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14

150. 옥상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가는 복도는 원래 오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지금은 이선화와 제이슨 잭슨 때문에 복도를 지나가기 곤란했다.

이선화가 뒤쪽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도로 선글라스를 썼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시끄러워지면 서로 좋을 건 없겠네요. 그냥 지나가죠."

"예. 저도 그게 좋겠…."

갑자기 제이슨이 이선화를 향해 걸어가며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다. 손이 얼굴보다 더 컸다.

"Pretty…."

서정우가 사이에 끼어들어 그 손을 탁 쳤다. 제이슨의 손이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서정우가 말했다.

"치워라."

제이슨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Fuck!"

서정우가 그 공격을 피하는 건 간단하다. 그런데 그가 피하면 바로 뒤에 있는 이선화가 다친다.

서정우는 제이슨의 팔을 왼손으로 막으며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상대의 체중이 워낙 무겁고 주먹이 커서 그것만으로는 약간 부족했다. 그는 상대의 오른쪽 다리도 걷어찼다. 커다란 덩치가 옆으로 비틀거렸다.

서정우가 상대의 배를 발로 콱 밀어 찼다.

체중 170킬로그램의 종합격투기 선수 제이슨이 뒤로 쭉 밀려났다가 그대로 나자빠졌다.

이선화가 서정우의 뒤에서 옆으로 쓱 나오며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서정우와 함께 있을 때는 1위부터 13위까지 한꺼번에 몰려와도 무섭지 않았다.

그녀가 상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봤냐? 어디서 13위 따위가 감히…."

서정우가 경고했다.

"뒤로 조금 물러나요."

"네?"

"저놈 계속 싸울 생각인 것 같으니까."

'나도 여기서 멈추는 건 좀 그렇고.'

상대가 먼저 화를 내고, 먼저 이선화의 얼굴을 잡으려 하고,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다.

제이슨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으와아아아!"

이선화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박현아는 이미 뒤로 한참 빠진 상태다.

박현아가 이선화에게 물었다.

"괘, 괜찮을까?"

"너 왜 저 덩치 걱정을 해? 아는 사이야?"

"응? 알긴 아는데, 그게 아니라 난 서정우 형사님 걱정을 한 거야."

"정우 씨를 왜…. 잠깐. 알아? 너 저놈하고 친해?"

"아니야. 실제로는 처음 봐. 아는 애가 격투기 매니아라서 소문만 들었어. 별명은 불곰. 엄청 강한데 성격이 더러워서 싸움을 많이 한대."

"성격 더러운 건 보자마자 알겠더라."

제이슨이 성격이 더럽긴 하지만, 세계 랭킹 13위는 체중만 많이 나간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는 방금 서정우에게 맞을 때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휘두른 주먹이 중간에 가로막힌 것도 잊지 않았다.

제이슨이 두 팔을 들고 자세를 제대로 잡았다. 링에서 싸울 때처럼 천천히 서정우를 향해 걸어가다가, 갑자기 오른쪽 주먹을 빠르게 뻗었다.

종합격투기 세계 랭킹 13위의 라이트훅은 굉장히 빨랐다.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힘도 엄청나게 강했다.

그런데 저쪽 세계의 몬스터 중에는 더 빠르고 더 강한 힘을 가진 놈이 넘쳐난다. 서정우는 그런 놈들과 싸우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서정우가 옆으로 슬쩍 움직여 제이슨의 주먹을 피했다.

제이슨은 주먹을 한 방만 준비한 게 아니다. 그는 오른쪽 주먹이 빗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왼쪽 주먹을 날렸다.

서정우는 반대쪽으로 조금 움직인 것만으로 그 주먹도 피했다.

제이슨이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공기가 밀려 나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라이트훅, 레프트훅, 어퍼컷으로 이어지는 연속 공격은 제이슨 잭슨의 장기 중 하나다. 거기 담긴 힘은 사람 하나쯤 잡고도 남을 만큼 강했다.

서정우는 그게 거슬렸다.

'선을 넘으려고 하는데?'

서정우가 발을 들었다. 적이 어퍼컷을 날리는 순간, 그 주먹을 발로 걷어찼다.

"큭!"

제이슨의 주먹이 발에 밀려 튕겨 나갔다. 서정우는 그 발을 위로 쭉 올려 제이슨의 턱을 노렸다.

제이슨은 급히 머리를 비틀어 발차기를 피했다. 13위다운 빠른 움직임이었다.

서정우가 위로 높이 들었던 발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올려 차고 내리찍는 동작이 너무 빨라서 상대가 반격할 틈은 없었다.

제이슨은 급히 왼팔을 들어 발을 막았다. 팔을 타고 들어오는 충격이 쇠몽둥이에 맞을 때와 비슷했다.

"컥!"

서정우가 발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제이슨의 왼팔이 밑으로 쭉 내려왔다.

제이슨의 눈빛이 독해졌다. 왼팔을 억지로 버티면서, 발에 차여 튕겨 나갔던 오른쪽 주먹을 날리려 했다.

서정우가 제이슨의 왼팔을 발판삼아 밟고 위로 쓱 올라갔다. 그는 당황한 제이슨이 반응하기도 전에 왼발로 상대를 강하게 밀어 찼다.

"크악!"

제이슨은 순간적으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며 뒤로 날아갔다.

서정우가 가볍게 착지하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기절을….'

기절할 줄 알았던 제이슨이 다시 벌떡 일어났다.

서정우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거 이상한데?'

그는 방금 발차기에는 감정을 꽤 담았다. 그래서 제이슨이 기절하거나, 최소한 금방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을 구를 줄 알았다.

그런데 제이슨이 너무 빨리 일어났다.

제이슨의 눈이 시뻘게졌다.

이번에는 서정우가 먼저 공격했다. 덤비려는 제이슨을 발로 걷어찼다.

제이슨이 도로 나가떨어졌다가, 또 벌떡 일어났다.

서정우는 대충 감이 왔다.

"아아. 그거군."

저쪽 세계에서는 전쟁터에서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고 전투 보조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약물은 작게는 힘을 짧은 시간 동안 조금 늘려주는 것부터, 순간적으로 한계를 돌파하게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지금 제이슨의 모습은 마치 전투 보조 약물을 사용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쪽 세계에 그 보조 약물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마약이네. 약에 취해서 이선화에게 시비를 걸고 날 공격한 거야. 어쩐지 하는 짓이 정상이 아니다 싶더라.'

전투 보조 약물과 마약의 공통점은, 몸에 많이 나쁘다는 것이다.

전투 보조 약물 중에서 효과가 강한 것들은 쓰고 나면 건강을 심하게 해친다. 한계를 돌파하게 해주는 건 쓰고 나서 죽을 수도 있다.

효과가 약한 약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도 아니다. 그것도 자주 사용하면 몸에 나쁘다.

서정우는 상대가 마약을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그럼 뭐. 패야겠네.'

벌떡 일어난 제이슨이 서정우에게 달려들며 발차기를 날렸다. 머리가 아니라 서정우의 다리를 노린 로우킥이 날아왔다.

서정우가 발을 들어 제이슨의 발차기를 도로 걷어찼다. 상대의 발이 바깥으로 밀려났다. 적의 중심이 크게 흔들렸다.

서정우가 본격적으로 제이슨에게 발을 날렸다. 기다란 다리가 채찍처럼 휘어졌다. 순식간에 다섯 번의 발차기가 제이슨의 몸통에 꽂혔다.

저쪽 세계에서 그의 발차기에 이렇게 대놓고 맞으면 갈비뼈가 줄줄이 부러졌겠지만, 이쪽에서는 그렇게까지 강하게 차지는 않았다. 대신에 확실한 제압을 위해 급소만 골라 팼다.

"끄아악!"

"아직 소리 지를 여유가 있나 보다? 약을 도대체 얼마나 한 거야?"

서정우가 몇 번 더 걷어차다가 마지막으로 발차기를 강하게 날렸다.

"케엑!"

제이슨이 뒤로 벌렁 넘어갔다.

급소만 골라 열 대를 때렸다. 제이슨은 이번에는 일어나지 못했다.

제이슨의 일행인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안돼! 경기가 얼마나 남았다고!"

서정우가 말했다.

"그 경기 못 나가겠는데?"

남자는 경악했다.

"뭐? 설마 진짜로 죽였냐!"

"안 죽였어. 그놈은 감옥에 가야지."

"감옥을 왜! 아니야! 이거 쌍방 폭행이야!"

"일단 마약 검사부터 하자."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어라? 반응이 왜 이래? 너도 이놈이 마약 하는 걸 알고 있었네? 네가 공급책이냐?"

"아, 아니. 난 아닌데…."

"너도 했냐?"

곧바로 호텔 보안팀이 달려왔다. 그중에 서정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어? 서정우 형사님 맞으시죠?"

"예."

"서, 설마 우리 호텔에도 테러리스트가…."

"그런 건 아니고요."

"휴우. 아니군요."

"손님 중에 마약사범이 있어서."

"예?"

"마약이요."

보안요원이 기절한 제이슨을 보고 혹시나 해서 물었다.

"제이슨 잭슨 씨는 스위트룸에 머물고 계신데…."

"마약계에서 오면 그 방을 수색하겠네요. 거기는 지금부터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세요. 이 시간 이후로 거기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증거를 없애려는 한 패로 간주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보안요원이 당황한 얼굴로 무전기를 켜고 보고했다.

형사들도 금방 도착했다.

이 호텔은 서정우가 산업스파이나 테러리스트들을 잡은 호텔은 아니지만, 같은 경찰서의 관할구역에 있다.

그 경찰서의 강력팀장이 서정우를 보고 당황했다.

"어? 서정우?"

"예. 팀장님. 자주 뵙네요."

"와. 넌 이제 반쯤 우리 소속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세 번째요."

강력팀장이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그런데 마약 이야기가 들리던데."

"확실합니다."

"네가 그렇다면 아마 맞겠지. 물론 검사는 해봐야 하지만."

"저놈을 검사하면 수치가 높게 나올 겁니다. 지금도 약에 취해 있는 상태니까."

형사들이 제이슨 잭슨을 체포한 후에, 이선화가 서정우에게 말했다.

"뒤쪽에서 정우 씨 싸우는 거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람이 있던데."

"압니다."

"지우라고 할게요."

"놔둬요. 뒷모습만 찍혔을 테니까. 그리고 그 영상이 좀 퍼져야 합니다."

"네? 왜요?"

"싸움이 시작된 이유를 사람들이 납득해야 하니까."

"아. 하긴. 싸우는 도중에 마약 중독자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하면 처음엔 왜 싸웠냐면서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겠네요. 이번 영상은 공개되는 게 훨씬 낫겠어요."

세 사람은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호텔은 옥상에 하늘 정원이 있었다.

스카이라운지의 점심밥은 당연히 물 건너갔다.

이선화의 로드 매니저 전동현이 샌드위치를 사 왔다. 편의점 샌드위치가 아니라 안에 든 게 많은 전문점 샌드위치였다. 커피도 같이 가져왔다.

전동현이 서정우에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내밀며 인사했다.

"형님! 점심 가져왔습니다!"

"아. 네. 고맙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이게 편합니다."

"예? 예!"

서정우와 이선화는 옥상 난간 앞에 서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고층 호텔이라 전망은 좋았다.

서정우가 말했다.

"오늘은 평화롭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그래도 전 좋아요. 약쟁이 잡고 여기서 이렇게 샌드위치 먹는 것도 좋은 추억이잖아요."

"스카이라운지는…."

"다음에 다시 오면 되죠."

이선화가 옆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박현아를 슬쩍 보며 말했다.

'다음엔 우리 둘이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 * *

인터넷에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었다.

<서정우 VS 제이슨 잭슨>제이슨 잭슨은 세계 랭킹 13위의 종합격투기 선수다.

세상에 종합격투기 대회가 한 종류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제이슨은 제일 유명한 대회에서 13위에 오른 상위 랭커다. 국내에도 그를 아는 사람이 꽤 있었다.

영상은 제이슨과 같이 있던 남자가 이선화에게 말하는 부분부터 시작됐다.

- 여기는 제이슨 잭슨입니다. 아시겠지만 종합격투기….

- 몰라요.

- 세계 랭킹 13위입니다만?

- 그래서요?

영상에서 이선화가 뒤쪽 사람들을 슬쩍 본 후에, 이쯤에서 끝내고 그냥 지나가자고 말했다. 거기까지는 말이 통하는 상황처럼 보였다.

그런데 제이슨 잭슨이 갑자기 이선화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고, 서정우가 그 손을 쳐내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곧바로 싸움이 시작됐다. 제이슨이 서정우에게 얻어맞고 나자빠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일어나서 덤볐다가 다시 나가떨어졌다.

서정우가 한 말이 영상에 잡혔다.

- 아아. 그거군.

그때부터는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난타로 바뀌었다. 제이슨이 저항하려고 로우킥을 날리고 주먹을 내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영상은 서정우가 제이슨 잭슨에게 열 번의 발차기를 모두 꽂아넣어 기절시킨 후에, 옆에 있던 남자에게 마약 공급책이냐고 묻는 부분에서 끝났다.

쌍둥이가 애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그 영상이 올라왔다. 곧바로 댓글이 폭발했다.

-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링에서도 통할 줄 알았다고!

- 정확히 말하면 링에서 싸운 건 아닙니다.

- 싸울 때 움직인 공간 봤습니까? 저런 공간에서 거리를 벌리는 것도 아니고 근접해서 쉭쉭 피하잖아요.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 실력이면 분명히 링에서도 통합니다.

- 그냥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씹어먹겠지요. 너무 일방적이라 제이슨 잭슨이 불쌍해 보이던데.

- 서정우를 옥타곤으로!

151. CF II

서정우와 제이슨 잭슨이 싸운 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는 마약 이야기도 있었다.

- 그런데 제이슨이 마약을 한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 서정우 형사가 저놈 잡으러 저 호텔에 간 건지도 몰라요.

- 그럴 리가 있습니까?

- 그냥 딱 보고 알았을 겁니다. '아아. 그거군.'

하고 말하는 거 보십시오. 그때 마약 중독 상태라는 걸 눈치챈 겁니다.

- 관심법이라도 익혔나?

다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 그런데 이선화하고 호텔에는 왜 갔을까요? 혹시 둘이….

- 박현아도 옆에 있는데요?

- 이선화의 소속사에서 공식발표가 나왔습니다. 저 호텔에서 지금 이선화가 CF 찍는 중이랍니다. 서정우 형사는 오늘 하루 휴가인데, 잠깐 시간을 내서 도와주러 들렀다고 합니다.

열애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서정우의 종합격투기 대회 진출에 더 관심을 보였다.

- 혼자서 국제 범죄조직을 전멸시킬 때 내가 알아봤습니다. 서정우를 링으로!

- 세계를 제패합시다!

* * *

사건 발생 30분 만에 백성민이 호텔에 도착했다.

서정우가 물었다.

"형이 왜 여기 있어?"

"야. 너 혼자 이 상황을 다 수습하려면 얼마나 바쁘겠냐. 팀장님이 가서 도와주라고 하시더라. 하여간 넌 쉬는 날까지…."

백성민이 옆에서 걸어오는 이선화를 발견하고 얼른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 백 형사님이시네요."

"네! 오늘도 후배를 도와주는 착한 선배. 바로 저 백성민…."

백성민의 고개가 그녀의 옆으로 휙 돌아갔다.

"앗! 박현아 씨! 팬입니다!"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서정우 형사님하고 아시는 분?"

"물론입니다. 제가 정우에게 수사 기법을 가르쳤…."

박현아는 경찰 사칭 사기꾼을 보는 눈빛으로 백성민을 쳐다보았다.

백성민이 즉시 말을 바꾸었다.

"다는 소문이 있는데, 오해입니다. 사무실에서 제 자리가 정우 바로 앞자리입니다.

"아아. 동료분이시구나."

"네. 한팀이지요. 하하하."

이선화와 박현아는 CF 촬영 때문에 이 호텔에 왔다. 그런데 지금은 경찰이 출동했다.

다른 장소라면 오늘 촬영을 접고 내일 다시 찍어도 되지만, 이 호텔의 시설은 내일 또 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선화가 나서서 형사들과 협상했다.

"우리가 피해자인데 CF까지 못 찍으면 손해가 너무 커요. 자세한 건 오늘 작업 끝나고 가서 말씀드릴게요. 어떻게 된 일인지는 영상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AKX 픽처스 사장 김성준까지 나서서 협조를 요청했다. 게다가 서정우도 이쪽 관할 경찰서의 형사들과는 얼굴을 꽤 마주친 사이다.

결국 CF 촬영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미 영상을 확보했기 때문에 무리해서 조사하지 않았다.

조명이 다시 켜지고 카메라가 돌아갔다. 이선화와 박현아가 촬영을 재개했다.

한쪽에서 백성민이 서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내가 진짜 좋은 생각이 났다."

"뭔데?"

"넌 이선화 씨하고 잘 되고 난 현아 씨하고 잘 되면, 나중에 부부동반으로 여행 가자."

"형."

"왜?"

"벌써 가족계획도 다 세웠어?"

"야.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그냥 예식장 정도만…."

"안 되는 거 알지?"

"난 뭐 꿈도 못 꾸냐."

* * *

서정우가 전에 산업스파이 조직과 테러리스트를 잡은 호텔의 지배인은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뭐? 서정우가 뭘 했다고? 마약? 하다 하다 이젠 약쟁이까지 잡냐!"

"그냥 약쟁이가 아닙니다. 호텔에서 마약에 취해 싸움을 걸던 종합격투기 선수를 잡았습니다. 그것도 세계 랭킹 13위를."

"설마 또 우리 호텔은 아니지?"

"아니죠. 그랬으면 벌써 형사들이 찾아오고 난리가 났겠죠."

지배인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이번엔 다른 호텔로 갔구나. 그래. 여기서 두 번이나 해먹었으면 이제 다른 데서 할 때도 됐지."

"그때 서 형사님이 아니었으면 우리 호텔은 더 큰 피해를…."

"알아. 안다고! 난 그냥, 어차피 일어날 일이면…."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런 마음…."

"너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냐?"

* * *

오후 촬영이 시작됐다.

CF 감독과 광고주의 최초 의도는, 이선화가 테러 현장에서 보여준 공중회전과 동급의 묘기를 몇 개 더 찍는 것이었다.

그건 계약 단계에서 이선화가 거부했다. 두 번째 동작부터는 훨씬 더 어려워서 하루 이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는 핑계를 댔다. 진짜 그런지는 이선화도 모른다. 일단 그런 핑계를 대고 거부했다.

광고주는 그녀가 그걸 다 배울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질 때 CF를 내보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CF는 결국 그녀가 이미 할 줄 아는 공중회전 하나에, 몇 개의 작은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따로 찍은 것을 이어붙여 보여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정우는 오전에 이선화가 연습했던 동작을 뜯어고쳤다.

이선화가 그 동작들을 시험했다. 공중회전의 세부 동작을 응용하면 되는 거라서 꽤 할 만했지만, 넘어지거나 떨어질 위험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서정우가 끼어들어 그녀를 부축했다.

서정우가 이선화에게 말했다.

"이젠 그냥 대놓고 몸을 던지는군요."

"실수해도 받아줄 사람이 있으니까요. 이런 걸 절대적 신뢰라고 하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하죠. 그러다 다칩니다."

옆에서 박현아가 그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백성민은 그런 박현아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우. 눈부셔. 역시 연예인의 미모는 눈이 부시구나.'

저녁때가 다 돼서 CF 촬영이 끝났다.

이제 오늘 찍은 영상을 기본으로 효과도 넣고 편집도 해야 한다. 만약 추가 촬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부분만 다른 장소에서 다시 찍기로 했다.

호텔에서 촬영을 위해 제공한 장소를 나오며 이선화가 말했다.

"우리 이제 저녁 진짜 맛있는 데로 가서 먹어요. 제가 살게요."

"그러고 싶지만, 일단 경찰서에 가서 오늘 사건 진술부터 해야지요. 경찰서 앞에 맛이 괜찮은 설렁탕 집이 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설렁탕은 좀 그렇잖아요. 범인이 된 것 같아서. 그냥 이 호텔에서 먹…."

그들을 밖으로 안내하던 호텔 보안요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여, 여기서 드실…."

"어머. 그러다 또 사건 생기면 이 호텔에서도 미움받겠다."

"아, 아닙니다. 하하."

박현아가 말했다.

"전 설렁탕도 좋아하는데…."

그녀도 같이 경찰서에 가서 진술해야 한다.

이선화가 얼른 말했다.

"설렁탕 나도 좋아해요. 코로 먹는 건 싫지만. 그럼 거기로 가요."

경찰서 앞에 기자들이 있어서 설렁탕은 먹지 못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서정우가 올 때마다 비워주던 회의실이 오늘도 그에게 제공됐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 경찰서에서 만나던 형사들 외에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계 형사였다.

그 형사가 상황을 설명했다.

"제이슨 잭슨은 마약을 미국에서 가지고 들어온 게 아닙니다. 국내에서 손에 넣었습니다."

"공급책이 있겠군요."

"저희가 수사하는 마약 밀거래 조직이 있는데, 놈들이 워낙 은밀히 움직여서 아직 정확한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이슨 잭슨이 바로 그 조직을 통해서 약을 입수했습니다. 같이 있던 놈이 다 불었습니다."

"잘됐네요. 싹 다 잡으면 되니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조직은 본체가 드러나지 않은 데다가, 쉽게 손대기 어려운 고객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요?"

"그 고객 중에는 다선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가진 증거는 오늘 잡은 놈의 자백밖에 없습니다. "다선이라는 말에 서정우가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이홍국도 4선인데?'

"그 국회의원 이름이…."

"이름이 새어나가면 전 무인도 파출소로 발령 날 겁니다. 권력이 강한 국회의원이라서."

무인도에는 파출소가 없다. 당연히 과장된 말이지만, 거기 담긴 의미는 확실히 이해했다.

서정우가 속으로 혀를 찼다.

'여기도 저기보다 덜한 것뿐이지, 힘이 있으면 죄가 있어도 잡히지 않는 건 마찬가지네.'

형사가 단서를 달았다.

"물론 확실한 증거만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지간한 증거로는 안 되고, 아주 확실한 물증이 필요합니다."

형사는 서정우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에 말을 꺼냈지만, 그는 거기까지 끼어들 생각이 없다.

'마약 수사 전문가들인데 알아서 잘하겠지.'

"네. 꼭 성공하십시오."

"같이…."

"저도 그놈을 오늘 처음 본 거라서,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

"그건 알지만…."

"그런데 그 마약조직의 고객이라는 국회의원 말입니다. 혹시 4선입니까?"

형사가 눈을 반짝였다.

"뭔가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다선이라길래 그냥 물어본 겁니다."

'4선 맞네.'

마약계 형사가 나가고 잠시 휴식시간이 생겼다. 전에 커피와 케이크를 갖다 준 여자 경찰이 이번에도 같은 것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녀는 이번에는 커피가 담긴 컵을 탁자 위에 툭 놓았다.

서정우가 커피를 받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선화 씨나 박현아 씨는 어디 계십니까?"

"다른 회의실에서 진술하고 계세요. 그런데요."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진짜 이선화 씨하고 사귀세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두 분 열애설 기사가 또 떴는데요."

"아닙니다. 그냥 CF 촬영하는 곳에 잠깐 들렀다가 휘말린 겁니다. 제작사인 김성준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서요."

"어머. 아니구나. 아닐 줄 알았어요."

그녀가 방긋 웃으며 케이크는 살포시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밤새도록 진술할 필요는 없었다. 세 사람은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오늘 일은 서장우가 이 경찰서에 와야 했던 이전 사건들보다는 작았다. 기자들이 찾아온 이유 중에는 이선화도 있었다.

그 기자들은 이선화와 박현아가 처리했다.

이선화가 말했다.

"기자님. 영상 보셨으면 알겠네요. 그놈, 어머, 죄송해요. 제가 화가 좀 나서. 제이슨 잭슨이 먼저 제 얼굴을 잡으려고 했고, 우리한테 주먹도 휘둘렀어요. 세계 랭킹 13위라면서요? 그 주먹에 맞았으면 전 죽었을 거예요."

박현아도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버릴 생각은 없다. 그녀는 싸울 때 한 일이 거의 없어서 말할 게 별로 없지만, 현장에 같이 있었으니 숟가락 정도는 얹을 수 있다.

"맞아요. 이선화 씨 다음에는 제 차례였을 거예요."

두 사람은 기자들을 적당히 상대하고 빠져나왔다. 이 경찰서에 오는 기자들은 이제 서정우 인터뷰는 포기했다. 그들은 두 사람을 인터뷰한 것으로 만족했다.

세 사람은 밤이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경찰서 근처 설렁탕 집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기자들은 이미 보낸 후였다.

남자가 서정우에게 인사한 후에 명함을 내밀었다.

"서정우 선수. 우리와 함께 세계를 제패하러 가시죠."

서정우가 명함을 확인했다. 스포츠 전문 에이전트 회사였다.

"세계 제패 많이 하세요. 우리는 식사 중이니까 그만 가시고."

"서정우 선수. 이건 진짜 기회입니다. 믿고 맡겨주시면 반드시 세계 최강의 종합격투기 선수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난 선수가 아니라 경찰이고, 여기서 더 세지면 상대 선수가 죽어요. 그러니까 가시라고요."

"그러지 마시고 같이 이야기를…."

서정우가 명함을 다시 확인했다.

"이 회사는 죄지은 거 없나 모르겠네. 좀 파볼까 보다."

서정우가 다른 관할구역의 회사를 괜히 조사할 리는 없지만,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서정우가 관할구역 밖에서 해결한 사건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조용히 가게를 빠져나갔다.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이 회사에 뭔가 큰 건수가 있긴 있나 보네. 마당발인 성민이 형한테 넘겨줘야겠다. 그럼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겠지."

박현아가 물었다.

"왜 거절하신 거예요? 종합격투기 선수로 유명해지면 돈 진짜 많이 번다던데."

"제가 배가 불러서요."

"네?"

152. 단검 II

서정우는 배가 불러서 격투기를 안 한다고 둘러댔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물도 찾으러 다녀야 하는데 국제적으로 얼굴 팔려서 좋을 게 없지. 종합격투기라고 해서 도핑 테스트가 없는 건 아닐 테고. 올림픽하고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그런 걸 뭐하러 일부러 받아.'

세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선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김경희가 집에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지금 노래가 나와?"

"조용조용 말해. 교양있게."

"이년이! 우리가 언제 교양이 있었다고!"

"나 이선화야. 밖에선 있는 척하고 다녀."

"전화는 왜 안 받는데!"

"하도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서 꺼놨지."

김경희가 이선화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래도 멀쩡해 보이네.'

"어디 안 다쳤지?"

"너도 동영상 봤지? 정우 씨하고 같이 있는데 내가 다칠 리가 있어?"

"아주 대단한 남친 나셨다."

"히히."

"아. 남친 아니지. 네가 일방적으로 까이는 중이지."

"야!"

"서 형사님은 격투기 선수가 되라는 제안을 왜 거절했대?"

이선화는 살짝 놀랐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설렁탕 먹었지? 거기서 밥 먹던 손님이 그 상황을 인터넷에 올렸어."

"사진은 못 찍었을 텐데? 정우 씨가 카메라 싫어해서."

"정황만 올렸지. 봐봐."

이선화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 * *

똑같은 글을 포캣츠 네 명과 남수정도 보고 있다.

- 서정우는 그 제안을 정말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 안돼!!!

- 세계 제패가!!!

업계 관계자가 다른 글을 올렸다.

- 제가 스포츠 매니지먼트 업계에 있는데, 이 바닥은 전부터 서정우 형사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살인마도 잘 잡고 테러리스트까지 잡는 스타 형사라 그동안은 접근하지 못했지만, 누군가 총대를 매고 먼저 스타트를 끊었으니까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 다른 곳에서도 서정우에게 제안이 들어갈 거란 말인가요?

- 이미 여러 업체가 접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압니다.

새로운 글이 또 올라왔다.

- 세계 랭킹 9위 토머스 포드가 SNS로 서정우가 도전하면 언제든지 상대해준다고 밝혔습니다.

- 가자! 가서 이기고 9위로 올라가자!

그런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 프로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려면, 서정우 형사는 경찰을 그만둬야 할 텐데요? 그러면 이제 살인마는 못 잡는 거 아닙니까? 테러리스트도?

- 어? 그건 좀 곤란한데요.

쌍둥이 박다연이 말했다.

"격투기는 몰래 하지는 못할 듯."

서정우가 디멘션이라는 건 관련 업무를 전부 ES 엔터테인먼트에 대행시키는 방법으로 숨기고 있지만, 카메라 앞에서 직접 싸워야 하는 격투기는 그럴 수가 없다.

남수정이 물었다.

"우리 아저씨가 몰래 하는 게 있어? 뭔데?"

남수정은 서정우가 디멘션이라는 걸 모른다. 박다연이 급히 손을 흔들었다.

"어?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너 수상해!"

* * *

서정우는 그날 밤에 푹 자고 이튿날 경찰서로 출근했다.

어제 제이슨 젝슨과 싸우긴 했지만 그건 저쪽에서 백상어 클랜과 총격전을 벌인 것에 비하면 사소한 싸움이다. 양쪽 세계에서 하루씩, 이틀 동안 잘 쉬었더니 정신적 피로까지 모두 풀렸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서정우가 옥상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단검을 찾다가 투덜댔다.

"젠장. 어렵네."

백성민이 옥상에 올라왔다가 서정우가 투덜대는 걸 걸 보고 물었다.

"왜? 뭔데? 너한테도 어려운 일이 있냐?"

"골동품을 하나 찾고 있는데, 쉽지 않아."

"왜? 장물이야? 누가 훔쳐갔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좀 알아보는 거야."

백성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또 사건 냄새가 나는데?"

"이번엔 진짜 아니라니까."

서정우가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오래된 단검하고 똑같은 걸 찾는 거야. 개인적인 관심으로 찾는 거라서 사건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딱 봐도 골동품 맞네. 그럼 우리는 전문이 아니지. 진짜 전문가에게 맡겨."

"응?"

"전에 사리 도난사건 때 김중득하고 소상현이 잡혔잖아."

"그랬지."

서정우가 철가면을 쓰고 잡았다. 그 사리는 지금 저쪽 이선화의 목걸이에 들어 있다.

"소상현 주소지가 여기라서 그쪽 관할서에 자료 보내주다가 알게 된 직원이 있는데, 그쪽에서도 유물 전문가에게 자문을 얻었다고 하더라."

유물이라는 말을 듣고 서정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유물 전문가?"

"어.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그쪽 수사에 협조해준 전문가니까, 같은 경찰인 우리가 부탁하면 이 정도는 도와주겠지."

"그 유물 전문가 연락처 좀 알아봐 줘."

백성민이 실실 웃었다.

"역시 넌 내 도움이 꼭 있어야 한다니까. 이걸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네."

"형. 연락처."

"전화 거는 중이다."

백성민이 일부러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 윤 경장님. 저 백성민입니다. 하하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 아. 네.

상대의 반응이 좀 딱딱했다.

"뭐 좀 여쭤보려고요. 저번에 김중득 문화재 유출 사건 수사할 때 자문을 얻은 교수님 말입니다.

- 우리 삼촌이요?

"아. 삼촌이십니까? 그분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제가 아니라 정우가 골동품에 대해 여쭤볼 게 있다고…."

상대의 목소리 톤이 확 바뀌었다.

- 네? 서정우 형사님이요? 아. 이거 스피커폰이죠? 같이 계신가요?

"네. 지금 옆에…."

- 어머! 안녕하세요? 윤송아예요!

서정우가 말했다.

"아. 예. 서정우입니다."

- 저 팬이에요!

"네? 아니. 왜 같은 경찰끼리…."

- 경찰은 뭐 팬 못 하나요? 호호.

"그 교수님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유물 관련해서 좀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럽니다."

- 그럼요. 바로 보내드릴게요. 삼촌은 언제 만날 건가요? 오늘 저녁이라면 저도….

"지금 뵈었으면 하는데요."

- 아. 그럼 제가 외근을….

옆에서 누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굉장히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 못 나가겠네요. 여기 사건 터져서요. 연락처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통화가 끝난 후에 백성민이 툴툴댔다.

"하여간 네 이름만 나오면 썸이고 뭐고 다 날아간다니까."

"형하고 썸 타는 사이야?"

"썸 타고 싶은 사이지."

"그럼 아무 사이도 아니네."

"야. 뼈 때리지 마라."

"어제는 박현아 씨하고 결혼계획까지 세우더니?"

"야. 나 지금 명치 맞은 것 같아."

* * *

윤현중은 유물에 조예가 깊은 교수다.

서정우가 윤현중을 찾아가 인사했다. 윤현중은 굉장히 반가워했다.

"이거 송아 덕분에 유명한 분을 만나네요. 사실 저도 꿈이 경찰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쪽 길로 왔습니다만."

"아. 예."

"그래. 무슨 일로?"

서정우가 단검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칼에 대해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흐음. 흥미롭군요. 일단 큰 화면으로 봅시다.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시죠."

서정우가 사진을 전송했다. 한 장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 여러 장을 보냈다.

윤현중이 커다란 모니터에 사진을 띄웠다.

그가 사진을 넘겨보며 물었다.

"음. 이 칼을 서 형사님이 가지고 계신 겁니까?"

"아니요. 사진만 있습니다."

그 단검은 저쪽 세계에 두고 왔다. 이쪽 세계에는 사진뿐이다. 그는 몇 장의 사진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확대도 하면서 설명했다.

"모조품이 아니라면,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칼입니다. 사진만 보면 진품인 것 같지만, 그거야 직접 보기 전에는 확신하지 못하지요. 일단 무사가 전쟁터에서 쓰는 무기는 아닙니다. 다른 용도로 쓰였습니다."

"다른 용도라니요?"

"이건 일종의 은장도입니다. 새겨진 글씨로 추측해 보면,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려고 만든 게 아닐까 합니다."

"칼날은 제대로 살아있는데요?"

"진짜 칼이니까요. 맥가이버칼도 칼날은 진짜잖습니까."

"이 칼이 지금 어디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찾아봐야지요. 칼에 글씨가 새겨져 있으니까, 시장에 나와 있거나 박물관에 있으면 찾기 어렵진 않을 겁니다. 개인 소장가에게 이미 팔린 칼이면 좀 오래 걸리고, 나온 적이 없다면 찾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윤현중이 침을 꼴깍 삼켰다.

"혹시 이 칼이 연쇄살인마나 테러리스트를 잡는 단서…."

"아니요. 개인적인 관심으로 찾는 겁니다."

윤현중이 전화를 몇 군데 돌리고, 사진도 여기저기 보냈다.

"거기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윤현중이 전화를 끊고 나서 활짝 웃었다.

"찾았습니다. 인사동에 있다는군요."

* * *

서정우는 인사동의 골동품 상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골동품을 취급했는데 그중에는 무기 종류도 있었다. 서정우가 보기에 상태가 꽤 좋아 보이는 칼도 많았다.

서정우가 단검 사진을 보여주었다.

골동품 상점 주인 이연석이 말했다.

"이 칼은 우리 가게에서 삼 년이나 보관한 것이라서 살인 사건의 흉기로 쓰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사람을 찌르려면 요즘은 다른 좋은 칼이 많습니다."

"살인 사건이라니요?"

"어? 아닙니까? 사실 윤 교수님이 오실 줄 알았는데 서 형사님이 오셔서 좀 놀랐습니다. 살인마 잘 잡기로 유명한 분이시잖습니까?"

옆에서 점원이 덧붙였다.

"테러리스트도 잘 잡으시죠."

이연석이 말했다.

"그래서 살인 사건 때문에 오신 줄 알았습니다."

서정우가 물었다.

"이 칼의 유래를 알 수 있습니까?"

사장 이연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가게에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칼이 여러 자루 있습니다. 그중에는 이 단검처럼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그 모든 칼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는지 다 알아내는 건 어렵습니다."

서정우는 이 칼에 담긴 사연이 평범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굴러다니던 칼이 갑자기 성물로 변하지는 않는다.

"제가 이 칼을 사고 싶습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이연석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이 칼은 팔렸습니다."

서정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누가 이 칼의 가치를 알고 있나? 아니면 그냥 손님?'

"누가 샀습니까?"

이연석은 표정우의 표정이 살짝 굳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건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이미 팔렸다고 대답하면 표정이 굳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글쎄요. 이게 손님 신분증 보고 파는 일은 아니라서."

"언제 팔렸습니까?"

"30분 전에…."

서정우가 눈썹을 찌푸렸다.

"3년이나 보관된 칼이 하필 제가 오기 30분 전에 팔려요?"

"그…. 우연치고는 참 공교롭지만, 3년이나 안 팔린 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안 팔 수도 없어서."

서정우가 생각했다.

'3년과 30분. 우연일 리가 없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윤 교수님은 여기저기 연락해서 이 칼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냈어. 그때 사진을 같이 돌렸지. 그 연락을 받은 사람 중에, 사진을 보고 이 칼이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낸 사람이 있다면?'

윤현중은 유물 전문가다.

'윤 교수님이 급하게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돌려서 서둘러 찾는 조선 시대 단검.'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누군가 이 칼이 보물이라는 걸 눈치챘네. 그래서 빼돌렸어.'

서정우가 이연석에게 명함을 주며 말했다.

"사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연락 주십시오."

"아. 예. 그런데…. 그 칼은 도대체 왜…."

"살인 사건은 아닙니다."

* * *

서정우는 윤현중 교수를 도로 찾아갔다.

윤현중은 이미 이연석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미안해했다.

"허. 이런. 그 사람들 중에 그런 나쁜 놈이 있을 줄이야."

"누가 그랬는지 찾고 싶은데, 연락을 돌리신 곳 명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윤현중이 눈을 빛냈다.

"역시 살인 사건이…."

서정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훔쳐간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샀다는데 사건이랄 게 있겠습니까? 만나서 설득하려고요."

"연락을 다섯 곳에 돌렸는데, 다섯 명 다 만나실 겁니까?"

단검을 사간 사람이 새치기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리 없다.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 한 명만 찾아가 볼까 합니다."

"서정우 형사님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으시겠지요. 어떤 방법을 쓰실 건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수사 기법은 비밀이라서…."

* * *

서정우는 명단을 받고 대학교를 나왔다.

'오후에 저쪽으로 넘어가서 이 명단을 확인해야겠다. 뭔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 외에도 가서 해야 할 일이 꽤 많았다.

'저쪽에 가면 또 바쁘겠네.'

서정우는 경찰서로 돌아왔다.

백성민이 다가왔다.

"야. 칼 찾으러 간 그거, 문제 생겼다며?"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송아 씨가 전화했더라. 미안하다고."

"윤 교수님 조카?"

"어. 네 번호 몰라서 나한테 전화한다던데? 내가 대신 전해준다고 했지."

"별거 아니야. 그냥 개인적으로 찾는 게 있었는데, 누가 먼저 사 갔어. 그게 다야."

"네가 노린걸? 왜? 사건이냐? 사건이구나?"

옆에 있던 조민석도 얼른 달라붙었다.

"사건! 정우가 꽂힌 사건! 우리가 하자!"

서정우는 살짝 당황했다.

"이 형들이 왜 이래? 아직 누구 짓인지도 몰라. 돈 주고 샀다는데 그걸로 체포할 수도 없고."

백성민이 볼펜 몇 개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어디 보자…. 으으으. 난다. 난다. 사건 냄새가 난다."

서정우는 새삼 궁금해졌다.

'이 형 진짜 저쪽에서는 무당으로 각성한 거 아냐?'

153. 견적

서정우는 그날 오후에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평행차원으로 이동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공간 분석 스킬로 주변부터 확인했다.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딱히 걸리는 건 없었다.

"그래. 여기라고 매일 전쟁이 터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저쪽에서 산 식료품과 전자제품이 들어 있는 가방을 고쳐맸다.

"집에나 가자."

* * *

미사리 근처에서 백상어 클랜원들이 영화사 관계자와 영화배우들을 습격했다가 오히려 전멸당했다. 영화감독은 그때 오디션 테스트용 카메라에 찍힌 동영상을 정당방위의 증거로 제출했다.

그 영상의 복사본이 서울지방경찰청 각성자 수사대 2과로 넘어왔다.

2과장 권병철이 치열했던 전투 영상을 보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선화가 각성자였어?"

형사가 물었다.

"이선화를 잘 아십니까?"

"내가 아니라 우리 애들이 팬이야. 애들이."

"저도 영상 보고 당연히 각성자인 줄 알고 확인해봤는데 등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각성자가 아니라 그냥 잘 싸우는 거랍니다."

"그냥 잘 싸워? 영상 앞으로 당겨봐. 이선화가 총 쏘는 부분."

화면에 이선화가 사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니까 이게 비각성자의 사격이라고?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백상어 클랜 놈들을 잡았는데? 이선화가 몇 놈 잡았지?"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세 놈 반입니다. 한 놈은 어깨를 맞아서 반으로 쳤습니다."

권병철이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다.

"넌 그게 가능하다고 보냐?"

"되던데요. 영상을 보면 이선화의 움직임은 전투 스킬 각성자보다 확실히 느립니다. 타이밍은 진짜 기가 막히게 잡지만."

권병철이 화면을 보면서 머리를 긁었다.

"그러고 보니 진짜 그러네. 움직임은 훈련으로 커버 되는 수준이야. 하긴. 이선화가 전투 스킬 각성자라면 이미 영화계를 씹어먹었겠지. 조연만 하는 걸 보면 각성자가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다른 형사가 말했다.

"스승이 좋았나 보죠."

"스승?"

"제가 영화사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이 영상에는 안 나왔지만, 전투 중간에 이선화가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적의 뒤를 쳤습니다. 백상어 클랜 행동대 놈들은 대부분 그 사람에게 당했습니다."

"아아. 저 부분에서?"

카메라가 이선화 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에는 누군가 연발로 총을 발사하는 소리와 비명만 들어 있었다. 어떻게 싸웠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쳤대?"

"하늘에서 다 갈겨버렸다는데요?"

권병철은 깜짝 놀랐다.

"비행 스킬 각성자야? 그거 진짜 희귀하지 않나? 우리나라에 다섯 명도 안 될 텐데?"

"그건 아닙니다. 스키 점프대처럼 기울어져 있던 나무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높이 점프한 다음에, 공중에서 총을 밑으로 갈기면서 아래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것도 연발 쌍권총으로요."

"공중 사격이라…. 사격 스킬 각성자겠군."

"예. 방금 사격 소리가 1초쯤 끊어진 부분이 있었잖습니까? 그때 탄창을 교환하고 다시 사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쌍권총인데 1초 만에 탄창 교환이라니. 손이 네 개라도 되나?"

"아마 스킬 레벨과 숙련도가 장난 아닐 겁니다."

권병철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영상의 그 부분을 다시 돌렸다.

화면은 이선화를 찍고 있지만, 그녀는 지금 총을 쏘지 않고 앞을 보고 있었다. 대신에 연발로 갈겨대는 총소리가 들렸다.

"고레벨 사격 스킬 각성자라…. 그래서 누구야?"

"그게…."

권병철이 인상을 썼다.

"신원조회 안 해봤어? 그건 기본이잖아."

"해봤습니다. 그런데… 정보에 락이 걸려있었습니다."

권병철이 의자에서 등을 뗐다.

"어? 뭐?"

"기본 정보는 조회됐는데, 상세 정보는 우리 쪽 권한으로는 확인이 안 됩니다."

"락을 어디서 걸었는데?"

"국방부하고 게이트 관리처입니다."

권병철은 당황했다.

"뭐? 두 군데야?"

"예. 이중 락입니다."

권병철이 심각한 얼굴로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이중 락이라…. 그래서 조회되는 정보가 어디까지야?"

"일반 관공서에서는 어디 사는지 정도만 조회가 가능할 겁니다."

그 정도는 조회할 수 있어야 세금도 받아내고 우편물도 배달할 수 있다.

"우리 권한으로 조회되는 건 거기에 추가로 각성 스킬이 뭔지 정도입니다."

"겨우?"

"우리가 각성자 수사대라서 그나마라도 조회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정체가 더 궁금해지는데? 국방부나 게이트 관리처 중 한 곳과 잘 협조해서 락 하나 풀면?"

"등급 낮은 정보는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나도 못 볼 수도 있고요. 이중 락인데 하나 풀었다고 다 보일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풀어주겠습니까?"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긴 한데…. 술 한잔 마셔야겠네. 어쨌든 고레벨 사격 스킬 각성자인데 이중 락이 걸렸단 말이지?"

형사가 말했다.

"거기다 감지 스킬까지 있던데요."

"어? 감지까지?"

"예. 이 사람. 더블입니다."

권병철이 인상을 구겼다.

"더블? 제기랄."

"네?"

"감지와 사격이면 전창수하고 똑같은 스킬 조합이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주소 어디야? 직접 만나서 어떤 인간인지 얼굴이라도 봐야겠다."

* * *

서정우가 윤현중 교수에게 받은 연락처 명단을 서소라에게 내밀었다.

"이 사람들 신상 정보 조회 좀 해줘."

"잠깐 출근해서 확인할게요. 무슨 일인데요?"

서정우가 성물 단검을 흔들었다.

"저쪽에서 이 단검을 찾긴 찾았는데, 새치기한 사람이 있어. 누군지 찾아야지."

그날 오후에 권병철이 서정우를 찾아왔다.

권병철이 명함을 내밀었다.

"서정우 씨? 반갑습니다. 각성자 수사대의 권병철입니다."

서정우가 활짝 웃었다.

"그러게요. 정말 반갑네요."

그는 아까 저쪽 세계에서 강력2팀장 권병철을 보고 왔지만, 이쪽에서 만난 권병철도 반가웠다.

권병철은 살짝 당황했다.

'뭐지? 날 왜 이렇게 반가워하지?'

이쪽 세계에서는 경찰이 갑자기 찾아오면 보통은 살짝 경계한다. 각성자 수사대 과장이 직접 찾아왔으면 더 경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서정우는 굉장히 반가워했다. 이건 권병철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좋게 나오니 질문하기 좋군.'

"미사리 사건 때문에 서정우 씨의 신원조회를 했습니다. 아. 이건 통상적인 수사 절차입니다. 정당방위라는 건 확인했으니까요. 그런데…."

권병철의 눈빛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신원조회를 했더니 정보에 락이 걸려있더군요."

"그러게요. 제대한 지 한참 됐는데 풀어주지를 않네요."

"제대요?"

"옛날에 각성자 특수부대에 있었습니다."

"아아."

권병철은 이해하는 척만 했다. 각성자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정보 조회 제한이 걸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제한을 건 곳은 한군데 더 있다.

"그럼 게이트 관리처의 락은?"

"거기는 국방부에서 거니까 그냥 같이 걸었나 본데, 풀어달라고 압력 좀 넣어주시죠? 어차피 별 내용 없을 텐데."

"그건 우리가 요청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 그런데 더블이시라고?"

"그래도 그건 조회가 되나 봅니다?"

"그것밖에 조회가 안 되는 게 흔한 일은 아닙니다."

"감지와 사격 스킬을 각성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훈련소 첫날에 각성자 특수부대에 끌려갔죠."

"그래도 훈련소에서 기본 훈련은 받아야 할 텐데…."

"그리고 그날 바로 여의도 방어 전투에 투입됐고요."

"어?"

권병철은 살짝 당황했다.

"그 전투 참전자시군요."

권병철은 여의도 방어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고 처참했는지 잘 안다.

여의도 방어 전투에는 무장 경찰도 동원됐다. 권병철도 그 전투에 참전했다.

무장 경찰은 여의도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권병철은 한강 남쪽에서 여의도를 벗어난 몬스터들과 싸웠다. 여의도 밖에 방어선을 치고 군대와 함께 싸웠는데도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그만큼 전투는 위험하고 치열했다.

그렇게 싸우다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면, 여의도 쪽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여의도에 들어가서 싸운다는 뜻이었다.

여의도 방어 전투는 결국 인간이 패배했다. 권병철은 여의도의 금색 고층빌딩이 드레이크의 공습으로 무너지는 걸 직접 보았다.

한국이 몬스터에게 점령된 여의도를 되찾은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권병철이 잠시 옛날 생각을 했다.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여의도를 되찾는데 각성자 특수부대가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그때도 거기 계셨겠군요."

"제가 제대하기 전이니까요."

"혹시 제대할 때 계급이…."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예? 간부가 아니라 사병이었습니까?"

"당연하죠."

권병철은 정보의 아귀가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병에게 왜 국방부가 락을 걸지? 게이트 관리처는 왜?'

고등학생 정현수가 지나가다가 서정우를 발견했다. 정현수가 손을 흔들었다.

"형!"

"어. 내가 지금 손님하고 이야기 중이다."

"형 보러 온 거 아니에요. 선화 누나 보러 가요. 형네 집에 있죠?"

권병철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뭐? 이선화가 왜 당신이랑 한집에 있어!"

성은 듣지 않아도 정현수가 이선화를 말한다는 건 알 수 있다. 아까 보고 온 영상에 이선화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과장님. 왜 흥분을 하십니까?"

"험험. 어째서 한집에 있습니까?"

"선화가 동생하고 친해서 놀러 왔습니다."

"아. 서소라 씨."

"저에 대해 많이 알아보셨나 보네요."

"미사리 사건이 더 큰 사건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신원조회를 좀 했습니다. 통상적인 수사 절차입니다."

"그럼 하셔야죠."

서정우에 대한 정보는 조회 제한이 이중으로 걸려있다. 경찰이 신원조회를 해도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서소라에게는 정보 조회 제한이 걸려있지 않지만, 그녀는 백상어 클랜과 싸울 때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정우가 물었다.

"그런데 이런 거 물어보려고 오신 건 아닐 텐데."

권병철이 여기 온 건, 서정우가 손을 잡을 만한 견적이 나오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미사리에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백상어 클랜과 싸운 능력자. 그것만 보면 손을 잡을 여지가 있는데….'

그런데 만나보니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가 없네. 역시 민상이하고 술 한잔 마셔야겠어.'

권병철이 웃었다.

"오늘은 인사나 하러 들렀습니다. 하하하."

권병철은 돌아가는 경찰차에서 말했다.

"미사리와 백상어 본부는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전혀 안 맞는데…. 감지 사격 스킬 더블 각성자가 텔레포트까지 각성할 수 있나?"

운전하던 형사가 말했다.

"가능이야 하지만, 그런 조합은 진짜 희귀할 텐데요? 일단 국내에서는 못 들어봤습니다."

"그렇게 가정하면 상황이 쉽게 설명되는데, 가능성이 너무 낮지? 그래서 골치 아프다."

"과장님. 서정우를 만나보니까 어떠십니까?"

"이중 락이 걸린 사람이 이상하게 나하고 친한 것처럼 굴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백상어 클랜 본부까지 서정우가 쳤다면 내가 감당할 견적이 아니야. 너 일단 서정우에 대한 건 비밀로 해라."

"저 입 무거운 거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면서 왜 비밀로 합니까?"

"감지 사격 더블인 건 확실하잖아. 그 둘은 시너지가 참 좋아. 그래서 상대하기 어렵지. 저격도 안 통하는 데다가, 습격하려고 하면 총을 쏘기도 전에 눈치채고 사라지거나 역습하니까. 그래서 전창수를 제거할 수 없었잖아. 그놈 때문에 얼마나 골치 아팠냐?"

"그건 그렇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우리 쪽에 있으면, 이렇게 든든한 게 또 없어."

"그럼 서정우가 우리 편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정체가 뭔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말이야. 지금 편의를 좀 봐주면."

권병철이 슬쩍 웃었다.

"혹시 아냐? 나중에 우리를 도와줄지."

* * *

서정우가 집으로 돌아갔다.

정현수는 이선화가 챙겨준 간식을 부지런히 먹고 있었다.

"와. 진짜 맛있어요. 수정이도 이 집에서 지낼 때 이런 거 많이 먹었어요?"

이선화가 생색을 냈다.

"아니. 너한테만 특별히 챙겨주는 거야. 이거 진짜 밀가루로 만든 귀한 거야. 합성 과자가 아니야."

"와. 고맙습니다!"

"많이 먹어. 그런데."

이선화가 서정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오빠는 누굴 만난 거야?"

서정우가 소파에 털썩 앉은 후에 과자에 손을 내밀었다. 정현수가 과자 접시를 슬쩍 자기 쪽으로 당겼다.

"형. 이건 누나가 저한테 준 건데요."

"안 먹는다. 안 먹는다고."

서정우가 이선화의 질문에 대답했다.

"각성자 수사대 권병철 과장."

"어디까지 눈치채고 온 거야?"

"미사리 쪽 일 때문에 온 거야. 백상어 클랜 본부 쪽은 단서가 없나 봐."

"그래도 계속 조사하면 그것까지 알아내는 거 아냐?"

"괜찮아. 아주 친근하게 대하고 말도 좋게좋게 잘해서 보냈어."

"그러면 돼?"

서정우가 씩 웃었다.

그는 저쪽 세계 권병철의 성격은 어느 정도 안다. 거기에 이쪽 세계의 위험한 상황을 더하고, 이쪽 경찰의 방식까지 추가해 결론을 냈다.

"아주 좋게 보냈으니까, 뭔가 눈치채도 그게 어쩔 수 없는 증거만 아니면 눈감아줄 거야. 물론."

경찰과 그런 거래를 할 때는 공짜가 없다.

"나중에 눈감아준 빚은 갚아야겠지만."

서정우가 성물 단검을 상자에 넣고 일어섰다.

이선화가 물었다.

"그거 가지고 어디 가게?"

"만날 사람이 있어서."

154. 이중 제한

박철우는 요즘은 최전선에서 잠시 물러나 서정우가 부탁한 곡 매입 작업을 하며 지낸다.

저쪽 세계로 가져갈 곡을 매입하려면 먼저 선별부터 하고, 직접 만나 곡의 작곡 시기 등도 확인해야 한다. 그런 후에 가격을 협상한다. 저쪽 상황에 맞춰 악보를 손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박철우는 그 일을 꽤 즐기면서 했다. 그동안 전쟁터에서 구르느라 못 만난 사람들도 만나면서 즐겁게 지냈다.

박철우는 옷을 잘 차려입고 카페에 앉아 있었다. 카페에서는 합성 커피보다 차가 잘 팔렸다.

서정우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생각했다.

'이 아저씨는 이제 좀 행복해져야지.'

박철우가 다리를 꼬고 앉은 채로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우 왔냐."

"되게 좋아 보이네."

"그래?"

"이제 사람처럼 보이잖아."

"우리 딸들이 거지처럼 하고 다니지 말라더라. 아. 꿈에서."

"그 꿈 자주 꿔?"

"아니. 딱 두 번 꿔봤다. 두 번째 꿈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진짜 현실 같아서 너무 좋았지."

박철우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건 내 느낌인데 그냥 꿈은 아닌 것 같다. 꿈이라면 깨고 나서 기억이 흐려져야 하는데, 이건 실제로 겪은 것처럼 진짜 선명하거든.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세상이니까, 특별한 꿈도 있을 수 있겠지."

"그래서 걱정돼?"

"아니. 정말 좋지. 또 꾸고 싶다."

서정우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

"나 주는 선물이냐?"

"아니. 빌려주는 거야."

박철우가 상자를 열었다.

"음? 단검이네? 그런데 디자인이 컴뱃 나이프는 아니고…. 골동품이냐?"

"그거 은장도야."

"은장도가 왜 이렇게 커? 이건 작은 단검 수준인데?"

"원래 큰 것도 있대."

"이걸 왜 주는 거야?"

"당분간만 빌려주는 거라니까. 항상 가지고 다녀."

박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은장도를? 내가?"

"장식이라고 생각해."

"내 이미지하고 은장도하고 어디가 어울리냐?"

"생각해서 빌려주는 거니까 그냥 좀 가지고 있어."

박철우가 칼을 잡았다.

"알았다. 칼집은?"

"없어. 나무라도 깎아서 칼집으로 쓰던가. 아. 꼭 우리 세계의 나무를 써. 몬스터 잡고 나온 거 쓰지 말고. 가죽도 몬스터 가죽은 안돼."

박철우가 씩 웃었다.

"자꾸 떠넘기려고 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거 아이템이구나? 야. 뭘 이렇게 좋은 걸 다 주고 그래?"

아이템과 성물은 격이 다르다.

"빌려주는 거라니까 자꾸 가지려고 드네?"

"표 많이 났냐?"

"됐고. 그걸로 밤 같은 거 깎거나 몬스터 찌르지 마. 잘 관리해."

"알았다. 그런데 이거 가지고 다니면 혹시 몸에 좋냐?"

"특정 상황에서는 몸을 보호해주기는 하지만…."

성물에는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다. 신성한 힘은 저주를 없앤다.

서정우는 각성자 특수부대에 있을 때 강력한 저주 몬스터를 단독으로 제거했다. 그때 정부에서 서정우에게 빌려준 성물은 희귀 등급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저주는 일반 등급으로는 못 막으니까 희귀 등급 성물을 꺼냈겠지만, 어지간한 저주는 이걸로도 막을 수 있겠지.'

어차피 저주 몬스터는 워낙 희귀해서 실제로 그 힘이 쓰일 확률은 낮다.

"그 칼을 가지고 다니면, 꿈을 더 잘 꿀지도 몰라."

박철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뭐? 이거 꿈에 영향을 끼치는 아이템이냐?"

"그럴 확률이 조금 있으니까 당분간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꿈을 꾸는지 확인해보라고. 특히 쌍둥이 꿈."

박철우가 대충 다루던 칼을 상자에 조심스럽게 넣고 뚜껑을 확실히 닫았다. 그는 잠금장치가 잘 걸렸는지 확인하려고 뚜껑을 당겨본 후에 말했다.

"야. 그런 귀한 거면 미리 말을 하지."

"꿈 같은 소리를 하는데 그냥 믿네?"

"난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 네가 일부러 구해온 아이템이니까 지푸라기가 아니라 나무판자 정도는 되겠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나무판자가 어디냐. 야. 고맙다."

서정우가 그 단검을 박철우에게 빌려주는 이유는, 성물이 이선화의 경우처럼 소유자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전설 등급 성물처럼 강력한 효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이 아저씨는 이미 저쪽 세계 쌍둥이와 꿈으로 연결되어 있어. 만약 꿈에서 더 자주 만난다면, 이 성물도 저쪽 차원에 영향을 끼친다고 봐야지.'

* * *

그날 저녁 시간에 각성자 수사대 2과장 권병철은 게이트 관리처 과장인 김민상을 만나 술을 마셨다.

김민상이 불판 위의 고기를 뒤집었다.

그건 몬스터 고기를 사람이 먹을 수 있게 가공하고 양념까지 친 것이다. 그런데 몬스터 고기는 원래 맛이 없다. 거기에 화학적으로 합성한 양념과 감미료를 추가해도 예전의 그 기름진 맛은 나지 않았다.

김민상이 말했다.

"야. 우리 대학 때 생각난다. 그때는 삼겹살 먹기 쉬웠는데 말이야."

권병철도 옛날 생각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학교 뒤 시장에서 먹던 감자탕에 소주도 좋았지."

"캬. 진짜 좋았지."

권병철이 가방에서 술병을 하나 꺼내 뚜껑을 열었다.

"옛날 생각나게 이거나 마시자."

"좋은 술이냐?"

권병철이 작은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권병철이 그 술을 단번에 마신 후에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크으으. 이거 진짜 소주네. 이게 얼마 만이야?"

"게이트 관리처에는 이런 거 선물로 안 들어오냐? 각성자들이 안 챙겨줘?"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그러는 넌 경찰이라는 놈이 이거 어디서 났냐? 뇌물이냐?"

"아니. 이번에 전멸한 쓰레기 클랜이 있는데, 그놈들 본부를 조사하다가 몇 병 챙겼다."

"잘했다. 그런 나쁜 놈들만 좋은 거 마시면 되겠냐? 나랏일 하는 우리도 좀 마셔야지."

권병철도 소주를 한 잔 마신 후에 본론을 꺼냈다.

"사람을 하나 조사 중인데, 정체를 모르겠다."

김민상은 권병철이 새로 따라준 술을 아껴먹으며 물었다.

"왜? 신원조회가 안 돼?"

"어. 너희 쪽 락이 걸려있더라."

김민상이 술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마신 후에 인상을 썼다.

"크으으. 좋다. 어쩐지 네가 이런 좋은 걸 내놓더라."

"술값이나 해라."

김민상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쪽에서는 어떻게 죽었는지 숨기고 싶을 때 락을 거는 경우가 제일 흔하다."

"살아있다. 직접 만나봤으니까 그건 확실해."

"그놈이 아직 살아있으면 일단 그건 아니네. 우리가 락을 거는 케이스가 몇 가지 있긴 한데, 그래도 널 만나주는 거 보면 크게 위험한 놈은 아닐 것 같은데?"

"그건 아직 몰라. 이중 락이니까."

"어? 다른 건 어디서 걸었는데?"

"국방부."

김민상이 등을 의자에 기댔다.

"그런 이야기를 겨우 진짜 소주 한 병 주면서 하냐? 그것도 반은 네가 마시는데? 경찰이 사람 등을 치네?"

"국방부 락까지 풀어달라는 건 아니다."

"그건 어차피 내가 못 풀어."

"너희 쪽 락을 풀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전화번호로 슬쩍 조회해본 후에, 대충 어떤 놈인지만 가르쳐만 줘. 느낌이 묘해서 그런다."

"전화번호라…. 누가 물어보면 숫자 잘못 입력했다고 둘러대라고?"

"그게 낫지 않냐?"

김민상이 술잔을 내밀었다.

"알았으니까 술이나 따라봐. 난 진짜 슬쩍 보기만 할 거다. 정보에 락 걸린 놈 뒤를 캐보라는 거면 말도 꺼내지 마라."

"그거면 된다."

* * *

게이트 관리처 과장 김민상은 이튿날 술 냄새를 풍기며 출근했다. 진짜 소주 한 병 덕분에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 세상의 추억이 생각났지만, 한 병은 양이 너무 적었다. 그들은 그 추억을 조금이라도 오래 떠올리려고 가게에서 합성 소주를 추가로 시켰다.

그러다 너무 많이 마셨다.

"어우. 내가 술을 끊든지 해야지."

그는 자리에 앉아서 권병철이 준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술값이나 하자. 병철이 말처럼 전화번호로 슬쩍 조회를…. 오호. 락 걸린 거 보니까 이놈 맞네."

화면에 보안 경고가 떴다.

김민상은 게이트 관리처의 현장 담당 부서 과장이다. 그가 가진 권한이면 경고를 무시하고 다음 단계를 볼 수 있다.

김민상이 세부 항목을 열었다.

국방부가 서정우의 정보에 조회 제한을 걸어놨기 때문에 게이트 관리처에서 모든 자료를 볼 수는 없다. 높은 등급의 조회 제한은 장관급인 게이트 관리처장의 권한으로도 해제할 수 없다. 그 정보를 보려면 먼저 국방부에서 풀어줘야만 한다.

반대로 게이트 관리처가 높은 등급으로 잠가버린 정보는 국방부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두 기관이 모든 정보를 단단히 잠근 건 아니다. 게이트 관리처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도 꽤 있었다.

"어디 보자. 각성자 특수부대 출신이네? 그래서 국방부가 락을 걸었구만? 난 또 뭐라고. 이런 경우가 가끔 있지. 그러니까 군대에 있을 때 코드네임이…. 지옥부처?"

김민상은 그걸 보자마자 정보 조회 프로그램을 즉시 종료했다.

곧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병철이 이 미친 새끼가!"

* * *

권병철도 전날 술을 꽤 마셨다. 그런데 근접 격투 스킬 각성자는 대부분 신체 회복력이 강하다. 그는 숙취가 별로 없는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알아봤냐?"

김민상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야. 나 지금 진지하게 묻는 거다.

"뭐가?"

- 그 사람하고 원수졌냐?

"아니. 아직은 관계가 나쁘지 않아. 좋게좋게 이야기했거든. 나도 딱히 뭘 추궁하지는 않았고."

김민상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 휴우. 잘했다. 이 새끼 장수하겠네.

권병철은 살짝 긴장했다.

"왜? 그렇게 위험한 놈이냐?"

- 그냥, 계속 좋은 관계 유지해라. 괜히 뒷조사하지 말고.

"나 경찰이다. 조사해서 죄가 있으면 체포하는 게 내 일이야."

- 시끄러우니까 내 말 들어라. 그렇게 계속 좋은 관계 유지하다가, 혹시 몬스터 점령지에 고립돼서 백 프로 죽을 거 같다 싶은 상황에 빠지면, 다른 사람 말고 꼭 그 사람에게 전화해라.

"응? 야. 난 지금 백상어 클랜 수사 문제로 물어본 건데 갑자기 몬스터라니?"

- 어? 네가 말한 전멸한 쓰레기 클랜이 백상어였냐? 와. 나. 백상어 미친 거 아니냐? 아. 미쳤으니까 전멸했구나.

"내가 물어본 놈이 그렇게 위험한 놈이냐?"

- 위험? 아니, 이게 좀 미묘하긴 한데…. 하여간 너한테 자세한 건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이거 하난 명심해라. 그 사람은 백상어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 손톱만큼도 상관없어. 무조건 그렇게 생각해.

"그놈이 이미 미사리에서 백상어 행동대를 쓸어버렸다. 목격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 그럼 딱 그것만 했다고 해! 아. 씨발. 어제 몬스터 고기 말고 진짜 돼지고기 먹었어야 했는데. 술이나 다시 사. 이 새끼야. 너 거기서 빼돌린 술 다 가져와도 모자라!

김민상이 전화를 끊었다.

권병철은 당황했다.

"뭐지?"

그는 김민상을 잘 안다.

"민상이가 이렇게 당황할 정도로 위험한 놈을 건드린 건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런 놈하고 왜 잘 지내라고 한 거지?"

정보가 부족해서 견적 계산이 어려웠다.

고민에 빠진 권병철을 깨운 건 서정우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권병철은 침을 꼴깍 삼킨 후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팀, 아니, 과장님. 서정우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 제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전화를 드렸는데요.

권병철의 머릿속에 방금 김민상에게 받은 전화가 떠올랐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했는데….'

"합법적인 부탁이라면야…."

- 에이. 왜 이러세요?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

- 아참. 아니구나. 제가 사람 몇 명 신원정보를 좀 조회하고 싶은데, 일반 조회가 아니라 경찰 쪽의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서정우는 저쪽 세계에서 성물 단검을 가로챈 사람을 찾고 있다. 윤현중 교수는 다섯 명에게 연락했다면서 그 명단을 주었다.

권병철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백상어 같은 클랜들의 정보다.

'이번엔 또 어디를 치려고?'

만약 백상어처럼 조폭 조직이 클랜으로 이름만 바꾼 곳을 치는 거라면, 권병철은 모르는 척 정보를 줄 생각이 있다.

"누구에 대한 정보를…."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 바로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다섯 명, 아니, 여섯 명입니다."

"아. 일단 문자부터 보내보시죠."

전화가 끊어지고 문자가 들어왔다. 권병철은 그들의 주민등록번호로 기본 정보부터 조회했다.

"어디냐. 기왕이면 좀 사라져줬으면 좋은 클랜… 어?"

모니터에는 그가 예상한 클랜의 마스터가 아니라, 학자나 상인 등의 신상 정보가 나왔다.

"뭐야? 일반인이잖아."

그 일반인들에게도 공통점은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한 다섯 명은 골동품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가 있었다.

권병철이 서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긴 각성자 수사대입니다만?"

- 그중에 각성자는 없습니까?

"한 명 있지만…."

- 그럼 조사하셔도 되겠네요.

"아니. 그래도."

- 에이. 우리 이제 서로 협조하는 사이잖아요.

"우리가요?"

권병철이 모니터에 뜬 기본 신상 정보를 쳐다보았다.

서정우는 이것보다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 그런 정보를 알려주는 건 불법이지만, 각성자 수사대는 원래 필요하면 이것보다 더한 정보도 거래하는 기관이다.

김민상이 신신당부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 그냥, 계속 좋은 관계 유지해라.

155. 지각

서울지방경찰청 각성자 수사대 2과장 권병철은 서정우의 전화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민상이가 어제는 서정우에 대해 조회해본다고 큰소리치면서 갔는데, 오늘은 갑자기 화를 내고 당황했단 말이야. 이거 아무래도 견적을 한참 넘어서는 사람 같은데….'

그가 서정우를 만났을 때 분위기가 나빴으면 이쯤에서 손을 뗐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분위기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그가 결정을 내렸다.

"좀 더 조사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넘겨주겠습니다."

- 역시 과장님은 친절하시다니까. 메일 주소는 저 조회했을 때 확인하셨죠? 거기로 보내주세요.

전화 통화를 마친 후에, 권병철은 다른 이유로 조금 당황했다.

"그런데 진짜 뭐지? 이 사람은 왜 나하고 친한 사람처럼 말하지?"

* * *

서정우가 전화를 끊었다.

서소라가 물었다.

"뭐래요?"

서정우는 여섯 명의 자료를 요구했다. 그중 다섯 명에 대한 기본 신원정보 조회는 서소라가 가져왔다. 서정우가 굳이 권병철에게 연락한 건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서다.

"도와준대."

"잘됐네요."

서정우가 원한 신원정보는 두 시간 후에 이메일로 들어왔다.

그는 여섯 명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중 다섯 명은 저쪽 세계의 유물 전문가 윤현중 교수가 준 명단에 있는 사람이다.

"어라?"

그가 알고 싶었던 건, 그중에 이쪽에서 도둑놈 같은 범죄자가 있는지였다.

한 명은 몬스터에게 당해 죽었다. 남은 네 명 중에 두 명은 평범하게 사는데, 다른 두 명은 전과가 있다.

그중에 전과자가 있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몬스터와 전쟁 중인 이쪽 세계에는, 저쪽에서는 숨기고 있는 본색을 드러낸 사람이 꽤 많다.

그런데 전과가 있는 둘 중 한 명이 문제였다.

서정우가 저쪽 세계에서 산 노트북의 화면을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 손끝에 익숙한 사진이 떠 있었다.

"이 사람이 이쪽 세계에서는 장물아비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 * *

서정우는 형사로 근무하는 세계로 돌아왔다.

그가 신원조회를 하려는 걸 보고 백성민이 끼어들었다.

"야. 이거 그 사건이지? 네가 사려던 골동품 단검을 새치기한 사건."

"어."

"벌써 누구 짓인지 알아냈냐?"

"대충."

"신원조회는 이제 하려고 하면서 어떻게 벌써?"

"그냥 정황상 확률이 높은 사람을 뽑은 거야."

"어떻게?"

"인사동 골동품 가게 주인은, 내가 그 단검을 사러 갔더니 삼십 분 전에 팔렸다고 말했어."

"그래. 그랬다고 했지."

"만약 윤 교수님이 연락을 돌린 다른 네 명 중 하나가 직접 와서 그 단검을 샀으면 주인이 얼굴을 알아봤겠지. 다들 그 바닥에서는 나름 유명한 사람들일 테니까."

"얼굴을 모를만한 사람을 대신 보냈을 수도 있잖아."

"그랬다고 보기엔 시간이 너무 짧아. 연락을 받자마자 빼돌릴 결정을 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서 보내? 그것도 뒤탈 안 날 사람을? 내가 가기 삼십 분 전이니까, 윤 교수님의 연락을 받자마자 출발시켰다는 건데?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서정우가 모니터를 톡톡 두드렸다.

"골동품 가게 주인 이연석. 이 사람이 직접 빼돌리고 나서, 내가 가니까 삼십 분 전에 팔렸다고 거짓말했다고 보는 게 더 그럴듯하지."

백성민은 바로 납득했다.

"그건 그렇다."

"그런데 그냥 안 판다고 하면 되는 걸 왜 팔렸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혹시 안 좋은 소문이 날까 봐? 평판을 잃기 싫어서?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야. 다른 생각이 들었어. 윤 교수님을 기다렸는데 내가 나타난 걸 보고, 당황해서 거짓말을 한 거라면?"

"응?"

"이 칼의 입수 경로가 정상이 아니라면?"

백성민은 그때서야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었다.

"네가 워낙 유명한 형사니까, 그 칼을 네가 가져가면 불법적인 입수 경로를 알아낼까 봐? 야. 그럴 수 있겠다. 네가 어디 좀 유명한 형사냐?"

저쪽 세계의 이연석은 장물아비 전과가 있다. 장물아비만 한 게 아니라 필요하면 사람을 직접 보내 훔치거나 빼앗기도 했다.

대상은 주로 골동품이었다. 저쪽 이연석은 특히 사연이 있는 유물을 좋아했다.

이연석이 이쪽에서도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칼에 담긴 사연이나 가치를 굉장히 궁금해할 게 뻔했다.

"이연석은 윤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그 칼이 보물이라는 걸 눈치챘어. 욕심이 생기긴 했는데, 어떤 보물인지는 모른단 말이야. 그래서 윤 교수님에게 칼이 있다고 알려주고 직접 찾아오기를 기다렸어. 설명을 들으려고. 여기까지가 원래 계획이었겠지."

"그런데 막상 나타난 건 윤 교수님이 아니라 너잖아."

"그 칼이 장물이라는 걸 나에게 들킬까 봐 팔렸다고 둘러댔어. 날 보자마자 핑계를 만들어야 했으니까, 당장은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났겠지."

백성민이 말했다.

"우리 정우 이제 형사 다 됐네. 내가 널 키운 보람이 있다. 크으."

옆에서 조민석이 말했다.

"처음에 정우에게 우리 업무를 설명해준 건 난데 무슨."

"야. 너 점점 정우처럼 개긴다?"

"정우에게 배웠죠. 우리 팀은 좀 막 나가야 잘 돌아간다는 걸."

서정우가 말했다.

"그래서 이연석의 신원조회를 하려고. 장물을 거래한다는 의심은 가는데 증거는 하나도 없잖아. 일단 정보부터 모아야지."

백성민이 말했다.

"야. 그러다 나중에 네가 물건 못 산 것 때문에 앙심 품고 조사했다고 소문나면 곤란해. 그리고 이거 신원조회로 될 게 아닌 거 같다. 내가 좀 자세히 알아볼게."

"이거 큰 사건은 아니라니까. 조무래기 장물아비일 수도 있어."

"너 어제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고 했는데 오늘 봐라. 사건으로 변했잖아. 네가 찍었으니까 아마 이것도 대박 사건이겠지. 내가 싹 조사해 줄게. 그래야 이 사건을 우리 팀에서 조사하는 게 되고, 사건 해결되면 나도 한몫했다고 당당히 이야기하지."

"인사동은 우리 관할도 아닌데?"

"내가 누구냐? 민완 형사 백성민이다. 다 방법이 있지. 일단 전에 잡힌 골동품 전문 도둑놈 소상현의 주소지가 우리 관할이야. 그놈은 분명히 이연석한테도 장물을 팔아먹었을 거야. 그래서 조사한다고 하면 돼. 소상현이 안 팔아먹었으면, 팔아먹은 줄 알고 조사했다고 하면 되고."

백성민이 이렇게까지 도와준다는데 싫다고 할 이유는 없다.

"그럼 형들이 좀 도와줘."

* * *

오후에 남수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아저씨! 오늘 저녁에 밥 먹어요! 제가 살게요!

"알바비 받았냐?"

- 아니요! 출연료 받았어요! 저 음악방송 나갔잖아요. 사장님이 생활비 하라고 출연료 먼저 챙겨주셨어요. 근데 뭐예요? 저 나오는 방송 안 봤어요?

"어…."

서정우가 재빨리 남수정이 나온 음악방송을 검색했다.

다행히 핑계 대기 좋은 날이었다.

"이때는 내가 미국산 마약중독자 잡은 날이잖아. 그쪽 경찰서에서 그 사건 처리하느라 TV를 볼 수가 없었지. 나중에 확인했어."

- 그렇구나. 4등 했는데.

"그래. 4등 해서 나도 아까웠다."

- 쳇. 3등인데. 아예 몰랐구나. 어쨌든 만화루로 나오세요! 우리 동네 언니들 다 불렀어요! 오늘 제가 크게 쏩니다!

"넌 짜장 시키게?"

- 앗! 어떻게 알았지?

서정우는 저녁때 남수정이 말한 동네 식당으로 가다가 쌍둥이를 만났다.

쌍둥이가 반가워했다.

"앗! 디 형사님이다!"

"디리리리리다!"

서정우는 공간 분석 스킬을 사용했다. 주변에 엿듣는 사람은 없었다.

식당으로 들어가며 서정우가 물었다.

"너희들 요즘도 그 꿈 꿔?"

박하연은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아빠 꿈이요? 저번에 한 번 더 꿨어요."

박다연도 대답했다.

"또 거지꼴로 다니길래 막 뭐라고 했어요. 앞으로 안 그러겠대요."

"그래. 안 그러더라."

"네?"

"앞으로 안 그럴 거라고."

저쪽 세계의 박철우는 이제 거지꼴을 탈피하고 옷을 굉장히 잘 입고 다닌다.

'다음 꿈에서는 깔끔하게 만나겠지.'

그들이 식당 안에 들어갔다. 남수정은 서정우가 들어오자마자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여기요!"

남수정의 옆에 초등학생 동생 남수호가 보였다. 서소라와 윤나나도 와 있었다.

윤나나가 방긋 웃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오빠. 여기 앉으세요."

서소라는 젓가락을 두드리며 불평했다.

"늦었잖아. 배고프다고!"

서정우는 윤나나가 가리킨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넌 모르겠지만, 월급쟁이에게는 퇴근 시간이라는 게 있다."

"오빠한테는 월급 그거 별로 안 중요할 텐데…."

남수정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공무원이 월급이 아니면 어떻게 돈을 벌어요? 앗! 우리 아저씨 혹시 악당들한테 뒷돈 받아요? 와아. 그렇게 안 봤는데. 근데 얼마나 짭짤해요?"

서정우가 말했다.

"나나야. 수정이 한 대 때려라."

"농담이에요. 농담!"

식당 문이 다시 열렸다. 식당 주인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헉!"

서정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톱스타 이선화가 들어왔다.

이선화가 방긋 웃으며 다가와 서정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직 시작 안 했네?"

서정우가 이선화에게 물었다.

"수정이가 우리 동네 사람들만 부른다고 했는데?"

"어머. 나도 이 동네에 집 있어요. 몰랐어요?"

"집?"

"오피스텔이요."

짚이는 게 있었다.

"수정이하고 수호가 사는 오피스텔이 혹시…."

"제가 샀어요."

"월세 주고 빌린 건 줄 알았는데요?"

"처음엔 그랬는데, 빌트인 가전도 못 바꾸고 내부 수리도 못 하니까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아예 샀어요. 아. 보일러가 낡았던데 일단 그것부터 새것으로 바꿔야겠다. 더운물 콸콸 나오고 방바닥 따뜻한 최신 최고급형으로."

남수정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선화 언니! 사랑해요!"

이선화가 씩 웃었다.

"커튼도 골라봐. 무슨 색이 좋아?"

"핑크요!"

"얘가 색 고르는 취향이 나하고 똑같네. 바깥은 암막에 안쪽은 핑크로 이중 커튼 달아줄게."

"고맙습니다!"

서소라가 보챘다.

"아. 배고파. 밥부터 시키자!"

남수정이 말했다.

"식사는 짜장면이나 짬뽕 중에 하나 마음대로 시켜요. 곱빼기 시켜도 돼요. 탕수육도 대자로 두 개 시킬게요."

이선화는 돈이 많지만 다른 요리를 추가로 사지는 않았다. 오늘은 남수정이 사는 날이기 때문이다.

서정우는 짜장면 곱빼기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다.

남수호는 신이 나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누나. 탕수육 진짜 맛있어!"

남수정이 큰소리쳤다.

"우린 앞으로 탕수육 자주 먹을 거야. 넌 나만 믿고 학교만 잘 다녀. 나 3등 한 가수야."

서정우가 물었다.

"수호는 어때? 건강해 보이는데."

남수정이 활짝 웃었다.

"새로 쓰는 약이 진짜 잘 맞아요. 금방 몸이 좋아져서 다시 학교 다니고 있어요. 요즘은 하나도 안 아프대요."

"잘됐네."

"히히."

서정우가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종이상자를 꺼내 남수정의 앞에 놓았다. 상자 자체는 선물 가게에서 흔히 파는 작은 종이상자였다.

"연습하다 목 아플 때 마셔."

남수정이 상자를 열었다. 피로회복제 크기의 물약 4개가 나왔다.

"앗! 고맙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그 물약이 뭔지 안다. 이선화도 그 물약 덕분에 강훈련 이튿날에 근육통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이선화가 말했다.

"나 그거 다 떨어졌는데. 난 없어요?"

서정우가 종이로 된 선물상자를 하나 더 꺼냈다.

"여기."

그녀가 상자를 쓱 챙기며 물었다.

"이거 피곤할 때 마셔도 도움이 돼요?"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건 음료수가 아니라 약이니까 남용하면 좋을 건 없죠."

남수정도 물었다.

"아저씨. 이 약 수호가 마셔도 돼요?"

"네 동생을 주려면 의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데, 그건 좀 곤란해."

"아. 맞다. 밀수한 웅담이 들어갔다고 그랬지."

"누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냐?"

"소라 언니가요. 아니에요?"

서정우가 서소라를 돌아보았다. 서소라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아니야?"

"웅담 비슷한 게 들어갔다고 했지."

몬스터를 잡아야 구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갔다.

"어쨌든 이 약은 약효가 약한 대신에 특별한 부작용은 없어. 그래도 약은 약이니까 수호가 마시려면 의사에게 먼저 물어봐야 해. 그런데 정식 의약품이 아니니까 의사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남수정이 아쉬워했다.

"안 되겠네요."

"음. 내가 따로 좀 알아볼게."

이 물약이 남수호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저쪽 세계의 남수정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 만약 효과가 없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포캣츠 네 명도 눈을 반짝였다.

서정우가 한 상자를 더 꺼냈다.

그런데 한 상자에는 낮은 등급의 상처 회복 물약이 네 개만 들어 있다. 포캣츠도 네 명이다.

박다연이 당장 벌떡 일어났다.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인 듯!"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꺼내는 중이다."

그가 세 상자를 더 꺼냈다. 박다연이 신나서 상자를 받았다.

"아싸아!"

다들 저등급 회복 물약을 받고 즐거워했다. 이선화도 굉장히 좋아했다.

그 약은 저쪽 세계 약국에서 네 병에 2만 원이면 산다. 지금 꺼낸 약을 다 하면 12만 원이다.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의 돈의 가치는 대충 비슷하다. 파는 물건이 달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만 원짜리 한 장에 대한 느낌은 비슷했다.

'12만 원으로 다들 행복해하면 됐지 뭐.'

남수정이 말했다.

"이 물약 덕분에 노래 연습 엄청 많이 해도 괜찮아요."

"그 물약의 약효를 넘어서는 연습을 하면 목이 쉴 거야. 그거 만능이 아니야."

"에이. 제가 그 정도로 열심히 하지는 않죠. 알바도 해야 하는데."

"알바 그만하고 학교를 가. 현수한테 들으니까 너 출석일수가…. 어? 너 현수는 안 불렀냐? 실망하겠는데?"

"불렀어요. 근데 늦네요."

서정우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감지 스킬에 뭔가 걸려서 그런 게 아니다.

"현수가 네가 초대한 자리에 늦어?"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라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56. 정현수

정현수는 남수정의 저녁 초대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서정우는 그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초대했는데 늦어? 집에서 먼 거리도 아닌데?'

"이상한데?"

남수정이 말했다.

"늦을 수도 있죠."

"아니야. 이건 이상해."

"정 그러시면 제가 전화해볼게요."

남수정이 정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데요?"

서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찾아보고 올게."

그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일행들이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정우가 물었다.

"아니. 왜 식사 도중에 다들 일어서지?"

남수정이 대답했다.

"아저씨가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찾으러 가니까요. 이거 사건이죠?"

쌍둥이도 말했다.

"맨날 동영상만 봤는데 오늘은 실시간 라이브로 보나요?"

"우린 뒤에서 응원해야지."

이선화는 한술 더 떴다.

"기자들은 제가 처리할게요."

서정우가 말했다.

"이 사람들이. 그냥 현수가 늦을까 봐 마중 나가는 거라니까. 그냥 마중."

* * *

서정우는 식당을 나와서 정현수가 어느 방향에서 올지 생각해보았다.

'학교에서 오는 건 아니겠지. 현수네 집은 저쪽인데…. 아니야. 오늘 저녁은 수정이가 출연료로 쏘는 자리잖아. 음악방송에서 3등이나 했으니까 선물을 사오겠지. 저쪽 선물 가게 방향에서 오겠네.'

그는 선물 가게 쪽으로 걸어갔다. 일행들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는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도 섞여 있었다.

'젠장. 예감이 이상하더라니.'

서정우가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렸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소리가 난 곳은 골목 안쪽이었다.

그는 골목 모퉁이 벽을 밟으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골목 안 상황을 확인하고 살짝 당황했다.

"역시 현수 맞네. 맞긴 맞는데."

정현수는 얼굴에서 피를 흘렸다. 정현수의 뒤에는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겁먹은 얼굴로 서 있었다.

정현수의 앞에는 두 놈이 나자빠져 있었다. 둘 다 코가 부러지고 눈도 돌아가 기절한 상태였다.

정현수가 씩 웃었다.

"아. 서 형사 형."

"야. 너 혼자 저 두 놈을 잡은 거냐?"

"겨우 두 놈이겠어요? 세 놈이었어요. 한 놈은 벌써 튀었고요."

"1대3이라…."

정현수가 왜 1대3으로 싸웠는지는 뻔했다. 정현수의 뒤에 여학생이 보였다.

"뒤에는 너 아는 사람이냐?"

"우리 반 친구예요."

서정우의 일행들이 뒤늦게 뛰어왔다. 그들은 골목 안으로 들어오며 숨을 헐떡였다.

남수정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악. 하악. 아저씨 진짜 빠르네요. 어? 현수다. 야! 현수 너 왜 전화를 꺼…. 앗! 이게 뭐야? 악당이야?"

정현수가 얼른 자랑했다.

"내가 1대3으로 싸워서 이겼어."

"아저씨가 아니라 네가?"

"어. 내가."

"셋이 아니라 두 놈인데?"

"한 놈은 도망쳤거든."

정현수의 뒤에 숨어 있던 여고생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남수정은 그때서야 그녀를 알아보았다.

"앗! 민효진! 네가 왜 여기 있어?"

"수정아. 그게…."

아직 얼어 있는 민효진 대신에 정현수가 설명했다.

"이놈들이 효진이 돈을 빼앗으려고 했나 봐. 효진이가 저기 선물 가게에서 뭘 샀는데, 지갑에 돈이 많이 있었대. 이놈들이 돈을 보고 따라와서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내가 마침 그걸 보고 딱 구해줬지."

"오! 정현수. 멋진데?"

"흐흐흐. 그렇지?"

"변태처럼 웃지 마."

"크하하하!"

"악당처럼 웃지도 말고."

"어. 미안."

서정우는 멈칫했다. 그는 이 대화를 저쪽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두 개의 차원이 독립된 세계이면서도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건 알지만, 같은 대화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두 세계는 환경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다. 저쪽은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튀어나오지만, 이쪽은 평화롭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쌍둥이 같은 관계야. 그런데도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어. 두 세계의 연결이 생각보다 강하네.'

남수정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야. 너 피부터 좀 닦…. 휴지가 없다. 냅킨이라도 챙겨올걸."

민효진이 얼른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에는 갈색 체크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이걸로 닦아."

"아. 땡큐."

서정우가 조언했다.

"야. 상처를 꽉 누르고 있어라. 그런데 신고는 했냐?"

정현수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이 깨져 있었다.

정현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 내 스마트폰이! 아직 약정도 안 끝났는데!"

남수정이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내가 신고…."

갑자기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남자 여섯 명이 나타나 골목을 가로막았다.

그중에 한 놈은 코가 부러져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놈이 소리쳤다.

"이 새끼! 내가 그냥 간 줄 알았냐? 아군을 데려온 거다! 이번엔 진짜로 죽여 버린다!"

그놈은 조금 전에 정현수와 싸우다 도망친 놈이다.

그놈이 데려온 패거리의 두목이 말했다.

"야.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아? 이야기가 다르잖아."

"그, 글쎄요. 아까는 고삐리 둘밖에 없었는데요."

골목 안은 좀 어두웠다. 두목이 지시했다.

"어쨌든 저년 신고하지 못하게 휴대폰부터 빼앗…. 어?"

그는 그때서야 휴대폰을 든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라 TV에서 본 얼굴이다.

"남수정?"

우두머리의 옆에 있던 놈도 다른 사람을 알아보았다.

"헉! 윤나나? 포캣츠?"

정현수와 싸우다 도망쳐서 패거리를 데려온 놈이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이, 이선화!"

여섯 놈은 그들의 앞에 여자 연예인이 잔뜩 있는 걸 보고 바짝 긴장했다.

두목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래도 잘못 건드린 것 같….'

서정우가 뒤로 돌아섰다.

두목이 비명을 질렀다.

"히익! 서정우다!"

여섯 놈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서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튀게?"

"그, 그게…."

"시도는 해 봐. 혹시 아냐? 성공할지. 사나이라면 다리뼈 하나에 갈비뼈 두어 개쯤 걸고 모험을 해야지. 그 정도면 죽지는 않잖아?"

두목이 고개를 열심히 가로저었다.

서정우와 싸운 놈들은 조폭과 국제 산업스파이 조직, 테러리스트까지 모두 다 전멸했다. 어느 경우도 도망친 놈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아, 아닙니다!"

남수정이 신고를 마저 했다. 잠시 후에 동네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다.

서정우는 집 근처 지구대 경찰들과도 알고 지낸다.

지구대 경찰은 살짝 놀랐다.

"어? 정우야."

"아. 김 경위님이 직접 오셨네요?"

"이야아. 내가 오길 잘했네. 이놈들도 테러리스트냐? 총 가져올 걸 그랬다."

붙잡힌 놈들은 기겁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냥 동네 양아치입니다!"

"이 새끼가! 저희는 양아치가 아니고 그냥 동네 청년회…."

"그냥 선량한 시민입니다!"

서정우가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저 중에 세 놈이 쟤 돈을 빼앗으려고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는데, 같은 반 친구인 쟤가 그걸 봤다네요. 쟤가 얼른 따라가서 둘은 때려눕혔는데 하나를 놓쳤습니다."

"와. 쟤는 얼굴만 봐도 싸움 잘할 것 같이 생기긴 했다."

"생긴 것만큼 잘 싸우죠. 그런데 도망친 놈이 패거리 다섯을 더 데려왔네요. 그게 저놈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덟 명이 교복 입은 저 여자애를…. 미성년자네?"

"네. 고3입니다."

"이놈들 교도소에 사이좋게 들어가겠다. 죄질이 심하게 나빠."

양아치들이 고개를 열심히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돈만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저 새끼들이 돈을 빼앗으려고 한 거지, 저희는 그냥 나중에 구경 온 겁니다!"

"돈 많은 여자애를 봤다고 한 건 저 새끼입니다!"

지구대 경찰들이 양아치들에게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너희들 서정우 형사 알지? 서 형사가 너희들 조사해서 다른 죄를 다 밝혀내면 선처 못 받아. 그러니까 죄를 지은 게 있으면 지금 다 자백해."

양아치들이 서로 상대의 죄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다들 비슷했다.

"저 새끼가 훔치자고 해서 전 망만 봤습니다!"

"저 새끼가 사람을 패는데 저는 망만…."

서정우는 지구대로 따라갔다. 그가 싸운 건 아니지만, 정현수와 민효진만 보낼 수는 없어서였다.

연예인인 이선화와 포캣츠는 일부러 데려가지 않았다. 그녀들은 구경만 했기 때문에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남수정은 피해자 두 명이 그녀의 같은 반 친구들이라는 핑계로 따라왔다.

지구대에서 경찰이 민효진의 인적사항을 조회했다. 가족 중에 그 경찰이 아는 사람이 있었다.

"아. 너 민 사장님 딸이구나."

"네."

서정우가 물었다.

"아는 분이세요?"

"저쪽 사거리에 뷔페 있는 건물 주인."

"아아."

서정우는 그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뷔페를 즐겨 이용한다.

민효진은 놀란 마음이 좀 안정된 후에 정현수에게 말했다.

"현수야. 진짜 고마워."

"아니. 뭘. 같은 반이라서 도와준 건데. 하하하."

정현수가 웃으면서 남수정을 슬쩍 보았다. 그녀는 예전에 그녀의 집으로 출동했던 경찰들에게 인사하느라 바빴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 정현수의 누나와 민수정의 부모가 출발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서정우는 더 도와줄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현수야. 그럼 난 간다."

남수정이 말했다.

"같이 가요."

정현수는 남수정이 가는 게 아쉬워했다.

"수정아. 벌써 가게?"

"탕수육이 많이 남았어. 가서 계속 먹어야지. 짜장면은 다 불었겠다."

서정우가 정현수에게 말했다.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빨리 치료받아라. 얼굴에 흉터 생긴다."

"영광의 흉…."

"네 인상에 그런 흉터까지 있으면 사람들이 널 피한다고."

"아니. 왜 아까부터 다들 내 얼굴 가지고 그래요?"

"어…. 아니다."

* * *

이튿날 서정우가 경찰서로 출근했다.

백성민이 말했다.

"야. 어젯밤에도 한 건 했다며?"

"그 조무래기들? 난 그냥 서 있기만 했어. 싸우는 건 현수가 다 싸웠지."

"그 조무래기들을 밤새 조사하니까 절도에 폭행에 이것저것 되게 많이 나왔다더라. 자기들끼리 서로 다른 놈 죄를 신고하고 난리도 아니었대."

"그럼 다 감옥 가나?"

"그건 모르겠는데, 피해자 여자애 아버지는 변호사까지 데리고 와서 끝장을 보겠다고 선언했다더라. 고소 고발 다 할거라더라."

서정우는 정현수의 꿈이 생각났다.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는 저쪽 세계에서 정현수가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것도 봤고, 이쪽에서 1대3으로 싸워서 이기는 것도 봤다.

'경찰을 해도 잘할 것 같은데.'

"현수한테 표창장 주나?"

"줘야지. 용감한 고등학생으로 기사까지 났는데."

"기사?"

"아직 안 봤냐?"

백성민이 스마트폰으로 어젯밤 사건이 나온 기사를 보여주었다.

서정우는 감탄했다.

"와. 현수가 뉴스에 날 줄이야. 이 녀석 떴…. 응?"

기사에 나온 문장 하나가 눈에 걸렸다.

"서정우 형사의 동네 친한 동생?"

서정우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놔."

거짓말은 아니다. 그는 이쪽 세계에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중 한 명이 정현수다.

* * *

정현수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웃었다.

"흐흐흐흐."

- 서정우의 동네 아는 동생까지 1대3이라니. 이거 실화냐?

- 나도 그 동네로 이사 가고 싶다. 동네 아는 동생 하게.

- 님 나이가?

- 살인마 잘 잡는 사람이 형입니다.

그의 자리에 그림자가 생겼다. 정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민효선이 작고 예쁜 선물상자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집에 초콜릿이 남아서 좀 가져왔어. 어제 고마워서 주는 거야."

반에서 환성이 터졌다.

"오오!"

정현수는 살짝 당황했다.

"아니. 이건…."

그는 남수정의 눈치를 살짝 봤다.

남수정은 아예 의자에 올라가서 정현수 쪽으로 주먹을 내밀고 오른손 엄지를 위로 세우며 외쳤다.

"와아아!"

정현수의 어깨가 살짝 처졌다.

"어. 잘 먹을게."

* * *

점심을 먹은 후에, 백성민이 서정우에게 서류를 몇 장 내밀었다.

"네가 말한 그 골동품상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별건 없더라. 작정하고 수사하면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지금 단계에서 대놓고 그럴 수도 없고."

"땡큐."

"분명히 대박 사건 냄새가 나는데 말이야."

"큰 사건은 아니라니까."

서정우가 이연석에 관한 자료를 읽었다. 골동품상을 오랫동안 운영했고, 소송이 몇 번 걸린 적이 있지만 모두 해결됐다고 적혀 있었다.

"진짜 별것 없네. 그런데 이 명단은 뭐야?"

"이연석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근무한 사람 명단. 지난 20년 동안의 점원 명단이다."

"이런 것도 조사했어?"

"내가 한 건 아니고, 아는 사람이 전에 다른 사건으로 이연석을 조사할 때 그것도 알아봤다고 하더라. 그 사건은 이연석이 돈 물어주고 끝났어."

"이거 막 넘겨줘도 되는 자료야?"

"당연히 우린 이런 자료를 받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지."

서정우가 피식 웃으며 점원 명단을 훑어보았다.

"형. 그러다 걸리면…."

명단 아래쪽에 아는 이름이 보였다.

"권세창?"

AKX 픽처스 김성준 사장이 말한, 몇 년 전에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이 그곳에 있었다.

157. 셋

백성민이 물었다.

"왜?"

서정우는 명단에 적힌 권세창이라는 이름을 보며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아니. 우연일 수도 있는데…."

예전에 사망한 권세창과 같은 사람인지 확인할 필요는 있다.

백성민이 준 명단에는 권세창의 이름과 골동품 가게 근무 시기 외에도 주민등록번호가 있었다.

서정우가 AKX 픽처스 김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사장님. 저번에 말씀하신 권세창 씨 사건 말입니다만."

김성준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 아! 맡으시게요?

"아직 그런 건 아닌데, 그분 간단한 약력이라도 좀 알 수 있습니까? 주민등록번호도 들어있으면 좋고요."

- 결정하시려면 정보가 필요하시겠군요. 제가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저에게 그 친구 옛날 서류가 있습니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서정우가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에 이메일로 권세창의 간단한 약력이 들어왔다.

서정우가 두 자료의 주민등록번호를 비교했다.

일치했다.

"같은 사람이네. 그런데 이 사람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라고 들었는데?"

백성민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안 팔리니까 이연석의 골동품 상점에서 일했겠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예술 하는 사람 중에는 그러는 사람 많잖아."

"그래?"

"당연하지."

저쪽 세계에는 그런 사람이 흔하다는 걸 서정우도 안다.

이쪽 세계는 저쪽보다 영화나 드라마 시장이 훨씬 더 크지만, 여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한 줌의 사람 외에는 그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렵다.

백성민이 물었다.

"궁금하면 왜 인사동에서 일했는지 물어봐. 방금 통화한 김 사장이라는 사람 통해서. 아. 김 사장이 누군데?"

"AKX 김성준 사장님."

"그래? 이야아. 역시 스타 형사. 대형 제작사 사장님하고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구나."

"그냥 전에 권세창 씨에 관해 이야기한 게 있어서 연락한 거야."

" 그럼 다시 김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겠네."

"그럴 수가 없어."

"왜?"

"권세창 씨는 몇 년 전에 죽었으니까."

"어?"

백성민이 즉시 의자를 끌고 와서 옆에 앉았다.

"사망 이유는?"

"사고사로 결론이 났대. 그런데 가족들은 살해당했다고 믿고 있어."

"야. 이거 느낌이 싸한데?"

"형도 그렇지? 권세창은 우리가 장물아비로 의심하고 있는 이연석의 골동품 상점 옛날 직원인데, 사고로 사망했어. 가족들이 살해당했다고 믿고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고사는 아니라는 거고."

옆자리 조민석이 말했다.

"그 명단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보자. 그건 내가 할게."

확인 목적은 딱 하나였다. 아직 살아있는지였다.

작업을 마친 조민석의 표정이 굳었다.

"권세창이 사망한 건 삼 년 전이야. 육 년 전에 근무한 사람도 사망했…. 구 년 전에 근무한 사람도?"

지난 이십 년간 열다섯 명이 그 가게의 점원으로 근무했다. 그중에서 세 명이 지난 구 년 사이에 사망했다.

다른 가게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장물아비 이연석의 가게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백성민이 표정을 굳혔다.

"야. 이거 연쇄 살인 사건 아냐? 권세창 사망 시기는 그 골동품상을 그만두고 일 년 후니까 직접적인 의심은 받지 않았겠지. 가만. 그럼 다른 두 명도…."

백성민이 명단에 나온 정보와 조민석이 조사한 사망 시기를 비교했다.

"구 년 전 점원은 근무 기간에 사망했지만, 육 년 전 점원은 가게를 그만두고 일 년 후에 사망했다."

"사고사로?"

"어."

서정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살인이라는 증거가 없겠네."

"그러니까 사고사로 결론 났겠지."

"사고사로 위장하는 건 쉬울까?"

백성민이 단언했다.

"세 번이나 사고사로 위장하는 건 보통 사람은 못해. 사고사 위장 전문가 짓이다."

서정우는 저쪽 세계에서 그런 전문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저쪽에서는 사고로 위장하는 것보다 몬스터를 이용한 함정을 파는 방법을 훨씬 더 선호한다. 시체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사 위장 전문가?"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데, 상황이 그렇잖아. 한 번은 어쩌다 사고로 처리될 수 있어도, 삼 년 간격으로 세 번이잖아. 전문가가 아니면 세 번이나 들키지 않을 수가 없어. 그게 아니면."

"아니면?"

"위에서 덮었거나…."

백성민이 거기까지 말하고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만약 그거라면, 이거 밝혀내면 우리까지 엿 될 것 같은데."

"그럼 우린 다 무인도 파출소로 전출 가나?"

"아마도?"

"그렇게 되면 무인도에서 같이 낚시나 하면서 쉬자."

'쉬면서 우리를 거기로 좌천시킨 놈에게 철가면을 쓰고 찾아가야지. 총알도 몇 발 선물하고.'

백성민이 진지하게 물었다.

"정우야. 이거 하게?"

"해야지. 진짜 사고사 위장 전문가가 있다면 잡아야 하니까."

백성민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 하자. 설마 너를 좌천시키진 못하겠지. 그런 일이 생기면 넌 기자회견 크게 한 후에, 경찰 때려치우고 올림픽에 나가라. 내게 네 매니저 해줄게."

조민석도 맞장구를 쳤다.

"운전은 내가 할게!"

서정우는 당황했다.

"응? 올림픽?"

백성민이 대안을 제시했다.

"올림픽 금메달이 싫어? 그럼 격투기로 할래? 명예냐. 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민석은 생각이 달랐다.

"올림픽에서 서너 종목 정도 동시에 메달을 따면 CF 많이 들어올걸? 그럼 그게 돈이 얼마야? 올림픽으로 가야 명예와 돈을 다 잡아. 정우야. 올림픽이다."

백성민은 기왕 꺼낸 말을 밀어붙였다.

"정우야. 격투기로 세계를 제패해도 유명해진다. 돈도 많이 벌고."

서정우가 따졌다.

"그런데 이 형들은 왜 경찰에서 잘릴 걱정부터 해?"

* * *

서정우는 경찰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나리오 작가 권세창이라…."

그는 저쪽 세계 권세창의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가 저쪽 권병철 과장에게 경찰 쪽 신원조회 정보를 부탁했을 때, 처음에는 윤현중 교수가 준 명단의 다섯 명만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하는 김에 한 명을 추가했다. 그때 추가된 한 명이 바로 권세창이다.

권세창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줄 알고 끼워 넣은 게 아니다. AKX 픽처스 김성준 사장이 말한 사건을 받을지 말지 견적을 내보려고 기본 정보만 수집한 것이다.

서정우가 그 자료를 떠올렸다.

'저쪽에서 권세창과 그 골동품 상점은 접점이 없어.'

저쪽 권세창은 살아있다.

'그 상점은 이제 인사동에 없으니까 가서 일할 기회도 없었겠지. 그래서 아직 살아있나? 그럼 역시 권세창은 이연석 때문에 죽었단 소리인데.'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일개 장물아비가 사고사 전문가를 쓰거나 권력자를 움직여 사건을 덮는 게 가능한가?'

그는 아직 이쪽 세계의 상식 중에 모르는 게 많지만, 범죄조직이나 비리 정치가의 행동방식이 비슷하다는 건 안다.

"성민이 형 말이 맞았어. 이 사건엔 뭔가 더 있네."

서정우가 백성민과 조민석을 옥상으로 불러서 제안했다.

"지난 이십 년 사이에 사망한 세 사람이 어떻게 죽은 건지 좀 알아보자. 아주 조용히. 정보가 거꾸로 흘러나가지 않게. 성민이 형 말처럼 이연석의 뒤에 뭔가 더 있는 것 같으니까."

백성민이 자랑했다.

"거봐라. 내가 처음에 골동품 단검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게 대형 사건이 될 거라고 했잖아. 그런 느낌이 딱 왔거든."

"형 혹시 무당 좋아해?"

"그 무당 미혼이냐? 예쁘냐? 착하냐?"

"관두자."

조민석이 물었다.

"팀장님에게 보고할까?"

백성민이 말렸다.

"야. 일단 제대로 된 단서라도 찾아낸 후에 보고하자. 지금은 우리가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이연석의 골동품 상점에서 일한 사람 중에 사망자는 세 명이다. 백성민과 조민석이 각자 한 명씩 맡기로 했다. 서정우는 권세창 사망사건을 맡았다.

서정우는 김성준을 만나기 위해 AKX 픽처스를 찾아갔다.

AKX는 빌딩의 7층과 8층을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는 그 건물의 로비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배우 강서준과 권경철이 건물 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서정우를 발견했다.

강서준이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서 형사님!"

형사라는 말에 카페테리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서준 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정우 쪽으로 향했다. 그중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헉! 서정우 형사다!"

서정우는 원래 8층으로 바로 올라갈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왔지만, 아는 사람이 손까지 흔드는데 그냥 가기는 어려웠다.

서정우가 강서준을 향해 걸어갔다.

"서준 씨가 여기는 어쩐 일로?"

강서준이 신나서 말했다.

"우리도 그 영화 찍기로 했거든요."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영화라고 할 만한 건 이선화가 준비하는 액션 영화밖에 없다.

"그럼 혹시 권경철 씨도 그 영화에?"

권경철이 머쓱하게 웃었다.

"저한테도 제안이 들어왔는데, 서 형사님한테 한 수 배우고 싶어서 바로 참여했습니다."

"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저 꽤 잘나갑니다. 하하하."

서정우가 놀란 건 권경철이 영화에 참여해서가 아니다.

"저한테 배우다니요?"

권경철이 목소리를 낮췄다.

"설마 이선화만 가르쳐주고 우리는 모른 체하실 겁니까? 그럼 진짜 서운한데."

강서준도 소곤댔다.

"그런데 우리한테도 그 보약 주나요?"

"보약이요?"

"선화가 엄청 자랑했는데요. 서 형사님이 직접 챙겨준 보약을 마시고 훈련받아서 효과가 더 좋은 거라고."

"아. 그거."

'저등급 상처 회복 물약이 언제부터 보약이 됐냐. 그건 마시는 연고나 물파스 같은 건데.'

강서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그거요. 그게 그렇게 효과가 좋다면서요? 무술의 달인 서 형사님이 설마 스테로이드를 챙겨주신 건 아니겠죠. 저도 그 동양 무술의 신비가 깃든 비전 보약을 마시고 싶어요."

권경철도 입맛을 다셨다.

"서 형사님. 저도 그런 거 참 좋아합니다."

서정우가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전 그 영화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르쳐드릴 것도 없어요. 그리고 그 약은 동양의 신비한 비전이 아니라 홍삼 엑기스 같은 건강식품이니까, 그냥 아무 한의원이나 가서 보약을 지어 드세요. 다 이해하셨지요?"

강서준은 살짝 당황했다.

"네? 잠깐만요. 서 형사님도 그 영화 때문에 여기 오신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만?"

"AKX에서 그 영화 제작하잖아요. 오늘 회의 있고요. 그런데도 아니라고요?"

"김성준 사장님과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저희는 감독님하고 회의하러…."

"회의 잘하세요. 그럼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서정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김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지금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가 8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김성준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 형사님. 어서 오십시오."

"아니, 왜 나와계십니까?"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겠습니까? 하하하."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들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서정우를 발견하고 일어나 인사했다. 그건 서정우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김성준을 구해준 사람이라서 하는 인사다.

서정우도 고개를 꾸벅이면서 김성준을 따라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냥 여쭤볼 게 있어서 들른 건데…."

김성준이 전자동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하하하. 자주 들러주십시오."

커피와 함께 간단한 이야기가 오가고 나서 서정우가 물었다.

"권세창 씨에 대해 알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역시 살인 사건인지 아닌지부터 알아보시는 거군요."

"살인 사건이라서 알아보는 겁니다."

"네?"

"권세창 씨는 살해당했습니다. 아직 증거는 없고 그렇게 추측하는 단계입니다만."

김성준은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이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 친구가 진짜로…."

"알고 부탁하신 줄 알았습니다만?"

"삼 년 전에 사고사로 결론이 났습니다. 가족들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저는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지요. 저번에 서 형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한 건, 그 시나리오를 원하시면 그런 방법이 있다고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김성준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런데 진짜입니까?"

"아직 어디 가서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범인은 누구입니까?"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서 형사님은 어떤 살인마라도 두 시간 안에 잡으시는…."

"무슨 그런 이상한 오해를 하십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 언제나…."

"범인은 살인을 사고사로 위장했습니다. 한 번은 우연히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두 번 이상 그러는 건, 일반인은 못합니다."

"예?"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동원된 연쇄 살인 사건입니다."

김성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158. 소문

사건의 크기가 김성준이 예상한 수준의 최대치보다 훨씬 커졌다.

"연쇄 살인 사건…."

"그러니까 이윤미 씨에게도 이 이야기는 하면 안 됩니다. 김 사장님 혼자 알고 계셔야 합니다."

"저한테만 알려주시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 사건을 직접 나서서 조사하시면 위험하니까 조심하시라는 뜻으로 알려드린 겁니다."

"아. 고맙습니다."

"일단 권세창 씨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특히 가족들은 왜 살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친구는 인천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에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혼자 배를 타는 모습과, 혼자 배 뒤쪽으로 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습니다. 목격자는 없고, 몸에 싸운 흔적도 없습니다. 부검 결과도 익사로 나왔습니다. 살해당할만한 원한관계도 없고요. 그래서 경찰은 사고 아니면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족들은 그걸 왜 안 믿죠?"

"그 친구가 배를 탈 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멀미 때문에요."

서정우는 김성준이 권세창 사망사건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들었다. 안 찾아온 것보다는 나았지만, 이연석과 연결지을 단서는 없었다.

김성준도 그걸 눈치챘다. 그래서 제안했다.

"제가 전화를 몇 군데 돌려보면…."

"위험합니다. 그런 거 하지 마시라고 찾아온 겁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서정우가 사장실을 나왔다. 그가 나오자마자 비서가 밝은 얼굴로 물었다.

"서 형사님. 이번 우리 영화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하십니까?"

"그게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그럼 혹시 배우로…."

"아닙니다만?"

"인터넷에는 참여가 확정된 것처럼 이야기가 도는데요?"

"예?"

서정우가 인터넷을 검색했다. 쌍둥이가 애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댓글이 많이 달린 글이 올라와 있었다.

- 조금 전에 서정우와 강서준, 권경철이 카페에서 만나는 걸 봤습니다.

- 사진은요?

- 못 찍었습니다만, 다른 걸 알아냈습니다. 강서준과 권경철이 새로 찍는 영화 때문에 서정우에게 한 수 배운다고 합니다.

- 와! 무슨 영화입니까?

- 그건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카페가 있는 건물에 AKX 픽처스가 있습니다.

- 그럼 <레드 타이거>네! 그거 어지간한 전투 장면은 대역 안 쓰고 와이어도 없이 찍겠다고 선언한 본격 리얼 액션 영화입니다. 그래서 서정우가 필요한가 봅니다.

- 서정우가 무술감독 하나보다!

- 서정우가 무술감독! 영화 개봉 언제 합니까?

- 아직 찍지도 않았습니다.

- 서정우도 출연할까요?

- 직접 출연? 그럼 전 무조건 개봉 당일에 볼 겁니다.

- 전 시사회 초대권을 어떻게든 구해봐야겠습니다.

- 초대권 확보 경쟁이 꽤 심할 텐데 구할 수 있을까요?

서정우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 이런. 아까 1층 카페."

그때 카메라가 그를 찍는지는 확인했지만, 사람이 눈으로 본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중에 누가 올렸네.'

비서가 물었다.

"그럼 사장님하고 무술감독이나 출연 문제를 협의하신 게…."

"아닙니다."

"아니군요. 혹시나 하고 기대했습니다."

김성준이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제안했다.

"서 형사님. 이 문제는 저희 쪽에서 바로 반박 발표를 하겠습니다."

"아. 예.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냥 오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을 겁니다. 그 영화는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니까요. 사람들이 오해라는 걸 믿게 하려면 왜 여기 찾아오셨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서정우는 오늘 김성준과 권세창 살인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걸 밝힐 수는 없다.

그런데 서정우가 여기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인터넷에 여러 가지 추측성 소문이 퍼질 수 있다.

서정우는 살인마를 잘 잡기로 유명한 형사다. 그 방향으로도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하다. 범인이 그걸 보고 뭔가 눈치채면, 그 사건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서정우가 말했다.

"사람들이 믿을만한 방문 이유가 있어야겠군요."

"예전에 저와 윤미를 구해주신 일 때문에 오셨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건 제가 찾아가야지 찾아오시게 할 일이 아니니까요."

"확실히 그런 해명은 안 하느니만 못하겠군요."

서정우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안을 내놓았다.

"그러면 지금 소문을 약간만 인정하는 쪽으로 가지요. 그 영화에 그냥 몸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조언만 몇 개 하기로 했다고 하는 겁니다. 강서준 씨나 권경철 씨와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잖습니까? 아. 물론 무보수로. 제가 공무원이라서."

김성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럼 서 형사님이 쉬시는 날에 여기 잠깐 들러서 조언하시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전 그 대가로 커피 한 잔 대접했다고 하면 되겠군요. 방금 커피를 드린 건 사실이니까요."

"그거 좋네요."

김성준이 즉시 회사 홍보팀을 불러 지시했다. SNS용 해명 문구가 바로 작성되고 그 자리에서 서정우와 김성준이 내용을 확인했다.

간단한 해명문이라 고칠 부분은 딱히 없었다. AKX 픽처스 홍보팀은 회사 공식 SNS 계정으로 그 해명문을 발표했다.

홍보팀장이 설명했다.

"저희 팀에서 조금만 퍼나르면 금방 인터넷에 퍼질 겁니다. 서 형사님 소식이야 워낙 핫이슈니까요. 하하하."

"아. 예. 그럼 전 이만."

홍보팀장은 살짝 당황했다.

"예?"

"일이 다 해결됐으니까 저는 가야지요."

"그게…. 빠르게 상황을 진압하려면 유명한 사람들의 발언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그 상황의 당사자들이요."

"강서준 씨와 권경철 씨요?"

"예. 지금 아래층에 있습니다. 그분들 SNS로도 같은 이야기를 하면 오해는 바로 풀릴 겁니다. 가서 같이 확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지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서정우는 홍보팀장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김성준도 따라갔다.

7층에 있던 강서준이 서정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서 형사님. 일은 다 끝나셨어요?"

"두 분과 같이 마무리할 일이 남았습니다."

"네?"

홍보팀장이 옆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강서준이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SNS에 올라온 글들을 확인했다.

"이런. 아까 우리 목소리가 좀 크긴 했죠. 제가 바로 올릴게요."

강서준이 즉시 SNS에 해명 글을 올렸다.

- 저와 서 형사님은 같이 테러리스트와 싸운 사이입니다. 그 전에도 지하주차장에서 레몬플라워를 지키기 위해 같이 싸웠고요. 되게 친한 사이라서 새 영화 <레드 타이거>의 액션 장면에 도움을 조금 받기로 한 겁니다. 커피 한 잔 사주기로 하고요. 그 이야기를 누가 엿듣고 올리셨네요.

강서준이 그렇게 SNS에 글을 올린 후에 활짝 웃었다.

"이야아. 그러니까 이제 서 형사님이 저한테 비전의 기술을 가르쳐주시는 거네요?"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 간단한 동작 한두 개만…."

"그 보약도요!"

"그냥 카페인하고 타우린이 듬뿍 들어있는 자양강장제를 사서 마시라니까요. 그게 더 맛있고 기운도 나니까."

"저도 그 보약이 꼭 먹고 싶습니다!"

"어…. 한 병 정도 구해보겠습니다. 그 자양강장제."

옆에서 권경철이 스마트폰을 정성스럽게 터치했다.

"잠깐! 잠깐! 서 형사님. 저도 올리고 있습니다. 전 손가락이 굵어서 오타가 잘 나기 때문에 좀 시간이 걸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도 기술 몇 개만 좀. 보약도 좀."

"보약 아니라니까요. 자양강장제라니까요."

"뭐가 됐든 이선화가 마시는 그거 저도 좀 주십쇼. 운동 빡세게 하고 나서 먹게."

갑자기 7층 유리문이 활짝 열리면서 이선화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녀가 씩씩대며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 말도 없이 누가 정우 씨한테…. 어머. 정우 씨도 있었네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서정우에게 걸어왔다.

"정우 씨. 혹시 여기 나 만나러 온 거예요?"

"설마요."

"쳇."

서정우가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였다.

"SNS에 올라온 거 해명하는 중입니다. 아니면 벌써 갔을 겁니다."

이선화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녀가 도착하기 전에 본 건 서정우가 강서준과 권병철을 훈련 시키고 영화에도 출연한다는 루머였다.

지금은 해명 글을 확인했다. 옆에서 홍보팀장도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일이 이렇게 된 거구나. 뭐, 맘에는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지."

권경철이 스마트폰을 번쩍 들며 말했다.

"후우. 드디어 다 올렸다. 오타 안 내느라고 힘들었습니다. 하하하."

이선화도 말했다.

"그럼 나도 SNS에 올려야지. 오늘 여기 영화 레드 타이거 회의가 있는데, 나 보려고 온…. 아니다. 조언 몇 개 해주러 온 거라고…."

그녀가 스마트폰에 글을 입력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정우 씨. 그런데 진짜 여기는 왜 온 거예요?"

강서준과 권병철이 서정우를 보았다. 아까는 그냥 일이 있어서 왔나 보다 했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듣는 사람이 많은 여기서 살인 사건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 그 자양강장제 몇 병 선물하러?"

"선물을 왜요?"

"그러니까… 약혼이라도 하실 거 같아서?"

김성준은 깜짝 놀랐다.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선화도 놀랐다.

"앗! 사장님 약혼하세요?"

저쪽 세계에서는 이미 결혼했다.

서정우가 대답했다.

"몰랐습니다. 그냥 슬슬 할 때가 되었다 싶어서요."

김성준이 감탄했다.

"서 형사님은 정말 직관력이 뛰어나시군요."

"제가 눈치가 빠른 편입니다."

이선화가 서정우의 팔을 꼬집었다. 서정우는 왜 그러나 싶어서 그녀에게 물었다.

"왜요?"

"하나도 안 빠른 것 같은데!"

"네?"

"이것 봐!"

이선화의 뒤에서 영화감독이 들어왔다.

"다들 약속보다 일찍 오셨…. 어? 서정우 형사님?"

서정우도 영화감독을 보고 살짝 놀랐다.

'저 사람이 이번 영화의 감독이야?'

서정우는 지금 나타난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여기가 아니라 저쪽 세계의 미사리 전투 현장에서 잠깐 만났다.

감독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꼭 만나고 싶었는데."

"감독님이시죠?"

"아, 하하하. 예. 장현성입니다. 이 영화 때문에 이선화 씨를 도와준다고 하셔서 저도 아실 줄 알았는데, 제가 그 정도는 아닌가 봅니다."

"전 그냥 이선화 씨 움직임만 좀 봐주는 거라서요."

이선화가 말했다.

"장 감독님은 되게 유명한 분이신데. 저하고 천만 영화도 찍으셨는데."

"그 영화는 봤습니다."

이선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두 번 찍었다. 두 번 다 주연이었다. 그중 한 편의 감독이 장현성이다.

장현성이 물었다.

"보기에 어떠셨습니까?"

"재미있더군요. 액션 영상 편집을 특히 잘하시던데요."

저쪽에서 장현성이 그걸 잘한다고 들었다.

"그게 보이시는군요. 그럼 배우들이 싸울 때 움직임은요?"

"어…. CG는 참 좋았는데…."

CG의 기술력은 이쪽 세계가 저쪽보다 압도적으로 좋다. 반면에 저쪽은 CG가 없을 때의 움직임이 훨씬 뛰어나다. 저쪽에서는 전투 스킬 각성자들이 연기하기 때문이다.

"CG라 그런지 실전에서 쓸 수 없는 동작들이 많았습니다. 제 눈에는 그게 좀 어색하게 보여서…."

장현성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맞게 보셨습니다. 그때는 화려함에 치중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대신에 이번에는 CG를 최소화하고 실제 액션으로 모든 전투 장면을 처리하려 합니다."

서정우가 슬쩍 웃었다.

'저쪽 세계에서는 CG에 쓸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는데, 여기서는 그게 새로운 도전이 되나 보다. 장현성 감독은 저쪽에서도 실제 액션을 잘 찍기로 유명한 감독이라고 했으니까.'

"감독님이 찍으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사실 제가 구상한 진짜 멋진 장면들은 배우가 와이어 없이는 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나서 포기했습니다. 그런 장면이 너무 많아서 아쉽습니다. 그런데."

장현성이 군침을 삼켰다.

"서정우 형사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전 배우가 아니라서요."

"이선화 씨가 전에 방송에서, 서 형사님은 로맨스 연기와 액션 연기가 다 된다고 하던데요."

서정우가 이선화를 돌아보았다. 이선화가 얼른 변명했다.

"스토커 유인할 때요. 그때 데이트하는 연기 엄청 잘했잖아요! 난 진짜 데이트하는 줄 알았네."

"그거야 그놈 잡으려고 그런 거고."

그때는 상대가 이선화라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159. 맛보기

이선화와 강서준은 영화 레드 타이거의 남녀 주인공이다. 권경철은 그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조연이다.

권경철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지만, 그건 아직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되지 않았다.

서정우는 겉으로는 그 영화에 몇 마디 조언하기 위해 이 회사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루머를 덮기 위해 AKX 픽처스에서 그렇게 발표했다.

그런 이유로 온 사람이 회의 시작 전에 돌아가 버리면 그림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그는 회의를 잠깐만 구경하기로 했다.

감독 장현성은 화이트보드에 선을 그려가면서 배우들이 해야 할 액션이 어떤 것인지 설명했다. 그가 이 회의를 배우들과 하는 이유는, 그 액션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역 없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서준은 물론이고 권경철도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와. 저걸 우리가 하는 건가요?"

"그러게. 미치겠네."

이선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아."

'저걸 소화하려면 훈련 더 해야겠는데?'

서정우는 구경만 할 마음으로 이선화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간섭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저대로 하면 이선화가 다친다.

그가 슬쩍 끼어들었다.

"감독님. 일반인이 벽을 그렇게 밟고 뛰면 발목을 다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건 서 형사님이 호텔에서 산업스파이 조직과 싸웠을 때의 동선을 참고한 겁니다만?"

"다칩니다."

"그래도 이 장면은 꼭 필요한데….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서정우가 화이트보드의 앞으로 걸어갔다.

"실전에서는 이 부분에서 벽을 밟는 것보다는."

일반인이 서정우를 따라 하면 다칠 위험이 너무 크다.

그가 이동 경로를 수정했다.

"여기서 적의 시선을 저쪽으로 유도하면서, 정작 배우는 이쪽으로 파고들어서 적의 팔 관절을 먼저 제압하고, 곧바로 뒤를 잡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가 지금 설명한 건 이족보행 몬스터와 싸울 때 쓰는 기본 기술이다.

몬스터와 그 정도로 근접하면 죽을 확률이 급격히 높아지지만, 전투에서 몬스터가 바짝 접근하는 상황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건 그럴 때 쓰는 기술이다.

"호오. 이것도 괜찮군요."

"일반인도 훈련만 받으면 쓸 수 있는 기술이니까요."

서정우는 처음에는 장현성의 이야기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잠깐 구경이나 하다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전투 장면의 동선에 관해 몇 마디 했더니 장현성의 호응이 굉장히 좋았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다 보니 할 말은 점점 더 많아졌다.

장현성이 원래 생각한 건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전에서 쓰면 허점이 너무 많이 드러난다.

서정우는 그걸 실제 전투 경험을 기반으로 수정해주었다. 그의 수준에 맞춰 수정하면 연기하는 배우가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을 한참 낮췄다.

이렇게 남에게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 각성자 특수부대에 있을 때 많이 해봤다.

사병인 그가 가르친다고 해서 불만을 품는 간부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가 그곳에서 이룬 업적이 너무 많았다.

목숨이 걸린 전투를 자주 하는 각성자 특수부대원들은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라면 그게 뭐든 최선을 다해 배웠다.

장현성은 액션 장면에 대한 다른 구상들도 줄줄이 꺼냈다. 서정우는 옛날 생각이 나서 나름 설명하는 재미가 있었다. 감독의 호응이 좋으니 말이 더 술술 나왔다.

그는 그렇게 삼십 분 동안 실전 기술 위주로 이것저것 수정해주었다.

이선화는 그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 그녀를 권경철이 슬쩍 가리키며 강서준에게 속삭였다.

"야. 저거 지금 표정 좀 봐라."

"되게 뿌듯해하네요."

서정우는 그들의 잡담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아. 저는 그냥 조언 몇 마디만 하는 거였지요. 그럼 전 여기까지만."

감독 장현성은 당황했다.

"예?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SNS에 해명한 수준의 조언은 충분히 했으니까요. 이제 가서 밥 먹어야죠."

"서 형사님! 이렇게 맛만 보여주고 가시면 우린 어쩌라고…."

서정우는 붙잡는 감독 장현성을 뿌리치고 AKX 픽처스를 빠져나왔다.

사장 김성준이 따라 나오며 물었다.

"실전에선 저렇게 움직여야 하는군요."

"일반인 기준으로는요. 안 그러면 배우가 다치니까요."

"서 형사님이라면 다르게 하시겠지요?"

"저야. 뭐."

그냥 쏴버리는 걸 선호한다.

김성준이 웃었다.

"하하하.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아. 오신 김에 식사라도 같이하시죠."

"오늘 같은 상황에서 사장님과 식사를 하면 아까 해명한 게 다 소용없어질 겁니다. 그리고 전 권세창 씨 살인 사건을 좀 더 조사하러 가야 해서요."

"아. 그 친구…."

김성준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혹시 언론플레이가 필요해지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을 내는 건 우리 회사의 전문분야지요."

"그럼 전 이만."

서정우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이선화가 달려왔다.

"같이 가요!"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녀가 타자마자 문이 완전히 닫혔다.

서정우가 물었다.

"회의는 어쩌고요?"

"회의 캔슬됐어요."

"방금까지 잘했는데?"

"그러게요. 누가 너무너무 잘하다 가버려서 이후 일정이 사라졌죠."

"난 SNS에 공개한대로 조언만 조금 한 것뿐입니다만?"

"감독님이 원래 하셨던 액션 구상을 다 갈아엎겠대요. 정우 씨가 설명해준 완전 실전 액션으로 간대요. 그러려면 대본도 수정 들어가야 해요. 이야기의 큰 줄기는 그대로지만요."

"뭐. 알아서 하시겠지."

"아직 공석인 에이전트 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대요. 비중이 경철 오빠 배역만큼 커질 거래요. 아. 이제 김이 아니구나. 감독님이 에이전트 서로 바꾸겠다고 하셨으니까."

"그 서가 내가 생각하는 서는 아니겠지요?"

"서정우의 서일걸요?"

"꿈도 꾸지 마시라고 해요."

"사실 에이전트 서라고 한 거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씀 같았어요. 그런데 실전 액션을 자문해달라는 건 진심 같던데."

"그만하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방향은 잡아줬으니까, 우리는 훈련이나 하러 갑시다."

"네? 우리 밥 먹으러 가는 거 아녔어요?"

"놀면 뭐합니까? 갑시다. 훈련하러."

"우이씨! 밥은 먹이고 시켜요!"

서정우가 슬쩍 웃었다.

"농담입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서정우는 이선화와 밥을 먹은 후에, 평행차원을 넘어갔다.

그는 몬스터 사체 처리 업체를 찾아갔다.

잡으면 돈이 되는 몬스터는 꽤 많다.

적성 게이트처럼 곤충형 몬스터가 나오는 곳은 돈은 별로 안 되고 위험하기만 하다. 거기서도 가끔 레드 포션용 희귀 성분이 추출되는 놈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짐승형 몬스터가 나오는 곳은 돈이 꽤 쏠쏠하게 된다. 짐승형 몬스터를 잡으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규모 축산업은 이미 전멸했다. 지금 구할 수 있는 진짜 고기는 소규모로 키우는 것이나 산에서 사냥한 것뿐이다. 지금은 고라니도 없어서 못 먹는다.

이쪽 세계의 권세창은 멀쩡히 살아있다.

그는 몬스터 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에 다녔다.

몬스터 고기는 맛만 없는 게 아니다. 독 같은 위험물질에 오염되어 있는 것도 종종 나온다.

이 공장에서는 그런 물질이 있는지 검사하고, 몬스터를 도축하고, 사람이 먹을 수는 있게 소금에 절이거나 합성 향료 등을 첨가하는 일을 한다.

서정우는 퇴근하는 권세창에게 다가갔다.

"권세창 씨?"

"누구…."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경찰이십니까?"

"음…."

"아니면 탐정?"

저쪽 세계는 탐정법이 논의만 되고 있지 통과되지는 않았다. 반면에 이쪽 세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탐정이나 무장 경호원 등이 합법적으로 활동했다.

"비슷합니다."

권세창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러시죠. 멀리는 못 갑니다만."

"공장 바로 앞에 저 카페로 가시죠."

서정우는 카페에서 질문했다.

"배를 타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만 타도 멀미가 심해서 옛날부터 배는 탈 생각을 안 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배를 탈 일도 없지만."

해양 몬스터 때문에, 먼 바다로 나가는 배는 반드시 군함이 호위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침몰하는 배가 곧잘 나왔다.

저쪽 세계의 권세창은 배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이쪽 권세창의 말대로라면 저쪽에서 그 배를 탄 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싫은데도 타야만 할 이유가 있었겠지. 이건 저쪽 가족의 말과 같네.'

어차피 이건 사실대로 말하는지 확인만 하려고 물은 것이다. 그가 본론을 꺼냈다.

"이연석이라고 압니까?"

"아니요."

서정우도 그럴 줄 알았다.

'여기서는 역시 이연석을 안 만나서 살아있는 거네. 그놈을 만나면 죽을 운명. 안 만나면 살 운명.'

그는 몇 가지를 더 물어본 후에, 권세창을 직접 만난 또 다른 이유를 꺼냈다.

"혹시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도 쓰십니까?"

권세창은 살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제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아는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김성준 씨라고."

"아아. 성준이 형. 연락 끊긴 지 너무 오래됐네요."

"그래서, 쓰십니까?"

권세창이 의심을 버리고 머리를 긁었다.

"이것저것 써보고는 있습니다만…. 요즘 영화 추세와 제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요."

"시나리오 하나 맡기면, 우리 세상에서 통하게 각색해줄 수 있습니까?"

"예? 그게…."

"읽어보시고 취향에 안 맞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만."

권세창은 몬스터 사체 가공 공장 일을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한다.

이미 포기한 영화의 꿈이 다시 조금 살아났다. 시나리오 각색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물론 그러셔야죠."

서정우가 일어났다.

"아직 저쪽 일이 다 안 끝나서 나중에 드려야 하지만, 분명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저쪽 세계 권세창이 썼으니까.'

서정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선화가 말했다.

"장 감독님 영화 촬영 조만간 시작해. 알지? 스케줄 비워놓을 거지?"

"촬영 기간은 얼마나 되냐?"

"일주일? 그중에 오빠는 이틀 정도만 나오면 돼."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는구나."

"우리 제작 환경이 그런 거 오빠도 알잖아."

영화는 영화관에 걸리지 않는다. 20세기에 지어진 영화관은 대부분 파괴되어서 남아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영화도 드라마처럼 TV로 방송된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려면 제작 기간을 길게 잡을 수 없다.

"몬스터와 싸우는 장면은, 이틀 동안 최대한 많이 찍은 후에 그걸 이리저리 편집해서 쓸 거야. 장 감독님이 그런 거 진짜 잘하셔."

그날 밤에는 각성자 특수부대 윤현식 중령이 찾아왔다.

서정우가 물었다.

"형이 여긴 어쩐 일로?"

"전화로 하기는 좀 그런 이야기라서. 벽에도 귀가 있을지 모르잖아."

"뭔데?"

윤현식이 주변을 둘러본 후에 말했다.

"야. 정보 브로커 이주호가 죽었더라?"

"살려둘 가치가 없더라고."

"백상어 클랜도 전멸했던데?"

"다 죽진 않았지. 살아서 체포된 놈도 꽤 있어."

윤현식이 서정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너냐?"

"알고 온 거 아냐?"

"야. 넌 진짜…."

"진짜 뭐?"

윤현식이 눈을 반짝였다.

"진짜 더 강해졌구나! 난 네가 백상어의 팔다리부터 하나씩 자를 줄 알았는데, 그냥 화끈하게 통째로 쓸어버렸네?"

"붙어보니까 만만하더라고."

"진짜 이 정도로 빠르게 처리할 줄은 몰랐다. 아. 그 와중에 이홍국은 살려둬서 고맙다. 국회 게이트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죽으면 진짜 난리 났을 거다."

"이홍국 말이야. 형 말이 맞더라고."

"내 말?"

서정우가 씩 웃었다.

"잡고 싶은 놈을 찾을 때는."

그는 저쪽 세계에 잡고 싶은 놈들이 있다.

"이홍국을 이용하면 되겠더라고. 그놈은 안 얽힌 데가 없으니까."

광역수사대 마약계에서 나온 형사는 다선 국회의원이 그가 쫓는 마약조직의 고객이라고 말했다. 이홍국은 4선이다.

'그 형사의 반응을 보면, 그게 이홍국일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지.'

윤현식이 신나서 말했다.

"네가 이렇게 강해졌으니까, 우리가 그 게이트에 다시 갈 때는 널 중심으로 다국적…."

"난 안 간다고. 다음엔 알아서 하라고."

* * *

서정우는 이튿날 형사로 사는 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일단 유물 전문가 윤현중 교수와 약속을 잡았다.

시간이 조금 비었다. 그는 쌍둥이가 다니는 학교의 하교 시간에 맞춰 그곳을 찾아갔다.

쌍둥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를 나섰다.

서정우가 교문 근처에서 쌍둥이를 향해 손을 들었다.

박하연은 깜짝 놀랐다가, 바로 뒤로 돌아서 외쳤다.

"저기를 보아라! 누가 우리를 마중 나왔는가!"

친구들이 외쳤다.

"서정우!"

박다연도 외쳤다.

"내 말을 믿지 않던 자들이여! 죄를 뉘우치고 순순히 우리를 경배하라!"

서정우가 물었다.

"너희들 뭐하냐?"

쌍둥이가 즉시 대답했다.

"쟤들이 저번엔 서 형사님이 지나가다 잠깐 들른 거라고 해서요."

"또 올 거라고 하자마자 왔으니까, 재들은 앞으로 우리 말은 백퍼 믿을 거예요."

서정우는 피식 웃었다.

"지나가다 마침 수업 끝날 시간이 돼서 잠깐 들른 거야. 그런데 너네, 요즘도 그 꿈 꾸냐?"

박하연이 물었다.

"아빠 꿈이요? 네. 어젯밤에 꿨어요."

박다연이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에게 초능력이 생긴 듯."

"왜?"

"어제는 엄마도 같이 나왔거든요. 셋이 같이 아빠를 만났어요."

이건 서정우가 기대한 상황 그대로다.

'일반 등급 성물이라도 차원에 영향을 끼치는구나. 철우 아저씨와 쌍둥이가 이미 꿈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성물의 성스러운 힘이 그걸 좀 더 강화한 거겠지.'

박하연이 말했다.

"꿈에서 엄마가 아빠 때렸어요. 엄청 때렸어요. 아빠 죽는 줄 알았네."

"응?"

박다연도 말했다.

"맞으면서도 좋다고 웃었어요. 아빠 변태인 줄."

* * *

서정우는 유물 전문가 윤현중 교수를 만났다.

윤현중이 물었다.

"그 칼을 누가 샀는지는 알아내셨습니까?"

서정우가 대답했다.

"상황이 좀 더 복잡하게 됐습니다."

윤현중이 웃으며 농담 삼아 물었다.

"또 살인 사건입니까?"

"네."

"네?"

160. 아미타불

유물 전문가 윤현중 교수는 당황했다.

"전 농담으로 또 살인이냐고 한 건데…. 아, 아니지. 누가 죽은 겁니까? 혹시 제가 연락한 사람 중에 누군가 저 때문에…."

"아니요."

윤현중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교수님이 그렇게 물어보시던 연쇄 살인입니다."

윤현중은 바짝 긴장했다.

"어…. 제가 연쇄 살인이냐고 물은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 형사님이 워낙 그쪽으로 유명하시니까…."

"압니다. 저도 이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윤현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실제로 연쇄 살인 상황이 되니까 되게 긴장됩니다."

서정우가 윤현중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 정보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는 윤현중이 유물 전문가라는 걸 더 중요하게 보았다.

'성물을 찾으려면 먼저 유물부터 찾고 거기 담긴 사연도 알아야 하는데, 윤 교수님이 그쪽 권위자지.'

게다가 윤현중은 이미 경찰 수사에 여러 번 협조한 사람이고 조카가 형사로 근무한다. 그런 사람까지 못 믿으면 정보를 얻을 곳이 너무 제한된다.

서정우가 말했다.

"교수님. 이연석에 대해서 좀 알아야겠습니다."

윤현중은 펄쩍 뛰었다.

"헉! 설마 이 사장이 연쇄 살인을…."

"증거는 없습니다. 지금은 의심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이연석과 접촉하시거나,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알아보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윤현중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경찰 수사에 자문을 여러 번 했습니다. 수사에 방해되지 않게 잘 처신하겠습니…. 아!"

"왜 그러십니까?"

"혹시 이 사장이 장물도 다룬 겁니까?"

"맞습니다. 뭔가 아는 게 있으십니까?"

윤현중이 흥분하며 설명했다.

"제 조카가 수사하는 사건, 그러니까 제가 자문하는 김중득 유물 밀수출 사건 말입니다. 거기서 조사한 케이스 중에, 이 사장, 이연석이 장물아비라고 가정하면 설명이 되는 것이 몇 건 있습니다."

"이연석 짓이 맞을 겁니다."

서정우가 잠시 궁리했다.

'장물을 거래한 혐의로 이연석을 압박하면…. 그런다고 연쇄 살인에 대한 걸 자백할 리 없어. 살인죄가 훨씬 더 크니까.'

대신에 이건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

'두 경찰서의 공조 수사? 유물 밀수출 사건은 문화재관리청에서도 협조하고 있지?'

결론이 나왔다.

'판을 키워야겠네. 빠르게. 크게.'

판이 커져야 함부로 덮지 못한다.

"교수님. 누구에게도 저와 나눈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조카분 쪽에는 오늘 중으로 저희 쪽에서 연락할 테니까 그때까지는 철저히 비밀을 지키셔야 합니다. 정보가 누설되면 교수님도 위험해지십니다."

긴장한 윤현중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서정우는 그가 근무하는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는 회의실에서 2팀장 권병철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권병철은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또 연쇄 살인을 찾아냈구나. 우리나라에 연쇄 살인이 이렇게 많았나?"

백성민이 옆에서 말했다.

"그동안 안 밝혀진 걸 정우가 연달아 찾아내니까 많아 보이는 거죠."

"나도 알아. 그런데 정우야. 이연석을 잡는데 저쪽과 공조가 꼭 필요하냐?"

권병철은 기왕이면 이쪽 팀이 성과를 독식하는 게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서정우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그래야 자연스럽죠. 김중득을 조사하다 보니까 이연석이 나와서 잡았다고 해야, 배후에 있는 놈들의 눈을 가릴 수 있으니까요."

권병철은 바로 납득했다.

"그래. 장물아비 이연석은 저쪽하고 반씩 나눠 먹고, 우린 월척인 연쇄 살인마를 잡자. 내가 과장님하고 서장님에게 그렇게 보고하지."

"서장님도요?"

"네가 찍은 사건인데 서장님을 빼놓으면 나중에 삐지신다. 과장님하고 같이 들어가서 보고해야지."

* * *

두 경찰서의 서장, 형사과장, 그리고 담당 팀 사이에 이야기가 빠르게 오갔다.

이쪽 경찰서에서는 저쪽에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연석이 오랫동안 활동한 문화재 전문 장물아비라는 것과, 저쪽 팀이 수사 중인 문화재 밀수출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건 알려주었다.

연쇄 살인에 대한 건 일단 숨겼다.

이연석을 잡으면 성과는 나눠 가지기로 합의했다.

저쪽 경찰서에서 연락책으로 윤현중 교수의 조카 윤송아가 찾아왔다.

백성민은 신났다.

"이 중요한 일에 윤 경장님이 대표로 오시다니. 저처럼 형사과에서 인정받으시나 봅니다. 하하하."

"제가 제일 존재감이 없어서 온 거예요. 이쪽에서 제 포지션은 그럼 백 경사님인가요?"

옆에서 조민석이 말했다.

"접니다. 존재감 없는 포지션."

윤송아가 살짝 웃었다.

"어머. 전 농담한 건데. 우리 삼촌에게도 연락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제가 온 거예요."

백성민이 웃었다.

"하하. 역시 그렇군요."

그녀가 말을 추가했다.

"위장하기도 좋고."

"위장이요?"

"서 형사님하고 움직일 때 의심 안 받으려면 커플이 좋잖아요. 딱 좋은 나이죠. 우리 둘이."

백성민이 툴툴댔다.

"아, 예. 역시 정우가 문제네요."

윤송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서 형사님은 회의에 언제 들어오시나요?"

"정우는 따로 조사할 게 있다고 나갔습니다."

"네? 그럼 회의는요?"

"우리끼리 하라던데요?"

그녀가 아쉬워했다.

"아, 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괜찮아요."

* * *

서정우는 창고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경기도지만 서울과 가깝고 서정우의 집에서도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여기쯤인데."

저쪽 세계의 이 일대는 폐허로 변한 지 오래다. 서울 바깥 지역인 데다가 게이트가 몇 번이나 열려 전투에 휘말린 곳이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 건물이 들어서지도 않았다.

그가 저쪽 권병철 2과장에게서 받아온 자료에는, 이 지역이 폐허가 되기 전에는 여기에 저쪽 이연석의 비밀 창고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폐허가 된 건 저쪽 세계 상황이다. 지금 서정우의 눈앞에는 예전에 지어진 창고들이 있다.

"그 자료는 십 년 전 건데…. 이연석이 아직도 여기 창고를 쓰면 좋겠는데 말이야."

서정우가 창고를 찾아냈다.

그 건물은 창고치고는 꽤 튼튼하게 지어졌다. 입구 쪽을 감시하는 CCTV도 보였다.

수색영장은 없다. 이제부터 하는 일은 들키지 않아야 한다.

서정우가 평행차원을 넘어갔다.

각성자 수사대 2과장 권병철은 서정우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로?"

- 아. 과장님. 자료 부탁할 게 하나 더 있어서요.

권병철이 잠시 휴대폰을 보다가 물었다.

"각성자 수사대가 자료 뽑아주는 곳은 아닙니다만?"

- 어려운 거 아니고 사람 하나만 찾아주시면 되는데요.

"끄응. 누구입니까?"

- 이름이 김수철입니다.

"그리고요?"

- 어…. 컴퓨터를 되게 잘 다룰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해커가 됐을지도 모르고요.

"주민등록번호라든지 다른 정보는?"

- 모르는데요.

"어떻게 생겼습니까?"

- 하, 하하. 모르는데요.

권병철이 결국 화를 벌컥 냈다.

"이 사람이 진짜! 최소한 얼굴 사진이라도 보낸 후에 찾아달라고 해요!"

그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후우. 민상이가 아무리 잘 지내라고 했지만, 이건 아니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서정우가 휴대폰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맨입에 부탁한 건 너무했나? 다음에는 술이라도 한 병 가지고 찾아야겠네."

그는 이튿날 다시 형사로 근무하는 세계로 넘어왔다.

그가 넘어온 위치는 넘어갈 때와 조금 달랐다. 갈 때는 창고 밖에서 사라졌는데, 올 때는 창고 안에 나타났다.

이쪽 세계에서 보면 갑자기 공간을 순간 이동한 것처럼 보일 움직임이지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창고 안에서 3차원 공간 분석 스킬을 사용했다. CCTV 카메라는 잡히는 게 없었다. 대신에 건물 외부 CCTV를 관리하는 장비가 보였다.

"해커 김수철. 그놈만 잡으면 이런 장비를 조작할 수 있을 텐데."

해커 김수철은 옆 팀 형사 김정호가 납치된 사건에서 병원 환자 정보를 빼낸 사람이다. 그는 그 이름을 호텔 테러리스트 사건 때 국회의원 이홍국에게 자백제를 주사하고 알아냈다.

"상황 돌아가는 게 안 좋다고 판단하고 잠수를 탄 것 같긴 한데."

김수철이 없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을 방법은 있다.

그는 그냥 CCTV 관리 장비의 전원을 꺼버렸다.

"이건 이제 됐고."

다음 단계로 창고 내부를 조사했다.

안에는 물건이 많았다. 불상이나 벼루 같은 것들이 보였다.

"이게 다 골동품…."

뭔가 이상했다.

"돈이 되는 골동품을 이렇게 대충 관리한다고?"

어떤 것들은 선반에 올려져 있었지만, 구멍이 뚫리거나 반으로 쪼개진 것들도 몇 개 있었다.

"이거 생긴 것만 보면 오래된 골동품처럼 보이는데…. 짝퉁인가?"

그의 눈에 둘로 쪼개진 부처상이 보였다. 다른 부처상이 선반 위에도 있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선반 위의 부처상을 두 손으로 잡고 힘으로 뚝 부러뜨렸다.

안에서 하얀색 물체가 나왔다. 그 물체는 비닐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아. 이런."

이게 뭔지는 뻔했다.

"이것들이 부처님 뱃속에 마약을 숨겼네?"

창고 안에 구멍이 뚫리거나 둘로 쪼개진 골동품이 많은 이유도 뻔했다.

'외국에서 골동품을 수입하는 척하면서 속에 마약을 숨겼어.'

그가 이곳에 온 건, 권세창이 살해당한 이유나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비록 마약을 찾으러 온 건 아니지만, 원래 목적에 대한 답 하나는 찾아냈다.

'권세창 씨가 이걸 눈치챘나? 아니면 눈치챘을 수 있다고 이연석이 지레짐작했을 수도 있지. 이전에 사망한 두 사람도 마찬가지 이유로 살해당한 거고.'

이 안에서 증거가 될만한 걸 가져갈 수는 없다. 그는 여기 들어온 적도 없어야 한다.

부처상 하나를 둘로 쪼개긴 했지만, 그걸 해결할 방법은 있다.

그는 일단 두 조각으로 부러뜨린 부처상을 도로 하나로 합쳐놓았다. 언뜻 보면 멀쩡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금 간 부분이 보였다.

"이런 일단 이렇게 놔두고."

그는 창고 안에서 문을 열었다. CCTV는 이미 꺼놨다. 그가 밖에서 문을 닫았다. 문이 저절로 잠겼다.

서정우는 경찰서로 돌아갔다.

이미 밤이 됐지만 2팀은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연락책으로 온 윤송아도 남아 있었다.

그녀가 서정우를 보자마자 반가워했다.

"꺅! 서 형사님!"

"네? 누구…."

"저 윤송아예요."

"아. 윤 교수님 조카…."

"네. 제가 두 팀의 연락 및 수사 지원 역할로 왔어요. 참. 식사는 하셨어요?"

"식사보다 체포영장하고 수색영장이 급해서."

"네?"

서정우가 사람들을 회의실로 몰아넣고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창고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이연석의 비밀 창고입니다."

그 창고에 들어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백성민이 물었다.

"확실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쓰는 건 이연석이 맞아. 그렇게 몰래 숨겨두고 쓰는 걸 보면 거기 중요한 게 있겠지."

서정우가 사람들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저쪽 팀에서 문화재 밀매 혐의로 이연석을 체포하고, 그 시간에 우리는 그 창고를 조용히 수색하죠. 이연석은 밀매 혐의만 가지고는 살인 사건에 대해서 자백하지 않겠지만, 그 창고에서 좋은 게 나오면 상황이 바뀔 겁니다."

윤송아는 당황했다.

"네? 살인 사건이라니요?"

서정우가 팀장 권병철을 돌아보았다. 권병철이 말했다.

"그 창고에서 괜찮은 단서가 나오면, 그때 자세히 설명하지. 이게 보안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서…."

윤송아가 권병철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우리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우리 팀장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수사 공조고 뭐고 가만있지…."

"연쇄 살인을 의심하고 있는데, 숟가락 얹기 싫으면 말고."

"우리 팀장님은 제가 꼭 설득하겠습니다!"

"대신에 윤 경장하고 그쪽 팀장님만 아는 거로 합시다."

"네!"

* * *

관련 절차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영장은 검찰을 통해 법원에서 한밤중에 발부됐다.

윤송아가 소속된 팀은 이연석을 체포하러 출동했다.

서정우 쪽 팀도 조용히 움직였다. 그들은 서정우가 말한 창고 앞에 도착했다.

백성민이 물었다.

"야. 여기 꽤 외진 곳인데, 도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냐?"

"그냥 잘."

"이런 거 잘 찾아내는 건 진짜 신기하단 말이야."

문에 달린 전자식 잠금장치는 서정우가 직접 공구로 부숴버렸다. 하는 김에 내부 기판의 칩이 잘 부서지게 확실히 박살 냈다.

문이 열리자마자 손전등 여러 개가 창고 내부를 비췄다. 서정우도 안으로 들어가 전등을 켰다.

서정우는 제일 앞에서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서정우가 얼마나 강한지 다들 알기 때문에 그 상황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백성민이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 많은 게 다 골동품이야? 그런데 관리 상태가 왜…."

서정우가 일부러 선반 위의 부처상을 팔로 툭 건드렸다. 그건 아까 그가 부러뜨렸다가 도로 대충 붙여놓은 바로 그 부처상이다.

부처상이 바닥에 떨어져 둘로 갈라졌다.

서정우가 말했다.

"아. 실수로 부처님을 깨뜨렸다. 나무아미타불."

161. 밀매

서정우는 믿는 종교가 없다. 그런데 저쪽 세계에는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나 현상이 여럿 존재한다.

게이트가 열리는 건 차원 게이트 이론 등으로 어떻게든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치료 효과를 보이는 레드 포션은, 약을 그렇게 만들면 효과가 있다는 것만 알지 왜 치료되는지는 모른다. 여러 이론이 나왔지만 인정받은 건 없다.

견습 성녀 윤지민은 그 포션보다 더 강력한 상처 치유 스킬을 각성했다. 그 원리는 아예 미지의 영역이다.

윤지민 외에도 천주교나 불교 같은 종교의 성직자가 특별한 힘을 쓰는 경우는 종종 있다.

게다가 서정우는 고승의 사리가 성물이 된 경우를 두 번이나 보았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존중은 한다.

서정우는 실수인 척하며 부처상을 떨어뜨려 깨뜨렸다. 아까 이곳에 혼자 침입했을 때 부순 걸 감추기 위해 한 일이다. 그 안에 든 것을 보여줘 일을 빠르게 처리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래도 부처상을 두 번이나 깨뜨린 것이 마음에 살짝 걸려 사과의 뜻으로 한마디 했다.

"나무아미타불."

백성민은 불상이 깨지는 걸 보자마자 뒤로 휙 돌아서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린 아무것도 못 본 겁니다. 저건 원래 깨져 있었습니다. 다들 동의?"

조민석이 반대했다.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야. 너 언제부터 FM이 됐다고. 저거 골동품이잖아. 정우가 저거 물어주려면 집 팔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실수 좀 했다고 그걸 굳이 보고할 거냐?"

"그게 아니라 저거 좀 봐요. 부처님 뱃속에서 뭐가 나왔잖아요."

"응?"

서정우가 창고의 전등을 하나만 켜서 실내는 아직 어두웠다.

백성민이 부처상에 다가가 손전등을 비추었다. 깨진 사이로 비닐에 쌓인 하얀 물체가 보였다.

백성민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야. 이거 누가 봐도 밀가루는 아니지?"

조민석도 맞장구를 쳤다.

"그냥 딱 보기에도 마약인데요?"

서정우가 말했다.

"이연석이 마약 밀수도 했나 보네."

백성민이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골동품이 많이 보였다. 이미 깨진 것도 많았지만, 아직 깨지 않은 것도 여러 개가 있었다.

"그럼 여기 있는 골동품들은…."

서정우가 설명했다.

"당연히 짝퉁이지. 500년 전에 마약을 만들어서 비닐로 포장까지 한 다음에 부처상의 뱃속에 넣고 밀봉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휴우. 정우야. 난 너 집 팔아야 하는 줄 알았다."

"설마 그러겠어? 집 팔라고 하면 그냥 사표를 쓰겠지."

"야. 드디어 우리의 원대한 올림픽의 꿈이…."

"격투기가 낫다며."

"뭐면 어떠냐. 우리가 다 해먹으면 되지."

서정우가 손전등으로 마약을 비추며 말했다.

"되도 않는 소리는 그만 하고, 본론으로 가자.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바로 이거네. 마약."

"그래. 그렇게 보니까 아귀가 딱딱 맞는다. 정우야. 이거 일이 계속 커진다. 연쇄 살인에 마약 밀수까지."

백성민이 자랑했다.

"내가 그랬지. 이 사건 클 거라고."

"형. 내가 진지하게 묻는 건데."

"뭘?"

"굿 좀 할 줄 알아?"

전에도 백성민의 예측대로 일이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가 스토커를 잡거나 다른 놈들을 처리했을 때도 백성민은 이미 근처에 와있곤 했다.

"무당이 하는 굿?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역시 아니지?"

"타로점은 좀 본다만."

"응?"

백성민이 또 자랑했다.

"잠복수사 할 때 타로점 치는 사람으로 위장하면 의심을 잘 안 하거든. 실력 녹슬지 않게 하려고 가끔 홍대에 연습하러 가는데, 단골손님도 좀 있다."

"어. 그건 진짜 의외인데…."

2팀장 권병철이 말했다.

"이것들이 지금 놀러 왔나? 일 안 해?"

백성민이 말했다.

"이미 견적 딱 나왔잖아요. 이연석은 골동품 쪽은 처음부터 위장용이고 마약이 본업입니다."

서정우는 저쪽 세계 이연석의 정보도 가지고 있다. 저쪽에서는 마약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저쪽에서는 골동품상으로 살았어. 장물도 취급하고, 골동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보내기도 했지.'

그래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내 생각은 달라. 처음에는 골동품상을 운영하면서 장물 정도만 취급하다가, 십 년쯤 전부터 마약 조직과 손을 잡고 밀수입에 가담했을 거야."

"십 년쯤이라고 말한 근거는?"

"최초 사망자가 구 년 전에 나왔잖아. 초반에는 마약 밀수 경험이 부족해서 실수도 했을 거야. 그러다 점원에게 들키기도 했겠지. 그래서 살해한 거야. 구 년 전에."

백성민은 납득했다.

"그랬겠네. 그럼 살인범은?"

"처음은 몰라도,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이연석이 직접 하진 않았을 거야. 이연석이 마약 조직에 요청하면 거기서 사고사 전문가를 보냈겠지."

서정우가 윤송아에게 말했다.

"그런데 살인교사는 살인하고 처벌이 똑같죠. 그쪽 팀에서 이 부분으로 이연석을 압박하면 뭔가 나오는 게 있을 겁니다."

윤송아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맡겨만 주세요!"

"아니. 제가 아니라 우리 팀장님께 맡겨달라고 하셔야죠. 저야 의견만 내는 거고."

팀장 권병철이 말했다.

"그건 정우 말대로 하기로 하고, 여기 마약이 문제네. 이건 다른 곳과 같이 수사해야겠는데? 우리 전문분야가 아니잖아."

"그래야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