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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8

제1화

0. 프롤로그

한 남자가 길거리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동영상 사이트를 구경하고 있다. 그는 바이크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당신만이 모르는 12가지 음모론]

톡.

남자는 동영상을 클릭했고, 영상이 재생되기 전, 광고가 흘러나온다.

-집 주변 치안이 불안하신가요?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가기 먼 길이신가요?

-저희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보세요!

-추가 요금만 지불하시면, 집 주변 음식점뿐만 아니라 전국 팔도의 맛집도 안방으로 배달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냐고요? 걱정 마세요! 저희 배달 팀은 전원 각성자들로 구성된 특별한 팀입니다!

-인천에서 부산의 국밥을 시켜 먹어도? 30분이면 배달됩니다!

그리고 보험 광고에서 중요 사항을 말하듯 빠르고 건조한, 흘려듣기 쉬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온다.

-단, 음식점의 사정으로 인한 시간 지연의 경우엔 배달 시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배달원의 사고로 인한 배달 불가 사태는 고객 상담으로 연락 주십시오.

이윽고 영상이 흘러나왔으나, 남자는 영상에 눈을 두지 않았다.

-시간 여행, 차원 여행, 또는 평행 세계... 여러 가지 말은 많지만....

이내 남자는 동영상 사이트를 닫았다.

"쯧, 기분 잡치게...."

그리고 옆에 다가오는 다른 남자. 이 남자도 바이크를 타고 있었고, 붉은 헬멧을 쓰고 있었다.

"...행님, 와 그러십니꺼?"

"아니, 아무것도. 그냥... 짜증 나서."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도 껐고, 휴대폰의 검은 액정에 비친 그는 은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 * *

어느 산속의 한 동굴 안.

백발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흐읍- 후우-."

노인은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듯 규칙적인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런 노인의 주변에는 작은 정전기 같은 것이 타닥거리며 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작은 책상과 필기구들. 붓과 종이와 벼루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거기까지면 평범할지도 모르나... 제법 치장이 잘된 검이 그 뒤에 있었다.

* * *

긴 옷을 입은 사내가 책상 위에서 이런저런 종이에 글을 쓰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끄으응...."

그리고 그런 그의 방 안은 서류들로 어지럽혀져 있었고, 방 밖에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무슨 일이지?"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먹을 때가 아니네. 두고 가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머리를 싸매고 있었으나, 문제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두 끼나...."

"두고 가라고 했잖나."

"...네에."

이내 문 앞의 인기척은 사라졌고, 그의 방 앞에는 먹지 않은 식사가 제법 쌓여 있었다.

* * *

신강. 명교... 마교라고도 불리는 이곳.

교도들이 모여 사는 성의 옆에서, 별이 아름다운 사막의 밤하늘을 보며 한 남자가 뒷짐을 지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후우."

"지존이시여, 왜 그러십니까? 혹시 뭔가 문제라도...."

남자의 옆에 선 한 노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으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저 별은 먼 옛날부터 빛나고 있었고, 앞으로도 빛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군."

"그런 말씀을...!"

남자는 이내 몸을 돌려 성으로 돌아갔다. 늘 마음에 품던 고민을 간직한 채.

(1)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원동기... 아니, 오토바이를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영화 등지에서 자주 얼굴을 비치는 할리 데이비슨?

아니면, 중국집 배달에 가장 많이 사용되던 시티?

아마 정답은 배달 로고가 박힌 스쿠터일 것이다.

청와대 앞 짜장면집 오토바이는 정문 통과 때 검문도 안 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배달에 친숙하다.

세상 누가 가게에서 치킨을 먹은 횟수가 시켜 먹은 횟수보다 많겠는가.

예로부터 한국인은 배달에 특화되었다.

조선 시대 보부상도 따지고 보면 다른 지역의 상품을 각지의 구매자들에게 배달을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배달민족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배달은 그런 만큼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10여 년 전, 세계 각지에 차원 겹침 현상, 통칭 게이트가 생성되었고, 그때 휘말린 사람들은 최초의 각성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들을 잡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지나자 괴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최초의 게이트 이후에도 꾸준히 각성자는 생겨났으며, 과학자들은 이걸 마력과의 접촉으로 인한 능력 각성이라 칭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데, 각자의 체질에 맞는 마력만을 받아들여 각성하는 것이니 체질에 따라 크게 받아들일 수도,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였다.

게이트로 인해 나온 괴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그걸 정리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한국인은 위기에 강한 특성을 발휘했다.

배달비를 더 주는 한이 있어도 집 안에서 안전하게 음식을 먹고 싶었던 것.

결국 배달비가 급상승했고, 전국 각지의 배달부들은 두려워서 안 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배달비의 90퍼센트가 자신의 지분이었기에 몇몇 이들은 목숨 걸고 배달을 나섰다.

대체로 도심에 숨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괴물들은 빠르지 못했기에 생각보다 많은 배달부들이 죽진 않았으나 과속 탓에 죽는 경우는 있었다.

그렇게 배달의 황금기가 열렸고, 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치안이 확보된 이후에도 여전했다.

괴물들이 음식 냄새에 이끌려 배달부들을 종종 덮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배달부 인생을 사는 영의.

그는 싼 모델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마정석 바이크를 타고 공중에 뜬 채 배달을 하고 있었다.

[전방 2km, 우회전입니다.]

어차피 공중에서 돌아다니기에 충돌할 일은 별로 없지만 만약을 대비한 스마트 헬멧도 쓴 상태.

이 헬멧은 충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착용자의 전신에 방어용 역장을 설치해 준다. 바이크보다 비싼 헬멧이었다.

"보자... 꽤 부자 동네네?"

최영의. 옛 무도가 최배달의 본명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는 아버지가 지어 준 자신의 이름이 좋으면서 동시에 싫었다.

최배달과 같은 이름인 점은 묘하게 좋았으나 영희라고 들리는 발음 때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배달 물품 : 대구 동인동 찜갈비]

[수령인 : 장원석]

[결제 : 앱에서 결제]

영의는 에어 바이크에 달린 보온 가방에서 비닐에 싸인 찜갈비를 꺼내 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주문자는 음식을 제법 기대하고 있었던 듯, 초인종이 울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곧바로 문을 열었다.

"동인동 찜갈비, 맞으시죠?"

"네, 진짜 빠르시네요. 전에는 20분 정도 걸렸는데."

"15분 안에 인천에서 부산까지! 특급 운송입니다."

"진짜 추가 비용 쓸 만하네요. 감사합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영의는 그렇게 배달을 마치고 바이크로 돌아와 헬멧을 조작했다.

바깥에서 보기엔 그저 은색에 간간이 LED가 빛나는 헬멧이지만 안쪽에선 바깥이 훤히 보이고 디스플레이 화면도 구현되는 최첨단 기술의 산물.

"하... 이제 등록금은 다 됐네. 2주 정도 남았으니까 이번 달은 돈 좀 모으겠다."

영의는 입금 내역을 보며 자신의 동생인 수연을 떠올렸다.

각성 못한 첫째와 둘째, 각성은 했지만 별 쓸모없는 자신과는 달리 꽤 좋은 능력인 가속을 얻은 여동생 수연.

영의는 그녀를 각성자 아카데미로 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바이크를 굴려 돈을 벌고 있었다.

"하, X벌... 그냥 지들끼리 잘 지내면 되지, 뭐 하러 학교 같은 걸 세워서 파벌을 만들고 지랄이야.... 아무튼 조선 종자들 지들끼리 안 싸우면 무조건 급 나누는 거 참 좋아해요...."

물론 각성자들은 프리랜서 초인으로도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대형 게이트 같은 큰 건수는 대형 길드나 컴퍼니들의 연합이 자기들끼리 단합해서 해 먹으니 어쩔 수 있나.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다음 주문이 언제 들어오나 기다렸다.

그의 추가 수수료는 15만 원. 다른 배달부와 10분에서 15분 정도 차이 나는 속도였으나 그걸 내면서까지 주문하는 사람들은 돈 많이 버는 초인들이거나 정말 급한 사람들일 것이다.

"아, 그냥 퀵 좀 뛸까?"

배달을 메인으로 하면서 기본급에 성과급으로 제법 벌고 있는 그였지만 퀵으로 알바를 뛰면 좀 더 벌 수 있으리라.

[알림이 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영의의 헬멧에 알림이 떴고, 영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음성 인식으로 명령을 내렸다.

"알림 확인."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주문인 : 신화연]

[배달 물품 : 호찬 버거 수제 불고기버거 세트 2EA]

[주소지 : 신화 빌딩 12층 사무실]

주문한 사람과 주소지를 보고는 한숨을 쉬는 영의. 그는 이 배달을 맡지 않으려 했으나 돈이 급했다.

"하아... 주문받는다."

대체 왜 비싼 금액을 내면서까지 햄버거 세트를 그에게 부탁하는 걸까.

정말 돈이 썩어나는 걸까?

그 의문은 영의가 뭔가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아저씨, 불고기 두 개요."

"오, 최배달이 왔구만? 또 같은 주문이네?"

수제 버거로 나름 맛집이란 소리를 듣는 호찬 버거.

옛날에는 싼 가격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세월이 지나며 나름 가격대가 형성되어 버렸다.

영의는 예전에 이 집의 단골이었으나 현재는 다른 의미로 단골이 되었다.

"아, 최배달 아니라니까요...."

"흐하하! 배달원 하면서 배달 아니래! 하하하하!"

"...."

"하하... 그래, 불고기 두 개랬지? 금방 준비해 주마. 야, 막내야! 카운터 좀 봐라!"

영의의 표정이 변함이 없자 호찬 버거의 사장 이호찬은 주방으로 직접 들어갔다.

"아, 하나는 콜라 제로 칼로리로요."

"그래, 그래."

평소에는 직원에게 맡기지만 영의가 올 때는 자신이 직접 조리를 해 주는 호찬.

영의는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버거가 나오길 기다렸다.

"자, 주문한 거. 그보다, 요즘은 좀 괜찮냐?"

"...별로요. 그보다, 아저씨도 별로 좋진 않은 거 같은데...."

가게 내부는 손님이 별로 없어 한산해 보였다.

기껏 온 손님들도 거의가 다 개인 손님.

그리 벌이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뭐, 대부분 배달하고... 또, 이런 작은 동네 가게를 누가 오겠냐. 그래도 굶고 살진 않으니 걱정 마라. 주변에 학교가 있어서 매일 학생들 30명씩은 온다."

그럼 방학 시즌엔 뭐 어떻게 장사를 할 거냐고 묻고 싶었으나 헬멧에 표기된 배달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떠나야 했다.

"가 볼게요. 아저씨."

"그래, 잘 가고. 화연이한테 안부나 전해 주고."

"...네. 그래 볼게요."

곧바로 가게를 나와 보온 상자에 햄버거들을 넣고 목적지로 향하는 영의.

신화 빌딩은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서도 10분이면 올 거리에 있는 신화 빌딩은 한국의 5대 길드 중 하나인 신화 길드의 건물이었다.

"잠깐. 여긴 배달원이라도 함부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영수증이나 배달 내역을 보여 주시죠."

건물의 입구에서부터 양복을 입은 가드들이 가로막는다.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가드들에게 보여 주었다.

헬멧과 연동된 휴대폰은 차마 벗어서 가드에게 씌워 내부의 디스플레이를 보여 줄 수 없는 노릇이니 휴대폰을 보여 주는 것.

"음... 신화연 본부장님에게? 잠시 검사를 해도 되겠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햄버거가 든 봉투를 내미는 영의.

"흠, 햄버거...."

"호찬 버거네? 그냥 들어가시면 됩...."

두 명의 가드 중 한 명은 그냥 햄버거란 걸 보고 바로 통과시키려 했으나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선배님. 아까 검문은 철저히 하라고 하셨으면서...."

"야, 본부장님 단골집이야. 그리고 넌 햄버거로 사람 때려잡을 수 있냐? 이래서 짬 낮은 놈은...."

종종 피자나 치킨, 족발 안에 금속 탐지기에도 안 잡히는 마수의 뼈를 가공한 무기를 숨겼다가 암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햄버거는 해 봐야 사람 손바닥 크기라 숨겨 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들어가십시오."

"...수고가 많으십니다들."

그렇게 유유히 안으로 들어가는 영의. 후배인 듯 보이는 가드는 선배 가드에게 아까 못 한 질문을 마저 했다.

"아니, 그래도 저렇게 막 들여보내도 되는 겁니까? 혹시 모르는 일인데."

"야, 저 사람이 그 특급 배송 배달원이야. 전국에 한 명인데 뭔 일 생기면 누가 봐도 범인이 나요- 하는 건데, 범행 저지르겠냐? 그리고 그 이전에, 본부장님이 뭐 당해도 당할 분이냐?"

신화연 본부장의 무력을 생각한 가드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긴 하죠."

"그렇지? 한 시간 뒤면 교대니까 우리도 햄버거나 먹으러 가자. 냄새 진짜 좋다."

"...사 주시는 겁니까?"

"돈 없어, 인마."

-12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춰 서고, 녹음된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영의가 바깥으로 나왔다.

익숙한 길이라는 듯 성큼성큼 걸어 복도를 지나가는 영의.

그는 이내 고급진 장식이 된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옆에 적힌 본부장 신화연이라는 이름패.

영의가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문이 이미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 얼굴을 내미는 검은 생머리의 여인.

어딜 가도 미인 소리를 들을 법한 그녀는 무표정으로 영의에게 물었다.

"호찬 버거 불고기, 두 개요?"

"네."

"콜라는 얼음 빼고?"

"...넌 제로 칼로리로 먹잖아."

그렇게 방 안에 들어선 둘.

영의는 가방에서 햄버거 봉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 방금 전 무표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화사하게 웃는 여인.

"선배, 반가워요."

"...그래, 나도."

대한민국의 톱 10 랭커 중 한 명인 신화연, 그녀는 영의의 옛 후배였다.

제2화

(2)

신화 길드 중앙 본부장 신화연의 사무실은 상당히 단출했다.

집무용으로 보이는 사무 책상이 하나, 벽에 장식장 겸 책장이 하나.

그리고 방의 중앙에 티 테이블 하나와 의자 넷이 전부.

그리고 그 장식장에는 여러 트로피와 상패 등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앞에 나와 있는 것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국 청소년 종합 격투 대회 중학교부 준우승]

[전국 청소년 종합 격투 대회 고등학교부 준우승]

수많은 1등과 우승 트로피 중에서 준우승만 그리 앞에 놔둔 이유를 두고 길드 사람들은 나름의 추측을 해 보았다.

1등의 기억보다 1등을 하지 못한 기억을 원동력으로 더욱 나아가려 한다는 게 그들의 추측이었으나 사실은 달랐다.

"선배, 진짜 교관 할 생각 없어요? 선배 격투 누구보다 잘했잖아요."

"...이젠 아니야. 세상 누가 격투술을 배운다고 그래? 검술 각성하거나 체술 각성해서 느낌대로만 움직여도 20년 수련한 사람을 피떡 만드는 세상인데."

영의는 신화연이 준우승을 차지했던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남자였다.

당시 세상은 그 둘을 라이벌이라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모두 영의의 압승이었다.

"그래도 선배는, 각성자도 이기는 실력자잖아요!"

"됐어, 그런 말 할 거면 배달시켜서 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찾아오든가 체육관 와서 말해."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가려 했고, 화연은 그런 그를 붙잡았다.

"선배, 난 지금 선배의 재능이 진짜 아까워서 그래요. 배달하면서 사고 날지도 모르고 그런데, 그냥 월급 받으면서 교관 생활 하기가 싫어요...?"

"...이 배달도 내 재능이야. 이제 세상은 각성한 능력이 재능이잖아. 안 그래?"

영의의 말에 화연도 차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당장 그녀도 내심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세상이 변했는데 변한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잖은가.

"그, 그럼... 햄버거라도 먹고 가요. 우리 옛날처럼.... 네?"

"미안, 다음 주문이 있어."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사무실을 나섰고, 화연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중, 고등학생 때만 해도 그녀와 영의는 그저 촉망받는 격투가였다.

영의는 그대로만 간다면 UFC에서도 스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매일 운동 끝내고 싼 가격에 먹는 햄버거집에서 같이 햄버거를 먹는 게 그날의 기쁨이었던 둘.

그러나 세상에 각성이 시작되며, 게이트에 휘말리던 그녀를 구해 줬던 영의는 D급 각성자가 됐다.

하지만 그저 휘말리기만 하고 패닉에 빠져 있던 자신은 운 좋게 A급 각성자. 세상은 둘이 뭘 했느냐보다는 둘이 가진 능력만을 보고 대우해 줬다.

햄버거 봉투에서 햄버거를 꺼내는 그녀.

콜라를 먼저 한 입 마셔 보니 제로 칼로리 콜라의 맛이다.

그리고 햄버거의 포장지도 벗겨 한 입 베어 무니 학창 시절 먹던 그 맛 그대로였다.

"하아... 선배, 이 햄버거는 그대로인데 나머진 다 변했네요. 아니, 내가 변한 건가...?"

신화 길드 본부장 신화연은 그렇게 햄버거 세트 하나만을 남겨 둔 채 책상에 앉아 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영의가 다시 돌아와 햄버거를 먹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이....

건물을 나서고 바이크를 탄 채 하늘을 질주하는 영의.

급한 배달이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 그런 건 없었다.

"하아, 나도 하고 싶지. 월급쟁이. 근데 내 머리는 그러고 싶어도 내 가슴이 허락을 안 한다, 화연아...."

사실 영의라고 그 제안을 고민해 보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름 무술 배운 무술인이라고 자존심은 있는 건지, 후배의 낙하산으로 직장을 얻는 건 싫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무술을 가르쳐 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그들을 살려 줄 건 단련된 기술이 아닌 마력과 각성 능력뿐일 텐데.

그리고 영의는 돈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체육관을 하시긴 하지만 운영이 별로 잘되진 않았고, 큰형과 작은형은 본인 먹고살기도 바쁘다.

결국 동생의 아카데미 등록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배달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

만약 그가 각성한 능력이 만물 도약이 아닌 E나 F등급의 신체 강화 정도만 되었어도 그는 초인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름의 신세 한탄 도중 정말로 주문이 들어왔다.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어, 오늘 의외로 건수 많네?"

평소에 특급 배송은 해 봐야 한두 건이어서 일반 배달 업무를 주로 하던 영의.

오늘의 새로운 주문에 그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만 벌써 수수료 30... 잘하면 이번 달 돈 다 모아서 바이크 사겠다...."

사실 지금 쓰는 바이크와 헬멧은 배달 회사에서 빌려준 엄청난 고액의 것.

그러나 영의의 벌이가 상당히 좋은 이유의 대부분이 배달비였고, 매달 나가는 상당한 액수의 바이크와 헬멧 렌트비에 그의 정규 월급의 3분의 1이 나갔다.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마정석 바이크를 하나 장만해서 타고 다닐 수 있는 것.

[주문인 : 석호필]

[배달 물품 : 안동 명가 찜닭]

[주소지 : 알카트라즈 호텔]

'...뭔데 감옥에 배달 가는 느낌이냐...?'

주소지와 받는 사람의 이름이 상당히 이상하고 특이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오늘도 돈을 벌기 위해 영의는 곧바로 안동으로 풀 액셀을 당겨 날아갔다.

그렇게 경상도로 접어들려던 때, 헬멧에서 경고 문자가 나왔다.

[주의 : 전방에 낙뢰 주의보가 있습니다.]

헬멧의 말대로 하늘에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상당히 험악한 날씨에 잠깐 긴장했으나....

'나 참, 낙뢰 주의보 같은 건 왜 하는 거야? 어차피 번개 맞을 확률도 얼마 없구만.'

세상 살면서 로또 맞았단 사람은 많이 봤지만 번개 맞았단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는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영의.

아무튼, 인터넷에 따르면 이 주변에 찜닭집이... 오, 있다. 저건가?

영의는 헬멧이 안내하는 대로 찜닭집을 찾아왔고, 포장을 요청한 뒤 기다리고 있었다.

[주의 : 낙뢰 경보 지역입니다.]

...올라갔네?

"포장이지? 자, 여기 있네."

"아, 네."

영의는 일단 값을 치르고 찜닭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보온 박스에 넣은 뒤, 바이크를 타고 곧바로 날아올랐다.

번쩍!

날아오르는 순간, 바로 옆의 산에 낙뢰가 떨어졌고, 나무가 하나 불타기 시작하자 천둥소리가 곧바로 따라왔다.

"...조심하자."

서둘러서 이 지역을 빠져나가기 위해 바이크의 속도를 올리려던 그 순간, 낙뢰가 다시 한번 내리쳤고, 영의는 반사적으로 쫄아서 눈을 감고 말았다.

...뭐야, 아니네.

"하긴, 번개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주변에 떨어진다고 해도 대부분은 나무나 피뢰침에 맞아서 괜찮다고들...."

번쩍!

그렇게 안심하며 속도를 올리려던 순간, 영의는 거짓말처럼 번개에 맞고 말았다.

'아, 뭐야... 헬멧... 방어가 왜 안....'

헬멧은 그때 오류를 일으킨 건지, 방어가 작동하지 않았고, 영의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응급실.

한 남자가 응급 침대에 실려 있었고, 그걸 끌며 의료진들이 응급실 복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장 선생님! 화상 환자예요!"

"뭐? 뭔데?"

"번개에 맞았대요!"

"뭐? 전격 계열 공격?"

"아뇨, 진짜 번개요!"

간호사의 말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계 초인 장필재는 당황했다. 하고 많은 사고 중에서 하필 낙뢰라고?

"근데 멀쩡하네?"

"이 사람도 각성자인가 봐요. 그리고, 나름 방어 장비도 있었고요."

"그런 것치고는 많이 멀쩡한데.... 일단, 연결할 것 다 연결해."

장필재는 쓰러져서 실려 온 청년의 옷을 벗겨 보았고, 전기 화상이 맞는 듯 피부 곳곳에 열상과 검게 탄 흔적이 있었으나 생각보다 상태가 멀쩡했다.

"뭐야... 라면 끓이다가 엎어도 이만큼은 아닐 텐데...."

일단 장필재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청년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그의 손끝에서 나온 빛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열상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치료받고 있는 동안 그와 함께 실려 온 헬멧(바이크는 발견하지 못했다)이 전원 공급 없이 작동되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 * *

2일 후.

영의는 집 주변의 병원을 나서며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거지 같네...."

그날의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 왔지만 바이크는 누가 훔쳐 간 건지, 아니면 낙뢰에 맞고 터진 건지 그 자리에는 파편만이 몇 개 남겨져 있었고, 번개에 맞은 건 회사에서 보험 처리를 해 주었지만 바이크는 관리 실수로 인한 분실로 처리가 되었다.

하필 사고가 난 곳에 CCTV가 없었고, 일반적으로 마정석 시설에 낙뢰가 발생하면 대부분은 폭발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영의는 그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아니, 누가 번개 맞고 바이크를 챙길 수 있냐고...."

대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마정석 바이크를 변상하기 위해 영의는 보험금과 지금껏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야 했다.

현재 그의 통장에는 동생의 등록금을 빼면 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

그런 그의 옆구리에는 배달할 때 쓰던 은색 헬멧이 있었으며, 다행스럽게도 그건 낙뢰에서 무사했다.

"하아... 그래, 그래도 네가 나랑 바이크는 못 지켰어도 너 스스로는 지켰구나. 그게 더 낫다."

바이크의 두 배 가격에 가까운 첨단 헬멧이었기에 영의는 그래도 이게 안 부서져서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처음부터 벌면 되는 거지."

그렇게 병원 앞에 주차해 둔 새 바이크에 올라타며 헬멧을 쓰는 영의.

그러나 헬멧에는 바깥 풍경에 추가적으로 표시되는 디스플레이가 뜨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헬멧에 연동되는 휴대폰을 들어 조작해 보았지만 별 반응이 없는 헬멧. 영의는 짜증이 난 나머지 헬멧을 쓴 채 툭툭 때렸고, 그러자 화면이 푸르게 물들며 반응이 왔다.

[업데이트 중....]

"아, 업데이트네. 그럴 수 있지."

평소에도 종종 업데이트를 하란 메시지가 떴으나 귀찮아서 넘겼던 영의.

그는 이참에 밀린 업데이트나 해 두기로 하고 업데이트 중이라는 메시지 창을 구석에 치운 뒤 바이크를 몰고 호찬 버거로 향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오, 배달이! 오늘은 무슨 주문이야?"

늘 그렇듯 웃으며 맞아 주는 호찬. 영의는 그런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

"아뇨, 그냥. 보고 싶어서 왔죠."

"뭐야, 너 죽을 병 걸렸어? 평소엔 그런 말 안 하던 놈이 왜 그래?"

"아, 죽을 뻔하긴 했죠."

영의의 말에 호찬은 사고라도 한번 났겠거니 짐작했다.

"왜, 트럭이랑 박았냐?"

"아뇨, 번개 맞았죠."

"...?"

"덕분에 바이크도 날아가고, 통장 잔고도 날아가고...."

"으, 음... 미안하게 됐다."

생각보다 나쁜 상황에 사과하는 호찬.

"아니에요, 그냥... 다시 처음부터 벌면 되겠죠...."

"그래, 커피라도 마실래?"

"아, 네."

그렇게 커피를 마시던 둘. 마침 가게에 손님도 없고 한가로웠기에 둘은 잡담을 나눴다.

"얼마 전에는 어떤 손님이 말이지...."

그러던 그때, 영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아저씨. 저 주문 왔어요. 가 볼게요."

"어, 어. 그래. 가 봐라."

그렇게 다급히 밖으로 나가 바이크에 올라타 날아가는 영의.

그런 영의의 모습을 보며 호찬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참 힘들게 산다...."

그렇게 마셨던 커피를 정리하려고 컵을 집어 드는 호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은색의 헬멧.

"...헬멧은 여기 있는데 주문은 어떻게 받은 거지?"

그때 공중으로 날아오른 영의. 그의 시야에 늘 그랬던 것처럼 디스플레이가 표시되고 있었고, 알림 창도 있었다.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주문 확인."

[주문인 : 독고휘]

오, 독고 씨다. 실제로는 처음 보네.

[배달 물품 : 짜장면 보통, 탕수육 (소)]

짜장이라... 특정 가게가 없는 거로 봐선 아무 데나 상관없나? 진짜 짜장이 급하게 드시고 싶었나 보네.

[배달지 : 약도를 참조하세요.]

약도를 대충 보니 죄다 초록색이었다. 공원... 아니면 산인가?

어... 가끔 있긴 하지, 산 중턱쯤에서 시켜 드시는 분들. 지도 보니 진짜 산속이네. 이건 자동 주행으로 가야겠는데?

그렇게 영의는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잘하는 중국집으로 갔고, 짜장 하나와 탕수육 하나를 가방에 넣고는 바이크의 자동 주행 모드를 켜고 공중을 가로질렀다.

제3화

(3)

영의는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기 시작한 바이크에서 졸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줬던 약 중에 진통제가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졸음이 밀려온 것.

'아, 자면 안 되는데.... 아니지, 자동 주행 켜 놨으니까 목적지 도착은 알아서 되려나....'

영의는 그렇게 고민하다 졸음을 못 이겼는지 무심코 잠깐 눈을 감고 말았고, 고개를 떨구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어우! 아니지. 그래도 자면 안 되지. 사고 난 지 얼마나 됐다고...."

영의는 그렇게 혼잣말하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아까 전과는 다른, 산의 것으로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자 영의는 내가 졸긴 했나 보다 생각하며 헬멧(물론 안 쓰고 있지만 영의는 그걸 모른다)의 디스플레이를 보았다. 머지않아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고 표기가 되었다.

"어우... 근데, 여기 어디지? 안개 낀 거 보니까 지리산이나 그쯤 되나? 아니지, 산이 엄청 많은 걸 봐서 강원도쯤인가...?"

자동 주행으로 와서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아, 지도를 켜 보자.

"지도."

그렇게 음성으로 지도를 불러오려 했다.

[지도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뭐야, 신호가 안 잡히나? 안개 낀 게 이런 거에 영향을 주나?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과가 아닌 영의는 좀 벗어나서 도심이 나올 때까지 어디로든 가다 보면 알아서 신호가 잡히겠거니 싶어 이내 배달이나 하기로 했다.

다행히 큰 지도를 불러오는 건 안 됐지만 배달지에 대한 지도는 이미 표시되어 있었기에 영의는 표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와... 진짜 산속이네. 등산하시던 분이 시켰나? 앞으로 산 정상이나 아래쪽이 아니면 배달 안 되게 해 달라고 얘기해야겠다.'

영의는 숲속을 걷다가 풀로 가려진 한 동굴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의 디스플레이에서 알려 주는 표시가 없었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 같은 동굴이었다.

오... 이런 데를 아는 걸 보면 진짜 산 많이 타시는 분인가 보다. 설마 조난당했는데 구해 달라고 배달을 시키진 않을 거 아냐?

영의는 그렇게 주문인을 부르려 했지만,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 났다.

"계세요? 그, 누구였지... 독고...."

그때였다, 영의의 목덜미에 누군가가 칼을 들이댄 것은.

"어디에서 보냈나, 무림맹? 아니면, 천마 놈을 위해 내 목이라도 따러 왔나?"

"으어어! 서, 선생님! 진정하시고!"

아니, 배달하러 왔는데 갑자기 어떤 미친놈이 사람 목에 칼을 들이대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나 요즘 왜 이러지...? 뭐가 씌었나? 굿이라도 해야 하나....'

영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복색을 보아하니 중원의 인물은 아닌 듯한데, 그럼 마교로구나?"

"아니, 아니에요! 뭐든 간에 둘 다 아닙니다! 전 그냥 배달부라고요!"

영의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소리쳤고, 그때 칼이 목에서 떨어졌다.

칼이 몸에서 떨어지자 영의는 뒤를 돌아보았고, 중국 영화나 무협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복장을 한 흰머리 노인이 여전히 칼을 든 채 서 있었다.

"흠,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무인은 아닌가 보군. 내력도 느껴지고 몸은 나름 단련이 되어 있는데.... 어쨌든, 여긴 왜 온 건가?"

아, 웬 미친 인간인가 했는데 무협지에 너무 심취한 어르신인가.... 그보다, 세상일을 잘 모르시나? 아니, 그 이전에 다짜고짜 사람 목에 칼 들이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렇게 마음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일단은 눈앞에 있는 칼 든 노인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영의는 순순히 답하기로 했다.

"저기, 어르신. 제가 독고휘란 분을 찾아왔는데...."

"...내가 독고휘다만."

"...네? 아니, 장난치지 마시고요."

음식 시켜 놓고 배달부한테 칼 겨누고 미친 소리 하는 게 취미일 리가.

"본좌가 독고휘니라! 뇌섬문 초대 문주이자, 현 천하제일인! 검황 독고휘가 나란 말이다! 감히 본좌를 의심하는 게냐!"

그렇게 소리치며 노인... 아니, 독고휘는 온몸에서 스파크를 튀겼다. 스파크에 얼마 전 번개에 맞은 트라우마가 있는 영의는 무심코 뒤로 훌쩍 물러났다.

큰일 났다. 미친 영감이 각성까지 했어. 각성자들 중에 콘셉트충이 많은 건 아는데 저건 좀 심한데...? 빨리 음식이나 주고 가야겠다.

옷 보니까 비단옷 같은데 그래도 돈은 나름 벌고 사는가 보네.

"아니, 어르신! 무협지 놀이 하시는 건 좋은데 배달 온 사람한테 그러는 건 아니죠! 아무튼, 짜장 하나에 탕수육 소 자 맞죠?"

영의는 보온 가방 뚜껑을 열었고, 그 안에서 다급히 단무지와 젓가락, 음식을 꺼내며 최대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난 그런 것 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영약도, 보검도 바쳐 봤자 본좌에게선 무공 한 자락 얻을 수 없을 것이야!"

아 진짜 미친 영감... 내가 더러워서 진짜... 어울려 줘야 하나?

"아니, 돈으로 주세요. 제가 그런 거 알아서 뭐 합니까? 수수료 포함 19만 원이에요."

"...돈이라? 본좌가 지금 돈이 있어 보이나?"

아니 미친 영감아, 짜장이 공짜로 먹고 싶었으면 그냥 일반 배달 시키라고, 나한테 시키지 말고.

"없으면 이거 가져갑니다?"

에이, 진짜. 영감님이 장난쳐도 정도껏 치지, 배달부한테 장난을 쳐? 진짜 각성자만 아니었어도 내가 배 째라고 드러누워서라도 돈 받아 갔는데.... 요즘 진짜 운이 왜 이러지? 정말로 굿해야 하나?

그렇게 다시 주섬주섬 음식을 챙기는 영의. 그러나 그의 손을 가로막는 독고휘.

"...두고 가게."

"...예?"

이젠 음식도 받겠다고? 이거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 아니, 칼 들고 있구나. 강도네.

"아니, 돈 없으시다면서요? 그럼 못 드리죠. 수수료는 제가 그냥 어르신 외로운 거 같아서 눈감아 드리겠는데, 음식까지 가져가면 완전 강도 아니에요?"

그 말에 독고휘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무엄하구나! 감히 본좌를 산에서 표국들 주머니나 털어먹는 녹림 취급해?"

아니, 이래도 화내 저래도 화내, 뭐지? 치매인가?

영의는 그쯤 되자 본인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 있는 각성자가 갑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손님이 왕이라고? 그럼 난 이성계가 되어 주마. 반란의 시간이야.'

"어르신, 음식을 드시고 싶으시면 돈을 내세요. 엄마 손 잡고 다니는 꼬맹이들도 길거리 음식 뭐 먹고 싶을 땐 집어 먹는 게 아니라 엄마한테 뛰어가서 돈 달라고 조르는데,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왜 그래요? 며칠 굶은 것도 아니면서."

"...."

어, 진짜 굶은 건가?

"그, 돈 말고 다른 건 안 되나? 내 가르침 한 줄을 얻기 위해 금을 산처럼 들고 오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독고휘의 배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고,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독고휘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크, 커험!"

"...제가 그런 거 배워서 어디 쓴다고요, 돈으로 달라니까요?"

영감님... 각성 능력을 가르쳐 봤자 아무도 못 배워요.... 그러니까 돈으로 주든가, 이 손이라도 좀 놔주시죠?

"그... 내 비동 안에 영약이 있네! 오백년하수오인데, 내가 아직 안 먹고 남겨 둔 게야! 자네, 이걸 가져가 팔면 대대로...는 못 살아도, 자네 아들까진 떵떵거리며 살 걸세!"

이젠 뭐? 오백년하수오? 도라지 정도 있겠지. 운 좋으면 한 2년근 산삼이거나.

"아니, 굶으실 거면 그걸 드시지 왜 이걸 원하세요?"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버티고 있었으나 독고휘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본좌가 지금껏 살면서 수많은 산해진미를 먹어 보았으나 저것은 또 새로운 맛의 향이로구나!'

그는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누구보다 빠르게 벽을 깼고, 이내 지천명(40세) 이전에 화경을 넘어 현경의 벽을 뚫으며 천하제일인이라 칭송받았다.

물론 마교의 천마 혁련무강도 그와 비슷한 실력자였지만 절대자는 고독한 법이었기에 정파에선 적수가 없던 그에게 대등한 상대였던 혁련무강은 적이라기보단 나름 친우와 악우 사이의 관계였다.

아무튼 젊었을 땐 열정 넘치게 사파와 마교에 맞서 중원도 구해 보고, 예쁜 아내들도 얻고 자식도 키우고 제자도 키워 내 거대 문파를 만들어 내 독문무공도 전수해 줬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집안 꼴 돌아가는 게 영 보기가 싫어져 산에 칩거해 숨어 지낸 지 수십 년째인 그.

어떻게 오는 건지 몰라도 몇몇 놈들이 간혹 찾아오긴 했지만 그때마다 자리를 옮겨 가며 숨어 지냈다.

당연히 먹는 것은 벽곡단이나 가끔 마을에 내려가서 먹는 국수나 만두 정도.

그렇게 아낀다고 아껴 봤지만 어느새 수중에 돈은 없어지고 가진 건 벽곡단과 자연의 산물뿐.

산을 옮겨 다닐 때마다 가끔 영초 같은 걸 찾지만 보통은 자신이 홀랑 먹어 버려서 남은 건 비장의 오백년하수오뿐이었다.

오늘도 맛없는 벽곡단을 침에 살살 녹여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낯선 차림새의 방문자가 음식을 들고 왔다.

그것도 엄청 맛있어 보이는 향을 가지고, 심지어 뜨끈한 채로! 그래서 지금 독고휘는 천하제일인의 위엄을 앞세워 대접받아 보려 했으나 상대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영초도 거절하자 지금 독고휘는 마음이 급하고 절박해졌다.

"그, 그럼 내 검을 주겠네. 이래 보여도 만년한철에 현철이 들어간 희대의 보검이네!"

미친 영감이 이젠 검으로 딜을 하려고 한다. 아니, 여기가 전당포인 줄 아나?

...뭐, 그래도 좋아는 보인다. 나름 장식도 잘돼 있고. 근데 내가 저걸 받아서 뭐 어디 쓰라고?

"아니, 어르신. 진짜 자꾸 그러실 거면 저 갑니다!"

그렇게 영의는 독고휘의 손을 뿌리치고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독고휘는 다급한 마음에 금나수로 영의의 팔을 잡았고,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영의를 잡아 넘기고 말았다.

터엉!

"어?"

바닥에 엎어지고 충격에 다시 땅 위로 튀어 오르며 영의는 생각했다.

'뭐야, 왜 헬멧 방어 기능이 안 돼?'

그렇게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영의는 또다시 헬멧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단 사실에 실망하려다가 바람에 휘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헬멧이 없었네?

제4화

(4)

영의는 동굴 바닥에서 눈을 떴다. 물론 마른 풀이 깔려 있긴 했지만 습기 찬 바닥은 맨바닥이랑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오오, 눈을 떴군그래. 기다리는 동안 음식은 다 먹었네. 아주 맛있더군!"

독고휘는 사실 내심 집어 던진 게 미안해서 음식에는 손을 안 대려 했지만 탕수육은 고기 조각이 많아서 나름 괜찮아 보였고, 한 조각을 집어 먹고 난 다음엔 의식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춘장도 젓가락 끝으로 삭삭 긁어 먹고 있었던 것. 고기튀김은 많이 먹어 봤지만 이렇게 바삭하고 또 소스와의 조화를 완벽히 이루는 것은 처음 먹어 본 독고휘였다.

또 짜장은 어떤가. 겉보기엔 검고 거부감이 들었지만 춘장을 입에 넣으면 달짝한 맛이 있고 면과의 조화를 완벽히 이루어 준다. 또 국물이 있는 일반적 면 요리완 다른 그 느낌이 독고휘는 마음에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먹긴 했지만 그 맛만큼은 지금 그의 혀와 목구멍, 그리고 위장이 기억하고 있는 것.

"으... 헬멧, 없었나.... 그럼 내가 본 건 뭐지...?"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독고휘가 제지했다.

"움직이지 말게. 비록 내가 내력을 주입하고 자네의 기맥을 조금 손보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를 부딪쳤을 땐 조심해야 하네."

"뭘 해요...? 아, 나 가 봐야 하는데...."

영의는 그렇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가 생각했던 움직임과 실제 그의 몸이 행한 움직임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저 누운 상태에서 반동을 줘서 앉을 생각이었는데 그 반동이 너무 강해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고 만 것. 영의는 다시 한번 머리에 전해지는 고통을 느꼈다. 물론 아까완 달리 앞으로.

"허어... 효과가 상당하군! 자네, 혹시 살면서 번개를 맞은 적 있나? 아니면, 혹시 번개를 뿜는 영물이라도 만난 적이...?"

영의는 쓰러졌다 깨어난 것도 있고, 방금 막 머리를 다시 박아서 정신이 혼미해 무의식적으로 대답해 주고 말았다.

"며칠 전에... 번개 맞고 살아났는데...."

"오오! 과연, 어쩐지 자네의 몸에 묘하게 뇌기가 서려 있더라니! 사실 처음엔 그냥 머리를 박고 쓰러진 거니 몸에 이상이 없는지만 확인하려 했거늘, 뇌기가 느껴지기에 어찌나 놀랐는지!"

영의는 독고휘의 말을 듣자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뭐? 내 몸에 뇌기? 전기가 흐른다고? 아니, 그 이전에. 내 몸이 왜 내 몸이 아닌 것 같지?

독고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내력을 넣어 줄 생각은 없었네만, 자네가 가져온 음식을 먹으니 갑자기 마음속에서 자네에게 뭐라도 줘야 한단 생각이 올라오더군. 그래서, 내가 내력을 좀 불어 넣어 줬네. 무공을 배우면 좋겠지만, 안 배워도 평생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 게야! 하하!"

영의는 자신의 몸이 변화한 게 눈앞의 영감이 무언가 했구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다른 한마디가 신경이 쓰였다.

"...먹었어요?"

"음, 맛있었네. 내 평생 살며 먹은 것 중 최고야."

"아니, 그걸 홀라당 먹으면 어떡해요! 아 영감님 진짜! 다친 거 보살펴 준 건 감사한데.... 아니지, 다친 것도 영감님이 나 집어 던져서 그런 거잖아요!"

응? 잠깐, 저 영감, 분명 한 손으로 날 잡아서 던졌다고? 무슨 합기도나 유술 달인이야?

"잠깐만요, 영감님. 무슨 능력 각성자세요? 신체 강화랑 속성 계열은 같이 발현 안 될 텐데."

가끔 두 개의 능력을 발휘하는 각성자들이 있긴 했지만, 육체 강화와 육체 가속, 화 속성과 수 속성처럼 같은 계열에서만 발동이 됐다. 원래 두 개에 적성이 있었으나, 하나만 쓰다가 나중에 다른 하나가 제대로 발현이 되며 두 개가 된다는 게 학계의 연구 결과였다.

"각성이라니? 난 그런 거 모르네만. 그보다, 나는 자네가 더 궁금하네.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그리고, 자네의 것으로 보여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저 기물은 도대체...."

영의는 뒤를 돌아보았고, 동굴의 입구쯤에 그의 마정석 바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작동되지 않는 지도 불러오기, 정신 나간 영감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강화된 자신의 몸....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뭔진 몰라도 이상한 곳에 배달을 온 것 같다고. 영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급히 외쳤다.

"알림 확인! 배달 확인!"

자리에서 일어서서 느닷없이 무슨 확인을 외쳐 대는 영의를 보자 독고휘는 머리를 잘못 박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머리에 내력을 좀 더 주입시켜 줘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더 미쳐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알림이 없습니다.]

[배달 : 독고휘에게 배달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보상을 받으십시오.]

영의는 자신의 눈앞에 떠 있는 디스플레이를 보며 머리를 만졌고, 거기엔 헬멧 대신 자신의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그리고 눈앞에다 손을 흔들어 봐도 디스플레이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러다 배달 칸에 손이 닿자 새로운 창이 열렸다.

[손님 독고휘가 음식에 만족하였습니다. 보상을 받으면 돌아갑니다.]

엄지를 치켜든 따봉 표시와 함께 배달 완료라는 글자가 적힌 화면이 나왔다. 영의는 그것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드디어 미친 건가? 아니지, 그래도 그 경로대로 바이크는 제대로 움직였는데? 그 이전에, 헬멧이 없는데도 디스플레이가 뜨고 배달 주문이 들어온다고?

"경로... 바이크... 주문...."

그렇게 머리를 만지다 눈앞에 손을 흔들다 이젠 제자리에서 중얼대기 시작한 영의를 보며 독고휘는 이젠 진짜로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해 영의를 말리려 했다.

"이, 이보게 젊은이. 내가 말했지 않은가. 머리를 다쳤을 때 움직이면 안 된다고. 내 용한 돌팔이... 아, 아니. 의원을 알고 있으니 함께 가 보세. 그래 보여도 세상에서 신의라고 불리는 녀석이니 자네 머리정도는 고쳐 줄 게야."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영의를 데려다가 동굴 밖으로 나서려 했고, 영의는 독고휘의 손을 거절하고 말했다.

"영감님, 보상요."

"응? 보, 보상? 무슨 보상?"

"배달비랑 음식값요. 주셔야죠?"

영의의 말에 독고휘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본좌의 내력... 아니지, 무공에 대한 가르침 한 줄이라도 받으려고 금을 산처럼 쌓아서 들고 오는 이들이 널렸거늘, 너는 본좌의 내력까지 받았으면서 무슨 욕심을 그리...!"

"아, 내력 그건 저 다치게 해 가지고 한 거니까 음식에 대한 보상은 아니죠. 그리고, 보상 안 받으면 저 못 돌아가요."

"허어...! 욕심이 끝이 없도다!"

독고휘는 내력까지 받았으면서 끝까지 돈을 달라고 하는 영의가 괘씸해서 쫓아내기 위해 내력을 담아 소리치려 했다.

어디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놨더니....

"갈! 사람이 응당 받은 게 있으면 갚아야 하거늘!"

응? 어, 이, 이 말이 아닌데?

"본좌는 그런 것을 잊는 사내가 아니다! 그리 쪼잔하게 살 것이었으면, 본좌는 진작 뗄 거 떼고 황궁에서 동창 놈들이랑 부대끼며 놀고 있었겠지!"

아, 아니야. 아직 정정하다고! 안 떼어도 된다! 왜 말이 마음과 다르게 나오는 거지?!

"그래, 무엇으로 주면 되겠느냐! 본좌의 독문무공? 아니면, 오백년하수오로 받겠느냐?"

내, 내가 왜 이러지? 사술인가? 한때 마교의 명왕심판지옥진에서도 정신을 유지했거늘!

"오, 그럼 뭘로 받지...?"

영의는 저 검이나 보진 못했지만 영초를 가져다가 옥션에 올리면 돈 좀 받겠다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때 알림 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보상 : 심법 또는 영약 추천]

영의는 갑작스럽게 시야 구석에 뜬 알림 창에 의문을 품었으나 소싯적에 무협지 좀 읽어 본 경험으로는 확실히 이쪽이 낫겠다 싶었다.

"영감님, 심법이나 무공 같은 거로 안 돼요?"

독고휘는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건 안 된다, 차라리 저 오백년하수오를 주겠다, 무공을 한 끼 식사랑 바꾸다니, 아무리 맛이 좋았어도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의 입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음! 무엇이든 가르쳐 주지! 단, 하나뿐일세!"

그래도 하나로 제한을 걸어서 다행이긴 한데... 설마, 본좌의 최상승절학인 천지양단 벽력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건...?

"어... 근데 제가 뭘 모르는데, 추천할 만한 게 뭐가 있죠?"

영의는 무림인도 아니었고, 무협지도 재미로 읽은 것이지 심혈을 기울여 읽진 않아 상세한 걸 몰랐다. 독고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냥 기초 토납법이나 좀 가르쳐 주고 말아야겠다 생각하고는 시중에 나도는 것보다는 좋지만 상승무공이라기엔 좀 그런 심법을 말해 주려 했다.

"자, 뇌섬문의 심법인 뇌령(雷領)심법을 가르쳐 주고 싶으나, 이미 자네는 몸에 뇌기가 깃들어 있고, 단전을 만들기엔 여건이 영 좋지 못하니 본좌가 말년에 창안한 뇌격공을 전수해 주겠네."

뭐, 뭐야! 그건 나중에 죽기 직전에 비급으로 써 놓고 멋지게 장식해 두고 싶었는데!

"오... 뭔데요?"

"내가 아까 살펴본 바로는, 자네는 단전은 없지만 몸의 기맥에 내력이 흐르고, 그것이 뇌기를 띠고 있네. 즉, 뇌격공을 쓰는 토대인 뇌전 지체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인 것이야. 본디 뇌전지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닌 뇌기와 관련된 심법이나 영약으로...."

그렇게 독고휘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밑천을 털어 주기 시작했고, 영의는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자, 요약하자면 뇌기로 하여금 자신을 빠르게 만들어 주고, 모든 공격에 뇌기를 흘려 적을 상하게 하는 무공일세. 초식이나 그런 건 본좌도 아직 만들지 못했네. 뇌전지체는 경지에 이르기 전에 만들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데 난 이미 환골탈태를 이루어서 몸에 뇌기를 깃들게 하려니 몸에서 도로 내보내더군."

그렇게 말하고는 독고휘는 영의를 잡아다가 뒤로 돌리고 등에 손을 댔다.

"오, 저 이거 알아요. 그 무협에서 많이 나오는데."

"입을 다물게. 뇌격공은 단전처럼 한 군데에 기운을 담아 두는 게 아닌 항시 순환을 시켜야 하는 것일세. 그렇게 조금씩 순환시키며 기운을 전신 곳곳에 균일하게 분배하다 싸울 때가 되면 속도를 올려 방출하는 것이야."

"그러니까... 그, 운기조식이나 그런 건 필요 없다고요?"

"그래, 뇌기는 아아아주 미세하게나마 몸 안에서 생성되니 그것으로 힘이 다 떨어질 일은 없네. 그러나 그것을 순환시키며 증폭시키기 전까지는 약해질 걸세."

독고휘의 말에 따르면 번개나 뇌기를 쓰는 다른 무공을 맞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뇌기를 얻을 방법은 없기 때문에 체내의 미세한 전기를 몸 안에서 순환시키며 증폭해서 모아 두는 개념이었다.

"이 무공은 대기만성형 무공이네. 지금 자네의 몸으로는 내가 뇌전지체를 깨워 뇌격공을 활성화한다면 어지간한 일류고수 정도는 내력 싸움으로도 이길 수 있을 걸세. 자네의 몸엔 아주 순수한 뇌기가 있으니 말이야. 자연의 기를 받아들여 거기서 다시 뇌기를 쓰는 다른 무공은 미미하게 다른 기가 섞이지만 체내의 뇌기는 정순하기에 아주 강력하지. 자, 그럼 조금 아플 걸세. 몸 안의 모든 곳에 뇌기가 흐르는 느낌은!"

독고휘는 그렇게 영의의 몸에 뇌기를 흘려 몸 안에 뇌기를 순환시키기 시작했고, 영의의 체내에 있던 뇌기가 그에 휘말려 조금씩 몸 안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독고휘와 영의는 둘 다 땀에 절어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전과 달리 영의의 몸에선 스파크가 드문드문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이제 됐네. 지금은 순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탓에 뇌기가 몸 밖으로 분출되지만, 이각(30분) 정도 지나면 금세 가라앉을 게야. 아, 물론 다른 이들과 자주 따끔거리는 일이 일어나겠지. 으아아아!! 안 된다니까! 음...?"

그렇게 마지막 주의 사항까지 다 설명을 하자 독고휘는 마음속에서 나오지 못했던 말들이 드디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때 영의의 시야 구석에서도 알림 창이 움직였다.

[보상 수령 완료! 첫 주문의 혜택이 끝났습니다. 다음 배달부터는 보상이 급감합니다.]

[단, 고객의 재량에 따라 보상이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복귀를 시작합니다. 지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해 주세요.]

영의는 그 알림 창을 보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동굴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이만 가 보게. 후우... 말년에 갑자기 무슨 일인지...."

독고휘는 괜히 음식 좀 집어 먹었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다 싶어 다음부턴 그냥 벽곡단이나 먹기로 결정했다.

"아, 영감님. 감사했습니다."

"...그래, 가 보게. 뭐... 나도 얻은 게 있긴 하니."

영의는 새로운 각성 능력에 대해 알고 무공도 전수...? 받았고, 독고휘는 뇌전지체에 대한 샘플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뇌격공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영의는 인사를 하고는 바이크에 올라타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 모습을 본 독고휘는 놀라고 말았다.

"아니, 사람이 하늘을 날다니! 그것도 저런 것에 올라타서! 허허... 저것이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구름이란 말인가! 허어... 어쩌면 신선들께서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뇌전지체를 보여 주시고, 힘을 내라고 음식도 주고 가셨나 보구먼. 그래, 어쩐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더라니!"

독고휘는 그렇게 뇌격공에 대한 비급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신선이 가르침을 주어서 만든 희대의 신공절학이라는 시작 말을 써 넣으며....

참고로 마정석 바이크는 야간 비행 시 눈에 띄기 위해 형광색이나 백색을 기본으로 출시된다. 영의의 바이크는 흰색이었다.

제5화

(5)

영의는 맑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번개를 맞고 나서 받은 첫 배달 업무가 있다. 하지만 그건 헬멧을 통해 직접적으로 온 게 아니다.

배달 헬멧은 없지만 어째서인지 헬멧이 있는 것처럼 바이크와 연동도 되고, 지도도 표시된다.

그렇게 연동된 자동 주행으로 온 곳은 웬 미쳤지만 능력은 엄청난 노인네가 있는 곳이었다.

노인은 음식을 받고는 이상해져서... 아니, 원래 이상하긴 했지만 더 이상해져서 나에게 무슨 짓을 했다. 그리고 그걸 받고 나자 알림에서 보상 수령이 끝났다고 했다.

그렇게 노인은 나에게 무공...? 을 전수해 줬고, 확실히 몸이 가볍고 강해진 느낌이 난다. 그리고 뇌기... 그러니까 전기에 대한 묘한 친숙함도 느껴진다.

몸 안에 도는 혈관이 묘하게 짜릿한 느낌이 들고, 반응속도가 전과는 차원이 달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헬멧 없이도 배달 업무가 보이기 시작한 결과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가 어느새 눈앞에 구름을 마주한 영의.

그는 구름 속을 주행하다 사고가 난 경우를 알고 있으므로 바이크를 조작해 구름을 피해 가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바이크는 말을 듣지 않고 그 구름 속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구름 속을 지나고 나자, 구름 속을 지나면 당연히 느껴졌어야 할 묘한 습함과 축축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발아래에는... 도심의 풍경이 보였다.

"...꿈이었나?"

어쩌면 약의 후유증 때문에 자신은 공중에서 잠에 들었고, 주문도 사실은 꿈결에 잘못 본 직업병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시야 구석에서 알림 창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설마.'

영의는 그 알림 창을 보기 전에 혹시 싶어 머리에 손을 가져가 보았고, 손에는 머리카락과 얼굴의 감촉만이 느껴졌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으로 알 수 있지 않겠냐 싶겠지만, 마정석 바이크는 기본적으로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일정 속도나 고도에 도달하면 아주 옅은 실드로 바이크 주변 일정 공간을 감싸고 날아오르는 형태였다.

사고에서 1차적인 안전장치로 작동되기도 하며, 주행자의 편의를 위한 목적이었다. 물론 그래도 번개를 맞거나 하면 의미가 없겠지만.

"...알림, 확인."

영의는 그렇게 입 밖으로 중얼거렸고, 그러자 화답하듯 확장되는 알림 창.

[배달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다음 주문까지 기다려 주세요.]

"...꿈이, 아니었네."

사람은 보통 행복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지금이 꿈인지 의심하고, 고통스럽고 힘들 때는 지금이 현실이 아닐 것이라 의심한다.

그렇게 지금 자신이 꿈을 꾼 게 아니란 걸 깨달은 영의는 무슨 선택을 했을까?

새로 얻은 능력으로 출세할 생각? 아니면, 자신만이 얻은 능력으로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볼 생각?

정답은, 병원부터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병원, 이번에는 각성자들의 전용 병원에 가서 창구의 대기표를 뽑고 앉아 기다리는 영의. 그의 눈에 일반 병원과는 다른 안내문들이 많이 보였다.

[등급 상승을 위해 강제로 마력을 복용하다 온 경우 보험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강제 각성은 의사나 전문가와 상담 후 처방에 따라 시행해 주세요.]

[각성 검사는 협회에서 시행합니다. 여긴 병원이며 각성 검사를 시행하지 않습니다.]

각성자의 각성 형태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타입... 그러니까 형태가 나뉘고, 그다음은 출력이 나뉜다.

검사 과정에서 쉽게 알 수 있는데, 처음에는 스캐너 같은 장치로 몸에 마력을 투과시켜 보고 반응하는 마력 형태를 찾는다.

신체 변이나 강화 계열은 마력 투과 시에 바로 반응이 오고, 반응이 없거나 약할 경우 속성 마력 검사를 한다.

미세한 전류와 불꽃, 물 같은 게 반응해 몸 주변에 생성되면 거기서 종류 판별은 종료. 바로 출력 측정만 하면 되는 거다.

거기서도 반응이 없으면 보조 계열로 분류되어 며칠 뒤 재검사를 받는다.

보조 계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이 생겨나기에 협회도 측정 수단을 다 마련하지 못했다.

다만 몇몇 메이저 보조 기능인 생산, 강화, 부여 및 나처럼 특수한 도약 계열이나 물체에 대한 감, 가속이나 온도 조절 등의 간섭 계열 등.

어떠한 행동을 할 때 몸에서 마력 반응이 생겨나고, 그것을 감지해서 판별해 주는 것이다.

검사는 모든 국민들이 중학교 때 실시하며, 한창 중2병이 돋을 시기이니만큼 그때부터 능력에 대한 응용력을 알아서 키워 나간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한다. 물론 각성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고 각성자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몸이 건강해지고 좋아진다.

속성 계열 각성자도 어지간한 운동 마니아 일반인보다 강할 정도이니. 그래서 나이 먹고 돈 많은 부자들이 건강하게 살겠다고 강제로 각성을 시도하는데, 거기에 마정석이 엄청 쓰인다.

각성자들은 자연의 마력을 몸으로 받아들여 능력을 사용하는 형식인데, 비각성자들은 받아들이는 능력이 개화하지 않았으니 마정석에서 자신의 몸에 맞는 기운을 주입해 몸만 강제로 각성자로 만드는 것이다.

운 좋으면 하나로 끝나지만, 운 나쁘면 뭐.... 그래서 중동의 돈 많은 각성자 중에 마력을 흡수하지 못하는 인간들도 있다.

대신 차 한 대 값 하는 마정석을 싸울 때마다 쓰면서 익스트림 스포츠 하는 감각으로 괴수 사냥을 하는 거지. 하... 진짜. 내가 번개 맞고 미쳐 가는 건가? 갑자기 독백을 하네. 물론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영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자신의 번호가 표시되는 것을 보았고, 바로 일어서서 걸어갔다.

간호사는 퉁명스럽게 영의를 바라보지도 않고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며 물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면회? 아니면, 등급 상승 시술?"

"아뇨, 얼마 전에 사고를 당했는데, 검진 좀 받으려고요."

간호사는 곧바로 검진 항목을 적어 넣으며 계속 물었다.

"네... 검진요. 일단, 신분증 주시고요. 정밀 검진? 아니면, 간단한 신체 스캔?"

"신체 스캔요. 각성 능력 발동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요."

신분증을 받아 기계에 읽히는 간호사. 그러자 간호사가 작성하던 문서에 영의의 정보가 기재되었다.

"네, 이거 받고 2층으로 가시면 돼요."

영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이를 출력해 영의에게 건네주는 간호사. 영의는 그 종이를 받아 들며 배달업의 직업병인지, 무의식적으로 웃어 보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영의가 떠나가자, 간호사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말이 새어 나왔다.

"와... 존잘...."

그리고 간호사는 후회했다. 처음부터 얼굴을 봤으면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2층. 스캔 및 분석과.

영의는 종이를 받아 들고 2층의 데스크로 왔고, 종이를 간호사에게 건네주고 아무 의자에나 가서 앉으려 했다.

"아, 손님? 지금 바로 가시면 되는데...."

"...네? 바로 돼요?"

"아, 네! 검진은 대기자 없어서.... 따라오세요, 안내해 드릴게요."

간호사가 친절히 미소 지으며 영의를 직접 안내하려 하자 영의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그냥 알려 주시기만 해도...."

"아뇨, 데려다 드릴게요."

"아... 그럼, 뭐...."

그렇게 간호사는 영의를 데리고 검진실로 향했고, 옆에 있던 다른 간호사가 부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아... 존잘남... 나한테 오지, 더 친절하게 해 줄 수 있는데...."

하지만 먼저 영의를 데려간 간호사가 조금 더 선배였고, 영의가 말을 건 것도 그녀였기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검진실에 들어오자, 영의는 안쪽의 시설을 둘러보았고, 간호사는 자연스럽게 나가지 않고 그의 옆에 있었다.

"...선생님은 안 계신가요?"

"...곧 오시겠죠."

그렇게 어색하게 있으려던 찰나, 간호사가 먼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저기... 그, 혹시...."

"네?"

그러나 그때 검진실 문이 열리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왔다.

"어우, 간만에 검진 온 사람 있다며? 아, 김 간. 마침 여기 환자 정보도 있군? 이제 나가 봐도 좋아요."

의사 탓에 말을 다 꺼내지 못한 간호사는 속으로 의사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하며 검진실을 나갔다.

"자, 잘생긴 젊은 환자분. 어디가 아픈 것 같아서 검진을 받으러 왔죠? 각성자 병원으로 온 것 보니 어지간한 병은 아닐 텐데. 아, 저는 박병원 의사입니다. 하하! 그렇다고 제가 병원장은 아닙니다!"

의자에 앉으며 그렇게 말하는 박병원 의사. 영의는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뭐라 말하지? 제가 원래 바이크를 겁나 빨리 달리게 하는 능력자인데 어느 날 번개 맞고 그게 막 세상을 건너가고 나라를 건너가게 됐다고?

아니면, 헬멧이 없어도 헬멧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할 수 있게 됐다고?

영의가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자,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뭐 말 못 할 고민...일 수도 있고, 솔직히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사람이 직접 알면 병원에서 검사는 왜 하겠어요? 치료만 하면 됐지. 일단 뭐 가볍게 검사해 봅시다. 김 간! 다시 좀 들어와요!"

그렇게 영의는 의사를 따라 검진을 받기 위해 발을 옮겼다. 통상 병원에서의 검진과 달리 각성자들의 검진은 마력으로 인한 질병이 종종 있기 때문에 마력 검사부터 해 보고, 끝까지 이상이 없으면 질병으로 판단하고 일반 병원으로 옮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자, 우선 기재된 신체 데이터랑 다른 부분부터 찾아봅시다. 마력 출력부터."

간호사가 굳이 영의의 팔을 직접 잡고 도와주었다.

"자, 팔 넣으시고... 네. 기다리시면 돼요."

영의는 그렇게 혈압 재는 기계처럼 생긴 출력 측정 기계에 손을 넣었다. 평상시 팔 부분의 마력 통행량을 검사하고 기계가 작동하면 그 부분의 마력 흐름을 차단해 최저값과 평시값의 차이로 확인하는 것.

실전에서의 마력 출력과는 관계없지만 이건 신체검사이므로 별문제는 없었다.

의사는 그렇게 나온 결과표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오? 기존 데이터보다 출력값이 엄청 올랐는데? 뭐 좋은 거라도 많이 드셨나 봐요? 하하."

'흐음... 병원 진료 기록에 따르면 번개를 맞았다고 돼 있었는데, 혹시 두 번째 능력이 속성 계열인 건가? 근데 속성 계열은 인챈트 말고는 다른 계열과 함께 각성이 안 될 텐데...?'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연구되진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속성 계열과 다른 계열의 능력 사이의 동시 각성은 관측되지 않았다.

가끔 그런 결과를 의심하게 하는 불에 강한 신체 강화 능력자나 이상하게 전격계 무기만 만들면 잘 나오는 생산계 각성자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인챈트라고 불리는 부여 계열 각성자를 제외하고는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몇몇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부여계 자체도 속성계이지만 방출을 통한 전투보다는 부여나 강화 쪽에 적성이 기울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검진실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왕년에는 학자에 가까웠던 박병원 의사. 그는 지금 새롭게 나타난 이 환자가 몹시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검사에서도 기록된 데이터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보여 주자 병원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워졌다.

'출력도 올라갔고, 기존 능력은... 잘 모르겠군. 행동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계열이라.... 아무튼, 검사에서 육체 강화와 속성 계열, 그것도 전격계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왔어. 육체 강화야 마력 출력의 상승에서 비롯된 거라고 봐도, 전격계의 저 수치는... 확실히 전격계 각성자들에게서 나올 법한 수치인데, 정작 나머지 검사에서는 속성계가 아니라고 나오니, 원.'

그렇게 고민하던 박병원. 영의는 검사를 모두 마치고 옷을 입으며(중간에 잠깐 옷을 벗고 하는 검사가 있었고, 김 간호사는 매우 흡족해하며 그 광경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병원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결과가... 어떻죠?"

"아? 음, 뭐... 잘 모르겠네요. 출력도 올라가고, 다른 계열에도 적성이 나왔는데... 정작 나머지는 아니라고 나오는군요. 솔직히, 협회에 가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 보시거나, 아니면 뭐... 땡잡았다 생각하시고, 좀 더 건강한 몸으로 사는 것을 즐기시는 게 나을 겁니다."

영의가 원했던 답은 그게 아니었다. 전격이고 뭐고 그런 건 알고 있으니까, 대체 시야 구석에서 알짱거리는 저 알림 창이나 인터페이스를 어떻게든 알아내야 했는데 의사는 딴소리나 하고 있으니....

"아니, 그... 그런 거 말고... 혹시 뭔가 보조 계열에 다른 능력이라든지... 그런 반응은 없었나요? 막, 시야 확장이나 그런 거."

영의의 말에 병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환자가 미친 건가? 아, 얼마 전에 번개를 맞았다고 했지. 그럼 그럴 법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부분은 협회를 가 보시라 하는 겁니다. 여긴 병원이지 협회가 아니에요."

"...네."

자신이 생각해도 능력에 대한 검사를 해 달라고 하는 건 병원에서 할 짓이 아니었다. 1층에서도 안내문에 적혀 있지 않았던가. 영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내 일어섰다.

"아, 환자분. 만약 협회에서도 마땅한 결과가 안 나온다면, 이리로 연락 주세요. 대학교 연구 팀을 몇 알고 있으니 실험적인 검사도 몇 개 할 수 있을 겁니다."

의사, 박병원은 자신의 명함을 건넸고, 영의는 그 명함을 받아 들어 보았다.

"...초인 전문 대학교 명예교수, 박병원...?"

"네, 원래 교수였거든요. 의사는 먹고살려고 하는 거고. 하하! 이래 보여도 연구자 출신입니다!"

도대체 그런 머리로 왜 여기서 한가하게 검진의나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영의는 이내 인사를 하고는 검진실을 나섰다.

그리고 병원은 영의의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하기 위해 후배에게 각성자들의 등급 상승 데이터 좀 보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가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밥이라도 사 주고 그딴 소리를 하라고....

그렇게 별 소득 없이 병원을 나선 영의. 사실 의사의 명함을 얻긴 했지만 그가 찾는 문제에 대한 답은 지금 가는 목적지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

영의는 그렇게 각성자 협회로 향했다.

* * *

한편, 독고휘의 거처인 동굴에서는....

"...하니, 연자여. 이 무공은 뇌전지체가 아니고서야 대성할 수 없으니 부디 뇌령조나 벽력웅 같은 영물들의 뇌기로 가득 찬 내단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비급은 뇌섬문에게 전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뇌섬문은 나의 명을 받들어 이 비급의 복사본을 연자에게 주어라. 검황 독고휘."

가장 중요한 주의 사항을 맨 마지막 장에 써 두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책을 덮는 독고휘. 한참을 집중한 작업이 끝나자 그의 배는 배고프단 신호를 보냈다.

"허허... 시간이 얼마나 지났길래 다시 배가 고플꼬. 어디...."

그는 그렇게 여유롭게 벽곡단이 담긴 항아리에서 벽곡단을 하나 꺼내어 씹었고, 이내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말았다.

"...맛이, 없군. 어찌 이리 맛이 없는지...."

그래도 먹을 게 딱히 없었기에 벽곡단을 계속 씹는 독고휘.

물론 그도 제법 고급진 벽곡단을 구비해 뒀기에 나름 단맛도 나고 괜찮은 벽곡단이었지만 얼마 전 먹은 탕수육의 단맛을 이길 수 없었고, 푸석푸석하고 목이 막히는 식감은 부드럽게 넘어갔던 짜장면이 그리워지게 했다.

"허허... 신선들께서 내게 선물도 주셨지만, 앗아 간 것도 있구나.... 앞으로는 어찌 먹고 살꼬...."

그렇게 독고휘는 수십 년간 지켜 온 자신의 칩거를 깰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6화

(6)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흰색 마정석 바이크.

영의는 협회로 가기 전 호찬의 가게에 들러 자신의 헬멧을 회수해 왔고, 호찬은 그때 헬멧 없이 용케도 배달을 다녀왔다며 놀랐지만 영의는 마침 아는 주소였다고 둘러대며 빠져나왔었다.

그리고 지금 영의는 바이크를 자동 주행 모드로 바꿔 두고 협회로 날아가는 중이었는데,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헬멧을 쓰고 내부 디스플레이를 보며 조작한 영의는 충격을 받았다.

[최근 주문 : 안동 명가 찜닭]

이것이 휴대폰과 헬멧에 표기된 주문 목록표에서의 최근 항목이었고, 헬멧을 벗자 하나가 추가되어 보였다.

[최근 주문 : 안동 명가 찜닭]

[최근 주문 : 짜장 1, 탕수육 (소)]

정확히 같진 않아도 대체로 비슷한 인터페이스였으나 항목이 추가되어 있는 상황.

영의는 다른 부분도 확인해 봤으나 최근 배달지도 헬멧을 썼을 때와 휴대폰엔 안 보였지만 벗었을 때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디스플레이에서는 '???'라고 표기된 배달지가 추가되어 있었다.

"뭐야... 대체.... 새로운 능력이라도 각성한 거라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자동 운행을 종료합니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던 영의. 그때 헬멧과 자신의 머릿속에서 음성이 동시에 들렸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서 들을 법한 건조한 기계음.

영의는 어서 한시라도 빨리 검사를 받아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바이크를 주차해 둔 뒤 협회 건물로 들어갔다.

전국 각지의 각성자가 찾아오기 쉽도록 한국의 중앙에 설치하려 했지만, 높으신 분들의 압박인지, 아니면 땅값을 걱정한 누군가들의 손길이 닿은 건지 몰라도 서울에 설치된 각성자 협회 건물.

대신 각 지방마다 지부를 하나씩 설치해 불만을 잠재웠다.

협회 건물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물론 고층으로 올라가려면 별도의 승강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그래서인지 각성에 꿈을 가진 어린이들이나 각성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청년들(중년들도 가끔 오지만 보통은 현실을 직시한다)이 자주 찾아오기에 민간 인전용 창구가 있었다.

그러나 영의는 두 개의 창구 중 사람이 별로 없는 각성자용 창구로 다가가 직원에게 다급히 말을 꺼냈다.

"네, 어서 오세요. 각성자 협회입니...."

"급한데요, 혹시 재검사나 능력 판별 좀 받을 수 있나요?"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병원에서 떼 온 진단서와 신분증을 내밀었다.

의사 소견란에 협회에서 재검 바람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네?"

느닷없이 쳐들어와서 재검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많다.

자신의 각성 능력이 마음에 안 들거나, 운 좋게 각성 능력을 크게 터트려서 자신의 등급이 오른 줄 아는 이들.

그러나 눈앞의 청년은 뭔가 좀 달라 보였다.

"아, 설명해야 하나? 그게, 얼마 전에 사고를 당했는데 그다음에 능력 사용이 이상한 것 같고 그래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니까 협회에서 재검사를 받아 보래서 온 거거든요. 병원은 못 찾는 것 같다고."

영의가 다급히 설명하기 시작하자 직원은 일단 당황하면서도 신분증을 입력하고 검사 일정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 지금 올라가시면 하실 수 있어요, 3층에 재검실이 있거든요. 가서 한번 보시면...."

"아니, 재검 말고요. 상세 검사가 필요해요."

"네? 하지만 보조 계열이신데.... 어, 어쩌지...."

의사와는 달리 전문적 지식이 없거나 그냥 행정 업무만 하는 직원인 듯, 직원은 당황해서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신입이라 잘 모르는 것일지도.

"뭐야, 뭔데? 무슨 일이시죠?"

그때 당황한 직원의 뒤로 다른 직원이 나타났고, 제법 연차가 있는지 여유가 묻어났다.

"선배님... 이거요."

직원은 영의의 진단서와 신분증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영의를 살펴보았다.

"음... 가끔 있긴 했지, 병원에서 재검 보내는 거. 3층 검사실로 보내 드려. 마침 오늘 정기 검사 날이야."

"네, 네! 저... 3층 검사실로 가시면 돼요. 그, 검사지는 올라가서 달라고 하면 줄 거예요."

"...네, 고맙습니다."

영의는 자신의 진단서와 신분증을 받아 들고 곧장 3층으로 향했고, 데스크에 남은 두 직원 중 후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에요. 선배님이 와서...."

"뭐... 나중에 진상 상대해야 할 수도 있어."

안도하는 후배와 달리 선배 직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네?"

"재검받았는데도 변하는 게 없어서 진상 부리는 인간들이 있거든. 뭐... 이번엔 아니길 기도해야지. 그리고, 저 정도로 잘생겼으면 진상 부려도 좀 봐줄 만하지 않아?"

"잘생겼어도 진상은 좀...."

"...아님 말고."

그렇게 두 직원은 업무로 돌아갔다.

한편, 3층으로 올라온 영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복도가 양옆으로 나뉘었다.

오른쪽은 보조 계열들이 측정하는 수많은 종류의 검사들이 존재하는 곳. 그리고 왼쪽은 정기 검사를 하는... 쉽게 말해 강화 계열이나 속성 계열 검사를 하는 공간이다.

그런 왼쪽 복도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었다.

곳곳에서 직원들이 소리 높여 통제를 하고 있었지만, 한마디씩 꺼내는 잡담이 200명이 모이면 거대한 웅성임이 되듯, 직원의 목소리도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개판이네. 나중에 올 걸 그랬나?"

분명 자신의 목적지는 왼쪽이지만 그냥 오른쪽으로 타협을 볼까 생각한 영의.

그러나 그는 현재 자신에게 닥친 의문의 배달 헬멧 인터페이스와 아직도 몸 안에서 느껴지는 힘에 대한 비밀을 풀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검사실의 줄로 향했다.

입대 전 신체검사장처럼 긴 줄이 이어져 있었지만, 신체검사장과는 다르게 남녀가 섞여 있고, 대부분이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직원들도 함부로 통제하기 어려워하고 복도가 소란스러웠던 것.

영의는 그렇게 뒤에서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줄이었다고!"

"개소리하네, 내 줄이야!"

그러나 애들 모인 곳에서 사고가 안 터지면 그게 정상일까, 앞에서 문제가 터진 것 같았다.

"이, 씨!"

화를 내며 주먹을 날리는 한 남자아이와 그걸 피하며 툭툭 치는 여자아이.

남자아이는 강화 계열을 각성한 듯 엄청난 힘이 담긴 주먹을 휘둘러 대고 있었으나 여자아이는 그것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남자아이를 놀리듯 계속 툭 치고 회피하기를 반복했다.

"으아아아아!!"

통제를 위해 직원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남자아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듯, 그대로 몸을 날려 여자아이를 들이받으려 했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이번엔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서서 남자아이의 머리에 손가락을 튕겼다.

"끄아아! 윽! 브븍! 어억!"

별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꿈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져 버둥대는 남자아이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줄을 서는 여자아이.

주변의 아이들은 피해 있는다고 다 멀찍이 떨어져 있느라 줄이 없어졌지만 여자아이는 방금 전 위치를 기억하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돌아갔다.

"뭐야, 무슨 일이니!"

직원들이 달려와 주변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동시에 쓰러진 남자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멀쩡합니다. 강화 계열이기도 하고, 그냥 전기 충격을 받아서 움직임이 마비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큰 문제는 안 생겨서 다행이라고 판단한 직원은 주변 아이들에게 설명을 들으려 했으나 어느새 남자아이 쪽 편과 여자아이 쪽 편이 갈려서 싸우고 있었다.

남자애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여자아이 쪽이 그 자리를 차지한 거다라는 남자애들 쪽 주장과 화장실 갈 거면 말을 미리 하고 가든가, 말없이 자리 비우고 나중에 돌아와서 새치기라고 난리 치는 게 무슨 경우냐라고 하는 여자아이 쪽.

객관적으로 보면 남자애의 잘못이지만 피 끓는 청춘이 무슨 이성적 사고가 중요하겠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려던 찰나, 직원들은 영의를 바라보며 필사적인 눈빛을 보냈다.

-뭔가 좀 도와주세요!

-애들 말리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말이라도!

-아... 너무 멋지다....

중간에 이상한 게 하나 섞인 것 같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상태.

영의는 어쩔 수 없이 나가서 애들을 말리기 시작했고, 얼굴 덕분에 여자애들 쪽은 금방 진정이 됐다.

"자, 얘들아 진정 좀 하고...."

영의의 말에 금방 조용해지는 여자애들.

"네, 오빠...."

"몇 번이든 진정할게요...."

그렇게 절반의 진정이 완료되자 나머지는 상당히 쉬웠다.

대립이 없으면 문제가 사라지지 않겠는가. 영의는 남자애들도 설득하기 위해 이미 남자애들을 통제하려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도와 드려요?"

"아, 감사합니다. 자, 학생들! 일단...."

"직원 아저씨, 조용하세요!"

"맞아, 오빠 말 안 들려요!"

어째서인지 직원의 말도 가로막는 여자아이들. 방금 전 대립할 때의 기세보다 무서웠다.

"...미안하다."

아무튼 그렇게 직원들이 고민해서 남자애들을 먼저 검사 시행 후 돌려보내기로 결정하고, 남자애들을 다 처리하는 동안 영의가 여자애들을 어떻게든 통제해 냈다.

"오빠 몇 살이에요?"

"화장품 뭐 써요?"

"혹시 연하 좋아해요?"

물론 얌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까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렇게 있는 동안 영의는 아까 봤던 여자애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뭐든 물어보세요!"

"제 폰 번호? 집 비밀번호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영의는 애들이 자신을 좋아해 줘서 싫진 않았지만 대체 왜 이러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원래도 상당히 준수한 얼굴이었지만 독고휘에게서 뇌전지체로 개조를 받은 뒤 온몸의 골격이 약간씩 달라지며 부차적으로 잘생겨진 것.

물론 영의는 거울을 못 봤으니 자신의 변화를 몰랐다.

호찬은 알지도 모르지만 눈앞에서 상대방이 하루도 안 돼서 성형을 해 왔을 리 없으니 그냥 오늘따라 잘생겼다 생각하고 넘겼으리라.

"아니, 아까 그 남자애 쓰러트린 애 어디 있니?"

"지연이요? 없는데?"

"네, 사고 쳤다고 아까 갔어요."

"흐음... 그렇구나."

생각 외로 몸놀림이 쓸 만해서 나름 눈여겨보았는데, 없다니 약간 아쉬운 영의였다.

그리고 그때 검사실 안쪽에서 직원이 나와 영의에게 다가왔다.

"아, 이제 여자애들 다 들여보내시면 돼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얘들아. 검사받으러 가야지?"

영의의 말에 여자애들은 티 나게 아쉬워했다.

"아-아... 오빠도 같이 검사받으면 안 돼요?"

"안 돼. 오빠는 재검사하러 온 거거든."

"어! 그럼 오빠도 막 각성자 활동 하는 거예요? 하면 바로 팬 할게요!"

"하하, 그럼 고맙겠지만, 딱히 생각은 없네."

몇몇 각성자들은 초인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영의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각이 현재 없으므로 웃어넘겼다.

그렇게 여학생들을 다 보내고 혼자 복도에 남은 영의. 30분 정도 됐을까, 검사실에서 다시 직원이 나와 영의를 불렀다.

"네, 이제 다 끝났어요. 무슨 용무로 오셨죠?"

참고로 영의는 여기 와서 직원에게 자기 용건을 하나도 말하지 않았었다.

제7화

(7)

한 남자가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흥미롭네요. 참 흥미로워...."

남자가 보는 모니터에서는 여러 가지 수치와 그래프가 표시되어 있었고, 그 모든 것은 눈앞의 청년에게서 나온 데이터였다.

"분명 분류는 보조 계열이고, 반응도 그쪽으로 나오는데 수치가 참... 흥미롭네요. 팔방미인이란 게 있으면 이런 느낌이려나?"

사람 정신 빠지고 피곤하게 하는 학생들의 검사가 끝나고, 혼자 찾아온 최영의란 청년은 나름 흥미로웠다.

검사를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만들었더니 몸이 강화 계열처럼 탄탄했는데, 스캐너로 스캔해 보자 정작 강화 계열은 아니었다.

그리고 속성 계열에서는 뇌격계에 반응이 오는데 검사 결과는 속성 계열이 아니라 했고, 보조 계열 부분이란 결과가 청년의 과거 데이터와 일치했다.

"흐음... 참 재미있는 결과인데.... 인챈터라기엔 또 아닌데...."

직원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영의를 보조 계열들이 검사하는 방으로 안내했고, 본래는 대기 시간을 거쳐야 했지만 직원의 권한으로 곧바로 검사를 시행했다.

"자, 일단 왼쪽부터 쭉 하나씩 해 보세요. 뭔지 모르겠으면 밑에 있는 설명을 보고 따라 하시면 됩니다."

영의가 도착한 방은 예전에도 한번 와 본 적 있는 방.

수많은 도구와 장비들이 존재했고, 그 아래에는 그와 관련된 행위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자, 측정... 시작합니다."

방 안의 측정기를 켜고는 대기하는 직원.

어떤 것이든 시행해서 마력 반응이 일어날 경우 알림이 울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영의는 망치부터 시작해서 공, 펜도 집거나 사용했고, 그 어떤 것에서도 알림은 울리지 않았다.

"음... 행동 계열은 없고, 이동 계열로."

그다음은 각종 탈것이 있는 방이었다. 자전거부터 시작해서 바이크, 차량, 심지어 산업용 중장비까지. 각종 사례에 따라 추가된 물품들이었다.

그렇게 영의는 자전거에 올라탔고, 올라타자마자 알림이 울렸다.

"자전거... 확인."

그런 다음 바이크.

"바이크... 확인."

차, 트럭, 심지어 포클레인까지. 모든 것에서 알림이 울렸다.

"...전 기종, 확인...?"

그런 다음 몇몇 영상을 응시하거나, 재료를 집어 들고 변화를 주게 하는 다른 측정도 했지만 알림은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방에 준비된 모든 측정을 완료한 영의. 직원은 그에게 다가와 결과를 통보했다.

"음... 출력, 2640... 마력은 B급으로 올라가셨는데 전격계 친화성이 높고, 육체도 상당하신데... 그쪽으로의 능력이 발현이 안 됐네요. 보조 계열은 만물 도약 판정입니다."

출력만큼은 상세한 수치로 알아냈지만 다른 내용은 병원에서 들었던 내용과 같다. 그리고 자신의 시야 구석에 보이는 저 인터페이스는... 밝혀진 바가 없다.

영의는 그렇게 힘없이 종이를 받아 들었고, 그것을 초인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낙담한 것으로 받아들인 직원은 영의를 위로했다.

"그, 그래도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도약 능력자들은 배달이나 배송업으로 전망이 밝으니까...."

"아, 괜찮아요. 이미 그쪽 업무를 하고 있어서."

"그러시구나...."

그렇게 영의는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은 뒤 협회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어 살펴보았는데,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화연 - 선배, 선배 마음은 알겠는데 진짜 마지막으로....]

[집안의 희망 - 오빠, 번개 맞았다고 들었는데 살아는....]

[호찬 버거 사장님 - 내가 잘못 본 것 같기는 한데, 너 얼굴....]

[거지 같은 상사 놈 - 이쯤 되면 회복됐을 텐데, 슬슬 업무 복....]

영의는 그렇게 도착했던 메시지를 보며 바이크에 올라타 헬멧을 썼다.

그리고 그때 눈치챈 사실. 자신의 시야에 있는 인터페이스에는 알림 창만 떴지, 휴대폰과 연동된 문자 기능은 뜨지 않았다.

"...뭐야, 문자는 안 되는 건가? 폰 자체랑은 연동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었다는 듯, 갑자기 시야의 한구석에서 빛을 내던 알림 창이 사라지고, 그 아래 작은 문구가 표시되었다.

[업데이트를 실시합니다. 0%]

"...바로 반영한 거야, 아니면 타이밍이 이상했던 거야...?"

영의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정체불명의 능력에 의심을 품으며 집을 향해 비행했다.

방금 전 왔던 메시지의 내용을 대충 보자면 내일쯤에는 출근해서 정상적으로 근무하라는 상사의 지시.

영의는 좀 더 쉬며 자신에게 생긴 일에 대해 탐구해 보고 싶었지만 얼마 전에 통장의 잔고가 한 번에 불타 버렸으므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서울을 벗어나 고양시쯤에 접어든 영의의 바이크.

고도를 낮춰 일반 도로에 끼어들고 나서 그는 눈에 친숙한 집 주변의 거리를 천천히 달렸다.

"...부모님한텐, 뭐라고 하지...."

반쯤 독립해서 살고 있었기에 집에는 자주 안 왔던 영의.

그는 얼마 전 번개를 맞은 사고도 보호자를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고 호찬에게 부탁했다.

부모님께 걱정을 안겨 드리기 싫었기 때문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동생이 그 사실을 알아냈던 것.

그래서 지금 영의는 숨기느니 차라리 밝히자는 마음으로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전하네, 여기도."

영의가 도착한 곳은 한 체육관 앞. 말이 체육관이지 그냥 동네 헬스장 정도의 크기였지만 여기도 옛날엔 상당히 성황이었다.

낡은 문을 열자 방울 소리보다 더 큰 문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한 번에 받았다.

"...어, 다녀왔습니다?"

"아이구, 우리 영의 왔네! 밥은 먹고 다니지?"

"...갑자기 무슨 일이냐? 체육관은 안 물려받는다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영의의 부모님.

집안 대대로 무술인이었다는 그들의 가계는 이상하게 체육인들만 집안에 모아 놨고, 그래서 다른 것에는 영 소질이 없어 아직도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냥요. 요즘은 좀 괜찮나요?"

"뭐, 평소랑 똑같지. 다이어트하려고 끊었다가 3일 만에 안 나오고, 나중에 환불해 달라 하고.... 간간이 운동해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10대들이랑 어린애들 태권도 가르치면서 먹고살고 있다."

그때 영의의 어머니가 영의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이구... 요즘 힘들진 않지? 사고는 안 났고?"

분위기로 봐서 동생이 부모님께 말씀드리진 않은 모양. 잘만 타협해 보면 부모님은 아예 모른 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영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는 뭐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

"뭐... 그래 보이는구나. 얼굴이 아주 멀끔한 걸 보니."

"그래, 영의야. 간만에 봐서 그런가? 우리 아들 참 잘생겨졌네! 거울은 보고 다니지?"

"하하, 뭘요...."

영의는 그제야 체육관 벽면에 붙은 거울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응?"

분명 눈과 코, 입은 평소에 달고 다니던 자신의 것이 맞는데... 묘하게 배치가 다르다?

사람은 이목구비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배치도 인상이나 외모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

눈이 아무리 예뻐도 눈 사이 간격이 엄청 멀다고 생각해 보라. 이상하지 않을까?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외모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게임에서 미인 미남으로 만들어 놔도, 나중에 눈이나 코, 입 위치를 막 건드려 버리면 바로 고인물 커스터마이징으로 변모해 버리듯 형태 못지않게 조화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이목구비의 조화가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진 영의.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감탄했다.

'영감님... 미친 영감인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뇌전지체고 뭐시기고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전 만족합니다.'

그렇게 영의는 자신의 얼굴을 감상하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끌려갔다. 체육관 영업은 오늘 하루 쉬면 된다면서....

"자, 쉬고 있어. 오늘은 맛있는 거 해 줄게."

"아뇨, 뭐 그럴 필요 없이 그냥 간단하게 해 먹어도...."

"앉아 있어, 엄마가 해 주고 싶어서 그래."

영의를 앉혀 두고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영의의 엄마. 영의는 자신의 집 안을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회사에 취직해서 독립한 둘째 형의 방은 창고로 쓰이고 있었고, 옛날에 상도 많이 타고 올림픽까지 나갔다 온 큰형의 방은 먼지가 좀 쌓여 있었다.

영의의 큰형은 운동선수들의 코치도 해 주고, 종종 무술 교관 등으로 초빙도 받을 만큼 커리어가 대단했다.

물론, 현시대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싶지만 각성 못한 사람들의 경기들은 아직 존재했다.

각성자들끼리 싸우면 박진감과 재미는 있겠지만 주변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며 격투 대회나 운동 대회 같은 건 마력 사용에 제한을 두고 하기에 기술이 나름 중요했던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동생의 방에 들어가자 방이 삭막했다. 침대 있고, 책상 있고, 책들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지만 활기가 없는 느낌.

딱 공부하는 기계 같은 목적성의 방 안이었다.

'...얘도 참 힘들게 사네. 장학금 꼭 탈 필요 없다니까....'

각성자 아카데미의 입학은 결정 났지만 초반 장학금은 시험을 통해 지급된다.

그래서인지 입학생들이 입학 전에 엄청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자신의 동생이 그러고 있을 줄은.

"...수연이는 독서실 갔다. 문자 보내 놨으니 저녁쯤엔 올 거야."

"...네."

동생의 방문을 닫고 영의는 거실에서 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둘이 주고받는 말은 없어도, 가만히만 있어도 나름의 의사소통이 되는 게 부자지간 아니겠는가.

그때 영의의 시야 한구석에 새로운 알림 창이 떠올랐다.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ver.1.01]

[변경 사항 : 문자 확인 기능 추가, 조작 및 접근 편의성 추가, 주문 대기 시간 감소(대기 시간 감소는 다음 주문 때부터 적용됩니다.)]

'...뭐가 좀 늘었는데?'

영의는 티 안 나게 손을 움직여 알림 창을 눌러 보려 했지만 차마 안 들키고는 못 할 상황.

'아오, 좀 이거 치우면 안 되나?'

그리고 그때, 영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알림 창이 최소화되었다.

'...조작 및 접근 편의성 추가라더니, 이젠 생각만 해도 나름 조작이 된단 거네?'

그렇게 영의가 TV를 보는 척하며 마음속으로 알림 창을 조작하며 나름 이것저것 알아보려 하고 있을 때, 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가방을 멘 채 들어오며 밝게 소리쳤다.

"다녀왔습니다~ 어, 갈비 냄새다!"

"오, 수연이 왔니."

"수연아, 집에 오빠 왔다?"

오빠가 왔단 소리를 듣자 집에 막 들어온 수연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소파에 앉아 있는 영의를 발견했다.

"오빠! 오랜만!"

"그래, 오랜만."

그렇게 쿨하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는 수연. 그 광경을 보며 영의의 부모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얘는... 오빠가 간만에 집에 왔는데 인사가...."

"에이, 그냥 두세요. 뭐 평생 못 볼 사람 돌아온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잠시 뒤, 갈비가 맛있게 잘 조리되어 식탁 위에 놓였고, 영의의 가족 네 명은 그렇게 탁자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 순간만큼은 영의도 자신에게 새로 생긴 이상한 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 * *

어딘가 깊은 산속, 독고휘의 거처.

"으아아아!! 참을 수가 없구나! 진짜 하산을 해야 하는 것인가?"

독고휘는 이제 벽곡단도 먹기 싫어서 집어 던지고 싶어졌다.

제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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