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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는 멍하니 내 손목.

그 안에 있는 힘줄을 바라보았다.

저 서울에서 후배 녀석이 내게 건네주었던 깨달음.

그 깨달음이.

내 몸이, 인간의 것이 아닌 것으로 대체되고 있는 와중에도.

'내 정체성을.'

나를.

인간으로서 고정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을 벗어날 일은 없다는 건가...?"

{그건 아니지. 군단장의 깨달음은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는 듯하거든. 그중에서도 가장 망설임이 많은 부분이... 피지.}

"피?"

{그 기묘한 생명력의 원천 말일세.}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괴물이었으나.

녀석은 어느새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 피는 군단장께 지나치게 많이 섞여 있지. 잘못하면 50%를 넘어 버릴 정도로 말이야.}

"흠."

{저 침대를 다시 예로 들자면 저 침대가 망가져서, 부품의 50% 이상을 옆에 있는 부품의 것으로 바꾼다면 그건 본래의 침대라고 볼 수 있겠나?}

이 말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내 몸에 여러 가지 이물질이 섞여도, 나는 그것을 인간이라고 인식하지만.

"그건 옆의 침대에 가깝겠지."

{바로 그거일세.}

한 종족의 것이 내 몸의 반 이상을 차지할 경우에는.

나는 그것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는 얘기.

{아마 군단장께서 얻으신 그 깨달음은 아직 군단장의 몸에 녹아드는 과정에 있는 것이야. 그렇기에 같은 질문에 약간 조건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다른 답이 나오는 거지.}

"...이런 건 원래 이런 건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본인의 인식에 따라서 답이 바뀐다니. 너무 비과학적인데."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본인의 종족이 결정된다는 얘기.

내가 직접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지만, 인간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으나.

{그건 토착종... 군단장 종족의 상식이지.}

그런 내 말에.

녀석은 주먹을 꽈악 쥐며 말했다.

{생명의 의지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네. 군단장.}

"...."

{그것은 때때로 본인의 정체성조차 뒤바꿔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지.}

그리고.

나는 열의에 찬 채 말을 이어 가는 녀석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크뤄어억....

저 말이 들려오는 것은.

녀석이 단말기로 사용하고 있는 듯한 괴물.

그 괴물의 얼굴은 10초 이상 보기가 힘들 정도로 끔찍했지만.

{치료에 있어서도 이건 마찬가지야. 환자의 의지가 꺾이면 가벼운 병이라 할지언정 치료를 이어 갈 수 없게 되는 법이지. 하지만.}

하는 말을 보면, 뭐랄까.

{그 의지만 남아 있다면! 어떤 힘겨운 목표라 할지라도... 희망의 불씨는 살아 있는 셈이거든.}

어지간히 긍정적인 인간보다도 더 생명에 대해 긍정적이고.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얼굴로 저딴 말을 하니... 미쳐 버리겠구만.'

조금 어이가 없었으나.

이계의 괴물들은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려니 생각하고, 내가 저 모습에 적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수술을 몇 번은 더 해야 내 몸이 정상이 된다는 건가."

{뭐, 그런 셈이야.}

"그때마다 새로운 대가를 내야 하고?"

{일단은 그렇네. 다만 그걸 아까워하지는 말아 줬으면 하는군. 나로서는 이 치료도 손해를 보고 한다는 생각이라서 말이야.}

"손해라고?"

{군단장이 잡아다 준 괴물은 분명 가치가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은 군단장께 양보했잖나.}

팔짱을 낀 채.

조금은 불만이라는 듯한 말투로 답하는 녀석.

{치료에 드는 다른 재료들은 모조리 내가 직접 지불했네. 이 정도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전 우주를 통틀어도 드물겠지. 농담이 아니라, 냉정하게 따지면 내게는 손해야.}

"...."

{말했다시피. 나는 토착종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거든. 이 손해는 그 관계를 위해 감수하는 걸세. 그런데 사기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시면... 나는 서운하지.}

놀랍게도.

[미뢰강화]에 느껴지는 맛에 의하면 저 말은 진실이었다.

'이 녀석은 솔직하다.'

이 녀석은.

어떤 속임수도 없이, 솔직하고 당당하게 내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라.'

솔직히 꽤나 어색했다.

괴물 쪽에서 먼저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싶어서 저리 노력하다니.

그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나는 그로 인해 이득을 보고 있었다는 것.

"솔직히 말하면 지금 치료도 엄청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인데 말이야."

나는 침상에서 일어난 뒤.

내 몸을 가볍게 움직여 보며 말했다.

"이 정도인데, 아직 치료할 게 그렇게 많이 남았다는 거냐?"

{흠. 그건... 군단장의 착각이 원인일걸세.}

"착각?"

{군단장께서는 언제부터 본인의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나.}

그 말에.

나는 잠깐 고민한 뒤 답했다.

"대충 3개월쯤 됐을 거다, 아마."

{과연.}

저 경기도에서 [광폭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니까.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착각이란 걸세.}

"뭐?"

저 의사 양반의 생각은.

나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군단장의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건 그것보다 훨씬 전일 거야.}

"...?"

{그저 눈에 띄게 체감될 정도가 된 게 3개월 전일 뿐. 꾸준히 몸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던 셈이지. 그리고.}

괴물은.

조심스럽게 내게 손을 뻗었다.

{토착종들의 힘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것 같더군. 군단장께서는 아마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실 테고. 그 성장도 상당히 가파르게 이루어졌겠지?}

"어... 일단은 그런 편이지."

{의사로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겠네. 군단장께서는.}

탁 하고.

내 손을 붙잡더니, 그 손을 바라보며 말하는 녀석.

{어느 정도 강해진 뒤로는... 본인의 '최적의 컨디션'을 경험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실 거야.}

"어, 어어?"

{처음 검진했을 때 깨달았네. 군단장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 잠재력은 처참하게 망가진 육체로 인해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내 레벨은 41.

전투직이 아니라고는 한들, 그 레벨은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41레벨에 어울리는 위용을 발휘해 본 적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다.

{그리고, 나라면.}

아마도.

[절대미각]의 중첩 효과 등을 과용한 결과.

나조차 모르는 사이, 내 몸의 컨디션이 꾸준히 나빠진 결과겠지.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잠재력을 모두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저 녀석의 '치료'를 모두 받는다면.

나는 전에 경험하지 못한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458화 질문.

다음 날.

우리는 다음 치료의 대가....

저 의사가 요구한 괴물을 토벌하기 위해 서울의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 상대 역시 나로서는 포획을 포기했던 대상이네만.

다음 적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군부대는 아니었다.

서울에 자리 잡고 있던 한 넓은 공원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있다는 괴물.

-군단이라면 가능하시겠지.

그리고.

그 영역 앞에 도착한 나는 고개를 돌려 한 병사를 바라보았다.

"정수아."

"예."

긴장한 표정으로 내 부름에 응답하는 병사.

그 표정에 전날에 보였던 짙은 고뇌는 상당 부분 없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도 뭐가 남긴 했나 보군.'

[미뢰강화]에 느껴지는 대로라면.

여전히 그녀의 속에는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나름대로 요리를 먹여 가면서까지 그녀의 쓸모를 입증해 주었지만.

쓸모가 어쩌고 한 것 외에도, 속에는 무언가 남아 있는 모양.

다른 병사들과 달리.

정수아는 이번에 유독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긴 있는 걸 텐데.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지.'

하지만.

이거야말로 이 서울에서 느긋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모든 일을 끝낸 뒤, 군단에 복귀한 후에.

시간을 들여서 상담을 하거나 할 일.

"그럼, 시작하자."

"...충성!"

지금 할 일은.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었다.

[정령안]

[식재료 감별(강화)]

[요리사의 눈]

정수아의 정령안을 통해.

저 안에 머무르고 있는 적의 모습을 확인한다.

{...!?}

적은 공원의 한가운데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나.

우리의 시선이 닿자마자 움찔하며 반응하는 모습.

"이런, 눈치챘나 본데."

정령도 무적은 아니다.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존재는 아니기에 대부분 존재는 감지하지 못하지만.

마력에 유독 민감한 이들은 그 존재를 눈치채기도 하니까.

[방랑광대 텔 로폴]

하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방울이, 소환 해제했습니다."

"좋아. 바로 준비 들어간다."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 이루어진 관찰.

정령의 존재를 들켜 봤자, 곧바로 그 소환을 해제해 버리면 그만이다.

아무리 마력에 민감한 존재라고 한들.

그 정령과 연결된 정령사의 위치까지 파악할 수는 없는 법일 테니까.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준비를 마친 우리는 직접 녀석을 찾아갔다.

{장난감이 스스로 찾아와 주다니. 고마울 따름이야.}

우리를 확인한 녀석의 등 뒤에.

희미한 회색빛으로 일렁이는 구멍이 나타난다.

그리고.

슈욱....

녀석이 그 뒤로 몸을 던지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존재했던 괴물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식재료 감별(강화)]에 의하면.

방랑광대는 꽤나 특이한 능력을 지닌 괴물이었다.

"이동했습니다!"

"확인!"

그도 그럴 게.

{안녕?}

"...!"

이 녀석은.

공간을 이동하는 괴물이었으니까.

"제기랄!"

"하필이면 처음부터 군단장님한테...!"

지금까지 만난 적들 중.

다양한 능력을 지닌 괴물이 많았으나, 공간을 격하고 이동하는 괴물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이 동네는 도대체가!'

대한민국의 수도였던 서울.

그 땅에 나타난 괴물들이 얼마나 신비하면서도 강대한 존재들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카앙!

{뭐야, 너....}

내 등 뒤에 나타났던 3미터 장신의 괴물.

녀석은 인상을 찡그린 채 내게서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그냥 장난감이 아니구나.}

녀석의 손등 가죽에는.

길게 찢어진 칼자국이 나 있었다.

"확실히 신기한 능력이긴 한데."

그리고.

난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손질이 어려운 편은 아니시구만."

{....}

강력한 이능을 지닌 만큼.

저 녀석의 육체는 그리 강인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약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는 하다.

저 이능과 신체 능력을 포함한다면.

직전에 토벌했던 '아바로스'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한 격을 지닌 괴물.

그럼에도.

나는 저 녀석에게 쉽게 당해 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몸이 가벼워.'

카앙!

{감히...!}

비싼 대가를 치른 치료의 효과가.

내 몸에 확실히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그 후로도.

녀석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나와 부대원들을 상대로 싸웠다.

그리고.

나는 녀석과 싸우며 공원을 둘러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오래된 뼈]

[신선도 - 최하]

[영장류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뼈입니다.]

공원 곳곳에는 온갖 생명체들의 사체가 기괴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아직 그 살점이 남아 있는 것들도 수두룩했다.

식사를 위해 사냥했다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의 뼈와 사체들.

저 녀석은 우리를 보았을 때 장난감으로 만들어 주겠다느니 하는 말을 했었다.

그 말대로.

'인간의 뼈도 있군.'

놈은 저 강력한 힘을 통해.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장난감으로 삼아 왔던 거겠지.

'고맙다.'

내 몸의 치료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대가로 지불한다는 것이 조금은 꺼림칙하기도 했으나.

'망설일 필요도 없는 놈이라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

그리고.

잠시 뒤.

"정수아!"

"예!"

나는 공원의 한 장소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정수아는 그곳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파아아악!

내가 가리킨 장소에 형성되는.

엄청난 크기의 물방울.

{힘에는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리고.

잠시 뒤.

{그래 봐야, 조금 튼튼한 장난감이 될 뿐....}

또다시 공간을 이동한 방랑광대는....

{커허어어어억!!!}

그 물속에 갇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 * *

{맙소사! 이번에는 반나절도 안 걸리다니!}

'방랑광대'를 포획해 강남으로 복귀하자.

저 의사 녀석은 그런 우리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녀석은 이 땅에서도 손꼽히는 사냥꾼이었네. 인지도 못 하고 있을 때 사냥감의 뒤에 나타나 제압하고는 자신의 영역으로 데려가 최대한 오랜 시간을 살려 놓은 채 고문하며 그 비명을 즐기는 놈이었지.}

"...악질일 거라고는 예상했는데 그 정도로 악질일 줄은 몰랐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나조차도 그 녀석을 잡을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네. 놈이 내 등 뒤에 나타나 내 목숨을 노릴까 두려워해야만 했는데.}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강력한 이능이기는 한데, 놈 자체는 그리 강한 놈은 아니었어."

{그 이능이 강력한 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그건 그렇긴 한데... 그 이능을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할 정도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식재료 감별(강화)]에 나타난 대로라면.

"강력한 이능인 만큼, 그 이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순도 높은 마력을 엄청나게 소모해야만 해."

{그래서?}

"녀석의 마력도 분명 강대하긴 하지만 그 이능을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거든. 최대한 방어 위주로 싸우면서 장기전으로 가다 보면...."

나는 녀석이 만들었던 회백색의 구멍을 떠올렸다.

녀석의 이능은 공간을 통과하는 그 구멍을 만들어 내는 힘.

그리고, 그 구멍을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되었을 때.

"전에 만들어 놓았던 구멍을 다시 사용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

{....}

"어디로 이동할지 예상하면 처치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곳에 함정을 쳐 두면 그만이니까."

한 번 녀석이 공간을 이동했던 곳에 정수아를 통해 물을 배치해 두었다.

물의 밀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짙다.

갑자기 나타난 곳에 그런 물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녀석에게 가해지는 충격은 뭐라 말할 필요도 없겠지.

"유일한 변수는 녀석이 도망치는 거였는데... 워낙 강자로 살아 왔던 녀석이라 그런가 본인이 사냥감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 같더라고."

{....}

그렇게 설명을 마치자.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군단장께서는... 언제나 이런 전투를 하시는 건가?}

"음? 매번은 아니지만 보통은 그렇지."

적의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그에 맞춰서 요리나 공략법을 준비하고 상대한다.

이게 내 가장 기본적인 전술.

{내 저 녀석이 이 땅에서도 손꼽히는 사냥꾼이라 했네만.}

그리고.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한 것일까.

{최고의 사냥꾼께서... 내 앞에 계시는군.}

녀석의 목소리에는.

묘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 * *

{군단장께서 말씀하신 대로 놈의 이능은 분명 강력하지만, 그 이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순도 높은 대량의 마력이 필요하다네.}

몇 시간 뒤.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내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렇다는 건 즉, 녀석의 몸에는 그 순도 높은 대량의 마력을 저장하기 위한 장기가 필요하다는 얘기지.}

"...과연."

{그 마나홀을 이식했네.}

방랑광대를 잡아다 건네준 즉시.

녀석의 두 번째 치료가 진행되었다.

{아마 군단장도 느껴질걸세. 몸을 움직이는 마력이 훨씬 수월하게 움직이고... 그 양도 늘어난 걸.}

그 말대로였다.

'내가 원래도 스탯 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내 상태창에 나타나는 '마력' 스탯은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내 마력이 다른 각성자들....

특히 마법사들에 비해 크게 강하다는 체감을 한 적은 없었다.

{군단장의 종족은 마력에 그리 친숙하지 않은 종족이었던 듯하군. 최근에 생성된 마나홀이 있기는 했지만, 너무 과격하게 굴린 탓에 형체만 겨우 남아 있는 수준이었어.}

예전에는 그냥 내가 전투직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지만.

이제야 알겠다.

'시스템은 내게 엄청난 양의 마력을 부여했지만... 내 몸이 그 마력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던 거야.'

이제는 아니었다.

몸 안에서 느껴지는 지나칠 정도로 강대한 마력.

콰과과과....

혹시나 싶어서 그 힘을 조금 움직여 보자.

전에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전신을 도는 무형의 힘이 느껴졌다.

"...난 이런 이름의 장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우리 부대의 치료사들도 그런 말은 없었는데."

{장기라고 표현은 했네만 토착종이 생각하는 유형의 장기는 아니니까. 마력으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형체가 없는 장기... 라고 생각하면 편할걸세. 수준이 높지 못한 치료사들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군단의 치료사들에게 이 정보를 알려 준다면 큰 도움이 될걸세.}

아마 저 말도 농담이 아닐 것이다.

내가 하워드와 정보를 교류하며 그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었던 것처럼.

저 녀석이 알려 준 정보를 우리 부대원들에게 가르쳐 주면, 녀석들도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겠지.

'...미안할 정도로 많은 걸 받아 버리는구만.'

저 천산무관 이후로.

이계의 존재에게서 이 정도로 많은 걸 얻어 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 마나홀이라는 건, 여러 개를 지니기도 하고 그런 건가?"

{흠?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네만. 보통은 하나지.}

"그럼 저번의 힘줄하고 다르게 이건 나만 쓰는 건데. 그래도 괜찮은 건가?"

{아깝지 않냐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마나홀이라면 재료에 여분이 있다네. 군단장께 맞는 사이즈의 물건은 드물고. 그 정도의 격을 가진 물건은 단 하나도 없긴 하지만.}

아마 이번 치료에 쓰인 재료는 상당히 귀한 물건이겠지.

그럼에도 이걸 내게 쓴 것은....

{뭐, 이 정도는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마나홀 외에 다른 부분은 내가 치료비로써 수집해 두었기도 하니까.}

저번에 말한 대로.

저 녀석이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우호적인 관계... 라.'

보기 힘들 정도로 추악하게 생긴 괴물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이계의 존재들과 비교해도 이 정도로 순조롭게 협력이 진행된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천산무관이나 보르진과의 관계조차 이 정도로 수월하지는 않았으니까.

"야."

{왜 그러시는가.}

흠.

그렇다면.

"질문이 몇 개 있는데."

{몸 상태나 건강 관리에 대한 조언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 주겠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식습관과 생활 습관의 개선이야. 좋은 걸 먹으면서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면 어지간한 병은....}

"아니, 그런 거 말고."

어차피 이 수술 후에는 안정을 위해 침대에 몇 시간은 누워 있어야 한다.

그동안 할 것도 없고 하니.

"저 이계... 다른 서울에서 나를 만났을 때."

{아, 그때 말인가. 갑자기 이 공간에 기묘한 이차원이 자리 잡아 놀랐었지.}

"그 이차원을 만든 건 [대모]였다. 네가 그 녀석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알고 있을 만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엄청나게 강대한 존재였어."

사실.

저 이계에서 녀석이 우리를 도와주었던 시점에서 묻고 싶었던 것.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거다."

{....}

"왜 저런 강대한 존재와 척을 지면서까지... 우리를 도운 거지?"

그런 내 질문에.

녀석에게서 나고 있던 '맛'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459화 대답.

잘은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아마도 무언가 목적이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 녀석은 우리에게 어떤 적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득을 안겨 주고 있었다.

'인류 단독으로 이겨 내기에는 이 멸망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렇다면.

'동맹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나는 창문 밖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크어어어....

밖을 돌아다니는 저 괴물들.

강남 전체를 가득 메울 정도의 압도적인 병력이다.

그 병력의 질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일정 이상의 강자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겠지만, 그건 우리 부대가 담당하면 된다.

게다가.

'우리 부대의 치료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치유 능력까지.'

각성자의 능력은 분명 강력하다.

하지만.

저 [천산무관]의 무인들이나.

[지하광산]에 묻혀 있는 드워븐들.

평생을 정령과 교류한 [녹색갈기]의 보르진 등.

각 분야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이계의 존재들에 비하면.

각성자들의 능력은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배울 점도 많았지.'

우리 부대의 전사들이 천산무관의 가르침을 통해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고.

기술자와 마법사들이 지하 광산에 묻혀 있던 지식을 통해 혁명 수준의 기술 발달을 겪고.

정수아가 보르진을 통해 정령술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각자의 분야에 특화된 이계의 존재들과의 교류는.

우리 부대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이 녀석은 치료사들에게 큰 깨달음을 줄 수 있을 법한 존재다.'

그렇다면.

저 병력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만한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신.

그러기 위해서는.

'확인해 봐야겠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저런 강대한 존재와 척을 지면서까지... 우리를 도운 거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나는 그대들을 잘못 공격했었지. 그 실수를 갚기 위한 이유도 분명히 있었네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도움을 받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 [대모] 같은 존재와 대립하면서까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녀석은 우리를 도왔다.

자신의 병력을 소모하는 걸 저렇게 싫어하던 녀석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병력을 저 대모의 영역에 떨궜지.

{....}

내가 그리 질문하자.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맛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 맛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미약한 쓴맛.

'당혹.'

그리고.

...아주 짙은 매운맛.

'극도의... 분노.'

그리고.

녀석은 그런 내 질문에.

{나는 신격이니 뭐니 하는 녀석들이... 너무나도 혐오스럽다네.}

"뭐?"

무척이나 성실하게.

그 답을 내주었다.

추욱 하고 힘이 빠지더니.

테이블 위에 늘어지는 괴물.

힘없이 늘어져 있었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에는.

{놈들은 거짓말쟁이뿐이거든.}

분명히.

진실만이 담겨 있었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지?"

치료가 끝나고 난 뒤.

내가 허공을 향해 그리 묻자.

-별거 없었어요.

발아래에서 답변이 나왔다.

[미뢰강화]를 통해서 녀석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저 의사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고? 정말인가?"

-네. 처음 수술 때도 그랬지만 저 괴물들이 우르르 나와서 주인님의 수술을 진행하더군요.

저렇게 추악한 모습에.

끌고 다니는 괴물들만 봐도 정상은 아니다.

그런 존재를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악의가 느껴진다면 저희가 반응했겠지만....

"정상적인 치료였다... 이거로군."

-네. 수술 장면은 좀, 뭐랄까... 보기 힘들긴 했지만.

혹시 내 치료 중에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까 싶어.

아리엘라와 뱀파이어들에게 치료 과정을 자세히 살피라고 명령해 두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은 하지 않았던 모양.

"다행이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경계를 느슨히 하면 안 된다. 내 몸에 이상이 생길 것 같다 싶을 때는... 알지?"

-네. 저야 그러기 싫어도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으니, 걱정 마시길.

권속의 맹약은 주인의 몸에 해가 될 짓을 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싶은 상황이 생기면, 저 맹약이 곧바로 반응해 나를 보호하겠지.

'아직까지는 별다른 수작을 부려 오지는 않는 것 같군.... 무언가 속내가 있기는 할 텐데.'

나는 그 속내가 무엇일지 경계하면서도.

녀석과의 거래를 이어 갔다.

[식재료 감별(강화)]

[피의 마수, 파워로]

다음으로 사냥한 것은.

움직이는 거대한 심장 같은 형태를 하고 있던 기괴한 괴물이었다.

-쯧... 징그러워라.

'저 녀석은 피의 마수라는데, 너하고 비슷한 종류의 괴물 아닌가?'

-맙소사. 저희 품격 있는 귀족들을 저딴 짐승하고 비교하시는 건가요? 나중에 주인님에게는 귀족의 문명이 얼마나 융성했는지를 천천히 교육해 드려야....

그 심장에서 솟아난 혈관들은 마치 거대한 뱀처럼 움직이며 우리를 공격했다.

분명 혈관일 텐데도, 칼도 제대로 들지 않을 정도로 질기고 단단했다.

{군단장의 생명력의 원천은 그 피에서 오는 것 같더군.}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도 말했잖아? 이 피를 너무 많이 쓰면 난...."

{인간을 벗어나게 된다. 알고 있네. 하지만... 피의 양을 늘리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지.}

녀석의 혈관은.

의사 양반의 표현에 따르면 '걸레짝'이 되어 있던 내 혈관을 대체했다.

{군단장의 몸을 흐르는 피는 분명 강대하지만, 그 피를 담은 혈관은 너무나도 연약했지. 그 흐름이 더욱더 부드러워졌을걸세.}

사락.

칼을 들고 슬쩍 내 팔에 상처를 내보았으나.

그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경기도에서 복귀한 뒤에 약화되었던 회복력이... 돌아왔다.'

아니, 돌아온 수준이 아니었다.

전보다도 훨씬 더 빨라진 모습.

'짐승이라는 녀석도 꽤 쓸모가 있나 본데.'

-....

그리고.

수술을 마치고 난 뒤에는 언제나 짧은 회복 시간이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저번에 한 얘기 말인데."

{또 그 얘기인가.}

녀석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내가 말을 꺼내자.

의사 녀석은 눈에 띄게 싫어하는 티를 내며 답했다.

{의사와 환자 간에 신뢰가 있으면 좋은 건 맞네만, 그래도 사적인 영역까지 공유해야 하냐는 쪽에는 의견이 많지. 참고로 나는 반대파일세.}

"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래?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그런 이유가 아닌 듯하네만.}

녀석이 싫어하거나 말거나.

나는 다음 질문을 생각했다.

'맘 같아선 묻고 싶은 질문이 따로 있긴 하지만.'

그 부분은 저 녀석이 답하길 꺼릴 것 같단 말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치료는 내게도 필요한 일.

섣부르게 이상한 질문을 했다가 치료가 멈추는 것도 좋지 않으니.

나는 다른 질문을 먼저 건네기로 했다.

"내가 널 찾아온 건, 어떤 소문이 있어서였는데 말이야."

{소문?}

"강남에 뛰어난 의사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내가 이 녀석을 찾아온 것은.

장영웅이 내게 선물해 준 [소문의 파란 새]의 힘이었다.

그리고 파란 새가 가진 능력은 말 그대로 소문을 알려 주는 것.

"너는 인간하고 교류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어쩌다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도 궁금해서."

{아아, 그 얘기인가.}

그런 내 질문에.

녀석은 싫어하던 것 치고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별건 아닐세. 군단장을 뵙기 전에도 비슷한 거래를 한 경우가 몇 번 더 있었어.}

"거래?"

{치료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이라면 치료를 해 주었네.}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 줬다고?"

{군단장처럼 귀한 재료를 쓴 경우는 없지만 말이야. 그대들... 토착종에 대한 지식이나, 군단에 대한 정보도 그때 얻었지. 몇몇 치료의 대가로는 정보를 받았거든.}

아무래도.

이 녀석은 우리 말고도 인간과 접촉해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망령검귀]

[뼈만 남은 채 세상을 배회하는 옛 전사의 망령입니다.]

다음으로는.

뼈마디에서 느껴지던 삐걱거림이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들과 만나 봤다고 했지. 그러면 말인데."

{음, 뭔가.}

"혹시."

나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녀석에게 물었다.

"그 인간들을 배신하거나 한 적은... 없나?"

{...배신이라니?}

"너랑 거래했던 인간들이 어떻게 됐는지가 궁금해서."

이 녀석은 괴물이다.

게다가.

저 밖에 돌아다니는 괴물들의 모습을 보면....

이 녀석이 병력을 어떻게 불렸는지도 예상이 간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겠지.'

혹시라도.

그 거래 후에 거래한 인간들을 배신한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어떻게 됐냐니... 건강하게 회복해서 떠나갔네만.}

"...."

녀석의 말에서 거짓말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 인간들을 배신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

{혹시 그 후에 어떻게 되었냐를 묻는 거라면 나도 모르네. 나야 치료는 책임지고 해냈지만, 그 후의 사후 관리까지 책임질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야.}

뭐.

그 결말이야 내가 알고 있기는 하다.

지금 이 땅에 살아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그 인간들도 대단하네. 아무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해도, 너 같은 녀석과 거래를 하려고 하다니."

이 녀석의 외관은 내가 본 어떤 괴물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흉측했다.

보통은 말을 걸어 볼 생각도 못 할 텐데.

이 녀석과 거래를 했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급했던 것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그런데.

{...너 같은 놈이라니.}

그런 내 말에.

'의사'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내가 뭐가 어때서 그러는 건가?}

"...어."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네만... 군단장의 치료도 성실히 임하고 있고. 업무 외의 질문에도 솔직히 답해 주고 있지 않나.}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맛을 눈치채고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녀석.

{나는 군단장을 위해서 많은 걸 투자하고 있는데... 군단장께서는 나를 너 같은 놈이라 표현하시는군.}

"...너 서운해하고 있는 거냐?"

{그러면 안 되는 건가?}

내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 * *

{첫 만남부터 그랬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 자체에는 큰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 군단장과 나의 첫 만남이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나.... 나는 그 민폐를 사과하고,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자 조언도 해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네.}

"그건 그랬지."

저 말은 사실이다.

실제로 그 조언 덕분에.

저 이계의 정체에 접근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도... 군단장께서는 일단 싸워 보자는 식으로 얘기하셨지.}

"그것도... 그렇긴 한데."

저 말도 사실이었다.

녀석은 전투에서 물러나고자 했으나.

그걸 붙잡고 싸워 보자느니 한 건 나이기는 했다.

{그 후에, 이 땅 위에 덮어씌운 저 이계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을 때도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 내 아이들을 보내 군단장을 도왔네.}

"...."

저것도 사실이다.

그 병력이 없었다면, 대모가 물러나는 선택을 하기까지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했겠지.

{그런데도 군단장께서는... 내게 치료를 요청하면서도, 그 치료에 대해서는 의심만 품고 화만 내고 있으셨지.}

"야, 그건."

{군단장께서는 내가 군단장을 돕기 위해 투입한 병력이 얼마나 되는 줄은 아나? 이 땅... 서울이라는 지역에는 강적들이 즐비하네. 나조차도 이 땅에서 그리 안전한 입지는 아니야. 그런데도 그리 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그쪽을 도왔는데....}

"그러니까."

{군단장의 몸이 안 좋아 보이길래, 나중에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권고까지 해 주었지. 실제로 찾아온 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를 안내해 주었는데... 군단장께서는 몸을 원상태로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사실에 화만 내지 않으셨나.}

정말 놀랍게도.

저 녀석이 구구절절 내뱉고 있는 말은....

{제대로 된 치료를 해 줬는데도 설명은 듣지도 않고 인간을 벗어나게 만든 것 아니냐며 화나 내고.... 솔직히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판인데 왜 내가 평생을 단련해 온 의술을 폄하받아야 하는 건지 의문이었네.}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갑자기 저렇게 내게 서운함을 표현하다니.

저 행동에 어떤 속셈이 숨겨져 있는 것일지.

그 속셈을 파악하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속셈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마, 너는...."

나로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이긴 했지만.

"숨기고 있는 속셈이 없는 거냐?"

{...어이가 없군.}

이 녀석은.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군단장께 단 하나의 거짓말이라도 한 적이 있었나?}

"...."

이 녀석은 내게.

지극히 솔직하게 대하고 있었다.

460화 나와 똑같아.

{내가 지금까지 군단장께 단 하나의 거짓말이라도 한 적이 있었나?}

"...."

그 말을 들은 나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저 녀석의 말대로, 놈은 내게 어떤 거짓말도.

무언가를 숨긴 적도 없었으니까.

'아니, 그뿐만이 아니지.'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은 실제로 내게 도움만 줬고.

내게 언제나 솔직했던 반면.

나는 녀석에게 짜증만 내고, 적대했으며.

아리엘라를 통해 녀석을 최대한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한 일들이긴 했지만.

녀석의 입장에서 하는 말을 정리해 보면....

'솔직히 서운할 만한 구석이 있긴 했....'

아니, 꽤나 많기는 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군.}

그런 녀석의 태도에.

나는 이 녀석을 조금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은 확실히 이성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놈은 또 아니야.'

흉악한 괴물들을 이끄는 대장 괴물.

그런 이미지 때문에 묘하게 까칠하게 대하고 말았지만.

저 녀석을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실례를 범하고 있는 쪽은 누가 봐도 내 쪽이었다.

'아, 과연.'

그리고.

나는 잠시 뒤에야, 내가 왜 이 녀석에게 적대적으로 굴었는지.

이 녀석을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푼 녀석이... 없었으니까.'

내가 만난 이계의 존재들은 물론.

내 평생 만나 왔던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도.

이 녀석만큼 솔직한 녀석은 없었다.

괴물은 물론, 사람들까지.

그 존재가 선하냐, 악하냐 와는 별개로.

대부분은 나름의 속내를 가지고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미뢰강화]'

대상의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이 힘을 얻은 뒤로.

나는 나와 대화하는 모든 이들의 감정을 조금씩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누구보다 짙은 충성심을 가진 이조차.

나와 대화를 할 때는 진심을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힘을 얻은 뒤로.

나는 모든 이들이 속내를 숨기고 있으며.

이 힘으로 그 속내를 알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예외라는 것도 존재했다.

{군단과의 우호를 다지고 싶었으나... 그런 내 행위에 회의감이 들 정도야.}

'진실.'

그게 바로.

이 녀석.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이 그 예외에 들어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이건 그럴 만도 한 게.

크뤅....

'저렇게 생긴 괴물이 속내가 없을 거라니... 그딴 걸 어떻게 믿어.'

내가 만난 그 어떤 괴물과 비교해도.

이 녀석은 더 흉측하고, 기괴하게 생겼으며.

저 밖에서 다루고 있는 괴물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 녀석은 문화의 차이가 있다느니 뭐니 했었지.'

결국.

놈은 이계의 존재다.

나는 내가 평범하게 생긴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계의 존재들에게는 내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추악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계의 존재들은 나를 더없이 아름답게 생긴 존재로 볼지도 모르지.

다른 존재의 본질을 외형만 보고 판단한 것은....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실책이었다.

{왜 나를 그렇게 못 믿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

그 말에.

나는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

저기에 대고 '네가 엄청 징그럽게 생겼으니까~' 라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정말로, 너는 우리를 속일 생각이 없다는 거냐?}

{그렇네.}

"...어째서?"

나는 그 대답은 하지 않는 대신.

진지한 태도로 녀석에게 질문을 건넸다.

{...?}

그리고.

그에 대한 녀석의 답변은....

꽤나 간단한 것이었다.

{속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담백한 맛.

진실.

"내가 질문을 하면... 거기에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넘기거나 할 생각은?"

{없네만.}

이것도 진실.

이 녀석은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우리를 속일 생각이 아예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녀석의 속내를 알아내고자.

어떻게 별거 아닌 질문으로 녀석의 속내를 알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정말 그러면 몇 가지만 더 묻자."

{언제는 안 물어봤는가. 마음대로 하시게.}

하지만, 저 녀석이 저리 솔직하게 나와 준다면.

"네가 신들을 혐오한다는 그 이유. 그리고...."

귀찮게 배배 꼬아 가면서.

온갖 유도 심문을 해 가며 녀석의 답을 끌어낼 필요도 없겠지.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서, 뭘 얻어 가고 싶은지 답해다오."

{....}

* * *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건네자.

녀석은 조금 망설임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해 주는 것은 쉽네. 하지만....}

"하지만?"

{첫 번째 이유는... 조금 말하기 껄끄럽네만.}

이것도 진실이었다.

녀석이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말하기 껄끄러운 것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녀석이 껄끄럽다던 첫 번째 질문은....

'신을 혐오하게 된 이유.'

지난번 대화에서.

녀석은 자신의 혐오를 내게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는 애초에 그 이유를 묻고 싶었으나.

그때 녀석에게 느껴진 감정에 의하면.

꽤나 민감한 사안일 거라 생각해서 묻지 않고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

"알고 싶어서 그래."

{...?}

그렇다면.

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땅에는... 네가 그리 혐오하는 신격이라 할 만한 존재가 없어. 우리는 그런 존재들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지."

{....}

"하지만."

저 외형으로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녀석은 내게 솔직했다.

"너는 알고 있는 거잖아?"

그렇다면 나 역시.

조금은 진지하게 녀석을 대할 필요가 있겠지.

"나는 네가 느낀 분노를 맛봤다. 그 분노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

"나는... 그 녀석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렇게 분노를 품어야만 하는 존재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가 알고 싶다."

그런 내 말에.

의사... 아니.

의사의 단말기로 보이는 괴물은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라면.}

무슨 생각을 하던 것일까.

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조금은 답해 줘도 되겠지.}

"...고맙다!"

그 몸이 축 늘어지더니.

힘없는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자네는... 내 의술이 어디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나?}

* * *

대부분의 다른 세계가 그렇듯.

그의 세계에도 그 세계의 주인이 된 존재가 있었다.

{본래의 나는 사제였네. 위대하신 분을 섬기는 사제... 그중에서도 말석에 앉아 있었지.}

그리고.

'의사'는 그런 신의 충실한 신도이자 사제였다고 했다.

"사제에서 의사가 되었다고?"

{정확히는 조금 다르지. 사제이자, 의사였다고 할까.}

"...?"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의사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분의 신명은... 치유와 회복이었네.}

"...!"

{그분의 의지를 대변하는 사제들은 모두가 뛰어난 의술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지.}

나는 놀라면서도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의사'를 자칭하는 존재.

그 의술의 근원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에게 헌신하는 신도들에게 영원하고 고통 없는 삶을 약속해 주셨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말에는....

나조차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영원하고 고통 없는 삶.'

나 역시 그 무엇보다 원하고 있는.

바로 그런 삶이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그런 게, 가능하다고?"

어떤 짓을 해도 얻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삶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가능하다고 믿었네. 증거도 있었어. 그분의 믿음을 거부하거나, 죄를 저지른 죄인들은 길어 봐야 100년을 살지 못한 반면 그분을 따르는 사제의 말석이었던 나는 죄인들의 수십 배의 삶을 살았으니까.}

그 말에는 조금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나이가 몇 살인 거야?

"...얘기만 들어 보면 좋은 놈 같은데."

{...나를 비롯한 많은 신도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은... 그런 신이기는 했지.}

"그런데... 왜 지금은."

{왜냐고?}

그런 내 말에.

지난번에 느꼈던 그 아찔할 정도의 매운맛이.

다시 한번 입가에 감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걸 보면 모르겠는가.}

"...."

그륵....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이 강남 전역에 깔린 수많은 괴물이.

저 의사의 분노에 동조해 몸을 떨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라고 했지.'

그 상황까지 말해 주기는 싫은 모양이지만.

그 말대로.

{...변변치 않은 모습을 보였군.}

저 녀석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건....

그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그게 저 녀석이 저리 분노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왜 우리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거지?"

다음으로 물어야 하는 것은.

녀석에게 다른 속내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말했다시피 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네.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지킬 수도 없는 뻔뻔한 거짓말이었지.}

"그래서?"

{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녀석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꽤나 시원하게 답을 주었다.

{나는... 그자가 내게 약속했던 것을 어떻게든 얻어 낼 생각이라네.}

"그 녀석이 약속한 것이라면."

{영원하고 고통 없는 삶.}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맛이 조금 변화했다.

서늘하면서도 씁쓸한 맛.

{그자의 약속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된 뒤... 내가 느낀 첫 감정이 무엇이었는 줄 아는가?}

"...글쎄. 알 것 같기도 하고."

{무서웠네.}

공포.

{언젠가 나를 찾아올 죽음이 너무나도 무서웠어.}

"...."

* * *

녀석의 말대로라면.

놈은 본래 영생과 불사를 약속받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시체가 되어 추하게 썩어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네.}

그랬던 녀석이 갑자기 그 약속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다.

{그런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두려워서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였어.}

자신에게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죽음을 목전에 두어야만 했을 때.

놈이 느꼈을 공포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제대로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네. 본래 죽음은 모든 생명에게 당연히 찾아오는 결말이라고.}

"...."

{자네들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너무나도 나약하고... 하찮아 보이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그것이....}

녀석은.

그 말을 입 밖에 내기도 무섭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이 너무 두려운 것을.}

그리고.

녀석의 그런 말에....

나는 뭐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약하고 하찮게 보일 거라고?'

웃기는 소리다.

그도 그럴 게.

'이 녀석은 나와 똑같아.'

녀석이 느낀 두려움은.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으니까.

'나나,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찾아올... 끝.'

나 역시.

그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 너무나도 두려워.

그 죽음에 저항할 힘을 키우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죽을 위기도 몇 번이고 있었지만.

그 덕분에, 필연적인 죽음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을 떨쳐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죽기 전까지의 평생을 저 죽음에서 도망치기 위해 살게 되겠지.

그리고, 이 녀석은.

{...해서. 연구를 시작했네.}

나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 필연적인 죽음을 이겨 내기 위한... 발악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461화 정보 교류

{저 바깥의 아이들을 보게나.}

"어. 엄청나게 많던데."

{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탄생한... 실패작들일세.}

확실히.

이 녀석은 저번에도 그런 말을 했었다.

{내 목표는 내가 본래 약속받은, 내 것이 되어야만 했던 영생과 불사를 이룩하는 것이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연구 재료가 필요하지.}

"흠."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의사야. 의술에는 조예가 있지만... 전투는 내 전공이 아니지. 그러니.}

그리고.

녀석에게서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전투직이 필요하다, 이거로군."

{이 땅에 대해 잘 알고... 무력 또한 갖춰져 있으면 더 좋겠지. 게다가.}

"게다가?"

녀석의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그게 이 땅의 토착종이라면야...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야.}

"...?"

토착종.

즉.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잘 보이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데.

{말했다시피, 나는 많은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네만... 대부분은 실패했네. 얻은 건 있었지만, 목표를 달성한 적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없었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한동안은 다음 연구 과제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네.}

"그래서?"

{하지만... 얼마 전에 새로운 연구 거리를 찾았지.}

스륵 하고.

괴물의 손가락이 나를 향했다.

{시스템... 이라고 부르더군.}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의 토착종들은 본연의 힘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이들이었네. 그 문명은 꽤나 융성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들 중에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힘과 성장을 보여 주는 이들이 있더군.}

안 그래도.

얼마 전, 이 부분에 대한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토착종을 치료해 준 뒤, 그 대가로 정보를 얻었네. 그들이 가진 힘과 그 성장은... 시스템이라고 하는, 그들조차 모르는 것으로부터 기원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지.}

그런데 설마하니.

{그 후에는 또 다른 거래의 대가로... 그들을 연구할 기회를 얻었네. 그리고, 그때 확신했지. 토착종들을 비호하는 그 힘... 시스템을 파고든다면 내 목적에....}

여기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생명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 * *

"너...!"

나는 어느덧 회복이 거의 끝난 몸을 일으킨 채.

눈을 크게 뜨고, 녀석에게 물었다.

"시스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야. 말했다시피 거래의 대가로 약간의 협력을 받았네만, 그럴 기회가 많지는 않았거든.}

협력.

녀석은 다른 인간들을 치료해 주고, 그 대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대가로 정보 같은 것을 받았다고 했었지.

"시스템 연구의 협력을 받았다고 한 적은 없었을 텐데."

{음? 그야....}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군단장께서 내가 무슨 대가를 받았는지 물어보지 않으셨으니까.}

"...."

...이것 또한 진실.

그저 물어보지 않았기에 답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거다.

'거래를 나눈 이들은 모두 무사히 돌아갔다고 했지.'

생각해 보면.

지금에서라도 내게 이런 사실을 밝힌 것만 봐도.

녀석이 내게 저 사실을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라고 알 수 있었다.

다만.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시스템이라니.'

이 녀석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치료를 받은 이들이 멀쩡히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했네. 내 연구도 진척이 더뎌진 상황이지. 그런데....}

쩌억 하고.

괴물의 입가가 흉측하게 찢어진다.

{하하. 반응을 보아하니, 군단장께서도 그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군.}

"...."

{그래. 어차피 몸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도 걸릴 것 같으니.}

터억 하고.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내 앞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았다.

{서로 한 가지씩.}

"...?"

{이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해 보는 건 어떠신가. 군단장.}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를 유일하게 돕고 있는 존재인 이 시스템의 정체를 파고들어야만 한다.

"...정보 교류라."

본래 여기서는 일단 몸을 치료하기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몸을 치료하고 난 뒤에, 다른 지역의 인간들과 만나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낼 생각이었지.

하지만.

"나쁘지 않겠네."

* * *

"멸망의 날...."

{이 세계에 구멍이 뚫린 날을 말하는 것이로군.}

"그래, 그때 이 시스템도 동시에 나타났다."

이 녀석의 목적 중 하나는 시스템에 대한 연구.

녀석은 그걸 위해 토착종 세력인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나와도 겹치는 면이 있었다.

"괴물을 사냥한 사람들은 시스템을 통해 각성하고 힘을 얻을 수 있었지."

녀석이 제안한 한 가지씩의 정보 공유.

이건 아마도.

앞으로 우리가 쌓을 우호적인 관계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을지.

미리 경험해 보자는 의도도 있겠지.

"그 후로도 괴물을 사냥하면 경험치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어. 우리는 그걸 통해 강해질 수 있었고.}

{으음.}

그렇기에.

나는 녀석에게 내가 알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가장 기본적인 정보들이로군.}

그러나.

그 얘기를 들은 녀석의 표정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 보였다.

{이 정도는 그 전에 거래했던 이들에게서도 얻은 적이 있네. 군단장이라면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시리라 예상했네만.}

그 말대로.

알린다고 해 봐야, 내가 녀석에게 알려 준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거짓말은 안 하는 솔직한 녀석이라고 한들, 거래에는 은근히 칼 같은 놈이기도 하단 말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쥐고 있어야 했다.

"더 많은 걸 알려면 일단 너부터 네가 알고 있는걸 알려 줘야 하지 않겠냐."

나는 일단은 이 녀석이 말하는 걸 듣고 난 뒤.

다음 내용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래도 무언가 가치 있는 정보를 넘겨줘야, 나도 거래에 응하지 않겠나.}

"네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내게 의미 있을지 어떨지 어떻게 알고?"

{그건 자신이 있네.}

나는 인간 중에서는 이 시스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다른 인간들의 '협력'을 통해 얻어 냈다고 했으니.

그 정보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군단장을 비롯한 토착종들이 시스템에 대해 얻는 정보는 경험에서 나온 게 많은 듯하더군.}

"응?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은 얻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네.}

하지만.

녀석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내 나름의 연구 방법을 통해 시스템을 조사했네.}

"...."

{믿어도 좋네, 군단장. 정보를 얻어 내는 방법이 다른 만큼 그 결과물도 많이 다를 것이야.}

...저 녀석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정보에 자신이 있다는 것도 진심이겠지.

'흠, 그렇다면.'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바로 저 녀석을 보고 떠올린 사실을 입에 담았다.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녀석은 은근히 말이 많은 편에다가 설명도 많은 녀석이거든. 처음에는 그 내용을 의심하는 경우도 많았지. 하지만... 네 말대로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이 녀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 내용에 예외가 있거나 하는 경우는 있어도.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

마치, 거짓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스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것도 알고 있었냐?"

{아니, 몰랐네.}

"그럼 다행이군."

나로서는.

저 녀석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떠오른 내용에 불과했다.

아까운 정보기는 했지만, 풀지 못할 정보도 아니었지.

{아아... 군단장의 말대로일세.}

"...?"

{정말, 좋은 일이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

하지만....

그런 내 말에 녀석은 무슨 느낌을 받은 것일까.

{그건, 뭐랄까.}

쩌억 하고.

환하게 찢어지는 입가.

{굉장히... 이상적으로 들리는군.}

녀석에게서는.

지금껏 보지 못한 수준의 '기쁨의 맛'이 넘쳐 나고 있었다.

{아아... 정말이지. 좋은 정보를 들었어. 군단과 좋은 관계를 맺기로 한 것은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들 정도일세.}

"...다음은 네 차례다."

{음, 아아. 알고 있네. 군단장께서도 귀한 정보를 내게 주셨으니... 나도 아껴 둔 정보를 드리는 게 맞겠지.}

나로서는 별거 아닌 축에 속하는 정보였지만.

그 정보에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뻐하는 녀석.

{군단장께서는 괴물을 사냥함으로써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하셨지.}

"어. 직업별로 다른 방법도 있긴 하지만, 모든 이들이 시스템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건 그 방법뿐이다."

{아니, 그건 군단장이 모르는 말일세.}

"엥?"

그리고, 그 정보가 녀석에게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녀석은 자신했던 대로.

{내 연구를 통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토착종의 힘...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다른 생명을 살해하는 것뿐만이 아니야.}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알려 주려는 듯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혹시 직업에 관련된 행위를 함으로써 경험치를 얻는 걸 말하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닐세. 다만... 군단장께서 눈치채지 못하신 것도 이해는 가네.}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성장 방법이라는 게 있다니.

나에겐 너무 뜬금없는 얘기였으나.

{이건 각성자의 무력을 직접 성장시켜 주는 요소는 아니거든.}

"뭐?"

{덕분에 각성자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네만... 후후. 나를 속일 수는 없는 법이지.}

녀석은 확신을 가진 채 말을 이었다.

'이게 무슨.'

각성자의 무력을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면.

그건 성장이 아니다.

녀석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으나.

{각성자가 아니라... 시스템일세.}

"어?"

{각성자에게 힘을 주는 저 존재.}

다음에 이어진 말에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그 자체의 힘을 강화하는 요인이 존재해.}

"그게, 무슨."

저 시스템은 멸망의 날 이후로 줄곧 우리 각성자들에게 힘을 주었다.

그렇기에, 몇몇 각성자들은 저 시스템이 무한한 힘을 지닌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시스템이란 게, 강해질 수가 있는 거였나?'

녀석의 말대로라면.

이 시스템의 힘도 우리 각성자들처럼.

점차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건 내 연구를 통해 알아낸 사실이니 확실해. 그리고, 그 시스템이라는 것의 힘은.}

스윽 하고 손가락을 뻗더니.

그 손가락이 직각으로 꺾이며 아래를 향한다.

{땅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네.}

"...땅?"

{정확한 이유까지는 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 시스템의 힘은 이 땅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어. 그리고.}

쩌억 하고.

흉측한 웃음을 짓는 녀석.

{시스템의 영향력 아래 놓인 땅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힘도 강해지는 듯하더군.}

"...."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며 생각했다.

'땅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녹색갈기 부족.'

저 [보르진]....

녹색갈기 부족의 정령술.

'놈들은 대지의 정령과 주로 계약했다.'

그리고.

놈들의 영향력 아래 놓인 땅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대지의 정령의 힘이 강해지고.

그렇게 강해진 대지의 정령이 부족 전체에 축복을 내림으로써, 종족 자체의 힘이 강해진다고 했었다.

보르진이 말한 대로라면 대지의 정령은 놈들이 섬기던 초원신의 사자던가 뭐라던가.

녹색갈기 부족은 유독 다른 괴물들보다 점령 전쟁에 진심이었다.

그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었지.

그리고....

두 번째는.

[월드 이벤트 - 점령전이 진행중입니다.]

[소속 지역 - 대지역 ROK]

[강철 군단 (6%)]

"...점령전."

모든 각성자가 처음 각성한 순간 보게 되는.

저 시스템이 내리는... 단 하나의 지표이자 명령.

지금은 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그 내용이 바뀐.

바로 이 점령전이었다.

'시스템은 우리에게 이 점령전을 수행하라고 했다.'

그리고.

의사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저 점령전.

처음에는 왜 우리에게 저런 짓을 시키는 것인지.

저걸 수행함으로써 대체 무엇이 바뀌는지도 몰랐지만.

{군단장께서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으신가 보군.}

이제는 아니었다.

우리에게 점령전을 하도록 시킨 이유는, 단 하나.

'시스템 본인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던 거야.'

저 녹색갈기 부족이 정령의 힘을 키우기 위해 영역을 넓힌 것처럼.

저 시스템 본인의 힘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어때? 흥미롭지 않은가?}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 사실에 경악하고 있자.

'의사'는 흥미가 가득 담긴 말투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그 녀석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땅의 영향을 받는 것일까.}

시스템은.

이 땅의 점령도에 따라 그 힘이 달라지는 존재다.

아직도 잘은 알지 못했지만.

베일에 감춰져 있던 시스템의 정체에... 조금이라도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462화 해결법

{뭐, 첫 번째 정보 거래는 여기까지 하지. 나는 꽤나 만족스러웠는데, 군단장께서는 어떠신지 모르겠군.}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연구에는 자신이 있는 편일세. 이 외에도 군단장께서 모르시는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지. 그리고....}

"나도 네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

그 말에.

녀석은 그 입가를 쩌억 찢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말했다시피 내 연구는 협력자들의 멸종으로 인해 정체되어 있었네. 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협력자가 나타나기만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테지.}

그리고.

저 괴물 녀석은 그 투박하고 거대한 손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내 생각이네만, 아무래도 우리는.}

나는 그 손을 잠시 바라본 뒤.

작은 쓴웃음과 함께, 그 손을 쥐며 말했다.

"...좋은 거래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네."

* * *

그 후로도.

치료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녀석과 시스템에 관한 정보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은 충분히 고무적인 것이었으나.

그런 공동 연구 같은 것은 일단 치료가 끝난 뒤에 논의되어야 할 일이었으니까.

{몸을 움직여 보시겠나.}

"음. 확실히 나아졌네."

하지만, 저 대화로 변한 게 없지는 않았다.

그전까지는 치료는 물론, 녀석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녀석을 어느 정도 경계했으나.

녀석이 내게 거짓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고맙다."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군.}

조금은 편안하게 치료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녀석과 오가는 대화도 확실히 좀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일단 이번 치료는 여기까지일세. 꽤 긴 치료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는 거의 다 끝났으니. 조금만 더 참아 주시게나.}

"어, 그렇다는 건."

치료가 거의 다 끝났다는 건.

즉.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내 몸은 완치된다는 건가?"

{완치라.}

완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가 했으나.

그런 내 말에.

녀석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당장 내 힘으로 군단장을 완치하는 것은... 조금 어려울 걸세.}

"...그런가?"

내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녀석이 치료하지 못할 정도라니.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내 의술이 모자라서는 아니야.}

"아, 그래? 그러면 왜."

{정확히 말하자면 치료에 필요한 재료가 부족하다고 해야 맞겠지.}

확실히.

녀석은 지금까지 나를 무난하게 치료해 주고 있었으나.

그 대가로 내 치료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공수해 오길 부탁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전투직이 아닌 만큼.

치료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공수하는 데에는 난항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망가진 장기들이라면 군단장께서 가져다주신 재료들로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네. 하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재료를 가져다줌으로써 그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사라져 버린 [진기]는 아니야.}

"진기...."

그 말에.

나는 내 상태창을 열어 살펴보았다.

[페널티]

[심각한 후유증]

[진기 소실]

저 경기도에서 복귀한 뒤.

내 상태창의 맨 아래에는 언제나 이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 녀석의 치료가 진행된 뒤에는.

[미세한 후유증]

심각한 후유증이.

미세한 후유증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삐걱거림도 많이 사라진 상태.

아마 녀석이 말하는 치료가 끝나면 저 후유증은 완벽히 사라지겠지.

반면.

[진기 소실]

"...."

이쪽의 페널티는.

어떤 변화도 없이 여전했다.

{내 치료만 끝나도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낄 일은 없을걸세. 하지만, 전투에서는 여전히 모자람을 느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건 의사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그렇다면?"

{약사가 할 일에 가까울 걸세.}

약사.

즉.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단순하다네. 잃어버린 진기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강대한 힘을 품은 영약 같은 것을 섭취하는 것이지.}

영약이라.

{군단장의 그릇은... 군단장이 아시는 것보다도 커. 나로서는 어떻게 토착종이 이 정도로 큰 그릇을 가지고 있을 수 있나 의아할 정도지. 그리고 지금, 군단장의 그 큰 그릇 대부분은 텅 비어 있는 상태일세.}

"흐음."

{아쉽게도 지금 나는 군단장의 비어 버린 공간을 채울 정도의 영약은 가지고 있지 않네. 정확히 말하자면 가져 본 적도 없다고 해야겠지만.... 미안하게 됐네.}

그 말에.

"뭐, 나도 양심은 있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약까지 지어 달라고 할 정도로 염치없진 않아. 지금 이 정도의 몸 상태로 만들어 준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지."

{고마워할 일은 아닐세. 나도 치료비는 받았으니까.}

"그래도, 그 치료비를 많이 할인해 준 것도 사실이잖아?"

{뭐... 그렇긴 하지. 어디까지나 군단장께 잘 보이려는 의도였네만.}

"그럼 축하한다, 그 의도대로 되고 있어."

{...하핫.}

또다시 입이 찢어질 듯한 웃음을 짓는 괴물.

처음엔 조금... 아니 많이 징그러웠는데.

저게 웃는 표정이란 걸 알게 되니, 이제는 그럭저럭 볼 만했다.

"그럼 다음 치료 때 보자고."

{잘 다녀오시게.}

나는 피식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그러자.

"...은인이시여!"

병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

내 경호를 맡은 부대원들이 눈을 크게 뜨며 헐레벌떡 내게 다가왔다.

"군단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치료는 잘 진행되신 겁니까? 저 괴물이 이상한 짓을 한 건...."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내 상태를 점검하는 녀석들.

"...매번 이럴 거냐? 이번에도 멀쩡해."

"아아, 아아...!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모든 부대원이 지나칠 정도로 안도하는 모습.

처음에는 내 생각을 많이 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라도 들었지.

매번 치료가 끝낼 때마다 이러니, 이제는 조금 어이가 없어질 정도였다.

{...보호자 분들이 군단장을 많이 아끼는 듯하군.}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괴물이 슬쩍 내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보호자 분들의 걱정도 이해는 하네. 하지만, 나는 전력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어.}

무언가를 설명하면서.

내게 친근하게 다가오려던 괴물.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정지!"

그 앞을 막아선 것은.

방금 전까지, 내 몸 상태를 극진히 걱정해 주던....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괴물."

{...음.}

바로 그 병사들이었다.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네만.}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었던 건지는 상관없다. 이번 치료는 끝났으니, 더 이상 군단장님한테 볼일은 없을 텐데."

{....}

"치료가 끝난 뒤에도 이렇게 스스럼없이 접근하는 건 조금 불편하군."

그런 병사들의 날카로운 말에.

'의사'는 조금 당황한 듯하더니.

{...맞는 말이야.}

이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내가 실례했네. 환자와의 거리감을 조금 착각한 듯하군.}

녀석에게서는.

지난번 나를 향해서 보였던 서운한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 * *

{...군단장께서도 그러셨지만, 군단장의 동료들도 나를 많이 경계하는 듯하군.}

다음 치료가 끝났을 때.

녀석은 내게 그런 말을 해 왔다.

"...저번에 그건 미안하게 됐다.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아니, 군단장께서 미안해하실 일은 아니지.}

말은 저렇게 하지만.

여전히 서운함이 느껴지는 녀석.

"네가 정 신경 쓰인다면, 다음에는 너한테 무례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해 두마. 내 부하들이니만큼, 마음에는 안 들어도 잘 따를 거야."

{...아니. 나는 그런 식의 해결은 원하지 않네.}

저번에 나 때문에 섭섭해하던 녀석의 모습도 생각나다 보니.

나름대로 대응을 해야 하나 싶었으나.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나는 군단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 싶다네.}

"그랬지."

{군단장께서는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해 준 듯해 감사할 따름이네만, 군단장이 내게 예의를 차리도록 명령하는 식의 해결이어서야... 다른 군단원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기는 힘들겠지.}

음, 그 말대로.

내가 저 녀석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한다면.

정수아와 그 일행은 확실히 내 명령을 듣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겉으로는 무례하게 굴지 않게 된다고 한들.

속으로 녀석에 대한 적대심은 여전히 가지고 있겠지.

{사실은....}

녀석은 잠깐 내 눈치를 보더니.

고민을 상담하고 싶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군단장께서도 그러셨지만, 그전에 만나서 거래를 한 이들도 그랬네. 대부분 토착종이 나를 많이 경계하더군.}

"...음, 그야 그렇겠지."

{그야 그렇겠지, 라니...?}

무심코 튀어나온 내 대답에.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혹시 토착종들은 원래 이렇게 경계심이 심각한 종족인 겐가?}

"...."

{어떤 적대적 행위를 보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로 경계부터 하고 본다니.}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물론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지.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이를 경계하는 것은 이해하네만....}

크뤄억...!

{나와 거래 관계가 확립된 상태에서도 이렇게 적대심을 드러내는 것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군.}

꾸웨에엑....

{하아. 경계심의 원인이라도 알면 대처를 해 볼 텐데. 솔직히 조금 갑갑하군.}

"...진짜 모르는 거냐?"

{음?}

녀석의 목소리는 내 뇌리에 직접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담긴 내용 자체는 꽤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보니.

무심코 까먹어 버리기 쉽지만....

{그게 무슨 소리인가?}

꿔어어억....

그 말이 들려오는 녀석의 단말....

저 괴물은 진짜 끔찍하게 못생겼다.

온갖 괴물들이 기괴하게 합쳐진 듯한 모습에.

온몸에서는 기괴한 진물이 흐르고.

입은 제대로 벌리지도 못해 녹색 가래가 섞인 침이 계속 흘러내리는 모습.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깐 고민한 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 너를 경계하는 이유는...."

{오오, 역시...! 군단장께서는 그 이유를 알고 계시단 건가!}

저 녀석은 내게 어떤 거짓말도 없이 솔직했다.

그렇다면.

"네가... 못 생겨서 그런 거다."

나도.

녀석에게 솔직해야만 하겠지.

{...어?}

내 말을 들은 의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에, 충격받은 듯 뒷걸음질 쳤다.

* * *

{맙소사....}

내가 진실을 알려 주자.

'의사'는 절망감이 가득한 채 입을 열었다.

{그 많은 적대심이 내 외형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고...?}

"...어, 아마 확실할 거다."

{그대들은 내 본신을 보지 못했을 텐데.}

"본신은 몰라도, 우리가 본 괴물들은 아주 흉측했거든."

{군단장께서 본 괴물이라면....}

녀석은.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를 말하는 것인가?}

"그래."

{내게는... 내 온갖 연구가 집결되어 만들어진 아름다운 육체로 보이네만.}

"...."

{아, 물론 조금 비효율적이고 비위생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인정하네. 하지만... 수술에 직접 투입되는 아이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대화를 위한 아이일세. 위생적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네. 아니, 애초에 내가 왜 이런 변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녀석은 두통이라도 느끼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쥐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외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 아닌가?}

"...."

반박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찔리는군.'

하지만.

뭐 어쩌겠냐.

"인간이란 게 그래. 일단은 첫인상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보거든."

{그런가... 이게, 문화의 차이라는 것인가.}

녀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에 크게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도, 알려 줘서 고맙네.}

"고맙긴 무슨."

내게 감사를 표하는 녀석.

"...상처받은 건 아니지?"

{응? 아니. 그렇진 않네. 예상하지 못해서 당황한 것뿐이지. 이 몸은 내 본신도 아니니까.}

...본신이라.

이 녀석의 본신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조금은 궁금했다.

{그나저나, 외모.... 외모라.}

그리고.

내가 이 녀석의 본신을 궁금해하고 있을 때.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어.}

"응?"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나를 이렇게 경계하는 건가 고민했네만. 이런 별거 아닌 이유였을 줄이야! 그렇다면.}

녀석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쩌어억 하고.

저 녀석 나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게도 해결법이 있을 것 같군.}

463화 그 모습은.

"...저 녀석은 그럭저럭 나쁜 놈은 아니야."

치료를 마치고 나온 뒤.

나는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도 그렇게까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는...."

"정말 죄송합니다만, 은인이시여."

하지만.

부대원들은 그런 내 말에도 물러날 의지는 없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지금 저희는 은인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입니다."

"뭐, 그렇긴 하지."

"은인께서 저 괴물을 믿어도 된다고 하신들... 저희가 경계를 느슨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물론.

그 뒤의 병사들 역시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단 한 순간도, 심지어는 저 수술이 진행 중일 때도!"

"...."

"은인의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경계하는 게 저희 역할입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수술은 이번이 마지막일세.}

"어?"

어느덧.

이 길었던 수술에도 끝이 다가왔다.

{대신... 부탁이 하나 있네만.}

녀석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치료는 마지막인 만큼, 가장 민감한 치료가 될 걸세.}

"그런가?"

{그래서 말이네만.}

슬쩍 하고.

녀석의 시선이 내 발아래를 향했다.

{이번에는... 보호자 분들이 빠져 주었으면 하네만.}

"...보호자라는 건 내 부대원들을 말하는 건가?"

나는 녀석이 말한 것이 내 등 뒤에 있는 부대원들을 뜻하는 것인 줄 알았다.

실제로 녀석은 내 부대원들을 보호자라고 칭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

{다른 보호자 분들을 말하는걸세.}

하지만....

아니었다.

{시술을 훔쳐보고 있던 분들 말이야.}

그 말에.

흠칫 하고.

등 뒤에 있던 부대원들 사이에서 이상한 인기척이 하나가 느껴졌다.

"...알고 있었던 거냐?"

{음? 뭘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 인기척에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녀석의 시선은 내 뒤가 아닌 발아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즉.

"...네 수술을 관찰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거."

{아, 당연히 알고 있었지.}

녀석은.

내가 뱀파이어들을 통해, 내 수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였으니까.

"어떻게...?"

{그야. 군단장의 몸을 검진한 게 나이지 않은가. 군단장께서 기이한 회복력과... 피, 그림자, 짐승, 괴력, 안개 등에 관련된 종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네.}

그런 녀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등 뒤에 있는 병사들 사이에 의문이 퍼져 나갔다.

"...괴력? 안개?"

"군단장님? 이건 무슨 소리인지...."

나는 속으로 아차 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엘라와 그 권속들에 관한 것은 부대원들에게는 기밀이다.

저 녀석은 그걸 알지 못하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부대원들에게도 조금씩 정보를 풀 생각이긴 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그렇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을 때.

"쉿."

그런 병사들의 의문을 잠재운 것은.

내가 아닌....

"아무래도 이 대화는 저희가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닌 것 같군요."

"...자매님?"

"저희는 물러납시다. 은인께서는 저자와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실 테니."

정수아였다.

* * *

"조용히 이야기 나누시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주시길."

그녀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더니, 부대원들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아마 나와 이 녀석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부대원들을 이동시켜 주겠지.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화제를 껄끄러워한다는 걸 눈치챈 건가.'

바로 얼마 전에 나를 호위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부대원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눈치챈 것이다.

-은인께서는 다른 부대원들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정보들을 가지고 계신 거겠죠.

나는 그녀가 이 서울행에 참여하기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게 맡겨만 주신다면 그 걱정은 하지 않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정수아는 그 약속을 지켰다.

나는 그 사실을 확실히 기억해 두기로 한 뒤, 녀석과 대화를 이어 갔다.

"네 치료를 참관하는 놈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 왜 그냥 둔 거지?"

{그야. 수술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생각했으니까.}

녀석은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보호자가 극성인 경우야 한두 번도 아니고. 수술 과정을 확인하고 싶은 것도 이해했네. 해서, 그냥 두기로 했지.}

"왜 그걸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지?"

{그야... 묻지 않았으니까.}

"...."

그 말대로.

녀석은 내가 묻는 모든 말에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내가 묻는 게 아니라면, 굳이 나서서 말하는 편도 아니었다.

{내가 무슨 실례를 한 건가?}

심지어.

녀석은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이게 녀석이 말한....

'문화의 차이.'

나는 한숨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내 딴에는 이 녀석을 경계해서 몰래 준비해 둔 병력이었다만.

녀석은 그걸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그 녀석들은 배제해 달라?"

{그렇네.}

"이유가 뭐지? 치료 내용 중에 보이면 안 되는 게 있는 건가?"

{그렇다네. 이건 내 안전에 관련된 일이라, 제대로 밝히기는 뭐하네만... 군단장께 피해가 갈 일이 없다는 것만큼은 내 단언하지.}

그 말에.

나는 잠깐 고민을 한 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주인님!

그러자.

발밑에서 들려오는 반발의 목소리.

"걱정해 줘서 고맙긴 한데."

하지만, 이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이 녀석...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믿어도 될 거다."

내게 솔직했고 뭐고를 떠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녀석은 치료에는 누구보다도 진심이다.'

아마도 나에게 요리가 이 녀석에게는 의술이겠지.

그 부분에서 장난을 칠 녀석은 아니라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 * *

결국, 그렇게.

나는 아리엘라와 그 권속들을 그림자 속에서 내보낸 뒤.

혼자서 수술실의 침대 위에 누웠다.

지금까지의 수술의 경우.

이렇게 여기 누워 있으면 녀석이 만든 실험체라는 놈들이 다가와 수술을 진행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믿어 줘서 고맙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것은.

단 하나의....

작고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그 인기척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녀석이 보호자를 치워 달라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민감한 치료는....'

그리고.

그 인기척이 어떤 장비를 만지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실험체들에게... 맡기지 못하니까....'

내 눈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르르 잠기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치료는 문제없이 진행될 테니 안심하고 주무시게. 군단장.}

내 얼굴 위를 가리는.

누군가의 작은 그림자였다.

* * *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낯익은 천장이었다.

매번 눈을 떴던 바로 그 병실.

'...상태창.'

나는 눈을 뜬 즉시.

상태창을 열어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보인 것은.

[페널티]

[진기 소실]

2개가 자리 잡고 있던 페널티 자리에서.

완벽하게 사라진 '후유증'이라는 문구였다.

{치료는 잘 마무리되었네.}

"그런 것 같네. 고맙다."

{무얼, 나야 거래를 이행했을 뿐인데.}

나는 병실을 열고 다가오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흉측하게 생긴 거대한 괴물.

{말했다시피 치료는 이걸로 끝이네. 군단장께서도 확인하셨겠지.}

"일단은."

{하지만 아쉽게도... 군단장의 잃어버린 '진기'에 대한 부분은 해결되지 않았네.}

...그 부분은 나도 신경 쓰이기는 했다.

이 페널티까지 확실히 해결하려면 영약이라는 것을 구하라고 했지만.

그런 걸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제안이 있네만.}

"응?"

그런데.

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말했다시피 진기를 채울 수는 없네. 하지만... 그 페널티를 대체할 만한 방법은 있을지도 몰라.}

"...!"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 의사조차 해결할 수 없다고 했던 '진기' 문제.

그걸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그것도 대가가 필요한 거겠지? 재료 겸, 너도 챙길 만한 대가가. 또 다른 괴물을 잡아 와야 하는 건가?"

{아니. 필요하기는 하네만 지금까지처럼 괴물을 잡을 필요는 없네.}

"...괴물을 잡을 필요가 없다니. 그럼 무슨 재료가 필요한 건데?"

그런 내 질문에.

녀석은 내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군단장의 피.}

"...?"

{그 피가 필요하다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애초에 왜 내 피가 필요한지도 의문이지만.

그보다 더 의문인 것은.

"그거야, 수술하면서 엄청 흐르지 않았나? 그걸 챙겨가도 될 텐데."

내 피라는 게.

굳이 저렇게 얘기할 정도로 귀한 재료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네만, 재료를 제공해 주는 본인의 동의는 받아야지.}

"...그 방법이라는 걸 사용하면 '진기 소실' 문제가 해결된다, 이거지?"

{아마도.}

약간의 부작용이라.

나는 잠깐 고민한 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에게 팔을 내밀었다.

"가져가."

{그래도 되겠는가?}

"지금까지 잘 치료해 줬으니. 이번에도 믿어도 되겠지."

{...다시금 말하겠지만. 믿어 주어서 고맙네.}

그러자.

녀석은 어디서 주사기 같은 것을 가져오더니.

그 주사기를 내 혈관에 꽂아 피를 뽑아 가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나로서도 실험적인 것이라, 일단 시도를 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걸세. 아마 부작용도 있겠지.}

"부작용이라."

{자세한 사항은 일단 시도를 해 본 뒤에 알려드리도록 하지.}

그런 말을 하며.

신중하게 내 피를 뽑아 가는 녀석.

'...의사라.'

그리고.

나는 내 피를 뽑아 가는 녀석....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이 '단말기로 사용하고 있는 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 치료엔 진심이다.'

그 의술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우리 부대원들과 교류를 한다면 부대원들의 의술도 순식간에 성장시킬 수 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속이거나 하는 놈도 아닌 것 같고.'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부류의 괴물은 아닌 게 확실했다.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몰라 걱정해야 하는 다른 괴물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이 녀석은 무엇보다도.

'바깥의 존재를 증오하지.'

아마도.

우리가 대적할 그 존재들을 증오한다.

"너. 우리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지."

{음, 그렇네만?}

"그렇다면, 차라리."

...그리고.

나는 이상의 조건들을 고려한 뒤.

한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놓았다.

"군단에 합류할 생각은 없나?"

{...뭐라?}

그런 내 말에.

녀석은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토착종이 아니네만.}

"아, 설명이 모자랐나 보네. 지금 우리 군단에는 너 말고도 괴... 아니, 이계 출신들도 있거든. 많지는 않지만 다들 뛰어난 능력자들이지."

{나를 그렇게 고평가해 주는 건가?}

"못 해 줄 거야 없지 않나?"

그런 내 말에.

녀석은 어떤 감정을 느낀 것일까.

{....}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녀석.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서 나는 맛에 조금 놀랐다.

'단맛.'

녀석은 '단맛'이 나는 감정을 한참을 느끼며 서 있더니.

잠시 뒤에야 말을 이었다.

{정말 고마운 제안일세. 군단장.}

"수락하는 거냐?"

{맘 같아선 바로 수락하고 싶네만... 문제가 있지 않겠나.}

녀석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게도... 나는 토착종들의 호감을 사는 외형이 아니지.}

"...크흠."

{군단장이야 나를 좋게 평가해 준다고 해도 군단에 속한 다른 토착종들은 다르지 않겠나. 그런 단체에 녹아든다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뭐, 그거야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도 생각 없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내가 이 녀석에게 이런 제안을 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입을 열려던 바로 그 찰나.

{...해서 말인데.}

"응?"

{나도 나름대로 준비한 방법이 있다네.}

녀석은 내가 말할 틈도 없이.

본인의 말을 이어 나갔다.

{실은 군단장께서 내 외모를 지적해 주신 뒤에 생각해 둔 방법이 하나 있거든.}

"...뭘 준비했길래?"

{실제로 그 방법을 써 볼까 말까는 조금 고민을 했었네만, 군단장께서 이런 고마운 제안을 해 주었으니... 이제 결심이 서는군.}

스윽 하고.

주삿바늘을 빼고 말을 잇는 녀석.

{내일, 다시 이곳을 찾아와 주지 않겠나?}

"내일?"

{이 피를 이용한 치료법이나, 내가 준비한... 외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 두 가지 다 내일까지 준비를 해 놓겠네. 만약 그 방법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녀석은 몸을 일으키더니.

내 피가 담긴 통을 어딘가에 담으면서 말했다.

{그때, 군단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 * *

"하아...."

다음 날.

저 의사가 머무르고 있는 강남으로 복귀하는 길에서.

정수아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저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자와 함께하자니... 정말 이래도 되는 걸지...."

"내가 대화를 해 봤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놈이었어."

내가 저 '의사'를 영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정수아에게도 알렸기 때문.

"...저희도 솔직히 조금은 걱정입니다."

"군단장님 말씀대로라면 괜찮은 존재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역시."

정수아뿐만 아니라.

다른 부대원들 역시 인상을 찡그리며 서로의 얼굴을 살피는 모습.

"...역시 생긴 게 좀 그렇긴 하지?"

"예... 아무래도 부대에 녹아들기는 조금 힘든 외형 아닙니까."

천산무관의 수인들은 그 귀와 꼬리 정도만 가리면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다.

[보르진]은 누가 봐도 인간을 벗어난 외형을 하고는 있으나, 주술사라서 그런지 품이 넓은 로브 같은 것을 두르고 있어 그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반면 저 '의사' 녀석의 실험체들은 죄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외형이다 보니.

아무래도 부대원들의 감성에는 잘 맞지 않겠지.

"그래도 그 외형적인 부분은 그 녀석이 나름대로 방법이 있다고 했거든."

"어... 그렇습니까?"

"그 방법이란 걸 믿으면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야, 으음."

내가 그리 말하자

다른 부대원들은 조금 의아한 듯하면서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딱 한 명.

"...외형은 차라리 상관이 없습니다만."

정수아만큼은.

여전히 석연치 않아 하는 모양새였다.

'뭐, 이 녀석들 반응도 이해는 가지.'

결국은 저 녀석과 1:1로 자주 이야기를 한 것은 나뿐이었다 보니.

놈이 그럭저럭 믿을 만한 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나뿐이었다.

'그래도 얘기해 보면 괜찮은 놈이니까.'

그 외형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머지는 시간을 들여 대화를 해 나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 부대원들도 녀석을 어느 정도 이해해 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와 부대원들은 강남의 병원 지구로 향했다.

* * *

...그러나.

{아, 왔는가! 군단장. 그리고 보호자 분들.}

"...."

그런 내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급격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너...."

나는.

내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그 모습은 대체... 뭐냐."

떨리는 목소리로.

이를 악문 채 입을 열었다.

{아, 안 그래도 묻고 싶었네.}

그도 그럴 게.

우리를 마중 나온 녀석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흉악한 괴물이 아닌.

{어떤가. 이 정도면 토착종들에게도 녹아들 수 있겠지?}

처음 보는 인간....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464화 분노 (1)

"그 모습은 대체... 뭐냐."

처음 보는 인간.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한 채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녀석.

{어떤가. 이 정도면 토착종들에게도 녹아들 수 있겠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언어를 이해한 것은 아닌지.

입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그 몸에서부터 우리의 머릿속으로 녀석의 뜻이 전해져 왔다.

{실은, 군단장에게 내 외형적인 문제를 들었을 때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네.}

녀석은 기쁜 말투로 말을 이어 갔다.

{사실 군단장을 뵙기 전에도 묘하게 토착종들과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는 느낌은 받고 있었네. 그 이유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네만... 이런 이유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

{토착종들과 교류하고 싶은 내 입장으로서는 이건 꽤나 심각한 문제였어. 더 심각한 문제는... 그걸 해결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점이었고.}

나는 그저 멍하니.

말을 이어 가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냐면 난 의사지, 예술가가 아니거든.}

"...."

{미적인 감각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단 말이네. 있다고 해도 내 감수성이 토착종들의 감수성과 맞을지도 의문이고.}

짜악 하고.

손뼉을 치는 중년의 남성.

{그래서 떠올린걸세.}

"...뭘?"

{외형으로 토착종들의 호감을 사는 방법은 사실 간단한 것 아니겠나.}

녀석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토착종의 모습을 하는 것이지!}

"...."

그 말대로.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은 인간과 어울리는데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저 대모나 미리내 역시.

나와 대화할 때는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취했었다.

그토록 강력한 존재들조차, 인간과 대화할 때는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저...!"

하지만.

"저 괴물 자식이...!"

"잠깐."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고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려 하는 병사들.

"하지만, 군단장님!"

"이걸 보고 참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는 손을 뻗어 그런 그들을 제지했다.

"너희 감정은 나도 이해한다. 아니!"

단순히 인간의 모습을 취한 것.

그게 전부였다면.

"내가... 너희들보다 더 심할 거야."

"...."

나도 이렇게까지 동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

{음, 왜 그러나?}

"그 몸이 어디서 난 건지, 왜 갑자기 그 몸을 가지고 나타난 건지... 묻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다 제쳐 두고. 딱 한 가지만 묻자."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녀석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표정."

저 녀석은 우리를 만난 뒤.

줄곧 기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내놓은 답이 훌륭하지 않냐며.

칭찬을 바라는 듯한 밝은 목소리였지.

"너, 그 표정의 뜻이 뭔지는 아냐?"

{아, 그야 당연히 알고 있지. 말했다시피, 나도 토착종과 우호적인 관계를 원해서 말이야. 어떤 표정이 어떤 감정인지 정도는 파악해 두었다네.}

하지만.

그 표정과 말투는 도무지 매칭되지 않는 것이었다.

{웃는 표정 아닌가!}

"...틀렸어."

{음?}

나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힌 뒤.

가능한 차분한 목소리로 그 사실을 지적해 주었다.

"그건 웃는 표정이 아니라."

그도 그럴 게.

저 인간이 한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이다."

{...흠?}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찡그린....

고통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으니까.

* * *

{고통이라니.}

저 녀석과 대화할 때.

녀석은 몇 번인가 내게 웃는 표정을 보여 주었다.

{그건, 이 표정을 말하는 건가?}

"...그래."

기괴할 정도로 넓게 찢어지고, 일그러진 표정.

내 입장에선 그 표정이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 녀석의 고향에서는 저게 웃는 모습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었지.

{아니, 하지만 그럴 리가?}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다른 토착종을 통해 알아봤을 때는.}

저 녀석이 그런 표정을 했던 것은.

저 녀석의 종족이나 고향이 저렇게 웃어서가 아니었다.

{분명... 이게 웃는 표정이라 했네만.}

"...."

저 녀석은.

저 얼굴이 인간의 웃음 짓는 얼굴이라 생각했기에.

인간인 우리를 상대로 웃음을 지을 때 저런 표정을 해 왔던 거다.

"다른 인간이라."

철그럭.

나는 조용히.

손을 등허리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건, 너와 거래했다던 인간들을 말하는 건가?"

질문을 던지면서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녀석은 본인과 거래했던 인간들을 멀쩡히 돌려보내 주었다고 말했다.

내 미뢰에 잡힌 감각대로라면,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니. 그자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세. 그들에게서는 내가 요구한 대가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치료를 제공한 뒤에 헤어졌으니까.}

"그러면?"

{말했다시피, 치료를 요청해 온 인간 중에서 거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나 물건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 대가를 받고 치료를 해 주었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저 녀석이 여전히 믿을 만한 녀석이기를.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가끔은 나와 거래할 만한 대가를 지니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

"...."

그 말에.

나는 저 녀석의 몸을 바라보았다.

꽤나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

그는 낡은 하얀색 코트에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코트에는 오래된 명찰이 하나 붙어 있었다.

[강일환]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이름.

나는 그 이름을 떠올리려 노력하며 녀석에게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된 거지?"

{그야, 거래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거래할 가치도 없다면....}

그런 내 질문에.

녀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냥 보내기에는 아까우니 연구 표본으로써 수집하기로 했지.}

"...."

{말했다시피 나는 토착종들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 말이야. 연구 표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거든. 토착종은 안 그래도 귀한 재료이니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는 녀석.

하지만.

"그 웃는 표정은 그럼."

{음. 이렇게 표본으로 수집한 이들에게 표정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거든.}

"어떤 식으로 부탁한 거지...?"

{바로 말을 들어주었으면 말로 그쳤겠지만 군단장께서도 말했다시피, 내 외형은 토착종에게 호감을 사지 못하는 듯해서 말이야.}

그 말을 듣는 나는.

{협력을 거부하기에... 고통을 주었네.}

가슴 속의 중요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런 기분을 받았다.

{그리 고통을 주고 나니, 그제서야 표정을 지어 주더군.}

"...."

{그게 웃는 표정이 맞냐고 물었을 때는 분명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네.}

그제서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흐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토착종의 긍정 의사 표현이라고 알고 있었네만,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그자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군.}

"...."

{거짓말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 녀석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좋지 않은 것이니까.}

지금까지 내가 물은 모든 말에 이 녀석은 성실하게 답했다.

심지어는 지금 저 대답 역시.

내가 물었기에 나온 대답이었다.

하지만.

'묻지 않은 것을 먼저 말하지는 않았지.'

내 자신의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지난번.

녀석이 시스템에 대해 연구를 했다고 했을 때.

'나는 그때 그 연구를 어떻게 진행했냐고 물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묻지 않은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이 녀석에게선 어떤 꺼림칙한 맛도 나지 않았으니까.'

평범한 사람의 상식을 가진 존재였다면.

연구에 인간을 사용했던 시점에서 그 부분을 밝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숨기려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부분을 눈치챌 수 있었겠지.

[미뢰 강화]는 그런 미심쩍은 기색마저 맛으로 느낄 수 있는 힘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녀석은 그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때 내가 물었다면 이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을 테지.'

그저 묻지 않았기에.

녀석도 말하지 않았을 뿐.

'문화의 차이라....'

녀석이 몇 번인가 말했던 부분이지만.

이 정도로 체감이 크게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 몸."

까득....

"네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그 몸의 주인도 거래가 성립되지 못한 사례인 거냐."

{그렇네. 군단장이 말씀하신 대로, 나에 대한 소문이 토착종들 사이에 어느 정도 퍼져 있는 듯하더군. 이자도 나를 찾아와 거래를 요청했네.}

"그 거래의 내용은 뭐였지?"

{으음, 그런 걸 왜 궁금해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답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내가 이를 꽉 깨문 채 묻자.

녀석은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 의아해하는 듯하면서도.

순순히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사실, 이자가 해 온 요청은 조금 특이한 것이긴 했네.}

"...?"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의 동료를 치료해 주길 바란다고 했으니까.}

동료를....

치료해 주길 바란다.

{자신의 소중한 동료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라 이곳까지 올 수가 없으니. 자신들의 거점으로 함께 가서 그를 치료해 줄 수는 없겠냐는 것이었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저 강일환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왜 그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밖에서 식량을 구해 와야만 했네. 하지만... 나는 그 탐색에서 제외됐지. 이딴 상처를 입은 상태로는 돌아다닐 수가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그 이유를 들은 것은 바로 얼마 전.

-그게 마지막이었네. 식량을 구하겠다고 나선 희선 양과 배만 씨, 강일환 교수님까지... 그때 이후로 연락이 끊기고 말았지.

이 서울에서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한 남자의 입에서 들었던 이름이었으니까.

"그런 남자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으음. 거래를 하자고 온 것은 좋았으나... 그자의 요구는 너무한 것이었네.}

그 남자는 이 지옥과도 같은 서울에서 소수의 동료와 함께 살아남았으나.

최후에는 그 동료들마저 잃어버린 채.

{이 서울에는 위험이 많아. 그 위험을 모두 뚫어 가며 그들의 거점까지 외진을 해 달라니... 어지간한 대가로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지.}

"...그래서?"

{일단은 그에 합당하는 대가를 요구하기는 했지만... 당연히도 그들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처지였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저 어두운 지하 벙커 속에서.

{해서, 거래는 불발되고.}

"...."

{이들은 그럭저럭 쓸 만한 연구 재료가 될 것 같아 미리 수집해 놓은 것일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후회만을 곱씹으며.

그렇게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음? 군단장.}

말을 마친 녀석은.

의아하다는 태도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군단장의 몸을 몇 번 검진해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네만... 지금 군단장의 몸에는 약간의 이상이 생긴 듯하네.}

서울의 마지막 생존자.

장영웅이 그렇게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최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평소보다 많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있으신 것 같군. 산소의 요구량이 늘어나고, 혈관이 팽창되고... 혈압이 급속도로 올라 얼굴색도 붉어지고 계시네.}

그가 마지막 동료들조차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가 바로.

"너였구나."

이 녀석이었다.

{흠. 이건 아무래도....}

내 몸에서부터.

고통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극단적인 매운맛.

{극심한 분노로 인한... 이상 증세로 보이는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465화 분노 (2)

{어째서 화가 나신 건가, 군단장.}

내 분노를 느낀 녀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화낼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참 아쉬운 일이지만.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

거기에 선이니 악이니 하는 개념은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다.

{왜 화를 내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

저 녀석은 강자였고.

놈에게 재료로써 [수집]당한 인간들이 약자였을 뿐이다.

오히려 저 녀석은 상대가 약자라 한들.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거래를 나누었다.

괴물들치고는 손에 꼽힐 정도로 상식적인 선에 들어가겠지.

"나도 그래."

하지만....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리 답했다.

"문화의 차이라고 했지?"

녀석은 그리 말했고.

나도 그런 게 있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차이는 극복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실제로 우리의 거래는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나.}

"하지만, 이제야 알았어."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

녀석은 인간을....

내 동족을 납치하고, 살해했노라고.

본인의 입으로 당당하게 밝혔다.

이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부대에 합류한 보르진 역시 과거에는 수없이 많은 인간을 노예로 다뤘던 주술사다.

아리엘라가 살해한 인간은 최소로 잡아도 세 자릿수에 달한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녀석은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보르진과 아리엘라는.

그것이 내 적의를 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 감성에 있어서는 놈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차라리 자신이 인간들을 [수집]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면.

나는 어떻게든 녀석과 관계를 이어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 녀석은 이 세상을 살아남기에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될 녀석이니까.'

그리고.

'나는 저 녀석이 싫지 않았으니까.'

저 녀석은 나와 닮아 있었으며.

그 목표 또한.

나와 비슷한 녀석이었으니까.

앞으로 인간을 해하지 않는다는 확인만 있다면.

어떻게든 협력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다른 종족간의 교류라고 한들.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언가.

녀석은 그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하나만 묻자."

{무엇이든지.}

"지금 네가 차지하고 있는 그 인간... 그 인간은 거래를 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기에 재료로써 수집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꽈악 하고.

[독고구식]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준다.

"군단이 약해져서, 더 이상 너와 거래를 나눌 수 없게 되었을 때."

{지금 군단의 저력을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어지간하면 없을 듯하네만.}

"만약에! 그렇게 되었을 때는."

나는 이를 꽉 문 채.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우리를 '수집'할 거냐?"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 대답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의미 없는 가정이라고는 생각하네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지금까지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고.

언제나 솔직한 대답을 해 주었던 녀석은.

{아마도 그러하겠지.}

"...."

{말했다시피, 나는 그대들의 힘... 시스템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대들 정도의 질과 숫자를 가진 표본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을 놓치지 않으려 할 걸세.}

이번에도.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냐."

{음.}

"솔직하게 대답해 줘서 고맙다."

상대와 교류를 나누는 이라면.

설령 진실이라 해도 당당히 입 밖에 내놓을 수는 없는 말.

녀석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내놓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해 준 참에 미안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다른 흉포한 괴물들도 가지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무언가.

그 무언가가 결여된 이상.

'우리가 약해졌을 때 우리의 뒤를 칠 존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저 녀석은.

동맹을 맺을 수 없는 존재라고.

"우리의 거래는 여기서 끝이다."

* * *

"미안하지만 우리의 거래는 여기서 끝이다."

{...그래. 그렇게 되었는가.}

그런 내 말에.

녀석은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으나... 내 행동 중 무언가가 군단장의 기준에 맞지 않았다는 거겠지.}

"...."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함께하지도 못하는 법. 나는 군단과의 동행을 꿈꿨으나... 그대들이 그걸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 동맹은 파기하는 거로 해도 좋네. 투자한 게 아깝기는 하지만, 투자란 원래 손해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니까.}

내 일방적인 통보에도.

녀석은 여전히 이성적이고 솔직한 대답을 내놓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끝났으니. 여기서 더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겠지.}

"그렇겠지."

{그럼... 잘 가시게. 군단장. 그 일행분들.}

그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 걸어 나갔다.

"군단장님...?"

"이대로 끝내도 되는 겁니까?"

"...."

병사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걸어 나갔다.

-크뤄어억....

강남을 가득 메운 괴물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막지 않았으며.

오히려 나가기 편하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군.'

이런 배려를 본다면.

저 녀석은 상당한 상식과 이성을 지닌 존재다.

그저, 그것보다 결여된 부분이 더 컸을 뿐.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한 가지 의문도 떠올랐다.

'어떻게 이만한 상식과 이성을 가진 존재가... 딱 한 부분만 결여되어 있을까.'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해 봐야 의미 없다.'

그 이유를 알아낸다고 해서.

저 녀석의 머릿속을 내가 바꿔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집어넣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한 가지만 묻고 싶네. 군단장.}

그렇게 강남을 완전히 떠나기 직전.

머릿속에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뭐지?"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할까 하다가도.

이내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은 이렇게 되어 버렸으나, 그때 군단장께서 해 주었던 말.}

"...?"

{나를 군단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겠지?}

그 말에.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진심이었다."

{그래... 그런가.}

그러자.

그제서야 녀석은 조금은 속이 후련해진 듯.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시게, 군단장. 비록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지만 우리 둘 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지.}

"그래, 너...."

나는 그 말에 가볍게 답변하려다가.

"도...."

이내.

그 답을 꺼내려던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이라.'

정확한 사정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저 녀석은 다른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싫어하는 듯했다.

'그냥... 너도 잘 지내라고 말하고 가면 된다. 그걸로 끝이야.'

본래라면 내게 숨겨야 했을 일들까지도 솔직하게 밝히는 것 역시.

어쩌면 본인이 그런 거짓말을 너무나도 싫어하기에 하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저 녀석은.

내게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으며.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전 부대원."

"예?"

"미안하게 됐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전속력을 다해 부대로 복귀해라."

"군단장님? 그게 무슨."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망설임 없이 부대로 복귀해."

내 말에 멈칫하는 부대원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구, 군단장님."

"당장 뛰어!"

파악! 하고.

내 명령을 들은 부대원들이 먼저 달려 나가는 것이 보인다.

'은신과 암행, 기동력에 특화된 녀석들.'

녀석들이라면.

안전하게 강원도로 복귀할 수 있겠지.

{갑자기 무슨 일인가, 군단장?}

-크뤄억....

나는 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고개를 돌려.

"너. 나한테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지?"

{...음?}

"난 아니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수없이 많은 괴물을 향해 말했다.

"난 너한테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하지 않을 거다. 잘 지내길 바라지도 않을 거고."

{...뭐?}

"나는 이곳을 떠나고 난 뒤. 군단의 본대를 이끌고 다시 올 거다."

녀석이 의아해하거나 말거나.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부대원 대부분이 다른 임무에 투입되어 있지만 일부 회군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의 전력을 갖춘 뒤. 최소한 한 달 뒤에는 다시 이곳을 찾아올 거야. 그리고."

그리고는.

손에 쥔 식칼을 그 수많은 괴물을 향해 겨누었다.

"너를 죽일 거다."

{....}

* * *

{...어째서?}

내 말이 어지간히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녀석은 멍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물었다.

"이유야 간단해."

녀석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너를 방치하면 너는 각성자들을 재료로 수집해 연구를 진행하겠지."

저 녀석이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면.

저 녀석이 뭘 하고 살건 간에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높은 확률로 그렇겠지.}

하지만.

녀석이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본래는 군단과 우호적인 거래 관계를 구축한 뒤, 범죄자 출신의 각성자 등을 재료로써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계획이었네만... 그게 실패한 이상, 다른 방법으로 각성자들을 연구하려 할 것이야.}

다른 사람들을 습격해서라도 그 연구를 이어 갈 생각이라면.

저 녀석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의무를 지켜 주어서 고맙네.'

그도 그럴 게.

바로 얼마 전에 들은 말이다.

'앞으로도 그 의무를 잊지 말아 주었으면 해.'

그 약속을

벌써부터 깨트릴 수는 없지 않겠냐.

"그럼, 난 널 그냥 넘어갈 수가 없거든."

{....}

그리고.

그런 내 말에.

{그런가.}

주변에 있는 수없이 많은 괴물들.

그들 모두에게서 내 머릿속을 향해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처음부터... 거짓말이었군.}

녀석의 몸에서부터.

강렬한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군단장께서는 나와 협력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었지.}

"...."

{군단과 함께하자고 제의도 해 주었고.}

전에 느껴 본 적 없는.

극도로 강렬하고, 코를 찌를 듯이 매운맛.

{전부 다....}

저 녀석은 내 몸속의 피가 움직이는 속도나 혈관의 팽창.

산소량의 증가나, 얼굴색의 변화로 파악했던.

바로 그 감정.

{거짓이었던 거야.}

분노가.

녀석에게서 치밀어 오른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고 했지? 나도 동의해."

그리고, 그 맛을 느낀 나는.

과거에 녀석에게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내 솔직하게 한마디 해드리도록 하지.}

"너도 꽤 대단한 괴물 같던데. 어디...."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군단장은 편하게 죽여 드리지는 않을 걸세.}

"제대로 붙어 보자고."

강남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천, 수만 마리의 괴물들이.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적들을 바라보며....

"마운틴!"

한 가지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내게 덤벼드는 적들을 상대로....

파아아악!

서늘한 한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