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하하하, 변태
황궁에 있던 풍묵함은 여유롭게 걸어오는 황숙을 보며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다.
“황숙, 왜 이제야 오세요?”
“내가 늦게 오면 더 게으름을 피울 수 있지 않으냐.”
한마디에 바로 정곡이 찔린 풍묵함이 애써 차분한 척했다.
“공부도 다 했고, 상주서도 엄청 많이 읽었다고요.”
풍청백이 기다란 탁상 앞에 앉아 ‘읽음’ 표시가 되어있는 상주서들을 뒤적거렸다.
“많이 읽었다는 게 고작 이 몇 권인 것이냐?”
“…….”
풍묵함이 고개를 가슴팍까지 푹 숙였다.
“자, 이제부터 읽거라. 옆에서 지켜볼 테니.”
풍청백이 옆에 산처럼 높게 쌓인 상주서를 그의 앞에 밀어준 뒤,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풍묵함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목숨 걸고 일하던 황숙은 어디 간 거야?’
“황숙, 저는 읽는 속도가 느려서 이거 다 보려면 나흘은 걸려요.”
‘황숙도 빨리 끝내고 이모를 보러 가고 싶잖아요. 이거 못 끝내면 황숙도 못 간다고요!’
“괜찮다. 오늘 못 하면 내일 이어서 하거라. 이걸 다 읽어야지 네 시진(*8시간) 동안 잘 수 있을 거다.”
“만약 다 못 끝내면요?”
“그럼 나랑 똑같이 매일 한 시진(*2시간)만 자는 거지.”
“…….”
‘내가 게으름 핀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구나. 황숙이 이렇게 갑자기 방법을 바꾸실 줄이야.’
풍묵함이 붓을 들고는 쳐다만 봐도 머리가 아픈 상주서에 하나씩 ‘읽음’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황숙, 얼마 전 청녕궁에 또 난리가 났었어요. 그 늙은 여우는 왜 아직도 안 미친 거죠?”
경성 유씨 가문이 몰락한 뒤, 유회는 참수형을 당했다. 그 후로 유 태비는 청녕궁에서 몇 번이나 소란을 일으켰지만, 모두가 그녀를 무시했다. 풍묵함은 어찌 됐든 그녀의 일로 매일같이 태감의 보고를 들어야 하는 게 귀찮기만 했다.
풍청백이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너는 황제다. 네가 유 태비가 미쳤다고 말하면, 미친 게야.”
그의 말에 풍묵함의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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