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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일본의 나가사키 현.

그곳에서는 며칠 전부터 지상으로 해양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는 기현상을 겪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쳐들어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많은 숫자가 내륙 안쪽으로 유입되면서부터였다.

고블린이나 오크에 비해 레벨이 높은 괴물들이 도시를 습격하며 간신히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저, 저게 도대체 뭐야? 무슨 괴물 같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간신히 생존했던 미나쿠치 타카키는 바다에 나타난 거대 괴물을 보고 넋이 나가 있었다.

콰광—!

폭풍후 치는 바다 너머로 웅장하게 기립한 놈의 모습은 마치 신이 내린 재앙과 같았다.

저 괴물이 일본 본토로 밀고 들어오면 정말 모든 것이 끝장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간다고?'

괴물의 모습이 깊은 바다 속으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놈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미나쿠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괴물은 어디를 향해 간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것이 향한 곳에는 반드시 잔혹한 파괴와 멸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051화 [Episode 11] 조우 (7)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부모님의 소식을 전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동영상을 찍은 스마트폰을 그쪽으로 전달하기만 하면 됐다.

'스마트 폰을 이런 식으로 써먹게 될 줄이야!'

그동안 비싼 시계 역할만 해준다고 생각했었는데, 100만 원짜리 디지털카메라가 되어준 것이다.

부모님의 생존을 확인한 할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셨고, 할머니의 옆에서 우리들의 동영상을 몇 번이나 틀어주셨다.

"재현아. 우리도 할아버지 할머니 영상을 볼 수는 없을까?"

"찍어달라고 할게요."

하동건이 찍어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영상을 보고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곧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별채가 완공되면 절대자의 문 스킬로 할아버지가 계신 본가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하동건 파티에게는 공사가 끝나는 동안만 본가를 거점으로 몬스터 사냥을 해주기를 부탁했다.

그 이유는 시간 때문이었다.

'그런 효과가 있을 줄이야!'

['별채' 건설 현장에 [기사] 칭호를 가진 가신이 세 명 함께합니다. 건설 효율을 50% 증가시킵니다.]

하동건, 오언주, 김다정 세 명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건설 효율을 높여주었다.

원래 일주일이 걸리는 별채 건설이 닷새면 완공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어제 있었던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본가 근처에 몬스터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몬스터들의 레벨도 그렇고 여기 돌아와서 사냥을 이어나가는 것 보다는 그곳에서 사냥하는 편이 효율이 몇 배는 더 좋았다.

'이제 여기는 사냥하려면 1km는 걸어가야만 하니까'

집구석 선포 영역이 반경 1km로 늘어난 이후 시민들의 사냥 빈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영역이 늘어났다는 것을 모르는 시민들이 평소 사냥하던 장소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이미 집구석 영역에 편입된 상태로, 남아 있던 고블린들은 어제 레벨업과 함께 모두 죽었다.

[다빈씨.]

[네, 재현님.]

[사람들에게 공지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우선 영역이 늘어났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세요. 이제 사냥을 위해서는 서면역 너머까지 나가야 할 겁니다.]

중요한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구호팀을 신설해주세요.]

[구호팀이요?]

[네. 영역 내에 있는 생존자들을 구조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새롭게 늘어난 영역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생존자들이 존재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시민 강정호가 사망하였습니다.]

'또 한 명 죽었다'

어제부터 벌써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안전한 집구석 선포 영역 내에서 말이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식수의 부족이었다. 몬스터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집 안에서 탈수 증세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절대자의 눈을 활용해 상황이 열악한 시민을 발견할 때마다 구호물자를 풀어주고 있었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아직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구호물자를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의식마저 잃은 채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찾아와 의료팀 신설을 요구했던 분들도 구호팀에 넣어주세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절대자의 눈을 활용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필요하다면 절대자의 문을 사용해 직접 찾아가거나 퀘스트 부여를 사용해서라도 치료할 생각이었다.

"재현아.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니?"

"그게..."

나는 지금 상황을 엄마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사정을 모두 들은 엄마가 말했다.

"그거라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요?"

"그럼."

엄마가 데려온 사람들 중 일부는 김다정과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힐' 또는 '케어' 능력이었는데, 케어의 경우 탈수, 기절, 중독과 같은 상태이상에 탁월한 성능을 지니고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의사 분들을 좀 만나봤으면 하는데, 종속의 계약을 맺으면 아마 비슷한 능력을 각성하게 될 거야."

그것은 엄마의 예상대로였다.

거의 8할 이상이 치료 관련 능력을 각성했다.

하지만 각성한 능력의 등급이 천차만별이기는 했다. 대부분이 D등급 또는 C등급으로 전체적인 수준은 낮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구호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태가 빠르게 진정되어 갔다.

서예진이 생존자들을 탐색해서 가장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 위주로 구호팀이 투입됐고, 나는 절대자의 눈을 이용해 물자가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흘밤낮을 고생한 끝에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집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거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다.

'...끝났다!'

마지막 집까지 확인했을 때,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고 곧바로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한 시간 정도 잤을까, 나를 잠에서 깨운 것은 시스템 알림이었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

영역이 늘어난 뒤로 계속해서 새로운 시민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덕분에 벌써 시민들의 숫자가 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의 해'

쏴아아아—

어느새 바깥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 안 잤는데도 개운하네!'

일일퀘스트를 통해 들어오는 보상 덕분에 체력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정신력이 늘어난 것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때 김다빈의 텔레파시가 전해져왔다.

[재현님.]

그 즉시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대답했다.

[무슨 일이죠?]

[구호팀에서 영역 바깥의 사람들을 구해오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영역 밖이요? 위험할 텐데요.]

[저도 말해봤는데,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반드시 나가야한다고 하네요.]

그들이 말하는 바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영역을 늘려가던 때는 생존자들의 상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를 곯고, 갈증에 시달리고는 있었지만, 심각한 탈수 증세로 죽기 직전인 경우는 잘 없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계에 도달하는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골든타임.

말 그대로 다시는 오지 않을 황금 같은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을 넘기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영역을 넓히게 되더라도 생존자 보다는 시체를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될 거라는 뜻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겠다라.'

지금 영역 바깥은 기껏해야 고블린 무리가 전부이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바다에서 몰려온 해양 몬스터들이 여기까지 몰려왔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에는 청새치들이 날아다니고, 길 위에는 육지 상어가 돌아다녔다.

가끔씩 거대 갑각류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바깥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기 힘든 환경인 것이다.

놈들이 찾아오고 사냥 팀에서도 사상자가 더러 발생하고 있던 상황이라, 몇 팀을 제외하고는 사냥을 중단시켰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전직 소방관들이 많아서 그런가'

소방관들 중에는 목숨 바쳐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아마 그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음에 들어'

[다빈씨. 사냥팀을 경호로 붙여드릴 테니 구호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현재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키며 움직일 수 있는 팀은 딱 두 팀밖에 없었다.

'이준혁 팀과 아빠가 이끄는 사냥 팀뿐이다.'

기준은 30레벨 대의 거대 갑각류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이준혁의 워터밤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갑각류의 갑옷을 박살낼 수 있었고,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자이언트 크랩(Lv. 33)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아빠는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 데도 사냥하러 나간 건가'

정산금이 아예 없는 것을 보면 혈족인 아빠가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뜻이었다.

아빠는 혈족의 힘을 개방한 이후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사냥에 재미를 붙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걱정되어 서예진의 생쥐를 붙였는데, 자이언트 크랩의 키틴질 갑옷을 주먹 한 방에 박살내는 모습을 본 뒤로는 걱정을 접었다.

그런데 그때.

[망치 상어(Lv. 25)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톱가오리(Lv. 22)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청색 꽃게(Lv. 28)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갑작스레 사냥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빠가 강하다고는 해도 이런 속도로 몬스터를 사냥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사람은 지금 시점에서는 오직 한 사람.

'할아버지다'

곧바로 하동건 파티 쪽으로 절대자의 눈을 사용했다.

쏴아아아아

그곳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콰광!

시간은 대낮이었지만, 먹구름에 뒤덮인 하늘이 토해내는 빛이라고는 번쩍이는 번개뿐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동건이 대답했다.

"몬스터 웨이브입니다."

예상대로 또 한 번의 몬스터 웨이브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걸로 벌써 세 번째다.'

나흘 전 쯤 처음 나타난 이 현상은 엊그제쯤 한 번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세 번이나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도 스쳐지나가는 몬스터가 대부분인 것은 같았으나, 평소보다 그 양이 더 많았다.

'이런 식이면 내륙 쪽에도 계속해서 해양 몬스터들의 비중이 늘어나겠지'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도대체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쿠드드득!

전방을 바라보니 또 한 번 세계수의 뿌리가 활약하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바다 괴물들이 이곳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만들어낸 나무뿌리 벽이 그것을 감당하는 중이었다.

푸욱! 콰직!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찔리고, 박살나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쉼 없이 올라오는 경험치 획득 메시지는 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몬스터의 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쿠구구궁! 콰아아앙!

할아버지가 만들어낸 나무뿌리 벽은 아직 견고했지만, 그 옆을 지키고 있던 콘크리트 건물은 아니었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콘크리트 건물이 박살나며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틈을 비집고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쐐애애액!

하동건의 창과 김가영의 화살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빠져나온 몬스터의 머리와 몸통이 터져나가며 즉사했다.

그러나 시체가 사라지는 만큼 그 사이 틈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몬스터들이 삐져나왔다.

"크릉!"

오언주가 수인화하며 다가올 전투에 대비했지만, 그녀에게 차례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나무뿌리 벽의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나무 거인들이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콰직! 푸욱!

나무 거인들에게서 뻗어 나온 촉수들이 흘러나온 몬스터들을 꿰어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이 버둥거리는 동안 나무뿌리가 확장하여 구멍을 완전히 메워버렸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압도적인 힘으로 균형이 유지되던 어느 순간이었다.

콰르르릉!

화려한 번개 아래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꿈틀거렸다.

'응?'

처음에는 단순히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콰르르르릉!

다음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야?'

놈은 아주 먼 거리에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도오고 어두운 하늘이라 그림자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 거리에서도 보인다는 것은 놈의 덩치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사라졌다?'

일순간에 놈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착각이었노라 생각했다.

그러나.

쿠구구구구―

땅이 진동했다.

콰과과과과!!

진동은 점점 더 커지더니 땅을 부수고, 건물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지진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더욱 강력해진 진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콰직!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땅이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콰과과광!

여드름이 터지듯이 콘크리트 바닥이 터져나가고 그곳에서 두꺼운 흙기둥이 솟았다.

과광!

비에 젖은 흙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색(白色)의 비늘로 가득한 거대한 머리였다.

거대한 파충류의 눈이 하동건 파티와 할아버지를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룡(Lv. 63)」

괴물의 등장이었다.

052화 [Episode 11] 조우 (8)

백룡의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모두 멍하니 놈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백룡도 별다른 반응 없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가신 소환을 쓴다면'

하동건 파티는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할아버지가 죽게 되겠지.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백룡에 대항하여 싸우란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런 괴물에 맞서라는 것은 죽으라는 뜻과 같았으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세계수의 수호자인 할아버지는 세계수로부터 일정 범위 이상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별채만 완성된다면'

집구석 영역이 반경 1km로 늘어나면서 별채의 영역도 마찬가지로 늘어나 있었다. 별채가 완성되는 순간 저 괴물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별채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38시간 21분 19초

아무리 효율이 50% 증가하여 건설 시간이 1.5배 빠르게 흘러간다고 해도, 38시간이면 최소 하루가 넘는 시간을 버텨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불가능해'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거라곤 백룡의 뱃속에 들어가서 가스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곳은 서예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

생쥐를 이용한 가스 폭발은 불가능했다.

'...가신들 중 한 명을 놈의 뱃속으로 들여보낸다면?'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텔레포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문병호였다.

폭발 직전에 가신 소환을 사용한다면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야!'

가신 소환에는 약 5초 정도의 딜레이가 생긴다.

불을 붙이는 타이밍이 늦으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불을 붙이는 타이밍이 빠르면 놈의 몸속으로 들어간 문병호는 죽은 목숨이었다.

'게다가 싸이클롭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백룡도 내부 폭발을 버텨낼 가능성이 높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전체적인 능력치와 함께 몸의 내구성 또한 같이 올라간다.

분명 한 방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어쩌면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나?'

일말의 약점이라도 찾기를 바라며 놈을 노려보고 있던 그 순간.

「백룡(Lv. 63)」

바다 깊은 곳에 서식하는 심해 괴물. 알을 낳은 직후라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백룡의 알은 오직 세계수 뿌리에서만 부화할 수 있다.

'음...?'

그것을 보는 순간 놈의 목적이 싸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단순히 알을 부화시킬 세계수가 필요했던 것뿐이라면?

그때 백룡이 움직임을 보였고, 그에 맞춰 하동건 파티가 백룡을 공격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다급하게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모두 멈춰요!]

정말로 놈이 싸울 생각이 없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이상하게 들린다는 거 알지만, 잠시만 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할아버지에게도 전해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할아버지도 세계수 뿌리를 움직여 놈을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내 명령에 문병호가 텔레포트까지 사용해가며 그를 말렸다.

"와 공격하지 말라는 기고? 싸움에서 선빵이 얼마나 중요한 긴지 모르나?"

짜증 섞인 이봉열의 물음에 문병호가 간절함을 담아 대답했다.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재현님의 부탁입니다."

"끄응."

그 직후.

『두려워하지 말라. 세계수의 수호자여.』

백룡을 경계하던 이봉열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세계수의 수호자라꼬?"

그것이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몬스터 첫날부터 자신의 옥상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저 거대한 나무의 이름이 세계수라는 것도.

백룡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놈은 세계수 쪽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토록 자그마한 세계수일 줄이야. 조심해야겠군.」

쿠구구구구―

땅이 진동했다.

하지만 백룡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한참 조심스러웠다.

미세한 진동이 이어지며 백색의 기다란 몸뚱어리가 땅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백룡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이봉열을 향해 다가왔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백룡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수의 수호자여 나와 계약해라.』

"...계약?"

『세계수가 제 힘을 되찾기 전까지 내가 보호해주겠다.」

그 순간.

"!!"

이봉열은 오른쪽 손등에서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작열통이 끝났을 때에는 오른쪽 손등 위로 화려한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백룡의 비늘 색과 같은 백색의 문신이었다.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사용해 나를 불러라. 언제든지 달려오겠다.」

그 말을 한 직후 이봉열의 눈앞으로 타조알만한 크기의 알이 둥실둥실 나타났다. 이봉열이 그것을 두 손으로 받자 백룡이 말했다.

「내 새끼를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룡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쿠구구구―

처음 등장할 때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백룡의 모습이 멀어져갔다.

모두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강덕수가 입을 열었다.

"고, 공격했으면 좆 될 뻔 했잖아!!"

"...재현님 명령대로 가만히 있어서 살았네요."

[시민 강덕수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강덕수는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시민 김가영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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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 김가영, 하동건의 충성도가 동시에 100에 도달하면서 가신 보유 한계치가 3개나 늘어났다.

'이것으로 총 18명인가'

여섯 명을 추가로 가신 등록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렇게 계속 늘려 가다보면 언젠가는 100명이 넘게 되겠지!'

일반 시민들 중에서도 충성도 100을 채우는 사람이 나오면 곧바로 가신으로 등록되며 가신 등록 한계치가 늘어난다.

엄마의 능력은 별다른 조건 없이 100명의 각성자를 다룰 수 있지만, 나의 경우는 차근차근히 늘려가는 대신 제한이 없었다.

대기만성형이라 할 수 있었다.

'엄마가 각성자로 만든 사람을 가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번에 엄마가 각성시킨 의료팀을 대상으로 실험해 봤는데, 종속의 계약을 맺는 순간 엄마의 휘하로 들어가면서 가신 등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각성자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연산 각성자는 그 비율이 너무 낮았다.

그런데 그때.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텔레포트'를 획득합니다.]

[잭팟 당첨!]

[축하드립니다.]

[각성의 알약(텔레포트)'을 획득합니다.]

'어?'

두 번째로 보는 잭팟 당첨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문병호였다.

'와, 진짜 어떻게 매번 이렇게 운이 좋냐'

각성의 알약이라는 것의 용도야 뻔했다.

먹으면 텔레포트 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는 알약인 것이다.

'이걸 어떻게 쓴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민들 중 충성도가 높은 사람에게 먹인 다음 가신 등록을 하는 것이다. 각성한 다음 가신으로 등록되는 것이니 공짜로 기사 한 명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산금을 포기하는 대신 경험치 수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투자처가 있었다.

두 가지 방법 중 고민하던 나는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다빈씨.]

[네, 재현님.]

[아빠 좀 불러주세요.]

혈족 버프를 가장 강력하게 받는 사람은 아빠였다.

그것은 혈족 중에 직접 몸을 움직여 싸우는 사람이 아빠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빠에게 문병호의 텔레포트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젊었을 적,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아빠였다.

여기에 텔레포트 능력이 가미된다면 전투력이 몇 배는 급상승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홀딱 젖은 몸으로 집으로 들어온 아빠에게 곧장 각성의 알약을 내밀었다.

"이게 뭐냐?"

"선물이에요."

"선물?"

아빠는 각성의 알약을 받아들고는 유심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영양제냐?"

"네. 삼키시면 돼요."

그가 좋아하는 삼다수를 상점에서 구입해서 건네주자 아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센스 있네 우리 아들. 물은 역시 삼다수지.."

아빠가 각성의 알약을 삼킨 순간.

새하얀 빛이 그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

"이게 무슨 일이냐? 아들. 아빠한테 이상한 거 먹인 거 아니지?"

아빠가 당황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황당해하는 그에게 말했다.

"아빠. 거기서 여기까지 순간이동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순간이동?"

"네."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면서도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아빠였다.

슈슉

"어엇?!"

당연하게도 텔레포트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혈족 김동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혈족 김동혁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호신강기'를 획득합니다.]

"어?"

아빠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문득 하나의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잠깐만. 그러면 엄마의 신뢰도가 100으로 만들면 엄마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엄마의 능력.

100명의 각성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능력을 획득 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부엌에서 밥을 준비하고 있던 엄마에게 달려갔다.

"아들!"

뒤에서 감격한 듯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보다 엄마가 더 중요했다.

"엄마!"

"응?"

현재 엄마의 나에 대한 신뢰도는 97.

3만 더 올리면 곧바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먹고 싶은 거라든지"

"갑자기?"

"없어?"

"으음...."

내가 재촉하자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네."

"떡볶이? 알겠어, 잠시만 기다려."

곧바로 떡볶이를 준비하러 나가려는데 감동한 얼굴의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아!"

어찌나 빠른지 꼼짝없이 아빠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아빠, 좀 씻고 나오는 게 어때.

"엇, 미안하다. 하하하."

"아빠. 그리고 씻고 나오면 21층에 다빈씨 알지?"

"그 일 잘한다는 아가씨?"

"찾아가봐. 아빠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그러마."

싱글벙글 샤워실로 들어가는 아빠를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고 오랜만에 최형준네 집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니 박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현님? 무슨 일이세요?]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그렇게 박혜원의 힘을 빌려 떡볶이를 해 드렸지만, 엄마의 신뢰도는 97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아직 비장의 수가 남았으니까'

조급해 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까.

[별채 건설이 완공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항상 있어왔던 청소가 시작됐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영역 내부에 있는 몬스터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육지 상어(Lv. 24)를 사냥하셨습니다.]

[육지 상어(Lv. 23)를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7)을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자이언트 랍스터(Lv. 29)를 사냥하셨습니다.]

[톱날 꽃게(Lv. 30)을 사냥하셨습니다.]

-------

내가 잡은 것으로 인정되는 만큼 경험치도 정산금도 겨우 1배수만큼만 획득되지만, 그 양이 너무나도 엄청났다.

덕분에.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경험치와 동시에 레벨업을 했고, 이번에는 별채가 아닌 집구석 영역이 늘어나며 다시 한 번 청소가 시작됐다.

[육지 상어(Lv. 23)를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7)을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별채의 공간과 더불어 새롭게 영역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숫자만 수천 단위였다.

'부여해'

그들에게 모두 시민권을 부여하는 순간.

[시민의 숫자가 10,00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시민들의 '직업' 획득이 가능해집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직업 연구소'가 추가됩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알림들이 끊임없이 울려댔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얼른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가요."

아빠는 구호팀과 함께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먼저 엄마를 모시고 별채로 향했다.

'절대자의 문'

우리 집 현관문과 본가의 현관문을 링크시킨 다음, 문을 열었다.

철컥.

문 너머로 익숙한 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할아버지! 저 왔어요!"

"누고?"

안방의 문을 열자 할머니의 옆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재, 재현이가?"

"네,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겼다.

[혈족 이지숙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혈족 이지숙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종속의 계약'을 획득합니다.]

'빙고'

053화 [Episode 12] 구원자 (1)

짧은 해후를 나누고 할아버지는 일을 하러 간다며 옥상으로 올라가셨다.

옥상에는 이전보다 다양한 식물들이 가득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수 줄기의 모습이었다.

햇볕이 옥상에 닿는 구조라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떻게 지내긴"

우우웅—

"잘 지냈지."

할아버지는 초록빛 생명력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아무래도 단수가 되었다보니 물 대신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할아버지 신기한 거 보여드릴까요?"

"으응?"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작은 텃밭 중 하나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평소 텃밭에 물을 공급하던 호스가 있었는데, 한동안 물이 공급되지 않아 빼빼 메말라 있던 놈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때요 할아버지?"

그것을 본 할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탱크의 물을 쓰고 있는 거냐? 아서라, 화장실 쓰기도 부족하다."

본가는 상당히 오래된 집이라 옥상에 물탱크가 존재했다.

그곳을 확인해보니 물이 거의 바닥나 있었다.

가스도 도시가스가 아닌 LPG 가스통을 썼는데, 그건 이미 진즉에 다 쓴 상태였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나는 허공에 물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손의 손바닥 위에 담아냈다.

"제가 만드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허공에 떠 있는 물을 유심히 보더니 물었다.

"이기 진짜가?"

"네. 물탱크 가득 채워놨어요. 가스도 마찬가지고요. 전기도 들어올 거예요."

"그게 다 재혀이 니 능력이라꼬?"

"네. 앞으로는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어요. 몬스터들이 들이닥치는 일도 없을 거고요."

"그기 무슨 소리고?"

할아버지에게 내 능력에 대한 것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더불어 할아버지와 함께하던 사람들에 대한 권한을 모두 할아버지에게 이양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신뢰도를 높이면 충성도가 열리는데, 이걸 30까지 높이면 가신 등록이라는 걸 할 수 있거든요? 할아버지는 이촌이셔서 총 3명까지 등록 가능해요."

"음..."

대충 눈치를 보니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신 거 같았다.

아무래도 할아버지에게는 조금 어려운 개념일 것이다. 컴퓨터 게임을 해 보신 것도 아니었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도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었으니까.

'천천히 가르쳐드리면 할아버지도 익숙해지시겠지!'

다른 건 몰라도 가신 등록 시스템만큼은 확실하게 알려드리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일과를 수행하고 계셨다.

감을 따고, 상추를 수확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내려가 볼게요."

"오이야."

직접 걸어서 내려가도 되지만, 새롭게 얻은 스킬도 시험해볼 겸 절대자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1층 안방을 바라보면서.

'텔레포트.'

슈슉—

곧바로 엄마와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동 직후 약간의 어지러움을 제외하고는 아무 이상 없었다.

'이렇게도 사용되는구나! '

절대자의 눈으로 보는 시야로도 텔레포트가 사용 가능하다는 것.

'활용도가 제법 높겠어!'

절대자의 문 스킬은 문이 있는 곳이라는 제한이 있었지만, 텔레포트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단지 거리가 멀어지면 그만큼 소모되는 정신력이 증가하는 것뿐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정신력을 높여 놓은 탓인지 텔레포트 한 번으로는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엄마."

"재현아?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어? 할아버지는?"

"위에서 일하고 계셔. 할머니 상태는 좀 어때?"

"그냥 잠든 것처럼 보이는구나. 다행히 혈색도 좋으시고, 어디 안 좋은 데는 없어 보이네"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만큼 심각한 상태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으셨다. 할아버지의 정기적인 생명력 공급 덕분인지 할머니는 아주 멀쩡하셨다.

"다행이네."

걱정스런 눈길로 할머니를 간호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엄마의 능력을 얻었다.'

종속의 계약.

엄마의 신뢰도가 100이 되면서 100명의 각성자를 양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

당장 각성자로 만들 후보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충성도가 높은 사람, 사냥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

그들 중에서도 좋은 능력이 나온 이들을 가신으로 받으면 된다.

'대체적으로 높은 등급의 능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가신이 되었을 때 더 높은 레벨과 더 좋은 능력이 나타났으니까.'

스킬창을 확인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던 그때,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목록이 하나 있었다.

환수 소환 (1/10)

'뭐지?'

확인해 보니.

'어라?'

[환수 소환] (10,000,000,000원) (활성화)

100억 짜리 환수 소환 버튼이 활성화가 되어 있었다.

환수 소환.

이미 삼족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100억이 아깝지 않은 투자였으니까.

'환수 소환'

[환수 소환 비용으로 10,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그 직후.

우우웅

은은한 초록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한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파아아앗!

초록빛깔의 알이 생겨났다.

꼭 파릇파릇한 잎사귀들로 둘러싸인 듯한 모습이었다.

이내 입사귀들이 점점 벌어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 태어났다.

분홍색의 한 떨기 꽃봉오리 같은 옷차림과 날개를 가지고 있는 그것은 요정이었다.

「페어리(fairy) (Lv. 1)」

그것은 작은 입으로 방긋 웃더니 날개를 퍼덕거렸다.

페어리가 날개를 퍼덕거릴 때마다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것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이내 작은 몸을 일으킨 그것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날아오르는 데 성공했다.

내 주위를 맴돌던 그것은 어깨에 안착하더니 두 팔을 벌리고 얼굴을 안아 왔다.

'귀엽네.'

그때였다.

"크흠."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옥상 일을 마치고 내려오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할머니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우우웅

초록빛 생명력을 뻗어 할머니의 몸 전체에 골고루 퍼뜨리던 그 순간.

파르르

잽싸게 그곳으로 날아간 페어리가 할아버지가 뿜어내는 초록빛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었다.

"으잉? 이기 뭐꼬?"

[페어리(fairy)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영역 내의 자연 회복율이 100% 증가합니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려던 찰나.

사르르ᅳ

페어리가 할머니의 위에서 이리저리 날갯짓하며 반짝이는 가루를 흩날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할머니가 눈을 떴다.

"!!!"

할머니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할아버지의 흙 묻은 손을 보더니 한 마디 하셨다.

"할배요. 옥상 갔다 오면 손 씻으라고 몇 번을 말했는교....."

그리고.

"왜 이렇게 잠이...."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던 할머니는 다시 그렇게 잠에 빠져 들었다.

한 박자 늦게.

"할멈! 여보! 정신 좀 차려보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다그쳤지만, 할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숨을 고를 뿐이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페어리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니가? 니가 한 기제?"

그러더니 페어리를 향해 초록빛 생명력을 퍼부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봐라!"

그러나 페어리는 지쳤다는 듯 기지개를 켜더니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잠을 청했다.

"한 번만 더 해보라캐도!"

"할아버지."

"으잉?"

"진정하세요."

흥분한 할아버지를 마주하니 눈가에 고여 있는 물기가 보였다.

그것을 빠르게 훔쳐내는 할아버지를 모른 척 하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이 녀석에게도 정기적으로 생명력을 보급해 주세요. 그러면 페어리의 레벨이 오르면서 할머니가 깨어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질 겁니다."

그리고 언젠간 할머니가 완전히 깨어나실 것이다.

"참말이가?"

"그럼요."

아무래도 환수 소환은 단순히 랜덤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세계수와 연관이 있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환수 소환에도 각자 어떠한 조건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시민 심경택이 사망하였습니다.]

아까부터 시민들의 사망 메시지가 조금씩 출몰하고 있었다.

아마도 새롭게 지은 별채에서 받아들이게 된 시민들일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에서는 구호팀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섰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 백 명이 더 죽을 거다'

할 수 있다면 여기로 그들을 차출해오고 싶었지만, 현재 구호팀은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느라 바쁜 상황이었다.

거기나 여기나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똑같았다.

그러나 어디에 있었는지에 따라 생과 사가 갈리고 있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아마 지금쯤 전국적으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몬스터에게 죽는 사람, 집 안에 갇혀 굶어 죽는 사람, 몬스터와 싸우다 죽는 사람.

셀 수 없는 숫자가 그렇게 죽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동안 항상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었다.

몬스터들은 어째서 나타난 것이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하는가.

그러나 매번 세상은 내게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1차 목표는 달성했다.'

가족들을 구하는 것.

운이 정말 좋았다.

가족 모두가 각성자였던 덕분에 무사히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는 할머니만 깨어나신다면 완벽하다.

'2차 목표는..'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항상 함께하던 물음이 있었다.

나에게 왜 이런 거대한 힘이 주어진 것일까.

하동건, 오언주, 김다정, 서예진 등.

평범한 각성자들에 비해 내가 가진 능력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나마 내 능력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 정도.

그러나 그마저도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비교하면 조금씩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내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주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나에게 왜 이런 거대한 힘이 주어진 것일까.

계속해서 물었지만, 역시나 세상은 내게 답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나는 스스로 답을 내려야만 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었지!'

추억 속 영화의 유명한 대사였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전해지던 대사가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저 대사가 나에게도 의미가 컸다는 거겠지.

'2차 목표는... 조금 부끄럽지만, 우리나라를 구하는 거다!'

솔직히 세계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레벨업을 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별채를 짓는다면 한국 정도는 내 손으로 어떻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현재 내가 부여할 수 있는 시민권의 총 인구수는 22만 명.

최소한 이것만큼은 가득 채워야 하지 않을까.

그 중 내가 채워 넣은 인구는 겨우 1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니 1만 명을 넘어가면서 직업이란 게 생겼다고 했었지?'

시민들이 직업을 획득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시민 관리창에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우선 직업 연구소를 건설해야 하는 건가? 건설 모드.'

새롭게 추가된 건설 목록.

-직업 연구소 (2,500,000,000 원)

"직업 연구소" (Lv. 1)

시민들의 직업을 연구하는 연구소.

연구가 완료된 직업은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현재 연구 가능한 직업

-사냥꾼 : 사냥감의 부산물을 획득한다.

직업 연구소는 따로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하는 듯 했다.

마침 영역 내에 싸이클롭스가 엉망진창으로 다져놓은 평지가 존재했다.

그곳을 기준으로 연구소를 건설하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직업 연구소 건설.'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7일) 동안 시민 30명을 필요로 합니다.]

[건설 기간 동안 거주하는 시민 30명 에게는 하루 일당 20만원이 지급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아무래도 김다빈에게 말해서 건설 노동자 30명을 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054화 [Episode 12] 구원자 (2)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기 자신부터 바르게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여야 비로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을, 아니 나라를 구하기 위한 첫걸음은 내 목숨을 건사하고, 내 가족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 다음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신들의 가족을 찾아줘야 해.'

1등 공신들의 가족을 찾아주는 것.

우습게 들릴 지는 몰라도 이것이 가장 최대 효율을 뽑아내는 방법이었다.

최우선 목표는 레벨업을 통해 영역을 넓히는 것이었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줬던 이들이 바로 가신들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나를 위해 움직여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그들을 위해 움직일 차례였다.

'절대자의 눈'

하동건 파티는 자갈치역 근처까지 진출해 있었다.

별채의 영역은 자갈치역 바로 직전까지 확장되어 있는 상황.

순간이동을 하기에는 먼 거리였기에, 절대자의 문을 사용하여 영역의 끄트머리로 이동한 다음 그들을 불렀다.

[여러분. 잠시 뒤로 돌아와 주시겠습니까?]

그들이 여기까지 진출해 있는 것은 대신동에 있는 김가영의 부모님, 아니 어머님을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우선은 이곳 자갈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김가영의 가족을 구한 다음, 다른 이들의 가족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별채가 완성되는 닷새 동안 꾸준히 대신동으로 향하는 길을 뚫고 있었지만,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몬스터들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겨우 1km 뚫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영역 안으로 되돌아온 문병호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재현님? 여긴 어떻게.....'

"역시 아까 몬스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은 재현님의 힘이었군요."

눈치 빠른 하동건이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도 이제 재현님의 영역으로 편입된 겁니까?"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전 구역이 여기까지 넓어졌다면, 훨씬 안전하게 작전 진행을 할 수 있겠네요."

"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굳이 이곳에 하동건 파티를 머물게 한 것은 단순히 별채의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몬스터 웨이브 탓에 높아진 몬스터 밀도 때문에 대신동까지 이동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인데, 당장 본가에서 지하철역까지의 길도 뚫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별채가 완성되고 나면 그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우선 자갈치역 바로 앞까지 영역이 확장되면서 지하철역을 곧바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가영씨네 가족이 계신 대신동에는 오늘 안으로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김가영이 반신반의 하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게 가능할까요? 아무리 안전 지대가 생겨났다고는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지하철 선로를 뚫을 방법이 생겼거든요."

서예진을 이곳으로 데려오게 되면 다시 생쥐를 활용한 지하철 선로 독가스 전략이 사용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생쥐들을 부려서 자갈치역-토성역-동대신역-서대신역으로 이어지는 선로를 정찰하던 서예진이 말했다.

"그냥 보내셨으면 진짜 큰일 났겠는데요?"

"그러네요."

지하철 선로 내부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난이도가 헬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지상에 몬스터가 가득한 대신 지하에는 거의 없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곳은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해양 몬스터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메기, 꽃게, 문어, 장어와 닮은 괴물들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쏴아아아아—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 있는 그것들은 죄다 유혜린의 독가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철갑 장어(Lv. 32)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625,738,09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다크니스 옥토퍼스(Lv. 2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68,876,356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아주 노다지였다.

유혜린의 독가스에 죽은 놈들의 정산금이 아주 짭짤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름 : 유혜린 (Lv. 34) [+]

칭호 : [다섯 번째 종] [기사] [독술사]

신뢰도 : 94 충성도 : 100

각성 능력 : 포이즌 미스트, 포이즌 더스트

★퀘스트 부여」

종속의 계약을 맺는 순간 유혜린이 기사 칭호를 획득했기 때문이었다.

기사 칭호를 얻으며 정산금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만들어내는 독은 한층 더 강력해졌고, 농축된 독가루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생겨났다.

'달라진 것은 유혜린 뿐만이 아니다.'

옆에서 명상하고 있는 서예진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름 : 서예진 (Lv. 37) [+]

칭호 : [열 번째 종] [남작] [조련사]

신뢰도 : 72 충성도 : 76

각성 능력 : 생쥐의 여왕, 진화, 강화

경험치 분배율 : 200%

★퀘스트 부여」

그녀의 경우, 기존에 있던 기사 칭호가 귀족의 칭호인 남작으로 진화했다.

{남작}

(충성도*2)%만큼 모든 능력이 증가하며, 남작 칭호를 가진 가신이 사냥한 몬스터의 경험치와 정산금은 3배로 증가하여 지급됩니다.

※남작은 경험치를 분배하여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경험치와 정산금 배율은 그대로였지만, 충성도에 따른 능력치 증가 효과가 엄청나게 증가되었다.

신체 능력에서 모든 능력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증가폭이 2배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새로운 능력인 강화가 생겨났다.

강화 (B 등급)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는 대상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강화를 받는 생쥐는 훨씬 더 빠르게 뛰어다닐 수 있고, 웬만해서는 잘 죽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남작의 지위를 얻은 것은 서예진 뿐만이 아니었다.

기존에 기사로 있었던 하동건, 김다정, 오언주, 세 사람 모두 기사 칭호가 업그레이드 됐다.

하동건과 김다정의 경우 서예진과 같은 '남작'의 지위를 얻었고, 오언주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지위인 '자작'의 칭호를 얻게 됐다.

「이름 : 오언주 (Lv. 45) [+]

칭호: [아홉 번째 종] [자작] [전사]

신뢰도 : 100 충성도 :100

각성 능력 : 웨어베어, 태고의 생명력, 광폭화

경험치 분배율:200%

★퀘스트 부여」

[자작]

(충성도*3)%만큼 모든 능력이 증가하며, 자작 칭호를 가진 가신이 사냥한 몬스터의 경험치와 정산금은 3배로 증가하여 지급됩니다. 자작 칭호를 가진 가신은 가신 등록의 한계치를 3칸 늘려줍니다.

※자작은 경험치를 분배하여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남작과 별 다를 것 없었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한 가지 있었다.

-자작 칭호를 가진 가신은 가신 등록의 한계치를 3칸 늘려줍니다.

'덕분에 가신 등록의 최대치가 21명으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문병호, 강덕수, 김가영, 김건 등 모두가 종속의 계약과 함께 한차례 스펙업을 한 상태였다.

지하철 선로에 남아 있던 독가스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다음 하동건 파티를 향해 말했다.

[이제 출발해주세요.]

제일 먼저 강덕수.

"일어나라!"

철컥철컥!

「이름 :강덕수 (Lv. 32) [+]

칭호 :[세 번째 종] [기사] [지휘관]

신뢰도 :93 충성도:100

각성 능력 :강철의 기사단

★퀘스트 부여」

기사가 되며 기존에 있었던 '강철의 기사' 스킬이 '강철의 기사단'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그와 함께 자신의 몸을 둘러싸는 갑옷 뿐만 아니라 갑옷 골렘들을 소환해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돌격해!"

강철의 기사 열 기가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다.

서걱!

하나하나가 제법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갑옷을 입고 있는 강덕수 보다도 나을 지경이었다.

콰직!

자이언트 크랩의 집게발에 한 기가 당했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일어나라!"

다시 소환하면 그만인 갑옷 골렘일 뿐이었으니까.

갑옷 골렘에게 어그로가 끌린 몬스터들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진 상태.

"크하하! 가자!"

제일 신이 난 것은 강덕수 본인이었다.

강덕수가 열어준 길을 따라 하동건 파티는 무난하게 자갈치역 2번 출구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길은 뚫어놨습니다. 서대신역까지 스트레이트로 가시면 됩니다.]

약 3km 남짓 되는 선로,

일반인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신체 능력으로 전속력으로 달리니 5분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하루만에 도착했어...!"

[시민 김가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김가영이 서대신역의 개찰구를 나서며 말했다.

"...서대신역 2번 출구 역으로 나가면 바로 우리 아파트 단지 앞이야."

"가자."

2번 출구 바깥으로 나왔을 때.

"끼긱!"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출구 오른쪽, 도로와 도로 사이에 자그맣게 형성된 잔디밭에 고블린 무리가 있었다. 그것들은 콧날이 나무에 박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하늘 청새치를 사냥 중이었다.

굉장히 고무적인 광경이었다.

고블린이 생존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해양 몬스터들의 습격이 덜한 곳이었다는 소리니까.

'지형적으로 좋은 위치라서 그런가'

대신동은 주변이 자그마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세였다.

바다에서 쏟아진 몬스터들이 대신동 쪽으로 향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해양 몬스터들이 별로 없는 것은 아마도 그런 지형 덕분일 가능성이 컸다.

고블린들이 건재한 것만 봐도 영향을 덜 받았다는 건 확실했다.

'어쩌면'

타다다다—

하동건 파티는 고블린 무리를 무시하고 달렸다.

지하철역에서 김가영의 어머님이 계신 아파트 단지까지는 겨우 100m정도 거리였다.

왼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달려가니 곧바로 아파트 단지 하나가 나왔다.

"바로 진입한다."

아파트 단지 정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금 돌아가야 했지만 하동건 파티의 신체 스펙으로는 길이 아닌 곳도 길로 써먹는 게 가능했다.

화단 안으로 과감하게 파고든 하동건이 가볍게 점프하여 2m 높이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뒤를 따라 가볍게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키에에엑!"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열댓 마리의 고블린 무리였다.

우우웅!

그 순간 김가영의 활에 빛이 맺혔다.

그리고.

쐐애애액

고블린에게 닿기 직전 빛이 폭발하며 수십 갈래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푸부부북!

그것들 하나하나가 고블린의 몸을 꿰뚫는 살상 무기가 되었다.

"꽤애애액!"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8)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끼기기긱!"

그 모습에 살아남은 나머지 고블린들이 기겁하며 달아나기 시작했고, 갈 길이 바쁜 하동건 파티는 그것들을 무시하며 달렸다.

"어디로 가면 돼?"

"이쪽이야!"

김가영이 앞장서며 길을 안내했다.

'오?'

김가영의 어머님이 계신 아파트 동에 도착해보니 나무판자와 같은 것으로 출입구를 완전히 막아 놨다.

생존자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하동건이 창을 휘둘러 나무판자를 박살낸 뒤 파티원들을 향해 말했다.

"나랑 가영이만 올라갔다 올 테니까 다들 여기 좀 지켜줘."

"오케이! 일어나라!"

강덕수와 강철의 기사들이 출입구를 지켰다.

철컥, 철컥.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동건과 김가영은 계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발달한 신체 능력으로 성큼성큼 19층에 도착했을 때, 김가영은 자신의 집의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쿵쿵쿵!

"엄마! 엄마아—!"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을 담은 그녀의 외침이.

철컥.

"누, 누나?"

아무래도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명환아! 엄마는?"

"안에 계셔. 엇, 매형도?"

그리고.

"가영아!"

현관문 안쪽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민 김가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가영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빛의 화살'을 획득합니다.]

김가영은 그녀를 보자마자 곧장 품에 안겨들며 소리쳤다.

"엄마!"

"가영아아! 어이구 내 새끼!"

눈물겨운 가족상봉에 이어, 김가영이 서럽게 눈물을 터뜨렸다.

"허으윽 흐윽, 엄마아아."

"왜 울어 가영아. 무슨 일이야?"

"아빠가아아, 허어어엉."

김가영은 한동안 말을 전하지 못하고 계속 서럽게 울기만 했다.

완전히 다 전하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알아들은 것일까.

"아니야. 아니.."

"흐윽."

김가영의 어머님과 동생의 얼굴에 슬픔이 차오르더니 이내 눈물이 되어 밖으로 흘러나왔다.

"허어어엉, 엄마아아."

"아이고, 여보. 아이고...."

"..."

절망적인 상황에 만나게 된 가족치고는 너무나도 서럽고, 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세 사람이었다.

김가영의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이곳에 없는 단 한 명의 부재 때문이었다.

슬픔의 선율이 길게 이어졌다.

가족을 만난다는 희망을 이룬 김가영이었음에도, 어째서인지 그녀는 여전히 절망의 구렁텅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

세상은 불공평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대를 받고 자라는 이들이 있는 반면, 금수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는 이들도 있고.

아무 능력 없이 몬스터와 마주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있는 반면, 처음부터 사기적인 능력을 각성하여 안락하게 살아온 내가 있다.

세상에 따져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침묵뿐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그저 받아들여야하는 사실일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살아남았음에 감사하고, 재회에 감사하며,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는 수밖에.

'서두르자'

이제 남은 것은 하동건, 강덕수, 김 건의 가족들이다.

다음 목표는 잠전동.

세 사람의 가족들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055화 [Episode 12] 구원자 (3)

부전동 오피스텔.

방 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침대 위에 여자 한 명이 힘없이 누워 있었다.

'배고파'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올 지경이었지만, 그녀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집안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먹어치운 상태였다.

살아남기 위해 목숨 걸고 간간히 찾아갔던 편의점도 땅을 기어 다니는 상어가 나타난 뒤로는 포기했다.

"물..."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

마지막 물방울 하나까지 빨아먹기 위해 누운 자세로 페트병 속의 물을 받아먹었다.

털썩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팔이 먼저 나가떨어지고, 몇 방울 정도 물이 남아 있던 페트병도 그녀의 입에서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구질구질한 인생!'

백소라는 마지막까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인생을 두고 품평회가 열린다면, 동정표만 가득할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셨고, 틈만 나면 자신을 때렸다. 간신히 도망쳐 나온 사회는 매일매일 돈을 요구해 왔다.

월세, 공과금, 식비 등등.

적은 액수도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일해야 했다.

이제 간신히 숨통이 틀 때 쯤, 세상이 망했다.

'왜 하필 나는....'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흐윽."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만.

멀쩡한 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삼시 세끼를 챙겨먹고,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가끔은 연애도 하는 그런 평범한 삶.

백소라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때였다.

쿵쿵쿵!

자신의 방문은 아니었다.

벽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을 보면 아래층인 것 같았다.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우울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심장이 긴박하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몬스터인가?'

가끔 고블린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으면 금방 흥미를 잃고 떠나가곤 했었다.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괴물이 떠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살고 싶은 걸까, 나는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입니다! 생존자분들 계십니까!"

처음에는 환청인줄로만 알았다.

너무 간절한 마음이 들려주는 환청.

쿵쿵쿵!

그런데 아니었다.

"살아계신 분들 안 계십니까! 반응해주십시오! 구조대입니다!"

분명 인간의 목소리였다.

'구, 구조대?'

다른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다음,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에 사람 있어요!"

현관문을 열기 직전, 문고리를 잡은 채로 그녀는 굳어버렸다.

'만약 저게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괴물 같은 거라면?'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꼭 등장하지 않는가. 사람을 흉내 내는 괴물.

불안한 생각에 나가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지, 진짜 구조댑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백소라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봤다.

그곳에는 주황색 배경에 119가 적힌 옷을 입고 있는 남자의 등이 보였다.

그는 생존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물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것을 본 백소라가 외쳤다.

"여, 여기요! 저도...!"

그는 미소 지으며 다가와 500ml 삼다수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김재현님의 지시를 받고 구조를 하러 왔습니다."

"...예?"

"김재현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구조대 입니다."

"-??"

우습게도 이것은 구조대의 지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구조대들 사이에서도 우스갯소리로 자신들을 가리켜 사이비라 말하며 조소했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데,

"지금부터 저희는 김재현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안전합니다"

안전 구역 내에서 구조를 할 때, 단순히 그의 이름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생존자들의 활력이 돌아오곤 했다.

경우에 따라선 죽어가던 사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경우도 있었기에 이제는 구조의 한 과정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혼자서 움직이실 수 있는 분들은 여기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조대원 한 명이 그나마 멀쩡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이끌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여기! 들것 가져와! 빨리 움직여!"

긴박한 순간을 보내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아직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백소라는 그 인파의 가장 앞에서 구조대원의 등을 보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텅!

"아야."

차들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도로로 걸어들어 가려던 찰나 투명한 벽이 그녀를 막아섰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반투명한 글씨가 나타났다.

[출입 불가.]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황스러워하던 그 순간.

[시민권을 획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고, 그 안쪽에 있는 구조대원이 입을 열었다.

"시민권 받고 영역 안으로 들어와 주시면 됩니다!"

얼떨결에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띠링!

[시민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백소라는 시민권을 획득함과 동시에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던 신체에 활력이 깃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청량한 기운이 몸속을 휘도는 듯 했다.

그와 함께 자연스레 아까 구조대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김재현이라고 했었나. 그 사람의 힘인가?"

이 신비로운 힘은 그의 능력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잠시 후 구조대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어느 건물 3층에 있는 병원이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기서 차례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구조대원은 다시 현장으로 투입되었고, 백소라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마찬가지로 멀쩡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송되는 듯 했다.

백소라는 기다림 끝에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마주 할 수 있었다.

"어디 불편한 곳 있으신가요?"

"..아니요."

"잠시만 저 좀 보시겠어요?"

그때 의사의 눈이 푸르게 빛나더니 그녀의 전신을 한 번 훑고는 말했다.

"밑으로 내려가셔서 셔틀 버스 타시면 됩니다."

"네? 버스요?"

"네. 다음 분 들어오세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바빠 보이는 모습에 백소라는 자리를 비킬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며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정말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창 몇 개가 깨져있긴 했지만, 그래도 버스는 버스였다.

"출발하겠습니다!"

사람들을 가득 채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는 버스가 움직이기 위한 최소한의 청소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빠르게 변해갔다. 피와 시체로 엉망이던 풍경이 점점 사라지고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빵 냄새?'

스쳐지나가듯 난 냄새였지만, 놓치지 않았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려 있었다.

그곳에는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빵집이 있었다. 빵집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는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카페도 존재했다.

그리고.

'어, 어떻게 된 거지?'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듯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괴물들은? 고블린은?'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부로 진입하면서 마주한 모든 모습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어린이.

가볍게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까지.

'여기만 멸망이 빗겨 가기라도 한 건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괴물들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자신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풍경이지 않은가.

백소라는 넋이 나가버린 얼굴로 생각했다.

'정말 구세주라도 나타난 거야?'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드디어 하늘에 닿은 것일까.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단지 내부를 둘러봤다.

[이상입니다.]

김다빈의 보고를 듣던 나는 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대답했다.

[그러니까 요점은 공용 시설의 수용인원이 가득 찼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공용 시설을 늘려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이 근처에 집이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주세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파트 외부에도 공용시설을 만들 생각입니다. 주민 센터나 동사무소 같은 곳이요. 그리고 군데군데 매점도 만드는 중이니 곧 밖에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해 질 겁니다.]

언젠가 한계가 찾아오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유입된 사람들은 대부분 근처에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영역이 1km 범위로 넓어지면서 수많은 주택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근처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내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테지.

'빈집이 많아.'

주택은 아파트보다 생존률이 많이 낮은 편이었다.

'고블린이 침입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겠지'

생존자들은 대부분 오피스텔이나 원룸, 그리고 아파트단지처럼 고층 건물에 밀집되어 있었다.

나는 절대자의 눈을 이용해 혹시나 상점에 등록할 물품이 있는지 찾아보는 한 편, 매점을 건설할 적당한 포인트를 선별했다.

'외곽 쪽의 집은 사냥 팀의 거점으로 삼아야겠어. 이곳을 중심으로 매점도 만들어놓고, 관리하는 사람도 뽑아야겠네!'

아무래도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왔다갔다하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 정비소 개념으로 외곽 쪽에 거점을 몇 군데 만들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거점의 관리는 사원 직책을 부여해서 일을 주면 될 일이었다.

전체 인구가 늘어날 때마다 경제활동인구도 함께 증가하는 중이여서 부담 없이 직책을 부여할 수 있었다.

[다빈씨.]

[네, 재현님.]

김다빈에게 간략하게 계획을 설명하고 거점을 관리할 인원을 뽑게 했다.

[맡겨주십시오, 재현님.]

그 다음 건설 모드를 사용해 선별한 포인트마다 매점을 신설하고, 공용시설이 될 곳을 선택해 전기, 가스, 수도 등의 기본 시설을 공급해주었다.

그러던 중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의료팀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병원에는 당연히 모든 것을 공급해주고 있었는데, 병원에 있는 의료 기기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의 치료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바늘이나 수액 등을 구입하여 충분히 보급해주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요구하라고 말해 놓은 상태다.

'대학병원을 영역화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일반 병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들이 가능해진 상태이긴 했지만, 대학 병원에 있는 첨단 의료기기의 성능을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했다.

'전초기지를 어떻게 활용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어디까지 갔으려나'

하동건 파티는 지금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장전동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교대역까지는 독가스 전법을 사용해 일사천리로 진격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는 길을 뚫어야 했다.

왜냐하면 교대-동래로 이어지는 선로가 중간에 지상으로 빠져나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동래역부터는 지하철이 아닌 지상철이 되는 것이다.

개방된 지역에서는 독가스 전법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여기서부터는 하동건 파티가 직접 몬스터를 사냥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무적인 것은 하동건 파티의 전력이 이전보다 몇 배는 강력해 졌다는 점이었다.

"까망아 물어뜯어!"

평범한 까마귀보다 3배는 덩치가 커다래진 까망이가 하늘 청새치들을 물어뜯었다.

[하늘 청새치(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295,57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김건이 새롭게 얻은 스킬, 급성장의 효과였다.

급성장한 까마귀는 능히 혼자서 수십 마리의 청새치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타앙! 탕!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투명화 스킬을 얻은 문병호의 공격이었다.

적재적소에서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문병호의 총알이 몬스터의 머리를 일격에 터뜨렸다.

"일어나라!"

지상에서는 강덕수가 소환한 강철의 기사들이 공격적으로 길을 텄다.

덕분에 하동건 파티는 최소한의 전투만을 수행하며 길을 주파하는 중이었다.

지상철 선로를 따라 스무스하게 달려가던 그때.

"정지."

중간에 길이 끊겨 있었다.

지상철 선로가 이어지는 다리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056화 [Episode 12] 구원자 (4)

하동건은 지상철 아래쪽을 살피더니 말했다.

"밑으로 이동한다."

웬만한 건물 3층 높이였지만, 평균 레벨이 30대 중반인 그들에겐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였다.

그러니 다리가 끊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저걸 누가 그랬느냐는 거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다리를 부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주변에 커다란 발자국 같은 게 없는 걸 보면 싸이클롭스가 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싸이클롭스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들에 비해 주변 건물들이 멀쩡했다.

그러니 저것은 다른 존재의 짓이라는 게 된다.

어찌됐든 콘크리트로 된 다리를 부술 수 있는 존재가 이 근처에 있다는 소리였다.

[다들 조심하세요.]

하동건 파티가 내려온 곳은 동래역 역사 근처였다.

목표인 장전동까지는 명륜-온천장-부산대-장전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철역들을 모두 지나야만 했다.

약 4km 정도의 거리가 남은 셈이다.

지상철 선로에서 내려오며 한 번에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아졌지만, 하동건 파티는 능숙하게 몬스터들을 쳐내며 전진했다.

몸빵을 해주는 강덕수의 강철 골렘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겠어'

그들의 실력이라면 문제없을 것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고 했었지!'

지금까지의 경험상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것이 생존률이 가장 높았다.

가장 흔한 몬스터인 고블린들이 침입하기 어려운 구조인데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만큼 사람들이 힘을 뭉치기 좋았기 때문이다.

'무사하길'

그때였다.

'응?'

벨소리가 울리기에 그대로 절대자의 눈 시야를 하나 늘려 복도를 확인해봤다.

그곳에는 여섯 명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예전에도 이런 일이 가끔 있긴 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찾아왔었다.

구걸하거나, 따지거나, 화를 내거나 가끔은 거래를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다빈에게 일을 맡기고 난 뒤로는 이런 일이 잘 없었는데 말이지.'

슬슬 한 번 올 때가 됐지라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하러 현관으로 이동했다.

철컥.

보이지 않는 손으로 물을 열어주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토끼눈을 했다.

[시민 장성준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홍경택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임경훈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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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신뢰도가 급속도로 올라가는 경우는 딱 한 가지였다.

'나를 처음 보는 건가'

그렇다면 이들은 최근에 유입된 사람들이라는 소리였다.

'하긴. 수천 명이 새로 유입되었으니 당연한가'

원래라면 곧바로 김다빈에게 내려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이 입을 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총을 빌려주십시오."

이들의 대표로 보이는 장성준의 한 마디에 나는 이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총이요?"

"네."

"죄송하지만, 총을 아무에게나 나눠드릴 수는 없습니다."

몬스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총기를 규제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 영역 안에서는 총이 필요 없으니까'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은 몬스터로부터 완벽한 보호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영역 안에는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과 내 허가를 받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 허락 없이는 벌레 한 마리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고, 나에게 적개심을 가질만한 몬스터들은 영역이 확장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완전한 안전지대.

이런 곳에서 총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장성준이 말했다.

"저희는 영역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총기를 필요로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몬스터 사냥이 가능한 시민들이 늘어나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

그렇지 않아도 주변 몬스터들의 수준이 올라가며 사냥 인구가 많이 부족해진 참이었다.

"몬스터 사냥을 하러 나간다는 말씀이시군요."

안전지대를 활용한 사냥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런 용기 있는 자들에게는 총기를 지원해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성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희는 가족들을 구하러 갈 생각입니다."

"!!"

몬스터들의 등장으로 가족들과 생이별 한 사람들은 나와 가신들뿐만이 아니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모든 사람들이 가족들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내 영역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사람들의 선택지는 다양했다.

가족들이 무사하길 기도하며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 가족들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며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처럼 목숨을 걸고서라도 가족들을 보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까지.

정답이 정해져 있는 일은 아니었다.

괜히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갔다가 죽음을 당하는 이들의 숫자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 서정아가 사망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맞이하는 시민들은 존재했다.

시민들의 인구가 늘어난 것에 비례하여 시민들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 또한 늘어났다.

그들 모두가 방 안에서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을 보기 위해 용감하게 밖으로 나갔다가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이들도 나와 똑같다.'

가족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결국 직접 움직이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목숨을 내걸고 말이다.

그리고 절박한 심경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겠지.

'내가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다.'

그러나 절박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이들에게 무기를 쥐여 주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여기 모이신 여섯 분이서 가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이잉—

곧바로 여섯 자루의 권총과 실탄을 지급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큰 무기를 쥐여 주고자 했다.

"여러분 저와 계약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아직 사냥팀과의 계약도 맺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싶어졌다.

"감사합니다! 뭐든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가족들을 구하러 갈 수만 있다면~!"

종속의 계약은 약간 까다로운 조건이 존재했다.

제일 먼저 제안을 수락한 장성준을 향해 말했다.

"무릎 꿇으세요."

장성준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었다.

"꾸, 꿇었습니다."

엄마가 종속의 계약이라는 희대의 능력을 두고도 100명을 꽉 채우지 않은 이유.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린 다음 말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

"앞으로 제게 복종하도록 하세요."

------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복종의 맹세를 들은 순간.

파아앗!

내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밝은 빛이 장성준의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이름 : 장성준 (Lv. 30)

신뢰도 : 48

각성 능력 : 염력

경험치 분배율 : 0% (+100%)

정산금 분배율 : 0% (+100%)

★퀘스트 부여 퇴출

염력 (A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다.

A등급 스킬!

예상치 못한 대박이 터져 버렸다.

"방금 그 빛은 뭐지?"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성준씨 괜찮아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릎 꿇고 있는 장성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상점 오픈, 귤 하나 구입'

지이잉―

나는 귤을 한 손에 들고는 장성준을 향해 퀘스트를 부여했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염력을 사용하여 귤을 들어올리기.

제한 시간 : 10분 00초

보상 : 정신력 강화.

실패 페널티 : 없음.

"어?"

갑작스럽게 나타난 퀘스트 창에 놀라워하는 장성준의 앞에 귤을 내밀었다.

퀘스트 창과 귤을 번갈아보던 장성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귤을 노려보며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으잉?"

"뭐야? 귤이 떠오르네?"

"성준씨가 하고 있는 거예요?"

내 손바닥에서 허공으로 떠오른 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퍼억!

장성준이 너무 힘을 준 것인지 귤이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그것을 본 장성준이 기겁하며 사과했다.

"아앗!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귤 즙은 내 얼굴에 닿기 전, 현관에 있는 투명한 벽에 막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민 장성준의 신뢰도가 50을 달성했습니다.]

[충성도가 개방됩니다.]

[시민 장성준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장성준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가신 등록, 장성준'

월척이었다.

나머지 5명은 모두 D등급~C등급의 고만고만한 능력을 각성했지만, 장성준 하나를 건진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가신 등록까지 마쳤으니 자잘한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연지동에 있는 ○○아파트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성준 일행이 떠나가고, 하동건 파티가 다음 역인 명륜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크워어어어어!"

동래역에서 명륜역으로 이어지는 지상철 선로를 박살낸 범인인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하동건 파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Lv. 45)」

집채만 한 덩치에 전신이 터질듯한 근육으로 무장한 괴물이었다.

특징은 머리가 두 개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괴물이 하동건 파티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주먹이 땅을 뒤흔들었다.

그 때.

-삐이이익!

거대화한 까마귀 하나가 오우거의 왼쪽 머리를 공격했다.

"크웍!"

놈의 시선이 까망이를 향했을 때,

타아앙—!

통쾌한 파열음이 오우거의 오른 쪽 어깨에서 들려왔다.

투명화를 쓴 채로 텔레포트한 문병호가 오우거의 귓속으로 권총을 쏘아낸 것이다.

"크와아아악!"

오우거가 괴성을 질러대며 오른쪽 귀를 감싸 안았다.

멀쩡한 쪽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를 노려봤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격해!"

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열 기의 갑옷 기사들이 놈의 발에 들러붙어 할버드를 휘둘러댔다.

푸욱! 퍽!

날카로운 도끼날이 오우거의 발등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크아악!"

오우거가 짜증내며 갑옷 기사들을 발로 차내는 순간.

파아앗!

놈의 왼쪽 얼굴을 향해 빛의 화살 하나가 날아오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파바바박!!

수십 발로 쪼개진 빛의 화살이 오우거의 면상을 덮쳤다. 그 과정에서 왼쪽 머리의 눈은 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카아아악!"

오우거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고,

"크험!"

그 틈을 타 수인화한 오언주가 움직였다.

우우웅

김다정의 축복을 받은 오언주가 손톱을 휘두르자 놈의 발목 하나가 작살났다.

"크워어어어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오우거가 포효했다. 피어가 깃든 외침에 하동건 파티가 잠시 멈칫거렸고, 오우거가 주먹을 마구 내지르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앙!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넘실거렸다.

그러나 놈의 근처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언주도 이미 몸을 뺐고, 강덕수의 기사단도 이미 소환 해제를 하며 자취를 감춘 상태.

"크아아악!"

애꿎은 땅만 박살 날 뿐이었다.

그리고.

쐐애애액!

빛의 화살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오우거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푸부부북!

그것은 오우거의 남은 멀쩡한 눈마저 앗아가 버렸다.

"아아아악!"

이것으로 오우거는 네 개나 되는 눈을 모두 잃었다.

그때쯤 되자 두 개의 머리가 내뱉는 것은 포효가 아닌 비명으로 바뀌었다.

사냥 당하는 자의 울분에 찬 비명.

그동안 오우거의 손에서 죽어갔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뱉어냈던 비명과 같았다.

"후우."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오우거의 앞에 하동건이 창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우우웅!

흑색 기운이 하동건이 들고 있는 창날에서 피어났다.

그와 동시에 창을 힘껏 던졌다.

"흐읍!"

쐐애애애액!

창날에서 피어나던 흑색 기운은 날아가는 과정에서 창의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점점 그 기세를 불려나갔다.

화르륵!

마치 검은 불꽃이 창을 집어삼킨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것이 오우거의 가슴에 닿았을 때,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오우거의 상반신을 날려버렸다.

[트윈 헤드 오우거(Lv. 45)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7,223,743,09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고통과 함께 영역 확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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