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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뭇사람의 분노를 사다

11화. 뭇사람의 분노를 사다

사경신은 사랑스럽다는 미소를 얼굴에 띠면서, 한편으로는 이 여인을 깊이 관찰했다. 소운은 그의 생각보다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사나워야 할 때는 사나워지고,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부드러워졌기에, 강함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갖췄다고 말할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도 단 몇 마디 말로 사람들의 화를 돋울 줄 알았다.

이렇게 영리한 그녀가 하필 길거리에서 사람을 납치하는 경솔한 행동을 하여, 스스로를 파도 속으로 밀어 넣다니.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 데에는 반드시 부득이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애초에 소운이 사경신에게 말했듯,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셋째 부인은 한쪽에 앉아 입술을 비죽이고 있었다. 그녀가 휘두른 주먹은 여토비의 몸에 닿지도 못한 채, 그녀 본인만 내상을 입게 만들었다.

셋째 부인은 답답해진 명치끝이 쓰라려 왔다.

저 여토비는 그것도 모자라, ‘우리 서방님께서 나를 위해 기꺼이 돈을 쓰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에 셋째 부인은 욕지기가 솟았다.

소운과 사경신이 서로 장단이 잘 맞는 모습을 보자니, 셋째 부인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다가 차를 반 잔 마시고 나서야 겨우 분을 삭였다.

셋째 부인이 화가 많이 난 것을 보자, 둘째 부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남장군주는 이번에 생각을 잘못한 듯했다. 이 여토비는 그녀들의 생각만큼 무지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상대이기 때문이었다.

겨우 하루 만에 사경신을 고분고분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사경신은 비록 몸은 약해도 속은 큰 나리를 빼닮아서 사납고 고집스러워, 웬만한 사람은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진국공부의 물이 썩기 전에 누군가 저어줘야 했다.

이내 둘째 부인은 남장군주를 힐끗 보더니 눈길을 거두고 웃으며 말했다.

“참, 궁금하구나. 신이가 아직 이리 젊은데, 수중의 그 많은 돈이 다 어디서 난 것이냐?”

큰 나리께서 주신 돈이 아니라면, 병에 걸려 골골대는 몸으론 삼만 냥을 벌수가 없었을 텐데, 어디서 그 돈이 났단 말인가.

셋째 부인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장군주는 얼굴을 차갑게 굳히더니, 가늘고 긴 손톱이 제 살을 파고드는데도 아픈 줄을 몰랐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이 이 정도로 치우칠 수 있다는 걸 몰랐었다.

벌써 18년이 지났다.

‘그 정도 세월이면 아무리 돌덩이 같은 심장도 따뜻하게 뛸 텐데, 저 애는 대체.’

남장군주는 눈물이 북받쳤지만,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둘째 부인의 질문을 듣자, 소운의 눈이 커졌다. 사경신에게 돈이 많다는 것은 당연히 진국공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리라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계속 감추고 있던 것이라면, 소운의 요청에 어째서 이렇게나 흔쾌히 승낙한 것일까? 소운의 입으로 다 말해버렸으니 이제 돈이 많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을 터였다.

소운이 미안한 눈빛으로 사경신을 바라보는데, 곧이어 그가 말했다.

“그 돈은 부친께서 주신 돈이 아닙니다.”

‘아니라니?’

셋째 부인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추궁했다.

“그럼 어떻게 모은 것이란 말이냐?”

“조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

그 말에 소운은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 사경신과 사랑한다고 한 게 모두 거짓이라고 자백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일까? 망할 놈, 이 인간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는 능력도 참 뛰어났다. 그래도 사경신이 방금 큰 나리가 준 것이 아니라고 한 덕분에, 소운은 그래도 그가 살고 싶긴 하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이 인간은 사는 게 지겨워서 죽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그를 적대시할 게 틀림없었다. 괜히 말을 해서 사람들의 분노만 더 사게 된 꼴이었다.

그러다 소운은 갑자기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정말 국공 나리가 사경신에게 돈을 준 것이라면, 사경신은 자신을 그렇게나 아끼는 조부를 팔아넘긴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사경신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리 없었다.

사경신을 바라보던 소운은 그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라, 서둘러 그를 부축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은 거예요?”

그러자 사경신이 소운에게 몸을 반쯤 기대왔다. 소운은 힘들게 그를 안으며 그에게 너무 지나쳤다고 눈치를 주었다.

그 행동에 사경신은 소운은 흘겨봤다. 그는 소운의 요구라면 다 들어주려 했는데, 이 여인은 말 한마디에 바로 그와 선을 그어버렸다. 순간 그는 부아가 치밀었다.

“숨이 차서, 호흡하기 힘들군.”

그가 힘겹게 말했다.

호흡하기 힘들다는데, 소운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가 숨을 쉴 수 있게 도울 수밖에. 그가 소운을 그렇게나 아껴주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곧 사경신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다른 이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긴 했지만, 감히 그를 추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또 흥분하여 피를 토하고 쓰러지게 된 후, 국공 나리와 큰 나리가 돌아오셔서 책임을 묻게 되면 감히 누구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경신은 호흡이 돌아오고 난 후, 직접 말을 이어갔다.

“방금 제가 미처 말을 끝마치지 못하였는데, 조부님께서 제게 돈을 주셨다고 한 말은, 제 외조부님께서 돈을 주셨다는 뜻이었습니다. 외조부님께선 제가 함부로 돈을 쓰지 않도록 15년간 대신 돈을 보관 해주시면서, 매년 제게 일만 냥씩 주셨습니다.”

소운은 이 인간이 언젠가 사람들에게 맞아 죽는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 사경신이 숨을 헐떡거리고 있으니, 진국공 부인도 결국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담을 뿐이었다.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사경신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와중에 돈의 출처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던가.

그의 외조부께서 주신 돈이니, 그 돈을 어찌 쓰던지 누구도 관여할 수 없었다.

소운이 사경신을 부축하며 말했다.

“서방님, 버티실 수 있겠어요? 못 버티시겠으면 제가 모시고 돌아갈 테니 가서 쉬시는 것이 좋겠어요.”

사경신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소.”

남장군주는 둘째 아들인 사금천을 불러내어 소운에게 인사를 시키고, 그녀를 큰형수라 부르도록 했다.

사금천이 앞에 나서자 다른 자녀들도 모두 잇달아 앞으로 나왔다. 다들 소운이 못마땅했지만, 마지못해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얼굴을 비췄다.

* * *

경차는 이 정도로 끝이 났다. 소운은 이만 물러나려 했는데, 남장군주가 손짓을 하여 사금천과 다른 자녀들을 물러가도록 한 뒤, 서학당 안의 여종들도 모두 물렸다.

그 모슴에 소운은 눈을 껌벅거렸다. 대체 뭘 하려는 것인가?

사경신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내 소운은 한 유모가 손에 쟁반을 받쳐 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쟁반에는 정교한 모양의 찻잔이 놓여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오자 탕약 냄새가 퍼지더니, 남장군주의 매서운 목소리가 뒤따랐다.

“이 약을 마시거라.”

소운의 얼굴에 옅게 피어있던 미소가 가셨다. 곧 유모가 손을 올리며 말했다.

“큰 새아기씨, 드시지요.”

소운은 사경신을 부축하며 차갑게 말했다.

“저는 병에 걸리지 않았으니 약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남장군주가 냉소를 지었다.

“이번처럼 큰아들 때문에 충희를 해야 하는 부득이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우리 사 씨 집안은 절대 한낱 여토비 따위를 며느리로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감히 천자(天子)의 발밑인 도성에서 사람들이 모두 보는 와중에 남자를 납치하다니, 청운산에 있을 때는 얼마나 제멋대로 살았던 것인지 모르겠구나.

앞서 내 생각이 짧아 네가 우리 진국공부 대문을 넘도록 했으니, 과거의 일들은 내 상관하지 않으마. 그러나 우리 사 씨 집안의 명맥을 보존하기 위해, 너는 이 낙태약을 마셔야만 한다.”

어젯밤 소운이 사경신의 옷을 발가벗긴 것을 여종에게 들켰으니, 남장군주는 분명 그녀가 사경신을 어찌했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불에서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바로 날 의심하는 건가……?’

조 어멈에게 해명하지 않은 것에 더해, 고작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바로 이렇게 약을 내밀다니.

‘그래! 해보자 이거지?’

소운은 줄곧 진국공부의 여인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피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피할 수만은 없을 듯했다.

소운의 낯빛은 마치 서리가 내린 것처럼 싸늘해졌다. 이내 둘째 부인이 곁에서 온화하게 말했다.

“만약 네가 회임한 것이 아니라면, 이 약을 먹어도 몸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소운이 웃었다.

“몸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시니, 이 약을 마시지 않는다면 오히려 마음이 개운치 못할 것 같네요.”

둘째 부인은 그저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소운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약은 독이 될 수 있으니, 저는 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습니다. 탕약의 약방문(*藥方文: 약을 짓기 위하여 약재 이름과 분량을 적은 종이)이 있습니까?”

남장군주가 손짓했다.

“약방문을 가져다주어라.”

유모가 약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나가 약방문을 받아왔다.

소운은 약방문을 펼쳐 훑어보더니 사경신에게 건네주었다.

“뭔지 알아보실 수 있나요?”

소운은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물었다.

“모르겠소.”

사경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 가져다주셔요.”

그러자 사경신이 사람을 부르려 하던 찰나에, 남장군주가 말했다.

“약방문도 가져다주었건만, 너는 이리 부끄러운 일로 소란을 피워 모두에게 알릴 작정인 것이냐?”

소운은 사경신을 부축하여 자리에 앉도록 하더니, 약사발 옆으로 다가가 섰다.

“의원을 불러오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이제 막 시집온 제게는 아무렇지 않게 이 약을 주시더니, 대체 무엇이 부끄럽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단지 제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진국공부에서 진정 제가 가문의 체면을 깎는다 생각하시면, 제게 이혼장을 주시면 될 일 아닙니까? 저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사경신은 옆에 앉아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 소운이 정말로 화가 났으며, 이혼장을 원하는 그녀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약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셋째 부인은 붉게 물든 손톱을 바라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 질부는 설마 우리 진국공부에서 약에 독이라도 탔을까 그러는 것이냐?”

소운이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정말이지 셋째 숙모님은 속일 수가 없네요. 네, 저는 이 약에 독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셋째 부인은 소운이 이렇게 솔직히 말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얼떨떨해하다가, 바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렴, 우리가 너를 독살할 수는 없단다. 그랬다가는 네 부모가 우리 진국공부로 쳐들어올 테니 말이다.”

그 말에 소운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고 보니 제가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둘째 숙모님께서 제가 회임한 것이 아니라면 문제없다고 하신 데다, 셋째 숙모님께서는 독이 없다고 하시니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보기에 약의 양이 충분하니, 제가 절반을 마시고 큰 아가씨에게 나머지를 대신 마시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마시지 않으려 하신다면, 큰 아가씨께서 순결하지 않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어디서 감히!”

남장군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큰 딸인 사금유는 남장군주의 소생이었다.

남장군주는 자신이 아무리 화를 내도 소운이 두려워하지 않자 슬쩍 웃었다.

“오늘은 금유가 이곳에 올 수 없을 것 같으니, 네가 그렇게나 의심이 간다면 내가 대신 마셔주마.”

그 말에 소운이 미간을 찌푸려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남장군주가 유모에게 명령했다.

“약을 내오너라.”

유모가 다가오자, 소운은 미소를 지으며 약을 받아 들고 남장군주를 향해 걸어갔다.

남장군주가 서늘한 표정을 짓자, 소운이 공손하게 말했다.

“어머님, 드시지요.”

남장군주는 손을 뻗어 약사발을 들고 두 모금을 마신 뒤, 소운에게 넘겨주려했다. 그런데 순간 소운이 손을 떨어 약을 받지 못했고, 약사발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렸다.

쨍그랑!

곧이어 남장군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소운이 고개를 돌려 사경신을 바라보며 급히 물었다.

“서방님, 어쩌면 좋죠?”

사경신이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어찌 그리 덤벙대는 것이오. 약방문을 내게 주시오. 내가 사람을 시켜 다시 약을 달여와 당신에게 전해주겠소.”

말을 마친 뒤 사경신은 남장군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약을 다시 받아올 테니, 어머니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안심하고말고.”

이 한마디가 남장군주의 잇새를 비집고 나왔다.

소운은 재빨리 절을 하고 사경신을 부축한 채 서학당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