친 생각 중이지?"

"아닌데."

"딱 봐도 알겠어. 넌 정상이 아니야."

"개소리 집어치우고 왜 불렀어?"

본론이 듣고 싶다.

"지금 상황을 보니까 웃기게 돌아가던데, 그 저변에 깔린 의도."

말을 끊으며 로즈 또라이가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마저 말을 잇는다.

"알고 싶지?"

알고 싶으니까 왔지.

하지만 또 순순히 말려 들어갈 수는 없으니.

"아니, 안 알고 싶은데."

"싸울 때는 심리전의 고수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맹탕이야."

나른한 눈으로 날 보며 로즈 또라이가 말했다.

"그래, 알고 싶다. 말해 보든가."

태세를 전환했다.

이쪽은 뭐, 스파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프로다. 괜히 기 싸움해서 뭐 하겠나.

어차피 말하려고 부른 걸 테고.

"조건이 있어."

"그 조건을 왜 나한테 말하는데?"

널 잡은 건 불멸특수대라고.

"얼굴을 가까이 대봐."

되게 싫은데, 너 지금 냄새나.

애 좀 씻기지.

구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표정을 안 숨겼더니, 로즈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빌어먹을 자식아, 네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야."

"확실하지?"

되묻자.

"저 치들이 못 들었으면 좋겠어."

로즈가 풀 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세 걸음만 물러나 주시죠."

뒤를 힐끗 보며 내가 말했다.

자리에 있는 건 흰머리 본부장과 요원 둘이다.

요원 둘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거 보니까, 내부감사팀이나 그쪽인 것 같고.

순혈 불멸자의 귀에도 안 들리려면 세 걸음 물러나서 진짜 모기가 친구 하자고 할 만큼 작게 속삭여야 한다.

사실 모기 날갯짓 소리보다 더 작아야 한다.

"그러지."

본부장이 답했다.

이미 날 여기로 부른 건, 어떻게든 정보를 얻겠다는 의지다.

그러니 어지간한 요구는 들어주겠지.

셋을 물린 뒤, 로즈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귀는 열고 코는 닫았다.

냄새 진짜 지독하다.

"머리 언제 감았냐?"

괜히 물으니.

"물고문당할 때."

그때가 언제인지 묻고 싶지도 않다.

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나니, 걱정됐다.

얘가 원한이 잔뜩 어려서 내 귀를 물어뜯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스으으."

로즈의 숨소리가 들렸다.

뭐, 물어뜯으면 잠깐 아프고 말면 된다. 그러려고 날 부른 거라면 얘도 진짜 의지의 한국인, 아, 미안. 필리핀인이다.

하여간 이 정도 정성이면 귀쯤 물어 뜯겨 준다.

불멸자의 여유다.

"날 빼내 줘. 내가 이미 계획도 세웠어. 날 사랑한다고 말하라는 건 잊고, 그건 계획을 세우다가 포기한 거니까."

얘가 입으로 방귀를 뀌는 재주가 있었다.

용한 재주다.

더 말해 보라고 손짓했다.

"물론 그냥 내보내 주진 않을 거야, 하지만 주문으로 구속하면 해 줄지도 몰라."

그래, 더 말해 보아라. 입방귀야.

망상이 심각하구나.

"내 주문을 푼 사람이 네 쪽 사람이라고 했어.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랑 완전히 척 졌지, 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을 푼 게 내 쪽이라고? 혜민이는 손 뗐다고 했는데.

혜민이한테 이후의 일은 굳이 묻지 않았었다.

"내가 도움이 될 거야."

뿡뿡, 입방귀.

도움은 무슨, 뒤통수나 안 치면 다행이지.

"어차피 나도 이미 버린 몸이야. 여길 나가도 날 죽이겠지, 개새끼들."

뿡뿡뿡, 입방귀.

내가 알 바 아니고.

내가 굳이 그래 줄 이유도 없고.

"너한테도 좋은 제안이 될 거야."

뿡뿡뿡뿡, 이 정도면 설사다.

이후, 로즈가 어설프게 돈이나 준다고 하면 곧바로 따귀를 때려 줄까 생각 중이었다.

"평생 널 위해 살겠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원한다면 낮이든 밤이든 노예가 되겠어."

...이건 예상 못 했다.

"침대로 불러도 묵묵히 따를 거야."

얘가 진짜 급했나 보다. 이런 말까지 하는 걸 보니.

"그리고 저 작자들한테는 죽어도 말 안 하겠지만, 앞으로 프로메테우스가 준비한 일 하나는 알고 있어. 알게 되면 진짜 깜짝 놀랄걸?"

이건 블러핑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대신. 하나만, 딱 하나만 약속해 줘."

기왕 들은 거다. 마저 들어나 보자.

"프로메테우스에 복수하게 해 줘."

여기서 뭘 겪었길래 애가 이렇게 변했을까.

본래 프로메테우스의 간부급으로 일하던 로즈다.

그런데 그쪽을 향해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고?

자신을 버렸다는 이유로?

얼굴을 뗐다.

가만히 로즈의 눈을 바라봤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활활 타오르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

"속았으니까."

"뭘?"

"난 동생이 다섯이 있어."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으면 본래 평생 돌봐주기로 되어 있었지."

으흠. 이야기가 신파로 간다.

"다 굶어 죽었어."

특수종이 아닌 일반인.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형제자매.

뻔한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로즈를 이용했다.

잡혀서 죽었다고 판단한 순간, 가차 없이 버렸다.

버림받은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우리 철두철미한 불특대가 정보를 긁어모아 그녀의 약점을 찌른 거다.

혈관에 피 대신 자백제가 돌고 초능력으로 갈궈도 반응하지 않았던 그녀가 입을 연 이유다.

그리고 복수의 이유도 같고.

그나저나, 이걸 내가 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답했다.

"확답 못 해."

"괜찮아."

그야말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겠다는 심산이구나.

안쓰럽긴 한데, 얘는 어디까지나 테러범이었다.

그런 애까지 불쌍하다고 바라보기에는 난 그리 감정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다만, 정보는 조금 탐났다.

프로메테우스가 준비하는 일이라.

이건 여기서 아무리 고문한다고 해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하는 한이라는 게 뭔지 눈으로 말하는 친구다.

뭐, 일단 풀어주고 죽이거나 다시 가두면 되지 않으려나.

되게 냉정하고 참혹한 작전이긴 한데.

얘도 그 정도는 염두에 둘 것 같은데.

일단 나오면 빠져나갈 자신이 있는 건가?

그게 쉽지는 않을 텐데.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는 걸까?

모른다.

일단 내가 흥미가 당기는 건 로즈가 말한 정보다.

그건 누구도 쉬이 알 수 없는 프로메테우스의 큰 계획 중 하나일 거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지금 프로메테우스가 하는 짓거리도 궁금하고.

하물며 내가 확답하지 못하는 데도 수긍한다. 간절해 보였다.

"좋아."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깨가 축 내려가는 걸 보니 긴장했던 근육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대로 내 뒤에 선 세 명까지 시야에 담고 말했다.

"퇴각하는 거야."

"뭐?"

"물러나는 거라고, 프로메테우스가 한국에 손을 뗐어. 내가 말한 거점 중 하나는 죽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곳도 있었어. 한국에서 얻은 재화를 모은 곳도 있었다고. 그런데 지하까지 텅텅 비었다며?"

그건 내가 못 들은 내용이다.

"결론은 하나야, 한국에서 빠졌어."

"날 포기했다고?"

이렇게까지 도발을 했는데?

로즈는 눈으로 말했다. 자기는 그들이 포기한 이유도 알고 있다고.

그게 아까 말한 그들의 계획이겠지.

이거 진짜 얘를 빼낼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그만, 나와."

흰 머리 본부장이 말했다.

얌전히 나왔다.

텅.

다시 철창문이 닫혔다.

얌전히 올라가는 길에 본부장이 물었다.

"무슨 얘길 나눴지?"

난 눈을 끔뻑였다.

"유광익?"

본부장이 다시 날 불렀다.

내가 말해 줘야 하나? 내가 왜?

"저 프리랜서인 건 알죠?"

이번에는 본부장이 눈을 끔뻑였다.

"이제 회사 사원 아닙니다. 물으면 다 답해 줄 줄 아나."

말하고 쌩하니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본부장이 뒤에서 황당하다는 듯 날 바라봤다.

"안 가요?"

"...간다."

할 말 있으면 하시든가.

내가 화림에 감정이 좋다고 생각하나 보네.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해 줄 정도는 아니라고.

아니면 돈을 주든가. 프리랜서의 입은 금전으로 움직이는 법이 아니던가.

그대로 회사를 빠져나왔다.

운전석에 오르자.

"광익 씨."

누군가가 열린 창문 틈으로 쪽지를 던졌다.

"연락해요."

누구더라.

아, 인사팀이다.

연락처가 적힌 쪽지였다.

이게 바로 인기인의 삶인가.

그리 생각하며 차를 몰았다. 일단 혜민이를 만나야 할 참이었다.

쪽지에서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나서 차 안을 채웠다.

장미 향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