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홀로서기

집이 사라졌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대관절 갑자기 왜 집이 무너진 걸까.

집 앞에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긁어 모으다 보니, 거대한 굉음과 함께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비록 어머님과의 추억은 없지만, 어머님의 레어는 내 집 이였다.

근처에서 예쁜 돌멩이를 주워와 보관하거나, 근방에서 풀들을 뜯어와 작은 침대도 만들고, 나무에 열린 과일을 가져와 말린 후 보관해두는 등.

아주 사사로운, 그렇지만 소중한 내 추억들이 깃든 공간 이였단 말이다.

그리고 새까만 하늘에서 작디 작은 하얀 솜 뭉치가 내려와 내 콧잔등에 내려 앉았다.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니 차가운 솜 뭉치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콧잔등에 내려온 하얀 솜 뭉치는 차가운 물방울 만을 남긴 채 녹은 후였다.

"뀨우 뀨...뀨" (눈 이네...)

내가 태어났을 때가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였으니, 지금은 대략 12월 그 정도 되겠지.

슬쩍 내 몸을 바라보았다.

연 노랑색의 깃털로 둘러 쌓인 날개 달린 도마뱀.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무능한 드래곤이다.

이 닭털 같은 깃털로는 이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겨울을 대비해 모아 놓은 식량들도 무너진 동굴 안에 들어있다.

하늘에서 내린 차가운 눈은 소리 없이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고, 온 세상은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모처럼 되살아난 삶 이였지만 여기까지 인 듯 하다.

신 님도 참 너무하시지.

이왕 새로운 삶이면 따듯한 벽난로가 있는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삶을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조용히 무너진 돌 무더기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처음 태어난 때를 떠올려보았다.

처음에는 혼란 이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 세상이 암흑 속 이였으니까.

내가 드래곤 임을, 그리고 이곳은 알 속임을 깨닫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본능 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으리라.

그 날부터 나는 기대했다.

두꺼운 알의 건너 편에서 전달되지 않는 희미한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상상했다.

과연 나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성격이고 어떤 것을 좋아할까.

신기하게도 알의 껍질은 두껍고 두꺼워 목소리는 전달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내가 들어있는 알을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따듯하게 품어주는 것이 느껴졌다.

힘겹게 알 껍질을 부수고 나왔을 때 유일하게 한번 보았던 어머님의 얼굴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새하얀 털로 덮인 나와 다르게 새파란 색의 비늘로 뒤덮인 그야 말로 드래곤이라는 느낌이 드는 드래곤이였다.

인간이 보았을 때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근엄해 보이고 왠지 피곤해 보이는, 그리고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분명 무언가 일이 있어 날 두고 갔겠지.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버렸겠지.

...아니 그냥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조용히 내 몸을 관찰했다.

처음 태어났을 때에 비해 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그리고 두 배는 거대해진 몸집.

그래. 집을 떠날 때가 된 거지.

나는 지금까지 나를 키워준 집에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모르겠지만, 우선 나는 나만의 집을 만들어야겠다.

따듯하고 안락한, 그리고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집을.

우선은 발걸음을 떼었다.

그곳이 어디를 향할지는 나도 모른다.

새하얗게 변한 세계에 작디 작은 발자국이 흔적을 남겼다.

긴 꼬리를 흔들며 걸어갈 때 마다 새하얀 눈 밭 위에 발자국이 생겨났다.

avataravatar