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Episode 04] 퀘스트 보상 (1)
오언주는 꿈을 꾸었다.
모든 것이 평온한 오후.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지켜보는.
행여나 다칠까, 눈을 떼지 못하는 그런 평범한 나날의 어딘가.
그러다 조용히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깨달은 오언주는 옅게 헐떡이며 울었다.
달콤한 꿈이었다.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은 그 꿈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오언주씨."
한 남자가 비상구에 서서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꿈 때문일까, 이상하게 눈앞의 남자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방금 겪었던 알 수 없는 힘의 근원이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라고.
그 위압감이 저 부드러움 속에 감춰져 있는 거라고.
"···당신이 한 건가요?"
"네?"
"고블린들의 머리를 날려버린 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맞습니다."
정말로, 그런 것쯤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어쩌면···.'
이제 갓 꿈에서 깨어난 몽롱한 정신 탓일까.
아니면 그 꿈의 내용 때문일까.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오언주는 처음 보는 낯선 남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제 아들, 제 아들 좀 제발 살려주세요···. 하루,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
오언주와의 첫 만남은 시작부터 강렬했다.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신뢰도가 크게 상승하며 시작했었으니까.
그것을 시작으로 겨우 몇 마디 나눠봤을 뿐인데, 다시 한번 신뢰도 상승 알림이 나타났다.
정확히 고블린을 잡은 게 나라는 걸 밝힌 순간이었다.
그 직후 한참이나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황당한 부탁을 해 오는 게 아닌가.
"제 아들, 제 아들 좀 제발 살려주세요···."
"······."
아들을 살려달라는 말.
그것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을 유추하는 것은 가능했다.
'고블린에게 아이를 잃은 건가.'
현재 비상계단은 오언주가 죽여 놓은 고블린 사체들로 엉망이었다.
그녀가 시민이 되기 전에 죽인 놈들이라 그런지 사체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는데, 그 상태가 처참했다.
머리가 깨지고, 내장을 쏟아내고, 목뼈가 부러져 있는 등.
한눈에 급박했던 그때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들에서는 농도 짙은 증오가 느껴지고 있었다.
'살려달라니.'
지금 그녀가 말하는 건 아픈 아들을 회복시켜달라거나 하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죽은 아들을 부활시켜달라는 말이겠지.
"흐으윽."
터무니없는 부탁이라는 것을 그녀도 아는지, 저 말을 한 이후에는 그저 서럽게 울기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마음이 울컥했다.
'뭔가 방법이 없나?'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이라니.
예전이라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고민이었겠지만,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지금은 그리 이상한 고민도 아니었다.
어디 몬스터나 초능력자들의 등장은 말이나 되는 이야기던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에 이게 가능하다면···.'
처음 퀘스트 부여 능력을 얻었을 때, 페널티의 한계는 시험해 봤다.
그러나 보상의 한계는 시험해 본 적이 없었다.
'퀘스트 부여. 고블린 천 마리 사냥, 기간 무제한, 페널티 없음. 보상··· 아들의 부활.'
띠링!
시스템 알림 소리를 듣는 순간, 아주 약간이지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게 가능하다면, 나는 죽은 사람조차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퀘스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기대가 무색하게도 퀘스트 부여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역시 안 되나.'
그럼 그렇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이라고 해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퀘스트 보상 : 부활)을 지급하기 위한 현금이 부족합니다.]
[보유 현금을 늘린 후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어?"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시스템 창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알림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그것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는 뜻이야?'
시도해 보면서도 진심으로 이게 가능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맙소사.'
그런데 진짜로 가능할 줄이야.
"흐흑."
숨죽이며 흐느끼는 오언주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잔인한 말이지만, 나는 울고 있는 그녀를 앞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부활에 들어가는 돈이 어느 정도일지, 아직은 짐작하기 힘들다.'
정확한 건 몰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요구할 게 분명했다.
'과연 이 사람에게 그만한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레벨과 보유한 능력만으로도 투자할 가치는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오언주씨. 오언주씨."
눈물범벅으로 고개를 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아드님을 부활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
오언주는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 정말입니까? 제 아들을 살려주신다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아···."
실망한 기색이 가득해진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아드님을 되살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지금 그녀는 내 말을 믿는다기 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 같았다.
그 절박함이 표정에서부터 묻어나고 있었다.
"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그녀를 가족들이 있는 본가로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을 이 아파트로 데려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지금 그녀는 시민 중에서 가장 강력한 스펙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 혼자 파견을 보내기에는 불안한 점이 너무 많았다.
본가까지 가는 길에 어떤 수준의 몬스터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컸다.
'한 번 보낼 때 확실한 전력을 갖춰서 보내야 위험이 적다.'
지금 내가 가진 카드 중에 가장 강력한 조합은 오언주를 하동건의 파티에 합류시키는 것이었다.
하동건 파티에는 가신으로 등록된 문병호와 강덕수가 있었다.
각각 30레벨과 25레벨을 달성한데다 준수한 능력까지 각성한 상태였다.
여기에 33레벨인 오언주까지 합류한다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씹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베스트는 일곱 명 모두를 가신으로 만드는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항할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와 마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걱정 없었다. 그들 모두를 가신 소환으로 불러들이면 그만이었으니까.
전력을 잃을 걱정이 훨씬 덜해지는 것이다.
생각 정리를 마친 내가 오언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저와 함께 올라가시죠. 소개해 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동건이라고 합니다."
"오언주라고 해요."
하동건 일행에게 오언주를 소개하는 자리는 최형준네 가족의 거실이었다.
이곳을 가득 메우던 생존자들은 구호 물품을 가지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지만, 애초에 다른 동에서 온 하동건 일행과 오언주는 받아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사람 좋은 최형준이 그들을 받아준 덕분에 지금 여기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언주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구공을 던져서 고블린을 사냥하시던 분이죠? 저 여자분은 활을 쏘시고."
하동건이 놀란 얼굴이 되어 물었다.
"저희를 아시나요?"
"저 모르시겠나요? 저희 구면인데."
그들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오언주가 능력을 발휘했다.
쿠드득!
"헙!"
직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던 오언주는 어느새 검은 털의 짐승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가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샛길의 늑대인간!"
하동건 파티가 샛길에서 봤다던 늑대인간의 정체는 바로 수인화한 오언주의 모습이었다.
곧이어 사람으로 돌아온 오언주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늑대가 아니라 곰입니다."
"···곰이요?"
"네, 곰."
생각보다 나긋나긋한 오언주의 대응 덕분에 분위기가 부드럽게 흘러갔다.
'이게 어른의 여유인가.'
그때 오언주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몇 번 도와드린 적도 있었는데, 모르셨나요?"
"아―!"
"그때!"
짐작 가는 순간이 있던 것인지 곧바로 반응이 튀어나왔다.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저희를 도와주셨던 게 우연이 아니었군요."
"의도적이었죠. 고블린의 적은 제 친구니까요."
단순히 사회성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하동건 파티에 호감을 갖고 있었던 듯했다.
덕분에 이야기가 빨라졌다.
"이미 서로 알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먼저 오언주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군요. 할머님이···."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문병호씨 할머니 구출 작전은 내일 아침 일찍 시행할 계획입니다. 내일 작전에는 오언주 씨도 함께 투입될 겁니다."
작전은 따로 특별할 건 없었다.
지하 주차장에 있던 고블린들을 몰이사냥 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그 틈을 타 문병호의 할머니를 구출해온다는 작전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그렇게 내일 작전을 위한 사전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다들 오늘 하루 고생하셨고,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아침 일찍 뵙겠습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최형준이 나에게 물었다.
"저··· 재현님."
"네?"
"혹시 내일 작전에 저도 포함된 겁니까?"
그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도 함께 보낼 생각이긴 했었다.
그러나 이번 고블린 작전 때 보여준 최형준의 모습을 본 이상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괴력을 가지고 있어도 정작 몬스터 앞에서 몸이 얼어버리면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까.'
실제로 몰이사냥에서도 최형준은 꽤 위험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를 작전에 투입 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한차례 고개를 젓고는 대답해주었다.
"아니요. 다치기도 하셨고, 내일은 푹 쉬시면 됩니다."
"휴우."
내 대답을 들은 최형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함께 안도하고 있던 박혜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그런데 어쩌죠? 손님용 이불을 준비해 놓긴 했는데, 넉넉하진 않아서요."
"많이 부족한가요?"
"그렇진 않은데···. 낑겨서 자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하네요."
보아하니 두 명 정도만 빠지면 모두가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나머지 분들은 여기서 주무시도록 하고, 문병호씨와 강덕수씨만 저를 따라오세요."
"네?"
"엇, 저요?"
당황해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네, 두 분이요."
문병호는 생각보다 태연하게 집으로 들어왔고, 강덕수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따라 들어왔다.
"저쪽 작은 방이 손님용 방입니다. 이불은 붙박이장 안에 있으니 꺼내쓰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곧바로 들어가려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제가 왜 두 분만 따로 불러낸 건지 아십니까?"
강덕수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직후 문병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재현님께 선택받았기 때문입니까?"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은 각성했어요. 문병호씨가 얻은 능력은 텔레포트, 강덕수씨는 강철의 기사라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문병호와 강덕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퀘스트 부여. 내 앞에서 능력 선보이기. 제한 시간 한 시간, 페널티는 복도에서 자기. 보상은···.'
퀘스트 보상, 어디까지 가능할까?
'근력 강화.'
띠링!
016화 [Episode 04] 퀘스트 보상 (2)
"파티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각성 능력 시연하기.
제한 시간 : 1시간 00분 00초
보상 : 근력 강화.
실패 페널티 : 복도 취침.
[이대로 퀘스트를 부여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음?"
실험을 시작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
'파티 퀘스트?'
문병호와 강덕수 개개인에게 퀘스트를 부여하는 방식이 아닌 파티를 맺고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튀어나온 것이다.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까지의 경험상 내 능력에 아무 의미 없이 등장하는 기능은 없었다.
파티 퀘스트도 일반 퀘스트 보다 나은 점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아직은 그게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이대로 진행해 보자.'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일반 퀘스트와 파티 퀘스트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알게 되겠지.
'퀘스트 부여.'
강덕수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창을 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재현님 말씀은, 제가 각성했다는 거지요? 동건이처럼?"
"그렇습니다."
"강철의 기사라니. 그게 대체 무슨 능력이랍니까?"
"강철 갑옷과 할버드를 소환하는 능력입니다."
"예?"
그때였다.
슈슉
"엇?!"
문병호가 난데없이 거실 중앙에서 나타났다.
각성 능력인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강덕수는 토끼 눈을 한 채로 굳어버렸다.
문병호는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더니 이내 자신이 순간이동 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와 동시에 기분 좋은 알림이 울려댔다.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문병호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거실 창가로 다가가는 게 아닌가.
딱 봐도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잔뜩 흥분한 그를 향해 말했다.
"멈추세요."
"네?"
"바로 할머님댁으로 가시려는 거 같은데, 아마도 힘들 겁니다."
"어째서죠?"
"문병호씨의 능력은 정신력을 원료로 발동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동하려는 거리가 멀수록, 함께 이동하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정신력을 요구해요."
"아···."
"아마도 여기서 할머님 댁이 눈에 보인다고 해도 한 번에 이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악의 경우 허공으로 이동하시게 될 수도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텔레포트하게 될 경우 결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낙사.
"그러니까 지금은 스스로의 능력을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최대 이동 거리는 얼마인지, 한 번 능력을 사용할 때 정신력이 어느 정도 소모되는지부터 파악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문병호의 급발진을 말리는 동안 강덕수도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데 성공했다.
우우웅!
새하얀 빛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형태를 갖춰나갔다.
전신을 둘러싸는 은빛 갑옷과 살벌하게 날이 서 있는 할버드.
강철의 기사가 그곳에 나타났다.
"지, 진짜 되네?"
[시민 강덕수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강덕수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동시에.
[시민 문병호와 강덕수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212,317 원이 소모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며 20만 원이 좀 넘는 돈이 빠져나갔다.
'근력 강화 한 번당 10만원 꼴인가.'
아깝긴 했지만, 메인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근력에 투자했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
어쨌든 이것으로 퀘스트 보상을 이용해 특정한 능력치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지구력이나 체력도 비슷한 수준일 거 같은 느낌이네. 그러면 이런 것도 되려나?'
이번에는 문병호에게만 퀘스트를 부여해 봤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텔레포트 사용하기.
제한 시간 : 1시간 00분 00초
보상 : 텔레포트 숙련도 강화.
실패 페널티 : 복도 취침.
[이대로 퀘스트를 부여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되는군.'
능력의 숙련도를 올려주는 것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퀘스트를 부여받은 문병호는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고, 어렵지 않게 퀘스트를 클리어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시민 문병호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70,133 원이 소모됩니다.]
'응?'
이번에도 당연히 10만 원 가량의 돈이 소모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들어간 비용은 겨우 7만원.
예상보다 30%나 더 저렴한 가격이었다.
'설마?'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퀘스트 내용과 보상이 연관성이 있다는 것.
'퀘스트 내용에 따라 비용을 조절할 수 있구나!'
새롭게 깨달은 사실을 곧장 실험해보고 싶었다.
"병호씨."
"네?"
"컨디션은 어때요?"
"좋습니다."
"그래요?"
나는 거실 창밖에 있는 건너편 아파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저기로 이동하실 수 있을 것 같나요?"
문병호는 거리를 신중하게 가늠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퀘스트의 전체적인 난이도를 올려봤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텔레포트 사용하여 113동 아파트 옥상으로 이동하기.
제한 시간 : 3분 00초
보상 : 텔레포트 숙련도 강화.
실패 페널티 : 야외 취침.
수십 미터 떨어진 아파트 옥상, 3분이라는 짧은 시간, 그리고 야외 취침이라는 페널티까지.
몰이사냥을 통해 숫자를 많이 줄여놓긴 했어도 바깥에는 여전히 고블린들이 득실거렸다.
야외 취침이라는 것은 사실상 잠을 자지 말란 소리와 같았다.
"이건···."
갑작스럽게 난이도가 올랐다는 것을 인지한 문병호가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진심을 담아 문병호에게 말했다.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예."
문병호는 긴장한 표정으로 건너편 아파트 옥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절대자의 눈.'
그동안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혹여나 문병호의 정신력이 모자라서 허공에 나타나게 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시민 소환 스킬을 사용하여 그를 불러올 작정이었다.
'제발 성공하세요.'
1분 정도가 지난 시점.
슈슉!
문병호가 우리 집에서 사라지고, 건너편 아파트의 옥상 난간 위에 나타났다.
그 직후.
[시민 문병호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휴우."
다행히 퀘스트는 성공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결과가 좋았다.
'비용이 생기지 않았어.'
퀘스트 난이도 자체를 높인 탓일까, 보상으로 텔레포트 숙련도를 강화하는 데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았다.
'그렇군. 이런 방식인 건가.'
그 모습을 보며 긴장의 끈을 놓기 직전.
"!!!"
옥상 난간에 서 있던 문병호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가신 소환, 문병호!'
놀란 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고, 이내 옥상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문병호를 불러올 수 있었다.
슈슉― 털썩!
'···아슬아슬했어.'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더라도 위험할 뻔했다.
'정신을 잃었군.'
갑자기 먼 거리를 이동한 탓에 너무 많은 정신력을 소모해버린 것일까, 문병호는 기절해 있었다.
정말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것이리라.
그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퀘스트 세부 내용만 잘 조절한다면 비용 없이도 보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옆에서 은빛 갑옷을 입은 채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던 강덕수를 향해 말했다.
"문병호씨 좀 소파로 옮겨주시겠어요?"
"예."
기절한 문병호를 소파에 눕혀놓는 강덕수를 향해 물었다.
"덕수씨. 운동 잘하시나요?"
"예?"
강덕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합니다."
전신 갑옷을 착용하고 있어 그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안해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잘됐네요. 팔굽혀펴기 100회랑 스쿼트 100회만 해 주세요. 물론, 갑옷을 입은 상태로요."
"······."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갑옷을 입은 채로 운동하기.
-팔굽혀펴기 (0/100)
-스쿼트 (0/100)
제한 시간 : 10분 00초
보상 : 근력 강화.
실패 페널티 : 야외 취침.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그를 향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요. 밖에는 고블린들이 돌아다닐 텐데, 잘 수 있겠어요?"
"······어?"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강덕수가 운동을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운동부 출신답게 빠르게 과제를 끝낸 강덕수는 거실에 무릎을 꿇은 채로 헉헉댔다.
아무리 레벨업을 해서 근력과 체력이 강해졌다고 해도,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운동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시민 강덕수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56,149 원이 소모됩니다.]
'훨씬 싸졌네.'
거의 반값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비용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정도는 안 되나 보네.'
마음 같아서는 횟수나 강도를 좀 더 늘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강덕수가 퀘스트를 실패해버릴 것만 같았다.
헉헉대고 있는 강덕수를 향해 말했다.
"한 세트 더 갈게요."
아까와 똑같은 퀘스트를 부여받은 강덕수가 울상을 지으며 항의했다.
"저, 정말로 밖에 나가서 자야 합니까?"
"확실히 그건 좀 과하죠? 수정해드릴게요."
실패 페널티 : 팔굽혀펴기 1000회.
새롭게 갱신된 실패 페널티를 본 강덕수는 군말 없이 운동을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그는 차근차근 횟수를 채워나갔다.
[시민 강덕수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응? 이게 왜 올라?'
충성도가 오르다니.
이래서 군대에서 사람을 한계까지 굴리는 건가.
[시민 강덕수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39,783 원이 소모됩니다.]
실패 페널티를 바꾼 게 유효했던 것인지 퀘스트 비용이 더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번만 더 갈게요."
"아악!"
강덕수는 악으로 깡으로 퀘스트를 수행했다.
[시민 강덕수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35,249 원이 소모됩니다.]
'또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완벽하게 같은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이 더 줄었다.
'아니지.'
하나 다른 게 있기는 했다.
'강덕수의 컨디션이 달랐으니까.'
앞선 두 번의 퀘스트로 인해서 몸이 지칠 대로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그 상태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충 어떤 식인지 알겠군.'
결국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사람이 체감하는 난이도가 높을수록 더 좋은 효율이 생기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렇게 강덕수가 3세트를 모두 끝냈을 때, 새로운 내용의 알림이 나타났다.
[시민 강덕수가 오늘 수행 가능한 퀘스트 횟수를 모두 소모하였습니다.]
'파티 퀘스트를 제외하고 세 번이 최대인 건가.'
그렇다면 파티 퀘스트가 따로 있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추가적인 퀘스트 부여를 위한 시스템이었던 거로군.'
일일 퀘스트 제한을 모두 소모했을 때 파티 퀘스트를 부여하는 것으로 추가적인 퀘스트 부여가 가능한 듯 했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였다.
[시민 강덕수가 수행한 퀘스트들을 평가합니다.]
'응?'
[······ 평가 중 ······]
'이건 또 뭐야?'
보아하니 시간이 조금 걸리는 작업인 듯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강덕수를 향해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주무시러 가셔도 좋습니다."
은빛으로 빛나는 전신 갑옷과 할버드를 들고 있던 남자, 강덕수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12시가 약간 넘어서 집 안으로 들어왔으니 거의 한 시간째 퀘스트 부여와 클리어를 반복한 셈이었다.
강덕수가 갑옷을 해제하자 짙은 땀 냄새가 여기까지 풍겨왔다.
그가 말했다.
"죄송한데, 샤워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저기 욕실을 쓰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저것 실험해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생각보다 얻은 게 많아.'
우선 문병호와 강덕수가 각성 능력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것으로 전력이 몇 배는 상승한 셈이었다.
특히나 큰 것은 강덕수의 능력이었다.
'갑옷을 입은 채로 앞에서 탱킹을 해 주기만 해도 훨씬 안정감 있게 작전을 수행하는 게 가능해지겠지.'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일이었다.
이들 파티가 강해진다는 것은 곧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는 소리였으니까.
'희망이 보인다.'
어쩌면 조만간 이들을 보내서 가족들을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다.'
그때였다.
[평가 완료.]
강덕수가 수행한 퀘스트에 대한 평가가 드디어 끝난 듯했다.
[근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어?'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분명했다.
내 근력이 오른 것이다.
아마도 강덕수의 일일 퀘스트 세 가지가 전부 근력 상승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 생긴 일 같았다.
'이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시민들을 굴려야 할 명분이 생겨버렸다.
017화 [Episode 04] 퀘스트 보상 (3)
부산(釜山).
이름에 산을 뜻하는 뫼 산(山)자가 들어갈 만큼 산이 많은 지역이었다.
이와 더불어 6.25 전쟁 때 수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한 가지 특색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산지에 수많은 세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 피란민들이 형성한 판자촌이 자리를 잡고 발전하다 정착하여 그대로 산동네가 된 형태였다.
산 전체에 걸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의 형태 때문에 수많은 골목길이 존재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달려!"
하동건 파티가 좁은 골목길에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고, 그들의 뒤쪽으로는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발광하며 따라붙고 있었다.
덩치는 작은 주제에 어찌나 날쌘지 하동건 파티와 고블린 무리의 거리는 점차 줄어만 갔다.
그때 가장 후미에서 달리던 강덕수가 등을 돌리며 외쳤다.
"이 개새끼들아!"
우우웅!
새하얀 빛 속에서 튀어나온 강덕수는 찬란한 전신 갑옷과 할버드를 착용한 채로 나타났다.
"흐읍!"
그는 자신에게 달려들던 중인 고블린 한 마리를 향해 할버드를 찔러넣었다.
푸욱!
"꽤애액!"
할버드의 창끝에 찔린 고블린이 그대로 피를 뿜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겨우 한 마리를 제압한 것만으로는 소용없었다.
고블린들이 진짜 무서운 것은 무리의 이점을 활용할 줄 안다는 점에 있었으니까.
"키에엑―!"
"캬아악!"
고블린 두 마리가 강덕수를 양쪽에서 동시에 덮쳐 들어왔다.
그중 한 마리는 날이 선 식칼을 들고 있어 꽤나 위험했다.
그러나.
깡!
"키익?"
"켁!"
강덕수의 전신 갑옷 앞에서는 고블린의 손톱이나 식칼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뒤져!"
촤악!
그에 비해 강덕수가 들고 있는 할버드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확실하게 고블린의 목숨을 거두어가고 있었다.
고블린의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서걱!
고블린들은 몇 명의 동료를 잃고 나서야 강덕수를 공격해 봤자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악한 고블린들은 곧바로 작전을 바꾸었다.
그들은 강덕수를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강덕수가 좁은 골목을 틀어막고 최대한 막아봤지만, 그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푸욱!
그가 한 마리를 해치우는 동안 서너 마리가 그를 지나쳐 다른 일행들의 뒤를 따라붙었다.
"키킥!"
강덕수에게서 벗어난 고블린들이 그를 비웃었지만, 그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푸욱!
김가영이 쏘아 낸 화살이 놈의 머리를 깔끔하게 관통한 탓이었다.
"뒤로 빠지는 놈들은 신경 쓰지 마!"
"오케이!"
간신히 강덕수를 지나쳐 가는 데 성공해도, 나머지가 쏘아대는 화살 세례에 고블린들이 실시간으로 죽어나갔다.
덕분에 강덕수는 마음 놓고 날뛸수가 있었다.
"다 덤벼라!"
서걱!
단단한 갑옷의 보호 아래, 일방적으로 무기를 휘둘러대는 그 모습에 고블린들도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숫자가 열댓 마리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벌써 절반 이상이 하동건 파티에게 당한 셈이었다.
"끼익! 끼긱!"
"끼이이익―!"
상황이 불리해진 것을 느낀 고블린들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블린들의 작전은 시작부터 전면 봉쇄되었다.
반대편 골목길에서 검은 짐승이 나타나 통로를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크허어엉!"
다른 고블린 무리를 정리한다고 잠시 이탈했었던 오언주가 뒤늦게 합류한 것이었다.
고블린 무리는 졸지에 앞뒤로 포위된 형국이 되었고, 그때부터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캬아아악!"
"끼기―읶!"
앞에서는 은빛 갑주를 입은 인간이 창을 휘둘렀고, 뒤쪽에서는 웬 검은 짐승 하나가 자신들의 동료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이곳은 좁은 골목길.
고블린들이 마땅히 도망치거나 숨을 곳은 없었다.
막상 도망치려고 해도 귀신같이 날아오는 화살이 고블린들의 목숨을 거두어갔다.
"끼에에엑!"
남아 있던 고블린 열댓 마리가 소탕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수십 초였다.
***
[시민 오언주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좋았어. 이번엔 성공이다.'
몇 번의 실험을 거듭한 결과 고블린 사냥으로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고블린 100마리를 사냥해야 겨우 0원이 되다니. 생각보다 좀 빡센데?'
퀘스트 보상을 설정 안 했을 때, 기본급 3만원이 언제 사라지는가를 실험하는 중이었다.
제일 처음 부여했던 10마리 사냥에서는 2만 3천원 가량의 비용이 나왔고, 30마리 사냥에서는 만 오천원 가량의 비용이 나왔다.
그러니 정확하게 따지자면 30마리에서 100마리 사이 어딘가가 퀘스트 비용이 나가지 않는 지점일 것이다.
[시민 오언주가 오늘 수행 가능한 퀘스트 횟수를 모두 소모하였습니다.]
[시민 오언주가 수행한 퀘스트들을 평가합니다.]
[······ 평가 중 ······]
알림을 확인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절대자의 눈 스킬은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이 상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절대자의 눈 스킬을 유지하며 밥을 먹는 것도 가능했다.
후루룩-
라면을 먹으면서 하동건 파티의 상황을 차분하게 지켜봤다.
골목길을 통과하며 가끔 고블린 무리와 마주쳤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오언주의 활약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강덕수와 문병호도 다른 이들에 비하면 충분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오언주에 비할 수가 없었다.
그녀 혼자서만 140마리가 넘어가는 고블린을 처치했으니 말 다 했지.
'엄청나네.'
수인화한 오언주가 고블린을 찢는 모습은 그저 한 마리 짐승에 가까웠다.
저러니 하동건 일행이 그녀를 봤을 때 몬스터라고 오해했지.
보아하니 큰 무리 없이 문병호의 할머니가 있는 곳까지 도착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시민 김가영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2,142 원이 소모됩니다.]
"2천원?"
당연한 이야기지만, 퀘스트를 부여한 것은 오언주뿐만이 아니었다.
하동건 파티 모두 공통으로 고블린 10마리 사냥 퀘스트를 줬었다.
내용, 시간, 보상, 페널티가 모두 완벽하게 똑같은 퀘스트.
그런데 오언주가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와 김가영이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의 비용이 너무나도 달랐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퀘스트를 수행하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효율이 크게 달라지는 거야.'
33레벨인 오언주는 수십 마리의 고블린의 잡아야 간신히 기본비용 3만원을 깎는데, 김가영은 열댓 마리만 잡아도 기본비용을 모두 깎을 수 있는 셈이다.
'김가영에게 퀘스트 부여, 고블린 13마리 사냥.'
적당히 고블린 숫자를 늘려서 다시 퀘스트를 부여했을 때였다.
[평가 완료.]
오언주의 일일퀘스트 평가가 끝났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2,966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엥?'
예상과는 다른 보상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세 개의 퀘스트 모두 근력과 관련 있었던 강덕수의 경우 '소량의 근력'을 보상으로 줬었다.
오언주에게 부여한 퀘스트는 모두 고블린 사냥과 관련되어 있었으니 '소량의 경험치'를 보상으로 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까보니 경험치가 아닌 정산금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도 묘하게 많은 것 같은데. 추가 보상 내용이 랜덤인 건가?'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시켰던 강덕수의 퀘스트와는 달리 오언주는 총 140마리에 달하는 고블린을 사냥하는 퀘스트였으니까.
'그만큼 보상이 커진 거겠지.'
별생각 없이 넘기려던 그때였다.
드디어 하동건 파티가 문병호의 할머니가 계신 집 근처에 도착했고, 문병호는 텔레포트까지 써 가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시민 문병호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40,930 원이 소모됩니다.]
퀘스트 완료 알람이 나타났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문병호에게는 텔레포트를 10번 사용할 것이라는 조건의 퀘스트를 부여했었다.
보상은 당연히 텔레포트의 숙련도 상승이었고.
모두 문병호의 텔레포트 능력을 가능한 한 빠르게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시민 문병호가 오늘 수행 가능한 퀘스트 횟수를 모두 소모하였습니다.]
[시민 문병호가 수행한 퀘스트들을 평가합니다.]
[······ 평가 중 ······]
'이번엔 무슨 보상이 나오려나?'
솔직히 조금 기대가 됐다.
문병호에게는 모두 일괄적으로 스킬에 관련된 퀘스트를 내 주었다. 보상도 텔레포트의 숙련도를 올려주는 것이었고.
퀘스트 내용과 관련된 추가 보상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킬 숙련도를 올려줄 것이 분명했다.
'상점이나 창고는 딱히 숙련도라고 할 것도 없고, 품위 유지나 절대자의 눈 스킬의 숙련도가 오르려나?'
품위 유지의 경우 의외로 숙련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스킬이었다.
이것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고블린들을 몰이사냥 할 때였다.
전기를 방류시켜 고블린들을 사냥하는 순간, 나는 품위 유지 스킬의 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서 깨달았다.
'분명 어느 정도 내 힘으로 컨트롤 가능한 느낌이었어.'
고블린들을 향해 전류가 방출되었을 때, 전기를 강하게 내뿜어내려는 의지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실제로 품위 유지 스킬로 전기 공급을 조절하고 있으니 마냥 착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숙련도가 오른다면 더 한 것도 가능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절대자의 눈의 숙련도가 오르는 것도 유용하겠지.'
처음에는 절대자의 눈을 사용하면 다른 행동을 취하기가 어려웠었다.
지금은 절대자의 눈을 사용하며 밥까지 먹는다.
앞으로 숙련도가 더 올라가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절대자의 눈을 유지하게 되겠지.
'그것도 아니면 이번에 새로 얻은 그 스킬?'
집구석 선포가 7레벨이 되면서 새로운 스킬이 하나 더 생긴 상태였다.
집구석 절대자의 건강 (패시브) Lv. 1
-면역력이 크게 증가한다.
아직은 그렇게까지 좋은 스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면역력 증가의 효과라고 해봤자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상처가 났을 때 세균들로 인한 2차 감염의 우려가 적다는 정도가 다였으니까.
'다만 잠재력이 커 보인단 말이지.'
지금까지 나온 스킬 중에서 어쩌면 가장 기대가 됐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거, 레벨을 올리다 보면 불로불사 같은 게 튀어나오지 않을까.'
1레벨인 지금은 겨우 면역력 증가에 불과했지만, 스킬 레벨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다 좋긴한데, 결국 그놈의 스킬 포인트가 문제로군.'
스킬 포인트.
당연한 말이지만 스킬들의 성능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는 레벨을 올려야만 했다.
분명 몰이사냥을 통해 집구석 선포의 레벨이 7로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얻은 스킬 포인트는 없었다.
'아무래도 5레벨 단위마다 3개의 스킬 포인트를 주는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스킬 포인트를 받기 위해서는 집구석 선포 레벨을 10까지 올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때도 3개 밖에 안 주겠지?'
솔직히 너무 짰다.
상점의 물품 등록 슬롯이 거의 다 찬 지금, 일단 하나는 반드시 상점에 투자해야만 했다.
앞으로 등록해야 할 물건들이 넘쳐났으니까.
'그렇게 되면 남는 건 2포인트다.'
남는 포인트는 적은데, 투자해 보고 싶은 스킬은 너무 많았다.
가장 호기심이 생기는 스킬은 바로 품위 유지 스킬이었다.
당장 전기, 물, 가스와 같은 기반 시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만 해도 대단했다.
그런데 2레벨이 되면서 튀어나온 것이 바로 가신 스킬이었다.
'무려 초능력자를 양산해내는 스킬이다.'
신뢰도니 충성도니하는 조건들이 붙긴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초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로 작용한다.
당장 고블린을 상대로 활약하는 강덕수의 모습만 봐도 초능력이 있고 없고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가신 등록의 한계만 늘어나도 이득인데.'
현재 가신 등록이 가능한 숫자는 10명이다.
다른 기능의 추가 없이 가신 등록이 가능한 숫자만 늘어난다고 해도 충분히 스킬 포인트를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하아. 이렇게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이람? 어차피 10레벨을 달성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현타에 회의감을 느끼던 그때, 드디어 문병호의 일일퀘스트 평가가 끝이 났다.
[평가 완료.]
'자, 어떤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줄 거냐.'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보상을 기다리던 그때.
[잭팟 당첨!]
[축하드립니다.]
[스킬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뭐? 잭팟?'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알림의 출현이었다.
'여기에서 스킬 포인트가 나온다고?'
어찌나 놀랐는지, 어느새 절대자의 눈 스킬을 유지하는 것도 까먹은 상태였다.
멍하니 눈앞의 메시지를 보던 나는 스킬창을 켜서 확인해봤다.
[보유 스킬 포인트 : 1]
그것을 보는 내 입꼬리가 10시 10분을 가리켰다.
"···대박이네."
018화 [Episode 04] 퀘스트 보상 (4)
텔레포트 능력을 사용해 일행들보다 한발 먼저 집에 도착한 문병호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열쇠를 밀어 넣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 할머니가 계신 안방으로 직행했다.
문병호는 평소처럼 안방 이불 속에 누워 계신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으잉?"
잠에서 깨어난 할머님은 잠시 비몽사몽하시다가 이내 두 손으로 문병호의 얼굴을 부비적거리셨다. 이내 아이처럼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셨다.
"흐윽.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그렇게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해후를 나누는 동안 문병호는 다짐했다.
'재현님, 당신께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
나는 문병호와 할머니가 재회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기특한 것.'
내 입장에서는 문병호가 좋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상승한 신뢰도와 충성도.
솔직히 자신을 믿어주고 충성을 바치겠다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입바른 소리만 해도 그 사람이 좋게 보일 텐데, 내 경우에는 아예 수치로 보이니 더했다.
'얘는 뭐 할 때마다 대박이네.'
하동건 일행 중에서 가장 먼저 가신으로 받아들였고, 그와 동시에 텔레포트라는 A등급 능력을 각성하며 30레벨이 되었다.
하다못해 모바일 게임을 해도 뽑기에서 높은 등급의 캐릭터가 나오면 애정이 가는 법이다.
하물며 문병호는 게임 속 존재가 아닌 현실 인물이었다. 그것도 텔레포트라는 최상급 능력을 가진.
그런데 이번에는 스킬포인트까지 벌어다 준 것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구나.'
그때 할머니와 부둥켜안고 울던 문병호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순간, 새로운 알림이 나타났다.
[시민 문병호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문병호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문병호는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어?"
나는 곧장 스킬창을 열어 가신 관리 탭을 확인했다.
ᛇ가신 관리
1. 최형준 (Lv. 20) [+]
2. 문병호 (Lv. 30) [+]
3. 강덕수 (Lv. 25) [+]
( 3 / 11 명)
정말로 10명이었던 인원이 11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하, 하하."
너무 기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문병호 이거 완전 축캐네, 축캐.'
RPG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말이었다.
축캐(축복받은 캐릭터).
강화를 하는 것도, 사냥으로 아이템을 얻는 것도, 랜덤으로 얻은 상자를 까는 것도. 유독 다른 캐릭터보다 훨씬 잘 되는 캐릭터.
지금의 문병호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너는 내가 확실하게 키워준다.'
앞으로 문병호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레벨업이든, 퀘스트 보상이든.
돈이 얼마가 들던 그리 크게 신경 안
쓰일 것 같았다.
이미 그가 벌어다 준 것들의 가치만 해도 족히 수십억은 됐으니까.
다른 걸 다 떠나서, 당장 '스킬 포인트'만 해도 그 정도 가치는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아슬아슬했는데.'
40개의 슬롯을 거의 다 채워가던 참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레벨 10을 찍기 전에 상점 슬롯이 부족해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스킬 포인트가 생긴 지금은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슬롯을 채운 직후 레벨업을 해 버리면 그만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돈이 얼마나 남았더라?'
확인해보니 절대자의 지갑에는 1100만원 가량의 돈이 남아 있었다.
이것저것 많이 썼음에도 이 정도로 남아 있는 것은 몰이사냥 덕분이었다.
거의 천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을 한꺼번에 죽였으니 고블린 만으로도 수백만 원을 번 것이다.
집구석 영역 확장과 함께 죽여버린 고블린들은 내가 직접 죽인 걸로 판정되어 보너스 정산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그 숫자가 엄청나서 꽤 거액의 돈을 벌어들였다.
'어디 우리 병호 레벨업에 얼마가 드는지 확인이나 해 볼까.'
문병호의 레벨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봤다.
그리고 그 액수에 기겁하고 말았다.
[레벨업을 위한 현금이 부족합니다.]
[가신 문병호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100,000,000원이 필요합니다.]
[보유 현금을 늘린 후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
눈앞을 가득 메운 충격적인 메시지에 나는 잠시 그대로 굳어 있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1억.
문병호의 레벨을 하나 올리기 위해서는 무려 1억 원이 필요했다.
'미안하다, 병호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마 앞으로도 문병호의 레벨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일일 퀘스트는 매일매일 줄게.'
난이도를 낮추는 대신 돈을 더 들여서라도 문병호의 일일퀘스트는 전부 완수시킬 생각이었다.
그것이 하루하루 누적되면 문병호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님을 업고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는 문병호의 모습을 절대자의 눈으로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진짜 딱 한 번만 더 잭팟이 터져주면, 그땐 내가 진지하게 레벨업 생각해볼게. 진짜로.'
많이도 안 바란다.
진짜 딱 한 번만 더.
'응?'
그때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통해 30층에 도착하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지?'
절대자의 눈을 이곳으로 돌려 복도를 확인해보니 근육맨과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자가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왔다.
'이 사람들이었군.'
성인 남성의 평균적인 레벨이 7~8정도인데 혼자 15레벨인 남자였다.
그와 함께 있는 여자 쪽도 레벨 11로 여자치고는 만만치 않은 레벨을 갖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들은 우리집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최형준네 집으로 향했고, 벨을 눌렀다.
♬♪♬♩~
박혜원이 문을 열고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누구세요?"
"저는 김다빈이구요, 여기 이쪽은 제 동생인 김민호라고 해요. 이 아파트 1701호에 살고 있구요."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김다빈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염치없다는 것은 알지만, 샤워 한 번만 할 수 있을까요?"
무슨 대단한 부탁을 하려나 했는데, 겨우 샤워라니.
"샤워요?"
"네, 샤워."
박혜원은 이해한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럼요, 들어오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민호는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박혜원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사모님. 혹시 이건 어디 두면 될까요?"
"어머, 그게 다 뭔가요?"
"통조림이랑 이것저것 좀 가져와 봤습니다."
"정말요?"
그가 들고 있는 상자에는 참치캔부터 시작해서 골뱅이, 닭가슴살 통조림, 스팸 등 유용한 물품이 가득 들어있었다.
'저걸 샤워 한 번에 다 태워?'
지금과 같은 시기에 저런 유통기한 긴 식품들은 보물과도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겨우 샤워 한 번 하는 대가로는 지나쳤다.
"어머나. 안 이러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곤란한 부탁을 하는 처지에 이 정도는 준비해 와야지 않겠습니까?"
너스레를 떨던 김민호가 이후 속내를 드러냈다.
"앞으로도 좀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에서··· 헤헤."
그제야 그들이 이해됐다.
'그럼 그렇지. 앞으로도 종종 샤워시켜달라는 의미구나.'
굉장히 똑똑한 처사라고 할 수 있었다.
저들은 망해버린 세상에서 전기와 수도 가스가 멀쩡하다는 것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차린 것이다.
과감한 투자로 처음부터 그 가치를 선점하려는 생각이겠지.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보니 마냥 그 목적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다빈이 박혜원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 그 활이랑 야구 배트 같은 거 들고 계신 분들은 옆집에 사시는 건가요?"
"네?"
박혜원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 누구를 말하는 지 알겠다는 듯이 박수쳤다.
"아, 그분들이요. 그분들은 옆집 분들이 아니세요. 원래는 다른 동에서 살고 계시던 분들인데··· 이게 말하자면 조금 복잡하네. 아무튼 옆집에 살고 계신 분은 한 분이세요."
박혜원의 말을 들은 김다빈이 물었다.
"혹시 그 피부 하얗고, 막 허공에서 물건 만들어내시고 하시던 그분?"
"오, 맞아요. 알고 계시네요?"
그러자 이번에는 김민호 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게, 사실은 저희가 어제 복도에서 그분들이 괴물들이랑 싸우시는 걸 봤거든요. 그중에서도 그분은 뭔가···."
김민호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 타이밍을 파고들어 김다빈이 그의 말을 이었다.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계셨지."
"그보다는 뭔가··· 무서웠어."
이어지는 김민호의 대답에 김다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섭다니? 그 덩치로 네가 할 말이야?"
"아니, 나도 아는데. 뭔가 본능적인 두려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다니까?"
그때 그들을 향해 박혜원이 말했다.
"일단 현관에서 그렇게 서 계시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앗, 감사합니다."
박혜원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던 그들은 이내 최형준과도 만날 수 있었다.
최형준은 거실에서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어머, 사장님! 운동하시는구나. 그런데 스쿼트 그렇게 하면 무릎 다 망가져요!"
김다빈이 기겁하자 곧바로 김민호가 최형준에게 다가가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다리 조금만 더 벌리시고 무릎이 발가락 넘어가지 않게 신경 쓰시면 됩니다. 엉덩이는 좀 더 뒤로 빼시구요."
"가, 감사합니다?"
최형준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아내인 박혜원을 바라봤다.
박혜원은 대답 대신 김다빈네가 가져온 상자에서 참치캔 하나를 꺼내서 흔들어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최형준의 자세를 교정시켜주던 김민호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회원··· 아니, 사장님. 평소에도 운동 많이 하셨나 봐요. 근육이 굉장하신데요?"
"그런 게 아니라···."
"아니, 그런데 자세는 왜···."
혼란스러워하는 김민호를 향해 박혜원이 말했다.
"저쪽에서 샤워하시면 돼요. 안방에 있는 샤워실은 다빈씨가 쓰시고요. 수건은 안에 있는 거 꺼내 쓰시면 돼요."
그쯤에서 절대자의 눈을 해제했다.
'나쁘지 않네.'
일단 괜찮은 사람들 같아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레벨이 높은 사람들 위주로 팀을 하나 더 꾸릴 생각이었는데, 저 두 사람에 몇 명만 더 추가하면 딱 적당한 조합이 나올 것 같았다.
'샤워가 끝나면 타이밍 맞춰서 가봐야겠네.'
저들이 가져온 통조림을 등록하고 나면 상점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겸사겸사 만나서 이야기도 좀 하고.'
저들을 필두로 새롭게 만드는 팀에게는 물자 조달 및 다른 동 아파트에 있는 생존자 구출을 맡겨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시민 최형준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78,145 원이 소모됩니다.]
[시민 최형준이 오늘 수행 가능한 퀘스트 횟수를 모두 소모하였습니다.]
[시민 최형준이 수행한 퀘스트들을 평가합니다.]
[······ 평가 중 ······]
그러던 와중 최형준에게 부여한 퀘스트가 끝이 났다.
'효율이 나쁘네.'
강덕수에게 부여했던 평범한 근력 강화 퀘스트를 내 주었는데, 횟수를 상당히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비용이 크게 줄어들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각성한 능력 때문인 것 같은데.'
고릴라의 괴력을 가지고 있는 최형준에게는 아무래도 그냥 맨몸 운동은 너무 쉬운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일단 가신으로 삼은 이들은 돈이 나가더라도 계속해서 성장의 여지를 심어줄 생각이었다.
일일 퀘스트 추가 보상이 생각보다 쏠쏠하다는 것도 알았으니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문병호의 경우처럼 잭팟이라도 나오면 대박일 테니까.
'잠깐만. 따지고 보면 최형준은 운동이 스킬 숙련도 단련 아닌가? 그러면 이번에도 잭팟이 터지면 스킬 포인트가 나오는 건가?'
기대했던 것도 잠시.
[평가 완료.]
[근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최형준은 곧바로 내 기대를 배신해 버렸다.
'···김새네.'
직전에 워낙 커다란 추가 보상이 나왔던 탓일까, 이번 보상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적호(Lv. 27)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39,783,20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뭐야?'
나는 다급히 절대자의 눈을 켜 하동건 파티의 상황을 확인했다.
"허억, 허억."
그곳에는 피칠갑을 한 채로 숨을 몰아쉬는 문병호의 발 아래로 적색 호랑이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으윽!'
격통이 시작됐다.
019화 [Episode 05] 세력 확장 (1)
문병호를 비춰주던 절대자의 눈은 강제로 취소되며 감각이 집구석 전체로 확장되어 갔다.
그와 동시에 몸이 부풀어 오를 듯한 고통과 함께 천천히 넓어지는 집구석.
'크윽!'
이번에는 30층 바닥에서부터 시작되어 천천히 밑으로 확장되어 갔다.
실시간으로 근육이 뒤틀리고, 혈관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
그것이 끝난 것은 30층 바닥에서부터 늘어난 집구석 영역이 21층까지 집어삼킨 시점이었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눈앞에 떠오른 일곱 명의 사진을 확인했다.
'아직 사람이 남아 있었나.'
고블린 몰이사냥 때 전부 시민으로 받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부여해.'
[조우진, 강현수, 김다정, 남지호, 문해리, 남아영, 남진주에게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그렇게 7명을 추가로 받아들이면서 시민들의 인구는 총 101명이 되었다.
100명을 돌파한 것이다.
[시민의 숫자가 10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이 벌어들이는 경험치와 정산금이 100% 증가합니다.]
예상했던 익숙한 알림도 있었지만, 완전히 처음 보는 알림또한 있었다.
[시민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모든 시민이 '신뢰의 힘' 스킬을 개방합니다.]
'신뢰의 힘?'
또 새로운 게 튀어나왔다.
당장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바로 하동건 파티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절대자의 눈.'
그들은 골목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다친 사람은?'
아까 얼핏 봤을 때 피칠갑을 하고 있었던 문병호의 모습부터 살폈다.
다행히도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할머니를 업고 달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아까 봤던 피는 그의 피는 아닌 모양이었다.
'허.'
문제는 오언주.
강덕수에게 업혀 있는 오언주는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채였다.
'적호에게 당했나 보군.'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녀가 자가 치유 능력 보유자라는 점이었다.
전투 장면을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정산금을 보면 문병호가 막타를 친 것 만큼은 분명했다.
방금 나타난 적호의 레벨은 27. 일전에 내가 불에 태워 죽인 켈리칸과 동급의 레벨이었다.
놈이 900만원 정도의 정산금을 줬다는 것을 생각하면, 3천9백만 원이라는 거금은 가신의 정산금 2배 특전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었다.
'레벨 차이가 있는데도 당한 건가.'
적호는 분명 27레벨이었다.
겨우 27레벨 짜리가 33레벨인 오언주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레벨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레벨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거였다면, 내가 켈리칸을 잡을 수도 없었겠지.'
그렇다면.
'굳이 1억이나 들여서 레벨을 올릴 필요성은 없지 않나?'
절대로 돈이 아까워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큰일이군.'
하필이면 부상을 입은 게 오언주였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파티에서 오언주가 공헌하는 바가 굉장히 컸다.
당장 지금까지 그녀 혼자 잡은 고블린만 해도 나머지 파티원 전체가 잡은 고블린의 숫자보다 많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걱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려나.'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끼에에엑!"
하동건 파티는 골목길을 빠져나오자마자 마주친 고블린들을 손쉽게 쓸어버렸다.
그것도 문병호와 강덕수가 참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맞혔어요!"
"···저도."
그것은 지금까지 빗나가기만 하던 유혜린과 김 건의 화살이 고블린의 미간에 적중한 덕분이었다.
더불어 김가영과 하동건이 쏘아내는 화살도 훨씬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뭐지? 갑자기 몸이 엄청나게 가벼워졌어···."
"나도 그래. 숨도 전혀 차질 않고."
그들의 묘한 반응을 보고 아까 봤었던 알림이 떠올랐다.
모든 시민이 개방했다고 하는 '신뢰의 힘' 스킬.
{신뢰의 힘} (패시브)
모든 능력치가 (신뢰도 수치)% 만큼 증가한다.
'이거 때문이구나.'
하동건 일행은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모두 50이상이었다.
체력, 동체시력, 근력, 반사신경 등등.
모든 능력치가 모조리 50% 이상 늘어난다면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게 당연했다.
그때 문병호가 어리둥절해 하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그분께 선택받은 겁니다. 저처럼."
가신 등록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숨에 레벨이 30까지 오른 문병호로서는 더욱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몸이 가벼워지고, 전신에서 힘이 넘쳐나죠? 저도 그랬거든요. 고블린 몰이사냥을 할 때. 그분께서 저희를 도와주시려나 봅니다."
의외로 그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시민 김가영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김가영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시민 유혜린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유혜린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무려 두 명이 가신 등록이 가능한 조건을 갖추게 됐으니까.
'둘 다 가신 등록 해.'
그 순간.
우우웅!
"뭐, 뭐얏?"
"꺄아!"
『이름 : 김가영 (Lv. 20) [+]
칭호 : [네 번째 종]
신뢰도 : 58 충성도 : 32
각성 능력 : 피어싱
★퀘스트 부여 』
『이름 : 유혜린 (Lv. 25) [+]
칭호 : [다섯 번째 종]
신뢰도 : 69 충성도 : 33
각성 능력 : 포이즌 미스트
★퀘스트 부여 』
그녀들의 레벨을 보아하니 각각 C등급과 B등급 스킬을 얻은 듯 했다.
두 사람을 각성시키며 뿜어져 나온 빛에 자극받은 고블린 무리 하나가 하동건 일행을 향해 돌진해왔다.
늘 그렇듯,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김가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척수 반사 수준으로 쏘아낸 화살에는 희미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푸슉!
"!!!"
그녀가 쏘아낸 화살은 여느 때처럼 고블린 한 마리의 미간에 정확하게 박혀 들어갔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화살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고블린 머리를 관통하고, 그 뒤쪽에서 달려오던 고블린들의 몸을 차례대로 꿰뚫었다는 점이었다.
"크에에엑!"
"카가각!"
"끼엑!"
졸지에 몸에 바람 구멍이 생겨난 고블린들이 데굴데굴 땅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물론 제일 놀란 것은 김가영이었다.
"뭐, 뭐야?"
이것은 그녀가 각성한 스킬의 효과였다.
피어싱 (C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관통하는 화살을 쏘아낸다.
아무래도 집중력을 발휘하여 무의식적으로 스킬을 쓴 모양이었다.
'퀘스트를 부여해 줘야겠네.'
퀘스트 내용에 적힌 '피어싱'이란 스킬의 명칭을 보는 순간 그녀도 어떤 스킬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김가영이 아까 부여했던 고블린 13마리 사냥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알림이 나타났고, 새롭게 퀘스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피어싱을 사용하여 고블린 사냥하기 (0/10)
제한 시간 : 10분 00초
보상 : 피어싱 숙련도 강화
실패 페널티 : 피로감.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김가영은 그야말로 혼자서 날뛰기 시작했다.
적절하게 쏘아낸 피어싱 화살은 일격에 최소 두 마리 이상을 잡아냈다.
김가영이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날뛰기 시작한 그 순간, 유혜린에게도 비슷한 퀘스트를 부여하려던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이 능력은 좀 애매하네.'
포이즌 미스트 (B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치명적인 독 안개를 만들어낸다.
능력 자체는 좋았다.
당장 고블린의 잔당이 남아 있는 지하 주차장에서 능력을 사용하면 고블린들을 박멸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무려 B등급의 독 안개 스킬.
굉장히 치명적일 것이 분명했다.
괜히 잘못 사용했다가는 팀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이건 보류하고 나중에 살펴봐야겠네.'
보아하니 딱히 유혜린이 나설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시민 김가영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67,773 원이 소모됩니다.]
[시민 김가영이 오늘 수행 가능한 퀘스트 횟수를 모두 소모하였습니다.]
[시민 김가영이 수행한 퀘스트들을 평가합니다.]
[······ 평가 중 ······]
"와우."
어떻게 된 게 같은 C등급의 능력을 각성한 최형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굉장하네.'
꿰뚫는 화살이라는 속성을 십분 활용해서 최대한 많은 고블린을 전투불능으로 만들고 있었다.
거진 그녀 혼자서 길을 뚫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평가 완료.]
[경험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살짝 기대했건만, 이번에도 꽝이었다.
'당연한 건가.'
확률이 높았다면 시스템 메시지가 잭팟이라고 축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문병호의 경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정도면 걱정할 필요 없겠네.'
슬슬 아파트 샛길이 보이고 있었다.
하동건 파티는 김가영의 맹활약으로 곧 무사히 도착할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이나 만나러 가 볼까.'
김다빈과 김민호를 직접 만나러 가 볼 생각이었는데, 확인해보니 아직 샤워가 끝나지 않았다.
'조금 있다 가야겠네.'
샤워로 아주 뽕을 뽑을 작정인지 30분은 족히 지났을 텐데도 샤워가 끝나지 않았다.
'새로 확장된 곳이나 둘러볼까.'
21층부터 29층까지.
새롭게 확장된 지역의 절반 정도는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다.
주인 없는 집의 냉장고에는 방치되어 썩은 음식이나 반찬들과 그것에 꼬여든 벌레들로 가득했다.
사람이 있는 집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낫긴 했지만, 배설물이 쌓인 화장실이나 청소하지 못해 더러워진 집 안은 다른 의미로 지옥이었다.
'끔찍하군.'
집 전체의 상황이 또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그것들이 한층 더 역겹게 다가왔다.
그런데 한 곳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어 눈에 띄었다.
'방금 시민권을 부여한 사람들이군.'
남지호를 비롯해 네 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평범한 집이었는데, 다른 집들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깨끗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특이한 점은 욕조에 물이 반쯤 채워져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내 욕실로 들어와 물통에 물을 뜨는 모습을 보고 그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식수.
'허.'
아무래도 수도가 끊기기 전, 욕탕에 한가득 수돗물을 받아놓은 듯 했다.
저것만으로도 네 가족이 한 달은 버틸 정도의 식수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 변기 뒤쪽에 있는 물탱크에서도 물을 퍼마시는데 그냥 수돗물 정도면 양반이었다.
'대단하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실에는 캠핑용 가스버너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것으로 라면이나 밥을 해먹는 것 같았다.
지금도 한쪽 냄비에 밥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다른 집들과는 달리 배설물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이들이 사는 집은 내게서 구호물자를 받아 간 다른 집보다도 오히려 상황이 더 나아 보였다.
'이러니까 하동건 파티의 구조에 응하지 않았던 거구나.'
활로 무장하고 있는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흔쾌히 문을 열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몰이사냥 작전에서 군말 없이 하동건 파티를 순순히 따라온 사람들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대부분은 식수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몬스터들이 활개치는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과는 정반대로 이들은 구조대를 자청하는 하동건 파티가 찾아왔을 때, 그들을 믿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활과 야구 배트로 무장한 남녀가 구조대랍시고 찾아왔는데 곧이곧대로 믿는 쪽이 더 이상했다.
'탐나는데?'
수도가 끊기기 전에 발빠르게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 놓은 것만 봐도 보통 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위기의 상황에 저런 기지를 발휘하는 사람이야말로 꼭 필요한 인재였다.
'음?'
물론 새롭게 합류한 생존자들이 모두 그렇게 합리적 판단을 기반으로 구조를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 바로 밑층, 2902호, 거실.
처음에는 시체인 줄로만 알았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가만히 거실 바닥에 누워만 있었으니까.
'이 여자는···?'
거의 죽기 직전처럼 보였다.
『이름 : 김다정 (Lv. 26)
신뢰도 : 18
각성 능력 : 힐
경험치 분배율 : 0%
정산금 분배율 : 0%
★퀘스트 부여 퇴출』
힐 (B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상처를 치유한다.
나는 곧장 2902호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 내려갔다.
020화 [Episode 05] 세력 확장 (2)
[2902 호]
당연한 말이지만 초인종을 누른다거나 하는 일 없이 곧바로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현관문의 잠금을 해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집구석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전자기기를 다루는 것쯤이야 쉬웠으니까.
그러나.
철컥!
아날로그식 잠금 장치는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젠장!'
철컥- 철컥―!
'뭔가 방법이 없나?'
순간적으로 위층 창문을 통해 내려오는 방법이 떠올랐지만, 불가능했다.
집구석 영역의 제한 때문에 창밖으로 완전히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실 창밖으로 손을 내밀거나 고개를 내밀 정도의 공간은 확보되어 있지만, 밖으로 아예 나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맞아. 새로 얻은 스킬!'
경황이 없어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스킬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집구석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손 Lv. 1
-보이지 않는 손을 소환하여 조종한다.
'빙고!'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봤다.
품위 유지 스킬이나 절대자의 눈 스킬을 사용하며 느낀 것이 있는데, 스킬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딱 하나였다.
'내 의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현관문 안전 고리를 해제하는 이미지를 그리는 순간, 내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오는 감각과 함께 안전 고리를 덮쳤다.
쿠웅— 빠각!
"······."
보이지 않는 손은 너무나도 쉽게 안전 고리를 박살내 버렸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강제로 안전 고리가 뽑혀나간 현관문의 일부가 휘어져 있을 정도였다.
심하게 훼손된 채 열린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뒤늦게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가신 소환 스킬을 썼으면 됐는데.'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최형준을 안쪽에서 소환시켜 문을 열었으면 됐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사람부터 구하고 생각하자.'
어둠으로 물든 집안에 불빛을 밝혔다.
환한 빛이 집안 전체를 비췄고, 거실 중앙에 잠에 빠진 듯 기절해 있는 김다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쁜 사람이었다.
삶의 한계치에 도달해 초췌한 모습임에도 빛나는 그 미모가 다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도대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어째서 하필이면 거실 바닥인 걸까.
안방과 작은 방에는 멀쩡한 침대도 있는데 말이다. 딱히 거실에 이불이 깔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볼을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몸도 흔들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힘없이 흔들리기만 할 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간신히 붙어 있는 숨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상태가 생각보다 더 안 좋아.'
푸석푸석해진 피부, 움푹 들어간 눈, 메마른 입술. 약간의 미열도 있었다.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미모는 정말로 비현실적이어서, 동화 속 공주님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심각한 탈수 증세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방에만 해도 물이든 물병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300ml정도로 용량은 작았지만,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아이시스 생수 수십 개가 있었다.
저것들만 제 때 잘 챙겨 먹었어도 이렇게까지 심각한 탈수 증상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과자나 초콜릿등도 있었고, 찬장에는 종류별로 라면이 들어있기까지 했다.
식량도 있고 식수도 있는데,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오다니.
'뭐하자는 거지, 이 여잔.'
정말로 죽을 작정이었던 건가.
그러고 보면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본인이 죽으려고 마음먹었다고 해도 나는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반드시 살린다.
'어떡한다.'
이런 심각한 탈수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무턱대고 물을 마시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군대에서 배웠다.
특히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는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어 굉장히 위험하다고 알고 있었다.
'정석은 응급실에 보내는 건데.'
정맥 주사를 통해 체내 혈액을 늘려 주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망해버린 세상에 멀쩡히 돌아가는 병원이 있을 리도 없었고, 여기까지 출동해줄 구급대원 또한 없었다.
일단은 응급처치로 김다정의 다리를 들어올렸다.
다리에 있는 피를 심장으로 몰아주어 주요 장기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길게 유지하며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면 진짜 죽는다.'
힐 능력을 가진 여자였다.
이렇게 쉽게 보낼 수는 없었다.
'반드시 살려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가지고 있는 스킬을 하나하나 낱낱이 살폈다. 상점에 등록된 물품 중에서도, 창고에 있는 물건 중에서도 김다정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절묘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설마 이렇게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당장 실험해보면 그만이었으니까.
'퀘스트 부여, 보상은 탈수 증세 회복.'
퀘스트 내용은 1회 숨쉬기였다.
그리고.
[시민 김다정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1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성공했다!'
퀘스트 비용으로 무려 천만 원이 소모되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으음."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김다정은 천천히 눈을 뜨다 거실 불빛을 바라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팔을 들어올렸다.
"이봐요, 김다정씨. 정신이 드세요?"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시민 김다정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또 이러네.'
만나자마자 신뢰도가 상승했던 것은 비단 김다정의 경우뿐만은 아니었다.
오언주도 그랬고, 하동건 파티도 전부 그랬다. 최형준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첫 만남에서부터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알림이 나타났었다.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신뢰도 상승이 빠르다.'
당연한 소리기는 했다.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보다, 아는 사람인 쪽이 신뢰도가 더 빨리 올라가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는 것과 동시에 이렇게 신뢰도가 올라가는 것은 조금 다른 경우였다.
그건 너무 비정상적이었으니까.
비정상적인 신뢰도 상승은 스킬의 영향이 분명했다.
'품위 유지 스킬 때문인가.'
김다정이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윗집 사람이에요."
"······네?"
슬슬 그녀의 눈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내 품에서 벗어났다.
"누, 누구시죠?"
"방금 말씀드렸듯이 윗집 사람입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그쪽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김다정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집안 풍경을 둘러봤다.
그러더니.
"아······."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
김다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었다.
가녀린 어깨가 옅게 떨렸다.
"······."
숨 죽여 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위로라는 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말을 해야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가서 닿을까.
알 수 없었다.
말없이 안아주거나 하는 일도, 슬픔을 공감하는 일도 전부 어느 정도는 친해야 가능한 위로였다.
나는 거기에 해당사항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김다정씨."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눈물범벅인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 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굳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보다는 다른 곳으로, 지금 현실로 시선을 돌리는 게 덜 슬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제 동료가 크게 다쳤습니다."
***
김다정은 자신을 김재현이라고 소개한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남자,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도와달라고, 동료가 크게 다쳤다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자신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는 소리까지 진행되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초능력이라니.
그것도 힐 능력이란다.
사람이 다쳤다는 소리에 반응해서 진지해졌던 스스로가 괜히 바보처럼 느껴졌다.
'힐이라니. 내가 간호사라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 남자,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닐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이 남자가 실은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남자들의 호의를 지겹도록 받아본 그녀였기에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흐음.'
친절한 사람.
호감이 생기니 동시에 이 남자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자연스레 아까 얼핏 봤었던 얼굴이 생각났고, 김다정은 열심히 떠들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잘 생기긴 했네.'
그의 서툰 방식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프흡."
"···왜 웃으시죠?"
신기했다.
보통 자신이 울 때 옆에서 위로하던 남자들의 눈에는 사심이 가득했었는데, 눈앞의 남자에게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남자의 목적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적당히 어울려주자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잠시만요."
[퀘스트를 부여 받았습니다.]
퀘스트 내용 : 힐을 사용하여 부상당한 오언주를 치료하기
제한 시간 : 1시간 00분 00초
보상 : 힐 숙련도 강화
실패 페널티 : 없음.
"어?"
눈앞에 뜬 홀로그램 창을 멍하니 읽고 있는 동안 남자가 말했다.
"움직이실 필요 없습니다. 김다정씨는 몸이 많이 약해지신 상태이니 여기서 이거라도 좀 먹으면서 쉬고 계십시오. 오언주씨는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허공에서 귤 하나가 나타나 그녀의 앞에 떨어졌다.
"···어?"
"그럼 쉬고 계세요."
김다정은 등을 보이고 떠나려는 남자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무슨 일이시죠?"
"이게 뭐예요?"
그는 김다정이 내민 귤을 내려다보더니 대답했다.
"귤인데요."
"그게 아니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허공에서 생겨난 귤 등 물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일어서려는 순간,
"앗―!"
그만 스스로의 발에 걸려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두 눈을 감으며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는데.
"······?"
아프지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던 김다정이 천천히 눈을 뜨자,
"!!!"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언가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김다정은 토끼 눈을 한 채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했다.
"지금은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이니 조심해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다쳐요."
땅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온 김다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한동안 남자가 떠난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다정은 자신의 손에 남겨진 귤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
[시민 김다정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김다정을 진정시켜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또 신뢰도가 올랐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그녀의 신뢰도는 벌써 30을 돌파해 있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실제로 능력을 보여줬던 게 잘 먹힌 것 같았다.
'역시 못 믿고 있었던 거구만.'
서럽게 울다말고 갑자기 웃었을 때부터 왠지 그럴 것 같기는 했다.
갑자기 초능력이니 힐이니 하니까 우스웠던 거겠지.
'하긴. 그런 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기 힘들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런 건 역시 직접 보여주는 게 더 나았다.
♩♬―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1층에 도착한 나는 복도를 걸어 1층 정문에까지 하동건 파티를 마중나왔다.
하동건 파티가 샛길 근처까지 왔던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다.
'저기 오네.'
할머님을 업고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문병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장하다, 우리 병호.'
오늘 하루 문병호 덕분에 얻은 것만 해도 산더미처럼 많았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는데 문득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왜 저렇게 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거지?'
문병호의 뒤를 이어서 달려오는 강덕수, 하동건, 김가영, 유혜린, 김 건 모두 이를 악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뭔가에 쫓기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정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밝혀졌다.
'저건···?'
하동건 파티의 뒤쪽으로 거대한 덩치의 적색 호랑이 한 마리가 그들을 바짝 추적해오고 있었다.
021화 [Episode 05] 세력 확장 (3)
'한 마리가 더 있었어?'
적호(赤虎)가 분명했다.
다만 절대자의 눈으로 봤던 놈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큰 놈이었다.
어쩌면 아까 잡았던 놈보다 더 레벨이 높을 수도 있었다.
'돈이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최소 4천만 원짜리 호박이.
그러나 마냥 즐거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위태위태해 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일 후미에서 따라오던 유혜린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꺄악!"
"혜린아!"
그와 동시에 적호의 기세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빨리 일어나!"
쐐애애액!
피어싱의 기운을 머금은 김가영의 화살이 놈을 향해 날아갔지만, 적호는 달리는 방향을 틀며 그것을 여유롭게 피해냈다.
놈은 부러진 나무를 발판 삼아 뛰어오르더니 이내 정확히 유혜린이 쓰러진 곳을 덮쳐왔다.
"크허엉―!"
날카로운 발톱이 유혜린의 등을 헤집기 직전.
슈슉-
유혜린이 사라졌다.
카가각―!
적호의 발톱이 보도블록을 긁으며 기다란 스크래치를 만들어냈다.
발톱 자국을 따라 깊게 패인 보도블록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크륵?"
놈은 어리둥절해 하며 유혜린이 사라진 바닥을 확인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놈이 찾고 있는 유혜린은 현재 내 옆으로 순간이동 된 상태였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슬아슬했어.'
0.1초라도 늦었다면 유혜린의 등에 적호의 발톱 자국이 새겨졌을 것이다.
유혜린이 넘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가신 소환을 사용한 덕분에 망정이지 잘못했다가는 그녀가 죽을 뻔 했다.
'그래도 덕분에 시간은 확실하게 벌었다.'
적호는 사냥 직전에 먹잇감을 빼앗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미련 남은 몸짓으로 유혜린이 사라진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 사이 하동건 일행은 적호와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 격차는 적호가 움직이자마자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슈슉!
그때 문병호가 할머니를 등에 업은 채 내 옆에 나타났다.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이다.
'적어도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그새 숙련도가 제법 늘었네?'
아무래도 신뢰의 힘 스킬 덕분인 듯 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정신력도 증가했겠지.
그 순간.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부여해.'
문병호는 기절한 할머니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 내게 말했다.
"할머니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금방이라도 적호에게 달려들 기세였기에 그의 앞을 막아섰다.
"기다리세요."
"네? 하지만···."
"저를 믿어주실 수 있겠어요?"
문병호는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확답을 받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하동건 파티 일행을 뒤쫓는 적호를 바라봤다.
'10m정도인가.'
보이지 않는 손의 범위였다.
위력이라면 아까 전에 확인했다.
통짜 쇠로 만들어진 현관문조차도 일격에 우그러뜨리는 위력과 잠금장치를 통째로 뜯어내버리는 악력.
'이 정도면 충분히 해 볼만 해.'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제일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 것은 오언주를 업고 있는 강덕수였다.
그 뒤를 이어 김가영, 김 건 마지막으로 하동건이 줄줄이 선을 넘어왔다.
집구석 영역이 발동되는 안전지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하동건이 뒤로 돌아 적호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쐐애액!
어느새 적호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크허엉!"
아까부터 적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하동건이었고, 적절한 타이밍에 선공을 날린 것이었다.
하동건의 의도대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수 있었다면 모두 무사히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놈은 오히려 더 매섭게 돌진해왔다.
그 과정에서 하동건이 쏘아낸 화살은 적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상 생체기 하나 못 낸 공격이었다.
"동건아!"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김가영이 소리쳤다.
그러나 적호와 하동건의 거리는 이미 지척.
너무 늦었다.
"전부 달려!"
하동건은 일행들에게 소리치고는 아파트 입구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에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호를 한 발짝이라도 더 떼어놓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과감하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 셈이었다.
'사람 하나는 잘 봤다니까.'
리더로서의 책임감.
현명한 상황 판단력.
과감한 실행력.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이런 것들을 모두 갖춘 인재는 흔치 않았다.
'잡아.'
적호의 이빨이 하동건을 덮치기 직전.
"케헥!"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적호의 모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놈의 육중한 몸을 들어올렸다.
"크아아앙―!"
적호는 신경질 내며 허공에 발길질을 해댔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놈의 발길질에도 흔들림 없었다.
분노에 가득 차 있던 발길질이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
하동건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적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김가영씨."
"네, 네엣?"
"마무리해주세요."
"아."
보이지 않는 손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죽여버릴 수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커다란 손해였다.
당장 시민 보너스도 받을 수 없었고, 가신 특전도 없었으니까.
당장 김가영이 사냥하면 전리품이 4배가 되는데, 굳이 내가 마무리 할 이유가 없었다.
내 말 뜻을 알아들은 김가영은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적호의 머리통을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우웅-
희미한 빛이 그녀의 화살을 휘감았고,
쐐애애액―! 푸슉!
그것은 단숨에 적호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적호(Lv. 28)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63,211,776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점점 더 시끄럽게 변해가던 적호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나니 급격히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가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가영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유혜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유혜린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
······
하동건 파티의 신뢰도와 충성도가 올라간다는 알람이 어지럽게 울려댔다.
그리고.
[시민 하동건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하동건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드디어, 하동건이 내게 마음을 열었다.
'가신 등록, 하동건.'
띠링!
***
우우웅―
김다정의 손에서 흘러나온 초록빛 광채가 피투성이가 된 오언주의 옆구리로 흘러들어갔다.
꽤나 심각해보이던 오언주의 상처는 금세 피가 멎고, 새살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상처가 호전됨에 따라 힘겨워 보이던 오언주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고 있었다.
'때마침 김다정을 발견해서 천만 다행이지.'
오언주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변신이 풀린 상태여서 수인화의 재생 능력이 적용되지 않는데다, 일일 퀘스트를 모두 끝내버린 터라 퀘스트 부여를 통한 상처 회복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자칫하면 오언주를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하동건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붉은 색 호랑이는 뭔가요?"
"병호네 할머님이 계신 집이 그 녀석들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님을 구출하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 한 마리와 마주쳤고,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가 더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놈이 저희를 쫓아온 것이고요."
그의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가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그 골목길은 너무 깨끗했다.
눈 씻고 찾아봐도 고블린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곳에 고블린들이 있었다면 문병호의 할머님은 무사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적호 두 마리의 영역이었던 건가.'
그놈들이 지키고 있는 영역이었기에 감히 고블린 따위가 침범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문병호의 할머니는 오랜 기간 무사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문병호의 할머니가 고블린들의 위협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시민 김다정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73,312 원이 소모됩니다.]
"후아. 다 됐어요!"
"수고하셨어요, 다정씨."
"뭘요. 그럼 저 이제 집에 돌아가도 되나요?"
지금 이곳은 김다정의 집이 아니었다.
"잠시만 대기해주세요."
당연하게도, 이곳은 최형준의 집이었다.
"아줌마! 귤 까주세요!"
"하.하. 서연아, 언니~ 해야지. 따라해 봐. 가영 언니이~ 귤 까주세요~"
"가영 언니이~! 귤 까주세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복귀한 하동건 파티와 김다정, 그리고 이곳에서 샤워를 했던 김다빈과 김민호 남매도 모두 최형준의 집에 모였다.
아까부터 내 옆에서 안절부절 못 하며 자리를 지키던 최형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어- 재현님. 이제 앞으로 계속 저희 집에서 모이는 건 아니겠죠? 하하."
최형준의 두 눈에는 체념의 감정이 느껴졌다.
가족들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빼앗긴 가장의 슬픔이 그곳에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부터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언제까지고 최형준의 집을 쉐어하우스 취급하며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적당한 해결책도 생긴 참이었다.
"지금 2901호는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전기를 비롯한 생활전반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공급해드릴 테니 하동건씨를 비롯한 일행 분들은 그곳에서 생활해주면 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가장 기뻐하는 것은 하동건 파티가 아닌 최형준이었다.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늦게라도 집주인이 나타난다면 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로 가득해진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였다.
"김다빈씨."
"네, 네에!"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김다빈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쏠리자 조금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21층에 있는 2101호랑 2102호도 현재 빈집입니다. 거기에도 전기를 공급해 놓을 테니 샤워나 용변, 기타 잡다한 것들은 그곳에서 해결해 달라고 다른 생존자분들에게 전해주시겠어요?"
은연중에 더 이상 최형준의 집을 찾아오지 말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것을 알아들은 것인지 김다빈은 잔뜩 쭈그러든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채찍을 가했으니 이제는 당근을 줄 차례였다.
"원하신다면 한 곳은 두 분이서 마음대로 사용하시고 나머지 한 곳만 공용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저, 정말요?"
"네. 대신 두 분이 해 주셨으면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당근을 덥석 문 김다빈이 적극적으로 대답해왔다.
"뭐든지 말씀만 해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저와 생존자들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메신저···요?"
"네."
백 명에 달하는 시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하동건 파티처럼 직접적으로 경험치나 돈을 벌어다주진 않아도, 인구수가 늘어갈 때마다 착실히 늘어가는 보너스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가만히 놔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부터 가장 빨리 고블린 100마리를 처치하는 팀에게 빈집을 한 채 공급해주겠다고 전해주세요. 전기, 수도, 가스의 공급은 물론 식량도 무제한 지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21층부터 30층까지 모든 세대에 전기와 수도 등을 공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적호 두 마리 덕분에 1억에 가까운 여유 자금이 생기면서 돈이 그리 궁하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이것들을 제한적으로 공급하여 시민들을 차등 대우할 계획이었다.
"또한 각 세대마다 생존자 10명을 받아들인다면 해당 세대에 같은 대우를 해 줄 것입니다. 다만, 어느 층이냐에 따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다는 점 꼭 전해주세요."
오로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자들에게만, 그 가치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말을 마친 나는 이제는 최측근이 된 하동건 파티와 최형준 가족을 제외한 모든 시민에게 같은 내용의 퀘스트를 부여했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고블린 사냥 (0/10)
제한 시간 : 168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공용 시설 사용 금지.
[이대로 퀘스트를 부여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022화 [Episode 05] 세력 확장 (4)
"헉! 헉! 헉!"
백승민은 지하 주차장을 죽어라 내달리고 있었다.
"키잌!"
"캬아악!"
"끼긱―! 끼기긱!"
그의 뒤로 수십 마리가 넘는 고블린 무리가 떼를 지어 쫓고 있었다.
'젠장!'
어디서 주워온 건지 부엌칼이나 가위 따위를 들고 있는 고블린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피와 먼지 따위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칼날에 닿기만 해도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고지가 머지않았다.
"끼기익!"
고블린 놈들이 바로 등 뒤에까지 따라붙었다는 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백승민은 있는 힘껏 점프했다.
타앗―!
아파트로 진입하는 지하 1층 입구.
그가 몸을 던져 그곳을 통과한 직후.
"야! 찔러!"
"흐읍!"
"워후, 많이도 끌고 왔네."
한쪽 벽면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남자 세 명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창처럼 생긴 무기를 들고 있었다.
기다란 막대기에 식칼을 연결하여 만든 조잡한 창.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블린들을 사냥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푸욱!
"꽤애애액!"
"어이쿠!"
고블린들은 옆에서 자신의 동족이 죽어나가던 말던 눈앞의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가 적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물어뜯는다.
그렇게 숫자로 밀어붙여 자신들보다 훨씬 강력한 적도 잡아먹는 게 바로 고블린 들이었다.
하지만.
터엉! 카가각!
"케엑?"
"케에엑?!"
고블린들의 돌격은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좌절되었다.
동족의 목숨을 바쳐 감행한 공격은 알 수 없는 벽에 완전히 차단된 것이다.
푸욱! 푹! 푹!
그동안 투명한 벽 안쪽에 있는 남자 세 명은 열심히 고블린들을 찔러댔다.
한꺼번에 몰려들었던 고블린들은 투명한 벽과 마구잡이식으로 밀어붙이는 동족들 사이에 끼여 도망치지도 못하는 신세였고, 남자들은 인형 뽑기를 하듯 고블린들을 골라 죽였다.
푹! 푹! 푹!
"끄에에엑!"
"끼에엑!"
그들은 이미 이런 일이 익숙한 듯 기계적으로 고블린들의 숨통을 끊어갔다.
그렇게 절반 정도의 고블린들이 허무하게 죽었을 때 쯤, 상황을 파악한 고블린들이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야야! 저기! 저기! 저 놈 도망가잖아!"
"이 새끼들 슬슬 튄다!"
"일단 아무데나 찔러!"
고블린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과감하게 투명한 벽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미 투지를 잃어버린 고블린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도망치기 바빴고,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조잡한 창에 찔려 죽었다.
"야!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정리하던 와중 남자 한 명이 말했다.
"흐읍!"
그가 조잡한 창을 힘껏 던졌다.
창은 그대로 수 미터를 날아 고블린 한 마리의 등에 적중했다.
"꽤애액!"
"나이스! 봤냐? 봤지?"
"사장님 나이스 샷~."
남자들에게서는 고블린에 대한 공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이런 방식의 사냥을 몇 차례나 반복해왔기 때문이었다.
고블린 퀘스트가 등장한지 닷새째, 백승민을 포함해 이곳에 있는 네 명은 이러한 방법으로 일찌감치 10마리를 잡는 퀘스트를 클리어한 상태였다.
창을 던져 고블린을 맞췄던 남자가 다른 이들을 향해 물었다.
"야, 다들 몇 마리 잡았냐?"
"잠만. 음. 난 스물 둘."
"내가 이겼네. 난 스물넷인데."
그들이 말하는 것은 퀘스트 창에 적혀 있는 고블린 사냥 숫자였다.
처음 주어지는 10마리 사냥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곧바로 비슷한 퀘스트가 부여된다.
고블린 100마리를 잡는 퀘스트였지만, 두 번째 퀘스트는 페널티가 없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몇 마리를 사냥했는지 숫자를 세는 용도로 사용할 뿐이었다.
창을 든 남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계산을 해 보더니 말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세 명만 합쳐도 백 마리 넘게 잡은 거네?"
"진짜? 벌써?"
"와. 처음에는 백 마리 언제 잡나 했었는데."
그때 뒤쪽에서 숨을 고르던 백승민이 항의했다.
"하아 씨발 승엽이 형! 분명 많아봤자 열댓 마리 정도라매!"
백승민이 쏘아붙이자 백승엽이 신경질적인 어투로 대응했다.
"뭐가 또 불만인데. 엉?"
"씨발 형 눈에는 저게 열댓 마리로 보여?"
"비슷한 거 같던데."
"하아···. 씨발."
그러자 백승엽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그 강도가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얌마. 잘 풀렸으면 됐지. 뭐가 불만인데? 이제 새 집도 생길 텐데."
"나는 형 때문에 뒤질 뻔 했다고!"
"하. 동생아."
백승엽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사냥 법을 생각해낸 게 누구냐?"
"······."
"나야."
백승엽은 애초에 대답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작전은 내가 세웠고, 창은 쌍둥이가 만들었고··· 그러니까 미끼 역할은 니가 맡는다매? 잘 뛰어서 자신있다매?"
"그건···."
"결과적으로 아무도 안 다치고 잘 끝났잖아. 그런데 너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건데? 불만이면 팀에서 빼줘? 너 빼고 우리끼리만 해도 100마리 넘거든 지금."
"······."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문지훈과 문상훈, 쌍둥이 형제들이 백승엽을 말리고 나섰다.
"승엽이 형. 형이 좀 참아. 승민이도 잘 했잖아."
"그래. 승민이가 미끼 역할 잘 하더라. 진짜 존나 빠르던데?"
"인정. 우사인 볼트인줄~."
문지훈과 문상훈의 장난스러운 어투에 표정을 푼 백승엽이 말했다.
"후우. 애새끼가 빡치게 하잖아. 어디서 형한테 욕질이야?"
분위기가 풀어질 기미가 보이자 문지훈은 곧장 백승민을 툭툭 치며 다그쳤다.
"승민아, 야. 그래. 형한테 욕하는 건 좀 선 넘었지~. 얼른 사과해."
백승민은 고개를 숙인 상태로 사과했다.
"······미안."
백승엽은 자신의 동생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서 창을 챙겼다.
"됐고. 얼른 21층으로 가자. 새집 받아야지."
"헌집 줄게~ 새집 다오~."
그들은 자신들이 고블린 100마리를 최초로 잡은 팀일 것이라 확신하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죄송하지만, 이미 먼저 보상을 받은 팀이 있어서요."
"···우리보다 먼저 100마리를 잡은 팀이 있다고요?"
"네."
백승엽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에이, 다빈씨. 우리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재미없어요. 농담하지 말고 빨리 집이나 내놔요."
"농담 아닙니다."
김다빈은 생긋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침 저기 오고 있네요. 그쪽보다 먼저 고블린 100마리 잡은 팀."
백승엽 일행은 고개를 돌려 김다빈이 말한 팀을 봤다.
그곳에는 근육질의 남자 하나와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저씨, 그리고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할 것처럼 생긴 아줌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백승엽은 그들이 내뿜는 포스에 압도되어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김다빈이 근육질의 남자, 김민호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됐어?"
"쇼부 봤어. 새집은 포기하고 대신 우리 집이랑 지호 아저씨네에 전기랑 식량 뭐 그런 것들 공급해주고, 지호 아저씨네 딸들은 퀘스트 면제 받고."
"응? 지호아저씨네 딸들은 미성년자 아니었어? 미성년자면 퀘스트 면제 대상 아닌가?"
그에 대한 대답은 남지호쪽에서 나왔다.
"둘 다 성인입니다."
"아하."
옆에 있던 남지호의 아내인 문해리가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호호. 우리 애들이 좀 동안이기는 해. 엄마 닮아서."
"그, 그쵸? 하하."
"나 닮아서 활도 잘 쏠 텐데 이이가 애들 걱정이 좀 많아야지."
솔직히 문해리 보다는 남지호 쪽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때 김민호가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어. 그리고 지호 아저씨네 활이랑 화살도 공급받기로 약속받았어."
남지호와 문해리가 가지고 있는 컴파운드 보우는 고블린 사냥이 끝날 때까지만 잠시 빌린 물건이었다.
그것을 아예 지급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김다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활이랑 화살은 왜? 고블린 사냥이라도 계속하게?"
"응. 재현님이 근처에 있는 고블린 좀 소탕해달라고 직접 부탁하셨거든. 징글징글한 고블린 새끼들. 어찌나 많은지 잡아도잡아도 끝이 없어요."
그때까지 조용히 옆에서 남매의 대화를 엿 듣던 백승엽이 끼어들었다.
"잠깐. 이거 특혜 아니야? 너희들은 관계자잖아. 화, 활까지 따로 받고! 이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백승엽의 정열적인 항의를 본 김민호는 손뼉을 치며 자신의 누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누나. 그 분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 불공평해 보일 수 있다면서··· 그래서 2등, 3등 팀도 비슷한 혜택을 줄 거라고, 30층으로 보내달라고 말씀하시던데."
"그래?"
김다빈이 영업용 미소를 걸치고는 백승엽을 향해 말했다.
"들으셨죠? 잘 됐네요. 파티원들이랑 다 같이 30층으로 올라가 보세요.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러죠."
백승엽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자신은 전기, 수도, 가스가 들어오는 집을 얻기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
[2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마자 백승엽은 동료들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하! 소문에 의하면 우리보다도 어리다던데 그분, 그분 거리면서 극존칭 쓰는 거 존나 웃기지 않냐?"
"그러게요. 풉. 무슨 지가 예수님이라도 되나?"
"예수님은 무슨, 사이비 교주겠지."
"맞네! 딱 그거네!"
쌍둥이가 백승엽에게 열심히 맞장구쳐주던 그때 백승민이 툭 하고 한 마디 던졌다.
"당장 그 사람 능력 안에서 보호 받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나 모르겠네."
"······."
"게다가 지금도 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가는 중인 거 아닌가?"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야, 너···."
백승엽이 또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
♩♬―
[30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30층에 도착했다.
"···이따가 보자."
백승엽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초인종을 누르려던 그 순간.
철컥.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현관문 앞쪽에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겨오는 남자가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존재감.
"반갑습니다."
꿀꺽
막상 그와 직접 대면하자 엘리베이터에서 막말하던 백승엽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의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며 자세를 낮추게 되었다.
"배, 백승엽이라고 합니다."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백승엽씨 일행분들의 활약은 잘 봤습니다. 투명 방벽을 이용해서 안정적으로 사냥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백승엽은 내심 깜짝 놀랐다.
'그, 그걸 어떻게?'
자신이 발견한 사냥 방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중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사냥법이었다.
30층에서 호의호식하는 그가 알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1301호와 1502호에 전기, 수도, 가스를 공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각각 백승엽 형제의 집과 쌍둥이네 집이었다.
새로운 집을 받는 게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사실상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전기, 수도, 가스가 공급되는 집이었지 새집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원래 살던 집에 그것들이 공급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다른 생존자를 찾아서 데리고 같이 살아야 가능하다고···."
"여러분들은 대신 고블린 100마리를 사냥해 주셨으니까요. 충분합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미소를 짓던 백승엽은 순간적으로 표정을 굳혔다.
한 가지 이상한 사실에 대하여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우리들의 집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거지?'
그때 김재현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참. 저는 사이비 교주가 아닙니다. 부처나 예수는 더더욱 아니고요."
"예?"
순간 백승엽은 소름이 돋았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과 쌍둥이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 설마.'
창백해진 표정의 백승엽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백승엽은 무슨 부탁을 하든 들어줄 기세였다.
"별건 아니고. 지금처럼 고블린 사냥을 지속해주셨으면 합니다. 약소하긴 하지만 이것들은 제 성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과 함께 허공에서 물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쌀부터 시작해서, 라면, 양파, 당근, 계란, 우유 등 식료품과 활과 화살 한 세트, 그리고 창 세 자루가 나타났다.
그들이 만든 것처럼 막대에 식칼을 고정시킨 조잡한 창이 아닌, 일반적인 창이었다.
허공에서 물건들이 생겨나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한 백승엽은 이내 허리까지 숙이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이제 막 자대에 배치 받은 이등병과도 같았다.
023화 [Episode 06] 건설 (1)
나는 낑낑 대며 물건을 옮기는 백승엽 일행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백승엽과 쌍둥이들은 내게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내 눈치를 보며 알아서 설설 기었다.
정리를 마친 백승엽이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군기가 바짝 든 백승엽이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이름 : 백승엽 (Lv. 10)
신뢰도 : 39
각성 능력 : 없음
경험치 분배율 : 0%
정산금 분배율 : 0%
★퀘스트 부여 퇴출』
'신뢰도가 급상승했군.'
백승엽 파티는 백승민을 제외하고는 전부 신뢰도가 한 자리 숫자였었다.
그랬던 것이 첫 만남에서 수치가 폭등한 것이다.
'그래도 다루기 쉬운 놈들이라 다행이네.'
솔직히 말해서 백승엽과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허세가 심하고 복어처럼 자신의 몸을 부풀리는 데에만 급급한 이들.
목숨 걸고 고블린들을 이끌고 온 백승민을 겨우 자기 권위를 세우기 위해 구박하던 모습도, 겨우 창던지기로 쎈 척 하며 자신을 과시하는 모습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지원하는 이유는 인재가 모자라도 너무 모자랐기 때문이다.
'몬스터 사냥을 나서는 팀이 겨우 세 팀밖에 없을 줄이야.'
일주일간 생존자들이 꾸준히 합류하여 시민들의 인구는 총 197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그 중에서 몬스터 사냥에 적극적인 팀은 겨우 세 팀뿐이었다.
김민호 팀 , 백승엽 팀, 신유라 팀.
이들을 제외하면 고블린 사냥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다른 동에 사는 10명의 사람들을 구해올 생각을 하지, 몬스터를 사냥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최형준처럼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것 자체에 커다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심지어 고블린 10마리 사냥 퀘스트 조차 버거워하는 게 일반적인 시민들의 현실이었다.
그나마 백승엽 파티가 퍼뜨린 미끼 작전을 통해서 퀘스트를 클리어해내는 이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가고는 있었다.
'신유라 팀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인원은 백승엽 팀 보다 두 명이 더 많았는데, 사냥한 고블린의 숫자는 이제 겨우 80마리를 넘긴 수준이었다.
겨우 네 명이서 100마리를 처치한 백승엽 팀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셈이었다.
'사실상 평범한 시민들과 그리 큰 차이는 없지.'
신유라의 팀원들이 사냥한 고블린들의 숫자는 사실상 일인당 12마리 정도.
지금 시점에 10마리 사냥 퀘스트를 클리어한 일반 시민들과 그리 큰 차이 없는 것이다.
'일주일마다 고블린 10마리 사냥 퀘스트를 주면 되겠지. 페널티를 공용 시설 사용 제한으로 하면 어쩔 수 없이 수행할 테니까.'
나는 시민 관리창을 확인했다.
현재 인구수 ( 197 / 900 명)
추가 경험치 +100%
추가 정산금 +100%
아쉽게도 100명 이후로는 더 이상 추가 보너스가 늘어나지 않았지만, 어찌됐든 고블린 10마리를 사냥하면 일주일에 약 6만 원 정도를 벌어오는 셈이다.
신유라 팀은 그들보다 아주 살짝 나은 수준.
결국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가져오는 백승엽 파티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은 '종'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주는 사람은 '주인'이 되는 법이다.
나는 백승엽의 주인이 되어 확실히 그들을 길들여놓을 생각이었다.
'뭐, 잡초라도 열심히 키우다보면 봐줄만해 지겠지.'
어쨌든 김민호 팀 다음으로 성과를 낸 팀이었으니 상을 줄 필요가 있었다.
'경험치 분배율을 50%로 조정해주면 충분하겠지.'
너무 많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시민들이 사용하는 공과금 정도였으니까.
어차피 대부분의 돈을 벌어오는 것은 바로 하동건 파티였다.
'백승엽이 하동건의 10분의 1만이라도 닮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허세와 과시로 쌓아 올린 가짜 리더쉽이 아닌, 책임감과 희생을 바탕으로한 진짜 리더쉽을 가진 남자.
하동건을 생각하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름 : 하동건 (Lv. 33) [+]
칭호 : [여섯 번째 종] [기사] [창술사]
신뢰도 : 70 충성도 : 78
각성 능력 : 던지기, 찌르기
경험치 분배율 : 200%
★퀘스트 부여 』
처음부터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던 하동건을 가신으로 들이자 평범했던 다른 이들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우선 모든 가신들이 공통적으로 얻는 '여섯 번째 종'말고도 칭호가 추가로 두 개 더 생겼다.
{기사}
(충성도)%만큼 신체 능력이 증가하며, 기사 칭호를 가진 가신이 사냥한 몬스터의 경험치와 정산금은 3배로 증가하여 지급됩니다.
※기사는 경험치를 분배하여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평범한 가신들 보다 1.5배 더 많은 보상을 획득하며, 게다가 경험치를 분배해서 성장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하동건이 사냥할 때마다 벌어들이는 총 수익이 600%인 셈이니 그 중에 일부인 200%를 나눠주는 것은 그리 아깝지도 않았다.
그리고 하동건이 개방한 세 번째 칭호.
{창술사}
-현재 숙련도 : 11%
창의 숙련도가 높을수록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방금 백승엽 파티에게 나눠줬던 보급용 창을 만들어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문병호가 벌어다준 스킬 포인트로 레벨4가 된 상점은 할인율이 20%로 올랐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기능을 하나 더 개방했다.
〔상품화〕
조잡한 물건을 판매 가능한 물품으로 진화시킵니다.
기다란 막대기에 식칼을 테이프로 고정시켜 만든 조잡한 창.
그것을 상점에 등록시킨 뒤 300만원의 거금을 들여 상품화를 시켰다.
그러자 조잡한이란 수식어가 없어지고 보급형 창이 만들어졌다.
보급형이라는 딱지가 붙어있긴 했지만, 하동건이 창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성능은 나름 괜찮았다.
창 하나로 고블린들 사이에서 무쌍을 찍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가신들 중에서 하동건만이 유일하게 두 개의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던지기 (B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물건을 투척하며, 공격력을 5배 증폭시킵니다.
처음부터 들고 있었던 야구공 투척이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던지기 스킬과,
찌르기 (A 등급)
체력을 소모하여 창을 내지르는 순간 일시적으로 창날에 검기를 생성합니다.
무려 A급의 스킬.
테스트 해본 결과 검기가 생성되는 순간은 정말이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콘크리트 철근조차도 일격에 베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상 이제 내가 가진 전력 중 최강이 된 셈이었다.
그때였다.
[오크(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721,89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크?'
겨우 18레벨 치고 정산금이 두둑한 것은 하동건이 사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곧바로 절대자의 눈의 위치를 이동하여 그쪽 상황을 살폈다.
"취익-!"
하동건과 대치하고 있는 근육질의 괴물들이 보였다.
고블린과 같은 초록빛 피부에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 그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뻐드렁니까지.
전형적인 오크의 모습이었다.
하동건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딛으며 놈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우웅!
그 순간 푸른 기운이 창날을 휘감았고, 그것은 곧 오크의 심장을 보기 좋게 헤집어 놨다.
"꾸에엑!"
옆에 있던 오크 놈이 하동건의 빈틈을 노리고 글레이브를 찔러왔다.
그 순간.
쐐애애액―
뒤쪽에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하동건을 공격하려던 오크의 미간을 꿰뚫었다.
하동건은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오크의 옆으로 스텝을 밟으며 손에 들고 있던 보급형 창을 힘껏 던졌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던 중인 오크 한 마리의 배에 적중했다.
콰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크의 상반신이 박살이 났다.
'저게 얼마짜린데.'
무려 30만원 짜리 물건을 냅다 집어던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지만, 하동건이 벌어들인 돈을 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크(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633,00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래 원래부터 이렇게 쓰라고 준 창인데.'
하동건은 자신의 옆에 쓰러진 오크의 글레이브를 챙기고는 일행들이 있는 뒤쪽으로 빠졌다.
오크들이 나오던 지하철역에서 멀어지며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오크인가.'
아파트 근처에 있는 고블린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 뒤에는 하동건 파티에게 지하철 공략을 명령했다.
부모님이 계신 남부민동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지하철을 공략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상에 널려 있는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가는 것보다는 지하철 선로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몬스터들이 지하철을 점거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게 고블린들이 아니라 오크일 줄은.'
오크들은 고블린들과 달리 체급부터가 달랐다.
레벨도 훨씬 높았고, 당연히 놈들이 주는 경험치와 정산금도 훨씬 많았다.
'대박이네.'
이것으로 단기 목표는 정해졌다.
'파티 퀘스트 부여, 오크 100마리 사냥.'
퀘스트를 부여받은 하동건 일행이 다시 지하철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활약상을 느긋하게 지켜보려 할 때였다.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응?"
누군가 영역의 경계선을 건드리고 있다는 알람이 나타났다.
보통 이 알림이 나타나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말 그대로 몬스터가 영역을 침범하려는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
바로 새로운 시민들이 찾아왔을 때.
'세 명인가.'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과 부모로 구성되어 있는 가족이었다.
501호에 사는 홍정수의 안내를 받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럼 이제 딱 이백 명이네. 시민권 제의해.'
세 명이 시민권을 받아들이자.
[임동우, 손샛별, 임현승에게 시민권을 제의합니다.]
[시민의 숫자가 20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세금 징수' 스킬을 개방합니다.]
새로운 스킬이 개방되었다.
{세금 징수}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현금의 10%를 징수합니다. 단, 이때 시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쿨타임 : 30일
"호오?"
여태까지 시민들에게 정산금을 분배하는 시스템이 왜 존재하나 했었는데, 바로 이 스킬을 활용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현금이라.'
즉, 세금 징수 스킬을 쓰기 위해서는 정산금을 일부 시민들에게 나눠줘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이면 너무 긴데.'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은 돈이 복사가 된다는 말이었다.
다음에 다시 스킬을 사용할 때도 여전히 돈이 남아 있을 테니 복리 개념으로 계속해서 돈이 늘어나게 되겠지.
'일종의 투자 개념인가.'
시민들에게 분배하는 정산금이 주식, 세금 징수 스킬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이자라고 생각하면 간편했다.
단, 이 주식은 내 마음대로 회수할 수 없는 종류의 주식이었다.
'단점은 원금을 회수하려면 최소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장기적으로 볼 때는 시민들에게 정산금을 분배해 주는 게 무조건 이득이었지만, 지금 나는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동건 파티의 스펙을 올려서 남부민동으로 보내야 해.'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중요했다.
최대한 빨리 파견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흠. 일단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만 시민들에게 정산금을 나눠주도록 할까.'
어찌됐든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그리고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시민들이 몬스터 사냥에 좀 더 적극적이게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선 30% 정도만 나눠주도록 할까.'
200%에서 30%를 떼 주는 것이었지만, 묘하게 아까웠다.
'이건 투자다. 투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돈을 하동건 파티가 벌어들인다는 점이었다.
김 건을 제외한 모두가 가신으로 이루어진 파티였기에, 손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오크(Lv. 19)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3,211,098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계속되고 있던 하동건 파티의 사냥 덕분에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집구석 선포가 10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3개 획득합니다.]
그와 동시에 당연하다는 듯이 격통이 찾아왔고,
"으윽."
집구석 영역이 1층까지 모두 집어삼켰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아파트 한 동 전체에 집구석 선포하셨습니다.]
[지원금 1,000,000,00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건설'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생뚱맞은 기능이 추가되었다.
024화 [Episode 06] 건설 (2)
"건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지이이잉―
집구석 영역이 확장될 때 특유의 느낌이 들면서 아파트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큭. 또?'
본능적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비했지만,
'······?'
찾아온 것은 고통이 아닌, 새로운 시스템 창이었다.
[현재 건설 가능한 시설]
-태양광 발전기 (133,000,000 원)
-매점 (219,900,000 원)
-헬스장 (300,000,000 원)
[지원금 : 1,000,000,000 원]
하나 같이 억 소리가 나오는 시설들의 가격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제일 가격이 싼 것이 1억 3천만 원짜리 태양광 발전기였다.
'태양광 발전기.'
그것을 선택해보니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반투명하게 나타났다.
가끔씩 주택 지붕이나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모양새였다.
그와 함께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었는데, 하루 생산하는 전력량과 잉여 전기가 남으면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절대자의 지갑으로 들어온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기의 효율을 돈으로 환산한 가치까지.
'1년에 겨우 3천만 원이라고?'
1억 3천이라는 거금을 들여야 설치할 수 있는 주제에 1년에 생산하는 양은 겨우 3천만 원 수준이라니.
그러니까 본전을 뽑으려면 최소 5년 이상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아니오.'
돈이 너무 아까웠다.
'지금 돈 들어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시민들의 인구가 수백 명이 되면서 소비하는 전력량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태양광 발전기가 필요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하동건의 레벨을 하나 더 올려주겠다.'
건설 기능에 흥미가 팍 식어버리려던 그때, 건설 항목의 제일 밑 부분에 있는 지원금이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10억.
아파트 한 동 전체를 정복하며 받아낸 거금이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설마 이거?'
※지원금 : 시설을 건설할 때만 사용가능한 금액입니다.
'아···!'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억이라는 거금이지만, 내 지갑에 들어와 있는 돈과는 전혀 별개의 돈이었다.
건설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인 셈.
'이러면 다 써야지.'
그림의 떡인 10억을 써서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을 아낄 수 있는 셈인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태양광 발전기 시설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23시간 59분 59초
순식간에 지원금의 자릿수가 달라졌다.
[지원금 : 867,000,000 원]
'쓰읍. 그래도 아깝네.'
어차피 건설에서밖에 사용하지 못하니 게임 포인트와 다를 바 없는 돈이긴 했지만, 1억이 넘는 거금이 사라지는 걸 보니 뼈아프긴 했다.
이렇게 큰돈을 사용해 본 적이 없기도 했고.
'혹시 하나 더 설치할 수 있나?'
시민들의 생활에 사용되고 남은 잉여 전기는 절대자의 지갑으로 환전되어 들어온다고 적혀 있었다.
생산 되는 전기가 많아지면 지갑으로 들어오는 돈도 많아질 거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흘러가진 않았다.
[태양광 발전기 시설은 아파트 한 동 당 최대 하나까지 설치가 가능합니다.]
'쯧.'
아쉽게도 태양광 발전기 시설을 늘리기 위해서는 집구석 선포 레벨을 올려 주변 아파트부터 정복해야 할 것 같았다.
'매점은 또 뭐야?'
2억이 넘어가는 가격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10억에 달하는 지원금을 모두 써버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매점은 생각보다 신박한 방식이었다.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스킬과도 연동되는 시설이었는데, 내가 직접 등록한 물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따로 캐셔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반투명한 물품 앞에서 돈을 내면 실시간으로 물건을 생산해주는 시스템이었다.
'괜찮은데?'
그동안 구호물자를 만들어서 내려 보내는 것도 일이었다.
그런데 매점을 설치하면 시민들이 알아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었다.
'가격도 내가 설정할 수 있고.'
현재 상점 물품들은 20% 할인가로 구매가 가능했는데, 이것을 원래 가격으로 매점에 전시하면 20%만큼의 차익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설치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시민들에게 정산금을 분배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세금 징수 스킬도 요긴하게 써 먹을 수 있게 된다.
'이러면 시민들에게 분배되는 정산금 비율을 좀 더 높여줘도 되겠어.'
회수할 방법이 생긴 이상 시민들에게 분배되는 정산금이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을 테니까.
조금 악랄한 방식이기는 해도 당장 물이나 쌀과 같은 필수품의 가격을 올리면 돈을 회수하기는 쉬울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할 경우는 거의 없을 테지만.'
매점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설치해.'
띠링!
[매점을 설치할 장소를 정해주세요.]
옥상에 설치되는 태양광 발전기와는 달리 매점은 한 세대를 통째로 갈아엎는 식이었는데, 마침 적당한 곳이 있었다.
'101호.'
고블린들에 의해 엉망진창이 된 1층과 2층 세대.
따로 청소를 하지도 못했는데, 매점을 설치하면 그대로 갈아엎어지는 것이다.
박살난 유리창이나 고블린들이 싸질러 놓은 똥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것이다.
[매점 시설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47시간 59분 59초
'마지막은··· 헬스장?'
처음에 봤을 때는 뭐 이런 쓸모도 없는 시설까지 있는 걸까 생각했었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중에서도 헬스장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운동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헬스장은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헬스장"
시민들을 위한 기초 훈련장.
근력과 체력을 늘릴 수 있으며, 이곳에서 훈련 시 운동 효율이 200% 증가한다. 15레벨 이하의 시민일 경우 300%의 추가 효율 보정을 받는다.
'헐.'
꼭 퀘스트 보상이 아니더라도 운동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운동을 열심히 한 시민일수록 레벨이 높았다.
전직 보디빌더인 김민호가 15레벨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헬스장의 설명대로라면 김민호의 수준까지는 거의 5배 빠르게 성장한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운동 효율 증가 버프가 있으니 퀘스트 보상과 함께 사용하면 효율이 굉장히 좋을 듯 했다.
띠링!
[헬스장을 설치할 장소를 정해주세요.]
매점과는 달리 헬스장은 좀 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2층을 통째로 헬스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헬스장 시설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71시간 59분 59초
그렇게 헬스장까지 설치하고 나니 남은 지원금은 3억 5천만 원 정도였다.
'알차게 썼네.'
지원금 덕분에 내 돈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 그럼.'
갑자기 생겨난 건설 기능.
이것은 에피타이져에 불과했다.
'10억이나 되는 지원금 덕분에 에피타이져 치고는 상당히 맛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메인은 따로 있었다.
건설 모드를 해제시키고 감각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 나는 스킬 창을 열어 확인했다.
[보유 스킬 포인트 : 3]
10레벨을 달성하면서 3개의 스킬 포인트들이 생겨났다.
게다가 8레벨에 얻은 보이지 않는 손과 9레벨에 얻은 집구석 수리 스킬을 제외하고는 모두 레벨 옆에 [+] 버튼이 활성화 되어 있었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어떤 스킬의 레벨을 올릴지는 정해둔 상태였으니까.
'절대자의 상점, 절대자의 품위 유지, 절대자의 눈.'
우선 절대자의 상점부터 레벨업을 시켰다.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스킬이 Lv. 5가 되었습니다.]
[등록 가능한 물품의 개수가 500개로 늘어났습니다.]
[품목화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뭐야?"
4레벨 때만 해도 등록 가능한 물품의 개수는 겨우 80개였다.
그러던 것이 5레벨이 되면서 500개로 늘어나버린 것이다.
게다가 새롭게 추가된 기능.
〔품목화〕
등록한 상품을 용량별로 구매 가능해지며, 또한 비슷한 컨셉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상점이 굉장히 좋은 능력이긴 했지만, 불편한 점이 더러 있기는 했다.
예를 들어 용량이 정해진 물건만 구입가능 한 것이었다.
물의 경우 무조건 2L짜리 12개 묶음으로 구입해야 했고, 귤도 기본이 3kg 박스 채로 사야만 했다.
이제는 그것들을 필요한 만큼만 낱개로 살 수 있게 된 듯했다.
'앞에 설명은 알겠는데, 비슷한 컨셉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건 무슨 의미지?'
시험 삼아 상점을 켜 보았다.
"응?"
그런데 5레벨이 된 상점은 이전과는 약간 달라져 있었다.
-물
제주삼다수가 아닌 그냥 물이라고 되어 있는 슬롯을 선택하자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나타났다.
"와."
원래부터 등록되어 있었던 2L짜리 삼다수부터 시작해서 500ml 처럼 더 작은 용량도 있었고, 아이시스, 스파클처럼 다른 브랜드의 물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전부 있는 건 아니네.'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보다는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진 것이다.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됐지?'
곧바로 라면부터 살폈다.
생존자들이 합류하는 과정에서 진라면 순한맛 말고도 짜파게티나 신라면 등 다양한 종류의 라면들을 등록해놨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하나의 슬롯으로 합쳐져 있었다.
-라면
그리고 그곳에는 불닭볶음면, 너구리 등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라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보다 훨씬 종류가 많다.'
품목화 기능 하나만으로도 상점의 내용물이 굉장히 풍부해진 것이다.
'타이밍이 좋군.'
매점 건설에 맞춰서 이렇게 상품이 다양해지니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었다.
'그럼 다른 것들도 레벨을 올려볼까.'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과 절대자의 눈.
스킬 레벨을 올린 나는 새롭게 생겨난 기능들을 보고 입꼬리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꽤 쓸모가 많겠는데?'
***
"흐아압!"
전신을 은빛 갑옷으로 둘러싸고 있는 강덕수가 오크를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오크도 강덕수를 향해 글레이브를 찔러왔지만, 놈의 공격은 은빛 갑옷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카각!
반면에 강덕수의 공격은 달랐다.
서걱!
"꾸에에엑!"
오크의 어깨가 일격에 절단이 났다.
매일매일 하는 퀘스트 덕분인지 상당히 근력이 증가한 강덕수의 공격은 꽤나 매서웠다.
"후우."
그때 하동건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덕수야."
"엉?"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거 던지면 어떻게 되는 거냐?"
강덕수는 하동건이 가리킨 할버드를 보면서 물었다.
"이거? 갑자기 그건 왜?"
"잠깐만 줘봐. 해 볼 게 있어."
"뭐? 아니, 잠깐···!"
아무리 강덕수가 열심히 운동을 했다곤 하지만, 하동건은 무려 33레벨이었다.
애초에 신체 스펙 차이가 꽤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력하게 자신의 무기를 빼앗긴 강덕수는 하동건이 다른 오크를 향해 할버드를 휘두르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서걱! 푸욱!
"꽤애애액!"
"······허. 미친놈."
자신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오크들의 목을 쳐내는 하동건을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쐐애애액!
자신의 할버드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야! 그걸 진짜로 던지면 어떡해!"
하동건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날아간 할버드가 오크의 몸을 박살낸 직후 강덕수를 향해 말했다.
"후우. 이제 소환 해제했다가 다시 불러봐."
"엉?"
그제야 하동건의 의도를 눈치 챈 강덕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잠만!"
지이잉―
멀리 날아갔던 할버드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강덕수의 손아귀에서 나타났다.
"되, 된다! 동건아 너 천재냐?!"
"호들갑 떨지 말고."
그때.
"이제 빠져야해! 나 화살이 얼마 안 남았어!"
김가영은 하동건과 함께 파티의 핵심 딜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화살이 다 떨어지게 되면 시간이 많이 남았더라도 아파트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지이잉―
"어?"
김가영의 눈앞에 실시간으로 화살이 생성되고 있었다.
025화 [Episode 06] 건설 (3)
내가 실시간으로 화살을 공급하기 시작하자, 김가영은 쉴 틈 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이제는 최적의 순간, 꼭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마구잡이로 쏘아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모두 절대자의 눈 스킬이 레벨업하며 새롭게 생겨난 기능 덕분이었다.
〔다중작업〕
절대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 영역에 다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상점을 통해 실시간으로 화살을 공급할 수 있게 되니 김가영의 영향력이 곱절은 커졌다.
[오크(Lv. 19)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100,338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크(Lv. 19)를 사냥하셨습니다.]
······
······
오크를 사냥했다는 알림이 줄줄이 소세지 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죄다 김가영의 전공이었다.
그녀가 사냥하는 오크의 숫자가 하동건이 사냥하는 오크의 숫자를 훌쩍 넘길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시민 김가영, 하동건, 강덕수, 문병호, 유혜린, 김 건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2,332,580 원이 소모됩니다.]
방금 부여했던 오크 100마리 사냥 퀘스트가 금세 완료되어 버렸다.
'김가영이 공헌도 1등이라니.'
파티 퀘스트를 부여했을 때, 이름이 나오는 순서는 퀘스트에 공헌한 순서였다.
그러니까 하동건보다도 김가영이 더 많은 오크를 잡았다는 말이었다.
'화살 공급만으로도 이렇게 그림이 달라지네.'
공헌도가 높은 만큼 퀘스트 보상을 더 많이 가져간다.
오크 100마리 사냥의 대가는 '대량의 경험치'였다.
[시민 김가영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 레벨업.'
가신의 경우 레벨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그냥 돈을 사용해서 생으로 레벨업을 시키는 것이다. 방법도 간단했다. 가신들의 레벨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됐으니까.
보통 이 방법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김가영은 특별히 500만원을 투자해 25레벨로 올려둔 상태였다.
겨우 C등급 능력을 각성한 데 비해 사냥 효율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는 이 방법은 잘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효율이 좋은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보상로 스탯을 올리거나 경험치를 주는 방식으로도 레벨 업이 가능하다.'
심지어 효율도 퀘스트 보상으로 올리는 편이 훨씬 더 좋았다.
이것을 알게 된 경위는 이랬다.
며칠 전, 일일 퀘스트 추가 보상이 상당히 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모든 가신들에게는 일일 퀘스트 3회를 부여하고 완료시켜왔다.
그런데 둘째 날,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최형준이 다섯 번째 근력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의 일이었다.
뜬금없이 이런 알람이 떴다.
[시민 최형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확인해보니 정말로 최형준의 레벨이 21로 올라 있었다.
'생돈으로 레벨업을 시킬 경우 100만원이 들지만, 퀘스트 부여를 사용하면 대여섯 번 만에 레벨업을 시킬 수 있다.'
퀘스트 보상으로 능력치 상승을 주었을 경우, 순수하게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10만원 남짓이다.
여기서 퀘스트 난이도나 내용에 따라 비용이 감소하게 된다.
결국 퀘스트 부여를 통해 3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최형준을 레벨업 시킨 셈이었다.
100만원이 30만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물론 25레벨부터는 조금 빡세다.
25레벨부터 30레벨까지는 레벨업 한 번에 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가는 구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퀘스트 보상을 통해 성장시킨다고 해도 보통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1000만 원의 가치를 채우려면 적어도 퀘스트를 100번은 수행해야 할 테니까.
그러나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을 찾아냈다.
방법은 굉장히 심플했다.
'퀘스트 보상을 더 좋은 걸로 주면 된다.'
이번 파티 퀘스트처럼 '대량의' 경험치를 퀘스트 보상으로 걸면 된다.
그러면 돈은 좀 나가지만, 지금처럼 금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겨우 200만원밖에 안 들었다.'
이번에 하동건 파티가 오크 100마리를 사냥하며 벌어들인 돈만 2억 5천 정도였다.
솔직히 2백만 원 정도는 투자해도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들어간 돈의 몇 배나 되는 효율을 내고 있었으니까.
"똑같은 내용으로 파티 퀘스트 부여해줘. 오크 100마리 사냥."
더 투자할 의향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막대한, 많은, 엄청난 등의 수식어를 붙여 실험해봤지만, 이것들 모두 '대량의'라는 수식어로 변환되어 사용될 뿐이었다.
그러니까 현재로써는 '대량의 경험치'가 최선인 것이다.
퀘스트 보상을 '경험치'로 설정하면 또 다른 이점도 있었는데, 경험치를 획득하는 이들에 따라 증가하는 스펙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김가영의 경우 동체시력이나 순발력이 늘어나는 게 보이고, 하동건의 경우 근력과 체력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식이었다.
일일이 지정해주지 않아도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스텟이 증가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퀘스트 보상으로는 경험치를 채택하고 있었다.
'다중작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 상점이나 창고뿐이라는 건 좀 아쉽네.'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당장 하동건 파티를 남부민동을 향해 보냈을 것이다.
28레벨 적호도 손쉽게 제압한 힘이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도 굴복시킬 수 있겠지.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은 내 몸에서부터 뿌리를 두고 뻗어 나오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사용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슬슬 희망이 보인다.'
여기에서 본가까지 거리라고 해 봐야 10km 정도.
걸어서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부모님을 구해달라는 퀘스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스륵
김가영에게 화살을 넉넉히 쥐여 주고는 절대자의 눈 시점을 옥상으로 옮겨왔다.
'······.'
산 중턱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만큼 꽤 멀리까지도 보인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서면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부산을 대표하는 번화가 중 하나인 서면은 그 명성에 걸맞게 밤에는 화려한 불빛이 빛나고, 높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생기 넘치는 장소였다.
그런데 지금은.
'처참하군.'
생명력은커녕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바로 저곳이었다.
지옥이란 말로도 부족할 만큼.
평소에 자동차로 가득했던 도로는 자동차 대신 낯선 생명체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건물 여기저기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박살난 유리창.
옆구리가 움푹 패여 있는 빌딩.
폭발이라도 한 것인지 까맣게 그을려 옆으로 누워 있는 고층 건물까지.
전쟁이 났어도 이것보다는 상태가 괜찮을 것 같았다.
으득
나도 안다.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서, 가족들이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쯤은.
'서둘러야 해.'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살아계신다고 믿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하동건 파티만이라도 보내볼까?'
사흘 전 김 건이 가신 등록 요건을 충족하면서 하동건 파티 전원을 가신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름 : 김 건 (Lv. 22) [+]
칭호 : [일곱 번째 종]
신뢰도 : 59 충성도 : 33
각성 능력 : 까마귀 사역
★퀘스트 부여 』
게다가 김 건이 얻은 스킬은 까마귀를 사역하여 부리는 C 등급 스킬로 정찰에 유용하게 써먹고 있었다.
하동건 파티를 아파트 밖으로 정찰을 보내기 시작한 것도 김 건의 역할이 컸다.
'아니야. 역시 조합을 완전히 갖추고 보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조합은 하동건 파티에 강력한 브루저인 오언주와 힐러인 김다정의 합류시키는 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오언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이름 : 오언주 (Lv. 33)
신뢰도 : 51 충성도 : 12
각성 능력 : 웨어베어
경험치 분배율 : 70%
정산금 분배율 : 30%
★퀘스트 부여 퇴출』
오언주의 경우 충성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김다정은 진즉에 가신 등록을 끝마쳤는데.'
첫 만남부터 빠르게 신뢰도가 오르던 김다정은 금세 충성도를 개방했고, 처음 개방했을 때부터 충성도가 30을 넘긴 상태였다.
덕분에 바로 가신 등록을 할 수 있었고, 결과도 좋았다.
『이름 : 김다정 (Lv. 30) [+]
칭호 : [여덟 번째 종] [기사] [사제]
신뢰도 : 70 충성도 : 63
각성 능력 : 힐, 축복, 매직 아머
경험치 분배율 : 100%
★퀘스트 부여 』
축복 (A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대상의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70% 증가시킨다.
매직 아머 (B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대상을 보호하는 마법 갑옷을 생성한다.
무려 2개의 스킬을 추가로 각성했다.
내가 김다정을 합류시키려고 하는 이유였다.
하동건에게 축복과 매직 아머를 걸어주기만 한다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모두 압도할 수 있을 테니까.
'확실히 처음부터 각성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효율이 압도적으로 좋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오언주를 가신으로 만들려는 이유였다.
오언주는 무려 A 등급 능력을 각성한 능력자였다.
그런 그녀를 가신 등록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가신이 된 오언주가 하동건 파티에 합류한다면 여기서 10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본가에 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가 될 수도 있었다.
'오언주의 충성심을 올릴 방법이 없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가신 등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파견 보내는 모든 파티원들이 가신이라면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가신 소환을 사용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아무도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오언주의 충성심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나.'
그때였다.
[시민 오언주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알림이었다.
고블린 100마리를 사냥하는 퀘스트를 완수한 것이었다.
벌써 두 번째 퀘스트였으니 오늘 하루만 200마리 째 사냥했다는 소리가 된다.
그녀의 고블린 집착은 여전했다.
'오늘의 마지막 퀘스트는···.'
그렇지 않아도 하동건 파티의 활약으로 지갑이 꽤나 두둑해진 상황이었다.
무려 3억7천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 지갑에 쌓여 있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퀘스트 보상, 아들의 부활.'
내용은 남부민동에 있는 내 부모님을 구해오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퀘스트 보상 : 부활)을 지급하기 위한 현금이 부족합니다.]
[보유 현금을 늘린 후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어림도 없다는 듯 바로 알림이 나타났다.
'···흠.'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한 바.
'퀘스트 난이도를 최대한 올리자.'
중요한건 오언주에게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퀘스트 내용, 40레벨이상의 몬스터 사냥.'
아직 30레벨대의 몬스터도 사냥해 본적이 없는 상태였다.
40레벨이라면 당연히 엄청나게 강력할뿐더러 보상도 엄청나게 크겠지.
그런 놈을 사냥하는 것이 조건이었으니 퀘스트 난이도는 이미 나락이었다.
거기다 더해서.
'제한 시간 24시간.'
당장 40레벨짜리 몬스터를 발견하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몬스터를 하루만에 발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테지.
'페널티는···.'
이것을 설정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리 중간에 내 마음대로 퀘스트를 취소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꺼림칙했으니까.
잘못하다가는 기껏 쌓아온 신뢰가 무너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먼저다.'
그래야 오언주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페널티는 죽음.'
이것이 지금 상태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퀘스트 내용이었다.
띠링!
[(퀘스트 보상 : 부활)을 지급하기 위한 현금이 부족합니다.]
[보유 현금을 늘린 후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그러나 변하는 게 없었다.
'4억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건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사람의 생명이 겨우 몇 억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벼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것은 나에게도 꽤 중요한 문제였다.
부활 기능을 보는 순간 최악의 경우, 가족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도 상정하고 있었으니까.
"···후우."
그때였다.
[오크(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788,22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동건 파티의 오크 사냥은 계속되고 있었다.
문득 그들에게 부여했던 파티 퀘스트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라면!'
곧바로 그것을 적용시켰다.
'퀘스트 보상, 아들의 부활 하루!'
그리고.
띠링!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40레벨 이상 몬스터 사냥 (0/1)
제한 시간 : 24시간 00분 00초
보상 : 아들의 부활 하루.
실패 페널티 : 죽음.
[이대로 퀘스트를 부여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된다.
그렇다는 건 즉, 부활의 시간을 하루로 제한하면 4억 범위 내에서는 해결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과연 4억을 투자할 가치가 오언주에게 있는가.'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A 등급 스킬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분명했으니까.
심지어 각성자를 가신 등록하면 3배의 효율을 가져온다.
'게다가 40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가정하면···.'
당장 30레벨도 안 된 몬스터들이 1억 가까운 돈을 뱉어낸다.
그보다 더 높은 레벨의 몬스터라면 분명 더 많은 정산금을 만들어주겠지.
'우선은 오언주를 내 편으로 만들겠어.'
겨우, 희망만을 보여주는 것.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악마 같다고 해도 좋다.
나에겐 내 가족을 구하는 일이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했으니까.
"퀘스트 부여 해."
그리고 몇 분 뒤.
투두두두―
전투적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그대로 우리집 현관문 앞으로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
쿠웅―!
두드렸다기 보다는 몸통박치기를 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현관문 너머로 다급한 오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문 좀! 문 좀 열어주세요! 재현님!"
철컥
문이 열리자 그녀는 허겁지겁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허억, 허억."
오언주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건, 이건···!"
"맞습니다. 시간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흐흑―! 감사합니다. 하루, 하루라도 좋아요. 아들을 볼 수만 있다면···."
오언주는 그 자리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시민 오언주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오언주가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026화 [Episode 06] 건설 (4)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한 가지 퍼지고 있었다.
바로 고블린을 잡으면 '돈'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김민호의 지갑에 1,02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진짜네?'
엉망진창이 되었던 집을 대청소하고 휴식을 취하느라 며칠간 사냥을 쉬는 동안 이런 변화가 생겼을 줄이야.
김민호가 잠시 딴 생각을 하던 그때, 그의 뒤쪽에서 고블린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쐐애애액― 푸욱!
놈의 기습은 관자놀이에 화살이 관통되며 무산되고 말았다.
화살을 쏘아낸 장본인, 문해리가 김민호를 향해 소리쳤다.
"김씨! 집중!"
"죄송합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김민호는 다시 창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일단은 전투에 집중하자.'
이곳은 안전지대가 있는 아파트에서의 꼼수 사냥을 사용할 수 없는 곳이었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았다가는 고블린에게 당하기 십상이었다.
특히 가끔씩 식칼이나 송곳처럼 위험한 흉기를 들고 있는 놈들이 있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실제로 김민호는 벌써 몇 번이나 그런 놈들에게 당해서 김다정에게 신세를 진 전적이 있었다.
"흐읍!"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김민호의 지갑에 1,03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김민호 파티는 겨우 세 명이었지만,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특히 국대 출신인 문해리와 특전사 출신이라는 남지호의 활솜씨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사냥할 때부터 고블린 몇 마리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시작부터 김재현에게 활이나 창을 지원받고 시작한 것도 있지만, 일단 문해리와 남지호의 활솜씨가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멀리서 화살을 쏘아내 최소 대여섯 마리를 줄여놓고 싸움을 시작하니 사냥 난이도가 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지호는 창을 사용하는 솜씨도 대단해서 가까이 다가온 고블린들과의 백병전도 문제없었다.
초반에는 혼자서 거의 모든 고블린들을 쓸어버릴 정도.
'나 같은 관상용 근육덩어리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야.'
물론 허투루 운동만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김민호 또한 전투에 빠르게 익숙해져갔다.
김민호가 창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세 명이서 고블린 열댓 마리도 문제없이 처리가 가능했다.
"후우. 고생하셨습니다."
"민호씨도요~. 호호."
김민호가 파티원들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보셨어요? 정말로 고블린을 잡으니 돈을 주네요."
"그르게. 고블린이랑 경험치 획득한다는 알림 창은 전에도 나왔었는데, 돈이 나오는 건 또 처음 보네. 일단 오천 원 정도 벌긴 했는데···. 여보, 여보는 얼마 벌었어?
"육천 원."
"그럼 우리 둘이 합치면 만원이 넘네!"
문해리는 고블린을 잡을 때마다 나오는 돈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김민호가 말했다.
"그런데 이 돈은 어디에 쓰는 걸까요?"
"글쎄."
남지호가 지나가듯 말했다.
"1층에 무언가 생기고 있더군."
"어머나! 나도 봤어. 혹시 뭔가 살 수 있게 되나?"
문해리는 기대감에 들뜬 모습이었지만, 김민호는 그리 큰 기대가 들진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부족함 없이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민호 가족이나 남지호 가족은 제일 먼저 고블린 100마리를 사냥한 공적을 인정받아 김재현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전기, 수도, 가스가 공급되면서 집에서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유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계란이나 우유 같은 것들을 지원받아서 풍족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사실상 돈의 필요성은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호호. 우리 오늘 돈이나 왕창 벌어볼까?"
"그럴까요?"
"돈이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고블린들로부터 나오는 푼돈은 그들의 사냥 욕구를 자극했다.
이것은 비단 김민호 파티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퀘스트인 고블린 10마리 사냥 퀘스트만 완료하고 관심을 껐던 사람들이 하나 둘 고블린 사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아파트 1층에 매점이라는 신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였다.
***
나는 두 눈에 힘을 주며 있는 힘껏 허공을 노려봤다.
그 순간.
파지직― 파직!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성공이다. 다음은···.'
이번에는 장소를 옮겨 화장실 욕조를 노려다보며 감각을 집중했다.
그러자.
울컹―
허공에서 생겨난 물방울이 크게 뭉치더니 그대로 욕조 안으로 떨어졌다.
철퍽! 촤아아아-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네.'
새로 각성한 스킬이 아니었다.
이것은 순수하게 품위 유지의 능력이었다.
'마법사라도 된 기분이네.'
마나 대신 돈을 사용하는 마법사긴 했다.
'일단 전기, 물, 가스 이 세 가지는 확실하게 다룰 수 있게 됐다.'
애초에 전기, 수도, 가스를 공급하는 것은 국가 단위의 거대한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몬스터가 등장하고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그것들을 공급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품위 유지 스킬을 사용해 우리 집, 나아가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 안에서라면 어디든 전기와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영역 안에서라면 전기, 가스, 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몇 번의 연습 끝에 의식적으로 이것들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해졌다.
'후.'
그때였다.
[매점의 일일 매출이 정산 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320,98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20%의 차익만 32만원.
즉 오늘 하루 매점이 올린 매출만 150만원이 넘어간다는 소리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만큼 많은 시민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돈을 모아서 매점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곧장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매점을 바라봤다.
마침 그곳에서 쇼핑 중인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야. 앞으로 얼마나 모아야 되냐?"
"이 활 가격이 15만원이고 오늘 우리가 모은 돈이 대충 만 원 정도니까 한 보름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야! 이 멍청아. 보름동안 물이랑 라면 사는 거는 생각 안 해?"
"아 예. 그렇게 똑똑하시면 형님이 직접 계산하세요~."
시민들이 실제로 구매하는 것은 대부분 물이나 라면, 그리고 콜라와 같은 식료품이었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활이나 창을 보면서 사냥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겨우 정산금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바뀔 줄이야.'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있는 탓일까.
사유재산이 생기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고블린 사냥을 시작하더니,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아파트 근처에서는 더 이상 고블린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돼버렸다.
이제 시민들은 고블린을 사냥하기 위해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야 할 정도였다.
'레벨업도 순조롭고.'
집구석 선포의 레벨이 11로 올라가면서 지하주차장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영역화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죽은 고블린이 열 마리가 채 안 될 정도로 이 주변 고블린들의 씨가 말라버린 상황이었다.
이제 아파트 1단지 내부에는 고블린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시민들의 합류도 크게 늘었다.'
현재 인구수 ( 789 / 11,000 명)
추가 경험치 +100%
추가 정산금 +100%
시민들의 활동으로 인해 고블린들이 사라지면서 집 안에만 숨어 있던 시민들이 대거 합류하게 됐다.
처음 정책으로 내걸었던 10명의 생존자를 받아들이면 집에 전기, 수도, 가스를 공급해주겠다는 공약에 제대로 먹혀들어 시민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레벨을 찍으면서 한계 인구수가 1만으로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한동안은 얼마든지 수용 가능했다.
'적어도 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생존자들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새로 합류한 생존자들 중 단 한 명도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신입 시민들 중에서 각성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만큼 각성자가 귀하다는 뜻이겠지.
'앞으로 가신 등록은 역시 각성자들을 위주로 하는 게 좋겠지.'
하동건 파티의 경우는 특이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수많은 생존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나와 고블린을 사냥했다는 점.
아직 아무런 데이터가 없는 시점에 합류한 초기 멤버라는 점.
처음에는 될 수 있으면 빠르게 가신을 늘리는 게 이득이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파티원 모두를 가신으로 받아들인 케이스였다.
'이제는 딱히 급하지 않다.'
가신 등록이 가능한 슬롯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서는 김민호 팀이나 백승엽 팀에서도 가신을 뽑을 생각은 없었다.
각성 능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명백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크(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243,817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다시 시작 됐군.'
시민들의 동태를 살피던 것을 멈추고 하동건 파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지하철역 내부를 달리고 있는 곰 한 마리였다.
어두운 지하철역 내부였음에도 사방이 훤히 보이는 것은 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밝은 빛 덕분이었다.
곰은 그대로 오크 무리에 달려들더니 그대로 그중 한 놈의 목줄을 물어뜯었다.
"꾸애애액!"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오크 한 마리가 그대로 무너졌다.
다른 오크들의 운명도 비슷했다.
녀석들은 글레이브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헌납해야만 했다.
콰직!
순식간에 오크 일곱 마리의 숨통을 끊은 곰의 눈은 강렬한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크흑, 크흥."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던 곰은 심호흡과 함께 점점 덩치가 줄어들더니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언주 언니!"
뒤쪽에서 달려온 김다정이 오언주를 향해 친근하게 말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고요?"
"멀쩡해. 좀 다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그 뒤를 이어 쫓아온 김가영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언니. 항상 저희가 나설 차례가 없네요."
"나 혼자 독식하는 건 미안.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에? 그게 왜 미안해요, 언니? 저희야 언니 덕분에 편하고 안전하고 완전 좋은데."
그러자 오언주는 대답 없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오언주가 저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몬스터 사냥에 집착하는 것은 나 때문이었다.
부활을 위해서는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것을 모으기 위해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덕분에 전포역 안에서 바글바글 거리던 오크들은 오언주의 손에 의해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현재 내 보유 금액은 무려 31억.
사실상 상황만 갖춰진다면 지금 당장 오언주에게 보상을 줘도 되는 수준이었다.
'역시 오언주와 김다정을 합류시키는 게 정답이었어.'
오언주와 김다정의 케미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동안 함께 살면서 많이 친해진 모습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굉장히 합이 잘 맞았다.
김다정의 축복을 받은 채로 날뛰는 오언주의 존재감은 정말이지 강렬했다.
'대단해.'
근육질의 오크들도 오언주의 앞에서는 힘없는 어린양이 되었다.
'하긴 스펙을 보면 당연한가.'
『이름 : 오언주 (Lv. 40) [+]
칭호 : [아홉 번째 종] [기사] [전사]
신뢰도 : 66 충성도 : 66
각성 능력 : 웨어베어, 태고의 생명력, 광폭화
경험치 분배율 : 200%
★퀘스트 부여 』
{전사}
근접 공격이 50% 강력해집니다.
태고의 생명력 (A 등급)
상처가 늘어날 때마다 재생력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광폭화 (S 등급)
피를 보면 눈이 붉게 변하며 신체 능력이 300% 증가합니다.
시작부터 무려 40레벨.
거기다 가신이 되며 새롭게 생긴 칭호와 각성 능력들이 모두 사기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수인화를 한 상태에서 광폭화까지 하면 몇 배는 강력한 신체능력을 지니게 되는데, 거기에 김다정의 축복까지 더해지니 순간 괴물이 탄생해 버리는 것이다.
고작 18레벨 정도의 오크 무리 정도는 벌레 짓밟듯 죽여 버릴 수 있는 이유였다.
그때였다.
"크워어어어어―!"
지하철 입구 쪽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외침이 들려왔다.
'저건···?'
보통의 오크들보다 한 층 더 공격적인 몸과, 평범한 글레이브 보다 날 부분이 더 넓은, 흡사 언월도와 같은 창을 들고 있는 괴물이었다.
한 눈에 놈이 오크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과 함께 복귀한 오크 전사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와 흉흉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크르르르―"
오크들의 우두머리가 살벌한 기세로 침입자들을 응징하려 하던 그 순간.
"취익?"
전신이 빛나는 오언주가 오크를 향해 돌진해갔다.
아무런 무기도 없는 가녀린 여자의 등장에 오크 우두머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기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우드득―
"!!"
순식간에 불어난 몸집과 흉악한 기세에 놀란 놈이 한발 짝 물러섰다.
다음 순간.
콰득!
기습적으로 파고든 오언주의 팔이 오크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크 족장(Lv. 28)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73,263,099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 직후.
[시민 오언주가 '전포역'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전초기지'가 추가됩니다.]
027화 [Episode 07] 서면역 (1)
"전초기지"
집구석 밖에 설치되는 안전지대.
{활성화} 될 시 일시적으로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과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 거주하고 있을 때에만 {활성화}되며,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침입하여 하루 이상 무단 점거 시 파괴된다.
어마어마한 성능이었다.
다만, 그 성능만큼 가격도 어마어마했다.
-전초기지 (1,300,000,000 원)
13억.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전포역에 있던 오크들을 쓸어버리면서 통장잔고가 여유로워진 지금 13억 정도면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었다.
'지원금 3억 5천도 아직 남아 있고.'
곧바로 건설을 시도해 봤다.
전초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자 일반적인 건설 모드와는 조금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아파트 영역 전체가 내려다보이던 감각과는 달리 전포역에 모여 있는 하동건 파티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곧이어 뜬 시스템 알림을 보는 순간 기대감은 실망으로 변했다.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7일) 동안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 3명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
그러니까 전초기지를 짓기 위해서는 오언주, 김다정, 하동건 세 명 모두를 일주일간 거주시켜야 한다는 소리였다.
'손해가 너무 커.'
이러면 건설에 들어가는 13억의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일주일동안 이들이 벌어들일 기대 수익만 수십억에 달했으니까.
'가장 큰 손해는 시간이다.'
일주일.
이제 막 조합을 완성시키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하동건 파티를 파견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전포역이라면 딱히 전초기지로 만들 필요도 없다.'
이미 이 근처는 하동건 파티와 시민들의 활약으로 몬스터들의 대부분이 정리된 상황이었다.
전초기지까지 지어가면서 대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설치하지 않는다.'
건설 모드가 종료되며 감각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새롭게 추가된 전초기지의 성능 하나만큼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걸 본가에 건설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일단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을 영역 아래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상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이곳으로 오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하동건 파티가 몬스터 밭을 뚫고 본가까지 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거기서 가족들을 모시고 복귀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하지만 본가에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 한 난이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살아만 계셔주세요.'
이 정도면 조건은 갖춰졌다.
'내일, 하동건 파티를 본가로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