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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 *

쿵- 쿵-.

두 대의 초월기가 원형의 시합장 안으로 들어섰다.

서로 마주한 두 대의 초월기.

두 기체의 손에는 각각 나무로 만든 무기가 들려 있었다.

시에라의 기체인 33호기는 한 자루의 대검을.

상대방 기체인 17호기는 방패와 검을.

하급반이기에 나무 재질의 무장을 사용하지만, 중급반은 실제 무장으로 실전 토너먼트를 치렀다.

거기에 상급반이 되면 모의 전투를 수행하기 때문에 한 번의 시험에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하급반이라고 그 위험도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끝이 뭉뚝한 상태의 목검이었지만, 그 크기가 어지간한 나무를 통째로 사용하여 만든 만큼 중량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얻어맞는다면 그 충격은 조종사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실전 평가는 위험했기에 관객석에 앉은 다른 학생들은 긴장의 눈으로 시합장을 바라보았다.

두 초월기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학생들의 것보다 훨씬 큰 3급 초월기가 나타났다.

이번 실전 평가의 심판이자 미연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배치된 조교의 초월기였다.

시합장 중앙으로 나온 3급 초월기에서 조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규칙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무장을 해제하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들면 승리. 혹은 상대방 측에서 항복하면 시합은 종료다. 또한, 제한 시간 20분 안에 승패가 나지 않는다면 판정으로 승자를 가린다. 이상, 궁금한 점은?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럼 각자 자리로!

조교의 명령에 시에라의 기체와 상대방의 기체가 시합장의 끝단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자기의 자리로 돌아온 시에라는 정면을 응시했다.

벌써 자세를 잡은 상대 기체.

'길게 끌면 안 된다.'

로이스에게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시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도 말이다.

'속전속결로 끝낸다!'

강한 시에라의 의지에 따라 33호기가 검 자루를 불끈 말아 쥐었다.

그리고.

-시합 시작!

조교의 외침에 따라 두 대의 초월기가 시합장 중앙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쿵- 쿵-.

방패를 앞세워 그대로 적을 밀어 버리려는 듯한 17호기.

이에 마주해 달려가는 33호기의 대검 끝은 뒤쪽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둘의 간격이 서서히 줄어든 순간.

쿵- 츠그그그-.

33호의 왼쪽 다리가 앞으로 내밀어 지면서 그대로 지면을 타고 미끄러졌다.

마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듯 앞으로 쭉 미끄러져 가는 33호기.

동시에 33호기의 발바닥이 지면과 마찰을 일으키며 만들어 낸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시합장을 뒤엎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관객석에 자리한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이후 약 10초가 흘러, 흙먼지가 가라앉고 드러난 시합장의 광경.

17호기의 방패는 바닥에 나뒹굴었고, 방패를 쥐었던 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또한, 17호기의 검은 시에라의 33호기가 들고 있었다.

이를 본 조교가 소리쳤다.

-승자, 33호!

한순간에 끝난 승부.

"우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학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편, 교수 관람석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구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제법이군."

비록 흙먼지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검으로 정확히 방패의 하단을 쳐냈어.'

33호기는 달려오던 속도와 강한 허릿심을 대검에 실어 정확히 방패 하단의 측면을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방패를 강하게 쥐고 있던 17호기의 팔이 가동 범위를 넘어 기이한 각도로 뒤틀려 버렸고, 상대방이 당황한 틈을 타 33호기는 적의 검을 빼앗은 것이다.

'흙먼지를 일으켜 상대방의 시야를 가린 것 역시 의도한 거였다.'

자신이 어디를 공격할지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또한, 상대방이 끝까지 방패를 강하게 들고 있게 만들기 위해 흙먼지를 일으킨 시에라.

'거기에 정확히 방패 하단에 힘을 집중시키는 기체 조작술까지....'

여러모로 시에라의 재능이 돋보이는 시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네 명만 아니었다면 올해 신입생 최강은 저 녀석이었겠군.'

이번 신입생들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사실에 아구스는 미소 지었다.

그렇게 승리를 거머쥐고 대기소로 돌아온 33호기.

푸시식-.

탑승부에서 내려온 시에라의 표정은 살짝 창백했다.

조금 전 속성력 운용으로 심장 어림의 통증이 강해졌다.

이에 시에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길게 심호흡을 하는 시에라.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고도 로이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조금 쉬겠다. 내 순서가 되면 알려 줘."

"어."

로이스가 알았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후 시에라는 천천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왔다!"

"카니다!"

대기실까지 울리는 함성에 시에라가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니 탁 트인 대기실 너머로 시합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속에 대치 중인 2대의 초월기.

-시합 시작!

곧이어 시합이 시작되고.

쿵- 콰즉-.

번개처럼 몸을 날린 초월기 한 대가 상대를 향해 쇄도했다.

당황한 상대측 초월기가 다급히 검을 뻗어 보았지만, 달려오는 카니의 초월기는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며 가볍게 몸을 틀어 이를 회피했고 그대로 검을 휘둘러 상대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쿵-.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상대측 초월기.

"와아아아!"

"역시 카니!"

"미, 미쳤다!"

시합장 한복판, 탑승구에서 나와 손을 흔들며 환호성에 답하던 카니는 조교의 경고를 받고 자신의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이를 본 시에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시… 강해.'

카니의 기체는 자신과 같은 기종이라는 것이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힘으로 압도했다.'

자신이 잔기술로 승리를 따냈다면 카니는 강력한 힘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른 것이다.

카니라면 분명 무난하게 준결승까지 오르리라.

'다음 시합도 최대한 힘을 아끼면서 싸워야 해....'

시에라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1군의 시합이 끝나고 곧이어 2군의 시합이 시작됐다.

그리고 카니와 마찬가지로 칸, 타니아, 켄드릭 역시 상대를 한 방에 제압하고 16강에 진출했다.

거기에 시바가 속한 98호기 역시 말이다.

이로써 로이스와 그들이 속한 해충 박멸 연구회 소속 신입생 모두가 25위 안에 안착한 것.

그렇게 2군 마지막 시합이 끝나고.

"…갔다 오지."

다시금 되돌아온 순서에 시에라가 초월기를 타고 출전했다.

이후 벌어진 시에라의 16강전은 이전 시합보다 더욱더 싱겁게 끝이 났다.

하루 안에 모든 시험을 치러야 하는 특성상 손상을 입은 초월기를 수리할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시에라의 16강전 상대는 32강전을 격하게 치르고 올라왔기에 기체의 상태가 별로 좋지 못했다.

덕분에 이번에도 손쉽게 8강에 오른 시에라.

하지만 짧은 시합 시간과는 달리 시에라의 안색은 갈수록 안 좋아졌다.

이후 2군 시합에서 시바가 속한 조가 칸의 조에 패배했고, 켄드릭과 타니아는 별 이변 없이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 시에라의 시합.

8강전의 상대는 앞선 이들과는 달랐다.

쿵- 쿵-.

시합장의 한가운데서 거칠게 맞붙는 33호기와 59호기.

시에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벌써 15분을 넘었어!'

시에라는 8강전의 상대의 무장이 메이스와 방패인 것을 확인한 후,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시합과 비슷한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59호기는 이전에 당한 17호기와 달랐다.

59호기는 시에라가 흙먼지를 일으킨 순간 기체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굳건하게 방패를 굳히며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방패만 들고 버틴 것은 아니었다.

훙- 쿵!

'큭!'

시간의 압박에 맹공을 퍼붓던 시에라의 기체가 빈틈을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거대한 메이스가 날아들었다.

쾅-.

33호기가 급히 선회하며 거대한 대검이 메이스를 쳐 냈다.

이후 33호기가 뒤로 조금 물러나자 59호기는 이를 쫓지 않고 방패를 바짝 몸 쪽으로 끌어당겨 방어 태세를 갖췄다.

시에라는 59호기의 조종사를 떠올렸다.

'베니스....'

그는 하급 조종반 입학 성적 7위였다.

5위인 시에라와는 그리 큰 차이가 없는 상대.

더군다나 방어 위주의 무법을 구사하는 베니스는 속전속결을 원하는 시에라에게 매우 까다로운 상대였다.

찌릿-.

가슴에 이는 통증에 시에라의 고운 아미가 꿈틀거렸다.

'이대로는 안 돼.'

슬슬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에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33호기가 대검을 늘어뜨렸다.

지금까지 맹공을 퍼붓던 시에라가 갑자기 잠잠해지자 59호기가 경계하며 33호기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무슨 꿍꿍이지?'

너무도 빈틈이 많아 보이는 33호기를 보고 베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보고 들어오라는 거냐?'

벌써 시간은 15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20분이 된다면 이대로 판정으로 넘어갈 터.

그리고 이번 시합의 승기는 미세하게나마 시에라에게 있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군.'

결정을 내린 베니스.

그가 속성력을 끌어올리며 서서히 시에라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쿵- 쿵-.

33호기의 후방에서 빠르게 달려가는 59호기.

두 기체의 간격이 2m로 줄어들었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33호기를 보며 학생들은 시에라가 이번 시합을 포기했다고 여겼다.

이는 베니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와 주면 나야 고맙지!

확성관을 타고 베니스의 기쁨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 순간.

파층-.

-…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전에 얼빠진 소리를 낸 베니스.

쾅-.

뒤이어 강한 충격이 59호기를 강타하고 한 줄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자, 33호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베니스는 시합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이 어떻게 패배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은 달랐다.

"맙소사… 뒤에서 다가오는 초월기의 시각 장치를 베었어?!"

"목검으로 그게 가능해?!"

"저거 날은커녕 끝도 뭉툭하잖아?!"

59호기가 빠르게 달려드는 순간 돌연 33호기가 팽이처럼 회전했고, 늘어져 있던 대검이 뱀처럼 움직이며 59호기의 두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시에라의 대검은 59호기의 관절을 망가뜨렸다.

진검을 들고도 해내기 힘든 일을 성사시킨 시에라의 대검술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정교하고 섬뜩했다.

하지만 이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법.

쿵- 쿵-.

대기 공간으로 들어온 33호기에서 시에라는 한참 동안 내리질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뒤, 계단의 난간을 부여잡고 비척비척 걸어 내려오는 시에라.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풀썩-.

기어코 시에라의 눈이 감기며 힘없이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녀가 계단을 구르기 직전.

츠팟!

공간 이동으로 계단에 나타난 로이스가 시에라를 받아 들었다.

그는 이미 기절한 시에라를 보며 혀를 찼다.

"쯧, 무식하기는."

조금 전, 시에라가 선보인 기술은 기체를 통해 기감을 퍼뜨리는 고급 기술이었다.

아직 하급반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 기술.

최소 상급반에 들어가야 수박 겉핥기 정도라도 맛볼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시에라 역시 숙련도만 봤을 때는 이제 막 입문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익혔는지는 굳이 알 필요가 없었지만, 문제는 고급 기술인 만큼 소모되는 속성력이 많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미숙한 기술을 온전치 못한 몸으로 펼쳤으니 그 반동이 오죽할까.

"흐… 윽."

기절해서조차 끙끙거리는 시에라를 안아 들고 로이스가 걸음을 옮겼다.

* * *

쾅- 쾅-.

시끄럽게 울리는 초월기의 전투 소리에 시에라는 차츰 의식이 돌아왔다.

서서히 맑아지는 정신.

그리고 그와 함께 떠오른 사실.

'나… 기절했구나. 아… 기절?'

멍하니 그 사실을 깨달은 시에라가 번쩍 눈을 뜨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시에라를 엄습한 것은 극렬한 흉통이었다.

"악!"

가슴을 부여잡은 시에라의 귀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요란하게도 일어나네."

시에라의 고개가 돌아가니 그곳에 다리를 꼰 채 책을 읽고 있는 로이스가 있었다.

"시, 시합은?! 어떻게 됐지? 아니,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거지?"

"너, 한 30분 정도 기절해 있었다."

시에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동시에 그녀의 시선이 대기석 밖을 향했다.

쾅-.

매섭게 맞붙는 두 대의 초월기.

-야, 너는 오빠한테 죽기 살기로 덤비냐!

-선생님께서 가라사대, 슬라임을 토막 칠 때도 최선을 다해 토막 쳐라!

-내가 슬라임이냐!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딱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켄드릭과 타니아다!'

일명 불꽃 남매라 불리는 이들.

그리고 8강전 마지막 시합의 주인공들이었다.

시에라가 놀라 물었다.

"저 시합 얼마나 된 거지?"

"곧 있으면 20분."

그 말은 다시 말해 앞선 카니와 칸의 시합은 금방 끝났다는 거였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자신의 시합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를 악문 시에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찌릿-.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지만, 시에라는 핏대를 세워 가며 탑승구로 향했다.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는 시에라.

그녀가 막 탑승구 앞에 섰을 때.

"할 만큼 하지 않았나?"

들려온 로이스의 목소리에 시에라가 잠시 멈춰 섰다.

"넌 이미 한계야. 폐색증에 걸린 상태로 계속해서 속성력을 운용하면 영구적인 속성력 손실이 올 수도 있어."

"…알고 있었나?"

시에라가 놀란 눈으로 로이스를 돌아보았다.

어깨를 으쓱이는 로이스.

"바로 옆에서 골골거리는데 모를 리가 있냐."

"걱정… 마라. 괜찮으니까."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

자신의 만류에도 기어코 탑승구로 다가가는 시에라를 보며 로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 하나만 물어보자. 대체 그렇게까지 아득바득하는 이유가 뭐냐?"

"...."

한참이나 답이 없는 시에라가 조용히 로이스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증명이 필요해서."

"증명? 무슨 증명?"

"별거 아니다. 그냥… 자기만족을 위한 증명이니까."

어째서 자신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직도 머리가 멍한 탓일까?

로이스와 한 조가 된 이후 처음으로 시에라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말을 꺼냈다.

"고작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하면 앞으로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없기에… 스스로 건 약속에 불과하다. 그리고...."

"...."

"…장학금도 필요하고."

시에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로이스가 배시시 웃었다.

"그건 마음에 드네."

"…뭐?"

"솔직히 증명이니 뭐니 그딴 거는 모르겠고. 장학금이 필요하다는 거. 그거는 마음에 든다고."

"...."

"너, 장학금 필요해? 절실하냐?"

로이스의 미소를 마주한 순간 시에라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이에 그녀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절실하지. 미치도록 간절하고."

시에라의 말이 끝난 그 순간.

-승자! 56호기!

와아아아아!

시합장에서 들려온 함성에 시에라는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 다음에 있을 자신의 시합을 위해 다시금 탑승구를 향해 걸어갔다.

만약 자신을 잡아당기는 우악스러운 손길만 없었다면 그녀는 초월기에 탔을 것이다.

"악!"

작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은 시에라.

그녀의 곁으로 로이스가 스쳐 지나갔다.

놀란 시에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보려 했지만, 한계에 달한 그녀의 육신은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시에라는 로이스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분노가 깃든 목소리에도 로이스는 뒤돌지 않고 답했다.

"절실하다며?"

"뭐...?!"

저벅- 저벅-.

로이스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어 그대로 탑승구 앞에 섰고, 그제야 시에라를 돌아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거기서 기다려. 네 절실한 장학금… 내가 따 올 테니까."

"...?!"

당황으로 사고가 엉킨 시에라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쳤다.

"네, 네가 나가겠다고?"

"어."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마! 초월기 조종을 아무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시에라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로이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시에라를 응시했다.

"아무나? 아무나라...."

잠시 그렇게 곱씹던 로이스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장담하건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온전히 탑승석에 들어선 로이스.

"이 세상에서 초월기를 나보다 더 잘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없어."

"...?!"

확고한 자신감.

그리고 강한 기백에 눌린 시에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로이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푸쉬식-.

서서히 닫히는 초월기의 탑승구 너머.

로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잘 보고 배워. 초월기는 이렇게 다루는 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탑승구가 완전히 닫혔다.

229화. 실전 평가 (3)

켄드릭과 타니아.

두 남매의 남매 같지 않은 엄청난 접전은 많은 이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칸과 카니의 실력도 분명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들의 시합은 너무 싱겁게 끝났기에 뭔가를 파악하기엔 충분치 않았다.

그저 '아, 쟤들이 엄청 세구나!'라는 정도만 다시 느꼈을 뿐.

하지만 켄드릭과 타니아의 시합은 달랐다.

강(强)과 강(强)의 맞대결.

거침없는 기세로 서로를 향해 살기를 내뿜는 두 초월기의 싸움은 실제 전투를 방불케 했다.

또한, 초월기의 속도와 힘, 그 모든 게 앞서 벌어졌던 모든 시합을 단숨에 잊어버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쟤들이… 우리랑 같은 하급반이라고?"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학생들은 혀를 내두르며 켄드릭과 타니아의 시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란 것은 조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런 애들이 학생이라고?"

"허…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될 즉시 전력감이지 않은가?!"

"대체 보유한 속성력이 얼마나 많기에 고작 4급 초월기로 저런 출력을 뽑아낼 수 있는 거지?"

비록 아직 초월기를 다루는 조종술이 미숙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체의 출력 자체만 놓고 본다면 여느 베테랑 조종사 못지않았다.

장장 20분간의 치열한 접전 끝에 판정이 들어갔고, 미세하게나마 유효타가 많은 타니아가 4강 진출자가 되었다.

그렇게 1군에서는 시에라와 카니, 2군에서 칸과 타니아가 올라왔다.

이후 사람들은 기체 손상률이 적은 칸이, 1군에서는 카니가 결승에 진출하리라 예상했다.

이는 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 고생했어, 카니. 너라면 꼭 우승할 거라고 믿어!"

"...."

그래도 일단은 같은 조이기에 작은 대꾸는 해 주던 카니.

하지만 뷘이 사사건건 로이스에게 시비를 건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녀는 뷘을 투명 인간 취급했다.

이렇게 하면 알아서 그가 나가떨어지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뷘을 과소평가한 거였다.

차갑게 대하면 대할수록 뷘은 더욱더 카니에게 관심을 뒀다.

'저 눈빛… 참을 수 없어!'

종종 자신을 바라보는 카니의 냉랭한 시선.

그리고 마치 하찮은 존재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엄 어린 얼굴.

'당신은… 당신은 나의 여왕님이야!'

카니의 차가운 청록빛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뷘은 전율을 느꼈다.

차갑고 도도하며,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외모와 최고의 능력까지.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 온 이상형 그 자체가 바로 카니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이스의 존재가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의 여왕님이 그 재수 없는 놈과 함께할 때마다 지고한 위엄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겨울 대륙의 서릿발 같은 시선이 봄날의 바람처럼 너무도 따사롭게 변하는 것이 뷘으로서는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그랬기에 꼭 보고 싶었다.

카니가, 자신의 여왕님이 로이스가 정비한 초월기를 무너뜨리고 우승하는 장면을.

'꼭 이겨 줘!'

기이한 열망으로 번들거리는 뷘의 눈동자.

그는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경기장을 응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