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화. 정당한 명분 (1)
“그럼 제사의 여인은 어떤 품계입니까.”
덕친왕은 순식간에 뒤바뀐 안색으로 하려던 말도 그냥 삼켜버렸다. 그러자 상관명모가 효친왕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효친왕 전하께서 말씀해주시지요.”
효친왕은 흠칫하며 야경염을 바라봤지만, 무표정하게 있는 그를 보고 다시 고개를 떨궜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시겠다고요?”
상관명모가 그제야 멈춰서 효친왕을 돌아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 뱉은 말 같았지만, 효친왕은 상관명모의 엄청난 위압감에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있었다.
“이 조정에 가장 몸을 오래 담으신 분이 모르신다고요?”
효친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아하니 효친왕 전하께서도 아직 잠이 덜 깨신 모양이군요. 아니면 이제 노쇠해 판단이 흐려지신 겁니까? 효친왕 전하께서 잘 모르시겠다면, 아드님이신 영 소왕이 답해보시오.”
적막이 흐르는 공간에 상관명모의 부드럽고도 섬찟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상관명모는 영소탁, 효친왕을 번갈아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영 소왕도 잘 모르겠다면 이 조정도 한번 물갈이를 해야 하는 것인가……. 어찌 소신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대신이 둘이나 있었는지 모르겠군.”
대경실색한 효친왕을 두고, 상관명모는 다시 천월의 손을 잡고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덕친왕도 더는 제지하지 않았지만 조금 전 보다 몸을 더 심하게 떨면서 영소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천월도 영소탁을 돌아보았다. 영소탁도 마침 천월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 눈빛엔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분명한 건 영소탁은 천월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천월도 그 마음을 읽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영소탁을 향해 눈을 깜빡여 보였다.
영소탁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실 제사의 여인이라면 품계는 단연 1품이겠지요, 그러나 천월 아가씨는 제사의 여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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