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도미넌트 제국 제도.
이른 아침부터 대전에 황제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나직하게 깔렸다.
"아직 연락이 없는 것이냐?"
"그, 그것이...."
황제의 분노 가득한 물음에 쉽사리 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치를 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도 아는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얼마 전 서부 사단으로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전서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후로도 황제의 친서를 든 검은 서리쥐 요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들 모두가 서부 사단으로 향했지만, 답을 들고 돌아온 이는 없었다.
오랜 시간 정치질을 해 온 귀족과 황제가 돌아오지 않는 전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찌 모르겠는가.
"바르콘… 이놈이!"
황제의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감히 내가 준 권력으로 나의 목을 노리다니!'
아마도 이 제도 안에서 자신이 피 말라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후우...."
황제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짙은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지난 며칠,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몬스터 군단의 폭격으로 인해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러다 이틀 전부터 몬스터 군단의 폭격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놈들도 지쳤는가 싶었지만, 이어 올라온 보고에 그런 생각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이틀 동안 스노우 킹의 군단의 수가 늘었습니다!'
그 말은 어디서인가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이곳 제도로 몰려들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저 몬스터들이 어디까지 늘어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 군단의 조짐에 전략분석가가 의견을 내놓았다.
'몬스터의 공세가 사라진 건… 어쩌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일지 모릅니다. 이번 숨 고르기가 끝나면 대규모 공세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스노우 킹 군단의 공격은 그저 오크를 투척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숨 고르기를 끝낸 놈들의 공격은 고작 그 정도 수준이 아니리라.
거기에 연이어 터진 서부 사단의 반역까지.
버티면 된다고 여겼던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모든 상황이 황제를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정신적 압박이 어찌나 심하던지 요 며칠 사이에 탈모가 생겼을 정도였다.
한동안 그렇게 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
"폐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황제가 눈을 떴다.
대전 앞쪽으로 걸어온 늙은 귀족이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냐."
"전신의 교단을 부르심이 어떠십니까?"
그의 이야기에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
"전신 교주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떠한지 말씀드렸사옵니다."
"네놈… 그 교주에게 짐이 수모를 당했던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이냐!"
"소신이 어찌 그것을 잊었겠사옵니까."
"한데, 감히 짐의 앞에서 그놈을 입에 담아?"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폐하. 현재로서는 그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되옵니다."
일그러졌던 황제의 얼굴이 늙은 귀족의 말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감지하고 살짝 펴졌다.
황제가 살짝 흥미로운 눈으로 물었다.
"…그를 이용하라?"
"비록 지금은 폐하께서 궂은 역경에 고난을 겪고 계시다고는 하나, 이 위기만 이겨 낸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다."
"일단은 전신교를 이용해 저 간악한 몬스터 무리를 물리치시면 됩니다. 차후 전신교에서 협상의 내용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들어 줄지 말지는 폐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
"폐하께서 전신 교주에게 제국의 위엄을 보이고자 하신다면 수만의 병사가 그 뜻을 따를 것입니다."
늙은 귀족은 말하고 있었다.
일단은 전신교와 협약을 맺어 몬스터 군단을 물리치라고.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제국의 힘으로 압박을 넣어 협약을 없던 것으로 돌리라고.
말 그대로 대놓고 이용만 하고 버리라는 뜻이었다.
이를 파악한 황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괜찮은 생각이다.'
현재 가장 큰 위기는 제도를 포위한 몬스터 군단이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바르콘 후작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이후 일도 문제였다.
어서 빨리 현재의 급한 불을 끄고 다음 상황에 대처할 시간이 필요했다.
황제가 잠시 고심하다가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 정녕 그놈이 저 몬스터 무리를 처리할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당시 그 교주란 자가 나타났을 때 허공에 떠오른 형상… 우매한 백성들은 그것을 신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의 기적이라...."
"비록 허황한 이름이기는 하나… 그로 인해 몬스터들의 공세가 멈췄던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그 능력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저 몬스터들을 내몰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문제 될 것이 있겠습니까? 제 스스로가 내건 조건을 수행해 내지도 못할 놈이라면… 폐하를 우롱한 죄로 그 목을 쳐 버림이 마땅하옵니다."
"그들에게는… 대전사가 있다."
"아무리 강인한 초인이라 하나, 일개 야인일 따름입니다. 제국의 지배자이신 폐하께서 어찌 그런 야인 따위를 두려워하신단 말입니까."
"흐음...."
황제는 잠시 턱을 쓸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설사 전신교가 실패한다고 하여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고, 저들이 성공하면 그보다 좋은 것도 없었다.
적절하게 이용하고 버리면 그만일 뿐.
결국, 황제가 결단을 내렸다.
"협상장을 준비하라. 준비가 끝난다면… 신호탄을 쏘아 올려라."
"그리하겠나이다."
늙은 귀족이 깊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그날, 제도의 상공으로 하얀 신호탄이 올라왔고.
"오? 떴다!"
마치 항복을 선언하는 백기처럼 일렁이는 하얀 연기에 로이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195화. 신위 (1)
전신의 교단과의 협상을 결심한 황제.
그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쓸모없이 자리를 차지한 귀족들을 전부 물리고 나름 쓸 만하다고 여기는 신하들로 빈자리를 채웠다.
대전의 중앙에 협상을 위한 널찍한 탁자가 자리하고 상석에 앉은 황제의 뒤로 수십의 근위대가 무장한 채 기립했다.
이미 한번 크게 데인 적 있는 황제였기에 이번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호위를 늘렸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신호탄이 쏘아졌다.
피유유- 펑!
신호탄이 터지면서 허공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대전의 허공에 빛이 터져 나오며 그 안에서 두 명의 신형이 뚝- 떨어졌다.
"부르셨습니까?"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오는 로이스와 난데없이 붙잡혀 온 탓에 어리둥절해하는 파브로.
하지만 파브로도 장소와 상황을 눈치채고는 이내 행색을 정돈했다.
그런 둘을 보며 황제가 말을 건넸다.
"볼수록 그 재주는 신기하군. 공간 이동이란 게 원래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건가?"
"그럴 리가요. 이게 전부 전신께서 제게 주신 권능이지요. 오로지 주를 믿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도 합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일삼는 로이스를 보고 파브로는 속으로 '또 힘숨찐인가 뭔가 시작이시네'라고 중얼거렸지만, 이를 내색하지는 않았다.
황제의 물음에 답을 하면서 로이스는 긴 탁자로 다가갔다.
"여기가 제 자리인가요?"
"그러니 앉거라."
"좋네요."
"한데, 내 저번에는 경황이 없어 물어보지 못했다만… 언제부터 교단에 교주란 직책이 생긴 거지?"
"원래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그간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뿐."
"사실이더냐?"
"제가 굳이 거짓말할 필요가 있나요?"
황제의 맞은편에 앉은 로이스는 짧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주변을 훑었다.
지난번보다 몇 배는 강화된 호위 무사들을 보며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흠…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자리이다 보니."
"이번에는 서로 날 세우지 말고 쉽게 쉽게 가자고요. 신호를 보낸 건 제 조건을 승낙하신다는 뜻이겠죠?"
"물론이다."
"구체적인 계약을 조율해 볼까요?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몬스터를 처리하고 제도의 안정을 찾는 거죠?"
"그것을 위해 이 자리를 만든거지."
"그럼 그 대가로 저희에게 1억 골드를 지급하실 의향도 있으시고?"
"얼마든지. 다만 문제가 있느니라."
"어떤 문제입니까?"
"1억 골드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일시에 지급할 수는 없다."
아무리 군자금으로 많은 예산이 들어갔다고 해도 제국은 제국이다.
1억 골드가 천문학적인 액수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끌어모은다면 이를 지불할 여력이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국에게도 뒤가 없어진다.
당장 국가를 운영할 예비 자금은 물론, 서부 사단의 반란을 막기 위해 군대를 징집할 자금까지 말이다.
때문에 현재 제국 처지에서 1억 골드를 일시금으로 지급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러한 점을 로이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분할상환을 원하신다?"
"그렇다."
"뭐, 여러 사정이 있겠죠. 좋습니다. 저도 분할상환에 동의합니다. 단!"
"단?"
"이율을 좀 붙이겠습니다."
"이율이라.... 얼마를 원하지?"
"20%요."
로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제의 옆에 있던 재상 다니어스 공작이 소리쳤다.
"터무니없는 소리! 연이율 20%라니!"
발끈한 외침에 로이스는 뚱하게 답했다.
"무슨 소리인지? 누가 연이율 20%래? 월이율 20%인데?"
"...?!"
연이은 충격에 재상의 얼굴에서 넋이 빠져나갔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파브로도 '날강도가 따로 없네'라는 표정이었다.
반면 황제는 살짝 표정이 굳기는 했을지언정 동요하지는 않았다.
그가 로이스를 무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월이율 20%라.... 과하군."
"그런가요?"
"그렇게는 줄 수 없다."
"좋아요. 첫 달은 이자 안 받죠. 저도 많이 양보한 겁니다."
"첫 달 이자를 받지 않는다는 건 오늘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듣기 좋은 소리지만, 그래도 월이율 20%는 맞춰 줄 수 없다."
"흠… 저는 나름 제국의 상황에 맞춰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폐하는 너무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네요?"
"비협조적이다? 내가?"
"무언가 착각하고 계신 거 같은데… 지금 제국에 저희 말고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
"이렇게 자꾸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그냥 저희는 이만 빠지죠."
황제는 로이스를 노려보았다.
로이스의 말이 사실이란 게 더욱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차오른 노기를 잠재운 황제가 살짝 한숨을 섞인 말을 토해냈다.
"월이율 5%."
"19%"
"10%"
"18% 주시죠?"
"12%다. 이 역시 거절한다면 내 아무리 상황이 다급하다고 해도 이 협상은 없던 거로 하지."
"12%로 가시죠!"
결국, 월이율이 12%라는 애매한 숫자로 확정되었다.
그 상황에도 로이스의 눈은 웃고 있었다.
'2% 더 챙겼네!'
1억 골드의 10%만 해도 천만 골드라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원래 10%를 바라고 20%를 불렀으니 이번 흥정을 통해 이득을 본 것은 자신이었다.
"그럼 그렇게 계약서를 작성하지. 한데...."
"...?"
"분명 저 몬스터 무리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냐?"
"물건의 성능은 저번에 확인시켜 드렸습니다만?"
"당시에는 몬스터의 공세를 잠시 멈춘 것에 그쳤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저 몬스터 무리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거다."
"그건 확실하게 처리해 드리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내가 그 말을 어찌 믿지?"
자신을 향한 싸늘한 눈빛에 로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럼 계약서에 넣으시죠. 만약 저 몬스터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제가 2억 골드를 위약금으로 물겠습니다."
"위약금을 낼 자금은 있고?"
"없으면 제국의 노예가 되어 평생 갚아 나가죠."
"너를 노예로 부리는 가치가 2억 골드나 하겠느냐?"
"그럼 제 목이라도 치시든가요."
"그것도 나쁘지 않군."
"이렇게 확실하게 해 드렸으니, 폐하께서도 확실히 해 주실 게 있습니다."
"뭐지?"
"저번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희 교단에서 훔쳐 간 신물의 반환과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 설마… 아직도 제국의 짓이 아니라고 발뺌하실 겁니까?"
"...."
"저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신물의 반환과 적당한 보상이면 됩니다."
"...."
자신을 바라보는 로이스의 게슴츠레한 시선에 황제는 이를 악물었다.
'사무엘… 이 빌어먹을 놈.'
당시 계획을 세우며 놈은 자신했다.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저들이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 교주란 자는 교단의 신물을 훔쳐 간 범인이 제국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황제는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그 점은 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의 인정에 로이스가 방긋 웃었다.
"워낙 철저하게 일을 벌이셔서 알아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체 어찌 알아냈느냐?"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싱긋 웃는 로이스를 노려보는 순간, 황제의 뇌리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신물을 훔쳐 간 범인이 우리인 것을 알고 있었다면… 왜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것이지?'
그리고 왜 하필 이 시기가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걸까?
무언가 시기와 상황이 절묘하니 의심이 들었다.
"혹시나 해 묻건대… 이번 저 몬스터 무리에 교단이 관여하지는 않았겠지?"
황제가 날카로운 눈으로 로이스의 표정을 관찰했다.
단번에 굳어진 로이스의 얼굴.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그건 저희 교단을 모욕한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겁니까? 마를 단죄하기 위한 전신의 검인 우리를 몬스터 따위와 엮으시다니!"
"나로서는 상황이 참으로 공교로워서 말이지."
"제가 모시는 신께 맹세코 이번 일과 저희 교단은 관계없습니다."
로이스의 목소리에 분노와 억울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파브로는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구라도 이렇게 정성스럽게 칠 수 있는 거구나.'
파브로는 아직 자신은 멀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하긴 애초에 모시는 신 따위가 없으니 무슨 말이든 못 할까.'
물론 그건 파브로의 입장이고.
그러한 사실은 황제는 전혀 모르지 않는가.
그는 로이스의 연기에 감쪽같이 넘어갔다.
"좀 억울하네요. 도둑질을 한 건 폐하신데 왜 저희에게 뭐라 하시는지? 신을 모시는 사제에게 몬스터와 작당을 했다라...."
"흠… 내 실언을 했군."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해 주십쇼."
"무얼 말이지?"
"우리 교단의 신물을 반드시 넘겨줄 것, 그리고 이번 일을 사과하는 보상을 해 주겠다고."
"무슨 보상을 원하느냐. 미리 말하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더는 무리다."
"금전적인 보상은 아닙니다. 다만 제국 내에서 저희 교단의 포교 활동을 정식으로 인정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포교 활동?"
"전신의 뜻을 제국에까지 널리 퍼뜨리려 합니다. 물론 저희의 포교 활동이 제국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저희 교단의 교리라고 해 봤자 마를 척결하자는 내용뿐인 걸 아시지 않습니까?"
로이스의 이야기에 황제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말이 사실이냐는 눈빛에 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황제가 의외라는 눈으로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정녕 그것이면 되겠더냐?"
"전신을 모시는 제1사제로서 그보다 더 값진 보상은 없을 겁니다."
"…그 내용도 추가로 계약서에 넣어 주겠다."
"훌륭하신 선택이십니다."
로이스가 활짝 웃었다.
이후 세부 사항이 조율되고 계약서가 작성됐다.
정확히 똑같이 만들어진 계약서에 도미넌트 제국 황가의 인장과 로이스가 임의로 만들어 온 교단의 인장이 찍혔다.
그렇게 똑같은 계약서 두 장을 나눠 가지는 순간 대전에 깔린 묵직한 긴장감이 조금은 해소됐다.
황제가 로이스를 보며 물었다.
"그럼 협의한 대로 이른 시일 안에 저 몬스터들을 치우거라. 혹여 준비가 필요한가?"
"아뇨, 딱히 그런 거는 필요 없는데요."
"잘됐군."
"길게 끌어서 뭐 합니까. 내일 바로 치워 드리죠."
"…내일 바로?"
황제의 물음에 로이스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심하면 와서 구경이나 하세요. 내일 새벽, 제도의 동쪽 성벽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이스와 파브로의 신형이 빛에 휩싸였다.
츠팟!
올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둘.
"...."
황제를 비롯한 제국의 귀족들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선 황제가 호위 무단장에게 말했다.
"준비하거라."
"가시려는 겁니까?"
"궁금하지 않으냐. 과연 저 교주란 놈이 어찌 몬스터를 물리칠지, 백성들이 말하는 신의 기적이 무엇인지 말이다."
"...."
"또한, 그것을 떠나… 대체 저 방자한 놈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 건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폐하… 비록 지금은 몬스터의 공세가 잠잠하다고는 하나 아직 밖은 위험하옵니다."
"그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게 너의 일이다."
"…알겠습니다."
황제의 명령에 호위 무단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둠이 지나고 새벽의 푸르스름함이 깔리기 시작한 시각.
황제를 태운 마차가 제도의 동쪽 성벽으로 향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보게 될지 짐작조차 못 한 채.
196화. 신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