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 역시 농성하는 게 좋지 않을까?"
김 중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병사들의 표정이 찡그려졌지만.
또 몇몇 병사는 김 중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식량도 다 떨어졌다니까요. 결국 부대를 버리고 이동해야 합니다."
"시, 식량은... 우리 부대가 산에 있으니까, 칡뿌리 같은 걸 캐든가 사냥을 하면...."
"아니, 그런 걸 말이라고...."
레이더반 박 병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부대원들의 눈에 있는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야 그럴 만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갑작스럽게 세상에 몬스터가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부대 바깥과 연락해 보려 했으나, 일반적인 통화는커녕 부대의 긴급연락망도 작동하지 않았다.
인트라넷도, 전화도.
군용 주파수까지 모두 먹통이 되었다.
바깥세상이 긴급연락망조차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개판이 났으리란 건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여기는 그래도 안전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진 그랬겠지."
괴물조차 찾아오기 힘든 높은 산에 위치한 부대.
그리고 무엇보다 부대를 둘러싼 침입 장애물.
우리 부대가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유다.
이런 이점을 버리고 이동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고, 우리는 군부대라는 방벽을 버리고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부대원들이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듯하니.
"됐고, 점심인데 밥 먹고 하죠?"
나는 밥을 먹여야겠다.
"자, 오늘 점심은 사리곰탕입니다!"
사리곰탕.
준수한 맛으로 병사들에게 인기가 좋은 메뉴였다.
진한 고깃국에 담긴 높은 열량은 힘든 작업을 해야 하는 병사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거기에 특제 소스 하나를 섞어 주면 금상첨화.
나는 펄펄 끓는 사리곰탕에 소금을 넣는 척하면서, 스킬을 사용했다.
[주방장의 비밀 소스 - 용기]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음식을 먹은 대상들의 용기가 상승합니다.]
완성이다.
병사들이 근심 어린 얼굴로 곰탕을 한 술 떠먹었다.
김 중위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얼굴로 사리곰탕을 한 술 떠먹었다.
"아무튼 말이지. 다 먹으면서 들어봐. 후릅, 아무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해도, 꿀꺽, 지금 나가는 건...."
"무서우십니까?"
내 말에 김 중위가 잠시 멈칫했다.
"나가는... 나... 나가...."
여기저기서 숟가락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김 중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가아아!! 나가자고! 나가! 당장 짐 싸! 이 개자식들아! 군인이 돼서 그거 하나 무서워하는 게 말이 되냐! 이 사슴 같은 새끼들!"
그의 말에 전 부대원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X발! 까짓거 나가지 뭐!"
"부대에만 갇혀서 갑갑했는데 산책할 겸 몬스터 목이나 따러 갑시다!"
"크큭. 식후 운동으로는 제격이겠어."
"끼에에에에에엑!!!!"
"대한국군 만세!!!"
가장 벌벌 떨던 김 중위의 용맹한 끼에엑 소리를 들으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지."
병장 신영준.
23세.
나는 이 부대를 책임지는 취사병이다.
1화 각성
대한민국 군대의 일상은 대체로 평이하다.
검열이나 훈련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에야,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하루.
그나마 주말에는 부대도 업무에서 조금은 벗어나 휴식을 즐기지만.
그렇지도 않은 부서도 있다.
"신영준 병장님? 오늘 저녁 오징어볶음인데 오징어가 안 보입니다."
"뭐? 너 부식 목록 똑바로 체크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
"신 병장님, 김 중위한테 전화 왔는데, 자기 점심 고등어 튀김 먹기 싫다고, 요리 하나만 해 주면 안 되냐고 합니다."
"아니, 그 새끼는... 하, 그냥 알겠다고 그래."
취사반.
자고로 전투력의 핵심은 영양에서 나오고, 그 영양 보급은 취사병들이 책임진다.
식사는 인간의 3대 욕구와도 연관된바.
그러니 주말이고 뭐고, 하루도 쉴 수 없는 것이다.
맛없는 음식이나 매일같이 똑같은 음식만 먹인다면 병사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기 마련.
취사병들은 매일같이 바뀌는 다양한 메뉴를 먹을 만한 수준으로 요리해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면, 모두 취사병의 임기응변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하... 됐고, 저번에 부대 회식용으로 빼놨던 삼겹살 있지? 저녁 오징어볶음 말고 그걸로 삼겹살볶음 해서 줘. 애들도 좋아할걸. 애들 삼겹살이면 환장하니까, 니가 직접 배식하는 거 잊지 말고."
"옙!"
"냉장고에서 생크림이랑 닭고기 좀 꺼내 와라. 김 중위는 면 요리 좋아하니까 닭고기 파스타 같은 거 해 주면 잘 먹겠지,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말이다.
주말에도 제대로 쉴 수 없고 짜증 나는 일이었지만.
"전역도 며칠 안 남았는데, 고생 많으십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 짓거리도 드디어 얼마 안 남았다는 것.
나는 말년 휴가를 며칠 앞둔 말년 병장이었다.
물론 말년이라고 편히 쉴 수 있는 취사반이 어디 있겠냐마는.
"전역하시면 뭐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맞후임의 질문은, 전역을 얼마 안 남겨 둔 병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법한 생각이었다.
사회 나가면 뭐 하지.
당연히 나도 생각이 있기는 했다.
"요리 한번 제대로 배워서, 식당이나 차려 보려고."
"예? 요즘 요식업계 완전 헬 아닙니까?"
나는 취사병이지만.
원래부터 요리를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보직이 취사병으로 배정됐을 뿐.
내가 군대에서 처음 겪어 본 요리도 요리가 아니라 조리에 가까운 취사였고.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하고 싶어진 이유는 있다.
"내 음식 먹고 맛있다고 해 주는 애들 보니까 뭔가 좀 뿌듯하더라고. 그래서 제대로 배워 보려고."
"어, 그럼 신 병장님. 저 일하던 식당으로 오시겠습니까? 제가 선배로서 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누구 좋으라고? 그리고 일식은 생각 없어, 인마."
내 맞후임.
준혁이는 사회에서도 일식을 공부하다 들어온 녀석이었다.
안 그래도 요리 업계는 군대보다도 위계질서가 빡세다는데.
후임의 후배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식도 괜찮은데."
"아 됐고, 아까 보니까 소금 다 떨어져 가더라. 창고에서 좀 가져와 줘."
"옙."
소금 같은 재료는 식당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부식 창고에서 보관한다.
창고로 가기 위해 식당의 뒷문으로 나서는 준혁이를 보며, 나도 잠시 딴생각에 잠겼다.
'일식이라....'
어쩌면 일식을 배우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군대에서 배운 요리는 대부분 한식이지만, 전역하고 나서도 한식을 배워야 할 이유는 없고.
후임 녀석의 후배로 들어가는 건 질색이지만 다른 식당에서 배우는 건 괜찮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역시 요리의 꽃은 양식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준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뒷문을 연 준혁이가,
문밖에서 튀어나온 '무언가'에 덮쳐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
처음엔 또 누가 장난을 치나 했다.
준혁이는 귀여운 외모 때문에 병장들의 장난감이 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그 무언가가 준혁이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으니까.
"주, 준혁아!"
"커... 커헉."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발이 움직였다.
저게 무슨 생물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빨리 구해야 해!'
당황스럽긴 하지만, 일단은 준혁이를 구해야 한다.
그런 생각에 마침 근처에 있던 조리용 대형 삽을 들고 몸을 날렸으나.
빠지직.
한 박자 늦고 말았다.
찌직, 찍-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소리가 나며, 그 괴물에 입에 연분홍빛 무언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왔다.
사람의 신체 기관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목에서 뜯겨 나오면 안 되는 무언가란 건 알았다.
'...준혁이가, 죽었...어?'
불과 몇십 초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후임의 장기가 흩날리는, 비현실적인 광경.
그 징그러운 모습에, 난 대형 삽을 꽉 쥔 채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신 병장님? 방금 소리는 대체... 허억!"
식당 구석에서 고등어를 튀기고 있던 막내 녀석도 그제야 준혁이를 보고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다.
멍하니 굳어 있던 나는, 그 소리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저게 대체, 뭐야. X발....'
그제야 준혁이를 덮친 생물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그러나 보인다고 해서, 그게 뭔지 알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나마 비슷한 생물을 찾자면 도마뱀일까.
유선형의 얼굴을 포함한 전신이 두꺼운 비늘로 덮여 있었으며, 키는 거의 사람만 했다.
그러나 뱀과 달리 이빨은 날카로웠고, 준혁이의 몸을 헤집는 손에는 날카로운 발톱도 보였다.
세로로 찢어진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번들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막내가 지른 소리를 듣고, 이쪽을 본 거다!'
준혁이를 실컷 뜯고 맛보던 괴물 녀석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누가 봐도 다음 사냥감을 노리는 모습.
살면서 사냥감의 입장이 되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온몸이 서늘해지는 느낌.
'제기랄!'
처참하게 널브러진 후임 녀석의 시체가 보인다.
나는.
나는,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
"막내!"
"예, 예?"
"연장 챙겨!"
부랴부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는 막내를 뒤로한 채.
나는 그 괴물을 향해 조리용 대형 삽을 휘둘렀다.
대량 조리에나 쓰이는 대형 삽은 충분히 크고, 무겁고, 단단하다.
진심으로 휘두르면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닐 흉기.
그러나....
깡!
무기와 동물이 부딪쳤을 때 나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렸다.
"크륵!"
"아악!"
마치 벽을 향해 휘두르기라도 한 것처럼.
오히려 삽을 후려친 내 팔이 반동으로 인해 시리게 저려 왔다.
격통에 자칫 삽을 놓칠 뻔했지만.
무기마저 잃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덕에 가까스로 쥐고 있을 수 있었다.
'무슨 쇳덩어리도 아니고...!'
고통에 떨고 있는 나와 달리.
괴물 녀석은 삽에 맞은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발톱을 휘둘러 댔다.
'큭!'
팔에 고통이 느껴지자마자 몸을 뒤로 뺀 덕에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조금만 늦어도 시체 한 구가 늘어날 뻔했다고 생각하니, 심장의 벌렁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저 비늘! 어쩐지 더럽게 두꺼워 보이더라니!'
단단함은 보이는 것 그 이상인 듯했다.
"시, 신 병장님!? 저게 대체 뭡니까!?"
"나라고 알겠냐!"
당황한 막내 녀석이 말을 걸어왔지만,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
차라리 산을 돌아다니던 호랑이가 덮쳐 온 상황이 낫지.
'X발, X발, X발! 저딴 괴물이 왜 현실에 있는 거냐고.'
갑작스럽게 덮쳐 온 괴물의 불합리함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속으로 욕을 되뇌는 것밖에 없었다.
막내 녀석도 부랴부랴 나처럼 대형 삽을 하나 들고 왔지만, 큰 의미는 없겠지.
온몸이 단단한 비늘에 둘러싸인 괴물의 모습.
마치 중세의 기사를 연상케 했다.
'전신을 철갑으로 두른 맨앳암즈 한 명은, 농기구를 든 농민들을 상대로 학살도 할 수 있다던가.'
학살당하는 양민의 입장이 되어 보니, 뼈에 시리도록 체감이 된다.
아무리 무기를 휘둘러 봐야 비늘에 흠집이나 내면 다행인 수준이니.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 기사를 상대하려면, 어떻게든 지치게 만들거나, 아니면 뜨거운 기름을 붓거나....'
아.
상대할 방법이 있었다.
'오늘 점심. 고등어 순살 튀김....'
이딴 게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서서 죽음을 기다릴 생각은 없다.
나는 들고 있던 대형 삽을 온 힘을 다해 괴물 녀석에게 던지고 몸을 뒤로 날렸다.
"크락!"
나름대로 전력을 다해 던진 삽이 머리에 맞았음에도 괴물 녀석은 잠깐 움찔할 뿐.
그게 오히려 화를 돋우었는지.
놈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제발, 제발, 늦지 마라!'
괴물이 움찔한 그 잠깐 사이.
나는 좁은 식당을 가로질러 뒤에 있는 튀김 솥에 도착했다.
생선 찌꺼기가 둥둥 떠다니는, 기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튀김 솥.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근처의 대형 국자를 쥔 나는, 급하게 기름에 국자를 처박았다.
그리고.
촤아악
"크라악!!!"
손만 뻗어도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던 괴물 녀석에게, 펄펄 끓는 기름을 뿌렸다.
튀김 요리를 할 때 기름의 적정 온도는 최소 180도.
겨울에도 튀김 요리를 하다 보면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땀이 날 정도의 고온.
그 기름을 얼굴에 직접 뒤집어쓴 괴물 녀석이, 괴로움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아직이야!'
괴로워하는 듯 보이지만, 녀석은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쇼크로 기절할 만한 짓을 당하고도.
하지만 기름 공격이 통한다는 것은 확인했다.
나는 솥 안의 기름을 아예 비워 버릴 기세로, 계속해서 국자를 휘둘러 댔다.
펄펄 끓는 솥의 열기.
거칠게 기름을 뿌려 대다 보니 나한테도 몇 방울씩 튀는 기름이, 미칠 듯이 뜨겁고 아팠지만.
'제발 죽어라, 제발...!'
그딴 걸 신경 쓸 겨를 따윈 없는 상황.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케륵...."
그렇게 몇 차례 기름을 뿌려 댔을까.
식당 바닥이 번들거리는 기름으로 도배될 때쯤.
고통에 몸부림치던 괴물 녀석이,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주, 죽은 건가?'
일단 움직임은 멈췄지만....
'죽은 척하는 걸 수도 있어.'
죽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만약 살아 있기라도 한다면 큰일.
나는 조심스럽게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시, 신 병장님? 이 녀석, 죽은 겁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인 듯.
막내 녀석이 삽을 들고 괴물 녀석에게 접근했다.
"야, 야!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
"제, 제대로 죽었는지 확인만...."
콰직.
시체를 뒤집으려고 다가가던 막내 녀석의 발을 괴물 녀석이 물어뜯었다.
"끄아아악!"
"막내야!"
다급하게 뛰쳐나갔지만, 나는 혹시 몰라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있었던 상황.
찌지직....
내가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괴물 녀석은 막내의 배를 뜯어 먹고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몰린 줄 알았더니.
방심한 사냥감이 다가오길 기다렸던 것이다.
'마... 막내까지....'
이젠 정말 나밖에 남지 않았다.
나까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빨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기, 기름. 더 뿌려야.'
슬쩍 기름 솥에 슬쩍 시선을 주었으나.
더는 남아 있는 기름도 없었다.
당장은 막내 녀석을 뜯어 먹느라 바쁜 괴물이었지만 언제 나를 노릴지 모른다.
'막내한테 신경이 팔린 사이 도망쳐? 아니, 괜히 뛰었다가 신경을 자극하기라도 하면....'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던 중.
'어?'
괴물의 등에서, 무언가 빨간 것이 보였다.
시커먼 비늘 사이에 드러난.
새빨갛게 달아오른 부위.
'피, 피부가 드러난 건가?'
온몸을 단단한 비늘로 덮고 있는 괴물이었지만.
뜨거운 기름을 연거푸 뒤집어쓴 결과.
살이 익고 비늘이 갈라져, 안쪽의 달아오른 피부가 군데군데 노출된 것이다.
단단한 비늘과 달리.
평범한 동물하고 별 차이 없어 보이는 피부.
명백한 약점.
'도망치려다가 추격당하기라도 하면 정말 끝장이야. 그럴 바에야....'
막내에게 신경이 팔린 지금.
약점을 노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노출된 피부 면적이 넓지는 않아, 삽 같은 거로 후려치는 건 의미가 없을 듯했다.
'약점을 노린다면, 때리는 게 아니라, 찔러야 해.'
다행히 식당에는 찌르기에 적합한 무기도 많았다.
막내를 잡아먹고 있는 괴물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식당 구석의 칼 보관함으로 향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보관함 안에서 가장 길고 날카로운 식칼을 꺼낸다.
'준혁아. 좀 빌린다.'
일식을 공부하던 준혁이의 개인 사시미칼.
스승님한테 받은 칼이라며 애지중지하며 관리하던 칼이다.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은 칼은, 살짝만 갖다 대도 베일 듯이 날카로웠다.
"크륵, 크르륵...."
괴물은 여전히 막내 녀석을 뜯어 먹느라 바빠 보였다.
사람의 내장이 흩뿌려지는 장면을 실제로 본 것은 살면서 처음.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듯했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얼굴에 기름을 뒤집어쓴 덕에, 눈이 안 보이는 건가?'
상처를 회복할 영양분이 필요하기라도 한 것인지.
괴물 녀석은 막내의 시체를 뜯어 먹느라 바빠 보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뒤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노릴 만한 곳은, 목....'
어떤 동물이든, 머리하고 몸이 이어지는 목을 다치면 죽는다.
설마 비늘 안쪽도 칼을 튕겨 낼 정도로 단단하지는 않겠지.
'하나, 둘...!'
목 근처의 비늘이 벌려진 틈 사이로.
온 힘을 다해 사시미칼을 쑤셔 박았다.
"크라아아악!"
여기까지 와서도 힘이 남아 있었는지.
괴물 녀석은 목을 찔렸음에도 거칠게 저항하며 몸부림쳤다.
"이, 제발, 곱게, 좀...."
녀석에게 뿌린 기름은 아직도 다 식지 않아 뜨거웠고.
단단한 비늘을 가진 괴물의 몸부림에 부딪힐 때마다, 쇳덩이에 맞은 듯이 아팠다.
"뒈, 져... 이 새끼야...."
하지만 나 역시 질 수는 없었다.
온몸으로 녀석의 저항을 억누르며.
한 손으로는 녀석의 머리를 짓누르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목에 박은 사시미칼을 이리저리 쑤시고 후벼 댔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한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끄... 끄륵...."
거세게 저항하던 녀석의 몸에서 힘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눈앞에 이상한 문구가 보였다.
띠링-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각성자 : 신영준]
[직업 : 신입 요리사 Lv. 1]
[능력치 : 힘 9, 민첩 10, 마력 8, 행운 9]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최하급 요리 숙련, 최하급 식재료 감별, 최하급 화염 친화]
[스킬 : 요리사의 눈, 주방장의 특별 소스]
[포인트 : 0pt]
[각성자에게서 고유 재능이 감지되었습니다.]
[재능 : 대규모 조리]
.
.
.
"이게 대체, 뭔...?"
2화 합류
[각성하셨습니다.]
[월드 이벤트 - 세력전이 진행 중입니다.]
뭉쳐야 산다!
세력을 만들거나, 세력에 소속되어 보세요.
가장 빨리 세력을 일궈 낸 이들에겐, 특별한 특전이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현재 소속 세력 - 없음]
[월드 이벤트 - 점령전이 진행 중입니다.]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영토를 점령하고, 확장하세요.
세력을 키울수록 특별한 특전이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소속 지역 - ROK. 17]
[지역 내 점령전 현황]
1. ???(??%)
2. ???(??%)
3. ???(??%)
"이게 대체, 뭔...."
괴물을 죽인 순간 나타난 정체불명의 문구.
사람이 죽어 나갔다.
살아남은 나 역시 온몸에 힘이 빠져 부들부들 떨리는 상태.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는,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경박하기 그지없었다.
'각성하셨습니다? 무슨 각성?'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클릭하니, 마치 게임의 시스템창처럼 반응한다.
각성한 직업은 요리사.
뭔가 요리에 관련된 특성들에....
'이건 또 뭐야. 점령전?'
그 내용에 당황하는 사이.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 타당.
타당 탕.
군인이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소리.
총성.
멀쩡한 부대 내에서, 훈련도 없는 주말에 총성이 들려오는 상황.
그 이유를 짐작하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른 곳에도 나타난 건가?"
한 마리만 해도 끔찍한 이 괴물이, 부대의 다른 곳에도 나타난 것이다.
나는 눈길을 돌려 발아래 쓰러져 있는 괴물의 시체를 봤다.
"이 한 마리한테도 죽을 뻔했는데."
아니, 죽을 뻔했다 수준이 아니다.
식당 뒷문 앞에 목이 뜯긴 채 죽은 맞후임.
기름 범벅이 된 식당 안쪽에서 괴물에게 배를 뜯겨 죽은 막내.
후임 두 명이 실제로 죽었다.
총원 4인.
휴가 나간 한 명을 제외하면 3인의 취사반에서 두 명.
사실상 과반수의 사상자가 나온 것이다.
한 마리한테 그렇게 당했는데, 이런 괴물이 여러 마리가 나온다면.
솔직히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방금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았다지만."
후임들이 아닌 내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죽음.
말년 휴가가 3일 남았는데, 여기서 죽는다고?
"그럴 순 없지."
살아남을 거다.
살아남아서, 사회로 나가서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우고, 식당을 열 거다.
가게 디자인이나 마케팅에도 신경 써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도 등록될 거다.
그러려면.
여기서 뒈질 수는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유명한 격언이 하나 떠올랐다.
"뭉쳐야지."
괴물을 죽이느라 온 힘을 쓴 탓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
그 손으로 무릎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살아남으려면 다른 부대원들과 합류해야 한다.
괴물의 목을 쑤시느라 덜덜 떨려오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준혁이의 사시미칼을 들고.
총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 * *
식당 건물은 부대의 다른 건물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편이었다.
애초에 규모가 크지 않은 부대라 건물 간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나는 총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마 탄약고일 텐데."
사실 당연한 추측이다.
군대의 특성상 평상시에 부대원이 총알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훈련 상황 등을 제외하면 총알은 대부분 탄약고에서 보관하니까.
총소리가 들려온 방향도 그렇고.
아마 부대원들이 있는 장소는 탄약고일 게 분명했다.
문제라면.
"하필이면 정반대 쪽이냐."
식당 건물이 부대의 서쪽 끝에 있다면, 탄약고는 동쪽 끝쯤에 있다.
식당에서 탄약고로 가려면 말 그대로 부대 전체를 가로질러야만 한다.
애초에 부대의 크기가 크지 않은 만큼, 평상시에는 느긋하게 걸어가다 보면 도착할 위치였겠지만....
괴물이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지금은, 한없이 위험하고 먼 거리.
'가능한 한 건물을 통해서 이동하자.'
부대의 도로는 너무 개방되어 있다.
평범하게 길을 걷다간 멀리서 내 모습을 발견한 괴물에게 추격당할지도 모르는 일.
탄약고까지 가는 길에 괴물과 마주치면 끝장이다.
들키지 않도록 주변 건물 내부를 통해 이동하는 게 낫겠지.
우선 식당의 바로 옆에 있는 보급반 건물로 뛰어가 몸을 숨겼다.
그리고 보급반 건물을 가로질러 반대편 입구로 나간 후, 그 옆의 시설반 건물로 빠르게 달려간다.
그렇게 건물에서 건물로.
주위에 괴물이 또 있지는 않나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탄약고로 향했다.
꽤 많은 건물을 지나쳤지만 인기척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주말.
간부는 물론이고, 몇몇 부서를 제외하면 병사들도 출근하지 않은 탓이다.
타다당.
그렇게 조용한 와중에도, 멀리서는 여전히 간헐적인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의지해 가며 건물들 사이를 이동하던 와중이었다.
나는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생활관.'
다른 건물들은 주말이라 조용할 수 있지만.
부대원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은 온갖 잡담 소리와 TV 소리 등으로 시끄러워야 정상.
그러나 지금은 다른 건물들과 비슷하게 조용했다.
'만약 그 괴물들이 사람을 습격했다면.'
나는 불길한 예감을 안은 채 생활관 문을 열었다.
그 안은.
예상한 대로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욱...."
통신반 막내 윤수.
밖에서 축구 선수 하다가 왔다던 시설반 박 상병.
그리고, 얼굴이 갈기갈기 뜯겨 알아볼 수 없는 누군가.
생활관 복도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체, 몇 명이나 죽은 거야."
생활관의 각 호실 안에도 시체가 보였다.
몇몇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관물대가 무너져 있는 등.
모르긴 몰라도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건 확실해 보였다.
식당에서 나와 후임들이 괴물과 싸우고 죽어 나갈 때.
주말이라 쉬고 있던 생활관의 병사들도 소란을 겪은 것이다.
"식당에는 끓는 기름이라도 있었지."
괴물의 비늘은 엄청나게 단단했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흠집을 내기도 어려웠을 테지.
나야 끓는 기름으로 녀석을 튀겨 버리다시피 해서 겨우겨우 살아남았다지만....
그런 것도 없는 생활관 병사들은 괴물과 싸울 방법도 없었을 테니.
말 그대로 학살이 펼쳐졌을 거다.
그러나.
생활관마다 배치된 총기 보관함의 총기들이 몇 정씩 빠져 있는 게 보였다.
대충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괴물들이 생활관을 습격했고, 싸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총을 꺼내고 탄약고로 달려간 거야."
그리고 탄약고에서 총알을 보충하고, 괴물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
그게 지금 들리는 총성의 원인일 것이다.
그렇게 생활관을 가로질러 나온 나는 탄약고 쪽으로 몸을 옮겼다.
생활관을 나선 다음부터는 탄약고로 가는 길에 시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긴, 총을 들고 탄약고로 달려가는 걸 괴물들이 그냥 보내 주진 않았겠지.
저 시체들은 괴물들의 추격에 따라잡힌 병사들일 것이다.
그렇게 시체들을 지나치며 탄약고로 향하던 중.
꿈틀.
또 다른 시체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지나가려 했던 무언가가....
움직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숨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크르륵."
낮게 울리는 짐승의 소리.
'젠장....'
길옆에 난 하수도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던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시체는 맞았지만.
그걸 뜯어 먹고 있는 괴물이 그 뒤에 있었다는 것까진 알아보지 못했다.
식당에서 본 괴물과 똑같이 생긴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번들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그렇게 괴물한테 안 들키려고 조심했는데!
탄약고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는 끓는 기름도 없어.'
생활관 안의 시체들이 생각났다.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한, 병사들의 시체.
그곳에 괴물의 사체는 없었다.
그렇게 많은 병사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었는데.
나라고 뭐가 다를까.
"내가... 휴가를 3일 남겨 두고 뒈진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말년 휴가 3일만 빨리 신청할걸.
태준이 그 녀석이 휴가 맞춰서 나가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동기 사랑은 무슨, 덕분에 부대에 사이좋게 묻히게 생겼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
도마뱀을 닮은 괴물 녀석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X발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이대로 괴물의 한 끼 식사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준혁이가 열심히 관리한 사시미칼을 오른손에 쥐고 자세를 잡았다.
'암만 괴물이라도 칼로 쑤시다 보면 어딘가는 뚫리겠지.'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그래도 간단히 죽어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괴물의 움직임에 집중하던 참이었다.
[스킬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재료 분석 중....]
눈앞에.
또다시 정체불명의 문구가 떠올랐다.
"뭐, 뭔데 이거!"
아까도 떠올랐던 이상한 글자.
아까와 다른 점은 이 글자가 시야를 가려서 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은 안 죽겠다고 각오하고 칼을 들었는데.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허무하게 죽나 싶었던 순간.
[재료 분석 완료.]
['최하급 요리 비결 - 리자드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머릿속에.
이 괴물을 '손질하는 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리자드는 비늘이 두껍고 덩치가 커 손질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요령만 안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손질할 수 있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우선은 숨통을 끊고 몸의 피를 빼내는 것이 중요한데...]
평생 채소나 손질해 봤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손질해 본 적은 없음에도.
[리자드의 외피는 비늘 때문에 손질하기 어렵지만, 관절부는 유연한 움직임을 위해 비늘이 없고 부드럽다. 그중에서도 왼쪽 겨드랑이 부분은 심장과 가까운 부위로, 이곳을 가볍게 찔러 주면 심장 근처의 혈관이 잘려 나가 간단하게 피를 뺄 수 있다.]
평생 낚싯배 위에서 산 선장이 횟감을 보는 것처럼.
30년 차 정육점 사장이 돼지, 소, 닭을 보는 것처럼.
...요리사가, 식재료를 볼 때처럼.
"크라아악!"
괴물 녀석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내가 공격을 피해 뒤로 도망갈 것이라 예상했는지, 매우 큰 동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공격을 피해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괴물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발톱을 휘두르던 자세는 빈틈이 많았다.
특히 팔을 크게 휘두른 탓에, 그 겨드랑이 부분도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왼쪽 겨드랑이 안쪽.'
내 기준으론 오른쪽인가.
그곳을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어?'
당황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잘못 찔렀나?'
칼날이 너무 쉽게 들어간 탓에.
혹시 허공에 칼을 찌른 게 아닌가 싶었던 것.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단도 계열의 장비를 사용 시, 숙련도가 향상됩니다.]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피?"
내가 찌른 겨드랑이 부위.
그곳에서 괴물 녀석의 피가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크, 륵...."
내게 달려들 때의 기세는 어디에도 없이.
겨드랑이 사이로 피를 흘리던 괴물은 점점 힘을 잃는 듯하더니.
내 몸 위로 푹, 하고 쓰러졌다.
죽음.
'죽은 척이 아니야. 진짜로 죽었어.'
괴물이 죽음과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황홀한 감각.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
[요리사의 눈]
[훌륭한 요리사는 다루지 못하는 식재료가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한 번도 다뤄 보지 못한 재료라고 해도요!]
['식재료'로 판정되는 대상에 한정해, 관찰을 통해 대상의 올바른 조리법, 손질법 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스킬의 설명은 이랬다.
"...식재료."
옛날에, 너튜브에서 봤던 영상이 하나 떠올랐다.
도마 위에서 미친 듯이 날뛰던 생선이, 지느러미 사이를 푹 찌르자 순식간에 잠잠해지고.
거기서부터 피가 쏟아져 나오던.
생선 손질 영상.
확실히.
푹 찌르니 피가 쏟아져 나오며 죽는 괴물은 그 영상하고 비슷하긴 했지만.
"이 괴물이 음식 재료라고?"
손질법은 그렇다 쳐도, 조리법은 또 뭔?
[리자드 조리법의 깨달음 - 리자드 고기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나, 지나치게 푹 익히면 질겨지는 경향이 있으며, 잡내를 제거하지 않을 시 누린내가 심해 조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재료 중 하나이다. 추천되는 조리법은....]
미친.
나는 눈앞에 떠오르는 괴물의 조리법을 일부러 치워 버렸다.
저 녀석은 사람을 잡아먹은 괴물이다.
그 괴물을 다시 사람이 먹는다니, 끔찍하잖아.
"어찌 됐든. 살았으니까 다행인가."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는 문구.
뜬금없이 머릿속에 주입되는 손질법까지.
아직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았단 사실에 감사할 일이었다.
내 위에 엎어져 있던 괴물의 사체를 치우고 총성이 들려오는 탄약고 쪽으로 몸을 옮겼다.
운이 좋게도 방금 '손질'한 괴물 외에 다른 괴물과는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탄약고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신영준 병장님?"
"빨리 안으로 오십쇼!"
탄약고 근처에는 생활복 차림에 총만 덜렁 든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사, 살았다."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빠진다.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모여 있는 부대원들의 얼굴을 둘러봤다.
그 순간.
['최하급 요리 비결 - 영장류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
내 직업, 신입 요리사.
평범한 요리사는 아닌가 보다.
3화 회의
[최하급 요리 비결 - '영장류 손질법의 깨달음']
'요리사의 눈'은 식재료를 대상으로만 발동한다고 했다.
그게 얘들한테도 발동했다는 건.
"...."
눈앞의 문구를 보며 어이없어하고 있다 보니.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자 몇몇 병사들이 나를 꺼림칙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뭐야.'
남들 총 들고 경계 서고 있는데 맨몸이라 그런가?
아니면 혹시 인간 손질 어쩌고 하는 문구가 남들한테도 보이나?
다행이라 해야 할지, 둘 다 아니었다.
"신 병장님?"
"어어, 왜?"
"그 모습은 대체...."
내 모습이 어떻길래, 하고 몸을 내려다보니.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식당에서 뿌려 댄 기름과 괴물의 피로 징그럽게 번들거리고,
남색이었던 취사복은 괴물 녀석의 피 때문에 푹 젖은 암적색이 돼 있었다.
한쪽 손에 들고 있는 사시미칼에는 괴물 녀석의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공포 영화도 아니고.'
이 몰골로 돌아다니고 있으니 꺼림칙하게 볼 수밖에.
'지금은 어려울 것 같고, 나중에 기회 되는 대로 씻어야겠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너희는 뭔 일이 있었던 건데?"
나도 어지간한 몰골이 아니었지만.
여기 모인 녀석들도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다들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에, 구석에서는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병사들도 보인다.
내게 말을 건 녀석은 멘탈이 강한 편인지 그나마 정상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온몸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저희는...."
대충 설명을 들으니, 내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주말답게 TV나 보면서 잡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TV가 먹통이 돼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들 TV를 때려 보던 순간.
갑자기 창문을 부수고 괴물들이 난입.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살아남은 부대원들은 어찌어찌 총기함에서 총을 꺼내 들고 탄약고로 도주.
총알을 보충하고 싸웠다는 것.
"원래는 총기 보관함 열쇠도 본부에서 보관해야 하는데, 우리 부대는 그런 거 신경 안 썼으니까 말입니다."
"가라 부대라 그나마 다행이었던가."
본부에서 보관해야 할 총기 보관함 열쇠는 생활관에 있었고, 탄약고 열쇠는 탄약 관리병 군복 주머니에 있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이게 군대냐' 하면서 욕하고 그랬지만, 열쇠가 멀리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신 병장님 쪽은 어땠습니까? 나머지 취사병들은 어디에...?"
이야기를 마친 녀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빼고 다 죽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뭐, 네가 미안할 필요까진 없고."
맞후임 준혁이.
막내 용준이.
'좋은 녀석들이었는데.'
준혁이는 요리하다 온 사람답게 식당 일도 잘하고 성격도 싹싹한 에이스였고.
막내 용준이는 다소 둔하고 일은 못하는 편이어도, 애가 성격은 참 착했다.
식당 일을 할 때야 선임으로서 혼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이렇게 죽을 녀석들은 아니었는데.
'...정말 나밖에 안 남았구나.'
일단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서일까.
이제야 그 사실이 체감됐다.
괜히 울적해져서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탄약고 안쪽에서 병사 한 명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신 병장님. 김 중위님이 잠깐 좀 와 달랍니다."
"나? 나를 왜?"
"신 병장님만 부른 건 아니고, 부서별 병사들 수 확인해서 부서별 최고참들 다 와 달랍니다."
"아, 하긴. 주말이라 부대 내에 간부도 얼마 없으니, 병사들 의견도 들어야겠네."
평상시라면 이런 비상사태일 때 간부들끼리 의견을 교환한 뒤 병사들에게 전달하겠지.
하지만 사건이 터진 오늘은 마침 주말.
부대에 남은 간부도 얼마 없겠다, 병사들 의견도 참고하려는 거겠지.
"...그게, 얼마 없는 수준이 아니랍니다."
"응?"
"오늘 부대 올라와 있던 간부님들 다섯 분이었는데. 김 중위님을 제외하고 모두 돌아가셨답니다."
말을 이어 갈수록, 병사 녀석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간부들까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병사들 중 일부는 구석에 주저앉아 무릎을 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고.
심지어 몇 명은 정신이 완전히 나가 버린 것인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그렇게 김 중위가 불렀다는 장소로 향하니, 나 말고도 몇몇 부대원들이 먼저 도착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
"영준이 왔어? 거기 앉아."
김현석 중위.
핏기가 전부 빠진 듯 창백한 얼굴의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일단은 앉아서 얘기하자."
애써 태연한 척하는 표정이었다
* * *
김 중위.
첫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인물이다.
아니, 오히려 호감 가는 인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나이도 젊고 키도 큰 편에, 얼굴도 나름 듬직하게 생겨서 믿음이 가는 얼굴이니.
그런 외모에 속아 처음에는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일은 더럽게 못하면서, 욕심만 많은....'
폐급 간부.
나도 처음에는 나름 잘 보이겠다고 요리를 해다 바쳤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맛없는 메뉴가 나올 때마다 '영준아, 나는 이따 다른 메뉴로 해 주라.' 하면서 주문까지 하던 모습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이 사람이 지금 우리 부대 최상급자다, 이건데.'
두통이 심해지려는 게 느껴졌으나.
어떻게든 티 내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다른 부서의 고참 병사들이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송반에선 성호가 왔네? 최고참은 준교 아니었나?"
"아, 그게. 김준교 병장은 죽... 아니, 돌아가셨습니다."
"어, 어? 어어. 그래."
어색하게 말을 삼키는 김 중위.
'지금 그딴 걸 왜 물어봐.... 분위기 어쩔 건데.'
이곳에 모인 부서별 최고참 병사 중 반 정도는 원래는 최고참이 아니었다.
원래의 최고참 병사는 죽거나,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고.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도 제정신을 유지 중인 병사들만이 이 자리에 모인 것.
하지만....
"우욱...."
"X발. X발. X발...."
누군가가 죽는 모습을 떠올렸는지 토악질을 하는 녀석.
머리를 부여잡고 작은 목소리로 욕을 되뇌는 녀석까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대부분이 어떻게든 제정신을 붙잡고만 있을 뿐.
반쯤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역시, 후임 녀석들이 잡아 먹히던 풍경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크흠, 그럼 인원 체크부터 하자. 반별로 인원 조사한 것부터 말해 줄래?"
그런 와중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모두가 의견을 맞댈 필요가 있다.
얼추 최고참 병사들이 다 모인 뒤.
회의가 시작됐다.
"수송반은 열 명입니다."
"레이더반은 일곱...입니다."
"취사반 한 명 남았습니다."
나도 대답을 하면서 다른 병사들이 말하는 숫자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 결과 알게 된 사실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살아남은 인원이 100명 정도.'
나는 취사병인 만큼 우리 부대에서 밥을 먹는 인원의 숫자를 잘 알고 있다.
밥을 먹는 인원은 곧 부대에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
그리고 내 기억에 의하면.
주말에 부대에 머무는 인원은 200명이 조금 넘어야 정상이었다.
'절반 가까이 죽었어.'
사상자가 많을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보고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손을 든 것은 통신반의 이민재 병장이었다.
나랑은 한 기수밖에 차이가 안 나서 이제는 형, 동생 하는 사이.
대부분의 병사가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민재 형은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회의에 가장 늦게 출석한 것도 민재 형이었지.
"여기 오기 전에 후임들하고 같이 확인해 봤는데, 아무래도 외부하고 연락이 끊긴 것 같습니다."
"뭐?"
"일반적인 통화는 전부 권외로 뜨고, 비상용 연락망도 전부 먹통입니다. TV, 라디오는 물론이고. 인트라넷이나 군용 주파수... 시도해 볼 수 있는 모든 통신 수단은 전부 시도해봤습니다만, 전부 끊긴 듯합니다."
뭐?
이게 뭔.
'개소리야?'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주변의 다른 병사들도 웅성거리는 게 느껴졌다.
"외, 외부하고 연락이 아예 안 된단 말씀이십니까?"
"뭐야 그게, 북한이 EMP라도 터트린 건가?"
"아니지. 군대는 EMP 터져도 안전하게 차폐막 같은 거 해 놓잖아! 대체 왜...!?"
안 그래도 모여 있던 병사들 사이에 은은하게 퍼져 있던 혼란.
그나마 병사들에게 남아 있는 한 줌의 이성이 그것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외부와의 연락이 끊겼다는 소식을 불씨 삼아 혼란이 급격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제길, 이러다 여기서 다 죽는 거 아닙니까!?"
"바깥이랑 연락이 안 된다니, 그럼 우리 가족은...."
혼란에 빠진 병사들은 그렇게 소란스럽게 떠들다가.
이내, 김 중위에게 시선을 보냈다.
"김 중위님....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인간은 불안하면 기댈 곳을 찾게 되기 마련.
부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부.
즉, 현시점에서 우리 부대의 지휘관인 김 중위.
나도 내심 유일한 간부인 그가 이 혼란을 정리하고, 냉정하게 지시를 내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뭘 해야 한다는 목표가 확실히 정해진다면.
병사들의 불안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한 것인데.
"그, 글쎄. 나도 잘...."
냉정한 지시는 무슨.
김 중위에게 그딴 걸 바라는 게 무리였다.
"...당신이 모르면 어쩌자고!"
"히익!"
"야, 야! 진정해!"
흥분한 병사 한 명이 김 중위에게 달려들려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외려 혼란만 가중되는 와중.
머리를 싸매고 있던 김 중위가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입을 열었다.
"그, 그래. 연락이 끊겼다고 했지? 병사 몇 명만 상위 부대로 보내서 연락을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상위 부대의 명령을 받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기껏 의견을 꺼냈는데 미안하지만.
거기에 초를 친 것은 나였다.
우리 부대는 해발 1,4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레이더 기지.
산의 입구에서 부대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은 걸리는, 제1급 격오지 부대다.
"차를 타고 나간다 해도 산을 빠져나가는 데만 한 시간에, 상위 부대까지 도착하려면 두 시간은 걸릴 텐데, 그동안 괴물이 습격하기라도 하면."
통신이 괜히 끊긴 건 아닐 터.
괜히 상위 부대와 연락하겠다고 사람을 보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차라리 총기를 가진 부대원들과 뭉쳐 있는 게 안전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그,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까! 대신 지원자만 뽑아서 가는 거로 하자."
김 중위는 상위 부대에 연락하는 걸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기가 명령권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건가.'
평범한 상황이면 모를까, 괴물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단의 고삐를 쥐었다가 잘못된 선택을 하기라도 하면 후폭풍이 엄청날 테니.
그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는 생각 자체는,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긴 하다만....
'지휘관이 보일 태도는 아니잖아.'
나를 비롯해, 그나마 판단력이 남아 있는 몇몇 병사들은 영 꺼림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간부가 그러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으니.
결국 자원자를 모아 상위 부대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좋아, 좋아.... 그럼 상위 부대와 연락이 될 때까진 부대에서 대기하는 게 원칙이니까.... 영준아, 우리 부대에 식량이 얼마 남았지?"
나를 지목하는 질문에 급하게 머리를 굴려서 대답을 꺼냈다.
"어, 부식이 금요일에 들어왔으니까 기본 식단으로는 5일 치 정도고, 그 외에도 부대 비상식량이 6주 치 정도 있을 겁니다. 부대 인원이 줄어든 것까지 고려하면 두 달 치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만."
"그래? 그럼 식량은 그렇다 치고, 부대에 탄약은 어때?"
그 말에는 다른 병사가 대답했다.
"저번 주 사격훈련 때 교탄은 전부 써 버려서 상비해 두는 전투용 탄약밖에 없습니다. 적은 양은 아니긴 합니다만, 추가 보급이 없다 치면...."
"많지는 않구나. 그래도 괴물이 더 안 나온다면 문제는 없지 않을까?"
"그야 그렇지만, 더 나오기 시작하면 엄청 문제 되는 거 아닙니까?"
그 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당장 부대 내의 남아 있는 괴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전기나 식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상위 부대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부대를 어떻게 지키고 있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들.
'그래도 상위 부대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목표가 정해진 덕인가.'
당장의 목표가 생겨나자.
혼란스러워하던 병사들도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로 회의가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나머지는... 뭐, 그때그때 임기응변에 맡기는 걸로!"
...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럼, 이만 해산하자."
얘기들이 얼추 끝났다 싶은지, 김 중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병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뒤로 빼고 있었다.
나만 빼고.
'응?'
회의가 이렇게 끝난다고?
가장 중요한 얘기를 안 하지 않았나?
"저기, 각성에 대해서는 말씀 안 하십니까?"
"?"
기껏 손을 들고 말했더니.
다들 무슨 소린가, 하는 눈치.
'뭐야, 내가 이상한 거야?'
괴물을 죽였더니 이상한 힘을 얻은 상황이다.
당연히 이에 관해서도 얘기가 오갈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얘기가 오가기는커녕.
다들 각성이 뭔지조차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들, 괴물을 사냥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어떻게든 총으로 무장한 뒤에 사냥하긴 했지.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야?"
뭐지?
이 자리에 각성자는 나뿐인 건가?
나는 분명 괴물을 사냥하자마자 각성에 성공했다.
'...각성이 랜덤하게 이뤄지거나, 아니면 총으로 사냥한 게 문제거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각성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음,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아직 미처 닦지 못해 피 묻은 칼을 꺼내 들었다.
주변에서 칼을 향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대충 무시하고.
내 앞에 있는 테이블을 바라봤다.
이렇다 할 특별한 점 하나 없는, 평범한 나무 테이블.
'이건, 된다.'
이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가능할 거라는 묘한 직감이 있었다.
'야채를 자르는 감각으로.'
손에 든 식칼을 테이블에 대고, 쓱 하고 밀었다.
그러자
서걱.
피가 좀 묻은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특징도 없는 사시미칼.
그 사시미칼이, 단단한 나무 테이블을 무처럼 썰고 지나갔다.
"미친...?"
"뭐, 뭐야...."
주변의 모두가 경악하며 나를 바라본다.
전기톱도 아니고.
평범한 식칼로 나무 테이블을 베어 버렸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겠지.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이게 최하급이라고?'
다른 부대원들과 만나기 전에 만났던 괴물.
그 괴물의 살점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던 감각.
그리고 나무를 무처럼 가볍게 베어 버리는 일까지.
'평생 검을 단련한 달인들도 될까 말까 한 일이야.'
이런 게 최하급이라면.
중급, 고급은 어느 정도라는 걸까.
나를 바라보며 놀라고 있는 부대원들을 보며 말을 잇는다.
"식당에 들어온 괴물을 죽인 뒤, 각성이라는 걸 겪으면서 이런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사시미칼을 든 손으로 김 중위를 가리켰다.
"아까, 괴물들이 더 나오면 탄약이 모자랄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랬지."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 목표는 바로 이겁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듯이.
탄약이 없다?
탄약 없이 싸울 수 있는 군대를 만들면 되는 일 아닌가?
각성 직후 눈앞에 보였던 문구를 떠올린다.
[월드 이벤트 - 세력전이 진행 중입니다.]
뭉쳐야 산다!
세력을 만들거나, 세력에 소속되어 보세요.
가장 빨리 세력을 일궈 낸 이들에겐, 특별한 특전이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맞는 말이야.'
난 살아남을 거다.
무사히 전역하고, 레스토랑도 열거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뭉쳐야 하고.
'너희들은 내가 먹여 살린다.'
이 집단을 먹여 살려야 한다.
"전 부대원들을, 각성자로 만드는 겁니다."
4화 각성자 늘리기 (1)
대충 회의를 끝낸 우리는, 우선 부대 정리에 들어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괴물들은 사람이 있는 곳만을 습격했다.
모든 부대원이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부대 내의 괴물들을 처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생각보다 생명력이 질기네."
두꺼운 비늘에 둘러싸인 괴물.
리자드.
대형 삽으로 후려쳐도 상처 하나 나지 않던 괴물이었지만.
다행히 총을 쏘면 상처를 입기는 했다.
한두 발로는 끄떡도 안 한단 게 문제였지만.
"거의 한 탄창은 때려 박아야 죽는 것 같습니다."
괴물 한 마리에 스무 발에서 서른 발.
오늘 부대를 습격한 괴물만 해도 열 마리가 넘었는데, 이래서야 총알이 남아날 리가 없다.
'당장은 어떻게든 버틴다지만, 이대로는 안 돼.'
추가적인 보급이 없는 이상.
한계는 금방 올 것이다.
"부대원들 시체는 어떻게...."
"부대 뒤편에 묘지 있어. 시신 운구용 백에 넣고, 거기 안치하자."
대충 이런 식으로.
총을 든 병사들이 3인 1조로 순찰을 하면서, 나머지는 최대한 부대를 정리해 나갔다.
지난 회의가 끝난 후.
유의미한 결론은 두 가지였다.
상위 부대에 사람을 보내 연락하는 것과 각성자를 늘리는 것.
전자는 부대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는 게 더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병사 두 명이 자원해서, 레토나를 타고 나가는 거로 해결이 됐지만.
후자의 경우.
부대를 정리하며 꽤 많은 괴물을 처치했음에도 나를 제외한 각성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총으로 죽여서 그런 거겠지."
레이더 반의 박태준 병장이 말했다.
내 동기이자, 이번에 나타난 괴물 중 한 마리를 직접 쏴 죽인 녀석이다.
"역시 그거밖에 없겠지?"
"너는 직접 괴물이랑 부대끼면서 멱을 땄다며? 우리는 괴물들이 접근도 못 하게 멀리서 쏴 죽였으니까. 차이가 있다면 그 부분뿐이겠지."
나는 괴물을 죽였을 때 내 몸 안에 차오르던 기운을 떠올렸다.
괴물이 죽으면서 그런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걸 가까이에서 흡수해야 한다든가.
뭐 그런 게 아닐까.
"뭐, 지금은 네가 알려 준 약점... 겨드랑이랬지? 그걸 알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궁금해지네. 네가 처음 괴물을 죽였을 땐 약점도 몰랐을 것 아니야?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뭐, 끓는 기름 좀 뿌리고. 막내 녀석 시체를 뜯어 먹느라 바쁠 때 뒤통수에다가...."
"끓는 기름? 무슨 공성전도 아니고."
녀석은 내 경험담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더니, 다시금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자. 이 녀석들, 총알 몇 발로는 죽이기 힘들어. 하지만 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괴로워하고 힘이 빠지는 게 보이거든. 총으로 최대한 죽기 직전까지 몰아간 다음, 숨통을 끊을 때만 접근해서 약점을 찌르면 되겠지."
말하던 녀석은 내 손에 든 사시미칼을 흘깃 보았다.
"너랑은 다르게 우리는 총에 대검을 끼운 총검으로 찔러야겠지만."
생활관 옆 창고에서는 시설반 병사들이 그라인더를 꺼내 와 대검을 날카롭게 갈고 있었다.
총검은 총의 길이만큼 리치가 긴 무기니까.
내 사시미칼보단 안전하겠지.
"아직 살아 있는 괴물이 저항하면?"
"그땐 뭐, 명복을 빌어 줘야지."
"미친놈."
"킥. 뭐, 어차피 괴물이 더 나올 때 일이고. 더는 안 나올 수도 있는 건데 걱정해 봐야 뭐 하겠냐."
태준이 녀석은 괴물이 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확실히, 부대를 습격한 괴물들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이라고 안 일어나리란 보장도 없지.'
그렇다고는 해도, 태준이 녀석의 말대로.
지금 걱정해 봐야 의미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럼 이쪽은 너희가 잘 관리해. 난 밥하러 간다."
그러자 녀석이 오히려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본다.
"이 상황에?"
"이 상황이니까 더 그렇지. 밥은 먹어야 일이 되지 않겠냐."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점심은 이미 글렀고, 저녁은 지금부터 준비하면 될 것 같으니까 시간 맞춰서 오라 그래. 간다."
그렇게 태준이 녀석을 뒤로하고 식당으로 복귀했다.
"개판이네."
괴물과 후임들의 시체는 일단 다른 병사들과 함께 치웠다만.
내가 뿌려 댄 기름은 아직도 바닥에서 번들거리고, 사방에 튀어 있는 피나 살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충 치우고 요리하자."
막내 때 기억을 떠올리며 뜨거운 물로 취사장을 청소한 뒤,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다고는 하나, 최소 3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니 그만큼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왜 이렇게 쉽지?"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아니, 힘이 들기는커녕 편안하게까지 느껴진다.
'[최하급 요리 숙련]의 힘인가?'
거기에 [최하급 화염 친화]의 힘인지, 언제나 더웠던 취사장도 편하게 느껴졌다.
하긴.
최하급 단도 숙련만 해도 식칼로 나무를 뎅강뎅강 썰어 버릴 수 있는 달인으로 만들어 줬으니.
후임 둘이 죽고 나 혼자 남아서 앞으로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문제는 없을 듯하다.
그렇게 저녁 메뉴를 완성했을 때였다.
['초보 요리사의 삼겹살볶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재료의 질이 좋지 않습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하락합니다.]
[뛰어난 온도 조절로 인해, 요리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요리사의 정성이 [보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초보 요리사의 삼겹살볶음']
[섭취 시 일정 시간 동안 힘+1, 민첩+1]
[스킬 - 주방장의 특별 소스를 첨가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흠."
먹으면 일정 시간 능력치가 올라가는 요리라.
"뭐,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상태창.
각종 설명 문구들까지.
처음엔 당황해서 눈치 못 챘지만.
조금만 눈치가 있어도 이게 뭔지는 알 수 있었다.
'게임 시스템.'
그리고 게임에서 요리사가 하는 일이 뭐겠는가.
버프 효과가 있는 요리의 제작.
"근데 힘 1, 민첩 1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네. 효과가 큰 거야, 작은 거야?"
게임의 요리사라고 해도 모두가 같지는 않다.
요리의 버프 효과가 엄청나게 커서 요리 스킬이 필수로 여겨지는 게임이 있는 반면, 효과가 너무 적어 사실상 없는 시스템 취급받는 게임도 존재한다.
내가 처한 이 '게임'이 어느 쪽일지에 따라, 나의 가치가 달라지겠지.
신경이 쓰이는 점은 또 하나 있었다.
"주방장의 특별 소스?"
[주방장의 특별 소스]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훌륭한 주방장은, 그 마음의 방향성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별 소스를 통해, 음식을 섭취한 이들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이 능력을 쓰면, 먹은 사람들의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그건데.
"굳이 쓸 데가 있냐 싶긴 하다만."
오늘 사건이 터지고 봤던 부대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
"밥 먹고 좀 편해졌으면 좋겠네."
[주방장의 특별 소스 - 편안함]을 첨가합니다.
[편안한 마음의 초보 요리사의 삼겹살볶음]
[섭취 시 일정 시간 동안 힘 +1, 민첩 +1]
[먹으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를 내놓고 기다리니.
저녁 시간에 맞춰 병사들이 식당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신 병장님. 잘 먹겠습니다."
"오냐."
다들 기운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온 것 같았다.
나는 음식을 배식하며, 음식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슬쩍슬쩍 병사들을 엿봤다.
'효과가 있긴 한 건가?'
힘이 세진다고 하면 뭐랄까, 근육이 커진다든가. 핏줄이 올라온다든가.
그런 외형 변화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효과가 있기는 한 건지 외형적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
'혹시 이거 쓰레기 능력 아니야?'
그렇게 불안해하던 찰나.
밥을 다 먹고 나가려던 병사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신 병장님. 감사합니다."
"어? 뭐가."
"밥해 주신 거요. 괴물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좀 예민해졌는데... 배가 부르니까 좀 편안해지더라고요. 잘 먹었습니다."
피식.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보네.
"원래 배고프면 사람이 예민해지고 그런 거지 뭐."
"그리고 오늘 메뉴 진짜 맛있었습니다."
"맨날 하던 대로 한 건데 뭘."
"그렇습니까? 평소보다도 맛있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보니.
다른 병사들도 표정이 조금씩은 풀린 것 같았다.
능력치 부분은 잘 모르겠다만.
'이렇게 애들 멘탈 관리라도 되면, 나름 괜찮은 능력일지도.'
스트레스 해소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최고라고 하지 않는가.
맛은 둘째 치더라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잘 먹었단 얘기는 몇 번을 들어도 좋네."
흐뭇하게 식당을 둘러보던 때였다.
투다다다다다당!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약간은 기대했었다.
어쩌면 아까 부대를 덮쳤던 괴물들이 마지막이고.
다른 괴물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 * *
부대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진 뒤.
급하게 식당을 빠져나온 나는, 최대한 빠르게 소리가 들려온 장소로 향했다.
"왔냐."
도착하고 나니.
레이더반 박태준 병장과 통신반 이민재 병장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총소리가 들렸다는 건, 역시."
"그래."
태준이 녀석이 고개를 슬쩍 까딱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두 마리다."
태준이 녀석이 가리킨 곳에서는, 총을 든 병사들이 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두 놈 다 살아 있고?"
"그래. 그리고...."
태준이가 대검이 박혀 있는 총을 보여 주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부터 찔러 볼 거다."
두 괴물 모두, 총을 스무 발 가까이 맞았는지 힘이 빠진 채 죽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와 싸울 때의 난폭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바닥에 쓰러진 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괴물들.
"후우."
이민재 병장이 먼저 대검을 끼운 소총을 들고 피 흘리는 괴물에게 접근했다.
태준이 역시 총검을 들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
이 둘이 가장 먼저 나선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각성하는 건,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로 하자.'
'왜?'
'우리야 네가 테이블을 무처럼 써는 걸 봤으니까 각성이니 하는 걸 믿지만, 다른 병사들은 괴물한테 맨몸으로 접근하라고 하면 뭔 개소린가 싶을 테니까. 그렇다고 임무 분배받고 퍼져 있는 병사들을 다시 불러서 테이블 썰기 쇼를 보여 줄 수도 없으니. 우리도 각성해서 이런 게 있다는 걸 알려 줘야지. 말 나온 김에 내가 먼저 할게.'
그 말을 꺼냈던 사람이 바로, 지금 괴물에게 다가가고 있는 이민재 병장이다.
총소리를 듣고 여기저기서 몰려온 부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민재 병장은 피 흘리는 괴물에게 다가갔다.
콱.
혹시 녀석이 일어날까 봐 가슴팍을 발로 짓밟은 뒤.
총검을 아래로 겨눈다.
"후욱."
약점은 내가 알려줬다.
왼쪽 겨드랑이.
숨을 고른 이민재 병장은, 단숨에 총검을 내리찍었다.
푸욱.
찔린 겨드랑이에 몰려 있던 혈관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
첫 각성 때 구차하게 달라붙어서 식칼로 서걱서걱 썰어 댔던 나와는 다른, 깔끔한 한 방이었다.
애초에 다 죽어 가던 녀석의 숨통만 끊는 역할이니 가능한 일이지만.
"큭. 기분 엿같네, 이거."
돌아온 이민재 병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뒷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어때 형, 시스템창은 떴어?"
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이민재 병장은 씨익 웃으며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꼬나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는 곳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파지지직.
그 손가락에서 눈에 보이는 파란 전기가 번쩍이더니.
담배에 불이 붙었다.
"초보 마법사란다. 특성은 최하급 전기 친화. 스킬은 전격하고 기타 등등."
"미친, 마법사도 있어?"
"가장 먼저 각성한 네가 놀라면 어쩌냐."
어찌 됐든.
이걸로 가설은 확인됐다.
가까이서 직접 괴물을 죽이면, 각성할 수 있다는 것.
"다음은 나군."
태준이 녀석도 그 모습을 보았는지.
총검을 꼬나 쥔 채 반대쪽 괴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괴물이 공격해 올까 조심하며, 왼쪽 겨드랑이가 보이도록 발로 차 뒤집으려던 순간이었다.
"끄... 라학!"
"태준아!"
다 죽어 가는 듯이 보였던 괴물 녀석이 고개를 들더니, 태준이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끄으으읍...."
태준이 녀석은 종아리를 물려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총검을 놓지 않았다.
푸욱!
그리고 괴물 녀석의 약점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약점을 찔린 괴물은 곧 힘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태준이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박태준 병장님!"
"미친, 야! 의무병 불러와!"
"저, 저희 의무병은 물리치료 학과라 저런 치료는 못 할 텐데요."
"없는 것보단 낫지, 인마!"
종아리에 눈에 보일 정도의 구멍이 뚫려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녀석.
곧 의무병이 달려와 다른 병사와 함께 태준이를 들쳐 멨다.
"야...."
그렇게 끌려가던 태준이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떴다.... 시스템창."
"그래, 그래. 잘했어, 자식아!"
상처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과다하게 분비됐는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킥킥거리며 끌려가는 녀석.
'상처가 걱정되긴 하지만... 태준이도 각성했다.'
괴물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사실은 암울했지만, 이쪽도 전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뜻.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각성자를 늘려 나간다면, 곧.
'총알 없이도, 괴물과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완성된다.'
살아남기 위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5화 각성자 늘리기 (2)
태준이 녀석까지 각성에 성공했다.
비록 녀석은 다쳐 버린 탓에 어떤 능력으로 각성했는지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다들 집중!"
파지지직-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민재 형의 몸에 푸른빛 전류가 흐른다.
심지어는 유형화한 전기를 한 손에 모아 쥐는 모습까지.
"마, 마법...."
"각성이란 게 진짜였다니."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믿지 못할 광경에 입을 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각성한 요리사라는 직업도 충분히 신기하긴 하지만.
칼로 테이블을 써는 묘기 정도를 제외하면 겉으로 봤을 때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 주기는 힘들었다.
반면 민재 형의 마법은, 얼핏 보기에도 엄청나게 화려했다.
한 번 보기만 해도 각성이라는 현상을 믿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무려 현실에 나타난 마법사니까.'
괴물을 가까이에서 죽이면 각성할 수 있다.
이 사실이 확인된 이상, 더 이상 미룰 것은 없다.
예정된 순서대로 병사들을 차근차근 각성시키다 보면.
언젠가 총 없이도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전력이 완성될 터.
"다음으로 각성해야 하는 게... 시설반 광일이. 맞지?"
그렇기에 나는, 다음으로 각성하기로 한 병사를 찾았다.
전광일 상병.
지난 회의에도 참여한, 어쩌다 보니까 시설반 최고참이 된 녀석.
그런데, 녀석의 눈빛이 뭔가 이상했다.
"나, 나는, 못 해...."
"뭐?"
...이 새끼가?
* * *
"나, 아니, 저, 저는 못 하겠습니다. 절대 못 합니다."
두려움에 떨리는 눈으로 말하는 전광일 상병.
"야, 나랑 태준이는 안 무서웠을 것 같냐? 나도 살면서 죽여 본 거 모기밖에 없는 사람이야."
전광일 상병이 자기는 못 하겠다고 벋대자.
설득을 위해 나선 것은 이민재 병장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잖냐, 지금 사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 다 같이 살려면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지."
"그, 그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저는 못 하겠습니다."
"야 이...."
파지직.
분노한 이민재 병장의 얼굴 주변에 푸른 전기가 파지직거렸다.
화나면 전기가 흐른다니.
피X츄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건 넘어가고.
"뭐, 뭐라고 하신들 저는 못 합니다! 무서운 걸 어떻게 합니까!"
본래 시설반의 최선임이였던 병사가 죽은 지금.
녀석은 현 시설반 최선임으로, 당연히 회의에도 참여했었다.
각성자를 늘리자는 얘기를 할 때만 해도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던 녀석.
갑자기 저러니 당황스러울 따름.
이유라고 한다면.
'태준이 녀석이 괴물한테 공격당한 것 때문인가?'
죽기 직전까지 힘을 빼놨다고 생각했던 괴물에게 태준이가 발을 물어뜯긴 일.
'다른 사람이라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
아니.
어쩌면 다치는 정도로 끝난 태준이가 운이 좋은 걸 수도 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다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추한데...."
못 하겠다, 못 하겠다. 소리를 지르던 전광일 상병은 이제 아예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한 상태.
다 큰 어른이 드러누워서 징징대는 꼴은 상상 이상으로 추했다.
'저 녀석, 저 정도로 폐급은 아니지 않았나?'
오히려 반대였다.
전광일 상병은 190cm가 넘는 큰 키에, 근육도 우락부락한 덩치.
몸 크기에 비해 성격은 유순한 편이라, 시설반에서 힘든 작업이 있어도 내색도 안 하고 도맡아 한다고 들었다.
시설반장의 총애를 받아 상병 달자마자 전문하사 권유를 끊임없이 받고 있을 정도로.
오히려 에이스에 가까운 녀석이, 대체 왜?
"전광일 상병, 덩치에 비해 겁이 많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그때.
뒤에서 얘기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예. 그냥 힘든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높이 올라가야 하는 일은 못 하고, 공포 영화도 못 보고... 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허, 괴물도 그냥 때려죽일 것처럼 생겨서는."
어이가 없었다.
신장 190cm 중반에 3대 500을 거뜬히 치는 남자가 바닥에 드러누워서 못 한다고 뒹굴거리는 모습이란.
'저게 진짜 그냥 무서워서, 겁이 많아서 저러는 거라고?'
이민재 병장 역시 그런 전광일 상병의 모습에 질린 듯.
결국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그래. 못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너 좋을 대로 해라."
"가, 감사합-"
"대신!"
"예?"
"너. 앞으로 부대에서 선임 대우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군대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병이니 병장이니 하는 계급이 전부는 아니다.
서열에 민감한 남자들만 모여 있는 장소가 바로 군대.
그 특성상, 자신 위에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병사 개인 간의 문제라면 서로 사이가 나쁘고 말 일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도 그 병사가 계급에 맞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있을 때.
부대 단위에서 계급에 맞는 대우를 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기수열외.
'아니, 그런 경우도 있다고 듣기만 한 거지. 우리 부대엔 그 정도로 심한 녀석은 한 명도 없었는데.'
정말로 문제가 있어 군 생활을 못 하던 병사면 모를까.
전광일 상병은 시설반장의 총애를 받던 에이스에, 계급도 부대의 실세나 다름없는 상병.
이제 와서 계급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간 노력해 온 군 생활을 모두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이민재 병장은, 각성을 피할 거라면 그 정도 굴욕은 감수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광일 상병이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공포가 앞선다는 것일까.
자기도 자신이 추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잠자코 치욕을 받아들이려는 녀석.
하지만....
"민재 형, 그리고 광일이, 잠깐만."
내가 봤을 때.
이 일은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
나는 한창 대화하고 있는 둘의 사이에 끼어들기로 했다.
"영준아?"
"신영준 병장님? 병장님이 뭐라 하셔도 저는 못 합니...."
"아,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하고. 잠깐 식당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민재 형이랑 얘기 좀 하게."
"...알겠습니다."
일단 광일이를 식당의 취사병 휴게실에 보내 놓은 뒤, 이민재 병장을 따로 불렀다.
"하... 무슨 얘기를 하려고."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담배에 불부터 붙이는 이민재 병장.
나는 그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내뱉을 때까지 기다려 준 뒤 입을 열었다.
"민재 형, 화나는 건 이해해.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마무리하면 안 돼."
"...야, 영준아. 너 착한 건 알겠는데, 광일이 저 새끼는 그만한 X신 짓을 한 거야. 그러면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지. 그냥 다 봐주고 넘어가면...."
"아, 그런 거 아니라고."
애초에 난 그렇게 착하지도 않다.
남들한테 요리해 주는 건 좋지만, 후임들한테는 잔소리도 자주 하고 욕도 꽤 한다.
애초에 군대에서 착하게만 굴어서는 일이 돌아가질 않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별개였다.
"다른 일이었으면 나도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거야. 광일이 녀석이랑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녀석이 잘못한 것도 맞으니까. 근데 지금 상황에선 달라."
"...계속 말해 봐."
"내 예상이긴 한데, 지금 탈영 생각하는 애들 많을걸."
"뭐?"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며 놀라는 이민재 병장.
"생각해 봐. 부대에 괴물이 막 나오고, 장교랑 병사들이 죽어 나갔어. 외부랑은 연락도 안 되고."
부대에 나타난 것이 북한군이 아니라 괴물이란 것만 제외하면.
사실상 전쟁 같은 분위기.
"형도 진짜 전쟁이 나면 탈영해야지, 이런 생각 해 본 적은 있을 것 아냐. 당장은 사건 터지고 시간이 얼마 안 지났으니 얌전한 거지, 멘탈 갈려서 탈영 생각하는 애들 많을 거야."
"야, 우리 부대는 차 타고도 한 시간이 걸리는 산속에 있는데 어떻게 탈영을 하냐. 괴물이 우리 부대만 습격할 리도 없고, 바깥에도 괴물이 있다 치면 군인들끼리 모인 여기가 더 안전할 수도 있는데."
"그게 당장 탈영자가 안 나온 이유지. 그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바깥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녀석들도 나올 거야. 바깥에 있을 가족도 걱정될 거고."
사실 이건 남 얘기도 아니다.
당장 나도 바깥의 가족들이 걱정되니까.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
"형.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부대를 강하게 만들어야 해."
"...그렇지."
"병사들이 탈영하면 부대는 약해져. 반대로 부대가 강해지면,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병사들이 늘어날 테니 탈영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질 거고."
당연한 얘기다.
전쟁이 나면 탈영하겠다느니 하는 얘기도, 전쟁이 나면 군인들이 위험하기 때문이지.
군대가 더 안전하다고 한다면 누가 탈영하겠는가.
"그래, 그래서 각성을 시키려고 했는데, 광일이 녀석이 난리를 쳐서 이 사달이 난 거잖냐."
"형. 내가 그래선 안 된다고 한 건, 광일이한테 계급 대우를 안 해 주겠다느니 한 게 아니야."
"뭐?"
"문제는, 각성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한 거지."
각성 과정이 무난하게 흘러갔다면 문제는 없었겠지.
하지만 그 와중에 태준이가 크게 다치고야 말았다.
그리고 많은 병사가 그 모습을 봤다.
공포가 퍼지고 있을 것이다.
"광일이만 그런 게 아니라, 가능하면 자기도 빠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많을 거야. 계급 대우 좀 못 받는다? 죽는 거보다는 낫잖아?"
"...."
"한 명이라도 이렇게 넘어간 사례가 생기면, 자기도 못 하겠다고 우기는 놈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올걸. 각성한 병사들하고 안 한 병사 간에 마찰도 생길 수 있고."
"하...."
"지금은 우리를 통제할 만한 간부도 없는 상황이야. 이럴 때 그런 불화가 생기면, 결국 분열로 이어지고...."
"부대가 약해지겠군."
"맞아."
차라리 내 직업이 다른 것이었으면.
부대 따위 내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나갔을 수도 있겠지.
왜, 검사라든지, 암살자라든지.
그런 직업들은 게임에서도 솔플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은가.
비슷한 느낌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직업은 레벨 1짜리 신입 요리사.
이름만 봐도 서포터 직군.
솔플에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내 직업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결국 누군가에게 요리를 먹이는 게 중요하겠지.
그리고 취사병인 나한테 고객들은 이 부대의 병사들.
이 부대가 망하면 내 요리를 먹어 줄 사람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 부대가 망할 일 없게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길.
"총원 각성. 열외는 용납할 수 없어."
이민재 병장은 두통이 오는 듯 머리를 매만지다가 담배를 깊게 한 모금 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치자. 근데 그러면 광일이 저 녀석을 설득해야 하는데, 어쩌려고?"
결국, 문제는 이거다.
이민재 병장이라고 해서 광일이를 빼 주고 싶어서 빼 준 건 아니었으니까.
"계급 대우 못 받는 것만 해도 굴욕적인 건데, 다 감수하고 못 하겠다고 한 녀석이다. 어지간한 설득은 통하지도 않을 거야."
"나한테 생각이 있어. 한 번만 믿어 줘."
"네가 그렇다면 그러겠다만... 쉽지는 않을 거다."
이민재 병장은 정말 가능할지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어려운 일은 맞다.
하지만 내게도 믿는 구석은 있거든.
이민재 병장을 생활관으로 보낸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신영준 병장님...."
취사병 휴게실의 문을 여니.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전광일 상병의 모습이 보였다.
"야, 야. 혼내려고 부른 거 아니거든? 그냥 앉아 있어."
"예? 아, 알겠습니다...."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엉거주춤하게 다시 앉는 녀석.
상병 단 지도 꽤 된 녀석이 얼타는 모습.
어지간히 미안하긴 하나 보다 싶다.
"내가 널 부른 이유는, 뭐 별건 아니고."
"...."
나는 녀석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좋아하는 음식 없냐?"
"...예?"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아니 됐다, 눈치 보여서 말하기도 힘들 테니. 그냥 간단하게 볶음밥으로 가자."
내 직업은 요리사.
그런 내가 믿는 구석이라 봐야 당연히....
'요리지.'
내가 널, 진짜 군인으로 만들어 주마.
6화 각성자 늘리기 (3)
다른 군인들이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취사병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일이 하나 있다.
일개 군인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군대의 자산이자 국민의 혈세를 불법적으로 착복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
"저기, 신 병장님? 그 닭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겁니까?"
"엉? 아, 이거? 괜찮아. 우리끼리 먹을 거니까 다리랑 날개만 빼자."
"아, 저는 가슴살을 더 좋아합니다."
"뭐? 아, 운동 좋아하니까 그런 건가?"
식재료 빼돌려서 자기들만 맛있는 거 해 먹기.
"취사병들이 자기들끼리 맛있는 거 해 먹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우리끼리만 해 먹는 건 아니고, 간부들한테도 자주 해 줘."
"네? 간부들도 알고 있는 겁니까?"
"어. 보급반장님은 가끔 같이 먹을 때 소주도 가져오시고, 김 중위는 아예 주문까지 하거든? 그 양반, 면 종류 엄청나게 좋아해."
나는 말을 하면서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냈다.
'닭가슴살하고, 양파, 당근, 파, 계란....'
화로에 가스를 켜고 주방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냄비에 물을 담아 올린다.
'잡내도 좀 빼고 싶은데, 준혁이가 사 왔던 청주 쓰면 되려나.'
취사병끼리 요리를 해서 먹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부대에 있는 재료만으로는 맛있는 요리가 나오기 힘들다.
당장 조미료라고 해 봐야 소금, 후추, 고춧가루, 간장, 된장....
그 외에는 표고버섯 가루 같은 자연산 조미료밖에 못 쓰는 게 군대니까.
그래서 우리는 휴가를 나갈 때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요리에 맞는 재료나 조미료를 사서 보관했다.
나와 막내는 사회에서는 요리를 안 했던 사람이라 그런 일에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지금은 죽은 준혁이와 휴가 나가 있는 셋째는 요리를 하다 온 애들이라 그런지 고집이 있는 편이라.
취사병 휴게실의 관물대에는 군대 식당에 안 어울리는 재료들이 즐비했다.
"대부분 다른 취사병 애들이 산 건데... 괜찮겠지 뭐."
그렇게 끓는 물에 청주를 넣고 닭가슴살을 익히고 있자니.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광일이가 말을 걸어왔다.
"저, 신영준 병장님."
"어."
"그, 죄송합니다."
익힌 닭가슴살을 빼내, 뼈와 분리하고 얇게 찢는다.
피식
"미안한 건 알고?"
"저, 정말 죄송합니다."
"농담이야, 인마. 태준이도 그 꼴 났는데, 무서울 수도 있는 거지. 넌 좀 심하긴 한데 아무튼."
대충 살을 발라낸 후 화로에 불을 붙여 웍을 달군 뒤 기름을 부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습니다.... 덩칫값 좀 하라는 말도 자주 들었고요."
손질해 놓은 파를 가져와 파기름을 내려던 참.
자기보다 계급도 높은 사람이 요리하는데 뒤에서 보고만 있자니 무안했는지,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운동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들어서 운동도 하고 격투기도 시작했는데... 이 성격은 안 고쳐졌습니다."
그래서 저 근육 덩치가 완성된 건가.
파기름에 달걀을 풀면서 듣자 하니, 그 성격 탓에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오늘처럼, 이성적으로는 해야 한다고 아는 일인데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래서 입대할 때도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는 싫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했습니다."
그 위에 밥을 넣어 달걀과 섞어 준 후, 손질한 야채들과 고기를 넣고 밥알이 풀릴 때까지 볶아 준다.
"궂은일도 빼지 않고 도맡아 하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될 줄...."
간은 소금과 후추,
그리고 후임이 사놓은 고급 굴 소스로 맞춘다.
"신 병장님은 후임들이 죽는 걸 보고서도 괴물하고 맞서 싸웠다고 들었는데, 저란 놈은...."
"야."
"예?"
진지한 표정으로 하던 말을 끊게 된 건 좀 미안하지만.
음식이 완성됐다.
"특식이다."
건조기에 들어가 있던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져온 뒤 음식을 담아서 녀석에게 밀어 넘겼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는 뭐, 별거 없고. 이거나 먹어."
"신 병장님...."
덩치가 곰만 한 녀석이 울먹이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진 않았다.
['용기를 품은 초보 요리사의 닭가슴살 볶음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주재료-육류의 품질이 좋지 않습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저하됩니다.]
[보조재료-조미료의 품질의 뛰어납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요리입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특정 대상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해당하는 대상이 요리를 섭취할 경우,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섭취 시 일정 시간 동안 힘+ 3, 민첩 +3, 특정 대상이 섭취할 경우 요리의 모든 효과 30% 증가.]
[주방장의 특별 소스가 첨가되었습니다.]
전광일 상병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요리를 입에 담기 시작했다.
"맛있냐?"
"마, 맛있습니다. 신 병장님, 밖에서 요리하다 오셨습니까? 무슨 맛이...."
"새끼, 입에 발린 소리는 잘하네."
"지, 진짠데...."
먹을 만한 건 사실인지, 빠르게 그릇을 비워 가는 녀석.
'...얘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겠다만.'
겁이 많다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타고난 성격.
그런 타고난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애초에 개인의 성격을 가지고 그걸 비판하거나, 고치게 만드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이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이 녀석의 열외가 용납되는 건 아니야.'
이곳은 군대.
바깥의 상식과 달리, 개인의 성향을 마냥 존중해 주진 못한다.
각성 과정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부대 모두가 알게 됐다.
이 녀석이 각성에서 제외되는 것을 용납해 버린다면, 다른 이들도 열외로 해 달라고 하게 되겠지.
위험한 일을 나서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열외자가 생기면, 열외로 하지 않은 각성자들과는 나눠서 구분될 수밖에 없다.
구분이 생기면 분열이 생기게 되고, 분열은 약화를 불러온다.
이 녀석을 용납하는 일이, 부대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야."
이 정도는 말해 줘도 되지 않을까.
"고생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그릇을 다 비운 녀석이 나를 보며 말했다.
"신 병장님... 정말 죄송했습니다."
"어허, 음식 잘 먹었으면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는 거야."
"자, 잘 먹었습니다."
"그려."
녀석은 그러고도 할 말이 남았는지,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이었다.
"병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냐. 아, 이런 특식 같은 건 자주는 못 해 준다? 알지? 우리 부대 지금 식량 위기야."
"저도 압니다. 요리도 맛있었습니다만, 그거 말고도... 뭐랄까.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걸 병장님한테 털어놓고 나니까 좀 시원한 기분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묘하게 자신감도 생겨나는 것 같고요."
"다행이네."
자신감이라.
녀석은 요리가 아니라 나한테 털어놓은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거 아마 요리 때문에 그런 게 맞을 텐데.'
짐작 가는 구석이랄까.
아무튼 그런 게 있다.
"신 병장님. 다음 괴물 마무리 짓는 일.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괜찮겠냐?"
"예.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됐다!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속으로는 '예쓰!'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잘 생각했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병장님."
"은혜는 무슨. 이제 복귀해. 계속 붙잡아 두기도 미안하네."
그렇게 광일이를 보낸 뒤.
식당에 혼자 남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효과가 있었어...."
군인으로서 전광일 상병은 에이스 중의 에이스다.
큰 키와 근육량에서 나오는 운동 능력과, 격투기 경험에서 쌓은 전투 수행 능력.
성격도 온순해서 선, 후임과의 관계도 좋고, 명령도 잘 듣는다.
유일한 단점이 바로, 겁이 많다는 것.
"그럼 고쳐 주면 되지."
일반적인 군대였다면 혹독한 훈련을 통해 정신 개조를 해야겠지만.
운이 좋게도.
대체할 만한 방법이 있었다.
[주방장의 특별 소스]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훌륭한 주방장은, 그 마음의 방향성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별 소스를 통해, 음식을 섭취한 이들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각성하면서 얻게 된 이상한 능력 중 하나.
이미 대충 실험도 마쳤다.
'병사들을 안심시키려고 사용했을 때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지.'
불안으로 술렁거리던 병사들의 분위기가, 식사 후에는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쓸모가 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
그렇다면 안 쓸 이유가 없잖냐.
전광일 상병의 단점이 겁이 많다는 것이라면.
그걸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포를 이겨 내는 힘은, 용기.'
[용기를 품은 초보 요리사의 닭가슴살 볶음밥]
녀석을 냅다 끌고 와 밥을 먹인 것도, 당연히 이 능력을 쓰기 위해서다.
최대한 약발이 잘 받으라고 요리도 나름 힘써서 만들었다.
"무난하게 잘 풀린 거 같네."
광일이 녀석이 용기를 얻었으니.
다음 괴물이 나타났을 때 무난하게 각성에 성공하고 넘어가면 되겠지.
물론 태준이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면 안 된다.
총으로 괴물의 힘이 확실히 빼놓고 각성을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 * *
한 시간 뒤.
일이 마냥 무난하게 풀리지만은 않았단 걸 알게 됐다.
"전광일 상병님! 아직 가시면 안 됩니다!"
"미친, 야, 야! 다들 광일이 말려!"
병사들이 전광일 상병의 양팔을 붙잡은 채 소리 질렀다.
정작 붙들린 광일이 녀석은 어땠냐면....
"나를 막지 마라! 내 용기를 시험할 기회가 왔으니!"
야밤에 부대에 나타난 괴물.
우선 총으로 최대한 체력을 빼놓은 뒤 광일이가 마무리하게 하려 했다.
그런데 광일이 녀석이 총알을 몇 발 맞지도 않은 괴물을 보더니, 저딴 말을 내뱉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크하하! 죽어라! 괴물! 나의 제물이 되어라!"
"크륵...."
총알을 10발 이상 맞았으니 어느 정도 힘이 빠지긴 했겠지만.
그래도 질긴 생명력 탓에 아직 힘이 남아 있는 괴물.
끝내 말리던 병사들을 모두 뿌리친 전광일 상병은 그 괴물에게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카학!"
당연히 괴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놈의 두 손이 광일이를 덮쳤다.
"크큭!"
광일이 녀석은 거기에 맞서 자기 손을 내뻗더니.
자신을 덮치던 괴물의 손을 붙잡고 힘 대결에 들어갔다.
두 손으로는 괴물을 붙잡은 채로, 무릎을 들어 괴물의 복부를 가격하는 전광일 상병.
턱! 턱!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괴물의 몸을 뒤덮고 있는 비늘은 매우 단단하다.
총으로 쏴야 겨우 뚫리는 비늘을 무릎으로 부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광일이의 군복 무릎이 찢어지고, 안쪽에 있던 무릎에선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크하하, 도마뱀 새끼! 제법 튼튼하구나!"
소리친 녀석은 복부를 차던 무릎을 돌려 괴물의 발에 걸었다.
동시에 손에 힘을 주던 방향을 바꾸니.
괴물의 몸이 크게 출렁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전광일 상병의 거체가 그 위를 덮쳤다.
괴물을 바닥에 쓰러트린 녀석은 한쪽 발로 괴물의 오른팔을 짓밟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괴물의 머리를 누르고, 한 손으로는 괴물의 왼팔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그 사이의 겨드랑이가 노출되었다.
비늘이 없고, 심장과 가까운 부위.
'...내가 알려 준 약점!'
미쳐 버린 것처럼 보였는데, 그 와중에 괴물의 약점은 기억하고 있었나?
그러나 겨드랑이에 비늘이 없다고 해서 가죽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관절부인 만큼 부드러운 편이긴 했으나.
대검 하나 안 들고 덤벼든 전광일 상병이 그 가죽을 뜯고 심장부를 공격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콰직.
공격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이었다.
녀석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괴물의 겨드랑이 부분을 물어뜯었다.
괴물의 살점 일부가 전광일 상병의 입에서 덜렁거렸다.
"퉷, 더럽게 맛없군."
괴물의 겨드랑이의 가죽을 뜯어낸 녀석은 괴물의 머리를 짓누르던 팔을 가져오더니.
손날을 세워 그 겨드랑이 부위에 쑤셔 박았다.
찌걱, 찌걱.
"크라하... 학!"
얼굴이 자유로워진 괴물이 전광일 상병을 물어뜯으려 했으나.
심장 근처, 혈관이 모여 있는 몸 안을 헤집자.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물.
잠시 뒤.
괴물의 속살을 거칠게 헤집다 보니 혈관이 터져버렸는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몸속의 피가 급격하게 빠져나가자.
고통에 몸부림 치던 괴물은, 날뛰던 기력조차 잃고 점점 얌전해졌다.
툭.
괴물이 목숨을 잃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괴물의 죽음을 확인한 전광일 상병이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눈앞에 무언가 있기라도 한 듯 잠시 바라보더니.
곧이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신 병장님! 저도 각성했습니다!"
온몸을 괴물의 피로 물들이고.
한 손에는 괴물의 심장을 든 채.
입가에는 아직도 괴물의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녀석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모두 신 병장님 덕분입니다!"
"...."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라고 생각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들.
"...약발이 좀 과했나."
7화 각성자 늘리기 (4)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 그냥 맛있는 거 해 주고! 얘기 좀 들어 주고! 그게 다라니까?"
광일이를 성공적으로 각성시킨 건 좋았지만, 효과가 너무 좋았던 탓일까.
이민재 병장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너한테 그런 설득의 재능이 있었다고...."
"형, 사람의 마음이란 게 다 그런 거야. 좀 기운 없고 무섭고 해도. 맛있는 밥 먹고, 속에 쌓인 것들 속 시원하게 뱉어 내고. 그러면 다 풀리는 거라니까? 경청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되지."
"그, 그런 거냐?"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주방장의 특별 소스]라는 내 스킬의 효과다.
'...하지만 밝힐 수는 없지.'
사람들한테 보여 줬던 [최하급 단도 숙련]하고는 다르다.
[주방장의 특별 소스]는 사람의 감정을 조종한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약간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오늘 전광일 상병의 모습을 보니, 이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인격 개조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
'잘못 알려지면 위험할 수 있어.'
일단은 숨기는 게 좋겠지.
"...너, 전광일 그 녀석이 무슨 직업 얻었는지 아냐?"
"뭔데?"
"광전사란다. 이성을 대가로 전투력이 강해지는 특성도 생겼다더라."
"...."
내가 의도한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용기, 용기였잖아....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짐작 가는 이유라고 하면, 약발이 너무 강하게 든 게 아닌가 하는 것.
[특정 대상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해당하는 대상이 요리를 섭취할 경우,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광일이 녀석에게 먹인 요리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병사들을 안심하게 만들 때는 100인분이었고, 이번엔 1인분이었으니.'
100배까진 아니라고 해도, 효과가 배가된 게 아닐까?
게임에서도 광역 버프보다는 대인 버프가 효과가 강한 게 상식이니까.
광일이가 보여 준 모습은, 용기를 너무 심하게 얻은 탓이었고.
"...광일이는 원래 덩치도 크고 싸움 잘할 것처럼 생겼잖아. 그런 쪽 재능이 있었나 보지."
"그 순한 녀석이?"
이민재 병장은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무튼, 앞으로도 각성할 차례가 된 병사들은 나한테 보내 줘. 위험한 일인 건 맞으니까 특식 정도는 먹여 줘야지."
"괜찮은 거냐? 식량에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잖아?"
"어차피 남은 식량 대부분이 비상용 보존식들이야. 나머지 식자재들은 썩기 전에 빠르게 소비해야 하고. 죽은 사람이 많아서 먹을 입이 줄었잖아? 신선 재료들 썩기 전에 쓰려면 오히려 엄청 먹여야 할걸."
군대의 식량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주에 2~3회씩 들어오는 식재료로 만드는 일반 식사.
야전 등에서 취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전투식량.
식자재를 보관하는 1종 창고에 쌓여 있는 비상용 식량.
비상용 식량은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보급이 끊겼을 때를 대비한 식량으로, 쌓여 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양이 많다.
단점이라면 비상용인 만큼 아무래도 메뉴가 단조롭고 한정되어 있다는 것 정도일까.
보통 캔에 담긴 카레나 짜장, 탕류가 주가 된다.
전투식량의 퀄리티야 뭐,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실상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일반식뿐인데, 보급이 끊긴 상황.
'제대로 된 식사를 내놓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아.'
그렇다면 아끼지 말고 먹일 수 있는 만큼 먹이는 게 나았다.
거기에 비상용 식량이나 전투식량은 딱히 조리라고 할 과정이 없는 음식들.
내 직업인 '요리사'를 활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니까.
* * *
그렇게, 부대의 각성자 늘리기가 시작됐다.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그냥 죽인 거냐?"
"예. 저항이 너무 거세서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뭘, 잘한 거지."
괴물들은 계속해서 부대를 습격했고, 병사들이 막아 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병사들이 다가가 '막타'만 칠 정도로 몰아넣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명력이 너무 질겨.'
태준이 녀석이 괜히 괴물의 반격에 당한 것이 아니다.
총을 열 발 가까이 박아 넣어도 죽기 직전까지 발악하며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괴물이 부지기수.
태준이처럼 또 병사가 괴물에게 다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부대의 사기가 급감할 것은 뻔한 일.
각성은 어디까지나 안전하게 진행해야 했기에, 각성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변이라고 해야 하나, 변화는 있었다.
광일이 다음으로 각성을 하기로 한 것은, 수송반의 서수혁 상병.
전광일 상병과 달리, 서수혁 상병은 순순히 각성에 응했다.
그리고....
"직업은 사수라고 뜹니다. 그런데... 이거 뭡니까?"
눈앞에, 또다시 문구가 나타났다.
[파티 결성!]
[전투의 최소 단위, [파티(5인)]를 결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지역 - ROK의 세 번째 파티입니다.]
[소지역 - ROK. 17의 첫 번째 파티입니다.]
[업적 달성 - 일단 모여!]
[남들보다 빠르게 파티를 결성하는 데 성공한 당신들!]
[앞서가는 이들을 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3위 보상 - 성장의 비약x10]
보상이라는 것은 곧바로 주어졌다.
각성한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인당 10개씩의 알약.
[성장의 비약]
[일정 시간 동안 경험치 습득률이 500%가 됩니다.]
"...점점 더 게임 같아지네."
파티.
게임에서 인스턴트 던전을 공략하거나 하는데 동원되는 최소한의 기준.
게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5인은 정확히 '파티' 수준의 인원수이기는 하다.
"5인이라.... 나, 영준이 너, 그리고 태준이, 광일이, 수혁이. 이렇게 다섯 명인가?"
"그렇겠지? 아직 기절해서 병실에 누워 있는 태준이도 포함된 게 신기하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문구를 지켜보던 광일이가 말했다.
"저는 저 3위라는 문구가 더 신경 쓰이는데요."
"그게 왜?"
"저희가 3위면, 1, 2위가 있다는 거고. 저희랑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이 더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마 부대 밖에도 괴물들이...."
"그건...."
그렇긴 하지.
"하아, 부모님들은 어떻게 됐을지."
부대 내에는 아직도 '괴물들이 우리 부대만 습격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병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이 문구의 내용으로 보아, 최소한 부대 바깥에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지역이 더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최악의 경우, 부대원들의 가족들도 괴물들의 습격에 휩쓸렸을지도 모르는 상황.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진 말자. 바깥 사정도 걱정되긴 하지만, 걱정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일단은 우리 안전이 먼저잖냐."
"그렇습니다만...."
"모르긴 몰라도, 업적 보상이라는 것까지 줄 정도면 우리는 상당히 앞서가고 있다는 뜻일 거야. 우리 안전이 먼저 확보된다면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때,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서수혁 상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좀 마음에 안 드는데요."
"음?"
"5인이라니, 살아남은 부대원이 100명이 넘는데? 각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원으로 치지도 않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
"각성자만 사람 취급? 살아남으려고 각성하긴 했지만, 좀 짜증 나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이 갑자기 변해 버린 것만 해도 당황스럽지만.
그 변한 세상은, 각성자가 아닌 인간은 인간으로 세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각성한 직업이 사수라고 했지? 특성 같은 건 어때?"
"음, 초보 사수. 특성은 사격할 때 정확도와 위력이 강화된다고 돼 있네요."
그러고 보니 서수혁 상병은 부대에서도 항상 사격 능력자로 유명했던 거 같다.
"근데 사격이라니? 우리는 총알이 모자라게 될까 봐 각성을 하고 있는 건데?"
"어, 그러게 말입니다?"
"...."
"...."
다행히도,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저 괴물들, 그냥 총알은 10발을 맞아도 살아서 날뛰었습니다만. 서수혁 상병님 총알은 두 발만 맞아도 빈사 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괴물 한 마리를 제압하는 데 드는 총알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총알을 아낄 수 있다는 것.
한동안 괴물을 제압하는 역할은 서수혁 상병이 맡기로 결정됐다.
그 후로도 각성자 늘리기는 계속됐다.
"제 차례입니까? 후우, 알겠습니다."
서수혁 상병처럼 큰 불만 없이 각성에 응하는 병사들이 있는가 하면.
"흐으윽... 난 못 해.... 우린 다 죽고 말 거라고...."
광일이처럼, 두려움에 떨며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워, 워. 진정하고. 밥 좀 먹고 얘기하자."
"큭큭, 가자! 영광스러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린다!"
용기를 조금 담은 특식을 제공해 주는 거로 해결.
"너...."
내가 설득하겠다고 데려갈 때마다 용기 충만해져서 돌아오는 병사들.
그 모습을 본 이민재 병장의 시선이 조금은 따가웠지만....
'부대의 결속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각성자 : 신영준]
[직업 : 신입 요리사 Lv. 1]
[능력치 : 힘 9, 민첩 10, 마력 8, 행운 9]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최하급 요리 숙련, 최하급 재료 감별, 최하급 화염 친화]
[스킬 : 요리사의 눈, 주방장의 특별 소스]
[포인트 : 82pt]
[재능 : 대규모 조리]
그렇게 부대원들을 각성시키는 동안, 나도 내 능력을 점검했다.
우선은, 포인트.
"82? 언제 이렇게 쌓였지?"
괴물을 사냥하거나, 요리를 만들어 먹일 때마다 포인트가 상승한다는 문구가 보였던 것 같기는 하다.
그렇게 포인트가 꽤 쌓인 모양.
게임에서 포인트라고 하면, 사용처는....
"...포인트 상점?"
[포인트 상점]
[딱딱한 호밀빵 - 10pt]
[평범한 강철검 - 30pt]
[평범한 방패 – 30pt]
.
.
.
혹시나 해서 이름을 부르자, 눈앞에 나타나는 포인트 상점.
상점이라는 이름에 맞게, 이런저런 물건들이 있는 듯했으나, 내게 쓸모있는 물건은 없어 보였다.
전사나 마법사 같은 전투직으로 각성한 이들이라면 쓸 만할지도.
'호밀빵...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건가?'
그나마 빵 같은 식량이 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으나, 가격이 꽤 있는 편이라.
만약에 삼시 세끼를 저 호밀빵으로 때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꽤 성실하게 포인트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려, 다른 물건들이 무엇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총알이 있냐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총과 총알 같은 것은 판매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듯싶었다.
그나마 가장 아래쪽에 이런 게 있었다.
[능력치 상승의 물약(힘)] - 1,000pt
[능력치 상승의 물약(민첩)] - 1,000pt
[능력치 상승의 물약(마력)] - 1,000pt
[랜덤 스킬북] - 3,000pt
"성능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비싸구먼...."
능력치를 상승시키거나,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물건들.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쳐다보기도 불가능한 가격이었다.
언젠가는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다음으로는, 스킬과 특성들.'
먹은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는 [주방장의 특별 소스]는 이미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상의 손질법과 조리법을 알게 되는 [요리사의 눈]도, 어떤 효과인지는 대충 확인했으니 넘어가고.
[최하급 단도 숙련]
실험해 본 결과, 사시미칼로 단단한 원목 정도는 가볍게 자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광전사'로 각성한 광일이와 약간의 스파링을 해 본 결과.
"혹시 밖에서 조폭 일 하다 오신 거 아닙니까?"
"뭔 소리래."
칼질은커녕 주먹다짐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나임에도, 단도를 사용한 전투 자체가 몸에 익은 듯이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이게 최하급이라면, 상급쯤 되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 걸까.
조금은 무서워졌다.
[최하급 화염 친화]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만졌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불길에 손을 넣어 보기도 했는데, 30초쯤 지나자 뜨거워져서 급하게 손을 뺐다.
[최하급 재료 감별]
[최하급 파 : 신선도와 질이 떨어지는 평범한 파다.]
말 그대로 식재료의 설명을 볼 수 있는 특성이었다.
이걸로 보고 알았는데, 식당에 보급되는 재료는 죄다 최하급이었다.
'이게 나라냐?'
취사병들이 따로 사 놓은 재료들은 대부분이 중급, 드물게 상급 재료도 있었으니 다행이지만.
[최하급 요리 숙련]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영준아, 너 요리에 무슨 짓 했냐?"
"민재 형? 왜? 맛없어?"
"아니, 오히려 맛은 엄청 좋아졌고. 그것보다도 묘하게 힘이 난다고 해야 하나.... 까놓고 말해서 스탯이 올랐는데."
"아."
완성된 요리에 붙어 있던 힘 +3이니 뭐니 하던 스탯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
"다른 사람들은 못 느끼는 거 같던데."
"문구에 특정 스탯을 올려 준다고 돼 있다며? 각성하지 못한 병사들은 스탯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아, 그런 건가.
스탯을 올려 준다고 적혀 있는 효과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애초에 '스탯'을 가지고 있는 상대여야만 한다는 것.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 요리밖에 없더군."
거기에 더해서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먹은 요리의 효과가 따로 시스템 메시지로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민재 형도 요리를 먹자마자 묘하게 힘이 세진 느낌이 들길래.
상태창을 확인해 본 뒤에야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내가 가진 '식재료 감별' 특성처럼 특별한 능력이 없는 한. 시스템 메시지가 요리의 효과를 알려 주지는 않는다는 거겠지.'
하긴.
그랬으면 '특별 소스'를 사용한 시점에서 병사들한테서 얘기가 나왔을 테니까.
"그럼 체감은 어때?"
"솔직히, 엄청 크다. 내 원래 힘 스탯이 9였는데 3이 올랐으니까. 수치로만 쳐도 30%고, 체감상으론 훨씬 커."
요리를 먹으면 버프가 들어오는 게임은 많다.
하지만, 그 버프의 양은 게임에 따라 다르다.
민재 형의 감상을 들어본 바로는, 적어도 우리가 처한 이 게임의 요리사는 성능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이 정도의 버프가 부대 전체에 적용된다면... 영준이 네가 우리 부대의 핵심이 될지도?"
"에이, 취사병이 무슨."
그렇게 내 능력도 어느 정도 확인하고.
부대원들도 순조롭게 각성을 계속해 10명이 넘어갔을 때쯤.
"병장님들. 잠깐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괴,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리자드들? 이제 익숙해질 만도...."
"아니, 그 녀석들하고는, 격이 다른 괴물입니다!"
이변이 발생했다.
8화 야습 (1)
부대원들을 각성시키며, 우리는 부대의 경비 체계도 조금씩 손봐야만 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100명밖에 안 되는 병사들이 지키기엔 부대가 너무 넓었다.
"생활관에서부터 식당까지. 그 근처 건물로 자원하고 인력을 모으자."
"저희 레이더 부대 아닙니까? 레이더를 방치해도 될지."
"외부하고 모든 종류의 연락이 끊긴 상황이야. 레이더 정보도 다른 부대로 안 가는 상황이고. 적이 북한도 아니고 레이더를 노리겠냐 설마?"
물자를 생활관에 모아 놓고 병사들도 생활관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생활관을 감싼 주변 건물들 옥상에 병사들이 올라가 주변을 경계.
혹시 문제가 생기면 중앙의 생활관에서 대기하던 병사들이 각 건물로 지원을 하러 간다.
괴물들이 병사들이 생활하는 생활관까지 접근하기 전에 요격한다는 전략.
부대의 펜스가 멀쩡했으면 모를까, 괴물들의 이빨과 손톱으로 펜스는 이미 열린 문이나 다름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택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망원경으로 주변을 정찰하던 병사 중 한 명이 이변을 발견한 것이다.
"아! 병장님들 오셨습니까!"
"다른 괴물이 나타났다고?"
"예! 생긴 것 자체는 지금까지 나타난 그 리자드라는 녀석하고 비슷합니다만, 보시면 알 겁니다."
나는 병사에게서 망원경을 받았다.
"저기, 저쪽을 잘 보시면."
우리 부대는 주변에 산밖에 보이지 않는 산맥의 깊은 곳,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해 있다.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주변 산의 지형이 훤히 보였는데, 병사가 가리킨 곳을 보니 확실히 무언가 보였다.
검은 비늘로 몸이 뒤덮인 괴물.
거기까지만 보면 지금까지 부대를 습격한 괴물들하고 다를 바 없지만.
"...엄청 큰데?"
우리 부대를 계속해서 습격해 오는, 도마뱀과 비슷한 괴물, 리자드.
그 괴물은 비늘도 단단하고 생명력도 질겼지만,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약간 작은 인간하고 비슷한, 160cm 정도가 평균.
"저건 2.5미터는 될 것 같군."
"주변에 다른 리자드들도 보입니다. 아마 놈들의 대장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괴물들이 단체 생활까지 한다고?"
지금까지 부대를 습격한 리자드들은 보통 한 마리씩.
많아도 두세 마리가 같이 다니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 덩치 큰 대장 같은 놈과 그놈을 따르는 평범한 크기의 리자드는....
얼핏 봐도 스무 마리 이상.
부대를 습격하던 녀석들과 달리, 명백하게 위험한 숫자다.
"총알이 좀 소비되긴 하겠지만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민재 형은 그렇게 큰 문제인가 하는 투였다.
확실히, 리자드들에겐 총알이 통한다.
스무 발 가까이 박혀야 쓰러지는 놈들이라지만, 부대 옥상에 총을 든 부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
총알이 많이 소비되긴 하겠지만, 스무 마리 정도야 부대에 접근하기도 전에 전멸시킬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저 녀석, 언제 발견한 거야?"
"오늘 새벽에 발견했습니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 어떻게 행동했지?"
"예? 그냥, 별거 없었습니다. 계속 부대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쳐들어올 기색은 안 보이더군요."
지금도 한두 마리씩의 리자드들이 부대를 심심찮게 공격해 온다.
그리고 나름의 수비책을 정립한 우리 부대는,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 있다.
오히려 여유롭게 막아 내고 각성자들을 늘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저 녀석은 스무 마리에 달하는 무리를 이룰 때까지 부대를 습격하지 않았다.
저만한 숫자를 가지고도 습격하지 않고 부대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이유라고 한다면.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다."
"예?"
"민재 형 말대로, 그냥 쳐들어오면 우리야 총알이 좀 소비되긴 하겠지만 문제없이 막을 수 있어. 하지만 저 녀석은 그러지 않았지."
"그건...."
2.5m에 달하는 덩치,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가진 저 괴물이 생긴 것과 달리 평화를 사랑하는 초식동물이 아니고서야,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평범한 습격은 통하지 않을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 부대 근처를 맴돌면서 정찰하고 있는 거다."
"괴물들이 그 정도로 똑똑할까요?"
"늑대들이 사냥할 때 얼마나 영악하게 구는지 알면 놀랄걸? 이족 보행까지 하는 녀석들이니, 늑대보다 영리하다 해도 놀랍지도 않아."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최소한 늑대만큼의 지능을 가진 괴물들의 사냥감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할까요? 저 괴물들이 기회를 발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도...."
"아니, 우리가 유리한 건 부대에서 수비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거지. 숲 밖으로 나가면 더 처참하게 사냥당할 거야."
"그럼 어떻게...."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렇다 할 말을 꺼내는 병사는 없었다.
하긴,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지.
"...일단 저 녀석 움직임은 계속 관찰해라. 교대할 병사들한테도 주의하라고 전하고."
민재 형이 근처의 병사들에게 당부했다.
확실히 병사들로선 저게 최선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걸로 충분할 리가 없는 일.
그렇다면.
"생활관에 방송 하나만 해 줄래?"
"예?"
"각성자들, 각성한 순서대로 나랑 면담 좀 하자고 전해."
병사가 아닌 요리사로서,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겠지.
* * *
대장 리자드가 부대 주변을 맴도는 것과 별개로, 부대원들의 각성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안전에 중점을 둔 만큼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부상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부대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부대원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줬으니까.
실제로 부대원들의 정신 상태는 첫날에 비하면 상당히 좋아진 상태.
물론 단지 부대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주방장의 특별 소스 - 안심]
[안정이 찾아오는 초보 요리사의 콩나물무침]
"그래도 부대는 몬스터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고, 무기도 있어. 바깥에도 괴물이 나타났을 확률이 높다며? 부대에 있는 게 더 안심돼."
[주방장의 특별 소스 - 편안]
[편안한 마음의 초보 요리사의 오징어젓갈]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괴물들도 상대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 좀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주방장의 특별 소스 - 믿음]
[불안을 쫓아내는 초보 요리사의 제육볶음]
"가족들 말입니까?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저희 가족은 강해요. 가족 중에 가장 나약한 저도 살아 있으니, 가족들도 어떻게든 살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찌 됐든 병사들의 사기가 계속 유지된 덕분에, 부대의 수비가 흐트러질 일은 없었다.
각성자도 무난하게 늘어나, 일주일간 10명이나 증가하여 총 20명이 각성에 성공했다.
부대 전체 인원 중 5분의 1에 달하는 인원수.
"그 덩치 녀석, 특별히 변화는 없지?"
"예. 여전히 부대를 맴돌기만 할 뿐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래, 또 숫자가 늘었구먼."
부대에 빈틈이 생기지 않는 만큼, 부대 주변을 맴돌며 기회를 노리는 거대 리자드의 습격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각성자를 늘리고 있을 때, 녀석도 한두 마리씩 따로 돌아다니는 리자드를 모으고 있는 듯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 20마리가량이었던 무리는 어느새 40마리를 넘긴 상황.
"아직까진 문제가 없습니다만, 100마리가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100마리여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우리도 '사수' 각성자가 꽤 늘었으니까."
부대의 첫 각성자 5인은 모두 직업이 달랐다.
직업명도 말 못 하고 기절한 태준이를 제외하면, 각각 요리사, 광전사, 마법사, 사수.
그 후로도 다양한 직업들이 등장했다.
시설반 녀석들이 공병으로 각성한다든가, 헌병들이 수비대원으로 각성한다든가.
그렇게 각성한 병사들은 서로 비슷한 능력을 지닌 직업군들끼리 모여, 서로의 직업에 대해 연구하고, 갈고닦게 되었다.
그 결과 알게 된 것 중 하나.
'사수 개사기.'
'사수' 각성자는 단 두 발의 탄환으로 리자드를 무력화시키거나 죽일 수 있다.
전사 계열 각성자들이 리자드와 근접해서 위험한 전투를 해야 하고, 마법사 계열 직업들이 주문을 외워야만 위력적인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것과는 천지 차이.
총알이라는 자원이 소비되고, 총알이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총알이 있다는 가정하에, 사수는 평범한 K2 라이플로 대물 저격 총급의 탄환을 연사로 당기면서도 대부분의 탄환을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는, 미친 직업이었다.
거의 걸어 다니는 기관포 수준.
20명의 각성자 중 사수 각성자는 3명.
이들 3명만 있더라도, 리자드 100마리 정도의 습격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리자드가 멀리서부터 달려오다가 사수들의 유효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포화가 빗발칠 테니까.
생활관 근처에 도달할 때쯤이면 10마리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부대원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그만큼 총알이 중요해지는 셈이지만.'
사수들의 화력이 그만큼 강력하단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충분한 숫자의 사수와 그들을 지켜 줄 전사 계열 각성자들로 저 괴물의 토벌에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숲이라는 엄폐물이 있는 만큼 사수의 화력도 제한되긴 할 테지만, 약간의 제한 정도는 문제없을 정도로 강력한 화력이었으니까.
"이대로 여유롭게 성장하면 이기는 건 우리야."
혹시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 나름 이런저런 준비도 해 놨지만.
아무래도 그런 상황 자체가 오지 않고 끝날 것 같았다.
'다음 주면 부대의 일반 식량도 거의 떨어지겠지만, 부대원의 반 정도는 각성시킬 수 있을 거야. 그쯤 되면 내 음식의 버프가 없어도 부대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테니까. 일반식의 필요도 줄어들 거고.'
모든 게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와 아침 식사 준비도 다 끝난 한산한 밤의 식당.
남은 식자재의 재고량도 확인하고, 그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을지 정리해야 했다.
지금이 10시니까 대충 11시까지 끝내고 생활관에 가서 자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재고 정리용 노트를 꺼내던 참이었다.
두웅.
"어?"
무언가 울리는 소리 같은 게 나더니, 식당의 불이 꺼졌다.
잔잔하게 울리던 냉장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전인가?"
생각해 보니, 오히려 지금까지 전기가 멀쩡하게 들어온 게 신기한 일인 듯싶었다.
바깥에도 괴물들이 나타났을 테니, 전기가 멀쩡하게 들어오던 게 이상한 일.
그래도 이곳은 군대인 만큼, 전시에 대비한 발전기들도 있으니 시설병들이 출동해서 곧 해결하겠지.
"아니, 잠깐."
지금은 밤.
전기가 나간 부대는 어둠 속에 잠겼다.
"이런 씨...."
'사수' 각성자들이 있다면 멀리서부터 쳐들어오는 괴물들을 모조리 요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수 각성자들이 원하는 대로 사격할 수 있을 때의 경우.
'사수 각성자들의 특성 중에, 밤눈이 밝아지는 특성은 없었어.'
나는 들고 있던 펜과 노트를 집어 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 잠긴 부대.
괴물들이 엿보던 기회가 찾아왔다.
9화 야습 (2)
급하게 식당을 나선 나는 생활관으로 달렸다.
"신영준 병장님!"
정전을 확인하고 위험을 예상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평상시면 조용했을 생활관에서 병사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지금 상황은!"
"병사들 배치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정전되자마자 이민재 병장님이 다들 총 들고 뛰어나가라고 하셔서...."
다행히, 민재 형이 위기를 눈치채고 빠르게 대처해 준 모양이었다.
"모아 둔 물자 중에 조명탄이 있어서, 가능한 한 주변에 뿌려 두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생활관 주변 건물 옥상에 배치된 병사들이 붉은색 조명탄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신속한, 최선의 대처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한계가 있겠지."
평상시에는 밤이라도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부대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조명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리자드 무리가 밤에도 습격하지 못한 것은, 밤이라도 우리의 시야가 좁아지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기껏해야 조명탄을 던지는 정도로는, 확보할 수 있는 시야 역시 기껏해야 생활관 주변 건물들까지.
지금쯤 부대에 괴물들이 진입했어도 이상하지 않으나, 그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각성자들은?"
"생활관 입구 쪽에 대기 중입니다. 괴물들이 어디로 쳐들어올지 모르니, 육안으로 보일 때까지 대기하다가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고...."
"나도 그쪽으로 합류할게. 힘내라."
"예! 병장님도 힘내십쇼!"
중간에 만난 병사가 말한 대로 생활관의 입구 쪽으로 향하니, 각성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건물 옥상에 배치된 사수 각성자들을 제외한 17인의 각성자들.
"신영준 병장님, 오셨습니까."
"영준이 왔냐."
각성자들은 다급한 상황 속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법사 계열들은 조용하게 주문을 외고 있었고, 전사 계열들은 부대 창고에서 가져온 슬레지 해머나 폭동 진압용 방패, 대검을 단 총알 없는 총검 등으로 무장한 상태.
오늘 저녁 식사에도 약하지만 '용기'가 섞인 요리를 먹였으니, 사기는 충분할 것이다.
나도 그들 옆에 가서 섰다.
내 무장은, 일식을 공부하던 후임이 두고 간 사시미칼 하나.
그리고 손에 든 봉투가 하나.
"생각해 보니까 넌 요리사잖아. 뒤로 빠져서 보급이나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뭐래, 이 부대 퍼스트 킬이 나야. 형."
"하하, 저는 신영준 병장님만 믿겠습니다!"
이민재 병장과 전광일 상병과 농을 나누며 합류한 나는, 손에 쥔 봉투를 열며 말을 꺼내려 했다.
"다들 잠깐 이것 좀...."
"잠깐."
내 말을 끊은 것은 이민재 병장이었다.
"왔다."
멀리서, 조명탄의 붉은 빛에 뒤덮인 형체들이 나타났다.
리자드들이었다.
"사격 개시!"
옥상에서 '사수'들을 지휘하는 서수혁 상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다다다다당.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사수'와 미각성 병사들의 사격음.
'급박한 상황이지만, 대처는 완벽했다.'
비록 정전으로 인해 시야가 줄어들었으나, 조명탄을 통해 최소한의 시야는 회복했다.
사수들과 일반 병사들의 사격만으로도 서른 마리 정도는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저 녀석은?'
리자드의 선두에, 다른 리자드보다 1.5배는 거대한 리자드가 나타났다.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리자드 치프틴]
[리자드 치프틴은 리자드 중에서도 보기 드문 개체로, 희귀한 만큼 다른 리자드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맛을 자랑하....]
'치프틴. 그런 이름인가.'
치프틴, 대장.
괴물들의 지휘관.
하지만 아무리 덩치가 크더라도 지휘관급 개체가 앞에 나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저래서야 스스로 타깃이 되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자고로 지휘관은 뒤에서 지휘해야만 의미가....
"크롸아아아아아아악!!!"
'윽!'
앞으로 나선 치프틴이, 엄청난 크기의 괴성을 내질렀다.
어찌나 큰지 그 소리만으로 바닥의 돌들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단순히 시끄럽기만 한 소리도 아니었다.
[강력한 피어에 노출되었습니다!]
[전장의 함성!]
[전장의 '강철 리자드 부족'의 힘, 민첩, 체력이 일시적으로 소폭 증가합니다.]
[전장의 '강철 리자드 부족'에게 일시적으로 '최하급 원거리 공격 저항' 효과가 부여됩니다.]
[전장의 '강철 리자드 부족' 외의 개체들에게 일시적으로 '최하급 혼란', '최하급 명중 저하', '최하급 집중 저하' 효과가 부여됩니다.]
"이게 무슨...!"
눈앞에 나타난, 딱 봐도 우리한테는 좋지 않은 문구들의 나열.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그나마 각성자들은 상태가 괜찮은 듯했지만, 옥상에서 사격하던 병사들 대부분이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반대로 리자드들의 몸에는 정체불명의 회색빛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사격 재개해! 이 새끼들아!"
그나마 각성자 중 최선임인 서수혁 상병이 정신을 차리고 사격을 개시했지만....
'명중률이 낮아...!'
'사수' 각성자들이 강력한 이유는, 그 탄환 한 발 한 발의 화력도 화력이지만 그 화력을 모조리 적에게 맞추는 명중률에 있었다.
하지만 리자드 치프틴의 피어에 담긴 '최하급 명중 저하' '최하급 집중 저하'의 힘인지, 사수 각성자들의 명중률은 평상시의 반도 안 나오는 듯했다.
그 정도라면 그나마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저 녀석들! 총알이 안 통합니다!"
"이런 씨... 각성 안 한 새끼들은 총알 싹 다 각성자한테 넘겨!"
'최하급 원거리 공격 저항...!'
리자드들의 몸을 맴도는 회색빛의 기운.
각성하지 않은 병사들의 탄환은 명중해도 그 기운에 막혀 흠집조차 내지 못했고.
사수 각성자들의 사격은 그나마 피해를 주긴 했으나, 단 두 발 만에 리자드들을 절명시키던 화력은 나오지 않았다.
명중률이 높지도 않은 사격을, 못 해도 다섯 발은 박아야 효과가 있는 수준.
그리고 리자드들은 단 셋밖에 되지 않는, '그럭저럭 버틸 만한' 사수 각성자들의 포화를 뚫고 생활관 근처 건물들에 접근했다.
"미친, 저런 능력이 있었으면서 왜 진즉에 습격 안 한 겁니까!?"
"...메시지를 봐, 대부분 효과에 일시적이라고 돼 있어. 평상시의 우리 부대였다면, 일시적으로 총알이 안 먹혀도 저 효과가 풀리는 순간 역전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일시적인 효과라도 접근하기에 충분하지."
"거기까지 생각했다는 겁니까? 저 괴물이...?"
광일이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저 정도의 지성을 가진 괴물이 있다니.
"각성자들 다 튀어나와!"
사수 각성자와 병사들의 총알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본 민재 형이 소리 질렀다.
건물 앞에 선 우리에게 괴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괴물들의 숫자는 얼핏 봐도 많아 보였다.
정찰할 때 봤던 무리는 40마리 정도였으나, 지금 보니 '사수' 각성자들에게 죽은 괴물들을 제외해도 50마리는 돼 보였다.
본래는 60마리에 가까웠다는 뜻.
'우리가 관찰하고 있다는 걸 알고, 무리의 숫자까지 속인 건가.'
소름이 끼칠 정도의 영악함이었다.
저기에 대항하기 위해선....
나 역시, 요리사의 역할을 해야겠지.
"민재 형."
"영준이? 너, 요리사니까 역시 빠져야겠다는 소리 할 거면...."
"그런 거 아니고, 형은 커피 좋아한댔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에서 작은 덩어리를 하나 꺼내 민재 형에게 던졌다.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사이즈의 모카빵.
"...?"
"광일이는 닭가슴살 좋아한댔지? 닭가슴살 샌드위치. 한입에 먹어라."
"예?"
그 외에도.
'불 마법사' 각성자인 홍수는 매운 것을 좋아하니 붉닭 소스로 만든 라면땅.
'전사' 각성자 한일이는 단 걸 좋아한다 했으니 물엿으로 만든 사탕.
17명의 각성자들의 취향을 조사해서 만든, 한입 사이즈의 요리들.
모두에게 요리를 건넨 후 빈 봉투를 대충 바닥에 버린 뒤, 사시미칼을 들고 말했다.
"자, 먹고 일들 합시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입에 넣었다.
먹을 때마다 주변에서 애늙은이 소리나 듣지만,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는, 녹차 맛 초콜릿.
'리자드 치프틴이랬냐. 네 피어는 확실히 대단했어.'
일시적이지만 아군의 능력치를 소폭 상승시키고, 최하급 버프까지.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효과였다.
하지만...
"난 일류 셰프가 될 때까지 못 뒈지는 몸이라."
입에 넣은 한입 요리의 효과가 퍼졌다.
['최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용맹함의 녹차 맛 초콜릿'을 섭취하였습니다!]
[특정인의 입맛을 조사해 그만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해당인이 섭취할 경우 요리의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중급 품질 이상의 뛰어난 재료들로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매우 뛰어난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모든 스탯이 하루 동안 대폭 상승합니다.]
[모든 특성이 하루 동안 1레벨 상승합니다.]
[하루 동안 '하급 물리 저항'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루 동안 '하급 공격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루 동안 '하급 지구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루 동안 '하급 마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특별한 소스의 힘으로, '중급 용맹' 효과가 적용됩니다.]
[중급 용맹]
[전장의 지배자!]
[용맹한 전사들은 전장을 지배합니다.]
[적대적 대상들의 스탯과 사기가 소폭 감소합니다.]
모든 각성자의 취향을 조사하고.
좋아하는 요리를 꼬치꼬치 캐물어서 부대에 있는 재료들과 후임들이 사 놓은 재료들로 최선의 힘을 다해 만든 요리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이 [게임]에서....'
요리사도 사수 못지않은 사기 직업인 것 같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끄르르륵...."
내 옆에 서 있던, 신장 196cm의 거인, 전광일 상병의 입에서 거품이 새어 나왔다.
평상시엔 순박하고 성격 좋은 녀석이지만.
'이 광전사 새끼... 좀 잠잠하다 싶더니 또 광기 도졌네.'
"끄르르르륵!!!! 가자 전우들이여...! 명예로운 죽음이 우릴 기다린다!! 우워어어어!!!"
기괴한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던지는 광일이.
[동료가 새로운 특성을 개방합니다.]
[최하급 피어 : 전장의 광란]
[아군에게 최하급 혼란과 중급 능력치 상승이 적용됩니다.]
['중급 용맹'의 효과로 최하급 혼란을 무효화합니다.]
쿵!
앞서 나간 거인 전광일이.
2.5m의 거대 괴물 리자드 치프틴과 격돌했다.
그 뒤를 따라 전사 계열 각성자들이 '우워어어어어어!' 소리를 내며 달려 나가, 리자드들과 맞선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 빛이 느껴져서 보니, 2미터에 달하는 번개의 창을 손에 쥔 민재 형이 보였다.
"이 정도 크기라니, 평상시의 두 배는 되겠어....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맛있었으면 된 거지."
"미친놈...."
이윽고 번개의 창이 날아가 한 마리의 리자드를 그대로 구워 버렸다.
민재 형은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네가 우리 부대의 핵심이다."
"그건 모르겠고. 이걸로 기껏해야 5:5야. 알지?"
"물론."
버프의 수치는 우리가 압도적이다.
조합도, 전원 알보병 리자드인 저쪽과 달리 이쪽은 나름 전열과 후열이 충실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머릿수가 부족하다.
'우리는 17명, 저쪽은 50마리.'
자그마치 3:1.
"나도 가세할게. 원거리 지원은 잘 부탁해, 형."
"그래, 절대 죽지 마라. 너 없으면 우리 부대 망한다."
병사들의 지원을 받아 리자드들과 싸워본 적은 많지만, 병사들의 총기가 완전히 무력화된 전투는 처음이다.
처음으로 치르는, 각성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괴물과의 전투.
절대 쉽지는 않았고, 오히려 죽음의 위기가 몇 번이고 있었다.
하지만....
[ROK. 17 지역, '산맥'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파티' 수준의 인원입니다. '길드' 수준의 세력을 일구기 전까지, 가칭 '423대대'가 적용됩니다.]
[월드 이벤트 - 점령전 현황.]
[소속 지역 - ROK. 17]
[지역 내 점령전 현황]
1. ???(??%)
2. ???(??%)
.
.
.
12. 423대대(가칭) (3%)
[대지역 - ROK 소속 인간의 첫 번째 '점령'입니다.]
[업적 달성! - 여기부터 저기까지 내 땅]
[1위 특전이 부여됩니다.]
우리는,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었다.
10화 얼마나 크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