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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킁킁.

치마를 입은 고릴라가 코로 냄새를 맡으며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쿵.

우적우적.

원숭이들의 음식 앞에 앉아 음식을 마구 먹기 시작했다. 다른 고릴라들은 뒤에 서서 치마 입은 고릴라를 호위했다.

[고릴라 족장의 딸 고리나]

'저거 네임드잖아.'

세준이 치마 입은 고릴라의 머리 위 이름을 발견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보스는 아니고 중간보스 정도. 그래도 상대하기 어렵다는 건 마찬가지.

"테 사장, 어때?"

"뭘 말이냥?"

"쟤랑 싸워서 이길 수 있어?"

"냥?!"

덜덜.

세준의 물음에 테오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미안하다. 괜히 물어봤구나.

"박 회장이 위험하면 내가 나설 것이다냥! 박 회장은 걱정하지 말라냥!"

그래도 큰소리는 친다.

백백!

(저도요! 저도 같이 싸울 거예요!)

테오의 말에 황금박쥐도 세준을 지키겠다며 날개를 최대한 크게 펼치며 외쳤다. 그래봤자 고리나의 손가락보다 한참은 작았지만.

"너희들···"

감동이었다. 세준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테오와 다른 동물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고마워."

"좋은 자세다냥! 앞으로도 나한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냥!"

(뱃뱃. 저도 고마워요!)

세준이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테오와 황금박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먹구름 만들기."

고릴라들과 싸울 준비를 했다. 그냥 음식만 먹고 가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싸워야 했다. 그래도 옆에 있어주는 테오와 황금박쥐 덕에 긴장이 풀어졌다.

그렇게 세준이 숨을 죽이고 싸움을 준비할 때

구모.

어느 저도 배를 채운 고리나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구모?!

눈이 커지는 고리나.

구모!모!

고리나가 세준의 얼굴을 보고 흥분했다. 고리나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구모!

고리나가 세준을 가리키며 고릴라들에게 명령했다. 잡아 와!

이상하게 몬스터들에게 인기가 많은 세준이었다.

"얘들아 준비해! 천둥 던지기!"

세준의 외침에 하늘에 떠 있던 먹구름에서 푸른 벼락 줄기들이 고릴라들을 향해 떨어졌다.

콰과광!

파지지직.

벼락에 고릴라들 중 10마리는 기절하고 나머지는 감전됐는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다행히 뭉쳐 있었기에 공격하기 편했다.

'천둥 던지기."

세준이 한 번 더 천둥 던지기를 사용해 나머지 감전돼 움직이지 못하는 고릴라들도 기절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고리나. 고리나는 혼자 남았지만,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구모!!!

오히려 세준이 싸우는 것을 보며 더 흥분했다.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는데 강한 수컷이었다.

구모모!

고리나가 침까지 흘리며 직접 세준을 향해 달려갔다.

"천둥 던지기!"

마지막 적이기에 세준은 모든 마력을 담아 천둥 던지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구모오!!!

쾅!

고리나가 땅을 강하게 치자 주변 땅이 솟아나며 고리나를 감쌌다. 땅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고리나였다.

콰광!

덕분에 세준의 천둥은 고리나가 만든 흙벽을 때리고 허무하게 사라졌다.

'망했다!'

휘청.

다리에 힘이 풀리며 세준의 몸이 흔들렸다. 마력 고갈이었다.

콰직.

고리나가 천둥을 맞고 녹았다 굳은 흙벽을 부수며 나왔다.

그리고

쿵.쿵.

구모모.

고리나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세준을 향해 다가왔다.

***

"크힝...어떡해?!"

카이저가 세준이 있는 곳을 향해 블랙 미노타우루스 500마리를 보냈지만, 에일린은 불안했다.

"세준이는 너무 약하잖아..."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찾기 전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세준에게 줄 새로운 권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새로운 권능을 받을 정도의 공헌도는 쌓지 못했지만, 다행히 세준에게는 많은 탑코인이 있었다.

"뭐...효율은 나쁘지만, 세준이가 안전할 수만 있다면..."

1만 탑코인으로 공헌도 1로 변환할 수 있다. 그리고 권능을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공헌도는 1만. 즉, 권능을 돈으로 사려면 최소 1억 탑코인 정도가 필요하다.

다행히 세준에게는 켈리온에게 받은 1억 탑코인이 있었다.

"어디 보자. 어떤 권능이 있어야 우리 세준이가 안 죽을까..."

에일린이 위에서 부터 권능 리스트를 빠르게 내렸다. 에일린이 사려는 권능은 공헌도 1만 짜리. 가장 아래에 있었다.

...

..

.

그리고 가장 밑에 보이는 권능들.

"세준이는 이미 부서지지 않는 육체가 있으니까 그걸 보강해줄 마력이 필요하지. 좋아! 이거다!"

에일린이 세준에게 줄 새로운 권능을 골랐다.

***

"박 회장은 내가 지킨다냥! 박 회장 즐거웠다냥!"

(세준 님, 저도 즐거웠어요.)

세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테오와 황금박쥐.

"얘들아···윽!"

이건 아니었다.

'이렇게 애들한테 보호만 받을 수는 없어!'

세준이 함께 싸우기 위해 이를 악물며 몸을 움직일 때

[씨앗 은행에 예치돼 있던 1억 탑코인이 결제됩니다.]

[탑의 관리자가 탑의 중간관리자 징표에 을 부여합니다.]

[나중에 공헌도나 탑코인을 사용해 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어?! 권능?!"

[의 효과로 마력이 50 상승합니다.]

[마력 스탯이 100을 넘었습니다.]

[재능 : 마력 회로가 강화된 마력 회로로 진화합니다.]

"오! 얘들아 뒤로 빠져! 천둥 던지기!"

갑자기 몸에서 넘쳐나는 마력에 세준이 테오와 황금박쥐에게 소리치며 스킬을 사용했다. 권능과 재능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기에 그냥 감을 믿었다.

콰광!

천둥이 떨어지자

구모오!

쾅!

다시 흙병을 만들어 천둥을 막는 고리나.

"비 내리기!"

세준이 서둘러 비를 내려 땅을 적셨다. 땅을 젖게 만들어 전기가 통하게 할 생각이었다.

쏴아아!

고리나가 있는 주변으로만 폭우가 쏟아지며 땅을 흠뻑 적셨다.

'이제 끝이다!'

세준이 마지막 공격을 준비할 때

"어?! 꾸엥이?!"

세준의 눈에 멀리서 달려오는 꾸엥이가 보였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꾸엥이.

꾸엥!

[아빠 찾았다요!]

고리나의 발 밑에서 순식간에 거대화한 꾸엥이가 오른쪽 앞발을 위로 뻗으며 고리나에게 어퍼컷을 날렸다.

콰앙!

구모모!

꾸엥이의 전력을 다한 펀치에 고리나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휴우."

세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었다. 만약 천둥으로도 처치하지 못했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꿰에엥!꿰엥?

[아빠 보고싶었다요! 어디 다친 데는 없다요?]

방금까지 고리나를 날려버리며 보이던 위풍당당한 태도는 어디가고 다시 작아진 꾸엥이가 세준을 안으며 울었다.

꿰엥!

[아빠 잡아먹히는 줄 알았다요!]

세준의 요리 냄새를 따라 달려오다 고리나가 세준을 보며 침을 흘리는 것을 보고 전속력으로 달려온 꾸엥이였다.

"괜찮아. 근데 여기까지 혼자 왔어?"

꾸엥!

[미노 아저씩들이랑 같이 왔는데 오다가 잃어버렸다요!]

그러면서 꾸엥이가 자신의 모험담을 말하기 시작했다.

쩝쩝.

세준이 만든 요리를 만들어면서.

꾸엥!

[그래서 내가 때려줬다요!]

다 패고 다닌 얘기였지만, 분위기는 너무도 평화로웠다. 그렇게 꾸엥이의 모험담을 들으면서 세준의 조난 284일 차 밤이 저물어갔다.

129화. 인싸였군.

129화. 인싸였군.

가겔이 개발한 살충제 효과는 뛰어났다. 드론으로 살충제를 대규모로 살포한 지 단 이틀 만에 메뚜기가 거의 박멸됐다는 보고가 아프리카 전역에서 들어왔다.

대성공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성과. 메뚜기들이 빠르게 박멸되자 각국의 수장들이 가겔의 아프리카 사업부 이사인 왓슨에게 직접 감사 전화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살충제를 뿌리고 5일이 지나자 다른 보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메뚜기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

왓슨은 살포한 살충제의 양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보고가 들어온 지역에 처음 뿌렸을 때만큼의 살충제를 다시 뿌렸지만,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처럼 메뚜기의 수가 더 늘어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메뚜기가 사람과 동물까지 보이는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먹어 치운다는 보고와 함께.

덕분에 왓슨은 살충제가 새로운 돌연변이를 만든 게 아니냐며 아프리카 정부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고 있었다.

"어떻게 처리하지?"

믿을 수 없지만, 그 짧은 시간에 메뚜기들이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게 분명했다.

골치 아픈 문제에 왓슨이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쿵.

사무실의 창문에서 소리가 났다.

"새가 부딪혔나?"

왓슨이 있는 곳은 높이 50m 건물의 최상층. 사무실의 3면이 통창으로 돼 있기에 가끔 지나가는 새가 창문을 보지 못하고 부딪힐 때가 있었다.

그렇게 왓슨이 다시 일에 집중하려 할 때

쿵.쿵.

쿵.쿵.

창문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뭐야?!"

점점 더 시끄러워지는 소리에 왓슨이 이상함을 느끼며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

왓슨의 눈에 하늘을 가득 매운 새들이 보였다. 그리고 새들의 뒤를 쫓고 있는 메뚜기 떼들도.

"어?...저게 다 뭐야?!"

왓슨이 놀라 당황한 사이.

쿵.쿵.쿵.

자신의 머리가 깨지든 말든 창문으로 돌진하는 새들.

'설마?!'

왓슨은 메뚜기들이 사람과 동물까지 먹어 치운다는 보고가 떠올랐다.

그사이

쩌저적.

새들의 돌진에 버티지 못하고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해!'

왓슨이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달려갈 때

챙그랑.

푸드득.푸드득.

새들의 돌진을 버티지 못한 유리가 깨지며 새들과 메뚜기들이 창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왓슨을 덮쳤다.

"으악! 살려줘!"

나이지리아의 라고스가 메뚜기들의 침공에 큰 피해를 입었다.

***

"읏차."

눈을 뜬 세준이 힘찬 아침을 시작하려 할 때

척.

"윽!"

꾸엥이가 앞발로 세준이 일어나지 못하게 가슴을 눌렀다.

꾸엥...

[아빠 어디 가지말라요...]

아빠랑 더 자고 싶은 꾸엥이가 잠꼬대를 하면서 세준의 가슴을 누른 것이다.

"음...좀 더 누워있을까?"

꾸엥이가 같이 누워있고 싶어하기에 세준은 좀 더 누워있기로 했다. 절대 꾸엥이의 앞발을 들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기에 세준은 어제 얻은 권능과 진화한 재능을 살펴봤다.

육체의 잠재력과 상관없이 마력을 50 상승시킵니다.

그냥 마력 50을 올려주는 권능. 별거 없었다.

"이런 거에 1억 탑코인을 쓴 거야?"

어차피 쓸 데가 없는 돈이었지만, 세준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준이 잠재력에 대해 알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잠재력의 최고치까자 성장한 헌터가 적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인마다 올리고 싶어도 올리지 못하는 스탯의 한계치라는 게 있었다. 아마 다른 존재들이 알았다면 엄청나게 부러워할 권능이었다.

하지만 아직 세준으로서는 알 수 없는 수준. 권능을 확인한 세준은 이어서 진화한 재능을 확인했다.

[재능 : 강화된 마력 회로]

-전신에 마력이 순환할 수 있는 강력한 회로를 구축해 마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능입니다.

-보유 마력 스탯 +6%

-마력 회복 속도 +150%

-마력 증가 아이템 섭취 시 효과 +55%

특별하게 옵션이 더 붙은 건 없었고 숫자만 조금씩 증가했다.

'1%, 50%, 5% 늘어났네.'

세준이 늘어난 숫자를 계산하고 있을 때

꾸엥!

[배고프다요!]

허기를 느낀 꾸엥이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배고픔을 알렸다.

"우리 꾸엥이 배고파?"

세준이 꾸엥이의 겨드랑이와 배를 간질이며 묻자

꾸헤헤헤.

자지러지게 웃는 꾸엥이. 역시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재밌다요!

세준과 꾸엥이가 노는 사이

우끼!

원숭이들이 아침을 내왔다.

'뭐지?'

세준이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을 극진히 모시던 원숭이들.

하지만

꾸엥!

[이거 더 먹고 싶다요!]

우끼!

오늘은 원숭이들 대부분이 꾸엥이에게 붙어 있었다.

'역시 힘이 곧 권력인가?'

세준이 찬밥 취급이 된 것에 섭섭해할 때

"너무 실망하지 말라냥! 박 화장에게는 충묘인 이 몸이 있지 않느냥!"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누워 자신이 있음을 어필했다.

"그래."

세준이 자신을 위로하는 테오의 배를 쓰다듬었다.

"박 회장, 나 배고프다냥!"

"그래."

세준이 츄르를 까서 테오에게 줬다.

촵촵촵.

'근데 이게 맞나?'

자신의 무릎에 누워 츄르를 받으먹는 테오를 보며 세준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는 깨닫지 못했다. 이미 테오를 무릎에 올리는 게 너무 익숙해진 세준이었다.

***

탑 99층의 동굴

[주인님...]

세준이 실종됐지만, 자신에게는 세준을 구할 방법이 없자 불꽃이는 슬펐다. 동시에 무력감도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불꽃이가 이파리를 불끈 쥐며 외쳤다. 자신이 이렇게 슬퍼한다고 세준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할 거예요!]

나무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건 뿌리를 내리는 것.

우지끈.

불꽃이가 영양분이 더 많은 차원의 바다로 뿌리를 내려 본격적으로 성장을 가속화했다.

***

아침을 먹은 세준은 동물들을 데리고 바나나 나무들을 치유하러 이동했다.

바나나 농장으로 가는 길.

꾸엥!꾸엥!

[꿀이다요! 신난다요!]

간식 주머니에 다시 꿀까지 든든하게 채운 꾸엥이는 세준과 함께 있자 신이 났다.

"이제 시작해볼까."

그렇게 신나하는 꾸엥이와 바나나 농장에 도착한 세준이 바나나 나무에 손을 올리자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3이 발동합니다.]

[손길이 닿는 동안 바나나 나무의 병이 조금씩 치유됩니다.]

바나나 나무의 병이 치유되기 시작했고 1분 정도가 지나자

[바나나 나무의 병이 치유됐습니다.]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3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손길이 닿는 동안 바나나 나무가 조금 성장합니다.]

병이 치유되며 스킬 숙련도가 상승하고 바나나 나무가 성장을 할 수 있게 됐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 번에 두 그루 나무에 손을 하나씩 대봤지만, 그때는 먼저 닿은 나무에만 스킬이 발동했다.

"한 번에 두 그루씩 치유하면 빠를 텐데..."

세준이 아쉬워하며 바나나 나무를 치유하는 동안

뱃뱃.

황금박쥐는 노래를 부르며 세준이 아직 치유하지 못한 바나나 나무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할 게 없는 테오와 꾸엥이.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바빴다.

세준이 바나나 나무를 치유하고 다른 나무로 이동하자

"이동한다냥!"

세준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테오가 외쳤다.

그러자

꾸엥!

세준의 뒤를 졸졸 따라 이동하는 꾸엥이.

세준이 멈추고 다시 바나나 나무 치유를 시작하자

척.

꾸엥이가 세준의 발에 자신의 궁둥이를 찰싹 붙이고 앉았다.

그렇게 오전에 200그루의 바나나 나무를 치유한 세준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열량을 소모한 동물들과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세준 님!"

뺙!

실버 울프족과 흑토끼가 세준을 찾아왔다. 꾸엥이가 길을 깔끔(?)하게 뚫어놨기에 거의 여행하듯이 편하게 도착했다.

"뭐 하러 너희들까지 왔어?"

괜히 왔다는 듯이 말했지만, 세준의 속마음은 반대로 정말 기뻤다. 자기 하나 사라졌다고 이렇게 많은 존재들이 움직이다니. 지구에서도 이런 인맥은 만들지 못했었다.

'흐흐흐. 내가 검은 탑의 인싸였군.'

세준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올라갔다.

"블랙 울프족들도 왔습니다."

"블랙 울프족도?"

"네! 아마 지금쯤 블랙 미노타우루스들과 합류했을 겁니다."

"일단 다른 애들도 이쪽으로 데려와."

세준은 며칠간 바나나 나무의 치유를 위해 이곳에 머무르지만, 곧 탑 99층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생각대로라면 탑 77층 웨이포인트를 등록하고 바로 탑 99층 웨이포인트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으니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을 돌려보내도 된다.

하지만 중간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랐다. 그래서 만약을 위해 블랙 미노타우루스와 블랙 울프족을 데려오는 것이다. 안전제일이었다.

"네!"

세준의 지시에 늑대 몇 마리가 서둘러 블랙 미노타우루스와 블랙 울프족을 데리러 출발했다.

"이제 오후 작업 시작하자!"

(뱃뱃! 네!)

오후도 오전과 같았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흑토끼가 합류해 세준의 다른 쪽 다리에 매달려 함께 놀기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 오후가 지나 저녁이 가까워졌을 때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3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스킬 레벨이 4로 올랐다.

그리고

-양손으로 각각 다른 나무에 손을 올려도 스킬이 따로 발동합니다.

레벨 4가 되며 새로 생겨난 효과는 세준이 원했던 것이었다.

"좋아!"

덕분에 작업 속도가 훨씬 빨라져 저녁을 먹으러 원숭이 마을로 돌아가기 전 세준은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300그루의 바나나 나무를 치유할 수 있었다.

"이제 돌아가자."

세준이 동물들과 원숭이 마을로 돌아가려 할 때쯤

음머!

멀리서 미노타우루스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음머!

"세준 님을 뵙습니다."

블랙 미노타우루스들과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어깨에 메여 함께 온 블랙 울프족들이 보였다. 체력이 약한 늑대들을 블랙 미노타우루스가 메고 전력으로 달려온 것 같았다.

"음...오늘은 여기서 야영하자."

생각해 보니 블랙 미노타우루스 500마리, 블랙 울프족 300마리, 실버 울프족 300마리까지 데려가기에는 원숭이들의 마을이 너무 작았다.

"테오랑 흑토끼, 꾸엥이는 미노들이 먹을 풀을 꺼내줘."

철컹.

세준이 아공간 창고를 열며 말하자

"알겠다냥!"

뺙!

꾸엥!

테오와 흑토끼, 꾸엥이가 창고로 들어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먹을 풀을 꺼냈다.

그리고

"황금박쥐는 원숭이들한테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해."

황금박쥐에게는 원숭이들을 불러오게 했다.

(네!)

파닥.파닥.

황금박쥐가 대답을 하고는 빠르게 원숭이 마을로 날아갔다.

"일단 불을 붙이고."

딱.

화르르륵.

동물들에게 지시를 끝낸 세준이 손가락을 튕겨 장작에 불을 붙이며 요리 준비를 했다. 일단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수프부터 만들었다.

한가할 때 수프 재료를 손질해 냉동 보관하고 있었기에 그냥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수프를 불에 올리고 세준이 군고구마와 감자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요리가 완성될 때쯤

우끼!

원숭이들이 도착했다. 고맙게도 원숭이들은 망고와 수박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먹자."

세준의 말에 열심히 저녁을 먹는 동물들.

그때

우웅.

땅이 흔들리며 가벼운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음머?!

"냥?!"

뺙?!

꾸엥?!

우끼?!

엄청난 마력 파동을 느끼며 모두의 시선이 진동의 근원을 향했다. 세준은 마력 파동은 못 느끼고 동물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게 뭐지?"

동물들의 이목이 집중된 방향. 땅에서 솟아오른 푸른 빛이 하늘까지 닿아 있었다.

그 시간.

쿠구궁.

쿠구궁.

마나석 광산의 동쪽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30화. 성석을 얻다.

130화. 성석을 얻다.

마나석 광산이 폭발하기 직전.

'뀨-고노바 감히 나에게 수작을 부리다니요?!'

고노바가 마력 폭탄을 꺼내자 성석의 마력을 탐지하던 이오나는 바로 고노바를 응징하려 했다.

아무리 마력 탐지에 신경을 쓰고 있어도 평소 고노바와 관계가 좋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경계를 하고 있었다.

'뀨-뀨-이렇게 대놓고 함정을 팔 줄은 몰랐지만······.'

이오나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마법을 준비했다.

주변의 불안정한 마나석 때문에 큰 마법은 사용할 수 없지만, 이오나 정도의 대마법사라면 마나석을 자극하지 않고도 고노바를 제거할 정도의 마법은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오나가 고노바에게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

'이건?!'

마력 탐지에 기존의 마나석과는 다른 마력이 느껴졌다. 성석이었다.

고노바는 이오나를 불러내기 위해 성석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실제로 마나석 광산에 성석이 있었다. 고노바가 알았다면 상당히 억울해할 일이었다.

이오나가 성석을 느끼자 성석도 이오나의 마력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성석 아이스 큐브, 너의 육체를 바쳐라!

'뀨?'

이오나의 머릿속으로 들리는 차갑고 기분 나쁜 목소리.

스으으.

동시에 성석의 마력이 이오나를 향했다. 몸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힘. 분명 얼음 속성을 가진 성석의 힘이었지만, 또 달랐다. 좀 더 어두운 느낌의 힘이었다.

'뀨-꺼져요!'

이오나가 마력을 일으켜 성석의 힘을 밀어냈다.

하지만

'놓쳤어!'

성석의 힘을 몰아내는 사이 고노바가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그때

-육체를 내놔!

다시 이오나의 몸에 들러붙으려는 성석의 힘.

"뀨-뀨-뀨-너 때문에 고노바를 놓쳤잖아요! 우리 대화를 좀 나눠야 갰어요! 마력의 힘이여! 나의 명에 따라 모든 걸 차단하라! 디멘션 실드!"

성석이 귀찮게 다시 들러붙자 고노바를 놓치고 제대로 빡친 이오나가 한 번 발동하면 며칠간 주변 차원과 분리돼 완전히 차단되는 초고위 결계 마법을 사용했다.

성석과 단둘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주변의 마나석과 함께 성석까지 파괴해버리면 간단하지만, 그러면 세준에게 성석을 선물로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번거롭지만, 자신과 성석을 함께 결계로 보호했다.

며칠간 결계 안에서 이오나와 성석의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아마 밖이었다면, 마나석 광산이 몇 번은 파괴될 마력이 디멘션 실드 안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챙그랑.

마법이 풀리며 디멘션 실드가 사라지자 이오나가 품에 푸른색 보석 하나를 들고 사방이 막힌 지하 깊은 곳에서 나타났다. 푸른색 보석은 이오나와 대화를 마친 성석이었다.

성석은 이오나와 대화가 잘 된 건지 얌전했다.

"뀨-뀨-뀨-고노바 감히 나를 죽이려 하다니 가만두지 않겠어요!!!"

이오나가 분노하며 마법을 준비했다. 지금 당장 고노바에게 달려가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불과 땅의 힘이여! 나의 명에 따라 화산을 만들어라! 볼케이노!"

이오나가 마법으로 화산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궁.

이오나의 마법에 땅이 흔들리며 지하 밑바닥에서부터 용암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우웅.우웅.

이오나의 마법에 불안정한 마나석들이 다시 반응했다.

"아이스 큐브, 나를 보호하세요."

쩌저적.

이오나의 명령에 성석이 이오나의 마력을 사용해 이오나의 몸을 감싸는, 사방이 막힌 정육면체의 단단한 얼음 보호막을 만들었다.

잠시 후 마나석의 폭발과 함께 용암이 솟구치며 정육면체 얼음에 싸인 이오나가 용암에 휩싸여 지하에서 탈출했다.

콰앙!

그렇게 하늘로 솟구친 이오나.

그때

"뀻?! 이 마력은?"

마력 탐지를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마력이 너무 미약해서 일부러 마킹을 해둔 세준의 마력이었다.

"세준 님이 근처에 있어!"

그리고 그건 테오도 근처에 있다는 의미! 왜 탑 77층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자야겠어요!"

이오나가 서둘러 세준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디멘션 실드에 있는 3일간 세준이 써도 탈이 나지 않도록 성석을 혹독하게 조련하느라 한숨도 못 잔 이오나였다.

***

'세준 님의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늑대 한 마리가 급하게 세준의 소식을 들고 탑 99층에 도착했다.

-세준이가 무사하다니 다행이군. 손녀야 너도 들었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카이저가 에일린을 안심시켰다.

그때

"그리고 세준 님이 돌아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면서 카이저 님께 농장 관리를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뭐?! 감히 나한테 농장 관리를 시키겠다는 것이냐?!

카이저가 화를 냈다. 감히 용을 부려먹겠다니!

"아! 이걸 먼저 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실수했습니다. 세준 님이 이걸 카이저 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늑대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원숭이들이 만든 과실주를 꺼냈다.

-뭐?! 우리 세준이가?!

카이저의 말투가 바뀌며 냉큼 술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쏴아아아.

뚜껑을 열자마자 진한 망고향이 풍겨져 나왔다. 세준이 애주가인 카이저를 위해 특별히 망고주 중 30년 넘게 잘 숙성된 술을 골라 보냈다.

-크흠! 세준이에게 농장은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전하거라! 올 때마다 이 술을 하나씩 가져오면 좋을 것 같구나. 크하하하.

술 한 병에 농장 관리인을 자처하는 카이저.

그리고 늑대가 돌아가려 할 때

-크흠. 나도 농장 관리를 도울 테니 너는 세준이에게 고구마수프도 함께 보내라고 전하거라.

켈리온도 농장 관리인이 되겠다며 나섰다.

***

쿠구궁.

"윽!"

땅이 들썩거릴 정도의 지진이 일어난 후 세준과 동물들이 보던 방향에서 갑자기 땅이 불룩 올라왔다.

그리고

콰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화산폭발이 일어났다. 거대한 화산이 만들어지며 분출된 돌들이 화산 주변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세준의 바나나 농장 주변으로는 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폭.

"어?"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져 세준의 손 위로 떨어졌다. 새하얗고 폭신폭신한 털을 가진 햄스터.

"뀻! 세준 님, 반가워요."

이오나였다.

"이오나?!"

"뀻뀻뀻! 세준 님, 이거 쓰세요. 저는 좀 잘게요."

[대파괴의 마법사 이오나가 성석 아이스 큐브의 사용을 허락했습니다.]

[성석 아이스 큐브의 사용 제한을 충족했습니다.]

[성석 아이스 큐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아이스 큐브? 이게 뭔데?"

세준이 푸른색 보석을 받으면서 나타난 메시지를 읽고 다시 묻는 사이

뀨로롱.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린 이오나. 많이 피곤했나?

"테 사장, 이오나 좀 잘 보살펴줘."

세준이 손에 든 이오나를 조심히 테오에게 건넸다.

"알겠다냥!"

세준의 말에 무릎에 매달려 있던 테오가 자신의 꼬리를 낚시대처럼 이오나에게 가져가자

"뀻!"

덥썩.

미끼를 물듯이 이오나가 앙증맞은 손을 뻗어 테오의 꼬리를 잡았다. 자는 상태에서도 테오의 꼬리에 반응하는 이오나였다.

"뀻뀻뀻."

테오의 꼬리로 돌돌 말며 꿀잠 조건 2가지를 갖춘 이오나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본격적으로 꿀잠을 자기 시작했다.

"성석이 뭐지?"

이오나가 잘 자는 걸 확인한 세준은 이오나가 준 푸른색 보석을 확인했다.

[성석 아이스 큐브]

하늘의 별이 떨어지며 만들어진 돌입니다.

타락한 기운에 잠깐 오염됐지만, 강대한 힘에 의해 타락한 기운이 완전히 소멸하며 순수하게 얼음의 힘만을 가지게 됐습니다.

소유자로 인정받으면 성석에 마력을 공급하고 큐브 모양의 얼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소유자가 위험에 처하면 성석이 자동으로 소유자를 큐브형의 얼음으로 감싸 보호합니다.

소유자 : 탑농부 박세준

등급 : S+

사용 제한 : 마력 100 이상, 이오나의 허락을 받은 자

"큐브 모양의 얼음? 아이스 큐브."

세준이 성석에 마력을 넣자

띵!

세준의 앞에 정육면체의 얼음이 만들어졌다. 크기는 50cm 정도. 그게 세준의 마력으로 만들 수 있는 최대 사이즈였다.

뺙!

꾸엥!

세준이 얼음을 만들자 흑토끼와 꾸엥이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둘은 만저도 보고, 핥아도 보고, 깨물어도 보면서 얼음을 가지고 놀았다.

그사이 세준은 생각에 잠겼다.

"이거 다른 거랑 섞을 수 있나?"

세준이 이번에는 꿀을 꺼내놓고

"아이스 큐브."

성석에 다시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번에는 큐브에 꿀을 섞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꿀렁.

아이스 큐브가 유리병의 꿀을 빨아들이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력을 줄여 주먹 크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띵.

완성된 물 반 꿀 반의 아이스 꿀큐브.

"꾸엥아! 잠깐 와봐. 좋은 거 줄게!"

세준이 자신의 역작을 자랑하기 위해 서둘러 꾸엥이를 불렀다. 이건 꾸엥이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꾸엥!

세준의 부름에 얼음 위에 누워 시원함을 즐기고 있던 꾸엥이가 달려왔다.

꾸엥?

[아빠 불렀다요?]

"꾸엥아 이거 먹어봐."

세준이 아이스 꿀큐브를 주자

아자작!

바로 씹어 먹는 꾸엥이.

꾸엥!!

[달고 시원하다요!]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역시 좋아할 줄 알았다.

아작.아작

꾸엥이가 신나게 아이스 꿀큐브를 먹기 시작했다.

꾸엥이가 꿀이 섞인 아이스 꿀큐브를 맛있게 먹자

뺙!

흑토끼가 자신은 얼음 안에 당근을 넣어달라고 했다.

"당근을?"

뺙!

당근은 액체가 아니라 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아이스 큐브."

채 썬 당근을 준비하고 성석에 마력을 불어넣자

둥.둥.

채 썬 당근이 떠오르더니 그 주변을 얼음이 감싸며 아이스 큐브가 만들어졌다.

"어?! 이게 되네?"

웬만한 건 다 얼려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뺙!

흑토끼가 빨리 아이스 당근큐브를 달라고 재촉했다.

"자."

세주이 아이스 당근큐브를 주자

오도독.오도독.

뺙!

얼음과 당근을 함께 씹으며 기뻐했다.

그때

음머!

블랙 마노타우루스들이 자신들이 먹는 풀을 가지고 와 줄을 서기 시작했다.

"너희도 얼려줘?"

음머!

세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블랙 마노타우루스들.

"알았어. 아이스 큐브."

졸지에 얼음 자판기가 된 세준. 여기까지 자신을 찾으러 와준 고마움에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의 요구대로 풀을 섞어 아이스 풀큐브를 열심히 만들었다.

"휴우. 끝났다."

세준이 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며 말했다. 500마리의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에게 아이스 풀큐브를 하나씩 만들어주다 보니 마력이 거의 고갈 직전이었다.

그래도 마력 회복 속도가 빨라 이 정도를 버텨낸 거지 그게 없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나가떨어졌을 거다.

"흑토끼, 저것 좀 깨줘."

수박 한 통이 통째로 든 아이스 큐브를 가리키며 흑토끼에게 말했다. 블랙 미노타우루들의 아이스 풀큐브를 만드는 중 나중에 시원하게 먹기 위해 얼려둔 것이었다.

뺙!

뾱!뾱!뾱!

흑토끼가 해머로 수박이 든 얼음을 두드리자

쩌저적.

얼음에 금이 가며 얼음만 깨졌다. 얼린 지 30분 정도 지났기에 수박은 꽁꽁 얼지 않았다.

뺙!

흑토끼가 수박을 들고 오자

푹.

세준이 수박에 단검을 찔러 넣은 다음 한 바퀴를 돌리자

쩌저적.

알아서 벌어지는 수박.

"먹어 볼까?"

세준이 수박 반 통을 품에 안았다.

"으흠. 시원하다."

수박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 더위가 사라졌다.

푹.

세준이 정당히 언 수박을 숟가락으로 먹기 시작했다.

"으. 춥네."

세준이 몸을 떨며 말했다. 세 숟가락 정도 먹으니 속에서부터 시원한 기운이 올라와 추위가 느겨졌다.

그렇게 세준이 추위를 느끼며 수박을 먹고 있을 때

퍽.

세준의 수박에 꽂히는 숟가락 1개. 꾸엥이였다. 이미 반 통을 흑토끼와 다 먹고 세준의 수박을 노렸다.

와구와구.

빠르게 없어지는 수박을 보며 세준의 숟가락질이 빨라졌다.

하지만

"윽!"

차가운 걸 너무 빨리 먹자 뒷골이 당겨왔다.

꾸엥!

그사이 남은 수박을 다 먹고 꾸엥이가 승리의 V를 그렸다.

"꾸엥이, 너는 뒷골 안 당겨?"

꾸엥?

고개를 갸웃거리는 꾸엥이. 그게 뭐 다요?

그게 더 얄밉고 억울했다.

그렇게 세준이 억울해하고 있을 때

"저기 세준 님······."

"세준 님······."

늑대들이 세준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희는요? 저희도 시원한 거 먹고 싶어요.

다행히 늑대들은 고기파. 아공간 창고에 얼려둔 퍼플 로커스트 고기를 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조난 285일 차, 정신없는 하루가 마무리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일찍 떠나게?"

"뀻뀻뀻. 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요. 빨리 처리하고 돌아올게요!"

이오나는 일어나자마자 볶음 땅콩 몇 알을 챙기고 서둘러 떠났다.

떠나는 이오나의 뒷모습은 매우 흉흉했다.

"그러게 왜 건드려서······."

세준이 이오나를 화나게 한 존재의 명복을 빌었다.

131화. 악몽이 등장하다.

131화. 악몽이 등장하다.

탑 90층 중력 마탑.

"마나석 광산에서 사고로 이오나 마탑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나를 마나석 광산에 묻자마자 고노바는 중력 마탑으로 돌아와 마탑 회의를 열고 이오나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고노바 부탑주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마탑주님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마나석 광산의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직접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중력 마탑의 원로회의 마법사들이 고노바의 말을 부정했다. 자신들이 아는 마탑주 이오나는 마나석 광산 폭발 정도로 죽을 존재가 아니었다.

거기다

"이오나 마탑주님이 돌아가셨다면 저 봉인석이 붉게 변해야 합니다!"

"맞아요. 봉인석이 그대로지 않습니까!"

마탑 회의가 열리고 있는 마탑의 최고층, 그곳의 천장에 있는 검은색 수정이 그대로였다. 그것이 이오나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고오오오.

원로회의 마법사들의 말을 반박하듯이 검은 수정의 주변에 붉은 연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저······ 저건······."

"이럴 수가...악몽의 저주가 돌아왔다."

"이오나 마탑주님이 돌아가셨어······."

지금까지 이오나의 죽음을 부정하던 원로회의 마법사들이 붉은 연기를 보며 이오나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중력 마탑의 마탑주가 죽을 때까지 짊어지는 악몽의 저주가 주인을 잃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오나가 디멘션 실드에 들어가며 마왕의 영혼 일부가 분리되며 돌아온 것이지만, 다른 마법사들은 그걸 구분할 수 없었다.

악몽의 저주는 중력 마탑의 초대 마탑주부터 이어져 온 마탑주의 상징이자 굴레로, 고대의 마왕 나이트메어의 영혼을 몸 안에 봉인하는 저주였다.

저주에 걸린 이는 평생 잠을 잘 때마다 지독한 악몽에 시달린다. 대신 악몽의 저주에 걸린 이는 마왕 나이트메어의 영혼이 가진 막대한 마력을 빌려 쓸 수 있게 된다.

중력 마탑을 세운 초대 마탑주가 고대의 마왕 나이트메어를 중력 마탑의 최고층에 가둔 이후 대를 이어 마탑주가 저주를 이어받게 했다.

마왕의 봉인이 풀리는 것을 막고 중력 마탑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놈들! 내가 마탑주만 되면 모두 쫓아내 주마!'

자신의 말은 믿지 않다가 마왕의 영혼이 돌아오고서야 이오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원로회의 마법사들을 보며 고노바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과거 자신인 한 행동들의 결과였지만, 고노바는 원로회의 마법사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만 생각했다.

"이오나 마탑주가 죽었으니 마탑의 율법에 따라 부탑주인 제가 다음 대 중력 마탑의 마탑주가 되겠습니다."

"플라이!"

고노바가 당당히 말하며 붉은 안개를 향해 날아가자

-크크크크. 욕심에 눈이 멀어 나의 저주를 받겠다니 정말 어리석구나.

고노바의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마왕 나이트메어의 목소리.

"그래. 어서 저주나 내리거라 고대의 마왕이여."

고노바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가 과장됐다고 생각했기에 호기롭게 말했다. 그래봤자 꿈인데 그까짓 악몽 좀 꾸면 어떤가. 마탑주만 될 수 있다면······

-뭐 나도 요즘 심심했는데 나의 저주를 감당해봐라. 오만한 하이에나여.

스르르륵.

동시에 붉은 연기가 고노바의 몸으로 흡수됐다.

"크하하하! 힘이 넘친다!"

고노바가 몸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마력에 기뻐했다.

"원로회는 들어라. 서둘러 나의 마탑주 임명식을 준비해라!"

"네······ 마탑주님."

원로회의 마법사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노바가 악몽의 저주의 선택을 받고 마탑주가 됐기에 마탑의 율법에 따라 고노바를 마탑주로 인정했다.

"크하하하."

자신의 말을 군소리 없이 따르는 원로회의 마법사들을 보며 고노바가 쾌감을 느꼈다.

"큭큭. 이 맛이지."

고노바는 마탑주의 권력에 매료돼 마탑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리며 하루를 마음껏 즐겼다. 밤이 되자 고노바는 피곤함을 느꼈다.

마탑주 대우를 받는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니 당연했다.

"피곤하군. 좀 자야겠어."

자면 악몽을 꾸겠지만, 마탑주가 되는 대가로 고작 악몽이다. 고노바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잠에 빠졌다.

그리고

-저주의 위력이 내 본래 저주의 100분의 1이니 며칠은 버틸 거다.

꿈속에서 나이트메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흥! 그래 봤자 꿈이 아니냐!"

-크크크. 마음껏 지금의 오만을 즐기거라. 곧 절규로 바뀔 테니.

나이트매어의 말이 끝나자

크아아아!

검은색의 사람 형체를 가진 괴물이 나타났다.

"흥! 고작 이 정도냐?! 파이어볼!"

고노바는 어렵지 않게 적을 처치했다.

크아아악!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적의 수가 늘어났다. 거기다 강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침이 될 때쯤

"으아아악!"

고노바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덜덜덜.

악몽에서 죽은 기억이 너무 생생했다. 죽기 전까지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적들은 일부러 고통을 주며 고노바를 천천히 죽였다. 죽여달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으윽······ 이걸 잘 때마다 겪어야 한다니······ 술을 가져와라!"

고노바는 악몽의 끔찍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아침부터 술을 진탕 마셨다.

***

세준은 아침을 먹고 바로 바나나 나무의 치유를 시작했다.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4이 발동합니다.]

[손길이 닿는 동안 바나나 나무의 병이 조금씩 치유됩니다.]

세준이 바나나 나무를 치유하는 동안

뱃뱃.

황금박쥐는 어제처럼 노래를 불러 바나나 나무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냥냥냥."

테오가 어제부터 앞발에서 느껴지는 끌림을 따라 다른 동물들 몰래 이동했다. 엄청나게 거대한 끌림. 아무도 모르게 혼자 챙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걸 박세준에게 가져가면······

'박 회장의 이쁨을 이 몸이 독차지하는 것이다냥!'

그렇게 테오가 세준의 무릎 위에서 츄르를 받아먹으며 이쁨받을 생각을 하며 끌림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을 때

뺙!

꾸엥!

갑자기 테오의 앞에서 흑토끼와 꾸엥이가 나타나 앞을 막았다. 아까부터 어제 나타난 화산을 힐끔힐끔 보는 테오를 수상히 여긴 둘이었다.

테오는 자신이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세준의 무릎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너무 수상한 행동이었다.

꾸엥?

[큰형아 어디 간다요?]

"푸후훗. 나는 보물을 찾으러 간다냥! 너희들 날 따라오라냥!"

이렇게 걸린 이상 테오는 동생들도 데려가기로 했다. 솔직히 혼자 가려니 심심했다. 그리고 부려 먹을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뺙!!!

꾸엥!!!

보물이라는 말에 눈을 빛내면 흑토끼와 꾸엥이가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따라갈게요!

"따라오라냥!"

뺙!

꾸엥!

그렇게 흑토끼와 꾸엥이가 테오를 따라 마나석 광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화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뺙!

꾸엥!

화산 주변에 깔린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 돌들을 보며 보물이라고 생각한 흑토끼와 꾸엥이가 달려가 줍기 시작했다.

"그건 보물이 아니다냥!"

끌림에 집중하고 있던 테오가 서둘러 둘을 말렸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나는 돌들은 마나석 광산의 마력이 대량으로 방출됐을 때 돌에 마력이 스며든 것으로 하루 이틀이면 다시 평범한 돌이 되기에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둘을 데려오길 잘했다냥.'

이것에 도착하니 끌림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였다. 아마 여러 끌림이 모여 강하게 느껴진 것 같았다. 둘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혼자서 열심히 돌아다닐 뻔했다.

"나를 따라오라냥!"

테오가 둘을 데리고 앞발의 끌림을 따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흑토끼, 이걸 부숴보라냥!"

테오가 앞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뺙!

테오의 말에 흑토끼가 바위를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뾱!뾱!뾱!

쩌적.

흑토끼의 해머질에 갈라지는 바위.

그리고 바위 안에 숨어있던 골프공 크기의 보라색 돌이 나타났다.

"이게 보물이다냥!"

테오가 보라색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내가 말하는 걸······."

뺙!

꾸엥!

테오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흑토끼와 꾸엥이가 외쳤다. 누가 더 보물을 많이 찾는지 시합이야! 시작!

그렇게 외친 둘은 흥분하며 주변 바위들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푸후훗. 그렇게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냥. 어차피 승리는 나의 것이다냥."

테오가 둘을 비웃으며 앞발의 끌림을 따라 여유롭게 이동했다.

하지만

"냥?"

보라색 돌을 몇 개 캐기도 전에 테오의 여유는 사라졌다.

뾱!뾱!뾱!

콰앙!

테오에 비해 흑토끼와 꾸엥이의 발굴 속도가 너무 빨랐다. 특히 꾸엥이는 정말 사기적이었다.

꾸에엥!

꾸엥이가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치자

콰앙!

꾸에이를 주변으로 반경 10m의 바위가 전부 가루가 됐다. 분홍 털이 썼던 기술을 보고 따라하는 꾸엥이.

콰앙!

그렇게 바닥을 치고 부서진 바위에서 보라색 돌을 찾다 보니 테오가 하나하나 찾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결국 보물찾기의 승자는 보라색 돌을 23개나 찾은 꾸엥이였다. 테오는 15개, 흑토끼는 7개를 찾았다.

꾸엥!꾸엥!

[내가 이겼다요! 이거 아빠가 쓰면 강해진다요!]

테오는 꾸엥이가 막무가내로 때려 부수며 보라색 돌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꾸엥이도 물건을 찾는 나름의 촉이 있었다.

그건 세준을 강하게 해주는 것에 대한 촉. 약한 아빠를 보호해야 한다는 꾸엥이의 간절한 마음이 만든 능력이었다.

그렇게 보라색 돌 45개를 챙긴 테오와 흑토끼, 꾸엥이가 당당하게 세준을 향해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점심시간.

"너희들 어디 갔었어?"

점심을 만들고 있던 세준이 물었다.

"우리가 박 회장에게 도움이 되는 걸 가지고 왔다냥!"

뺙!

꾸엥!

우르르.

테오와 흑토끼, 꾸엥이가 가지고 있던 보라색 돌을 세준 앞에 쏟았다. 크기는 손톱 크기에서 주먹 크기까지 전부 제각각이었다.

"이게 뭔데?"

세준이 골프공 크기의 보라색 돌을 하나 집어 살펴봤다.

[중급 숙련의 돌]

사용하면 숙련의 돌 안에 깃든 기운이 원하는 스킬의 숙련도를 50 올려줍니다.

등급 : C

"어?!"

이런 게 있었다니?! 스킬의 숙련도를 이런 아이템으로 올릴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고마워. 얘들아!"

세준이 숙련의 돌을 가져온 셋을 칭찬했다.

"그럼 빨리 츄르를 달라냥!"

뺙!

[일주일만 삼촌이랑 놀다 가게 해주세요!]

꾸엥!

[나도 아빠 무릎에서 밥 먹을 거다요!]

세준의 칭찬에 각자가 원하는 걸 말하며 세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퍽!

세준은 그날 작업을 쉬어야 했다.

꾸엥...

[아빠 빨리 강해져서 놀아달라요······.]

꾸엥이가 기절한 세준을 돌보며 슬퍼했다.

***

"어서 오시죠."

고노바가 자신을 지지해줬던 불꽃의 마탑, 파괴의 마탑, 운석의 마탑의 마탑주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노바 마탑주, 얼굴이 왜 그렇게 상한 것이오?"

다른 마탑주들이 초췌한 얼굴의 고노바를 보며 물었다.

'크흠. 요즘 일이 많아서······."

"아하. 하긴 갑자기 마탑주가 되셔서 할 일이 많겠지요."

"그래도 몸은 챙기시면서 하셔야 합니다."

"아무렴요. 마법사 협회장까지 하셔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크하하하. 곧 일이 끝나면 괜찮을 겁니다."

고노바는 악몽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도중에 이오나가 기록해둔 일기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일단 최대한 시간을 끌어 더 강한 적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거지.'

그때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하인들이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 일단 드시고 얘기하죠."

배가 고팠던 고노바가 다른 마탑주들에게 말하며 음식을 덮고 있는 덮개를 열자

"······?!"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고노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뀨-뀨-뀨-뀨-"

깨어있는 악몽의 등장이었다.

132화. '함께'가 아니면 안 나갈 거야.

132화. '함께'가 아니면 안 나갈 거야.

이오나가 고노바의 앞에 나타나기 1시간 전.

"뀨-"

이오나가 중력 마탑의 입구에 도착했다.

"어?! 이오나 마탑주님이다!"

마탑의 경비들이 이오나를 발견하고는 원로회의 마법사들을 부르자 원로회 마법사들이 달려와 이오나를 반겼다.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마탑주님이 돌아가실 리 없죠!"

"고노바는요?"

"그게······."

"뭐죠?"

"마탑주실에서 다른 마탑주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다른 마탑주요?"

"네. 아무래도 불꽃의 마탑, 파괴의 마탑, 운석의 마탑의 마탑주들이 고노바를 부추긴 것 같습니다."

"뀨-뀨-그래요? 잘됐네요. 모두 1시간 안에 마탑을 비우세요."

"네?!"

"뀨-뀨-뀨-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요! 우리는 탑 99층에 새로 마탑을 세울 거예요! 다 나가요!"

"헉! 네! 모두 마탑을 비워라! 중요한 것만 챙겨!"

오늘 중력 마탑이 사라진다!

분노의 뀨 3단계를 본 원로회 마법사들이 서둘러 마법사들에게 마탑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1시간 후 마탑이 비워지자 이오나가 고노바 앞에 나타난 것이다.

"뀨-뀨-뀨-뀨-"

"어..어떻게?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이오나를 본 고노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크흠.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저희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이오나가 나타나자 바로 줄행랑을 치는 3명의 마탑주들.

하지만

"뀨-뀨-뀨-뀨-한 편이면서 어딜 가려고요?"

이오나가 도망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중력의 힘이여. 나의 명에 따라 힘을 강화하라! 그래비티 컨트롤."

쿠구궁.

이오나가 중력을 조정해 도망가려는 마탑주들을 향해 10배의 중력을 가했다.

"으윽! 고노바 마탑주!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익! 무능한 자식! 확실히 처리했다면서?!"

"이오나 마탑주 우리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마탑주들이 10배의 중력을 버티며 외쳤다.

"뀨-뀨-뀨-뀨-상관없어요. 너희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모두 한 번에 처리해줄게요. 중력의 힘이여······."

평소 마법사 협회에서 항상 이오나의 일에 훼방을 놓던 마탑주들이었다. 이오나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마법을 준비했다.

'죽는다!'

고노바는 이오나가 작정하고 마법을 쓰려고 하자

"이······ 이오나 마탑주! 아무리 화가 나도 여기는 중력의 마탑이다! 다른 마법사들까지 다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멈춰라!"

서둘러 이오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괜찮아요. 마탑에는 우리밖에 없으니까요. 블랙홀!"

이미 탑과 함께 그들을 없애려고 결심한 이오나였다.

고오오오.

"안 돼!!!"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블랙홀이 고노바와 3명의 마탑주.

그리고

콰직.

중력 마탑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이트메어, 저들에게도 저주를 내려줘요."

-크크크. 가끔 보면 넌 나보다 더 마왕이 어울려.

"뀨-시끄러워요!"

-알았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붉은 안개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3명의 마탑주의 몸에 스며들었다. 저주를 받고 죽으면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끝나지 않는 악몽의 시작이다.

버티거나 굴복하거나. 그리고 굴복하면 나이트메어의 노예가 되어 나이트메어의 재미를 위해 쉬지도 죽지도 못하고 싸우며 영원히 고통받는다.

그리고 이오나의 복수는 지금부터였다. 저들이 죽어 나이트메어의 노예가 되면 악몽 속에서 죽이고 또 죽이면서 고통을 주려는 것이다.

-근데 요즘 너무 잠을 안 자는 거 아냐?

나이트메어가 섭섭해하며 말했다. 이오나가 악몽에 들어오지 않자 당연히 잠을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뀻뀻뀻!"

이오나는 나이트메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중력 마탑이 사라지는 걸 보며 웃기만 했다.

***

탑 99층 세준의 농장.

-그건 이쪽으로 옮겨!

-이제 당근을 수확해!

검은 용 조각상과 하얀 용 조각상이 세준의 농장 구성원인 토끼, 독꿀벌, 버섯개미, 블랙 미노타우루들에게 지시하며 열심히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지! 여기는 버섯개미를 투입해야 하는 곳이야!

-무슨 소리야?! 여기는 독꿀벌을 투입해야 해!

카이저와 켈리온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기며 자기가 맞다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세준이 없었기에 둘의 싸움을 말려줄 존재가 없었고

둘은 그렇게 한참을 싸웠다.

그리고 내린 결론. 한 하늘에 우두머리가 둘이 있을 수는 없는 법.

우두머리를 뽑자!

두 용은 우두머리를 뽑는 방법으로 농사를 선택했다. 밭과 몬스터를 둘로 나눠 씨앗을 심고 누가 더 수확을 하는지 대결하기로.

-감히 위대한 검은 용인 내게 덤벼?!

-흥! 위대한 하얀 용에게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그렇게 시작된 대결.

-지루하군. 켈리온 술이나 한 잔 하자.

-그럴까?

수확까지 몇 달은 걸리고, 농사는 몬스터들이 짓는다. 용들이 하는 건 농사 짓는 몬스터들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술은 내 것을 먹으니까. 안주는 네가 가져와.

-알았다.

켈리온이 저장고로 날아가 고구마, 당근, 방울토마토 등을 골랐다.

그리고

-여기 1000탑코인.

저장고를 나오며 저장고 입구를 지키는 토끼에게 돈을 줬다. 토끼에게 달라고 하면 토끼가 흔쾌히(?) 자신에게 농작물을 바치겠지만, 나름 농장 관리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뺘아!

돈을 받은 토끼가 켈리온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켈리온이 안주를 사서 날아가려 할 때

뺘뺘!

새로 태어난 새끼 토끼 하나가 세준의 집에서 자기 몸보다 큰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직사각형에 얇고 신기한 소재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게 무엇이냐?

뺘뺘!(저도 몰라요! 주웠어요!)

켈리온의 말에 새끼 토끼가 대답했다.

-그거 이거랑 바꾸자.

뺘뺘!(네!)

켈리온이 당근을 건네자 새끼 토끼는 미련없이 손에 든 것을 켈리온에게 건넸다.

그리고

펄럭.펄럭.

안주와 새끼 토끼에게 받은 물건을 가지고 카이저에게 날아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크으. 이 망고주 괜찮네.

-그러게. 진짜 맛있어.

-근데 그건 뭐냐?

술을 마시던 카이저가 켈리온이 가져온 물건에 흥미를 보였다.

-몰라. 나중에 살펴보려고.

-잠깐 나 줘봐.

카이저가 물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뇌 속성으로 움직이는 도구였군. 뇌전.

스캔 마법으로 원리를 파악한 카이저가 약하게 전기를 일으키자

우웅.

물건의 표면이 밟아졌 들어왔다. 세준의 스마트폰이었다.

-호오. 잠겨있군. 풀려라.

마법은 논리와 알고리즘이 있다. 스마트폰의 프로그램과 비슷하기에 카이저는 어렵지 않게 구조를 파악했다. 그리고 마력과 의지를 넣어 잠금 패턴을 간단히 풀어버렸다.

그리고 세준의 스마트폰의 잠금이 풀리며 바탕화면에 걸그룹 달빛요정의 멤버 세라의 사진이 나타났다.

-이건 누구지?

-맛있는 술 앞에 두고 뭐 하는 거야? 술이나 마셔.

-그렇지. 지금 이걸 볼 때가 아니지.

카이저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고 다시 즐겁게 망고주를 마셨다.

***

검은 탑의 관리자 구역.

"크힝. 세준아 언제 와?"

세준을 못 보자 에일린은 슬펐다. 세준이 없는 탑 99층 농장은 하나도 흥미롭지 않았다.

"재미없어······ 세준이 보고 싶다. 밥 먹는 것도, 농사짓는 것도······."

하지만 할 게 없었기에 수정구를 보며 심심함을 달래고 있었는데······

부들.부들.

수정구를 보고 있던 에일린이 분노에 몸을 떨었다. 카이저가 잠금화면을 해제하며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나타난 여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일린은 저 스마트폰의 주인이 세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크오오오오! 용서 못 해! 박!세!준-!"

에일린이 포효하며 세준의 이름을 불렀다.

***

흠칫!

세준이 몸을 떨며 아침에 눈을 떴다.

"박 회장, 괜찮냥?"

뺙?

꾸엥?

동물들이 안부를 물었다.

"아니. 으으. 뭐지? 왜 이렇게 추워?"

세준이 서늘한 기운에 손으로 몸을 비비자

꾸엥!

[아빠 허약해서 그렇다요!]

꾸엥이가 2m 정도로 거대화하며 자신의 몸으로 세준을 감싸줬다.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지만, 꾸엥이의 부드럽고 따뜻한 털이 좋아 세준은 거부하지 않았다.

"흐흐흐. 푹신하다."

그렇게 세준이 평온함에 취해 다시 잠들기 직전

음머!

"세준 님이 일어나셨다!"

우끼!

세준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블랙 미노타우루스와 늑대, 원숭이들이 다가왔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세준 님! 저희도 보물찾기를 하고 싶습니다!"

엘카가 대표로 말했다.

"뭐?! 보물찾기?"

갑자기 무슨 일인가 했더니. 보물찾기라니? 세준이 기절한 사이 꾸엥이가 자신이 보물찾기에서 이긴 걸 여기저기 자랑했고 거기에 자극받은 다른 동물들도 보물찾기를 하고 싶어 했다.

특히 개과 동물인 늑대들이 특히 심했다. 물건 찾기는 또 자신들의 특기가 아닌가.

그렇게 갑자기 보물찾기 대회가 개최됐다.

"자. 이런 숫자가 적힌 은괴를 찾아오면 돼."

세준이 자신의 이름과 함께 100이 새겨진 은괴를 보이며 말했다. 나머지 1에서 99까지의 숫자가 적힌 은괴는 황금박쥐가 미리 곳곳에 던져놓고 왔다.

"시간은 점심시간까지! 자. 시작!"

세준이 은괴를 있는 힘껏 멀리 던지며 보물찾기의 시작을 선포했다.

음머!

"네!"

우끼!

동물들이 서둘러 보물을 찾아 흩어졌다.

뺙!

흑토끼도 오늘은 자신이 1등을 하겠다면 다른 동물들을 따라 달려 나갔다.

그리고 주변이 한산해지자

[하급 숙련의 돌을 사용했습니다.]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4의 숙련도가 10 상승합니다.]

세준은 어제 기절하며 사용하지 못했던 숙련의 돌을 이용해 스킬 숙련도를 올렸다.

원래는 구매할 수 있는 씨앗의 종류와 금액을 늘릴 수 있는 씨앗 상점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 레벨을 올리고 싶었지만, 씨앗 상점 스킬에는 숙련의 돌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제 테오와 흑토끼, 꾸엥이가 찾아온 숙련의 돌 45개를 모두 사용해 숙련도를 740이나 올렸지만, 아쉽게도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그때

뱃뱃.

멀리서 먼저 일을 시작한 황금박쥐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일해야지."

세준이 바나나 나무의 치유를 시작했다.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4이 발동합니다.]

[손길이 닿는 동안 바나나 나무의 병이 조금씩 치유됩니다.]

"근데 테 사장."

"냥?!"

"상점 거리에서 땅문서도 팔아?"

"냥? 본 적은 없다냥! 다음에 가서 알아보겠다냥!"

테오가 모르는 게 당연했다. 땅문서는 평범한 유랑 상인은 살 수도 없는 가격 때문에 최우수 유랑 상인부터 거래가 가능했다.

"다른 땅문서를 보면 꼭 구매해줘. 특히 탑 1층 땅문서를 보면 꼭 사줘."

탑 1층 땅문서만 있다면 탑 1층으로 갈 수 있다.

"알겠다냥. 근데 박 회장은 탑을 나가고 싶은 것이냥?"

테오가 슬픈 눈으로 세준을 바라봤다. 우리 버릴 거야?

"응?!"

테오의 말에 세준이 당황했다.

꾸엥!

[아빠 꾸엥이도 데려가!]

테오의 말을 들은 꾸엥이가 세준의 다리에 매달렸다.

"걱정 마. 우리는 하나잖아. 너희와 '함께'가 아니면 안 나갈 거야."

막연히 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떠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곳에 자신이 돌아올 집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가족들도.

"좋아! 우리 오랜만에 구호를 외쳐볼까?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냥!"

꾸엥!

[우리는 하나다요!]

조난 287일 차, 세준과 테오, 꾸엥이가 오랜만에 구호를 외쳤다.

133화. 바나나를 수확하다.

133화. 바나나를 수확하다.

세준이 바나나 나무를 치유하는 동안 점심시간이 되자 보물찾기를 끝낸 동물들이 돌아왔다. 결과는 예상대로 황금박쥐의 냄새를 추적한 늑대족의 압승이었다.

엘카가 은괴 5개로 1등, 흑토끼가 2개로 2등이고 나머지는 늑대들이 85개, 원숭이들이 7개,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각각 1개를 찾아 3등을 했다.

음머!

[한 번 더 하게 해주십시오!]

500마리가 달랑 1개의 은괴를 찾았지만, 블랙 미노타우루스는 보물찾기 자체가 재미있었는지 진 걸 분해하지도 않고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 점심 먹고 한 번 더하자."

어차피 늑대들과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은 세준이 탑 99층을 향해 출발하기 전까지는 할 게 없었다.

'잘됐다.'

세준은 바나나 나무를 치유할 때까지 동물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했는데 이렇게라도 즐기며 시간을 보낸 방법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등은 상으로 특별히 원하는 요리를 만들어 줄게."

"세준 님, 정말이십니까?"

세준의 말에 엘카가 흥분했다.

"응. 엘카, 뭐 먹고 싶어?"

"그럼 저는 세프의 수프를 먹고 싶습니다."

"에? 그거면 돼?"

세프의 수프는 거의 매일 만드는 음식이기에 세준이 다시 물었다.

"그거면 돼?"

"네. 그거면 됩니다."

엘카에게 세프의 수프는 처음으로 부족원들을 배불리 먹였던 의미 있는 음식.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엘카는 세프의 수프를 먹을 때마다 행복했다.

"그래. 알았어."

어차피 점심메뉴에 세프의 수프가 있었기에 세준이 특별히 할 건 없었다. 대신 자신의 수고를 덜어준 엘카를 위해 특별 재료를 추가했다.

그때

뺙?

흑토끼가 2등은 상이 없냐고 물었다.

"2등도 당연히 상이 있지. 자. 여기."

세준이 아공간 창고에서 당근 100개가 든 상자 하나를 통째로 꺼내 흑토끼에게 줬다.

뺙!

흑토끼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당근 상자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음머······

우끼······

이미 세프의 수프로 시선이 고정된 늑대들을 제외한 블랙 미노타우루스들과 원숭이들이 군침을 삼키며 세준을 바라봤다. 저희는 뭘 주실 건가요?

"자. 3등 상."

세준이 은괴를 1개 찾은 원숭이들에게 태양의 호박고구마를 5개씩 줬다.

우끼!

황금색 고구마를 받은 원숭이들이 감격했다. 신님이 주신 고구마에서 빛이 난다! 맛은 호박고구마와 큰 차이는 없지만, 비주얼적인 임팩트가 있었다.

그리고

"우천삼은 나중에 탑 99층에 가서 파 이파리 10더미 줄게."

음머!

블랙 미노타우루스들 중 유일하게 은괴를 찾은 우천삼이 세준의 말에 기뻐했다.

그렇게 제1회 세준배 보물찾기 대회의 조촐한 시상식이 끝났다.

"자 이제 밥 먹자."

이미 다른 음식들은 다 차려져 있었기에 수프만 푸면 됐다.

"이건 1등 한 엘카 거야."

세준이 특별히 엘카를 위해 추가한 재료와 고기를 듬뿍 담은 세프의 수프를 건넸다. 참고로 3등 한 늑대들은 고기만 가득한 세프의 수프였다.

"오! 이건 뼈다귀가 아닙니까?!"

레드리본의 보물창고에 있는 멧돼지 뼈를 세프의 수프와 함께 끓여 엘카의 수프에만 넣어줬다. 아무래도 개와 비슷한 습성을 가진 늑대라면 뼈다귀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엘카가 감격하며 서둘러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핥짝.핥짝.

수프 몇 번 먹고

아그작.아그작.

뼈다귀 몇 번 씹고

끼잉.

다른 늑대들이 그런 엘카를 부럽게 바라봤다.

"우리도 먹자. 황금박쥐는 미리 좀 움직여줘."

보물찾기를 위해서는 진행요원인 황금박쥐가 먼저 보물을 숨겨줘야 했다.

(네! 맡겨주세요!)

파닥.파닥.

황금박쥐가 99개의 은괴를 숨기러 날아갔고 그동안 세준과 동물들은 점심을 다 먹고 낮잠 타임을 가졌다.

커어어.

고로롱.

뺘로롱.

뀨로롱.

테오와 흑토끼는 세준의 무릎에, 꾸엥이의 다리에 궁둥이를 대고 낮잠을 잤다.

그때

파닥.파닥.

은괴를 다 숨기고 돌아온 황금박쥐가 세준이 아이스 큐브 위에 먹기 좋게 썰어놓은 시원한 수박을 들고

쫍쫍.

밀짚모자를 쓴 세준의 머리 위에서 맛있게 수박을 빨아 먹었다.

그리고

배로롱.

식사를 끝낸 황금박쥐도 세준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자 보물찾기 시작!"

제2회 세준배 보물찾기 대회가 시작됐다.

크르릉!

음머!

이번에는 늑대들과 블랙 미노타우루스들만 참가했다. 흑토끼는 잠이 모자라다며 세준의 등에 매달려 잤고 원숭이들은 더 놀고 싶어 했지만, 망고와 수박 농사를 지어야 했다.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4이 발동합니다.]

[손길이 닿는 동안 바나나 나무의 병이 조금씩 치유됩니다.]

세준도 다시 바나나 나무의 치유를 시작했다.

15초 후.

[바나나 나무의 병이 치유됐습니다.]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손길이 닿는 동안 바나나 나무가 조금 성장합니다.]

"확실히 빨라졌어."

처음에는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의 레벨이 오르면서 치유 속도가 빨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뱃뱃.

그 이유는 바로 황금박쥐의 노래. 바나나 나무들이 며칠 동안 황금박쥐의 노래를 듣고 기운을 차려 세준의 치유 시간을 단축시켰다. 덕분에 스킬을 발동하고 10~20초면 한 그루를 치유했다.

'이 정도면 하루에 1000그루도 치유할 수 있겠어.'

세준이 기특한 눈으로 황금박쥐를 바라봤다.

(뱃뱃. 나는 어둠 속에 있었네. 그때 나를 꺼내준 건~ 세준 님~)

같은 노래만 부르기 심심했는지 황금박쥐는 직접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용은 자신을 어둠에서 꺼내준 세준을 칭찬하는 내용. 세준은 안 듣는 척 귀를 열고 가사를 열심히 들었다.

"이거 부끄럽구만..."

부끄럽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노래를 말리지는 않았다. 자라나는 가수 꿈나무의 창작욕을 꺾고 싶지 않았기 때문. 절대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때

"그렇게 칭찬이 좋냥? 그럼 내가 칭찬해 주겠다냥!"

이럴 때는 또 눈치가 귀신같다. 세준의 관심이 황금박쥐에게 향하자 관심을 뺏고 싶은 테오.

그리고

"박 회장은 돈만 밝히는 걸 칭찬한다냥! 부하들을 쉬지 않게 부려 먹는 것도 칭찬한다냥!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세준의 장점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욕이냐?'

테오는 진심을 담아 칭찬했지만, 세준은 왠지 자신을 욕하는 것처럼 들렸다.

"테 사장, 이거 먹으면서 조용히 해."

세준이 테오의 입을 막기 위해 츄르를 내밀었다. 욕을 먹는 거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안 배고프다냥! 그리고 나의 칭찬은 아직 많이 남았다냥!"

굳이 칭찬을 더 하겠다는 테오. 방금 전까지의 귀신 같은 눈치는 어디 갔는지······

'이거 나 먹이는 거냐?'

세준의 분노 게이지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을 때

'푸후훗. 나의 칭찬이 통했다냥!'

츄르를 주는 세준을 보면서 테오는 자신의 칭찬이 효과가 있다고 확신하고 세준을 더 칭찬했다.

그리고 결국 테오의 칭찬 효과가 나타났다.

"테 사장, 빨리 탑 99층 가서 농작물 챙겨서 거래하고 와."

"냥?! 지금 말이냥?"

"그래. 테 사장 말대로 나는 돈만 밝히고 부하들을 쉬지 않고 부려 먹으니까."

"냥?!"

역효과도 효과는 효과였다.

'왜냥? 왜 칭찬을 했는데 일을 시키는 것이냥?'

테오가 혼란해하며 주섬주섬 봇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일단 세준이 시키는 건 하는, 말 잘 듣는 고양이 테오였다.

***

"뀻뀻뀻. 여러분들은 불꽃의 마탑, 파괴의 마탑, 운석의 마탑을 들러 해체시키고 탑 99층으로 오세요. 저는 미리 가서 탑 99층의 주인에게 허락을 받을게요."

이오나가 이제 빈 터만 남은, 중력 마탑이 있었던 자리에서 마법사들을 보며 말했다.

마탑주가 그렇게 죽었으니 남아있는 남은 세 마탑은 해체 수순을 밟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해체된 마탑들의 재산은 중력 마탑의 재건 비용으로 쓸 생각이었다.

"그리고 중력 마탑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마법사는 데려오세요."

"알겠습니다. 근데 괜찮을까요? 탑 99층에 마탑을 세우는 걸 우마왕님이 쉽게 허락하지 않을 텐데요."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 탑 99층의 주인은 우마왕님이 아니에요."

"네? 웨이포인트의 주인이 바뀐 건가요?"

"그런 소식은 못 들었는데······."

원로회 마법사들이 이오나의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마왕은 검은 탑의 최강자라고 불려도 무방한 존재. 그런 상황에서 웨이포인트의 주인이 바뀐 걸 알지 못했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건 마탑의 정보력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거기다 현재 블랙 미노타우루스 500마리가 남하하면서 탑의 모든 정보력이 탑 99층과 탑 77층에 집중된 상황. 그런데도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건 아니예요. 웨이포인트의 주인은 아니지만, 탑 99층의 새로운 주인이 되신 분이 있어요."

"그럼 우마왕님만큼 강한 존재가 또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새로운 탑 99층의 주인은 아주 약하세요."

"약하시다고요?"

이오나의 말에 원로회 마법사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층의 최강자가 층의 주인이 되고 웨이포인트를 지킨다. 그게 탑의 상식이었다. 근데 약하다니? 그것도 아주?

"네. 하지만 만약 여러분들 중 누군가 그분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제가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뭐 제가 아니더라도 그분의 주변을 지키는 존재들이 먼저 나서겠지만. 자! 서둘러 움직이세요!"

이오나가 마법사들을 출발시키고 서둘러 탑 99층으로 향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먼저 카이저와 에일린에게 마탑을 짓겠다고 허락을 받는 것이 먼저였다.

-에일린이 허락한다고 하는군. 물론 나도 허락한다.

그렇지 않아도 농장을 관리하다 보니 귀찮은 게 많았다. 가끔 출몰하는 불개미도 쫓아내야 하고 밭이 늘어난 만큼 수로도 연장해야 했다.

마법사들을 농장의 경계와 시설 보수에 활용할 생각을 하는 카이저였다.

***

"끝났다."

드디어 5381그루의 바나나 나무 치유가 끝났다.

끼잉······

음머······

우끼······

세준의 말에 아쉬워하는 동물들. 그동안 오전 오후로 보물찾기 대회를 하면서 7회까지 대회가 열렸다.

"나중에도 한 번씩 열 테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세준은 보물찾기를 좋아하는 동물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대회를 열기로 했다.

그때

[탑 77층 농장에서 바나나 나무의 병이 완전히 치유됐습니다.]

[탑 77층 농장이 활성화됩니다.]

[탑 77층 농장에서 바나나가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

[탑 77층 농장 땅문서의 이름이 탑 77층 바나나 농장 땅문서로 이름이 갱신됩니다.]

땅문서의 이름이 갱신됐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앞으로 잘 부탁해."

앞으로 원숭이들이 바나나 농장을 관리하기로 한 원숭이들을 보며 말했다.

우끼!

우끼!

세준과 달마다 농작물이나 탑코인으로 주는 보수와 함께 수확한 바나나의 일부를 받는 계약서를 작성한 원숭이들이 자신들에게 맡겨달라며 절을 했다.

영광스러운 신의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니 원숭이들은 기쁘기만 했다.

그렇게 원숭이들에게 탑 77층의 바나나 농장을 맡기고 떠나려 할 때

[바나나 나무들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준 당신에게 보답합니다.]

"보답?"

갑자기 바나나 나무에서 노란 바나나가 한 송이씩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바나나다······."

세준이 바나나 나무로 다가가 단검으로 조심스럽게 바나나 한 송이를 잘랐다.

그리고

뚝.

바나나 하나의 꼭지를 꺾어 딴 다음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까서 입에 넣었다.

"으음. 맛있다."

바로 수확했기에 조금 단단했지만, 며칠 지나면 부드럽게 숙성될 것 같았다.

"얘들아, 수확하자."

조난 290일 차, 세준이 자신의 바나나 농장에서 동물들과 바나나를 수확했다. 탑 99층으로 돌아갈 때 두 손 가득 바나나를 챙겨갈 수 있게 됐다.

134화. 승급하겠다냥!

134화. 승급하겠다냥!

"이제 갈게."

바나나 수확을 끝내고 떠나며 세준이 원숭이들에게 손을 흔들자

우끼!

원숭이들이 절을 하며 세준을 배웅했다. 그런 원숭이들의 옆에는 바나나가 한 송이씩 놓여 있었다. 첫 수확의 대가였다.

그리고 떠나는 세준의 뒤를 따르는 동물들도 품에 바나나를 잔뜩 들고 탑 77층의 웨이포인트로 향했다. 아공간 창고에 안 들어가서는 아니고······ 가면서 먹을 간식이었다.

꾸엥이의 등에 탄 세준과 흑토끼, 황금박쥐가 열심히 바나나 껍질을 까서 안의 과육은 꾸엥이와 늑대들의 입에 넣어주고

"자 여기."

바나나 껍질은 블랙 미노타우루스에게 줬다.

음머!

바나나 껍질을 받고 기뻐하는 블랙 미노타우루스.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은 바나나의 과육보다 껍질을 더 좋아했다.

"세준 님, 도착했습니다."

"벌써?"

동물들에게 바나나를 까주다 보니 어느새 탑 77층의 웨이포인트를 지키고 있던 고릴라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네?"

마을은 텅 비어있었다. 꾸엥이가 정리한 이후 아무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 평소라면 금세 다른 몬스터들이 이곳을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탑 77층에는 블랙 미노타우루스에 80층 대의 늑대들, 꾸엥이까지 강자들이 넘쳐나는 상황.

거기다 최근에 그들이 보물찾기를 한다며 탑 77층의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닌 덕분에 탑 77층의 몬스터들은 그들이 세력 과시를 하는 거로 생각하고 보금자리에 숨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척.

덕분에 세준은 공중에 떠 있는 붉은 크리스탈에 여유롭게 다가가 손을 올렸다.

[탑 77층 웨이포인트가 저장됐습니다.]

[저장된 다른 층의 웨이포인트를 불러옵니다.]

[저장된 웨이포인트(1개)]

-탑 99층

"됐다!"

드디어 웨이포인트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탑 99층 다음에 탑 77층의 웨이포인트를 등록했습니다.]

[탑의 역사 최초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를 획득했습니다.]

"역행자?"

세준이 상태창을 열어 이명을 살펴보려 할 때

[현재 탑 77층의 웨이포인트를 지키는 존재가 없습니다.]

[검은 탑의 중간 관리자로서 탑 77층의 웨이포인트를 지키는 보스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흐음······ 웨이포인트를 지키는 존재를 지정할 수 있다고?"

세준이 생각에 잠겼다. 탑 77층에 바나나 농장이 있는 이상 앞으로 탑 77층에 올 일이 자주 생길 것이다. 그럼 우리 편이 여기를 관리해주는 게 편하겠지?

"엘카, 원숭이 마을 촌장을 데려와."

"네!"

엘카가 서둘러 원숭이 마을로 달려가 원숭이 마을의 촌장을 불러왔다.

나중에 헌터들에게 웨이포인트를 등록하게 해주는 대가로 등록비를 받을 생각이기에 웨이포인트를 지키는 보스가 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쿵.쿵.

"어?!"

엘카가 데려온 것은 거대한 원숭이. 분명 원숭이 마을의 촌장은 키도 1m 정도에 왜소했었는데 안 본 지 몇 시간 만에 키가 2m로 자라고 온몸이 근육질로 변해 나타났다.

세준은 몰랐지만, 그들은 바나나 몽키라는 종족으로 바나나를 먹으면 강해지는 종족 특성이 있었다. 과거 바나나 나무가 병들지 않았을 때는 그들이 탑 77층을 지배했었다.

덕분에 늑대들을 상주시켜 이곳을 지키려는 계획은 빠르게 폐기됐다.

"앞으로 네가 이곳 웨이포인트를 지켜."

세준이 원숭이 마을의 촌장을 탑 77층의 웨이포인트 보스로 지정하자

[탑 77층의 웨이포인트를 지키는 존재로 바나나 몽키 우킬을 지정합니다.]

우끼!

쿵.

바나나 몽키족의 촌장 우킬이 세준의 은혜에 크게 감격하며 절을 했다. 자신의 종족에게 바나나를 돌려주고 이제 탑 77층의 웨이포인트까지 돌려주다니.

"그럼 갈게. 너희들도 빨리 올라와."

꾸엥!꾸엥!

[금방 가겠다요! 아빠 그동안 아프면 안 된다요!]

탑 77층의 보스를 지정한 세준이 우킬과 동물들에게 말하고 목적지로 탑 99층을 선택하자

파앗.

세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꾸엥!

[빨리 가자요!]

음머!

꾸엥이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는 탑 99층으로,

뺙!

"출발한다!"

흑토끼와 늑대들은 탑 55층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우오오!

강자들이 떠난 것을 알아챈 오랑우탄족 족장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탑 77층의 웨이포인트의 보스인 우킬에게 도전했지만

우끼!

바나나를 먹은 우킬은 정말 강했다.

퍽!퍽!

우킬이 오랑우탄족 족장을 단숨에 제압했다. 그 이후로도 다른 종족들의 족장들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우킬을 이기지 못했다.

***

"아프리카 상황은 어떻습니까?"

한태준이 응구기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물었다.

"현재 나이지리아, 카메룬의 절반 정도가 로커스트에게 점령당한 상황입니다."

"벌써 말입니까?"

"네. 라고스의 항구에 있던 식량 창고에 있던 곡식 때문에······."

하필 항국에 수출을 위해 선적해둔 식량을 로커스트들이 전부 먹어 치웠다. 아무리 먹이가 있다고 해도 엄청난 번식력이었다. 몇십만 마리였던 숫자가 며칠 만에 10억에 가깝게 늘어났다.

"그리고 로커스트의 몸에 점점 노란색 반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음······ 진화가 가까워지는 것 같군요."

테오에게 로커스트의 수가 늘어나면 점점 색이 변하며 진화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진화를 하면 정말 힘들어진다.

그린 로커스트일 때는 일반 메뚜기와 차이가 없어 어린애도 쉽게 죽일 수 있지만, 노랑색인 옐로우 로커스트로 진화하면 성인도 쉽게 죽일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

"일단 대파의 이파리를 잘라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의 국경을 감싸는 방어선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서둘러 사람들을 구해 방어선을 만들겠습니다!"

응구기가 대답을 하고는 서둘러 인부들을 고용해 케냐에 심은 견고한 칼날 대파의 이파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위잉.

수백 대의 그라인더가 돌아가며 칼날 이파리를 잘라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의 국경으로 옮겨 로커스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일부 로커스트들이 항구의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퍼지는 중이었다.

***

[탑 99층에 도착했습니다.]

음머!

웨이포인트를 지키고 있던 우마왕이 세준을 반겼다.

"네. 오랜만이네요."

세준은 우마왕과 간단히 안부를 나누고 블랙 미노타우루스 우일이를 타고 서둘러 농장으로 향했다.

그때

[탑의 관리자가 돌아와서 기쁘다고 말합니다.]

"응. 에일린도 잘 있었어?"

[탑의 관리자가 자신은 잘 지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응? 왜?"

묻는 순간 세준은 아차! 했다. 메시지는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세준은 뒤늦게 메시지에서 지독한 한기를 느꼈기 때문.

'괜히 물어본 것 같은데······.'

세준이 우일이의 머리 위에서 불길함에 몸을 떨고 있을 때

[탑의 관리자가 그대가 들고 다니는 뇌 속성 물건 안에 들어있는 그림의 여자가 누군지 묻습니다.]

에일린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며 물어왔다.

"뇌 속성 뭐?"

[탑의 관리자가 그 여자 누구야?!라고 빽 소리 지릅니다.]

메시지에서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

"그 여자?"

그렇게 에일린과 대화하는 사이

음머어!

분위기가 심각함을 느낀 우일이가 빠르게 달려 세준을 농장에 두고 서둘러 돌아갔다.

그리고

"아! 뇌 속성 물건이 스마트폰을 말한 거구나."

전원이 들어온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면서 에일린이 말한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의 여자는 걸그룹 달빛요정의 세라라는 여자인데······."

[탑의 관리자가 그대는 그 여자랑 무슨 관계냐고 초조해하며 묻습니다.]

"무슨 관계? 아무 관계도 아닌데? 그냥 팬?"

[탑의 관리자가 팬이 뭐냐고 묻습니다.]

찌릿.

옆에서 카이저가 세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바로 저승행이다. 해명을 잘 해야 했다.

"음······ 잘 되라고 응원해주는 사람?"

[탑의 관리자가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어?! 진짜?"

생각보다 너무 쉽게 오해가 풀렸다.

[탑의 관리자가 불쌍한 사람이 잘 되게 응원해주는 사람을 팬이라고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바탕 화면에서 세라가 입고 있던 옷은 찢어진 스키니 청바지에 상의는 루즈한 후드티.

지구의 패션을 모르는 에일린의 입장에서 세라는 천 쪼가리 살 돈도 없어 구멍난 바지를 그냥 입고 일단 걸칠 수 있의 상의를 주워 입은 거지였다.

"어?! 그······ 그렇지! 맞아! 그거야!"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세라의 팬이 됐을 때는 인기가 크게 없었으니까. 조금 불쌍했을지도?

[탑의 관리자가 자신이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아니야.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것보다 에일린 주려고 이거 가져왔어. 바나나라는 거야."

세준이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탑의 관리자가 고맙다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나중에 스마트폰의 바탕화면을 자신의 사진으로 바꿔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 그러지 뭐. 내가 나중에 잘 찍어줄게."

세준이 흔쾌히 승낙했다. 거대한 검은 용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하면 멋있을 것 같았다.

[탑의 관리자가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위기를 무사히 넘긴 세준이 집 앞 밭에 탑 77층에서 가져온 망고 씨앗과 수박 씨앗을 심었다. 동물들이 먹은 씨앗도 전부 챙겼기에 망고 씨앗은 200개, 수박 씨앗은 3000개 정도 됐다.

쏴아아.

"잘 자라라."

그렇게 세준이 망고와 수박을 심은 자리에 물을 주며 씨앗들이 잘 자라나길 응원하고 있을 때

꾸엥!

[아빠 나 왔다요!]

꾸엥이가 도착해 세준의 다리를 안았다.

"어?! 너 어떻게 벌써 왔어?"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때

"뀻뀻뀻. 저랑 같이 광속 상인 통로를 타고 왔어요."

꾸엥이의 뒤에 있어 가려져 있던 이오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용들에게 탑 99층에 마탑을 세우는 것을 허락받은 이오나는 바로 탑 77층으로 세준의 허락을 받기 위해 내려갔고 거기서 꾸엥이를 만나 세준이 탑 99층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올라온 것이다.

"세준 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이오나가 탑 99층에 마탑을 세우는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

탑 75층 상점 구역.

"땅문서는 어디서 구입하는 것이냥?!"

헌터들과 빠르게 거래를 마친 테오가 상점 구역을 돌아다니며 땅문서를 어디서 사는지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건 유랑 상인 협회 본부에 물어보면 편해. 보통 땅문서 거래 중개를 협회에서 하거든."

"고맙다냥!"

정보를 얻은 테오가 감사를 표하고 서둘러 유랑 상인 협회 본부로 향하려 할 때

"대신 중개 수수료가 좀 비싸. 거기다 최우수 유랑 상인만 땅문서를 구매할 수 있어. 어때? 마침 나 땅문서 팔 생각이었는데 나랑 직거래 안 할래?"

뱀의 얼굴을 한 상인이 친절하게 설명하며 테오에게 물었다.

하지만

"거절한다냥!"

테오가 칼같이 거절했다.

"그래. 수수료가 한두 푼이······ 뭐?!"

테오가 거절할 줄 몰랐던 뱀 상인이 당황했다.

"박 회장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상인과는 거래하지 말라고 했다냥! 그리고 나는 이제 곧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되실 몸이다냥!"

테오가 그렇게 말하며 유랑 상인 협회 본부로 향했다.

그리고

"최우수 유랑 상인으로 승급하겠다냥!"

직원 앞으로 가 당당하게 외쳤다.

최우수 유랑 상인의 승급 조건은 1000만 탑코인. 하지만 자신은 오늘까지 거래로 총 누적 판매 금액이 1500만 탑코인을 넘었다. 가뿐하게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될 수 있는 조건.

하지만

"안 됩니다."

"왜냥?!"

거절당했다.

135화. 그럼 이 배는 뭘까?

135화. 그럼 이 배는 뭘까?

"테오 님은 아직 자격이 모자랍니다."

"무슨 소리냥?! 난 이미 최우수 유랑 상인의 조건을 충족했다냥! 날 무시하는 것이냥?!"

직원의 말에 테오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화를 냈다. 자신을 호구 취급하는 게 분명했다. 호구 취급은 참을 수 없다냥!

'부하를 부를 거다냥!'

테오가 이오나, 꾸엥이, 엘카, 헤겔, 블랙 미노타우루스들 중 누구를 불러 저 직원을 혼내줄지 고민할 때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총 누적 판매 금액이 1000만 탑코인을 달성하는 것 외에 여기 5가지 자격 조건 중 3가지를 만족하셔야 합니다."

직원이 최우수 유랑 상인의 자격 요건이 자세히 적힌 종이를 테오에게 건넸다.

"그런 게 있었냥?!"

테오가 서둘러 종이를 읽었다.

[최우수 유랑 상인 자격 요건]

1.가진 자본이 500만 탑코인 이상 있을 것.

2.직원을 5명 이상 고용할 것.

3.독점 상품을 3개 이상 확보할 것.

4.취급 상품이 100가지 이상일 것.

5.판매 금액이 월 10만 탑코인 이상인 거래처가 5곳 이상일 것.

*위 5개 조건 중 3개 조건을 갖추시고 유랑 상인 협회 본부로 찾아오시면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건 게 있었냥?!"

"네. 보통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되려는 상인의 수가 적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몰랐다냥."

"그럴 수도 있죠.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되려는 분들이 선호하는 조건은 1, 2, 4번입니다.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직원이 테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덕분에 테오가 부하를 부르르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1, 2, 4번 말이냥?"

직원이 말한 조건은 전부 돈으로 해결 가능한 조건. 1번 조건은 당연했고 직원 5명 고용과 취급 상품 100가지를 확보하는 것도 돈으로 가능했다.

"흠······ 테오 님 같은 경우는······ 일단······."

테오가 종이를 읽는 동안 직원이 테오의 활동 내역을 살펴보며 모자란 자격을 갖춰 다시 오라고 말하려 했지만

"자. 1, 2, 3, 5번을 충족했다냥!"

테오가 직원에게 말하며 봇짐에서 자격을 증명할 문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네?! 벌써요?!"

"그렇다냥! 일단 500만 탑코인이다냥!"

테오가 돈을 꺼내 1번 조건을 충족했다.

그리고

"여기 고용 계약서다냥!"

고양이 인턴과의 계약서도 꺼냈다. 총 8마리와의 고용 계약. 가뿐히 2번 조건도 충족했다.

"이건 아이템 효과가 있는 농작물이다냥! 그리고 이건 나의 거래처 단골들이다냥!"

세준의 농작물은 10개 넘어갔기에 독점 상품 3개 이상의 조건 충족. 거기다 테오는 단골 길드와 헌터들이 많았기에 월 10만 탑코인 이상의 거래처도 20곳이 넘었다.

그렇게 테오가 3번, 5번 조건도 충족하자

"오! 대단하십니다!"

직원은 테오처럼 이렇게 바로 조건을 충족하는 유랑 상인을 본 적이 없기에 테오를 대단하게 바라봤다.

"푸후훗. 당연하다냥! 난 대단하다냥! 왜냐하면 난 위대한 검은······."

테오가 우쭐해하며 자기의 정체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만요!"

직원이 서둘러 어딘가로 달려갔다.

"냥?! 내 소개 안 듣고 어디 가냥······?"

테오가 또 자기 소개를 제대로 못 해 침울해할 때

"여기 최우수 유랑 상인임을 증명하는 패입니다."

직원이 황금으로 만들어진 황금패를 가지고 왔다.

"이제부터 광속 상인 터널 사용 신청을 하시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청하실 건가요? 신청 비용은 10만 탑코인입니다."

"여기 있다냥!"

테오가 흔쾌히 10만 탑코인을 냈다. 요즘 세준에게 받는 인센티브만 몇십만 탑코인. 테오도 이제 부자였다.

"그리고 여기다 자신을 소개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습니다. 뭐라고 새길까요?"

"푸후훗. 잘 들어라냥."

테오가 황금패에 새길 자기를 소개할 문구를 직원에게 말했다.

"정말 이렇게 적으실 겁니까?"

난처한 표정을 한 직원이 황금패에 새겨진 문구를 보며 물었다.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노란 고양이 테오 박]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라고 사칭하다 검은 용을 추종하는 세력에게 걸리면 정말 뼈도 못 추릴 수 있었다.

"그렇다냥!"

"휴우.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직원이 황금패를 가지고 다시 마법사를 찾아가 마법 처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마법사가 강화, 보존, 귀속 마법 등을 새겼다.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테오가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됐다.

'내가 드디어 최우수 유랑 상인이다냥!'

테오가 몇 달 전 스카람에게 사기를 맞았던 때의 자신을 생각하며 감격했다.

그리고

'이건 다 박세준의 무릎 덕분이다냥!'

자신의 진리인 세준의 무릎을 한 번 찬양하고

"그럼 땅문서를 보여달라냥!"

드디어 본래 목적인 땅문서 구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거 어떡하죠? 최근에 땅문서 거래가 일시 중지된 상태입니다."

"무슨 소리냥?!"

"그게······ 요즘 땅문서를 가진 사람을 죽이고 땅문서를 뺏는 강도가 나타나 당분간 고객의 안전을 위해 거래를 중지시킨 상황입니다."

"그럼 땅문서를 구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냥?"

"음······ 아! 확률은 낮지만 테오 님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냥?!"

"원래 저희 유랑 상인 협회는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된 지 하루 안에 5가지 자격 요건을 모두 갖추시면 협회의 유실물 창고에서 원하는 물건을 하나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자격을 드립니다."

직원이 말한 건 지금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전통. 직원도 30년 전 자신의 사수에게 들은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 거였다.

'100년 전인가 사수가 유실물 창고 안에서 땅문서가 나온 적이 있다고 했지.'

그래서 당시 많은 상인들이 유실물 창고로 들어가기 위해 5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데 열성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금세 식었다고······

왜냐하면 협회의 유실물 창고는 돈이 되는 물건은 거의 다 처분하고 애매한 물건들만 모아둔 장소. 노력에 비해 돈이 되지 않았다.

"하겠다냥!"

테오는 자신의 앞발이 다시 빛을 발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만 기다려라냥!"

테오가 서둘러 밖으로 나가 취급 물품 100개를 만들기 위해 물건을 닥치는 대로 샀다.

"깎아달라냥!"

물론, 3번 깎기는 기본 옵션이었다.

1시간 후.

"여기 취급 물품 100개 만들어 왔다냥!"

테오가 물건을 구매하고 협회 본부로 돌아와 최우수 유랑 상인의 5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축하드립니다. 따라오시죠."

직원이 테오를 데리고 본부 뒤에 돌로 지어진 유실물 창고로 안내했다. 건물은 강력한 마법에도 무너질 일이 없을 정도로 견고해 보였다.

"누구냐?!"

유실물 창고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코뿔소 경비가 다가오는 직원과 테오를 보며 창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타루 님. 저는 본부 직원 시온이라고 합니다. 협회 전통에 따라 유실물 창고에 들어갈 자격을 얻으신 테오 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흠······ 전통이라······ 재밌겠군. 좋다."

쿵.

타루가 거대한 유실물 창고의 문을 열자

화르륵.

유실물 창고 안의 횃불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들어가라. 거의 100년 만에 찾아왔으니 특별히 물건 2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고맙다냥! 그럼 3개로 하자냥!"

타루의 호의에 테오가 은근히 한 개를 더 추가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자신의 앞발을 잡아끄는 힘을 여러 개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하하하. 당돌하구나. 좋다! 3개로 하지!"

창고 안에서 아무리 많이 가지고 나와봐야 운이 없다면 쓰레기만 가지고 나오기에 타루는 흔쾌히 허락했다.

"고맙다냥!"

타루의 말에 테오가 신나 하며 후다닥 유실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

"탑 99층에 마탑을 세우겠다고?"

"네."

"좋아. 허락할게."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여기에 마법사들이 상주하게 되면 필요할 때 마법을 써달라고 할 수 있기에 농사에 도움을 된다.

"뀻뀻뀻!"

세준의 허락에 이오나가 기쁨의 소리를 냈다.

"근데 탑을 지을 위치는 정했어?"

"네! 남쪽을 생각하고 있어요."

"남쪽?"

"네!"

이오나는 불개미들을 쓸어버리고 그곳에 마탑을 지을 생각을 했다.

"인원은?"

"300명인데 좀 더 늘어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세준이 이오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꾸엥!

옆에서 기다리다 지루해진 꾸엥이가 간식 주머니에서 바나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아껴뒀던 마지막 바나나였다.

"뀻? 그건 뭔가요?"

바나나의 달콤한 냄새가 퍼지자 이오나가 바나나를 보며 물었다.

"바나나라는 거야. 먹어 볼래?"

세준이 아공간 창고에서 바나나 하나를 집어 껍질을 까고 작게 잘라 이오나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이오나가 세준에게 인사를 하고 바나나를 덥석 물었다.

그리고

"뀻!뀻!뀻!"

기쁨의 울음소리를 내며 이오나가 짧은 팔다리로 바나나를 꼭 끌어안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때

꾸엥······ 꾸엥······

자신의 바나나를 다 먹은 꾸엥이가 몰래 세준의 아공간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에 있는 바나나를 노리는 것.

철컹.

세준은 꾸엥이가 안으로 들어간 것도 모르고 아공간 창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제 일해야지."

지난 며칠간 자신이 없었던 농장을 둘러보며 일을 시작했다.

삐익!

께엑!

농장을 돌아다니자 그동안 두 용의 관리를 받느라 힘들었던 토끼들과 버섯 개미들이 세준을 격하게 반겼다. 다행히 두 용들이 농장을 잘 관리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농장을 살핀 세준이 저장고로 향했다.

뺘아!

저장고를 지키고 있던 토끼가 세준을 반겼다.

"잘 지냈어?"

뺘아!

땡그랑.

토끼가 돈을 꺼내며 대답했다.

"뭐? 카이저 님과 켈리온 님이 저장고에 있는 농작물을 가져가고 돈을 냈다고?"

'좋은데?'

알아서 돈 내고 물건을 가져가다니 이 정도면 거의 마트였다. 그렇게 토끼와 대화를 나눈 세준이 저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 영약이다!"

농작물을 살펴보며 저장고의 끝까지 들어가자 버섯 개미들이 키운 영약 버섯 몇 개가 따로 소중히 보관돼 있었다.

[영약 : 송이버섯]

[영약 : 느타리버섯]

[영약 : 표고버섯]

등급은 전부 C급으로 모든 스탯 +1의 효과가 있었다.

"나중에 요리에 넣어서 먹어야지."

영약 버섯 전골. 이름만 들어도 몸보신이 될 것 같은 이름이었다. 세준은 영약 버섯이 몇 개 더 생기면 요리를 만들기로 하고

철컹.

아공간 창고를 열었다. 영약을 창고에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꾸로롱.

안에서 꾸엥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어??"

여기서 왜 꾸엥이의 코 고는 소리가? 세준이 의아해하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자 대(大)자로 잠들어 있는 꾸엥이가 보였다. 바나나를 몇 개나 먹은 건지 배가 아주 빵빵했다.

'5000개는 먹었겠네.'

대략 창고에 있던 바나나를 보며 세준이 꾸엥이가 먹은 바나나 수를 가늠했다.

꾸엥······

세준의 인기척에 꾸엥이가 눈을 비비며 눈을 떴다.

그리고

꾸엥······

은근슬쩍 세준의 다리를 안고 다시 자는 척을 하는 꾸엥이.

"꾸엥아 여기 있던 바나나가 어디로 갔을까?"

세준이 매서운 눈으로 꾸엥이를 바라보자

꾸엥······

[꾸엥이는 모른다요······.]

꾸엥이가 세준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럼 이 배는 뭘까?"

세준이 꾸엥이의 빵빵한 배를 잡으며 물었다.

······

대답을 못 하는 꾸엥이.

"잡았다! 바나나 도둑! 부부부붑."

세준이 꾸엥이의 터질 듯이 빵빵한 배에 배방구를 하며 바나나 도둑을 응징했다.

꾸헤헤헤.꾸엥?

[헤헤헤. 근데 꾸엥이가 바나나 먹은 거 어떻게 알았다요?]

증거를 안 남기기 위해 바나나 껍질까지 다 먹은 꾸엥이가 정말 궁금해하며 물었다.

"흐흐흐. 나는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러니까 아빠한테 거짓말하면 혼나! 알았어?!"

세준이 엄숙하게 말하며 꾸엥이의 빵빵한 배를 쓰다듬었다.

136화. 그러다 아빠 죽는다요!

136화. 그러다 아빠 죽는다요!

"뀽-여긴?!"

이오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온통 붉은 세상.

그리고

-이오나, 악몽의 세계에 어서 와라. 오래 기다렸다. 크크크.

들려오는 끈적하고 불쾌한 목소리. 고대의 마왕 나이트메어의 목소리였다. 이오나가 악몽에 들어온 것이다.

-오늘도 나를 즐겁게 해다오. 크크크.

나이트메어의 말과 함께 검은 몽마 1만 마리가 나타났다. 그중에는 검은색의 형체가 아닌 고노바와 3명의 마탑주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오나를 발견하자마자

"너 때문이야!"

"우리를 내보내 줘!"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이오나를 저주하며 달려들었다.

-내가 특별히 그들의 기억을 그대로 두었노라.

나이트메어의 즐거운 목소리.

하지만

"뀻뀻뀻."

즐겁기는 이오나도 마찬가지. 지금 이오나는 세준의 무릎에서 자는 상태. 세준의 무릎에서 자면 악몽의 힘이 아주 약해진다.

덕분에 이오나도 고노바와 마탑주들을 패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게 되살아난 적을 수백 번 죽였을 때

"어?!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적들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왜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 악몽에서 버티는 것 뿐. 악몽의 세상에 들어온 이상 나이트메어가 만족할 때까지 즐거움을 줘야만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트메어의 즐거움은 누군가의 고통. 그게 악몽의 주체인지, 몽마인지는 상관없었다. 나이트메어는 자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을 즐겼다.

"뀨-뀨-뀨-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겠죠! 불의 힘이여. 나의 적을 죽을 때까지 태워라! 헬파이어! 바람의 힘이여. 나의 적을 날려버려라! 토테이도!"

이오나가 왼손에는 헬파이어를, 오른손에는 토네이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라! 지옥을 삼키는 불바람!"

양손의 마법을 융합해 새로운 마법을 발동시켰다. 헬파이어와 토네이도 마법이 합쳐지며 화염을 두른 용권풍이 일어나 몽마들을 빨아들이고 불태웠다.

탑 안이었다면 층의 10% 정도는 파괴할 정도의 대규모 마법. 하지만 이곳은 악몽 안이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이오나가 대파괴의 마법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악몽 안에서는 아무리 큰 마법을 써도 주변에 피해가 없었기에 이오나는 악몽 안에서 여러 마법을 연구하고 실전에서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이오나가 적들을 죽이며 악몽을 견뎌냈다.

***

"······!"

세준이 무릎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눈을 떴다. 테오가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묵직함의 정도가 달랐다. 거의 무릎에 쇳덩이를 올린 느낌.

"뭐지?"

세준이 몸을 일으켜 무릎을 보자

꾸로롱.

"꾸엥이?"

세준의 무릎에서 자고 있는 꾸엥이가 보였다. 새벽에 몰래 들어온 것 같았다. 평소라면 테오가 무릎을 차지하고 있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갑자기 테오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괜히 보냈나?"

'그때는 욱하는 마음에 홧김에 보내버리기는 했는데······ 아니 그래도 한 번씩 거래를 해야 했으니까······.'

세준이 애써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고 있을 때

"뀨-뀨-뀨-"

바닥에서 들려오는 이오나의 화난 울음소리. 꾸엥이가 밀어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왜냐하면 이오나는 자기 전 접착 마법을 사용하고 자기 때문.

"꾸엥이 녀석······ 이러다 이오나한테 맞을 텐데······."

나중에 꾸엥이가 자신을 밀어낸 걸 이오나가 알면 꾸엥이를 으슥한 데로 데려가 마법으로 팰지도 몰랐다. 운석 마법으로 딱밤을······.

"그건 보고 싶지 않아."

세준이 서둘러 이오나를 들어 자신의 무릎에 올렸다.

"뀻뀻뀻."

금세 기분 좋게 변하는 울음소리.

그때

꾸엥······

퍽!

지잉.

옆에 뭔가가 있자 냅다 발로 이오나를 차는 꾸엥이. 밀어낸 게 아니라 찬 거였어?! 이오나가 알면 정말 운석 딱밤을 때릴지도 몰랐다. 덕분에 이오나의 주변에 실드 마법도 걸렸다는 걸 발견한 세준이었다.

"꾸엥아 일어나."

꾸엥······

"아빠랑 같이 누워서 자자."

어쩔 수 없이 세준은 꾸엥이를 깨워 옆에 눕히고 이오나에게 무릎을 줬다.

"뀻뀻뀻."

역시 무릎 위에서만 화난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 이오나였다.

꾸엥······

[아빠가 토닥토닥해주면 좋겠다요······.]

옆에 누운 꾸엥이가 세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에 올리며 말했다.

"그래."

토닥.토닥.

세준이 꾸엥이의 배를 두드려주자

꾸엥······

[아빠 낮에 바나나 다 먹어서 미안하다요······.]

졸린 목소리로 낮의 일을 사과하는 꾸엥이. 이게 마음에 걸려 새벽에 찾아온 모양이었다.

"괜찮아. 대신 다음에는 아빠한테 말하고 먹어. 알았지?"

꾸엥······ 꾸엥······

[알겠다요······ 행복하다요······.]

세준이 괜찮다고 하자 꾸엥이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잠들었다.

***

"으으!"

꾸엥이를 재우다 다시 잠든 세준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일어나니 꾸엥이도 이오나도 없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대신 온몸이 찌뿌둥한 게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꾸엥이에게 눌려 있던 덕분이었다.

"오늘은 몸보신을 좀 해야겠어."

이렇게 빨리 먹을 줄은 몰랐지만, 세준은 어제 챙겨둔 영약 버섯으로 영약 버섯전골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그래서 씻자마자 바로 버섯 개미들의 집으로 찾아갔다. 영약 버섯이 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세준이 버섯 개미의 집으로 가자 거대한 버섯 머리를 한 거대한 건물 여러 채가 보였다. 버섯 머리 중간중간 출입할 수 있는 구멍들이 있는 형태의 집이었다.

께엑!

세준이 자신들의 집에 오자 세준을 반기는 버섯 개미들. 버섯 개미들이 서로 자신의 등에 난 버섯을 수확하라고 세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 반가워. 근데 오늘은 영약 버섯 따러 왔어. 혹시 영약 버섯 있어?"

께엑······

세준의 말에 실망하는 버섯 개미들이 더듬이를 축 늘어트렸다. 없구나?

"아니. 꼭 영약 버섯이 필요한 건 아니고······ 어?! 이건 내가 먹고 싶었던 양송이버섯?!"

실망한 버섯 개미들을 보자 마음이 약해진 세준이 버섯 개미들의 등에 딴 버섯을 수확하며 열심히 호들갑을 떨었다.

께엑!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버섯 개미들은 세준이 버섯을 딸 수 있도록 등을 대줬다.

그렇게 버섯 개미들의 집에서 1시간 정도 버섯을 수확하고 나온 세준.

"아이고 죽겠다."

몸이 더 안 좋아졌다.

"그냥 있는 것만 넣고 먹어야지."

괜히 더 먹으려다 고생만 더 한 세준이 영약 찾기를 포기하고 취사장으로 향했다.

그때

꾸엥!

집 앞 비석 앞에서 뭔가를 보고 있던 꾸엥이가 세준을 불렀다.

"꾸엥이 어디 있었어?"

꾸엥!꾸엥!

[이오나 누나랑 불꽃이 누나랑 동굴에서 생선 먹으면서 놀았다요! 땅콩도 먹었다요!]

"땅콩?! 딱밤 말하는 거 아니지?"

세준은 혹시 이오나가 꾸엥이의 만행을 알아차리고 운석 마법을 날린 건 아닐까하며 꾸엥이의 머리를 만지며 혹이 있나 찾았다.

꾸엥?꾸엥?

[딱밤이 뭐다요? 맛있는 거다요?]

꾸엥이가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세준의 손에 머리를 비비며 물었다.

"아니! 딱밤은 아주 무시무시한 거야. 그러니까 누가 딱밤을 준다고 하면 피해야 해 알았지?"

꾸엥!꾸엥?

[알았다요! 근데 아빠 이것 뭐다요?]

꾸엥이가 비석 옆에 있는 식물 2개를 가리켰다. 식물에는 검정, 노랑, 빨강, 초록, 파랑. 다섯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콩깍지 각각 하나씩 맺혀 있었다.

"아. 이거 오색콩 심은 거구나! 엄청 빨리 자랐네?"

세준이 오색콩 씨앗을 심은 지 이제 2주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이미 세준의 무릎까지 자라난 오색콩나무. 거기에 벌써 콩깍지까지 생겼다.

"콩이 원래 이렇게 빨리 자라나?"

세준이 의아해하며 콩깍지를 땄다. 콩깍지가 통통한 게 안에 알이 제대로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콩깍지를 열자

[오색콩 4개를 획득했습니다.]

[체력 튼튼 빨강콩을 획득했습니다.]

[수확하기 Lv. 6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경험치 700을 획득했습니다.]

"응?!"

오색콩 외에 다른 콩도 들어있었다.

"체력 튼튼 빨강콩?"

이상한 이름의 콩. 세준이 우선 오색콩을 살펴봤다.

[오색콩]

탑 안에서 자란 다섯 가지 색을 가진 콩으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농사에 익숙한 농부가 재배해 맛과 효율이 좋아졌습니다.

밭에 심으면 주변 땅의 지력을 올려줍니다.

가끔 특별한 능력을 가진 5가지 콩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90일

등급 : C

"특별한 능력?"

아마 이상한 이름의 빨강콩을 말하는 것 같았다. 세준이 이어서 빨강콩도 살펴봤다.

[체력 튼튼 빨강콩]

탑 안에서 자란 빨강색 콩으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농사에 익숙한 농부가 재배해 맛과 효율이 좋아졌습니다.

섭취 시 체력 스탯이 1분 동안 100% 증가합니다.

심어도 뿌리가 나지 않는 콩입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90일

등급 : C

"100퍼센트?!"

비록 1분으로 유지 시간은 짧지만, 스탯을 두 배로 뻥튀기시켜줄 수 있다니! 처음에 너구리 족장 에밀에게 1만 탑코인을 주고 살 때만 해도 굉장히 고민했었는데······

"엄청 좋은 거였잖아!"

세준은 이어서 다른 오색콩나무에 있는 콩깍지도 따서 콩을 수확했다. 이번에는 오색콩 4개에 힘 불끈 노랑콩 1개가 나왔다. 노랑콩은 당연히 1분간 힘 스탯을 100% 올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세준은 바로 비석 주변에 오색콩 8개를 심었다. 좋은 게 있으면 심어서 늘릴 수 있는 게 농사의 장점이었다.

그렇게 오색콩을 심고

"한 번 먹어볼까?"

오물오물.

세준이 노랑콩과 빨강콩을 씹어 삼켰다. 콩의 풋내가 나기는 했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강하게 났다.

[힘 불끈 노랑콩을 섭취했습니다.]

[힘 스탯이 1분간 100% 증가합니다.]

[힘 스탯이 20.8 증가했습니다.]

[체력 튼튼 빨강콩을 섭취했습니다.]

[체력 스탯이 1분간 100% 증가합니다.]

[체력 스탯이 21 증가했습니다.]

먹자마자 스탯이 오르며 힘이 솟고 몸이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꾸엥이 한 번 안아볼까?!"

늘어난 힘과 체력에 자신만만해진 세준이 꾸엥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꾸엥!

[그러다 아빠 죽는다요!]

머뭇거리며 안기기를 거부하는 꾸엥이.

"괜찮아! 자 아빠한테 살살 안겨!"

퍽.퍽.

세준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 스탯이 두 배로 늘어났지만, 강하게 안기는 건 두려웠다.

꾸엥!

[알았다요!]

꾸엥이가 세준을 향해 조심스럽게 점프했다.

쿵.

퍽!

"읍!"

꾸엥?!

[아빠 괜찮다요?!]

세준의 신음 소리에 꾸엥이가 급하게 물었다. 그래도 체력이 40을 넘겼더니 권능 : 부서지지 않는 육체가 발동하지는 않았다.

"괘······ 괘찮아!"

세준이 간신히 대답하며 꾸엥이를 잡았다. 하지만 대답과 다르게 점점 미끄러져 내려가는 꾸엥이. 세준의 힘으로 꾸엥이를 붙잡기는 어려웠다.

"미안하다."

세준이 바닥에 궁둥이가 닿은 꾸엥이를 보며 말했다.

꾸엥!꾸엥!

[괜찮다요! 아빠 품에 몸을 날려본 거로 만족한다요!]

"크윽."

또 이쁜 소리! 꾸엥이의 말에 세준이 감동했다.

"기대해. 아빠가 꼭 꾸엥이의 점프 허그를 받아줄 테니까!"

세준이 굳게 결심하며 말했다.

'앞으로 힘과 체력 늘려주는 농작물은 양보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결심하며 세준이 취사장으로 들어가 영약 버섯전골을 만들기 시작했다.

꾸엥!

[맛있는 냄새 난다요!]

음식 냄새를 맡고 춤을 추는 꾸엥이.

"끄응."

'양보는 내일부터 안 해야겠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기뻐하는 꾸엥이를 보니 혼자 먹을 자신이 없었다. 절대 뺏길 거 같아서 먼저 주는 거 아니다!

그렇게 세준이 꾸엥이와 아점으로 영약 버섯전골을 먹고 있을 때

쾅!

"박 회장! 내가 왔다냥!"

테오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취사장의 문을 열고 나타났다.

137화. 부회장이 되다.

137화. 부회장이 되다.

탑 75층 유실물 창고 앞.

"타루 님, 저 왔습니다."

악어 머리를 한 경비가 유실물 창고로 근무 교대를 위해 다가왔다.

"레켄, 교대 시간까지 아직 1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왔군."

"캬캬캬. 타루 님께서 피곤하실까 봐 좀 일찍 왔습니다. 여기 술이랑 요깃거리도 챙겨왔으니 돌아가서 드세요."

"오! 뭐 이런 걸 다······ 자네는 정말 예의도 바르고 성실하군. 요즘 젋은이들과 다르게······."

"캬캬캬. 감사합니다. 그럼 어서 들어가서 쉬십시오."

"그래. 아! 근데 오늘은 특이 사항이 있어."

"특이 사항이요?"

"그래. 오랜만에 유실물 창고에서 뽑기를 하겠다고 찾아온 유랑 상인이 있었지 뭐야."

타루가 말하며 레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타루의 예상대로 확 구겨지는 레켄의 얼굴.

'역시 여기에 노리는 게 있었군.'

타루가 쓰게 웃었다. 유랑 상인 협회에서 유실물 창고 경비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한직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들 이곳에서 일하기를 꺼렸다.

덕분에 150년 전 타루가 유랑 상인 협회 협회장 메이슨의 낙하산으로 이곳에서 일할 때 유랑 상인 협회의 경비들은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반겼다.

그리고 타루 이후 140년 만에 유실물 창고의 경비를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지원한 존재가 레켄이었다.

레켄은 성실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타루의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이 레켄이 유실물 창고에서 뭔가를 노리고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루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조용한 이곳에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 그래서 뭘 가져갔습니까?"

"글세······ 문서 2개랑 웬 막대기처럼 생긴 농기구 하나?

"농······ 농기구 말입니까?!"

농기구라는 말에 안색이 변하는 레켄.

'흐음······ 농기구를 노렸던 거군.'

"그럼 수고하게."

타루가 레켄을 남겨두고 떠났다.

'곧 그만두겠군.'

타루는 곧 레켄이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가 레켄이 준 술과 음식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 고양이 녀석 진짜 당돌하군. 내가 누군지 알고.'

잠자리에 누운 타루가 자신 앞에서 겁도 없이 흥정하던 테오를 떠올렸다.

'하하하. 내가 예전에 좀 날렸던 걸 알면 무서워하려나?'

타루는 한때 탑 97층의 보스였던 존재. 굳이 말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 벌벌 떠는 테오를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테오는 타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겁이 없었다. 거래할 일이 있으면 우마왕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흥정할 수 있는 테오였다.

물론 그 겁 없음의 밑바탕에는 세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

"테오, 빨리 왔네?"

"푸후훗. 당연하다냥! 나는 유능하니까 빠른 거다냥!"

한껏 거만해진 테오가 세준의 무릎으로 올라오며 말했다.

"뭐야?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거만해?"

"푸후훗. 다 이유가 있다냥! 이것 보라냥!"

세준에게 빨리 자랑하고 싶었던 테오가 서둘러 황금패를 꺼냈다.

"오! 이게 뭐야?"

"최우수 유랑 상인임을 증명하는 황금패다냥! 나 이제 최우수 유랑 상인이다냥!"

"테 사장, 대단하네."

"푸후훗. 당연하다냥! 그러니까 나 이제 테 부회장 시켜달라냥!"

세준을 이어 이인자가 되고 싶은 테오. 그러기 위해서는 부회장이 돼야 했다.

하지만

"그건 안 되지."

단숨에 거절하는 세준.

"왜냥?! 최우수 유랑 상인인데도 테 부회장 안 돼냥?

"당연하지. 부회장이 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그럼 어떻게 해야 테 부회장이 될 수 있냥?"

"탑 최고의 유랑 상인이 돼. 그러면 정식으로 테 부회장 시켜줄게."

"알았다냥! 나 최고의 유랑 상인이 돼서 테 부회장 될 거다냥!"

테오는 오랜만에 동기 유발을 받고 의욕이 넘쳤다. 그렇다고 테오가 테 부회장이 되는 걸 탑 최고의 유랑 상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 박 회장이 좋아할 물건을 가져 왔다냥! 그러니까 테 부회장 며칠 시켜달라냥!"

테오가 세준을 상대로 흥정을 걸었다.

"그래? 일단 선물을 보고 정할게."

테오가 가져온 물건이면 100% 믿을 만했지만, 세준은 일부러 여지를 두었다. 테오가 흥정을 건 순간부터 테오와 자신은 승부를 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가르쳤는데 질 수는 없지.'

"푸후훗. 자! 여기 땅문서다냥!"

테오가 자신감에 넘치며 가죽 두루마리 문서 2개를 세준에게 건넸다.

"오! 땅문서를 2개나 구한 거야?!"

세준이 흥분하며 땅문서를 확인했다. 몇 층의 땅문서일까? 정말 기대됐다.

하지만

[가죽 문서]

???

등급 : E

[가죽 문서]

???

등급 : D

미감정 아이템이었다. 그래도 땅문서와 모양이 같았기에 세준도 테오도 땅문서라는 건 의심하지 않았다.

"푸후훗. 이제 나 테 부회장이냥?"

테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끝까지 확인은 해야지."

테오에게 지는 것 같은 기분에 세준이 일단 시간을 끌었다.

"마음껏 확인하라냥! 푸후훗. 어차피 박 회장은 날 테 부회장 시켜줄 수밖에 없다냥!"

테 부회장이 될 것을 확신하는 테오가 우쭐해하며 말했다.

'으······ 밉다. 미워."

테오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전혀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테오에게 유리했다.

그때

꾸엥!

[큰형아 나는 선물 없다요?]

꾸엥이가 테오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나도 선물!

"냥?! 꾸엥이 선물 말이냥? 당연히 있다냥!"

원래는 없었지만, 어차피 땅문서가 있으니 테 부회장은 확보한 상태. 테오는 큰형아로서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유실물 창고에서 가지고 나온 끝에 쇠가 달린 막대기를 꾸엥이에게 주기로 했다.

꾸엥!

[큰형아 고맙다요!]

"푸후훗. 그러니까 꾸엥이는 앞으로 내 말 잘들으라냥!"

꾸엥!

테오의 말에 꾸엥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빨리 선물!

하지만

꾸엥!꾸엥!

[막대기는 꾸엥이도 있다요! 이건 아빠가 쓰면 좋게다요!]

테오가 준 막대기를 꾸엥이가 세준에게 토스했다. 결국 원래 주인을 찾아가는 막대기. 세준이 막대기를 확인했다.

[괭이]

???

사용 제한 : Lv. 10, 힘 10 이상

제작자 : 비공개

등급 : E

"괭이?"

막대기 끝에 약간 구부러지고 넓은 쇠가 달린 괭이라는 농기구였다.

"꾸엥이 고마워."

"냥?! 그 막대기 내가 준 거다냥!"

"무슨 소리야? 난 꾸엥이한테 받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냥!"

"여기 있지롱!"

그렇게 세준이 테오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꾸엥!

[이제 아빠랑 나랑 같이 막대기 있다요!]

꾸엥이는 세준과 커플 막대기가 생긴 것에 행복해 했다.

그리고

"치사하다냥! 빨리 땅문서나 확인하고 나 테 부회장 시켜달라냥!"

결국 삐진 테오가 세준을 재촉했다.

"알았어. 에일린, 이 물건들 좀 감정해줘."

[탑의 관리자가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합니다.]

에일린의 말과 함께 세준의 손에 있던 문서와 괭이가 사라졌다.

잠시 후.

[탑의 관리자가 감정을 끝냈다고 합니다.]

"어때? 땅문서 맞아?"

"맞을 거다냥!"

[탑의 관리자가 문서는 2장 모두 땅문서가 맞다고 합니다.]

"뭐?! 맞아?!"

"푸후훗! 이제 나는 테 부회장이다냥!"

세준은 실망하고 테오는 활짝 웃었다.

하지만

[탑의 관리자가 근데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이상하다고? 뭐가?"

[탑의 관리자가 이 땅문서는 검은 탑의 땅문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뭐어?! 검은 탑의 땅문서가 아니라고?"

"냥?!"

테오를 이기는 데 혈안이 된 세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대로 테오의 입꼬리는 그만큼 내려갔다.

[탑의 관리자가 일단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세준의 손에 문서 2개가 놓여졌다.

[하얀 탑의 43층 땅문서를 획득했습니다.]

[푸른 탑의 74층 땅문서를 획득했습니다.]

"아······ 아쉽네······."

"뭐가 아쉽냥?! 다른 탑의 것이라도 땅문서가 맞다냥! 나 테 부회장 시켜달라냥!"

세준의 목소리에 불길함을 느낀 테오가 다급히 외쳤다.

"아니지. 검은 탑의 땅문서만 거래의 효과가 있어."

"냥?! 그런 게 어디 있냥?!"

"흐흐흐. 당연히 여기 있지. 회장 마음인데."

"치사하다냥!"

오랜만에 세준이 갑질을 하며 기고만장한 테오를 눌러줬다.

"에일린, 근데 괭이는 왜 안 줘?"

[탑의 관리자가 탑에 등록된 아이템이 아니라 완전하게 감정이 안 됐다며 곤란해합니다.]

"응?! 탑에 등록된 아이템이 아니라고?"

[탑의 관리자가 할아버지한테 물어봤는데 위험은 없으니 일단 쓰라고 말합니다.]

세준의 손에 괭이가 나타났다.

[땅을 움직이는 전설, 마일러의 괭이를 획득했습니다.]

"어?! 전설?!"

세준이 서둘러 괭이를 확인했다.

[땅을 움직이는 전설, 마일러의 괭이]

탑이 생기기도 한참 전 땅의 힘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농사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농부 마일러의 괭이입니다.

검은 탑에 등록되지 않은 전설급 장비입니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가 있습니다.

사용 제한 : 없음

제작자 : 알 수 없음

등급 : S+

스킬 : [땅 움직이기(Master)]

[땅 움직이기(Master)]

마력을 사용해 땅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극에 이른 스킬이다.

땅 움직이기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와! 뭐야?! 꾸엥이 잘했어! 앞으로 꾸엥이는 일주일간 매일 꿀 10병씩 먹어!"

세준이 자신에게 괭이를 준 꾸엥이에게 상을 줬다.

꾸엥!

세준의 말에 만세를 하며 기뻐하는 꾸엥이. 꿀이다요!

그리고

"냥?! 그거 내가 준 거 다냥! 억울하다냥!"

꾸엥이만 상을 받는 것에 테오가 억울해했다. 재주는 자신이 부렸는데 꿀은 꾸엥이가 받았다. 얼마나 억울한지 테오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놀려먹었나?'

마음이 약해진 세준이 테오를 그만 놀리기로 했다.

"알았어. 테 사장의 공이 가장 크니까 앞으로 한 달간 테 부회장 시켜줄게!! 자. 테 부회장, 츄르 먹자."

"좋다냥!"

세준이 츄르를 까서 한 손으로는 츄르를 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테오의 배를 쓰다듬었다.

촵촵촵.

"아! 박 회장, 난 이제 테 부회장이니까 츄르를 두 개 먹겠다냥!"

츄르를 열심히 먹던 테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세준이 흔쾌히 테오의 말을 들어줬다. 부회장치고는 굉장히 하찮은 요구였다.

핥짝.핥짝.

꾸엥!

[맛있다요!]

옆에서는 꾸엥이가 세준의 아공간 창고에서 꿀 10병을 꺼내 앞발에 꿀을 찍어 맛있게 핥아먹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거래가 끝났다.

***

탑 75층 유랑 상인 협회 유실물 창고 안.

"제길 없어!!!"

타루가 떠나자 서둘러 유실물 창고로 들어와 창고를 샅샅이 뒤진 레켄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아무리 찾아도 어제 자신이 발견해 창고의 구석에 세워둔 전설의 괭이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챙겨서 떠나려고 했는데······.'

자신이 전설의 괭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몇 년이 걸렸는데······ 타루의 말대로 고양이 상인이 홀랑 가져가 버렸다.

하필 아무도 찾지 않던 유실물 창고에 오다니······ 어쩌면 자신처럼 괭이를 노리고 온 걸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평범해 보이는 농기구를 챙겨갈 리 없었다.

"감히 내 것을 가져가?!"

자신이 조사한 고대 문헌에 의하면 괭이의 주인은 그 괭이를 이용해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갈랐으며 땅의 병사 수만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한 마디로 최강의 전략 병기였다.

"그거만 있으면 탑의 최강자가 될 수 있는데! 분명 이번에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된 고양이 상인이라고 했지?"

다음날 레켄은 최근에 최우수 유랑 상인이 된 고양이 상인의 정체를 알아낸 후 유랑 상인 협회의 경비를 그만두고 사라졌다.

138화.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138화.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모두 집합!"

아침이 되자 세준이 테오, 꾸엥이, 황금박쥐와 토끼, 버섯 개미들을 수확을 앞둔 고구마밭으로 불러 모았다.

그렇게 모두가 모이자

"오늘 왜 모이라고 했는지 알아?"

세준이 마일러의 괭이가 잘 보이도록 농장 식구들의 앞에서 흔들며 물었다.

"모르겠다냥. 여기서 낮잠 잘 거냥?"

"아냐."

꾸엥!꾸엥!

[꾸엥이는 안다요! 밥 먹을 시간이다요!]

"꾸엥이 좀 전에 아침 먹었잖아."

(그······ 그럼 혼나는 시간인가요?)

일주일이 지나도 지구에 가지 못한 황금박쥐가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시간이 지나도 황금박쥐는 지구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야. 지구 좀 못 갔다고 혼내지 않아."

뱃뱃!

파닥.파닥.

세준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황금박쥐가 울며 주변을 신나게 날아다녔다. 이후로도 토끼들과 버섯 개미들이 대답했지만, 세준이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짜잔! 이게 뭔지 알아?! 바로 전설급 농기구 땅을 움직이는 전설, 마일러의 괭이야!"

결국 아무도 마일러의 괭이를 알아봐주지 않았기에 세준은 외판원처럼 자신의 장비를 소개해야 했다.

"자! 내가 전설급 농기구의 위력을 보여줄게! 땅 움직이기! 얍!"

세준이 마일러의 괭이로 땅을 찍으며 내장된 스킬을 사용했다.

'땅을 뒤집어!'

세준이 자신이 원하는 땅의 움직임을 강하게 상상하며 마일러의 괭이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쿠궁.

괭이가 땅에 박히며 작은 진동과 함께 3평 정도 크기의 땅이 작은 파도가 움직이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그리고

[힘의 고구마 1321개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6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경험치 66050을 획득했습니다.]

땅속에 숨어있던 고구마를 한 번에 수확했다.

"봤어? 이게 바로 전설급 괭이의 위력이다."

세준이 우쭐해하며 말하자

삐익!

께엑!

토끼들과 버섯 개미들이 그런 세준을 대단하게 바라봤다.

'흐흐흐. 그래. 이거지.'

모두를 부른 목적이 이거였다. 자신의 전설급 괭이를 자랑하기 위해서.

그때

꾸엥!

꾸엥이가 그런 세준이 한 것을 보며 조용히 고구마밭에 다가갔다. 그거 나도 할 수 있다요!

꾸엥.

푹!

꾸엥이가 가볍게 기합을 넣으며 고구마밭에 자신의 막대기를 꽂자

우르릉.

묵직한 진동과 함께 작은 운동장 크기 1000평의 땅이 거대한 파도가 덮친 것처럼 움직였다. 당연히 땅이 뒤집히며 땅속에 숨어있던 고구마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삐익!!!

께엑!!!

세준을 대단하게 바라보던 토끼들과 버섯 개미들이 꾸엥이를 경이롭게 바라봤다.

세준이 하는 걸 보며 자신도 하면 세준이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한 꾸엥이. 하지만 세준에게 좌절만을 안겨줬다.

"에잇! 안 해!"

푹.

세준이 마일러의 괭이를 땅에 내리꽂으며 소리쳤다. 자신은 S+급 장비고 꾸엥이는 A급 장비였다. 하지만 결과는 A급 장비의 승. 아니 꾸엥이의 압승이었다.

전설급 농기구를 가졌다는 자부심이 차게 식었다. 역시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세준은 그냥 농기구가 생긴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확된 고구마를 주우러 갔다. 차라리 고구마를 줍는 게 농사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전략 병기로 취급받는 전설급 괭이가 밭에 덩그러니 꽂혀 방치됐다.

***

"흐흐흐. 역시 일하고 먹는 음식은 맛있다니까."

고구마 수확을 끝낸 세준이 얼굴에 검댕이를 묻히며 열심히 군고구마를 까 먹었다. 오늘 수확한 고구마가 거의 5만 개. 그거 줍느라 엄청 힘들었다.

꾸엥!꾸엥!

[맞다요! 일하고 먹으니까 너무 맛있다요!]

꾸엥이가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래. 우리 꾸엥이가 제일 고생했으니까 많이 먹어."

세준이 껍질을 깐 군고구마를 꾸엥이에게 주자

꾸엥!

꾸엥이가 맛있게 받아먹었다.

"박 회장! 나도! 나도 츄르를 달라냥!"

고생은 1도 하지 않았지만, 항상 츄르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테오가 세준에게 말했다. 꾸엥이에게 세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우리 아무것도 안 한 테 부회장도 츄르 먹자."

"푸후훗. 테 부회장은 아무것도 안 해도 츄르를 2개씩 먹을 수 있다냥!"

세준은 말에 뼈를 넣어 말했지만, 뼈가 물렁 했는지 세준의 말을 칭찬으로 알아들은 테오가 기분 좋게 대답했다.

촵촵촵.

세준이 테오에게 츄르를 먹이고 있을 때

펄럭.펄럭.

-크하하하. 맛있어! 세준아 막걸리 더 없느냐?

군고구마에 술까지 먹으며 흥이 한껏 오른 카이저가 날아왔다.

"아까 드린 게 마지막이에요."

-에잉! 좀 더 많이 만들지 그랬느냐?!

"저는 맛도 못봤거든요."

다행히 쌀가루 반죽을 쪄서 따뜻한 곳에 두자 누룩이 만들어졌고 그 누룩을 이용해 막걸리를 빚었다.

좀 더 숙성이 필요했지만, 카이저가 한 입만 맛보자고 보채는 바람에 한 잔을 줬고 그게 한 잔, 두 잔이 되더니 카이저는 결국 남은 막걸리를 모두 마셔버렸다.

-크흠······ 켈리온은 뭘 하는지 가볼까?

무안해진 카이저는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고구마수프를 먹느라 무아지경에 빠진 켈리온을 찾아갔다.

그리고

"응?!"

군고구마를 먹는 세준의 눈에 멀리서 대규모의 인원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대열의 가장 앞에는 이오나가 있었다. 어제 잠깐 어딜 다녀온다고 하더니 저들을 마중 나간 모양이었다.

"뀻뀻뀻. 세준 님, 저 왔어요."

"응. 저들이 마탑 사람들이야?"

세준이 이오나의 뒤에 있는 마법사들을 보며 물었다. 거의 1000명에 가까운 마법사들.

중력 마탑의 마법사들이 불꽃, 파괴, 운석의 마탑에 들려 마탑을 해체시키자 세 마탑에 있던 마법사들은 큰 저항 없이 중력 마탑에 그대로 합류했다.

"네. 근데 저희 여기서 하루 지내고 이동해도 될까요?"

남쪽으로 가면 바로 불개미들과 전투를 해야 한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 쉬면서 마법사들의 체력을 회복시키려는 이오나였다. 물론 하룻밤 꿀잠을 자고 가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

"네! 세준 님, 감사해요. 여기서 쉬고 내일 이동할 거예요!"

세준의 허락을 받은 이오나가 뒤로 돌아 외쳤다. 그러자 마법사들은 빈 밭에 서둘러 천막을 치고 앉아서 주먹 크기의 녹색환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꾸엥?

꾸엥이가 마법사들이 먹는 게 궁금했는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거 뭐다요?

환을 씹는 마법사들의 표정을 보니 굳이 안 먹어봐도 맛을 알 것 같았지만, 꾸엥이는 굳이 먹어보고 싶어 했다. 반대로 마법사들은 꾸엥이가 들고 있는 군고구마에 관심을 보였다.

"바꿔 먹을래?"

한 마법사가 아직 먹지 않은 녹색환을 건네며 꾸엥이에게 묻자

꾸엥!

꾸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군고구마와 녹색환을 바꿨다.

"뀻뀻뀻."

이오나가 그런 꾸엥이를 보며 다음 장면이 예상되는지 웃었다.

그리고

꿰엥!!!

녹색환을 한입에 꿀꺽 삼킨 꾸엥이가 비명을 질렀다. 쓰다요!!!!

녹색환은 마법사들을 위해 중력 마탑의 비전을 담아 만든 것으로 각 마탑마다 비전으로 만들어진 환이 있다.

환의 효과는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적절하게 공급해주고 몸의 노폐물을 제거해 몸속에서 마력이 원활하게 흐르게 해준다. 대신 효용을 위해서 맛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마탑에 들어온 후 마법사들이 가장 고생하는 것 중 하나가 매끼 식사로 나오는 마탑의 비전으로 만든 환을 먹는 것일 정도.

"그렇게 써? 나도 먹어볼까?"

"뀻뀻뀻. 환을 먹으면 몸의 노폐물을 제거해 주는 효과가 있어요."

"그래?"

이오나의 말에 혹한 세준이 마법사와 군고구마 하나를 바꿔 녹색환을 한입 베어 물었다. 먹자마자 쓴맛이 혀를 찔렀다.

"으엑!"

진짜 썼다! 고삼차만큼.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고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세준이 그랬다. 꾸엥이를 욕할 처지가 아니었다. 진짜 부전자전이었다.

그래도 몸의 노폐물을 제거해준다는 말에 쓴맛을 참아내고 녹색환 하나를 다 먹었다.

하지만

[중력 마탑의 녹색환을 섭취했습니다.]

[몸의 노폐물이 이미 제거된 상태입니다.]

[효과가 없습니다.]

과거 불당근주를 넣어 만든 수육을 먹고 한 번 노폐물을 제거했기에 세준의 몸에는 노폐물이 별로 없었다.

"괜히 먹었잖아!"

꾸헤헤헤.

꾸엥이가 분노한 표정의 세준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꾸엥이 너 웃었어? 테 부회장, 응징이다!"

"알았다냥!"

세준과 테오가 꾸엥이의 몸을 간질이기 시작했고

꾸헤헤헤.

꾸엥이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뀻뀻뀻."

그사이 이오나가 조용히 테오의 꼬리를 말고 눈을 붙였다.

"이제 일하자."

꾸엥이를 응징한 세준이 오후 농사를 시작했고 마법사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주변을 구경했다.

푹.

쿠궁.

세준이 괭이를 들고 땅 움직이기 스킬을 사용해 땅을 뒤집으며 감자를 수확했다. 아까는 기분이 상했지만, 이렇게 땅을 뒤집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마일러의 괭이가 대단한 농기구인 건 분명했다.

거기다 사용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며 뒤집는 땅의 면적이 조금씩 늘어났다. 성장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러다 보면 나도 꾸엥이처럼 넓은 땅을 뒤집을 수 있겠지?'

그렇게 세준이 앞으로 나아질 생각을 하며 감자를 수확할 때

[레벨업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을 하며 56레벨이 됐다. 보너스 스탯은 가장 스탯 수치가 낮은 힘을 올렸다.

"좋아! 흐흐흐. 괭이를 쓰니까 확실히 레벨업이 빨라졌어."

세준이 마일런의 괭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무리 소작농들이 일하는 것만으로 경험치를 얻어도 그건 전체 경험치의 5%뿐. 세준이 직접 일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잠깐 쉬어야지."

께엑!

뒤에서 수확한 감자를 주우며 따라오는 10마리의 버섯 개미들을 보고는 세준이 바닥에 앉았다. 버섯 개미들이 쫓아오는 속도를 보니 30분 정도는 쉴 여유가 있었다.

"자 하나씩 먹어."

세준이 주머니에서 꿀젤리를 꺼내 테오, 꾸엥이, 이오나, 황금박쥐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모두들 마력 관련 재능이 있었기에 영양제처럼 매일 꾸준히 먹고 있었다.

꿀꺽.

[독꿀벌의 방울토마토 꿀젤리를 섭취했습니다.]

[재능 : 강력한 마력 회로가 조금 강화됩니다.]

몸에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메시지로 표시가 되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

[탑의 관리자가 그대가 준 꿀제리를 다 먹었다며 자신도 꿀젤리를 달라고 합니다.]

"아! 그래? 여기 있어."

세준이 꿀젤리가 가득 든 유리병을 에일린에게 보냈다. 에일린은 하루에 20~30개 정도의 꿀젤리를 먹기에 줄 때 500개 정도를 한 번에 줬다.

[탑의 관리자가 항상 고맙다고 말합니다.]

"아니야. 빨리 먹고 건강해져."

세준이 에일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뱃뱃?

황금박쥐는 갑자기 몸에서 요동치는 마력에 당황했다.

(어?! 세준 님! 저 지구로 갈 것 같아요!)

"지금?"

파앗.

황금박쥐가 대답도 못 하고 사라졌다.

"뭘 가져오려나?"

세준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하지만

"왜 안 오지?"

이번에는 황금박쥐가 1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

(세준 님이 좋아하는 걸 찾아야지!)

파닥.파닥.

지구로 이동한 황금박쥐가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며 가져갈 물건을 찾았다.

그리고

(초코파이다!)

그동안 꾸준히 공부해 한글을 완전히 익힌 황금박쥐가 세준이 원하는 초콜렛이 묻은 음식을 발견했다.

파닥.파닥.

황금박쥐가 잽싸게 날아 양발에 하나씩 초코파이 2개를 집고는 다시 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뱃뱃?

무슨 이유인지 황금박쥐는 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39화. 특종입니다!

139화. 특종입니다!

"막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냥!"

꾸엥!

[황금박쥐 동생 찾아야 한다요!]

한 시간이 지나도 황금박쥐가 돌아오지 않자 테오, 꾸엥이의 초조함은 커져만 갔다. 그건 세준도 마찬가지.

"카이저 님! 켈리온 님!"

세준은 일단 가장 오래 살고 많은 지혜를 가진 카이저와 켈리온을 급하게 찾았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지?

"그게······."

세준이 한 시간 전 황금박쥐가 사라지기 전 상황을 설명했다.

-흐음······ 간단하군. 녀석의 재능이 성장한 거다. 그래서 지구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거지. 아마 그 전부터 징조가 있었을 거야.

"징조요? 아······."

카이저의 말에 세준은 황금박쥐가 일주일이 지나도 지구에 가지 못하고 있던 것이 떠올렸다.

-맞아. 그런 이동 계통의 재능은 성장을 앞두고는 굉장히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능력이 발동하지 않아.

켈리온이 카이저의 말에 부연 설명했다.

'그래서 지구에 가지 못했던 건가?'

두 용이 설명해주자 세준은 황금박쥐가 지구에 가지 못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황금박쥐가 언제쯤 돌아올까요?"

-그건 우리도 모르지.

"네?!"

-그래. 그건 녀석이 가진 재능에 따라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한 달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얻은 정보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황금박쥐가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것.

"테오, 빨리 내려가서 태준 님에게 황금박쥐를 찾아달라고 요청해."

한국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황금박쥐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 하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어딘가 구석에 숨어 떨고 있을 황금박쥐를 생각하면······

"알았다냥! 빨리 갔다오겠다냥!"

테오가 서둘러 짐을 챙겨 내려갔다.

***

(어떡해요?!! 돌아갈 수 없어요!)

파닥.파닥.

패닉에 빠진 황금박쥐가 주변을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이렇게 지구에 오래 남아본 적이 없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자 황금박쥐는 점점 상황에 적응했다. 생각해 보니 여기서 자신을 해칠 존재는 없다.

솔직히 세준 님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전투력으로 세준 님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물며 이곳의 평범한 인간들은 더더욱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한글을 다 떼어 무슨 글자든 읽을 수 있다.

(뱃뱃.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준 님에게 이곳이 어딘지 알아내 알려드리는 거야!)

세준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얻겠다는 생각에 용기백배한 황금박쥐가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두 발에는 초코파이 2개를 들고. 언제 돌아갈지 모르기에 세준이 좋아하는 걸 놓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리고

"찾았다! 황금 귀신."

설치해둔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 그런 일이'의 보조 PD 배정호가 황금박쥐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